제가 무서워 하는 영화는-
현이·2005. 5. 31. PM 11:44:02·조회 287
공포 영화입니다.
시시하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제가 무서워하는 영화는 그냥 그렇고 그런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어릴 때는 귀신이야기만 나와도 벌벌 떨었습니다. 어릴 때는 밤 늦게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해 언제나 문 열어 놓고(집에서도) 엄마 앞에서만 볼일을 봤었습니다. 샤워도 밤 늦게 하지 못했을 정도 입니다. 동네에서는 골목대장이었지만, 밤은 저에게 있어서 지독히도 무서운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귀신 이야기가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전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진지하게 보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주온과 착신아리는 보면서 웃어버렸습니다. 저에게 있어 그것은 코미디더군요. 링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장화홍련은 심리학적인 면모가 있었기에 진지하게 세심하게 봤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무서워하는 영화가 무엇이겠습니까?
13일의 금요일 같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 영화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를 끔찍이도 싫어하기도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정말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전 살인 공포물 같은 경우 그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한번 보면 정말 며칠은 그 영화에 시달립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 옆의 옆의 옆의 옆 칸에서, 바로 제 눈앞에서.
공부 마치고 동아리 여자 친구와 저녁 먹고, 룰루 랄라 하면서 대화나누며 집으로 향하기 위해 역으로 갔습니다.
안양역.
구로에서 갈아타야 하기에 지하철을 기다렸고, 청량리 행을 기다리던 저에게 용산행 급행 열차가 온다는 방송은 확실히 희소식이었습니다. 아싸, 일찍 집에 가겠다, 이러면서 여자 친구와 놀고 있는데
제 눈은 들어오는 열차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제 눈앞에 10미터 정도 남겨놨을 때, 뭔가 물체가 뛰어들었습니다.
기관사 앞 유리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진 뒤, 열차에 깔렸습니다.
순간 정신이 멍했습니다. 모든 것을 제 눈으로 똑똑이 봤습니다.
탁, 퍽, 두그르르르르.
적어도 제 귀에 들린 모든 소리였습니다.
열차에 부딪히는 그 순간부터 열차에 깔려 바퀴에 갈려 구르는 모습까지, 지하철이 채 서지 못해 앞으로 나서서 지하철의 앞 모습에 그 하얀 물체가 사라지기 전 까지 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제 옆에 있던 여자 친구 눈을 제 손으로 가렸나봅니다. 아프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었고, 여자친구는 제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사람이 치인 것 같다고 하자, 화들짝 놀라면서 계단 벽에 붙더군요. 덜덜 떨면서 무섭다고 하더군요. 눈물을 흘렸습니다(울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물이 글썽 글썽).
못 보게 한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마음 놓고 있던 그 시점에서 상황이 닥치자 머리가 혼란스럽더군요.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속에서 내내 그 영상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열차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지고, 바퀴게 갈리고...
기관사 아저씨도 당황했는지, 황급히 멈춰세우긴 했지만 이미 깔아버린 후였습니다. 운전석에서 전화기를 들고 위에 연락하고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경찰아저씨와 역무장이 오더군요. 그리고 아래로 뛰어내려가 시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후진시켰습니다.
전 여자친구를 뒤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시신을 못 보게. 후진을 약간 하지 앞으로 엎어진, 대자로 뻗어버린 사람이 나오더군요. 옷은 처참하게 찢어져 있고, 퍼런 등을 내 놓은 채. 순간 섬뜩했습니다. 귀에서 자꾸 바퀴에 갈리던 두그르르르 소리가 들리는 느낌. 아시겠습니까?
시신이 나오기가 무섭게 119대원들이 와서 들것에 실어가더군요.
살아있기를 기원합니다만.. 죽은 것 같습니다. 119대원들이 들것에 실었을 때 하얀 이불을 얼굴까지 덮은 걸 보니 말입니다.
여자 친구가 자꾸 무섭다고 덜덜 떨면서 있길래, 어깨 잡아 주면서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저,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사람이 죽은 거 보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고, 전혀 면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첫번째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할머니와는 주욱 계속 살아왔었고, 마침 전 친구집에 놀러 갔었습니다. 친구집에서 노는데 형이 와서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알려 왔고, 그 후로 제 기억은 친척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은 당시 제가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사흘동안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 어린 놈이 뭐가 그리 서러운지, 진짜 서럽게, 할머니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도 그 모습 보고 다들 눈물 흘리고 갈 정도로 울었다고 하더군요.
제게 있어 그 기억은 그냥 희뿌연 기억일 뿐입니다. 솔직히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친구집에서 집으로 왔고, 할머니를 봤고, 그 모습을 보고 울었으며, 친척집에 있고, 다시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희뿌연 기억과는 반대로 너무 선명하기만 합니다.
여자 친구집 앞 역까지 바래다주고, 보내주고, 쓰러지듯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무서웠어요, 정말.
당시에는 멍한 정신에 아무 느낌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감각이 살아나면서 온 몸의 기운이 죽 빠지더군요. 얼굴을 보지 않아 다행입니다. 죽는 사람의 눈을 보면 귀신이 씌인다고 했던가요.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지하철의자에 기대어 앉아 멍한 정신으로 문자를 보내다보니 깨질듯한 두통이 왔고, 어찌어찌 집까지 기어 들어왔습니다.
..
자살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