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刈·2009. 3. 20. PM 4:13:20·조회 610
낙엽이 부서진다.
건조한 날씨에 바짝 마른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져 갔다.
지상에서의 마지막을 알리는 낙엽의 단발마. 그러나 살해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낙엽들을 밟아나갔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뚝.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낙엽을 살해하던 걸음이 멈췄다.
“음?”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을 바라보며, 낙엽 살해자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의문을 토했다.
도대체, 왜 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지?
* * *
“괜찮으십니까?”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이다. 대답은 가벼운 동작으로 대신. 그러나 그 어떤 설명보다도 더 깊게 닿았는지, 질문자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도했다.
“갑자기 비가 올 줄은…….”
가볍게 고개를 저은 질문자는 손을 들어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오랜 세월에 색이 바랜 머리카락은 작은 물방울들을 흩날렸지만, 그 대부분은 바닥에 닿기 전에 벽난로의 열기에 증발해버렸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벽난로 안에서 타고 있는 나뭇가지들의 비명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집이 있는 거지?”
“아마 숲지기가 머무는 곳일 겁니다.”
“아아.”
금발을 짧게 기른 청년은 노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곳에 집을 지을 만한 사람이라면 숲지기 외엔 없을 것이다.
곧, 벽난로의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본 노인의 손이 쌓여있는 장작에 닿았다.
“멈춰.”
“……!”
낯선 목소리를 들은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장작에 닿았던 손은 허리춤의 검자루를 세게 쥐었고, 벽난로를 향해 있던 눈은 반대편에 있는 문에 닿았다.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지며 시퍼런 검날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낯선 목소리의 주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무슨 짓이지?”
아무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검을 든 노인이 긴장을 느낄 정도.
조금 늦게 반응한 청년의 손에도 어느새 검이 들려있었건만, 아직도 별다른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사내는 눈앞의 노인과 청년을 무시한 채 발을 디뎠다.
검을 든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던 청년을 지난 사내는 노인을 노려보았다. 검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노인은 짧은 숨을 내쉬며 검을 움직였다.
그러나 검은 아래로 그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파고든 사내의 손이 노인의 손목을 우악스레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죽고 싶은가?”
노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사로잡힌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그의 신경을 모두 빼앗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라면 비켜.”
내던지듯 노인을 밀쳐낸 사내는 벽난로를 향해 걸었다.
벽난로 앞에 멈춰선 사내는 옆에 놓인 물통을 들어 그 안의 물을 벽난로에 부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이글거리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매캐한 연기가 그 자리를 채웠다.
물통을 내려놓은 사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시선이 닿은 곳은 반대편.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향해서였다.
아니, 소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려 보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향기가 이미 소녀라고 불릴 나이가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겁에 질린 듯한 그녀를 보던 사내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애써 다시 검을 쥐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불과 몇 분 전에 확인되었다.
자신. 그리고 일행의 목숨이 저 남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맙소사. 이런 곳에서.
“자네…….”
“뭔가, 노인.”
노인?
그 생소한 호칭이 가리키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노인은 씁쓸한 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그렇게 불릴 나이가 되어버린 것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마음이 젊다 한들, 육신의 노쇠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잠깐동안 그런 느낌에 젖어들었던 노인은 숨을 한번 토해내는 것으로 그 느낌을 모두 털어내고는, 검을 조금 더 들어올리며 사내를 향해 말했다.
“이곳 주인인가?”
“알았으면 그것부터 치우시지.”
턱짓으로 검을 가리킨 사내는 말을 이었다.
“강도가 아니라면 말야.”
“으음.”
하려던 말을 삼킨 노인은 검을 내렸다. 사내의 눈은 노인 뒤의 청년을 향했고, 머뭇거리던 청년은 조금 후에야 검을 집어넣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내는 다시 걸어 벽난로 반대편의 의자를 향해 다가가서는, 적갈색 망토를 벗어 벽에 걸고는 의자에 앉았다.
사내를 바라본 노인은 신음을 흘렸다. 제법 나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고작해야 20대 중반이나 됐을까 싶은 얼굴 때문이었다.
잠시 더 사내를 보던 노인의 표정이 풀렸다. 비밀을 눈치챈 것이다.
“하프엘프인가?”
“시끄러워.”
귀찮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 사내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하루 정도는…….”
말을 잇던 사내의 입이 닫혔다. 늘어뜨린 채 무릎에 올려져 있던 손이 움직여 허리에 닿는다. 허리띠에 매인 검집에 숨어있던 단검이 오른손으로 옮겨지는 것과 동시에, 사내의 몸이 퉁겨지듯 움직였다.
날카로운 소리. 사내의 단검이 거대한 도끼를 맞이하며 내지른 비명이었다.
가냘픈 단검, 망고슈에 가로막힌 워액스가 떨렸다.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는데도 얇은 망고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는 시선과 신음이 흘러들었지만,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무례하군.”
망고슈를 든 사내의 왼발이 워액스를 든 손을 걷어찼다. 온힘을 다해 망고슈를 밀어내던 손은 워액스를 놓치며 위로 밀렸다. 떨어지는 워액스를 망고슈로 받아낸 사내는 손목을 가볍게 돌려 워액스를 허공에 날리고는, 비어있는 손으로 허공에 뜬 그것을 받아들었다.
놓친 워액스 대신 검을 뽑아든 중년인을 본 사내는 눈썹을 꿈틀하며 워액스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곳곳에 빈틈이 드러난 순간이건만, 중년인은 가라앉은 눈으로 사내를 응시하는 것으로 동작을 끝냈다.
사내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흐음.’
천천히 망고슈를 집어넣은 사내의 눈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무단침입자들을 빠르게 훑었다. 여자가 하나, 남자가 셋. 금발 청년을 제외한 둘은 수준급으로, 중간 크기의 영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 검, 치워.”
중년인을 향해 말한 사내는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다시 의자로 향했다. 무시당한 중년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검을 집어넣었고, 노인을 향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대강의 이야기를 나눈 중년인은 힐끗힐끗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걸 모를리 없는데도, 사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죽은 듯이 미동도 보이지 않던 사내의 눈이 떠졌다. 그와 동시에 들려온, 발 끄는 소리에 신경이 쏠린 중년인의 눈이 사내를 향했다.
사내는 벽에 걸어놓았던 적갈색 망토를 다시 걸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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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세 받아본 지 일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슬슬 책으로 낼 만한 글을 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