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장 남파나단령 (2) 검 클라리(수정)
푸른바람·2002. 2. 20. PM 8:36:13·조회 5532·추천 67
"어..디..가..는...가..... 란트,"
이 오크가 내 이름을 익히는 데 6 개월이 흘렀다. 그나마 신디의 끝없는 잔소리에 그 정도 시간에라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 호칭은 언제나 '인간'이었으니까.
"숲에서 엘프들이나 보고 오려고..."
"그.. 난... 폭... 한.. 종...족..들...에..게 무..슨.. 일로?"
하...오크가 엘프보고 난폭하다라... 솔직히 오크들과 엘프들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엘프보고 난폭하다니...
"너희 종족 보다는 난폭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방..금...그..말...은....무...슨..뜻?"
리아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을 했다.
".....모르면 됐어."
난 오크들의 뇌구조를 살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엘프보고 난폭하다고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오크가 그런 소리를...지나가던 엘프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줬으면 아마 기가차서 쓰러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신디는 잠들어 있었다. 아니면 또 따라 갈 꺼라고 했을 텐데. 아직 마을 아이들과 그다지 친해지지 못하는 듯 했다. 혹시 그 이유가 나 때문일까? 아니라면 신디가 마을 아이들과 잘 지내질 못할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신디가 우리집에 온 뒤로는 여러가지 황당한 일이 많이 생겼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오크 전사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을 주위를 둘러보고 돌아오던 어느날... 문을 연순간 난 얼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빙계 마법으로 기습을 했냐고? 결코 아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있는 빙계마법에 당할 나도 아니고...
신디의 손에 끌려간 리아둠이 신디에게 요리를 베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주로 내가 요리를 하거나. 다른 집에 저녁을 얻어 먹으러 다녔었는데. 이놈의 오크가 초록색 얼굴에는 흰 밀가루를 덕지덕지 묻히고. 아무튼. 신디와 만난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내가 요리를 하는 일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없었다. 오크가 만든 인간 요리를 먹어야 했지만.
그리고 신디를 대려온 그 사건 이후로 내 현상금은 두배가 아니라 열배로 올랐다. 내가 죽였던 그 녀석이 피투안국의 둘째왕자였다는 소식을 도시에 다녀온 마을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 하긴 그 전투후 아무도 쳐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은 그 녀석이 이 나라의 왠만한 실력자는 다끌고 왔다는 이야기리라. 뭐, 실력자라고 해도 어린 애송이이거나. 30년전 전쟁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녀석이기 때문에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피투안국의 진정한 기사들은 30년 전의 전쟁에서 공주를 지키다 죽었다고 하던데, 그다지 관심이 가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귀찮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왕자녀석 아마 나를 잡고 명성을 올려 왕이 되고 싶었겠지. 정말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이 많았다.
"그럼 잠시 다녀 오지."
집을 나서자 나타난 광경은 볼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말 이색적이었다. 거의 천체에 가까운 각 종족 나름데로의 특성을 가진 집들이 뒤섞여 지어져 있었으니까. 아마 다른 나라의 도시계획 행정가가 우리 마을을 봤으면 기절 초풍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질서의 극치...나뭇가지와 짚으로 대충지어진 오크들의 집과 다른 종족집들의 약 2층 정도의 크기인 오우거의 집, 그리고 가장 많은 인간들의 집... 엘프들은 숲에서 생활을 하는지 따로 집이 없는 것 같았다.
전투가 없어지고 피를 온몸에 뒤집어 쓴체로 마을로 돌아오는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 마을 꼬마 녀석들도 나를 보고 도망치거나 울거나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점은 정말 다행이다. 난 누군가 우는건 시끄러워서 딱 질색이다. 아니..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있고, 특히 꼬마녀석들이나 여자들이 우는 것은.
마을을 벗어나자 넓게 펼쳐진 들판의 모습이 내눈에 천천히 들어왔다. 봄철인 들판에는 농사 준비에 온 종족들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소대신 쟁기를 끄는 오우거의 모습은 상당히 볼만 했다. 각 종족들마다 자신들이 가장 자신있는 일을 누가 특별히 지시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는 지도 모르는지 한 오크가 밭에 뿌릴 씨를 한웅큼 집더니 삼켜 버렸다. 순간 그 녀석과 내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러자 그 오크녀석 깜짝 놀라더니, 입속에 넣었던 것을 뱉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크를 노려보는 온갖 종족들의 눈길... 그 뒤 상황은 물을 보듯 뻔한 일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날 이후로 오크는 한달동안 자기집에서 누워만 있었다면 설명이 될런지 ....
사람들이 일을하고 있는 들판을 벗어나자 아직, 야생풀들로 가득한 자연그대로의 들판이 나타났다. 개간만하면 좋은 농토가 되겠지만, 아직 이 농토를 개간하고 일굴 일손이 부족해서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고 있었다. 길가에 핀 작은 봄꽃들의 모습을 보고 잇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무엇인지. 어렴풋이 어릴적의 기억이 살며치 스쳐간다. 들에서 꺾어온 꽃으로 집을 단장하시던 엄마의 모습.
늘 다니던 길을 따라 숲을 향해 천천히 들어갔다. 역시 언제나 처럼, 그 곳에 있는 큰나무 위에 앉아 있떤 소피가 조용히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란트, 어디 가는 건가요? 또 누가 쳐들어 왔어요? 이상한 소리는 안들렸는데.."
엘프들은 특별히 흥분하는 법 없이 항상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소피도 인간들보다 천천히 나이를 먹는 엘프의 특성 때문인지 인간들의 나이로 열 대여섯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나이도 아마...열다섯살이었지?
"아니, 기분전환겸 산책중."
그런데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답이 나왔다. 편안함이 가져온 마음의 여유...그 것 때문인 것 같다.
"네..."
평평한 나무 줄기에 앉아 소피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소피를 자세히 쳐다보자 소피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엘프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있었나? 나는 약간의 의문을 품으며 소피를 뒤에 둔체 걸음을 옮겼다.
"주인님아! 사람 좋아졌네? 묻는 말에 답도 하는 일도 있고?"
이 놈의 검...또다시 떠들기 시작했군. 한동안 시끄러워질 것 같다.
"신경꺼."
"숙녀한테 말하는 테도가 그게 뭐야? 주인님이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
여전히 이검은 쓸데 없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별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기를 좋아하니...왠지 사람을 더욱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피곤한데 검 딱는 건 안해야 되겠군..."
그러고 보니, 내 말이 많아진건 사실인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이놈의 검신을 지긋이 밟고 끝냈을 텐데. 이렇게 말 대꾸를 해주고 있으니까.
"뭐? 주인님.. 그러시면 안되요. 숙녀는 청결이 생명이에요. 마음착하고 잘생긴 주인님 제발 그것 만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 이 약아빠진 검.. 난 그후로 한동안 애걸하는 검의 말을 깨끗이 무시했다. 미운정일까? 그래도 귀찮은만큼, 이 녀석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나저나 신디가 검 녀석보고 연노랑빛 마음을 가졌다고 했을 때, 이놈의 검이 좋아가지고 몇시간 동안 떠들며 발악하는 것을 조용히 똥통 속에 넣었을 때 이후로 이렇게 이검이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좋은 약점을 잡은 것 같다.
내가 걸어가자 근처 나무 위에 있던, 엘프 들이 눈으로 살짝 인사를 했다. 몇달 동안 전투가 없어서 그런지 피냄새 때문에 이곳에 자주 오지 않던 엘프들이 지금은 이 곳에서 많이 사는 것 같다. 물론 소피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예전부터 항상 이곳에서 살았었지만....
피냄새만 사라진 것 뿐만 아니라 이 근처를 지날 때 쯤이면 기분 나쁘게 깍깍 거리던 재수 없는 까마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엄마와 시드가 죽던날. 그 때 들리던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를 난 평생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왠지모를 편안함. 사람들이 평화를 기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일까?
숲을 걷다보니 왠지 밖에서 마을로 오는 유일한 통로였고 내가 수없이 피를 흘렸던 그 곳, 그 들판에 갑자기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 전투 이후로 그 곳에 가본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변했을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님아~~~! 그 곳으로 가는 것 아냐?"
눈도 없는 검주제에 눈치가 상당히 빨랐다. 이번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내 의도를 빨리 눈치를 채곤 했으니까? 혹시 주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닐까?
"그래"
"거기엔 왜? 나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짧은 내 대답에 검은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몰라. 그냥 가보고 싶군."
한동안 전투가 없어서 심심했는지 이 시끄러운 녀석은 내가 가끔씩 손만 대도 이것 저것 시끄럽게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이번에 대화가 시작된 이후로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둥 하는 단순한 불평이 계속 이어졌지만 나도 그런데로 적응이 됬는지... 갑자기 내가 한심해 지는 것 같다. 어째서 주인인 내가 이놈의 검에 적응을 해야 하는지...어째든 검의 말은 안들리는 것으로 하고 난 그 곳을 향해 걸음을 바삐했다.
넓게 펼쳐진 들판, 사람들이 없는 그 들판은 정말 평온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언제 이 곳에서 수백의 사람들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져 갔냐는 듯. 예전에 곳곳에 보이던 패여진 황토빛 맨땅도 보이지 않고 그 곳들은 이름도 없는 야생 풀들과 들꽃들로 덮여저 있었다.
그 곳에 보이는 흰말.. 잠깐 이 곳에 말이 살았었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타고 있는듯 했다. 다른 마을로 물건을 사러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들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곧장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순간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말이 다가오자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점점 자세히 드러났다. 긴 하지만 빛나는 금발. 엘프 일까? 하지만 귀는 그다지 길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사람은... 일단 사람이라고 해두자. 나를 발견 했는지 빠르게 몰던 말의 속도를 늦추고는 천천히 다가 왔다. 그 사람에게서 특별히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나도 빼었던 칼을 집어 넣었다. 내 앞으로 가까이 오자 그 사람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 맑은 바닷색 눈, 여자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였지만, 그 에게서 남자라는 느낌은 확실히 느껴졌다. 갑옷 역시 화려하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갑옷에 대해 아는 사람은 느낄정도로 질이 좋은 갑옷이었다. 나도 그리 작은키는 아니었지만, 내가 위로 쳐다봐야 될 정도인 그가 내앞에 다가 오더니 살짝웃으며 입을 열었다. 왠지 사람을 아찔하게 만드는 듯한 미소.
"꼬마야, 너 피의 마왕이란 놈 어디사는지 아니?"
"??"
"아니, 모르면 됬어. 너 같은 꼬마가 알리가 없지..."
말투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목소리 역시, 괭장히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피의 마왕이라... 나를 부르는 것인가...? 쩝, 졸지에 마왕이 되버렸군. 어쩐지 요즘에 쳐들어 오는 놈이 없다 했더니. 그나저나 이녀석 도데체 내 얼굴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저 놈 눈빛을 보니 돈이나 허욕때문에 나를 찾는건 아닌것 같은데.
"귀찮게 해서 미안해, 꼬마 그럼 나간다.."
그는 날향해 씩 웃은 후 뒤로 돌아서서 말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피의 전사라 부르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나보고 마왕이라는건 처음인데.."
다시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는 그의 그 잘생긴 얼굴에 놀라움과 황당함이 섞인 듯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너 같은 꼬마가?"
"........."
못믿겠다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하는 그. 그런데 진짜로 어떻게 생각했다는 거야.. 마왕이라고 이야기 책에 나오는 그런 마왕을 상상했던건 아니겠지. 설마...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놈일 줄 알았는데.. 마왕치고는 너무 귀여워! 거짓말이지? 꼬마."
"........"
이 녀석 생긴거하고 다르게 단순한 놈이었나. 그런데 귀엽다라니, 순간 황당함에 정신이 나가는듯 했다. 취향이 독특한가 보군, 최근에 내 얼굴을 내가 자세히 본적은 없지만 내 얼굴이 귀엽다면 마을 사람들이 날 보며 그렇게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아무리 귀여운 꼬마라도 마왕이면 퇴치해야 하는 법.!"
생긴건 꼭 백마탄 왕자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단순하다는 생각 뿐이 들지 않았다. 이 녀석도 용사병에 빠져 있는 세상에 수많은 불쌍한 녀석들 중 하나인 것인가? 어휴..난 칼을 뽑는 그를 뒤에 둔체 그냥 마을쪽을 향해서 돌아 섰다.
"난 너 같은 눈을 가진 놈한테는 칼을 안 휘둘러.."
짧게 한숨을 내 쉰뒤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단순한 그를 향해 말을 했다.
"마왕, 감히 내앞에서 등을 보이다니.건방지군.."
저녀석이... 곱게 살려주려고 했더니. 난 손이 칼 쪽으로 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엄습해 오는 검기. 잠깐, 검기라니? 이녀석 보통 이상인 것인가? 하지만 난 칼을 칼집에서 뽑아 돌아선 뒤, 그의 칼을 별어여움 없이 간단히 막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과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검술은 상당한 듯 했다. 이 때까지 마을을 공격해온 애송이 녀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목숨을 빼앗는데 그리 힘이 들지는 않겠지만...
"마왕, 역시 대단하군 내 공격을 막다니..."
"........"
확실히 용사병에 걸린 녀석이 틀림이 없는 듯. 그런데 다시한번 그가 돌진해 오려는 순간 갑자기 큰 빛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인가 내앞을 가로 막았다.
"가이우스, 너! 무슨 짓이야..!"
가녀린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들은 내 앞을 가로막은 존재로 부터 그 가이우스라 불린 단순한 미남자 녀석은 뭔가 황당한듯 표정을 지었다. 아까, 내가 마왕이라고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듯 한 표정이었다.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 존제는 목소리나 뒷모습을 볼 때 아무래도 여자인 듯 했다. 내 눈앞에서 찰랑거리는 여자의 백금발. 그런데 이 여자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지?
"헉. 클라리 누나, 한동안 사라졌더니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누나 비켜.. 그 뒤에 있는 놈은 마왕이라구.."
누구 마음대로 마왕이라는 거야? 누나라. 용사병에 걸린 말썽꾸러기 동생을 데리러 왔나보군. 그럼 난 이만 빠져볼까? 귀칞은 일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
"이 바보야 내뒤에 있는 사람은 내 주인이라구! 내 주인이 나쁜 사람일리가 없잖아."
잠깐 주인이라고? 내 앞에 서 있는 두사람의 이해 못할 대화에 대해 난 잠시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여자가 왜 나보고 주인님이라 하지? 난 노예를 둔 적이 없는데. 그리고 내가 아는 여자중에 백금발의 머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 그럼 누나도 같이 베어버리겠어."
가이우스는 뭔가 단호한 결심을 한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 녀석...설마?
"한심한 녀석,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이 누날 못이겨."
가이우스라 불린 그 미남자는 나와 나보고 주인님이라 하는 내 앞에 있는 여자쪽을 향해 달려왔다. 나도 만약을 대비해 칼을 잡고 있었다. 물론 그 녀석의 칼이 무서워 서가 아니라 일단 정체는 모르지만 내 앞에 있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난 기사가 아닌 살인마일 뿐이지만. 이유없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가이우스란 녀석이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흰색의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 녀석이 저 멀리 튕겨나가는 것이 보였다.
뭐지 이 힘은?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떤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를 보고 있는 그 얼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엄마와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아니...왠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친숙한 느낌.
"주인님아~~! 나 잘했지?"
잠깐, 그러고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한 목소리 인데. 내가 기억의 저편을 더듬는 동안 갑자기 나보다 큰 그여자...이 여자 키도 아까 그 가이우스란 녀석과 비슷할 정도로 컸다...그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달라 붙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기억의 창고를 뒤지는 일은 잠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누...누구?"
"잉~! 주인님은 너무해 맨날 껴안고 다니면서.. 나도 몰라보고."
나보다 큰 여자가 나한테 안기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그런데 껴안고 다녔다니. 엄마하고 신디 말고는 여자는 손도 잡아본적이 없는데.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오해를해도 유분수지.
"주인님 얼굴이 빨개졌네. 아이 귀여워라 느낌만 느끼다 실제로 보니 정말 귀여워!"
"........"
여자는 내 볼을 자신의 그 무척이나 희고 여린 손으로 잡으며 말을 했다. 아..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주인님아.. 나 갑자기 밖에 나오니 배고파. 맛있는거 해먹자."
옆에 서서 자세히 보니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는 옷도 평범한 평민들이 입고 다니지 않는 깨끗한 고급 천으로 된 흰 원피스. 그리고 말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무척이나 여린, 그리고 지성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외모. 절대 나보고 주인님이라 부를 노예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하고 다니면 내가 노예로 보이면 보였겠지.
"도데체. 누구...신지...전 노예를 둔적이 없는데."
"이야~~. 우리 겁없는 주인님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다니. 난 정말 복이 많은 것 같아."
잠깐...그러고보니 이 목소리와 이 말투... 아! 그래! 이제 알 것같다. 바로 그 녀석 내 옆구리에 차고 있는 내 시끄러운 검의 목소리 였다. 아! 그러고 보니 현자라는 그 늙은이가 마법검은 실체로 현신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그럼..?!
"너..이...녀석이냐..?"
난 왼쪽 허벅지에 매달려 있는 칼을 가리키며 그 여자...아니 그 검 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에게 아무튼 물었다.
"딩동뎅~~! 주인님아.. 이제야 맞췄네."
뭐가 우스운지 몰라도 이놈의 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검에 있을 때나 밖에 나왔을 때나 역시 성격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그나저나 갑자기 이놈의 검이 무슨 바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너, 한번도 내 앞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온적 없잖아."
"응.. 처음에는 이거 역시 환영이군 하며 주인님이 무시 할까봐 안나왔었고. 그러다 보니 나오기 귀찮아서.."
하...그러신가나? 정말 핑계는 좋다니까. 하긴 지가 나오기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오늘은 무슨일로..?"
난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검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평소의 검의 행실, 아니 말하는 것으로 볼 때,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저 녀석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아..."
클라리가 가르킨 방향에는 아까의 충격에 잠시 기절해 있던 가이우스란 녀석이 방금 막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되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가 아깝다니까.
"내가 막지 않으면 결국엔 주인님이 저 녀석을 다치게 만들 것 같아서."
"잘아는군."
이 검도 몇년동안 같이 살았다고 내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최근의 나와 가장 오랜시간 같이 지냈고, 난 그다지 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존재이니까.
"주인님아~~. 잠시만."
클라리는 그 말을 한 후, 멍하니 앉아 있는 가이우스를 둥근 빛의 줄로 묶더니 말과 함께 질질 끌고 나에게로 다가 왔다.
"누나! 너무해, 동생을 이런식으로 묶다니."
"누나를 죽이려 한 녀석이 말이 많아."
정말 내 검은 청순하지만 약간 지적인 느낌도 감도는 그런 자신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람과의 접촉이 드문 나에게도 험악하게 느껴지는 말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왜 다른...뭐라 묘사하기 힘든, 하지만 닭살이 돋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걸까?
"주인님아. 어서 집에가자. 내가 맛있는거 해줄께."
"으.. 응.."
난 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별다른 대처를 취하지 못하고 결국 난 뒤에 묶여 있는 가이우스나 흰말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줄 대신에 가녀리지만 무척 힘이 쌘 팔에 묶여 있었지만. 지나가던 엘프들이 내 모습을 볼때마다 내 얼굴에서 왜 열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난 되도록이면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 까닭에 두개의 짐짐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마을 근처 큰 나무에는 아까 숲에 올 때 처럼 소피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까이 가니 갑자기 나를 바라보는 소피의 눈이 슬퍼져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소피를 쳐다보자 소피는 나무 위를 달려 사라져 버렸다.
"주인님아, 왜그래..?"
"아니."
나도 모르게 멈처서 버린 나를 클라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며 쳐다보았다.
"훗, 주인님 얼굴이 또 빨개졌네?"
"조용히 해!"
난 그나마 주인의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 콘소리로 말을했다. 아무리 원래 검이었다고 해도 지금 모습은 여자니까 그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해 버린다. 여자란 존재에 대해서는 그다지...자신이 없다.
"주인님은 여자한테 꼼짝을 못하네. 종종 이 모습으로 괴롭혀 줘야 겠다."
"......."
역시, 이 놈의 검이 본모습으로 타나난까닭은 나를 괴롭히기 위함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말 없이 검.... 클라리의 본체를 뽑아 흙바닥에 꼽아 버렸다. 이렇게라도 화풀이를 해야 스트레스가 조금 덜 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잉.. 나 울어버릴꺼야."
아....절망적인. 저모습이면 울 수도 있겠군. 아이고. 맙소사....
난 어쩔 수 없이 땅에 박혀 있던 검을 땅 속에서 뽑아 옷자락으로 검신을 닦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검이 울기라도 하는 날엔 더 피곤해질테니. 내 신세야...
마을에 들어가자 우리를 보는 많은 종족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긴 언제나 인상만 쓰고 다니는 내가 그들 앞에서 쩔쩔매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얼굴이 빨개져서... 거기에다 여자까지 옆에차고, 정확히는 검이 주인을 끌고 가는 거라 해야 옳겠지만 다른 종족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마을에 사는 순진한 소녀 몇 명이 클라리에게 끌려오는 가이우스란 짐짝에게 넋이 빠져 버린 것이다. 하긴 매일 일만 하는 촌놈들만 보면서 자랐으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가이우스, 이 멍청아.!"
"누나 왜 불러?"
역시 살벌한 남매다. 도저히 남매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말투...도대체 어떻게 지내온 것일까? 그런데...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떻게 사람하고 검하고 남매가 될 수 있지?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그다지 질문을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 마을 좀 봐. 이게 마왕의 마을이니?"
"흥.. 지나치게 평화로운게 문제인것 같군.. 그래도 마왕은 마왕이야."
가이우스란 녀석은 아직도 많이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이우스란 녀석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많이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이우스 이 녀석이 넋이 빠져 따라오는 마을 여자아이들에게 미소를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바람둥이 녀석은 아닌 것 같긴 같다. 그렇게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 마을의 열댓명 정도의 소녀와 처녀들을 뒤에 둔 거창한 행렬은 우리 집까지 이어졌다.
"마왕성이 왜 이렇게 작아. 난 산만한 줄 알았는데."
말투를 들어보니 이제서야 내가 마왕이 아닌 줄 알았나 보다. 문을 열자 구석에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앉아 있던 신디가 쪼르르 내쪽을 향해 달려 왔다.
"오빠, 어디 갔었어? 심심해 죽는줄 알았단 말이야."
"리아둠은?"
그러고 보니, 아까 있었던 리아둠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크 아저씨들이랑 무슨 사냥한다고 가버렸어."
다행이군, 가이우스란 녀석 분명히 리아둠을 봤으면 덤벼들었을것이 틀림이 없을 텐데..
"오빠, 그런데 뒤에 있는 두 사람은 누구야?"
"음...이건 내검, 이 바보는 내검의 동생, 저말은 내검의 동생의 말."
내 나름대로는 괜찮은 설명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신디는 못알아듣는 것인지 한동안 끙끙 대고 있었다.
"주인님아. 그런 식으로 밖에 설명을 못해?"
왠지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이야기를 하는 내 검.
"내설명이 뭐가..."
하지만 검은 내말을 무시한체 바로 신디에게 달려갔다.
"신디, 언니야 언니, 모르겠니?"
신디하고 아는 사이인가? 내 검이 신디에게 말을 한지 한참 후에야 신디는 간신히 이해 했다는 듯, 내 검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아! 언니가 클라리 언니 였어? 언니 실제로 보니 진짜 예쁘네."
"나도 신디를 실제로 안을 수 있어 정말 좋아."
헛 저 검의 이름이 클라리였던 것인가? 신디는 저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확실히 둘이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신디, 오빠 검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응, 오빠가 없을 때 언니랑 이야기하다 알게 됬어."
그..그렇구나 어쩐지 신디가 온 뒤부터 클라리의 수다가 조금 줄어들었던 것 같다더니, 신디하고 이야기를 해서 수다욕을 조금이나마 분출했던 까닭인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내가 내 소유의 검의 이름을 몰랐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그랬다.
"클라리, 나보고 주인이라 부르면서 이름도 안가르쳐 주냐?"
"주인님이, 언제 물어 봤어? 매일 하는 말도 무시 했으면서. 띨빡한 주인."
"조용히해!"
휴..말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이 검과 말싸움으로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그냥 포기해야지. 난 이번에도 한숨을 내 쉰뒤 그냥 뒤쪽으로 물러섰다.
"힝, 주인님아 삐지지마 내가 오늘은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줄게. 신디 도와줄꺼지?"
"응"
나를 향해 웃은뒤 뭐가 그리 신나는지 클라리와 신디는 조그마한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아까 그 바보는 뭐하고 있지? 해질 무렵 주황빛 석양이 가득 창가로 들어 오는데, 그 옆에 그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클라리, 저녀석 왜 저래?"
난 부엌쪽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래도 누나니 이유를 알고 있겠지. 아니, 오랫동안 못 만나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응? 아.. 가이우스? 주인님아 조금만 기다려 봐 재미있는걸 보게 될꺼야"
클라리는 주방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웃으며 나를 보곤 말을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주황빛 석양이 클라리의 얼굴을 물들였다. 순간...왠지 심란해 지는 내 마음. 하지만 말을 마치자 클라리는 고개를 쑥 넣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라져 버린 클라리의 얼굴을 아쉬운 듯 쳐다보고 있는 내모습에 내가 놀랬다. 뭐지... 이 두근거리는 마음은? 내가 내 검을 무서워 하는걸까? 어릴때 이후로 한번도 가슴이 뛰거나 하는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진 않았는데...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마을 구성 추정치 오크 3000, 오우거 50, 트롤 200, 엘프 450, 인간 4000, 드워프 300 총구성원 약 8000, 동원가능 군사력 2000, 총전투력은 E클래스 보병 7000명의 전력과 동일."
갑자기 들여오는 목소리.. 그런데 이 목소리는 가이우스 그녀석의 목소리인데. 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까전의 그 단순한 말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뭐지? 우리 마을의 구성을 어떻게 네가?"
하지만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가이우스 녀석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란트, 현상금 천만 골드 피의 마왕이라 불림, 피투안국 둘째 왕자 살해 지금까지 살해한 사람수 총 976명 해방시킨 노예수 총 2738명 전투력 S+클래스 마력 S-클래스.."
이녀석 도데체...? 난 왠지 모를 불안함에 무의식적으로 칼을 뽑아 녀석의 목에 겨누며 살기를 가득담아 이야기를 했다.
"네 정체가 뭐냐?"
"칼부터 치우시죠. 란트군, 전 977번째 희생자가 되기 싫습니다. 전 가이우스 폰 힐튼 피투안 주제 리투안제국 대사, 숨겨진 직책은 피투안국 감시역 입니다."
보통사람이면 벌써 오줌을 쌌어도 지나치지 않을 상황임에도 녀석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눈빛역시 낮에 보았던 얼빵하던 눈빛과는 달리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주인님아, 그녀석 이중 인격이야 낮과 밤에 사람이 완전히 변해."
클라리는 이번에도 주방에서 또 고개만 쑥 내밀고는 말을 했다.
"하.."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걸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중인격이라니...? 낮하고 지금하고 그럼 다른존재라는 것인가?
"란트군, 낮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낮의 의식이 피투안국에 속아서 란트 군을 마왕이라 판단한 나머지 공격을 한 것입니다. 저도 낮의 의식은 어떻게 하지 못해서..."
"......."
이 상황에서 내가 할말이 무엇이 있으랴?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황당할 따름이었다. 오늘 숲으로 산책을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검이 현신을 하지 않나? 이제는 이중인격 까지. 정말...
클라리가 힘을 풀었는지, 가이우스 주위를 묶고 있던 빛의 줄이 점점 연해진 후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난 황당함에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런 내 앞으로 가이우스란 녀석이 다가오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내가 미심적은 눈으로 쳐다보자 가이우스는 낮에도 그런 표정을 만들라고 해도 만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절 못 믿으시겠다는 표정이시군요. 하긴 언제나 그랬으니까.."
언제나라.. 내가 주로 쓰던 말인데..지금 저녀석이 사용하고 있었다.
"눈빛이 달라. 낮만큼 진실됨이 없어. 당신 눈이 내가 싫어 하는 그 눈은 아니지만."
내가 왜 이 인간과 이야기를 하지.. 모르겠다. 어쨌든...사실은 사실이었다. 사악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 멍청하긴 해도 낮의 녀석이 훨씬 더 지금 보다 진실됨이 느껴졌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하프엘프 입니다. 제 어머니가 당신의 마법 스승이신 하이엘프 프리안느 그 분 이십니다. 하프엘프 였어도 다른 형제들은 아무 이상없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도 무난하고 잘 자랐지만. 저만 왠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 녀석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마법 스승. 내게 이 골치 아픈 검을 준 엘프이다. 어쩐지 가이우스 이녀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그 엘프, 핀누나는 항상가까이 있어도 뭔가 먼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항상 줬었는데... 잘 모르겠다. 몇 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먼 옛날의 일인것만 같이 기억이 희미하다. 나를 아인트 스승님께 대려다 준 것도 핀누나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오늘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당신에게는 모든걸 다 털어 놓고 싶군요."
"......."
말을 마친 가이우스의 날카롭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만들던 그 느낌도 많이 사라져 있었고.
"혼자 책만 읽으며 그렇게 지냈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더 군요. 또 다른 의식이 생긴거죠. 몸을 되찾기 보다는 제 삼자의 위치에서 저를 보는 것도 괜찮은 기분 이었죠. 저가 잘 못하던 친구를 만들고 하는 것도 낮의 의식은 잘 해네더군요. 그렇게 밤이 되자 지금 처럼 저가 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냉정해 보이는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감정적인 모습도 녀석에게서 얼핏 스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낮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 이 모습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어릴 때 본 핀누나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았다. 머리색 뿐만 아니라, 눈까지도.
"요즘에는 제가 진짜라는 믿음조차 서지 않습니다. 낮이 진짜 의식이고 제가 가짜인 듯한 생각이 감돌더군요. 그래서 예전에는 낮의 행동에도 약간의 관여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같이 낮에 의식이 피투안 왕실에 속아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것도 막지 못했었습니다.."
뭐야.. 저녀석..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듯 해서는 정말 누구한테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서부 대륙에서 제일 현상금이 높은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인가?
"네가 네 스스로의 몸을 포기 해야 될지도 모른단 말인가?"
"네..잘 아시는 군요."
"포기하지 말고 할게 뭐 있어. 낮에 너도 너 자신이고, 물론 나한테 달려든 점은 마음에 안들지만..밤에 너도 너 자신이야. 네가 인정하고 있지 않는것 뿐."
녀석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조용히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앉아있었다. 나로써는 골치 아픈 일에 신경을 스지 않아도 되었기에 상당히 기쁠 따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잠시후에 더 많은 헛소리를 할것 같은 기분에 나는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의심스러운가? 그럼 내가 확인 시켜 주지."
"신디, 아까 온 노랑머리 오빠 마음이 무슨 색이지?"
나는 주방 쪽을 보며 소리 쳤다. 내 생각이 맞다면 신디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겠지.
"음.. 연파랑색 하나야."
잠시후 신디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다지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마음의 색깔을 읽을 줄 아는 아이야. 그걸로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지. 표면적으로는 낮과 밤의 네 인격과 성격은 매우 달라. 만약 진짜로 두 인격이라면 네 마음의 색깔을 두개로 보여야 해. 하지만 그렇지 않지.. 내가 할말은 이걸로 끝이야. 그리고 참고로 내 마음은 색깔이 두개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녀석은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깨달은 것인지...아니면 더 큰 혼돈 속에 빠져든 것인지. 하지만 그리 오래 가이우스 녀석을 관찰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주방 쪽에서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여자.. 아니 검과 꼬마가 쟁반 그득 음식을 담아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집에 요리 재료가 저렇게 많았었나? 어쨌든 매일 오크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다보니 간만에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는 내 코끝을 상당히 간지럽혔다.
"주인님아~! 많이 먹어."
이 놈의 검이 행동을 가지 가지로 한다. 이번에는 소름이 확 돋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니. 난 오랫만에 생기던 식욕이 다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빠, 그런데 클라리 언니 정말 요리 잘해."
신디는 감동 받은 듯한 표정으로 클라리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신디도 요리하는것을 괭장히 좋아했지. 어린 나이에 비해...클라리와 신디는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놓은뒤 앞치마를 입은체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이놈의 검은 왜 내옆에 짝 달라 붙어 앉아 있는 거냐구!
"불..불편 해서 못 먹겠잖아 좀 옆으로 가."
난 사람의 형상을 한 내검을 밀쳐내려고 팔에 힘을 주었지만 그런데 이놈의 검이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주인님아, 먹기 불편하면 내가 먹여 줄까?"
헉, 이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검은 이것 저것 음식을 집어 모우더니 풀잎 같은 것으로 싸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주인님아, 아! 해봐."
"싫어...아..."
싫다고 말하는 내 잎속으로 이놈의 검이 그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윽...난 저항하려 했지만, 내 팔 중 하나는 이미 클라리에 의해 봉인당했고, 나머지 한팔로는 클라리가 음식을 집어 넣는 바람에 뒤로 넘어질 것 같은 의자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누님, 식사 하는데 상당히 거슬리는 군요."
가이우스의 무뚝뚝한 차가운 목소리가 입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처리하기 위해 우물거리고 있는 내 귓속으로 들렸다.
"왜? 가이우스 질투하니? 너도 먹여줄까?"
"괘..괜찮습니다."
낮과는 달리 상당히 무둑뚝해진 가이우스 녀석은 내 검의 말에 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불쌍한 녀석 그래도 낮의 인격은 반항이라도 하던데...
다행히도 가이우스가 내 검한테 말을 시키는 바람에 다행히 내 검이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런 까닭에 정신적 피로를 미각으로라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생각 외로 음식들은 괭장히 맛있었다. 하긴 오크의 요리에 적응이 된 나의 미각 수준이 그리 높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너 언제 검 속으로 돌아갈꺼니?"
난 이 스트레스 덩어리로 부터 언제 벗어날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오랫만에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은데 내가 검 속으로 왜 돌아가 난 주인님 옆에 꼭 붙어 있을꺼다. 오늘은 주인님 옆에서 자야지."
아.. 나에게는 이 이상 절망적인 말이 없으리라.
"누님, 또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그런데 내 검이 내 옆에서 잔다는데 가이우스 저녀석이 왜 난리지? 암튼 내 검이 내 옆에서 자는걸 난 결코 원하지 않는다. 자면서 까지 스트레스를 받는건...
"내 좁은 침대에 어떻게 두명이 잔다는 말이야. 넌 나보다 키도 크잖아"
난 내 마지막 휴식처 까지 스트레스에 점령당하기 싫었기에 되도록이면 거부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란트군..잔다는게 그런 의미로 밖에 생각을 안하시는 겁니까?"
가이우스 저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럼 자는 것이 자는 것이지 또 뭘하라는 거야.
"그럼 자는게 자는 거지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난 가이우스 쪽을 보며 의문을 던졌다. 가이우스는 순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가이우스, 걱정하지마렴, 우리 주인님은 생긴 것 처럼 엄청 순진해."
생긴 것 처럼 순진하다니;... 도데체 무슨뜻이야? 갑자기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본 난 해결책 하나를 가신히 찾아내서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아무튼, 내 침대에서는 못 재워줘, 그냥 리아둠 침대는 크니까 가이우스랑 같이 자지 그래?"
"뭐? 난 저녀석이랑은 절대로 못! 자! 주인님아."
"저도 싫습니다."
내 말에 둘다 왜 저렇게 흥분을 하는 거지? 별거 아닌 일에. 그냥 자면 되는거 아닌가? 정말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 때문에 지금 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님 옆에서 안 재워 주면 주인님 못자게 밤세도록 주인님 옆에서 울고 있을꺼야."
그말을 하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검... 연기라는 것을 뻔히 알수 있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겠다. 오늘 편하게 쉬기는 틀린것 같으니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겠다.
"알았어.. 옆에 자든지 말던지.. 하지만 뒤척이거나 해서 귀찮게하면 차버릴 테니...휴...."
정말 오늘 따라 한숨을 쉬는일이 엄청 많아 졌다.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며칠 중에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이 최고야!"
검이 웃는 모습을 보며 진짜 여자였으면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적당히 배가 차오르자 난 나의 마지막 안식처를 향해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주인님 잘꺼야?"
"그래, 옆에서 자고 싶으면 나중에 오던지 말던지 해."
이 귀찮은 검. 제대로 된 검이 한개만 더 있었어도 이검을 팔아버리는 건데. 드워프보고 괜찮은 검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볼까?
"오빠 잘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등뒤로 신디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신디의 목소리를 들으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그래 신디, 아침에 보자."
신디에게 대답을 해준 뒤, 내방에 들어간 나는 겉옷만 대충 벗고 되도록이면 옷을 안 벗는 방향으로 했다. 검 녀석이 언제 들어 올지 모르므로..침대에 오른 뒤, 곧 난 하루종일 싸인 엄청난 정신적 피로에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따스함, 어린 시절 추억 속에서나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그리운 느낌이 느껴져 왔다.
꿈속에서 느껴지는 그 익숙치 않은 따스함에 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클라리... 내 손을 꼭 잡고 좁은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새벽녘 희미한 빛과 함께 보였다. 지금은 검이라기 보다는 왠지 그녀라고 부르고 싶다. 잡고 있는 손을 살며시 내려 놓고는 난 그녀가 덮고 있는 얇은 이불 위에 내 하나밖에 없는 망토를 덮어 주었다.
그녀 역시 외로웠으리라. 수년간 대답하지 않는 벽을 향해 혼자 말하곤 대답을 기약없이 기다렸을 것임에... 그녀는 실체로 나타 나는게 두려웠던게 아닐까? 실체화 하더라도 아무도 자기를 몰라준다면 마지막 희망마져도 사라질 것같았기에... 그래서 신디에게 말을 걸고.. 대답 없는 나를 향해서도 그렇게 끈임없이 말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든다.
8년동안 항상 내 옆에 있었던 나의 검.. 난 언제인가부터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던것 같다. 어쩌면 나는 오래 전부터 그녀 없이 산다는 것, 자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이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일까?.....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평선으로 해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오크가 내 이름을 익히는 데 6 개월이 흘렀다. 그나마 신디의 끝없는 잔소리에 그 정도 시간에라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 호칭은 언제나 '인간'이었으니까.
"숲에서 엘프들이나 보고 오려고..."
"그.. 난... 폭... 한.. 종...족..들...에..게 무..슨.. 일로?"
하...오크가 엘프보고 난폭하다라... 솔직히 오크들과 엘프들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엘프보고 난폭하다니...
"너희 종족 보다는 난폭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방..금...그..말...은....무...슨..뜻?"
리아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을 했다.
".....모르면 됐어."
난 오크들의 뇌구조를 살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엘프보고 난폭하다고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오크가 그런 소리를...지나가던 엘프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줬으면 아마 기가차서 쓰러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신디는 잠들어 있었다. 아니면 또 따라 갈 꺼라고 했을 텐데. 아직 마을 아이들과 그다지 친해지지 못하는 듯 했다. 혹시 그 이유가 나 때문일까? 아니라면 신디가 마을 아이들과 잘 지내질 못할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신디가 우리집에 온 뒤로는 여러가지 황당한 일이 많이 생겼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오크 전사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을 주위를 둘러보고 돌아오던 어느날... 문을 연순간 난 얼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빙계 마법으로 기습을 했냐고? 결코 아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있는 빙계마법에 당할 나도 아니고...
신디의 손에 끌려간 리아둠이 신디에게 요리를 베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주로 내가 요리를 하거나. 다른 집에 저녁을 얻어 먹으러 다녔었는데. 이놈의 오크가 초록색 얼굴에는 흰 밀가루를 덕지덕지 묻히고. 아무튼. 신디와 만난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내가 요리를 하는 일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없었다. 오크가 만든 인간 요리를 먹어야 했지만.
그리고 신디를 대려온 그 사건 이후로 내 현상금은 두배가 아니라 열배로 올랐다. 내가 죽였던 그 녀석이 피투안국의 둘째왕자였다는 소식을 도시에 다녀온 마을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 하긴 그 전투후 아무도 쳐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은 그 녀석이 이 나라의 왠만한 실력자는 다끌고 왔다는 이야기리라. 뭐, 실력자라고 해도 어린 애송이이거나. 30년전 전쟁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녀석이기 때문에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피투안국의 진정한 기사들은 30년 전의 전쟁에서 공주를 지키다 죽었다고 하던데, 그다지 관심이 가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귀찮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왕자녀석 아마 나를 잡고 명성을 올려 왕이 되고 싶었겠지. 정말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이 많았다.
"그럼 잠시 다녀 오지."
집을 나서자 나타난 광경은 볼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말 이색적이었다. 거의 천체에 가까운 각 종족 나름데로의 특성을 가진 집들이 뒤섞여 지어져 있었으니까. 아마 다른 나라의 도시계획 행정가가 우리 마을을 봤으면 기절 초풍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질서의 극치...나뭇가지와 짚으로 대충지어진 오크들의 집과 다른 종족집들의 약 2층 정도의 크기인 오우거의 집, 그리고 가장 많은 인간들의 집... 엘프들은 숲에서 생활을 하는지 따로 집이 없는 것 같았다.
전투가 없어지고 피를 온몸에 뒤집어 쓴체로 마을로 돌아오는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 마을 꼬마 녀석들도 나를 보고 도망치거나 울거나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점은 정말 다행이다. 난 누군가 우는건 시끄러워서 딱 질색이다. 아니..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있고, 특히 꼬마녀석들이나 여자들이 우는 것은.
마을을 벗어나자 넓게 펼쳐진 들판의 모습이 내눈에 천천히 들어왔다. 봄철인 들판에는 농사 준비에 온 종족들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소대신 쟁기를 끄는 오우거의 모습은 상당히 볼만 했다. 각 종족들마다 자신들이 가장 자신있는 일을 누가 특별히 지시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는 지도 모르는지 한 오크가 밭에 뿌릴 씨를 한웅큼 집더니 삼켜 버렸다. 순간 그 녀석과 내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러자 그 오크녀석 깜짝 놀라더니, 입속에 넣었던 것을 뱉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크를 노려보는 온갖 종족들의 눈길... 그 뒤 상황은 물을 보듯 뻔한 일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날 이후로 오크는 한달동안 자기집에서 누워만 있었다면 설명이 될런지 ....
사람들이 일을하고 있는 들판을 벗어나자 아직, 야생풀들로 가득한 자연그대로의 들판이 나타났다. 개간만하면 좋은 농토가 되겠지만, 아직 이 농토를 개간하고 일굴 일손이 부족해서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고 있었다. 길가에 핀 작은 봄꽃들의 모습을 보고 잇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무엇인지. 어렴풋이 어릴적의 기억이 살며치 스쳐간다. 들에서 꺾어온 꽃으로 집을 단장하시던 엄마의 모습.
늘 다니던 길을 따라 숲을 향해 천천히 들어갔다. 역시 언제나 처럼, 그 곳에 있는 큰나무 위에 앉아 있떤 소피가 조용히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란트, 어디 가는 건가요? 또 누가 쳐들어 왔어요? 이상한 소리는 안들렸는데.."
엘프들은 특별히 흥분하는 법 없이 항상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소피도 인간들보다 천천히 나이를 먹는 엘프의 특성 때문인지 인간들의 나이로 열 대여섯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나이도 아마...열다섯살이었지?
"아니, 기분전환겸 산책중."
그런데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답이 나왔다. 편안함이 가져온 마음의 여유...그 것 때문인 것 같다.
"네..."
평평한 나무 줄기에 앉아 소피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소피를 자세히 쳐다보자 소피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엘프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있었나? 나는 약간의 의문을 품으며 소피를 뒤에 둔체 걸음을 옮겼다.
"주인님아! 사람 좋아졌네? 묻는 말에 답도 하는 일도 있고?"
이 놈의 검...또다시 떠들기 시작했군. 한동안 시끄러워질 것 같다.
"신경꺼."
"숙녀한테 말하는 테도가 그게 뭐야? 주인님이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
여전히 이검은 쓸데 없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별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기를 좋아하니...왠지 사람을 더욱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피곤한데 검 딱는 건 안해야 되겠군..."
그러고 보니, 내 말이 많아진건 사실인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이놈의 검신을 지긋이 밟고 끝냈을 텐데. 이렇게 말 대꾸를 해주고 있으니까.
"뭐? 주인님.. 그러시면 안되요. 숙녀는 청결이 생명이에요. 마음착하고 잘생긴 주인님 제발 그것 만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 이 약아빠진 검.. 난 그후로 한동안 애걸하는 검의 말을 깨끗이 무시했다. 미운정일까? 그래도 귀찮은만큼, 이 녀석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나저나 신디가 검 녀석보고 연노랑빛 마음을 가졌다고 했을 때, 이놈의 검이 좋아가지고 몇시간 동안 떠들며 발악하는 것을 조용히 똥통 속에 넣었을 때 이후로 이렇게 이검이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좋은 약점을 잡은 것 같다.
내가 걸어가자 근처 나무 위에 있던, 엘프 들이 눈으로 살짝 인사를 했다. 몇달 동안 전투가 없어서 그런지 피냄새 때문에 이곳에 자주 오지 않던 엘프들이 지금은 이 곳에서 많이 사는 것 같다. 물론 소피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예전부터 항상 이곳에서 살았었지만....
피냄새만 사라진 것 뿐만 아니라 이 근처를 지날 때 쯤이면 기분 나쁘게 깍깍 거리던 재수 없는 까마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엄마와 시드가 죽던날. 그 때 들리던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를 난 평생동안 잊지못할 것이다. 왠지모를 편안함. 사람들이 평화를 기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일까?
숲을 걷다보니 왠지 밖에서 마을로 오는 유일한 통로였고 내가 수없이 피를 흘렸던 그 곳, 그 들판에 갑자기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 전투 이후로 그 곳에 가본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변했을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님아~~~! 그 곳으로 가는 것 아냐?"
눈도 없는 검주제에 눈치가 상당히 빨랐다. 이번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내 의도를 빨리 눈치를 채곤 했으니까? 혹시 주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닐까?
"그래"
"거기엔 왜? 나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짧은 내 대답에 검은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몰라. 그냥 가보고 싶군."
한동안 전투가 없어서 심심했는지 이 시끄러운 녀석은 내가 가끔씩 손만 대도 이것 저것 시끄럽게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이번에 대화가 시작된 이후로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둥 하는 단순한 불평이 계속 이어졌지만 나도 그런데로 적응이 됬는지... 갑자기 내가 한심해 지는 것 같다. 어째서 주인인 내가 이놈의 검에 적응을 해야 하는지...어째든 검의 말은 안들리는 것으로 하고 난 그 곳을 향해 걸음을 바삐했다.
넓게 펼쳐진 들판, 사람들이 없는 그 들판은 정말 평온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언제 이 곳에서 수백의 사람들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져 갔냐는 듯. 예전에 곳곳에 보이던 패여진 황토빛 맨땅도 보이지 않고 그 곳들은 이름도 없는 야생 풀들과 들꽃들로 덮여저 있었다.
그 곳에 보이는 흰말.. 잠깐 이 곳에 말이 살았었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타고 있는듯 했다. 다른 마을로 물건을 사러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들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곧장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순간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말이 다가오자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점점 자세히 드러났다. 긴 하지만 빛나는 금발. 엘프 일까? 하지만 귀는 그다지 길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사람은... 일단 사람이라고 해두자. 나를 발견 했는지 빠르게 몰던 말의 속도를 늦추고는 천천히 다가 왔다. 그 사람에게서 특별히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나도 빼었던 칼을 집어 넣었다. 내 앞으로 가까이 오자 그 사람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 맑은 바닷색 눈, 여자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였지만, 그 에게서 남자라는 느낌은 확실히 느껴졌다. 갑옷 역시 화려하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갑옷에 대해 아는 사람은 느낄정도로 질이 좋은 갑옷이었다. 나도 그리 작은키는 아니었지만, 내가 위로 쳐다봐야 될 정도인 그가 내앞에 다가 오더니 살짝웃으며 입을 열었다. 왠지 사람을 아찔하게 만드는 듯한 미소.
"꼬마야, 너 피의 마왕이란 놈 어디사는지 아니?"
"??"
"아니, 모르면 됬어. 너 같은 꼬마가 알리가 없지..."
말투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목소리 역시, 괭장히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피의 마왕이라... 나를 부르는 것인가...? 쩝, 졸지에 마왕이 되버렸군. 어쩐지 요즘에 쳐들어 오는 놈이 없다 했더니. 그나저나 이녀석 도데체 내 얼굴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저 놈 눈빛을 보니 돈이나 허욕때문에 나를 찾는건 아닌것 같은데.
"귀찮게 해서 미안해, 꼬마 그럼 나간다.."
그는 날향해 씩 웃은 후 뒤로 돌아서서 말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피의 전사라 부르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나보고 마왕이라는건 처음인데.."
다시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는 그의 그 잘생긴 얼굴에 놀라움과 황당함이 섞인 듯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너 같은 꼬마가?"
"........."
못믿겠다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하는 그. 그런데 진짜로 어떻게 생각했다는 거야.. 마왕이라고 이야기 책에 나오는 그런 마왕을 상상했던건 아니겠지. 설마...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놈일 줄 알았는데.. 마왕치고는 너무 귀여워! 거짓말이지? 꼬마."
"........"
이 녀석 생긴거하고 다르게 단순한 놈이었나. 그런데 귀엽다라니, 순간 황당함에 정신이 나가는듯 했다. 취향이 독특한가 보군, 최근에 내 얼굴을 내가 자세히 본적은 없지만 내 얼굴이 귀엽다면 마을 사람들이 날 보며 그렇게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아무리 귀여운 꼬마라도 마왕이면 퇴치해야 하는 법.!"
생긴건 꼭 백마탄 왕자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단순하다는 생각 뿐이 들지 않았다. 이 녀석도 용사병에 빠져 있는 세상에 수많은 불쌍한 녀석들 중 하나인 것인가? 어휴..난 칼을 뽑는 그를 뒤에 둔체 그냥 마을쪽을 향해서 돌아 섰다.
"난 너 같은 눈을 가진 놈한테는 칼을 안 휘둘러.."
짧게 한숨을 내 쉰뒤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단순한 그를 향해 말을 했다.
"마왕, 감히 내앞에서 등을 보이다니.건방지군.."
저녀석이... 곱게 살려주려고 했더니. 난 손이 칼 쪽으로 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엄습해 오는 검기. 잠깐, 검기라니? 이녀석 보통 이상인 것인가? 하지만 난 칼을 칼집에서 뽑아 돌아선 뒤, 그의 칼을 별어여움 없이 간단히 막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과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검술은 상당한 듯 했다. 이 때까지 마을을 공격해온 애송이 녀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목숨을 빼앗는데 그리 힘이 들지는 않겠지만...
"마왕, 역시 대단하군 내 공격을 막다니..."
"........"
확실히 용사병에 걸린 녀석이 틀림이 없는 듯. 그런데 다시한번 그가 돌진해 오려는 순간 갑자기 큰 빛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인가 내앞을 가로 막았다.
"가이우스, 너! 무슨 짓이야..!"
가녀린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들은 내 앞을 가로막은 존재로 부터 그 가이우스라 불린 단순한 미남자 녀석은 뭔가 황당한듯 표정을 지었다. 아까, 내가 마왕이라고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듯 한 표정이었다.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 존제는 목소리나 뒷모습을 볼 때 아무래도 여자인 듯 했다. 내 눈앞에서 찰랑거리는 여자의 백금발. 그런데 이 여자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지?
"헉. 클라리 누나, 한동안 사라졌더니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누나 비켜.. 그 뒤에 있는 놈은 마왕이라구.."
누구 마음대로 마왕이라는 거야? 누나라. 용사병에 걸린 말썽꾸러기 동생을 데리러 왔나보군. 그럼 난 이만 빠져볼까? 귀칞은 일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
"이 바보야 내뒤에 있는 사람은 내 주인이라구! 내 주인이 나쁜 사람일리가 없잖아."
잠깐 주인이라고? 내 앞에 서 있는 두사람의 이해 못할 대화에 대해 난 잠시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여자가 왜 나보고 주인님이라 하지? 난 노예를 둔 적이 없는데. 그리고 내가 아는 여자중에 백금발의 머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 그럼 누나도 같이 베어버리겠어."
가이우스는 뭔가 단호한 결심을 한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 녀석...설마?
"한심한 녀석,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이 누날 못이겨."
가이우스라 불린 그 미남자는 나와 나보고 주인님이라 하는 내 앞에 있는 여자쪽을 향해 달려왔다. 나도 만약을 대비해 칼을 잡고 있었다. 물론 그 녀석의 칼이 무서워 서가 아니라 일단 정체는 모르지만 내 앞에 있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난 기사가 아닌 살인마일 뿐이지만. 이유없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가이우스란 녀석이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흰색의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 녀석이 저 멀리 튕겨나가는 것이 보였다.
뭐지 이 힘은?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떤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를 보고 있는 그 얼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엄마와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아니...왠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친숙한 느낌.
"주인님아~~! 나 잘했지?"
잠깐, 그러고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한 목소리 인데. 내가 기억의 저편을 더듬는 동안 갑자기 나보다 큰 그여자...이 여자 키도 아까 그 가이우스란 녀석과 비슷할 정도로 컸다...그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달라 붙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기억의 창고를 뒤지는 일은 잠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누...누구?"
"잉~! 주인님은 너무해 맨날 껴안고 다니면서.. 나도 몰라보고."
나보다 큰 여자가 나한테 안기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그런데 껴안고 다녔다니. 엄마하고 신디 말고는 여자는 손도 잡아본적이 없는데.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오해를해도 유분수지.
"주인님 얼굴이 빨개졌네. 아이 귀여워라 느낌만 느끼다 실제로 보니 정말 귀여워!"
"........"
여자는 내 볼을 자신의 그 무척이나 희고 여린 손으로 잡으며 말을 했다. 아..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주인님아.. 나 갑자기 밖에 나오니 배고파. 맛있는거 해먹자."
옆에 서서 자세히 보니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는 옷도 평범한 평민들이 입고 다니지 않는 깨끗한 고급 천으로 된 흰 원피스. 그리고 말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무척이나 여린, 그리고 지성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외모. 절대 나보고 주인님이라 부를 노예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하고 다니면 내가 노예로 보이면 보였겠지.
"도데체. 누구...신지...전 노예를 둔적이 없는데."
"이야~~. 우리 겁없는 주인님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다니. 난 정말 복이 많은 것 같아."
잠깐...그러고보니 이 목소리와 이 말투... 아! 그래! 이제 알 것같다. 바로 그 녀석 내 옆구리에 차고 있는 내 시끄러운 검의 목소리 였다. 아! 그러고 보니 현자라는 그 늙은이가 마법검은 실체로 현신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그럼..?!
"너..이...녀석이냐..?"
난 왼쪽 허벅지에 매달려 있는 칼을 가리키며 그 여자...아니 그 검 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에게 아무튼 물었다.
"딩동뎅~~! 주인님아.. 이제야 맞췄네."
뭐가 우스운지 몰라도 이놈의 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검에 있을 때나 밖에 나왔을 때나 역시 성격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그나저나 갑자기 이놈의 검이 무슨 바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너, 한번도 내 앞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온적 없잖아."
"응.. 처음에는 이거 역시 환영이군 하며 주인님이 무시 할까봐 안나왔었고. 그러다 보니 나오기 귀찮아서.."
하...그러신가나? 정말 핑계는 좋다니까. 하긴 지가 나오기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오늘은 무슨일로..?"
난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검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평소의 검의 행실, 아니 말하는 것으로 볼 때,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저 녀석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아..."
클라리가 가르킨 방향에는 아까의 충격에 잠시 기절해 있던 가이우스란 녀석이 방금 막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되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가 아깝다니까.
"내가 막지 않으면 결국엔 주인님이 저 녀석을 다치게 만들 것 같아서."
"잘아는군."
이 검도 몇년동안 같이 살았다고 내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최근의 나와 가장 오랜시간 같이 지냈고, 난 그다지 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존재이니까.
"주인님아~~. 잠시만."
클라리는 그 말을 한 후, 멍하니 앉아 있는 가이우스를 둥근 빛의 줄로 묶더니 말과 함께 질질 끌고 나에게로 다가 왔다.
"누나! 너무해, 동생을 이런식으로 묶다니."
"누나를 죽이려 한 녀석이 말이 많아."
정말 내 검은 청순하지만 약간 지적인 느낌도 감도는 그런 자신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람과의 접촉이 드문 나에게도 험악하게 느껴지는 말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왜 다른...뭐라 묘사하기 힘든, 하지만 닭살이 돋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걸까?
"주인님아. 어서 집에가자. 내가 맛있는거 해줄께."
"으.. 응.."
난 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별다른 대처를 취하지 못하고 결국 난 뒤에 묶여 있는 가이우스나 흰말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줄 대신에 가녀리지만 무척 힘이 쌘 팔에 묶여 있었지만. 지나가던 엘프들이 내 모습을 볼때마다 내 얼굴에서 왜 열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난 되도록이면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 까닭에 두개의 짐짐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마을 근처 큰 나무에는 아까 숲에 올 때 처럼 소피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까이 가니 갑자기 나를 바라보는 소피의 눈이 슬퍼져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소피를 쳐다보자 소피는 나무 위를 달려 사라져 버렸다.
"주인님아, 왜그래..?"
"아니."
나도 모르게 멈처서 버린 나를 클라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며 쳐다보았다.
"훗, 주인님 얼굴이 또 빨개졌네?"
"조용히 해!"
난 그나마 주인의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 콘소리로 말을했다. 아무리 원래 검이었다고 해도 지금 모습은 여자니까 그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해 버린다. 여자란 존재에 대해서는 그다지...자신이 없다.
"주인님은 여자한테 꼼짝을 못하네. 종종 이 모습으로 괴롭혀 줘야 겠다."
"......."
역시, 이 놈의 검이 본모습으로 타나난까닭은 나를 괴롭히기 위함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말 없이 검.... 클라리의 본체를 뽑아 흙바닥에 꼽아 버렸다. 이렇게라도 화풀이를 해야 스트레스가 조금 덜 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잉.. 나 울어버릴꺼야."
아....절망적인. 저모습이면 울 수도 있겠군. 아이고. 맙소사....
난 어쩔 수 없이 땅에 박혀 있던 검을 땅 속에서 뽑아 옷자락으로 검신을 닦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검이 울기라도 하는 날엔 더 피곤해질테니. 내 신세야...
마을에 들어가자 우리를 보는 많은 종족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긴 언제나 인상만 쓰고 다니는 내가 그들 앞에서 쩔쩔매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얼굴이 빨개져서... 거기에다 여자까지 옆에차고, 정확히는 검이 주인을 끌고 가는 거라 해야 옳겠지만 다른 종족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마을에 사는 순진한 소녀 몇 명이 클라리에게 끌려오는 가이우스란 짐짝에게 넋이 빠져 버린 것이다. 하긴 매일 일만 하는 촌놈들만 보면서 자랐으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가이우스, 이 멍청아.!"
"누나 왜 불러?"
역시 살벌한 남매다. 도저히 남매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말투...도대체 어떻게 지내온 것일까? 그런데...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떻게 사람하고 검하고 남매가 될 수 있지?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그다지 질문을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 마을 좀 봐. 이게 마왕의 마을이니?"
"흥.. 지나치게 평화로운게 문제인것 같군.. 그래도 마왕은 마왕이야."
가이우스란 녀석은 아직도 많이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이우스란 녀석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많이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이우스 이 녀석이 넋이 빠져 따라오는 마을 여자아이들에게 미소를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바람둥이 녀석은 아닌 것 같긴 같다. 그렇게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 마을의 열댓명 정도의 소녀와 처녀들을 뒤에 둔 거창한 행렬은 우리 집까지 이어졌다.
"마왕성이 왜 이렇게 작아. 난 산만한 줄 알았는데."
말투를 들어보니 이제서야 내가 마왕이 아닌 줄 알았나 보다. 문을 열자 구석에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앉아 있던 신디가 쪼르르 내쪽을 향해 달려 왔다.
"오빠, 어디 갔었어? 심심해 죽는줄 알았단 말이야."
"리아둠은?"
그러고 보니, 아까 있었던 리아둠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크 아저씨들이랑 무슨 사냥한다고 가버렸어."
다행이군, 가이우스란 녀석 분명히 리아둠을 봤으면 덤벼들었을것이 틀림이 없을 텐데..
"오빠, 그런데 뒤에 있는 두 사람은 누구야?"
"음...이건 내검, 이 바보는 내검의 동생, 저말은 내검의 동생의 말."
내 나름대로는 괜찮은 설명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신디는 못알아듣는 것인지 한동안 끙끙 대고 있었다.
"주인님아. 그런 식으로 밖에 설명을 못해?"
왠지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이야기를 하는 내 검.
"내설명이 뭐가..."
하지만 검은 내말을 무시한체 바로 신디에게 달려갔다.
"신디, 언니야 언니, 모르겠니?"
신디하고 아는 사이인가? 내 검이 신디에게 말을 한지 한참 후에야 신디는 간신히 이해 했다는 듯, 내 검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아! 언니가 클라리 언니 였어? 언니 실제로 보니 진짜 예쁘네."
"나도 신디를 실제로 안을 수 있어 정말 좋아."
헛 저 검의 이름이 클라리였던 것인가? 신디는 저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확실히 둘이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신디, 오빠 검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응, 오빠가 없을 때 언니랑 이야기하다 알게 됬어."
그..그렇구나 어쩐지 신디가 온 뒤부터 클라리의 수다가 조금 줄어들었던 것 같다더니, 신디하고 이야기를 해서 수다욕을 조금이나마 분출했던 까닭인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내가 내 소유의 검의 이름을 몰랐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그랬다.
"클라리, 나보고 주인이라 부르면서 이름도 안가르쳐 주냐?"
"주인님이, 언제 물어 봤어? 매일 하는 말도 무시 했으면서. 띨빡한 주인."
"조용히해!"
휴..말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이 검과 말싸움으로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그냥 포기해야지. 난 이번에도 한숨을 내 쉰뒤 그냥 뒤쪽으로 물러섰다.
"힝, 주인님아 삐지지마 내가 오늘은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줄게. 신디 도와줄꺼지?"
"응"
나를 향해 웃은뒤 뭐가 그리 신나는지 클라리와 신디는 조그마한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아까 그 바보는 뭐하고 있지? 해질 무렵 주황빛 석양이 가득 창가로 들어 오는데, 그 옆에 그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클라리, 저녀석 왜 저래?"
난 부엌쪽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래도 누나니 이유를 알고 있겠지. 아니, 오랫동안 못 만나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응? 아.. 가이우스? 주인님아 조금만 기다려 봐 재미있는걸 보게 될꺼야"
클라리는 주방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웃으며 나를 보곤 말을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주황빛 석양이 클라리의 얼굴을 물들였다. 순간...왠지 심란해 지는 내 마음. 하지만 말을 마치자 클라리는 고개를 쑥 넣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라져 버린 클라리의 얼굴을 아쉬운 듯 쳐다보고 있는 내모습에 내가 놀랬다. 뭐지... 이 두근거리는 마음은? 내가 내 검을 무서워 하는걸까? 어릴때 이후로 한번도 가슴이 뛰거나 하는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진 않았는데...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마을 구성 추정치 오크 3000, 오우거 50, 트롤 200, 엘프 450, 인간 4000, 드워프 300 총구성원 약 8000, 동원가능 군사력 2000, 총전투력은 E클래스 보병 7000명의 전력과 동일."
갑자기 들여오는 목소리.. 그런데 이 목소리는 가이우스 그녀석의 목소리인데. 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까전의 그 단순한 말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뭐지? 우리 마을의 구성을 어떻게 네가?"
하지만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가이우스 녀석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란트, 현상금 천만 골드 피의 마왕이라 불림, 피투안국 둘째 왕자 살해 지금까지 살해한 사람수 총 976명 해방시킨 노예수 총 2738명 전투력 S+클래스 마력 S-클래스.."
이녀석 도데체...? 난 왠지 모를 불안함에 무의식적으로 칼을 뽑아 녀석의 목에 겨누며 살기를 가득담아 이야기를 했다.
"네 정체가 뭐냐?"
"칼부터 치우시죠. 란트군, 전 977번째 희생자가 되기 싫습니다. 전 가이우스 폰 힐튼 피투안 주제 리투안제국 대사, 숨겨진 직책은 피투안국 감시역 입니다."
보통사람이면 벌써 오줌을 쌌어도 지나치지 않을 상황임에도 녀석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눈빛역시 낮에 보았던 얼빵하던 눈빛과는 달리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주인님아, 그녀석 이중 인격이야 낮과 밤에 사람이 완전히 변해."
클라리는 이번에도 주방에서 또 고개만 쑥 내밀고는 말을 했다.
"하.."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걸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중인격이라니...? 낮하고 지금하고 그럼 다른존재라는 것인가?
"란트군, 낮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낮의 의식이 피투안국에 속아서 란트 군을 마왕이라 판단한 나머지 공격을 한 것입니다. 저도 낮의 의식은 어떻게 하지 못해서..."
"......."
이 상황에서 내가 할말이 무엇이 있으랴?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황당할 따름이었다. 오늘 숲으로 산책을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검이 현신을 하지 않나? 이제는 이중인격 까지. 정말...
클라리가 힘을 풀었는지, 가이우스 주위를 묶고 있던 빛의 줄이 점점 연해진 후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난 황당함에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런 내 앞으로 가이우스란 녀석이 다가오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내가 미심적은 눈으로 쳐다보자 가이우스는 낮에도 그런 표정을 만들라고 해도 만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절 못 믿으시겠다는 표정이시군요. 하긴 언제나 그랬으니까.."
언제나라.. 내가 주로 쓰던 말인데..지금 저녀석이 사용하고 있었다.
"눈빛이 달라. 낮만큼 진실됨이 없어. 당신 눈이 내가 싫어 하는 그 눈은 아니지만."
내가 왜 이 인간과 이야기를 하지.. 모르겠다. 어쨌든...사실은 사실이었다. 사악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 멍청하긴 해도 낮의 녀석이 훨씬 더 지금 보다 진실됨이 느껴졌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하프엘프 입니다. 제 어머니가 당신의 마법 스승이신 하이엘프 프리안느 그 분 이십니다. 하프엘프 였어도 다른 형제들은 아무 이상없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도 무난하고 잘 자랐지만. 저만 왠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 녀석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마법 스승. 내게 이 골치 아픈 검을 준 엘프이다. 어쩐지 가이우스 이녀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그 엘프, 핀누나는 항상가까이 있어도 뭔가 먼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항상 줬었는데... 잘 모르겠다. 몇 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먼 옛날의 일인것만 같이 기억이 희미하다. 나를 아인트 스승님께 대려다 준 것도 핀누나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오늘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당신에게는 모든걸 다 털어 놓고 싶군요."
"......."
말을 마친 가이우스의 날카롭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만들던 그 느낌도 많이 사라져 있었고.
"혼자 책만 읽으며 그렇게 지냈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더 군요. 또 다른 의식이 생긴거죠. 몸을 되찾기 보다는 제 삼자의 위치에서 저를 보는 것도 괜찮은 기분 이었죠. 저가 잘 못하던 친구를 만들고 하는 것도 낮의 의식은 잘 해네더군요. 그렇게 밤이 되자 지금 처럼 저가 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냉정해 보이는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감정적인 모습도 녀석에게서 얼핏 스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낮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 이 모습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어릴 때 본 핀누나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았다. 머리색 뿐만 아니라, 눈까지도.
"요즘에는 제가 진짜라는 믿음조차 서지 않습니다. 낮이 진짜 의식이고 제가 가짜인 듯한 생각이 감돌더군요. 그래서 예전에는 낮의 행동에도 약간의 관여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같이 낮에 의식이 피투안 왕실에 속아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것도 막지 못했었습니다.."
뭐야.. 저녀석..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듯 해서는 정말 누구한테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서부 대륙에서 제일 현상금이 높은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인가?
"네가 네 스스로의 몸을 포기 해야 될지도 모른단 말인가?"
"네..잘 아시는 군요."
"포기하지 말고 할게 뭐 있어. 낮에 너도 너 자신이고, 물론 나한테 달려든 점은 마음에 안들지만..밤에 너도 너 자신이야. 네가 인정하고 있지 않는것 뿐."
녀석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조용히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앉아있었다. 나로써는 골치 아픈 일에 신경을 스지 않아도 되었기에 상당히 기쁠 따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잠시후에 더 많은 헛소리를 할것 같은 기분에 나는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의심스러운가? 그럼 내가 확인 시켜 주지."
"신디, 아까 온 노랑머리 오빠 마음이 무슨 색이지?"
나는 주방 쪽을 보며 소리 쳤다. 내 생각이 맞다면 신디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겠지.
"음.. 연파랑색 하나야."
잠시후 신디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다지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마음의 색깔을 읽을 줄 아는 아이야. 그걸로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지. 표면적으로는 낮과 밤의 네 인격과 성격은 매우 달라. 만약 진짜로 두 인격이라면 네 마음의 색깔을 두개로 보여야 해. 하지만 그렇지 않지.. 내가 할말은 이걸로 끝이야. 그리고 참고로 내 마음은 색깔이 두개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녀석은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깨달은 것인지...아니면 더 큰 혼돈 속에 빠져든 것인지. 하지만 그리 오래 가이우스 녀석을 관찰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주방 쪽에서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여자.. 아니 검과 꼬마가 쟁반 그득 음식을 담아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집에 요리 재료가 저렇게 많았었나? 어쨌든 매일 오크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다보니 간만에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는 내 코끝을 상당히 간지럽혔다.
"주인님아~! 많이 먹어."
이 놈의 검이 행동을 가지 가지로 한다. 이번에는 소름이 확 돋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니. 난 오랫만에 생기던 식욕이 다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빠, 그런데 클라리 언니 정말 요리 잘해."
신디는 감동 받은 듯한 표정으로 클라리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신디도 요리하는것을 괭장히 좋아했지. 어린 나이에 비해...클라리와 신디는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놓은뒤 앞치마를 입은체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이놈의 검은 왜 내옆에 짝 달라 붙어 앉아 있는 거냐구!
"불..불편 해서 못 먹겠잖아 좀 옆으로 가."
난 사람의 형상을 한 내검을 밀쳐내려고 팔에 힘을 주었지만 그런데 이놈의 검이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주인님아, 먹기 불편하면 내가 먹여 줄까?"
헉, 이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검은 이것 저것 음식을 집어 모우더니 풀잎 같은 것으로 싸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주인님아, 아! 해봐."
"싫어...아..."
싫다고 말하는 내 잎속으로 이놈의 검이 그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윽...난 저항하려 했지만, 내 팔 중 하나는 이미 클라리에 의해 봉인당했고, 나머지 한팔로는 클라리가 음식을 집어 넣는 바람에 뒤로 넘어질 것 같은 의자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누님, 식사 하는데 상당히 거슬리는 군요."
가이우스의 무뚝뚝한 차가운 목소리가 입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처리하기 위해 우물거리고 있는 내 귓속으로 들렸다.
"왜? 가이우스 질투하니? 너도 먹여줄까?"
"괘..괜찮습니다."
낮과는 달리 상당히 무둑뚝해진 가이우스 녀석은 내 검의 말에 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불쌍한 녀석 그래도 낮의 인격은 반항이라도 하던데...
다행히도 가이우스가 내 검한테 말을 시키는 바람에 다행히 내 검이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런 까닭에 정신적 피로를 미각으로라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생각 외로 음식들은 괭장히 맛있었다. 하긴 오크의 요리에 적응이 된 나의 미각 수준이 그리 높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너 언제 검 속으로 돌아갈꺼니?"
난 이 스트레스 덩어리로 부터 언제 벗어날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오랫만에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은데 내가 검 속으로 왜 돌아가 난 주인님 옆에 꼭 붙어 있을꺼다. 오늘은 주인님 옆에서 자야지."
아.. 나에게는 이 이상 절망적인 말이 없으리라.
"누님, 또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그런데 내 검이 내 옆에서 잔다는데 가이우스 저녀석이 왜 난리지? 암튼 내 검이 내 옆에서 자는걸 난 결코 원하지 않는다. 자면서 까지 스트레스를 받는건...
"내 좁은 침대에 어떻게 두명이 잔다는 말이야. 넌 나보다 키도 크잖아"
난 내 마지막 휴식처 까지 스트레스에 점령당하기 싫었기에 되도록이면 거부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란트군..잔다는게 그런 의미로 밖에 생각을 안하시는 겁니까?"
가이우스 저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럼 자는 것이 자는 것이지 또 뭘하라는 거야.
"그럼 자는게 자는 거지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난 가이우스 쪽을 보며 의문을 던졌다. 가이우스는 순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가이우스, 걱정하지마렴, 우리 주인님은 생긴 것 처럼 엄청 순진해."
생긴 것 처럼 순진하다니;... 도데체 무슨뜻이야? 갑자기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본 난 해결책 하나를 가신히 찾아내서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아무튼, 내 침대에서는 못 재워줘, 그냥 리아둠 침대는 크니까 가이우스랑 같이 자지 그래?"
"뭐? 난 저녀석이랑은 절대로 못! 자! 주인님아."
"저도 싫습니다."
내 말에 둘다 왜 저렇게 흥분을 하는 거지? 별거 아닌 일에. 그냥 자면 되는거 아닌가? 정말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 때문에 지금 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님 옆에서 안 재워 주면 주인님 못자게 밤세도록 주인님 옆에서 울고 있을꺼야."
그말을 하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검... 연기라는 것을 뻔히 알수 있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겠다. 오늘 편하게 쉬기는 틀린것 같으니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겠다.
"알았어.. 옆에 자든지 말던지.. 하지만 뒤척이거나 해서 귀찮게하면 차버릴 테니...휴...."
정말 오늘 따라 한숨을 쉬는일이 엄청 많아 졌다.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며칠 중에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이 최고야!"
검이 웃는 모습을 보며 진짜 여자였으면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적당히 배가 차오르자 난 나의 마지막 안식처를 향해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주인님 잘꺼야?"
"그래, 옆에서 자고 싶으면 나중에 오던지 말던지 해."
이 귀찮은 검. 제대로 된 검이 한개만 더 있었어도 이검을 팔아버리는 건데. 드워프보고 괜찮은 검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볼까?
"오빠 잘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등뒤로 신디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신디의 목소리를 들으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그래 신디, 아침에 보자."
신디에게 대답을 해준 뒤, 내방에 들어간 나는 겉옷만 대충 벗고 되도록이면 옷을 안 벗는 방향으로 했다. 검 녀석이 언제 들어 올지 모르므로..침대에 오른 뒤, 곧 난 하루종일 싸인 엄청난 정신적 피로에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따스함, 어린 시절 추억 속에서나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그리운 느낌이 느껴져 왔다.
꿈속에서 느껴지는 그 익숙치 않은 따스함에 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클라리... 내 손을 꼭 잡고 좁은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새벽녘 희미한 빛과 함께 보였다. 지금은 검이라기 보다는 왠지 그녀라고 부르고 싶다. 잡고 있는 손을 살며시 내려 놓고는 난 그녀가 덮고 있는 얇은 이불 위에 내 하나밖에 없는 망토를 덮어 주었다.
그녀 역시 외로웠으리라. 수년간 대답하지 않는 벽을 향해 혼자 말하곤 대답을 기약없이 기다렸을 것임에... 그녀는 실체로 나타 나는게 두려웠던게 아닐까? 실체화 하더라도 아무도 자기를 몰라준다면 마지막 희망마져도 사라질 것같았기에... 그래서 신디에게 말을 걸고.. 대답 없는 나를 향해서도 그렇게 끈임없이 말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든다.
8년동안 항상 내 옆에 있었던 나의 검.. 난 언제인가부터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던것 같다. 어쩌면 나는 오래 전부터 그녀 없이 산다는 것, 자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이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일까?.....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평선으로 해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