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2장 제국의 수도를 향해(1) 사우스피투안(수정)
푸른바람·2002. 2. 24. PM 2:04:08·조회 4440·추천 69
에피소드 6 여행(1)
-마법사의 별과 검사의 별이 겹치는 날 태어난..그중에서도 플라타니오와 미탄젤의 가호를 받은 아이는 뛰어난 검술과 마법적 소질을 지니고 태어나지만...어릴 때 부터 그 능력을 깨닫고 수련을 할 경우 생각하는 폭이나 사고과정은 사춘기 시기에 이미 성인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성숙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생식이나 신체 내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거의 없지만 외형적인 면에서는 이차 성징이 일어나지 않아 중성적 외모를 가지게 된다. 남자의 경우 수염이나지 않고 근육의 발달, 목소리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이가 들어도 거의 늙지 않는 어떻게 보면 엘프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리투안 제국 대 백과 사전> 아우렐리우스 폰 힐튼, 미하엘 슈타이튼 공저-
"주인님은 처음으로 도시에 가보는 거지?"
"응.."
클라리는 어제밤을 묵었던 작은 마을을 출발한 아침부터 뭐가 좋은지. 계속 도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도시가 뭐길레?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이야기 해주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그런데 클라리가 왜 저렇게 기대하는 걸까?
우리 일행이 지나고 있는 북부 산맥 이북의 파나단 지역은 겨울이 접어들기 바로 직전까지는 북부의 지역같지 않게 날씨가 그리 추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이 접어드는 그 순간부터는 폭설을 시작으로, 북부 산맥 이남의 사람들은 전혀 꿈도 꾸지 못할 매서운 겨울날씨가 파나단을 휩쓸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슨이유에서인지 우리 마을은 북부 산맥 이북에 있음에도 그 한파의 영향을 언제나 받지 않았다. 북쪽 산맥 이남의 제국령 처럼, 겨울에도 별다른 추위없이 보낼 수 있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인것 같기도 한데...정확히는 모르겠다.
누렇게 말라붙은 들판의 풀들 틈 사이로 아직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풀들의 모습도 길가에 보였다. 두개의 짐짝 중에 하나는 리아인 한테로 옮겨 갔던 까닭에 난 조금 피곤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런데 흠... 신디하고 리아인이 그렇게 며칠 사이에 금방 친해지다니. 하긴 신디는 오크 전사가 요리를 하게 만드는 대단한 아이니까 친화력 면에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서 도시인지 뭔지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는지 안듣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체 떠들고 있는 클라리. 그와 반대로 소피는 혼자 조용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걷고 있었다.
"리아인 너 돈 많지?"
클라리의 음흉한 목소리. 이 놈의 검은 그냥 곱게 검속에 들어가 있는게 나한테나 모두한테 더 편할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앞쪽의 리아인을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짖는 클라리...
"돈이야...물론, 그런데로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죠..레이디 프리안느.."
리아인은 그 별 변화 없는 말투로 클라리의 물음에 답을 했다. 클라리의 마수에 걸려드는 리아인, 아무래도 내가 돈이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고 클라리는 지금까지 필요한 돈을 리아인에게서 뜯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갑자기...왜 돈이 많이 있는지 묻는 것일까?
이미 여러마을을 지나면서, 돈이란 것이 여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깨닫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마을 창고에 쌓아둔 보석하고 금화 몇개 정도는 챙겨 오는건데.
"리아인, 나중에 도시에 가서..알지? 우리 주인님하고 나하고 신디, 옷도 사고 해야 하니까."
"네...레이디 프리안느."
한숨을 내쉬는 리아인이 왜그렇게 불쌍하게 보이는 걸까? 리아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사실을 클라리가 하나도 잊어 먹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안 뒤부터... 클라리의 말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소피, 피곤하지 않니?"
"네."
작은 소리로 언제나 처럼 차분히 답을 하는 소피. 하지만 소피는 그냥 길을 걷는 건 별로 익숙치 않아 보였다. 나무 위에서는 그렇게 빨리 움직였었는데...엘프라서 그런가? 벌써 몇번째 돌부리에 넘어지려 하는 것을 내가 간신히 잡아주고 있었다.
"리아인, 수행원은 안 데리고 다닙니까?"
저번에 우리마을에 쳐들어 왔던 피투안국 둘째 왕자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 녀석은 수백명을 끌고 다니던데. 노예까지 합치면 거의 천명에 가까운 숫자. 그런데 이 녀석은 대륙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제국의 황자가 아닌가? 황태자는 아니였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아...네, 진정한 기사는 자기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여행할 때도 친구나 동료하고는 같이 다닐 지언정 절 때 하인과는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 것이 저희 제국 기사단의 법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걸 물으시는지?"
음..역시 예상했던대로 스승님을 닮아서 그런지 황자 답지 않게 그다지 권력욕 같은 것이 많이 있다거나 하는 것 같았다. 가끔씩 자기 집단의 규율에 광신적으로 얽매이는 바보들이 있지만 리아인이 말하는 투로 볼 때는 자기 스스로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느끼는 것 같다.
"리아인, 우리 주인님이 일년전쯤에 바보 같은 피투안국 왕자를 만났었기 때문에 그래.. 실력은 뭐도 없으면서 꿈만 커서 패거리끌고 몰려다니 면서 설치는 그런 바보들 있잖아."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최근에는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가 쓸데 없는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단순하던 내 말솜씨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고.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 눈앞에 커다란 성문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한테 어렸을 때 들었던 도시이야기가 생각이난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온갖 물건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 했었는데...성벽 주위에 깊게 파져 있는 해자를 보니 아무래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도시 크기는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는 조금 작은 것 같았다. 성벽이나 전체적인 규모에서 보니, 우리마을의 반도 안되는 것 같았으니까.
"리아인, 그런데 이 도시 이름이 뭐야?"
클라리... 쓸데 없는건 많이 알고 있으면서 기본적인 건 모르고 있다니...하긴 모르는 건 나도 마찮가지지만..책에서 피투안국의 도시들에 대해서 읽은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다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우스 피투안, 노스 트립톤에 필적하는 피투안 최고의 군사 방어 도시란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는 군요.. 실제 능력은 비교도 안되지만....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어도..."
리아인은 왠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도시의 성벽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문에도 경비병이 단 한명만 서 있을 뿐이었다. 성벽 위에는 말할 것도 없고....이게 이 나라의 최고의 방어 도시라면 다른 도시는 정말 알만했다.
"이 도시 우리 마을 보다 작은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인구도 남파나단 자치령의 사람 수의 반 조금 넘는 정도 밖에 안되니까요. 그리고. 아마. 이 정도 방어 수준이면 란트군 혼자서도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럴 것 같다. 신경써서 만들어진 성벽에 비해 지키는 수준은. 정말...
우리 일행이 다가가자 거의 반쯤 졸고 있던 경비병이 눈을 크게 뜨고는 귀찮은 듯 말을했다.
"통행증."
건방진 경비병의 말에 아무말 없이 리아인은 서류몇개를 꺼내더니 경비병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 서류를 읽던 경비병은 잠이 확 달아나는 듯한 표정을 짖더니 리아인에게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귀하신 손님들께서 저희 도시에 오시다니 시장님께 보고를 해야....."
경비병은 마주 보는 것 조차 황송한 듯 고개를 연신 숙일 뿐이었다. 도데체 리아인이 뭘 보여줬길레...
"아니,, 괜찮네. 시장은 내가 직접 찾아 가도록 하지.. 수고 많이 하도록 하게."
우리 일행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익숙한 말 낮춤..역시 황자는 황자였다. 자기는 아니라고 해도....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비병의 얼굴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네!"
황송해 마지 않는 경비병을 뒤에 둔체 우리 일행은 성문을 아무 방해 없이 통과 했다.
"리아인, 너 혹시 나 황자요 하는 서류 보여준건 아니겠지...?"
클라리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리아인을 쳐다 봤지만 리아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했다.
"바로 그 서류를 보여줬습니다. 레이디 프리안느."
하..그래도 타국인데 그렇게 당당하게 황자라는 신분을 알리고 다녀도 되는 걸까.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는 왕자나 공주가 다른 나라에 갈때는 안전 때문에 신분을 숨기고 다닌다던데. 하긴 저 녀석은 보통의 왕자가 아닌 황자였지.
"미리 출발할때 국가적으로 공표를 하고 떠나길 잘했것 같군요. 말단 경비병 조차도 바로 서류를 파악하다니, 다음에 올 때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공표까지? 도데체 제국의 힘이 어느 정도기에 피투안국 내에서도 타국의 황자가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하긴 리아인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클라리나 소피 같은 경우에는 통행증을 만들 방법이 없으니까. 이종족을 거의 노예 이상 취급을 안하는 피투안국 이므로. 게다가 클라리는 검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우리 모두 시장한테 가야하는 거야? 리아인?"
클라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나대신 말을 하고 있었다. 귀찮게 입을 열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클라리의 말이 많은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아닙니다. 여관을 잡고 잠시 도시 구경이나 하시고 계십시오. 저 혼자 다녀 오겠습니다. 그리고 물건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저가 돈을 드릴테니 얼마든지 구입하십시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황자가 타국에서 안전따위는 무시하고 혼자 가겠다라. 내 책을 통해서만 얻은 짧은 지식으로는 조금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피투안 왕국이 리투안 제국에 거의 복속된 상태라 생각하면 리아인의 저 당당한 행동도 이해는 가지만.
마을 가운데로 걸어가자 많은 여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많은 여관이 있다니. 군사도시가 아닌 평범한 관광도시인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든다.
"이번엔 어느 여관에서?"
오늘은 제발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지나온 작은 마을에는 제대로된 여관이 없어서. 편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하긴 길에서 노숙 하는 것 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다쓰러져가는 빈집에서 자거나 하는 것은 조금 그랬다.
"주인님아~! 리아인 돈 많으니까 이번엔 도시에 온 기념으로 비싼여관에서 묵자."
맘대로 하세요. 언제는 나한테 묻고 여관을 정했나? 여행 경험이 없는 까닭에 마을 밖으로 나온 뒤부터는 거의 클라리한테 끌려다니고 있었다. 내 신세가 갈수록 처량해 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나보고 마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 누가 이런 내모습을 상상이나 할까? 자기 검한테 끌려다니는 피의 마왕.
결국.. 클라리가 고르고 골라서 방하나가 우리집 전체 크기 만한 여관에서 자게 되었다.
"방은 몇 개 빌리시겠습니까?"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훨씬 좋은 옷을 여관 카운터에서 있는 놈이 입고 있었다. 참.. 꼭 이런 여관에서 묵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중 내 옷차람이 가장 낡은 것 같았다. 옷을 거의 새로 안사고 내가 만들어 입곤 했었으니까, 패션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카운터에 있는 놈의 눈빛을 보니 나를 노예로 보는게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디는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갈 때마다 어린 아이 옷을 사달라고 부탁해서 입혔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았으니까.
"방 세개 주세요."
여관 카운터의 그 청년에게 말을 하는 클라리, 그런데 방 두개면 되는 것 아닌가? 나하고 리아인 한방 쓰고 나머지 여자들이 한방 쓰고, 잠깐,설마...?!
"리아인은 혼자 자고 신디하고 소피하고 같은방에서 자고 나하고 주인님하고 같은방 쓰고 모두 불만 없지?"
하.. 오늘만은 편안히 혼자 잘 수 있나 했더니. 내 작은 소망은 클라리의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버렸다. 처음 한달동안은 클라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고, 최근에야 그나마 적응이 되었지만 클라리가 옆에 자는 것은 여전히 내게 편하지 않는 것은 마찮가지였다.
"레이디 프리안느, 두분 벌써 그런 사이 이십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런 사이라니...?? 전에 가이우스도 그렇고 왜 그렇게 같이 자는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자는게 자는거 말고 다른것이 있나?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그런 사이긴? 우리 순진한 쑥맥 주인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네요."
날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하는 클라리, 모른다라....정말 황당할 뿐이다. 내가 뭘 모른다고? 하긴 모르는 것도 많지만. 경험없이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클라리, 저도 란트군과 같은 방에서 자고 싶은데요..."
소피의 목소리 였다. 헛.. 소피까지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표정이 사나워 지는 클라리...
이 상황에서 매듭을 짖지 못하면 시끄러워지겠다.
"잠깐.. 그냥 방 두개로. 하나는 제일 큰 방 하나는 작은방."
그냥 다 같이 자면 되는거 아니야 간단하게.. 리아인은 혼자 자라고 하고. 하지만 내말을 들은 일행들은 승낙을하긴 했지만,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한 줄 알았던 소피와 원래 그런 클라리는 여전히 서로를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 도데체 무슨 이유인지? 나하고 같이 자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 인가?
그런데 방금전에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카운터에 있는 놈이 황당한 듯한 표정을 나를 보며 짖고 있었다. 역시...날 노예라 생각한게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또하나 일행,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리아인은 아까 클라리에게 질문을 한 이후로는 늘 그랬던 것 처럼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아인은 말을 많이 하는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점은 스승님을 그다지 닮지 않은 것 같다.
번쩍 번쩍 잘 닦여져 빛나는 계단과 복도를 지나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하긴 각자 방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리아인 말고는 다 같은방이니, 신디를 혼자 재울 수도 없고 그래서 신디도 물론 같은 방이었다.
"그럼 전 이 도시 시장한테 다녀오겠습니다. 구경 잘하십시오. 특히 란트군은 처음이신 것 같으니."
리아인은 우리방 문을 조금 열고 돈주머니로 보이는 작은 주머니를 내려 놓으며 말을 하고는 곧 밑으로 내려갔다. 잠깐, 구경해라는 말은 또 클라리한테 끌려다녀야 한다는 말인데 고생길이 훤하군.
"주인님아~! 쇼핑가자!"
밝은 클라리의 목소리, 역시나.. 요즘에는 내 예상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불길한 걸로만..
"나 피곤한데..."
소용이 없으리라는 걸 알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버텨 보았다. 아...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클라리. 하...확실히 약점을 잡혀버린 것 같다. 정말 제 3자가 본다면 이 상황에서 누가 저 울음이 가짜라는 걸 알것인가?
"그..그래..할수 없지...소피는 신디하고 방에 있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위험하니까.."
소피는 뭔가 항변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소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눈빛을 무시하고 클라리에게 끌려 밖으로 나왔다.
클라리는 언제 눈에 눈물이 가득 찼었냐는 듯 여관 밖에 나오니 얼굴 가득 기쁜 표정이 되어있었다. 어휴..저 연기파. 클라리를 연극배우를 시켜도 아마 크게 성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묵는 여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클라리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하던 옷가게로 추정되는 가게의 모습이 보였다. 그 것도 한두체가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옷가게, 확실히 이 도시는 군사도시보다는 옷의 도시라던지...그런게 더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옷가게가 옷만 파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여자들 악세사리부터 대다수의 여자들이 보면 눈이 뒤집힐 정도의 상품들이 모여 있었다. 비싸보이는데... 저런 것들을 파는 가게가 이렇게 많이 모여 있어도 장사가 되는 걸까?
클라리는 한참동안이나 주위의 가게를 둘러보더니 그 중 한 곳에 있는 가게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쩝... 옷차림에서 전혀 안어울리는 우리 커플은 걸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 같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까지도도 종업원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게 영 거슬렸다. 내 옷차람이 그렇게 이상한가?
"주인님아~! 나 해보고 싶은거 있었는데. 들어줄꺼지?"
클라리가 저런 말투로 말할때는 뭔가 엄청난걸 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는데. 하지만 해주기 싫다고 하면, 또 울려고 할 것이다. 정말 내 신세야. 내게 이런 약점이 있는 줄은 나도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정말..또 클라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전에 곱게 들어준다고 해야할 것 같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클라리는 전에도 이런 곳에 몇번 와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멈칫거린다거나 어색해 하는 것 없이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면.
클라리는 나를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의자를 끌고와서 앉히고는 눈을 가렸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눈까지 가리다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클라리가 도대체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 것일까?
클라리는 너절 너절한 그래도 오랫동안 입고 있어서 정이든 겉옷을 벗긴 후, 뭔가 다른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무슨 옷을 입히는지는 눈을가려서 전혀 모르는게 답답할 뿐이다. 하긴 눈을 가릴정도면 어떤 옷일런지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설마 여자옷같은 것을 입히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옷 갈아 입는데 왜 머리카락을 빗는걸까? 모르겠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서 그런지 내 머리카락도 지금 생각해보니 남자치고는 생각외로 긴 편이었다. 쩝.. 머리카락 자를 정신이 있어야지... 매일 감는것도 부담스러운데. 그리고 머리를 빗기는 것이 끝난 후, 물수건 같은 것으로 내 얼굴을 닦더니, 뭔가 부슬부슬한 털같은 것이 얼굴을 스치는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정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불길해.
"주인님아 다 됬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를 벗기는 클라리. 난 갑작스럽게 밝아진 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앞을 보니 종업원들이 거울로 추정되는 큰 유리판을 들고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거울이라.. 예전에 엄마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어릴 땐 햇빛을 비치며 장난도 많이 치곤 했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치는 저 여자는 누구지? 난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거울에 비치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연갈빛 긴 생머리에 연분홍빛 원피스, 뽀얀 얼굴, 무척이나 약해보이는 몸매...잠깐...거울이 비치는 방향을보면?... 설마...아니겠지.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거울속의 여자. 아니 내 표정도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헉....저 거울에 비친 존재는 한치의 어김도 없이 나였다. 어쩐지...가이우스 녀석도 나보고 귀엽다고 하고,. 클라리도 처음에 한말이 그것이였는데. 하지만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내가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 수가! 여자가 아닌 남자들중에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의 외모가 여자같이 생긴 외모인데! 내 얼굴이 그렇다니....
날 쳐다보고 있던 종업원들도 내 변화에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체 쳐다보고 있었다. 하..내 기분을 알까? 황당함에...잠시 사고가 마비되었던 난 지금 이상황에서 취해야할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는 클라리를 향해 소리쳤다.
"클라리, 내 옷 돌려줘!"
"아 그 옷...종업원들이 너무낡았다고 찢어서 버리던데?"
우려했던데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니, 이 것역시 클라리의 농간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
"그럼 이 꼴로 거리를 다녀라는 거야?"
"뭐 어때서, 나도 생각만 해 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꾸며 놓고 보니까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 주인님 정말 예쁘고 귀여워~! 남자들이 혹 넘어가겠는데?"
.....잠시 이성이 사라지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며 침착하게 클라리를 말을 했다.
"남자 옷을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
"음..그게..종업원들이 그러는데 이 마을은 여자 옷만 만드는 전통이 있어서 남자 옷을 구하려면 다른 마을에 가거나 주말마다 오는 떠돌이 장사꾼들 한테 사야한데.."
이건.. 분명이 클라리의 치밀한 농간에 내가 넘어간 것이 틀림이 없다. 아....
"너...계획적이었지...?"
내 말을 듣자, 딴청을 피우는 클라리. 때리면 울테니,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언젠가는 이 빚은 갚아 줘야지. 그럴 수나 있으려나. 또 당하지만 않으면 나은편이지. 정말.이 비참함. 그나저나 여관으로 어떻게 간다. 이 모습으로.. 그렇다고 벗고 속옷만 입고 갈수도 없고. 아이고 모르겠다. 이 도시에 날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여관에나 가서 리아인보고 해결 좀 해달라고 해야 겠다.
클라리는 그 와중에서도 모자하고, 악세사리 같은 것을 몇개 고르더니. 종업원에게 계산을 하고는 나와 함께 밖으로 걸어나왔다. 난 밖에 나오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되도록 빠르게, 그런데 이놈의 클라리는 왜 그렇게 천천히 걷는거야. 이 것역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하는 클라리의 의도. 안그래도...부끄러워 죽겠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내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불길한 예감.
"어이~! 거기 가는 아가씨들..."
잠깐. 이 대사는 어릴 때 엄마가 사준 이야기책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동네 건달들의 대사인데...? 설마 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난 그 녀석들을 무시한체 클라리의 한쪽 팔을 잡고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걸어갔다.
하지만 건달 녀석들의 앞을 지나가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설마, 저 건달 녀석들이 날 부른 것이었나?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향해 안됬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못보던 얼굴인데. 어디서 왔어?"
날 잡은 놈 눈빛을 보니 죽일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그래도...둘째 왕자인가 하는녀석 눈빛은 살아있기라도 했지..저놈은.. 아마 조금만 힘만써도...오줌을 싸고 도망칠 부류의 인간이다. 지금 주제에 누구를 잡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스트레스 해소는 해야겠지? 클라리를 보니. 건달 패거리중 다른 한명이 나처럼 클라리 역시 잡고 있었다. 괜히 연약한 척, 두려움에 떠는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클라리..연기인줄은 난 뻔히 고 있다. 그 큰 키의 검술실력도 상당히 뛰어난 가이우스도 한 방에 날리면서. 아마, 여기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 정도는 클라리 혼자서 눈깜짝할 사이에 없앨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이 녀석들을 곱게 클라리가 해치우게 할 생각은 없다..
스트레스 해소는 확실하게! 해야지. 난 검집체로 등에 매고 있던 검. 여자 원피스는 도저히 허리에 검을 맬 수 없게 되었 있었다.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고 있던 녀석을 확실하게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일에 그 건달 일당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윽, 아가씨 검을 좀 쓰는 것 같은데. 하지만 아가씨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긴 힘들껄. 나중에 잘못했다고 빌어도 소용없어."
내 검집에 배를 맞아 저 쪽까지 튕겨간놈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최소한 실력차이를 알아볼 눈은 있어야지. 그래야 살아가기가 편할텐데...어쨌든 나로서는 그러면 그럴 수록 좋을 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때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놈의 치마가 검을 휘두르는데 끝까지 걸리적 거린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클라리를 뒤에 둔체 죽지 않을 정도로 검집으로 건달 녀석들을 두들겨 팼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서 죽이면 리아인이 뒷처리 하기가 곤란할테니. 죽이지는 말아야지. 아까 주위에 가만히 서서 나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의 변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내 예상이 맞았다. 녀석들은 몇놈은 벌써 도망 쳤고 도망치지 못한 녀석들은 오줌을 질질싸며 손이 닳아라 내 앞에서 빌고 있었다. 적당히 화도 풀렸고 이 정도로 참는게 좋을까? 피의 전사 정말 이번 여행을 통해 인내심의 엄청난 향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녀석들을 내버려 둔체, 아무말 없이 클라리 쪽으로 걸어갔다.
"주인님아 그렇게 난폭하게 움직이면 어떻게 해. 머리카락이 다 흐트러졌잖아.. 내가 빗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도 땀은 많이 안흘려서 화장은 안 지워졌네."
간신히 푼 스트레스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클라리가 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내 눈을 못본척 고개를 돌리는 클라리..
주위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뒤로 한체 난 여관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는 쪼르르 달려오더니 평소처럼 내 팔에 딱 붙었다.
"주인님아 미안해. 나도 남자 옷을 안파는줄은 몰랐었어. 화내지마."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다고, 이미 창피 당할건 다 당했는데. 그리고 아무래도 클라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옷가게하고 여관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여관에 들어가니 아까 카운터에 있던 녀석이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를 보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것이...왠지 불안해...클라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나를 쳐다보는 네개의 눈동자...
"클라리 언니? 저 옆에 언니는 누구야?"
"누군것 같아 신디?.."
클라리 이게 방에 까지 와서 장난이야. 신디는 고개를 갸웃하며 날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클라리..여관 안에 까지 와서 꼭 내가 화를 내가 만드냐?"
"란트오빠?"
내 목소리를 들은 신디의 표정,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안그래도 큰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는 소피. 난 피곤함에 창가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리티 양, 숙녀는 그렇게 앉으면 안되요."
클라리의 얄미운 목소리였다. 네 녀석 좋아한다는 말은 정말 취소다.
"리티는 또 뭐야!"
"주인님 여자 모습일때 이름, 그런데 주인님아, 주인님이 그렇게 노려보는 모습도 너무 귀엽고 예뻐."
"......."
도저히 할말이 없었다. 피의 마왕, 살인마. 날 그렇게 부르는 녀석들은 내가 이런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 뒤로는 날 어떻게 부를지 궁금했다. 신디는 충격이 가셨는지, 나를 향해 다가 왔다.
"오빠, 정말 오빠 맞아? 오빠가 이렇게 예뻤었어?"
"........."
신디의 말에 난 아무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와 나도 오빠 처럼 이렇게 예뻤으면 좋겠다. 클라리 언니는 예쁜데 너무 키가 커서 조금 그렇는데 오빠는 키도 적당하고..."
신디는 내 얼굴을 이곳저곳 유심히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하...신디 너 마저 그러기냐. 이 악몽에서 제발 벗어나길. 신디와 클라리에게 시달리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리아인 구세주가 들어왔다.
"레이디 프리안느 쇼핑은 잘 하셨습니까?"
클라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리아인을 향해 난 빠르게 달려갔다.
"리아인, 좀 도와주세요.."
리아인 쪽으로 걸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하며 매달렸다. 하지만 리아인은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처음 뵙는 분이신것 같은데..레이디는 누구시죠? 저를 아시는 분이십니까?"
헉...리아인 마져...엄청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 목소리 힘없이 말하면, 혹시 여자 목소리 처럼 들리는게 아닐까? 설마....
"접니다. 란트, 말입니다. 제발 옷 좀 구해주세요."
"란트군, 어떻게 이런 일이..?"
대충 상황을 이해한 듯한 리아인이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서 확연히 표시가 났다.
"상황설명은 나중에 할께요."
"알겠습니다. 란트군..제 옷을 몇가지 들고 오죠."
휴..역시 구세주는 구세주였다. 자기방 쪽으로 옷을 가지러 가는 리아인. 난 클라리를 다시한번 노려본 뒤 나도 화장을 지우러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당한 도시에서의 첫날, 나의 첫여행의 셋째날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번여행이 편하기는 틀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마법사의 별과 검사의 별이 겹치는 날 태어난..그중에서도 플라타니오와 미탄젤의 가호를 받은 아이는 뛰어난 검술과 마법적 소질을 지니고 태어나지만...어릴 때 부터 그 능력을 깨닫고 수련을 할 경우 생각하는 폭이나 사고과정은 사춘기 시기에 이미 성인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성숙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생식이나 신체 내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거의 없지만 외형적인 면에서는 이차 성징이 일어나지 않아 중성적 외모를 가지게 된다. 남자의 경우 수염이나지 않고 근육의 발달, 목소리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이가 들어도 거의 늙지 않는 어떻게 보면 엘프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리투안 제국 대 백과 사전> 아우렐리우스 폰 힐튼, 미하엘 슈타이튼 공저-
"주인님은 처음으로 도시에 가보는 거지?"
"응.."
클라리는 어제밤을 묵었던 작은 마을을 출발한 아침부터 뭐가 좋은지. 계속 도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도시가 뭐길레?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이야기 해주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그런데 클라리가 왜 저렇게 기대하는 걸까?
우리 일행이 지나고 있는 북부 산맥 이북의 파나단 지역은 겨울이 접어들기 바로 직전까지는 북부의 지역같지 않게 날씨가 그리 추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이 접어드는 그 순간부터는 폭설을 시작으로, 북부 산맥 이남의 사람들은 전혀 꿈도 꾸지 못할 매서운 겨울날씨가 파나단을 휩쓸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슨이유에서인지 우리 마을은 북부 산맥 이북에 있음에도 그 한파의 영향을 언제나 받지 않았다. 북쪽 산맥 이남의 제국령 처럼, 겨울에도 별다른 추위없이 보낼 수 있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인것 같기도 한데...정확히는 모르겠다.
누렇게 말라붙은 들판의 풀들 틈 사이로 아직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풀들의 모습도 길가에 보였다. 두개의 짐짝 중에 하나는 리아인 한테로 옮겨 갔던 까닭에 난 조금 피곤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런데 흠... 신디하고 리아인이 그렇게 며칠 사이에 금방 친해지다니. 하긴 신디는 오크 전사가 요리를 하게 만드는 대단한 아이니까 친화력 면에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서 도시인지 뭔지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는지 안듣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체 떠들고 있는 클라리. 그와 반대로 소피는 혼자 조용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걷고 있었다.
"리아인 너 돈 많지?"
클라리의 음흉한 목소리. 이 놈의 검은 그냥 곱게 검속에 들어가 있는게 나한테나 모두한테 더 편할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앞쪽의 리아인을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짖는 클라리...
"돈이야...물론, 그런데로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죠..레이디 프리안느.."
리아인은 그 별 변화 없는 말투로 클라리의 물음에 답을 했다. 클라리의 마수에 걸려드는 리아인, 아무래도 내가 돈이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고 클라리는 지금까지 필요한 돈을 리아인에게서 뜯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갑자기...왜 돈이 많이 있는지 묻는 것일까?
이미 여러마을을 지나면서, 돈이란 것이 여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깨닫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마을 창고에 쌓아둔 보석하고 금화 몇개 정도는 챙겨 오는건데.
"리아인, 나중에 도시에 가서..알지? 우리 주인님하고 나하고 신디, 옷도 사고 해야 하니까."
"네...레이디 프리안느."
한숨을 내쉬는 리아인이 왜그렇게 불쌍하게 보이는 걸까? 리아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사실을 클라리가 하나도 잊어 먹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안 뒤부터... 클라리의 말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소피, 피곤하지 않니?"
"네."
작은 소리로 언제나 처럼 차분히 답을 하는 소피. 하지만 소피는 그냥 길을 걷는 건 별로 익숙치 않아 보였다. 나무 위에서는 그렇게 빨리 움직였었는데...엘프라서 그런가? 벌써 몇번째 돌부리에 넘어지려 하는 것을 내가 간신히 잡아주고 있었다.
"리아인, 수행원은 안 데리고 다닙니까?"
저번에 우리마을에 쳐들어 왔던 피투안국 둘째 왕자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 녀석은 수백명을 끌고 다니던데. 노예까지 합치면 거의 천명에 가까운 숫자. 그런데 이 녀석은 대륙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제국의 황자가 아닌가? 황태자는 아니였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아...네, 진정한 기사는 자기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여행할 때도 친구나 동료하고는 같이 다닐 지언정 절 때 하인과는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 것이 저희 제국 기사단의 법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걸 물으시는지?"
음..역시 예상했던대로 스승님을 닮아서 그런지 황자 답지 않게 그다지 권력욕 같은 것이 많이 있다거나 하는 것 같았다. 가끔씩 자기 집단의 규율에 광신적으로 얽매이는 바보들이 있지만 리아인이 말하는 투로 볼 때는 자기 스스로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느끼는 것 같다.
"리아인, 우리 주인님이 일년전쯤에 바보 같은 피투안국 왕자를 만났었기 때문에 그래.. 실력은 뭐도 없으면서 꿈만 커서 패거리끌고 몰려다니 면서 설치는 그런 바보들 있잖아."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최근에는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가 쓸데 없는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단순하던 내 말솜씨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고.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 눈앞에 커다란 성문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한테 어렸을 때 들었던 도시이야기가 생각이난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온갖 물건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 했었는데...성벽 주위에 깊게 파져 있는 해자를 보니 아무래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도시 크기는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는 조금 작은 것 같았다. 성벽이나 전체적인 규모에서 보니, 우리마을의 반도 안되는 것 같았으니까.
"리아인, 그런데 이 도시 이름이 뭐야?"
클라리... 쓸데 없는건 많이 알고 있으면서 기본적인 건 모르고 있다니...하긴 모르는 건 나도 마찮가지지만..책에서 피투안국의 도시들에 대해서 읽은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다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우스 피투안, 노스 트립톤에 필적하는 피투안 최고의 군사 방어 도시란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는 군요.. 실제 능력은 비교도 안되지만....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어도..."
리아인은 왠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도시의 성벽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문에도 경비병이 단 한명만 서 있을 뿐이었다. 성벽 위에는 말할 것도 없고....이게 이 나라의 최고의 방어 도시라면 다른 도시는 정말 알만했다.
"이 도시 우리 마을 보다 작은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인구도 남파나단 자치령의 사람 수의 반 조금 넘는 정도 밖에 안되니까요. 그리고. 아마. 이 정도 방어 수준이면 란트군 혼자서도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럴 것 같다. 신경써서 만들어진 성벽에 비해 지키는 수준은. 정말...
우리 일행이 다가가자 거의 반쯤 졸고 있던 경비병이 눈을 크게 뜨고는 귀찮은 듯 말을했다.
"통행증."
건방진 경비병의 말에 아무말 없이 리아인은 서류몇개를 꺼내더니 경비병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 서류를 읽던 경비병은 잠이 확 달아나는 듯한 표정을 짖더니 리아인에게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귀하신 손님들께서 저희 도시에 오시다니 시장님께 보고를 해야....."
경비병은 마주 보는 것 조차 황송한 듯 고개를 연신 숙일 뿐이었다. 도데체 리아인이 뭘 보여줬길레...
"아니,, 괜찮네. 시장은 내가 직접 찾아 가도록 하지.. 수고 많이 하도록 하게."
우리 일행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익숙한 말 낮춤..역시 황자는 황자였다. 자기는 아니라고 해도....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비병의 얼굴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네!"
황송해 마지 않는 경비병을 뒤에 둔체 우리 일행은 성문을 아무 방해 없이 통과 했다.
"리아인, 너 혹시 나 황자요 하는 서류 보여준건 아니겠지...?"
클라리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리아인을 쳐다 봤지만 리아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했다.
"바로 그 서류를 보여줬습니다. 레이디 프리안느."
하..그래도 타국인데 그렇게 당당하게 황자라는 신분을 알리고 다녀도 되는 걸까.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는 왕자나 공주가 다른 나라에 갈때는 안전 때문에 신분을 숨기고 다닌다던데. 하긴 저 녀석은 보통의 왕자가 아닌 황자였지.
"미리 출발할때 국가적으로 공표를 하고 떠나길 잘했것 같군요. 말단 경비병 조차도 바로 서류를 파악하다니, 다음에 올 때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공표까지? 도데체 제국의 힘이 어느 정도기에 피투안국 내에서도 타국의 황자가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하긴 리아인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클라리나 소피 같은 경우에는 통행증을 만들 방법이 없으니까. 이종족을 거의 노예 이상 취급을 안하는 피투안국 이므로. 게다가 클라리는 검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우리 모두 시장한테 가야하는 거야? 리아인?"
클라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나대신 말을 하고 있었다. 귀찮게 입을 열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클라리의 말이 많은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아닙니다. 여관을 잡고 잠시 도시 구경이나 하시고 계십시오. 저 혼자 다녀 오겠습니다. 그리고 물건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저가 돈을 드릴테니 얼마든지 구입하십시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황자가 타국에서 안전따위는 무시하고 혼자 가겠다라. 내 책을 통해서만 얻은 짧은 지식으로는 조금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피투안 왕국이 리투안 제국에 거의 복속된 상태라 생각하면 리아인의 저 당당한 행동도 이해는 가지만.
마을 가운데로 걸어가자 많은 여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많은 여관이 있다니. 군사도시가 아닌 평범한 관광도시인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든다.
"이번엔 어느 여관에서?"
오늘은 제발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지나온 작은 마을에는 제대로된 여관이 없어서. 편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하긴 길에서 노숙 하는 것 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다쓰러져가는 빈집에서 자거나 하는 것은 조금 그랬다.
"주인님아~! 리아인 돈 많으니까 이번엔 도시에 온 기념으로 비싼여관에서 묵자."
맘대로 하세요. 언제는 나한테 묻고 여관을 정했나? 여행 경험이 없는 까닭에 마을 밖으로 나온 뒤부터는 거의 클라리한테 끌려다니고 있었다. 내 신세가 갈수록 처량해 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나보고 마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 누가 이런 내모습을 상상이나 할까? 자기 검한테 끌려다니는 피의 마왕.
결국.. 클라리가 고르고 골라서 방하나가 우리집 전체 크기 만한 여관에서 자게 되었다.
"방은 몇 개 빌리시겠습니까?"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훨씬 좋은 옷을 여관 카운터에서 있는 놈이 입고 있었다. 참.. 꼭 이런 여관에서 묵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중 내 옷차람이 가장 낡은 것 같았다. 옷을 거의 새로 안사고 내가 만들어 입곤 했었으니까, 패션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카운터에 있는 놈의 눈빛을 보니 나를 노예로 보는게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디는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갈 때마다 어린 아이 옷을 사달라고 부탁해서 입혔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았으니까.
"방 세개 주세요."
여관 카운터의 그 청년에게 말을 하는 클라리, 그런데 방 두개면 되는 것 아닌가? 나하고 리아인 한방 쓰고 나머지 여자들이 한방 쓰고, 잠깐,설마...?!
"리아인은 혼자 자고 신디하고 소피하고 같은방에서 자고 나하고 주인님하고 같은방 쓰고 모두 불만 없지?"
하.. 오늘만은 편안히 혼자 잘 수 있나 했더니. 내 작은 소망은 클라리의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버렸다. 처음 한달동안은 클라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고, 최근에야 그나마 적응이 되었지만 클라리가 옆에 자는 것은 여전히 내게 편하지 않는 것은 마찮가지였다.
"레이디 프리안느, 두분 벌써 그런 사이 이십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런 사이라니...?? 전에 가이우스도 그렇고 왜 그렇게 같이 자는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자는게 자는거 말고 다른것이 있나?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그런 사이긴? 우리 순진한 쑥맥 주인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네요."
날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하는 클라리, 모른다라....정말 황당할 뿐이다. 내가 뭘 모른다고? 하긴 모르는 것도 많지만. 경험없이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클라리, 저도 란트군과 같은 방에서 자고 싶은데요..."
소피의 목소리 였다. 헛.. 소피까지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표정이 사나워 지는 클라리...
이 상황에서 매듭을 짖지 못하면 시끄러워지겠다.
"잠깐.. 그냥 방 두개로. 하나는 제일 큰 방 하나는 작은방."
그냥 다 같이 자면 되는거 아니야 간단하게.. 리아인은 혼자 자라고 하고. 하지만 내말을 들은 일행들은 승낙을하긴 했지만,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한 줄 알았던 소피와 원래 그런 클라리는 여전히 서로를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 도데체 무슨 이유인지? 나하고 같이 자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 인가?
그런데 방금전에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카운터에 있는 놈이 황당한 듯한 표정을 나를 보며 짖고 있었다. 역시...날 노예라 생각한게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또하나 일행,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리아인은 아까 클라리에게 질문을 한 이후로는 늘 그랬던 것 처럼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아인은 말을 많이 하는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점은 스승님을 그다지 닮지 않은 것 같다.
번쩍 번쩍 잘 닦여져 빛나는 계단과 복도를 지나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하긴 각자 방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리아인 말고는 다 같은방이니, 신디를 혼자 재울 수도 없고 그래서 신디도 물론 같은 방이었다.
"그럼 전 이 도시 시장한테 다녀오겠습니다. 구경 잘하십시오. 특히 란트군은 처음이신 것 같으니."
리아인은 우리방 문을 조금 열고 돈주머니로 보이는 작은 주머니를 내려 놓으며 말을 하고는 곧 밑으로 내려갔다. 잠깐, 구경해라는 말은 또 클라리한테 끌려다녀야 한다는 말인데 고생길이 훤하군.
"주인님아~! 쇼핑가자!"
밝은 클라리의 목소리, 역시나.. 요즘에는 내 예상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불길한 걸로만..
"나 피곤한데..."
소용이 없으리라는 걸 알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버텨 보았다. 아...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클라리. 하...확실히 약점을 잡혀버린 것 같다. 정말 제 3자가 본다면 이 상황에서 누가 저 울음이 가짜라는 걸 알것인가?
"그..그래..할수 없지...소피는 신디하고 방에 있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위험하니까.."
소피는 뭔가 항변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소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눈빛을 무시하고 클라리에게 끌려 밖으로 나왔다.
클라리는 언제 눈에 눈물이 가득 찼었냐는 듯 여관 밖에 나오니 얼굴 가득 기쁜 표정이 되어있었다. 어휴..저 연기파. 클라리를 연극배우를 시켜도 아마 크게 성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묵는 여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클라리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하던 옷가게로 추정되는 가게의 모습이 보였다. 그 것도 한두체가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옷가게, 확실히 이 도시는 군사도시보다는 옷의 도시라던지...그런게 더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옷가게가 옷만 파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여자들 악세사리부터 대다수의 여자들이 보면 눈이 뒤집힐 정도의 상품들이 모여 있었다. 비싸보이는데... 저런 것들을 파는 가게가 이렇게 많이 모여 있어도 장사가 되는 걸까?
클라리는 한참동안이나 주위의 가게를 둘러보더니 그 중 한 곳에 있는 가게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쩝... 옷차림에서 전혀 안어울리는 우리 커플은 걸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 같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까지도도 종업원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게 영 거슬렸다. 내 옷차람이 그렇게 이상한가?
"주인님아~! 나 해보고 싶은거 있었는데. 들어줄꺼지?"
클라리가 저런 말투로 말할때는 뭔가 엄청난걸 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는데. 하지만 해주기 싫다고 하면, 또 울려고 할 것이다. 정말 내 신세야. 내게 이런 약점이 있는 줄은 나도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정말..또 클라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전에 곱게 들어준다고 해야할 것 같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클라리는 전에도 이런 곳에 몇번 와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멈칫거린다거나 어색해 하는 것 없이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면.
클라리는 나를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의자를 끌고와서 앉히고는 눈을 가렸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눈까지 가리다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클라리가 도대체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 것일까?
클라리는 너절 너절한 그래도 오랫동안 입고 있어서 정이든 겉옷을 벗긴 후, 뭔가 다른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무슨 옷을 입히는지는 눈을가려서 전혀 모르는게 답답할 뿐이다. 하긴 눈을 가릴정도면 어떤 옷일런지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설마 여자옷같은 것을 입히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옷 갈아 입는데 왜 머리카락을 빗는걸까? 모르겠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서 그런지 내 머리카락도 지금 생각해보니 남자치고는 생각외로 긴 편이었다. 쩝.. 머리카락 자를 정신이 있어야지... 매일 감는것도 부담스러운데. 그리고 머리를 빗기는 것이 끝난 후, 물수건 같은 것으로 내 얼굴을 닦더니, 뭔가 부슬부슬한 털같은 것이 얼굴을 스치는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정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불길해.
"주인님아 다 됬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를 벗기는 클라리. 난 갑작스럽게 밝아진 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앞을 보니 종업원들이 거울로 추정되는 큰 유리판을 들고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거울이라.. 예전에 엄마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어릴 땐 햇빛을 비치며 장난도 많이 치곤 했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치는 저 여자는 누구지? 난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거울에 비치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연갈빛 긴 생머리에 연분홍빛 원피스, 뽀얀 얼굴, 무척이나 약해보이는 몸매...잠깐...거울이 비치는 방향을보면?... 설마...아니겠지.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거울속의 여자. 아니 내 표정도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헉....저 거울에 비친 존재는 한치의 어김도 없이 나였다. 어쩐지...가이우스 녀석도 나보고 귀엽다고 하고,. 클라리도 처음에 한말이 그것이였는데. 하지만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내가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 수가! 여자가 아닌 남자들중에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의 외모가 여자같이 생긴 외모인데! 내 얼굴이 그렇다니....
날 쳐다보고 있던 종업원들도 내 변화에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체 쳐다보고 있었다. 하..내 기분을 알까? 황당함에...잠시 사고가 마비되었던 난 지금 이상황에서 취해야할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는 클라리를 향해 소리쳤다.
"클라리, 내 옷 돌려줘!"
"아 그 옷...종업원들이 너무낡았다고 찢어서 버리던데?"
우려했던데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니, 이 것역시 클라리의 농간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
"그럼 이 꼴로 거리를 다녀라는 거야?"
"뭐 어때서, 나도 생각만 해 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꾸며 놓고 보니까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 주인님 정말 예쁘고 귀여워~! 남자들이 혹 넘어가겠는데?"
.....잠시 이성이 사라지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며 침착하게 클라리를 말을 했다.
"남자 옷을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
"음..그게..종업원들이 그러는데 이 마을은 여자 옷만 만드는 전통이 있어서 남자 옷을 구하려면 다른 마을에 가거나 주말마다 오는 떠돌이 장사꾼들 한테 사야한데.."
이건.. 분명이 클라리의 치밀한 농간에 내가 넘어간 것이 틀림이 없다. 아....
"너...계획적이었지...?"
내 말을 듣자, 딴청을 피우는 클라리. 때리면 울테니,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언젠가는 이 빚은 갚아 줘야지. 그럴 수나 있으려나. 또 당하지만 않으면 나은편이지. 정말.이 비참함. 그나저나 여관으로 어떻게 간다. 이 모습으로.. 그렇다고 벗고 속옷만 입고 갈수도 없고. 아이고 모르겠다. 이 도시에 날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여관에나 가서 리아인보고 해결 좀 해달라고 해야 겠다.
클라리는 그 와중에서도 모자하고, 악세사리 같은 것을 몇개 고르더니. 종업원에게 계산을 하고는 나와 함께 밖으로 걸어나왔다. 난 밖에 나오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되도록 빠르게, 그런데 이놈의 클라리는 왜 그렇게 천천히 걷는거야. 이 것역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하는 클라리의 의도. 안그래도...부끄러워 죽겠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내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불길한 예감.
"어이~! 거기 가는 아가씨들..."
잠깐. 이 대사는 어릴 때 엄마가 사준 이야기책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동네 건달들의 대사인데...? 설마 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난 그 녀석들을 무시한체 클라리의 한쪽 팔을 잡고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걸어갔다.
하지만 건달 녀석들의 앞을 지나가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설마, 저 건달 녀석들이 날 부른 것이었나?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향해 안됬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못보던 얼굴인데. 어디서 왔어?"
날 잡은 놈 눈빛을 보니 죽일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그래도...둘째 왕자인가 하는녀석 눈빛은 살아있기라도 했지..저놈은.. 아마 조금만 힘만써도...오줌을 싸고 도망칠 부류의 인간이다. 지금 주제에 누구를 잡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스트레스 해소는 해야겠지? 클라리를 보니. 건달 패거리중 다른 한명이 나처럼 클라리 역시 잡고 있었다. 괜히 연약한 척, 두려움에 떠는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클라리..연기인줄은 난 뻔히 고 있다. 그 큰 키의 검술실력도 상당히 뛰어난 가이우스도 한 방에 날리면서. 아마, 여기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 정도는 클라리 혼자서 눈깜짝할 사이에 없앨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이 녀석들을 곱게 클라리가 해치우게 할 생각은 없다..
스트레스 해소는 확실하게! 해야지. 난 검집체로 등에 매고 있던 검. 여자 원피스는 도저히 허리에 검을 맬 수 없게 되었 있었다.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고 있던 녀석을 확실하게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일에 그 건달 일당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윽, 아가씨 검을 좀 쓰는 것 같은데. 하지만 아가씨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긴 힘들껄. 나중에 잘못했다고 빌어도 소용없어."
내 검집에 배를 맞아 저 쪽까지 튕겨간놈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최소한 실력차이를 알아볼 눈은 있어야지. 그래야 살아가기가 편할텐데...어쨌든 나로서는 그러면 그럴 수록 좋을 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때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놈의 치마가 검을 휘두르는데 끝까지 걸리적 거린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클라리를 뒤에 둔체 죽지 않을 정도로 검집으로 건달 녀석들을 두들겨 팼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서 죽이면 리아인이 뒷처리 하기가 곤란할테니. 죽이지는 말아야지. 아까 주위에 가만히 서서 나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의 변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내 예상이 맞았다. 녀석들은 몇놈은 벌써 도망 쳤고 도망치지 못한 녀석들은 오줌을 질질싸며 손이 닳아라 내 앞에서 빌고 있었다. 적당히 화도 풀렸고 이 정도로 참는게 좋을까? 피의 전사 정말 이번 여행을 통해 인내심의 엄청난 향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녀석들을 내버려 둔체, 아무말 없이 클라리 쪽으로 걸어갔다.
"주인님아 그렇게 난폭하게 움직이면 어떻게 해. 머리카락이 다 흐트러졌잖아.. 내가 빗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도 땀은 많이 안흘려서 화장은 안 지워졌네."
간신히 푼 스트레스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클라리가 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내 눈을 못본척 고개를 돌리는 클라리..
주위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뒤로 한체 난 여관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는 쪼르르 달려오더니 평소처럼 내 팔에 딱 붙었다.
"주인님아 미안해. 나도 남자 옷을 안파는줄은 몰랐었어. 화내지마."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다고, 이미 창피 당할건 다 당했는데. 그리고 아무래도 클라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옷가게하고 여관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여관에 들어가니 아까 카운터에 있던 녀석이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를 보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것이...왠지 불안해...클라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나를 쳐다보는 네개의 눈동자...
"클라리 언니? 저 옆에 언니는 누구야?"
"누군것 같아 신디?.."
클라리 이게 방에 까지 와서 장난이야. 신디는 고개를 갸웃하며 날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클라리..여관 안에 까지 와서 꼭 내가 화를 내가 만드냐?"
"란트오빠?"
내 목소리를 들은 신디의 표정,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안그래도 큰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는 소피. 난 피곤함에 창가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리티 양, 숙녀는 그렇게 앉으면 안되요."
클라리의 얄미운 목소리였다. 네 녀석 좋아한다는 말은 정말 취소다.
"리티는 또 뭐야!"
"주인님 여자 모습일때 이름, 그런데 주인님아, 주인님이 그렇게 노려보는 모습도 너무 귀엽고 예뻐."
"......."
도저히 할말이 없었다. 피의 마왕, 살인마. 날 그렇게 부르는 녀석들은 내가 이런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 뒤로는 날 어떻게 부를지 궁금했다. 신디는 충격이 가셨는지, 나를 향해 다가 왔다.
"오빠, 정말 오빠 맞아? 오빠가 이렇게 예뻤었어?"
"........."
신디의 말에 난 아무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와 나도 오빠 처럼 이렇게 예뻤으면 좋겠다. 클라리 언니는 예쁜데 너무 키가 커서 조금 그렇는데 오빠는 키도 적당하고..."
신디는 내 얼굴을 이곳저곳 유심히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하...신디 너 마저 그러기냐. 이 악몽에서 제발 벗어나길. 신디와 클라리에게 시달리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리아인 구세주가 들어왔다.
"레이디 프리안느 쇼핑은 잘 하셨습니까?"
클라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리아인을 향해 난 빠르게 달려갔다.
"리아인, 좀 도와주세요.."
리아인 쪽으로 걸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하며 매달렸다. 하지만 리아인은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처음 뵙는 분이신것 같은데..레이디는 누구시죠? 저를 아시는 분이십니까?"
헉...리아인 마져...엄청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 목소리 힘없이 말하면, 혹시 여자 목소리 처럼 들리는게 아닐까? 설마....
"접니다. 란트, 말입니다. 제발 옷 좀 구해주세요."
"란트군, 어떻게 이런 일이..?"
대충 상황을 이해한 듯한 리아인이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서 확연히 표시가 났다.
"상황설명은 나중에 할께요."
"알겠습니다. 란트군..제 옷을 몇가지 들고 오죠."
휴..역시 구세주는 구세주였다. 자기방 쪽으로 옷을 가지러 가는 리아인. 난 클라리를 다시한번 노려본 뒤 나도 화장을 지우러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당한 도시에서의 첫날, 나의 첫여행의 셋째날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번여행이 편하기는 틀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