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외전 첫번째이야기 -만남-
푸른바람·2002. 2. 24. PM 9:58:51·조회 3612·추천 68
제국의보석 외전 첫번째 만남
"여보! 도시락 싸왔어요. 식기전에 어서드세요."
연갈색 긴 생머리에 무척이나 흰 피부와 큰 키...한적한 작은 시골 마을의 분위기와는 안어울리는 여자가 두손으로 바구늬를 잡은체 베여진 나무들 사이에 조그맣게 있는 밭쪽으로 걸어왔다. 옷차림은 평범했지만 아름다운 외모에 고결하며 몸에 배여있는 예절과 기품 역시 평범한 시골 여자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카, 항상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오,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인 당신을...."
밭쪽에서는 역시...농부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여자가 서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당당한 체격과 밖으로 들어난 팔부분의 상처들...그리고 무언가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기품...예사 농부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런 것을 그 남자는 가지고 있었다.
"아니요. 전 예전의 그 생활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좋아요. 아니, 당신이 제 곁에 있다면 그 곳이 지옥이라도 전 행복할꺼에요."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 앞으로 흘러내린 연갈빛 앞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며 여자는 세사람이 앉아도 넉넉할 정도로 큰 그루터기에 앉으며 바구늬를 내려놓았다. 남자도 들고있던 낫을 한쪽에 내려 놓은체 여자의 앞으로 걸어와 앉았다.
"언제나 고맙소,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그런 내 곁에 있어줘서..."
남자는 고마움과 조금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미카라 불린 여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미카란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체 웃으며 남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 남자..아티에넬 크리센, 리투안이 아직 왕국이었을 무렵의 제 2 성기사단의 기사였으며 대부분 죽거나 데스나이트로 변해버린 제 2군단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소대를 지휘한 소대장이었었다. 그리고..연갈색 긴 머리의 여자...미카 크리센, 원래 이름은 미카 피투안 베르크, 피투안 국왕 하레스의 외동딸이며 피투안 왕국 제 1 왕위 계승권자였던 여자..그 두사람이 모든 것을 버린체 피투안의 작은 마을에서 정체를 숨기며 화전밭을 일구고 있었다.
"저..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기사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사들로 보이는 무장을 한 대여섯명의 사람과 그 가운에 있는 연갈빛 머리의 소녀의 주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언데드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흐릿한 날씨와 왠지 불길한 기운의 안개 때문인지 시간상으로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언데드들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원래는 상당히 멋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기사들의 풀플레이트 갑옷은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제대로 붙어있는 곳도 수를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상처가 나 있었다.
"공주님,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공주님은 어서 피하십시오. 마리, 피트 두사람은 공주님을 모시고 어서 남쪽으로 가게, 나머지는 여기서 저 망령들을 막는다."
수많은 전투의 흔적이랄까...원래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헝클어진 백발의 머리에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난 노기사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비장한 표정을 한 체 말을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체력이 떨어져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오로지 정신력을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프란츠경 그럴 수는 없어요. 모두들...저 하나 때문에...저도 도울께요. 약하지만 마법정도는 저도 쓸 수 있어요."
기사들의 가운데에 있던 연갈색 머리의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노기사를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 부터 자신을 돌봐줬고 지켜줬던 기사, 프란츠. 자신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피투안의 국왕이었던 아버지 대신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줬던...그런 그가 공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 흔한...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기사의 숭고한 결정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주의 말을 들은 노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주님, 그동안 죽어간 기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궁주님께서 무사히 피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기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실 겁니까? 공주님. 마리, 피트 어서 공주님을 모셔가게."
노기사는 처음으로 공주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공주가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말들보다 더 공주의 가슴에 더 안타갑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노기사의 말을 들은 마리란 여기사와 피트란 아직 어린 소년의 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청년기사는 눈에 약간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는 공주와 함께 남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공주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본 뒤 노기사는 다른 세명의 기사들과 함께 검을들어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노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지...얼마나 지났을까...세명은 정신없이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두명의 기사들에게는 짧은 순간에 낡아버린 자신의 갑옷이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을 것이다.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조차 그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탁!"
어디서 날라왔는지도 모를 낡은 화살하나가 세명이 달리고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다행히도...하지만...그 화살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그 빗나간 화살을 시작으로 수십개의 화살이 주위에서 그들을 향해 날라왔다. 기사들은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리작지만은 않는 공주 옆에서서 화살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정상적인 갑옷상태였으면 튕겨 버렸을 화살들이지만 이미 수많은 공격의 흔적 때문에 낡을 때로 낡아버린 갑옷을 뚫고 몇개의 화살이 기사들의 몸에 꽂혔다. 하지만 기사들은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이미 고통을 느낄 체력적 여유조차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공주역시 많이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사들의 걸음에 맞춰 뛰고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나약한 정신의 공주였다면 이미 포기하고 쓰러져서 언데드의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사악한 마녀에게 이미 정신을 빼앗겨버린 자신의 아버지...그런 지옥같은 왕궁에서 도망쳐 나온 공주에게 닥친 시련은 그녀가 각오했던 것 보다 가혹했다. 그녀들 따라 왔던 피투안 왕국의 기사라 불릴 자격을 가진 마지막 기사 50명중 남은 것은 이제 두사람, 그들 역시 먼저 죽은 동료들을 만나게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공주도...
반나절만...반나절의 여유만 더 있었더라면...하는 탄식이 공주의 마음속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 군대와 싸우고 있는 리투안과 엘프 연합군의 숙영지가...공주 일행에게서 반나절의 거리 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않았을 것이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그녀가 들은 정보와 지도가 정확하다면...
"으악!"
엄청난 크기의 창이 날라와 젊은 청년기사의 왼쪽 팔을 갑옷과 함께 꽤뚫었다. 피트라 불렸던 기사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몸전체의 고통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그는 더이상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피트경!"
공주의 안타까운 외침...잠시 멈칫하는 공주의 손을 끌고 마리란 여기사는 계속 남쪽이라 생각 되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저 앉았던 피트란 기사는 공주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체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무에 의지해서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칼을 다시 들었다. 기사대장이 되겠다던 자신의 어린 시절 꿈...누가 일으켰는지 모를 전쟁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헛된 소망이 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는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녹쓴 칼을 든 망령들을 보며 냉소를 띌 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여자...목숨을 걸었던 기사들의 저항도 무의미 했는지 언데드 군단의 뼛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수많은 오크들...그리고 오우거, 트롤...마지막엔 언데드의 해골들...단 40명의 기사가 막아내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았다. 공주는 궁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궁에서 떠나온 뒤에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공주는 만약이란 헛된 상상의 무의미함을 되쓉으며 마지막 남은 기사와 함께 끝없이 달렸다. 자신을 믿어줬던 기사들의 목숨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란 너무나 전형적인...소망 때문에...
하지만 그녀들은 달리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들의 주위를 몬스터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도 방향은 없었다. 하늘로 날아갈 수 없는한.... 마리란 여기사는 칼을 들어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자기가 조금이라더 버틴만큼 공주님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때문이라는...하지만 그 가능성 조차 지금 상황에서는 없어 보였다.
언데드들의 돌격....공주역시 지친몸에 익숙치 않은 레이피어를 들고 언데드들을 쳐다보았다. 캐스팅할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마법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4서클 마스터, 약하지만 검을 들고 싸우는 것 보다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나절은 커녕, 주문을 외울 약간의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자리에는 빈 암흑뿐인 언데드 군사들...그들의 눈이 반짝인 것 같이 느꼈다는 것은 착각일까...그 순간 그녀들 주위를 빙둘러싸있던 언데드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마리란 여기사는 한번 칼을 휘두를때마다 세,넷의 언데드들을 베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남쪽으로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공주역시...교양으로 조금 베운 검술실력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몫 이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공주를 향해 뒤쪽에서 화살하나가 빠르게 날라왔다. 피하지도 못한체 화살소리를 들으며 공주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리란 여기사도 화살소리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위를 흐트리는 순간 자신을 겨누고 있는 언데드 들의 검이 그녀와 공주를 꽤뚫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쿵'
공주를 향해 날라오는 화살을 쳐내며 나무위에서 누군가가 뛰어 내렸다. 짙은 안개때문에 어둠밖에 없는 이 곳에서도 빛나는 갑옷을 입은...무척이나 맑은 빛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빛이었다.
"인첸티브 소드 오브 홀리!"
"홀리 쉴드!"
연속적으로 신성마법을 캐스팅하며 언데드들을 공격하는 기사...빛에 둘러싸인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언데드들을 누비는 그 기사는...어느 순간엔가 마리와 공주를 포위하고 있던 언데드들은 뼛가루가 되어버리고 없었다.
"고마워요. 그런데...누구신지..."
지치고...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공주는 쓰러질듯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그 기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순간 부터는...전형적인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영웅들과는 달랐다. 그 기사는 슬픈 듯한...그리고 외로움이 가득한 눈길로 공주를 쳐다보았다.
"디스파이어러(despairer) 아티에넬 크리센 입니다."
절망하는자라....별 감정 없는 지나가는 여자에게 말하듯 무뚝뚝한 말투로 공주에게 말을 했다. 공주의 앞에 나타난 영웅치고는...너무나도 멋없이...
"여보! 도시락 싸왔어요. 식기전에 어서드세요."
연갈색 긴 생머리에 무척이나 흰 피부와 큰 키...한적한 작은 시골 마을의 분위기와는 안어울리는 여자가 두손으로 바구늬를 잡은체 베여진 나무들 사이에 조그맣게 있는 밭쪽으로 걸어왔다. 옷차림은 평범했지만 아름다운 외모에 고결하며 몸에 배여있는 예절과 기품 역시 평범한 시골 여자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카, 항상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오,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인 당신을...."
밭쪽에서는 역시...농부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여자가 서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당당한 체격과 밖으로 들어난 팔부분의 상처들...그리고 무언가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기품...예사 농부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런 것을 그 남자는 가지고 있었다.
"아니요. 전 예전의 그 생활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좋아요. 아니, 당신이 제 곁에 있다면 그 곳이 지옥이라도 전 행복할꺼에요."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 앞으로 흘러내린 연갈빛 앞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며 여자는 세사람이 앉아도 넉넉할 정도로 큰 그루터기에 앉으며 바구늬를 내려놓았다. 남자도 들고있던 낫을 한쪽에 내려 놓은체 여자의 앞으로 걸어와 앉았다.
"언제나 고맙소,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그런 내 곁에 있어줘서..."
남자는 고마움과 조금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미카라 불린 여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미카란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체 웃으며 남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 남자..아티에넬 크리센, 리투안이 아직 왕국이었을 무렵의 제 2 성기사단의 기사였으며 대부분 죽거나 데스나이트로 변해버린 제 2군단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소대를 지휘한 소대장이었었다. 그리고..연갈색 긴 머리의 여자...미카 크리센, 원래 이름은 미카 피투안 베르크, 피투안 국왕 하레스의 외동딸이며 피투안 왕국 제 1 왕위 계승권자였던 여자..그 두사람이 모든 것을 버린체 피투안의 작은 마을에서 정체를 숨기며 화전밭을 일구고 있었다.
"저..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기사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사들로 보이는 무장을 한 대여섯명의 사람과 그 가운에 있는 연갈빛 머리의 소녀의 주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언데드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흐릿한 날씨와 왠지 불길한 기운의 안개 때문인지 시간상으로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언데드들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원래는 상당히 멋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기사들의 풀플레이트 갑옷은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제대로 붙어있는 곳도 수를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상처가 나 있었다.
"공주님,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공주님은 어서 피하십시오. 마리, 피트 두사람은 공주님을 모시고 어서 남쪽으로 가게, 나머지는 여기서 저 망령들을 막는다."
수많은 전투의 흔적이랄까...원래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헝클어진 백발의 머리에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난 노기사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비장한 표정을 한 체 말을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체력이 떨어져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오로지 정신력을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프란츠경 그럴 수는 없어요. 모두들...저 하나 때문에...저도 도울께요. 약하지만 마법정도는 저도 쓸 수 있어요."
기사들의 가운데에 있던 연갈색 머리의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노기사를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 부터 자신을 돌봐줬고 지켜줬던 기사, 프란츠. 자신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피투안의 국왕이었던 아버지 대신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줬던...그런 그가 공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 흔한...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기사의 숭고한 결정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주의 말을 들은 노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주님, 그동안 죽어간 기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궁주님께서 무사히 피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기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실 겁니까? 공주님. 마리, 피트 어서 공주님을 모셔가게."
노기사는 처음으로 공주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공주가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말들보다 더 공주의 가슴에 더 안타갑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노기사의 말을 들은 마리란 여기사와 피트란 아직 어린 소년의 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청년기사는 눈에 약간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는 공주와 함께 남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공주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본 뒤 노기사는 다른 세명의 기사들과 함께 검을들어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노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지...얼마나 지났을까...세명은 정신없이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두명의 기사들에게는 짧은 순간에 낡아버린 자신의 갑옷이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을 것이다.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조차 그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탁!"
어디서 날라왔는지도 모를 낡은 화살하나가 세명이 달리고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다행히도...하지만...그 화살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그 빗나간 화살을 시작으로 수십개의 화살이 주위에서 그들을 향해 날라왔다. 기사들은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리작지만은 않는 공주 옆에서서 화살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정상적인 갑옷상태였으면 튕겨 버렸을 화살들이지만 이미 수많은 공격의 흔적 때문에 낡을 때로 낡아버린 갑옷을 뚫고 몇개의 화살이 기사들의 몸에 꽂혔다. 하지만 기사들은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이미 고통을 느낄 체력적 여유조차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공주역시 많이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사들의 걸음에 맞춰 뛰고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나약한 정신의 공주였다면 이미 포기하고 쓰러져서 언데드의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사악한 마녀에게 이미 정신을 빼앗겨버린 자신의 아버지...그런 지옥같은 왕궁에서 도망쳐 나온 공주에게 닥친 시련은 그녀가 각오했던 것 보다 가혹했다. 그녀들 따라 왔던 피투안 왕국의 기사라 불릴 자격을 가진 마지막 기사 50명중 남은 것은 이제 두사람, 그들 역시 먼저 죽은 동료들을 만나게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공주도...
반나절만...반나절의 여유만 더 있었더라면...하는 탄식이 공주의 마음속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 군대와 싸우고 있는 리투안과 엘프 연합군의 숙영지가...공주 일행에게서 반나절의 거리 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않았을 것이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그녀가 들은 정보와 지도가 정확하다면...
"으악!"
엄청난 크기의 창이 날라와 젊은 청년기사의 왼쪽 팔을 갑옷과 함께 꽤뚫었다. 피트라 불렸던 기사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몸전체의 고통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그는 더이상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피트경!"
공주의 안타까운 외침...잠시 멈칫하는 공주의 손을 끌고 마리란 여기사는 계속 남쪽이라 생각 되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저 앉았던 피트란 기사는 공주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체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무에 의지해서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칼을 다시 들었다. 기사대장이 되겠다던 자신의 어린 시절 꿈...누가 일으켰는지 모를 전쟁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헛된 소망이 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는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녹쓴 칼을 든 망령들을 보며 냉소를 띌 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여자...목숨을 걸었던 기사들의 저항도 무의미 했는지 언데드 군단의 뼛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수많은 오크들...그리고 오우거, 트롤...마지막엔 언데드의 해골들...단 40명의 기사가 막아내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았다. 공주는 궁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궁에서 떠나온 뒤에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공주는 만약이란 헛된 상상의 무의미함을 되쓉으며 마지막 남은 기사와 함께 끝없이 달렸다. 자신을 믿어줬던 기사들의 목숨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란 너무나 전형적인...소망 때문에...
하지만 그녀들은 달리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들의 주위를 몬스터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도 방향은 없었다. 하늘로 날아갈 수 없는한.... 마리란 여기사는 칼을 들어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자기가 조금이라더 버틴만큼 공주님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때문이라는...하지만 그 가능성 조차 지금 상황에서는 없어 보였다.
언데드들의 돌격....공주역시 지친몸에 익숙치 않은 레이피어를 들고 언데드들을 쳐다보았다. 캐스팅할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마법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4서클 마스터, 약하지만 검을 들고 싸우는 것 보다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나절은 커녕, 주문을 외울 약간의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자리에는 빈 암흑뿐인 언데드 군사들...그들의 눈이 반짝인 것 같이 느꼈다는 것은 착각일까...그 순간 그녀들 주위를 빙둘러싸있던 언데드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마리란 여기사는 한번 칼을 휘두를때마다 세,넷의 언데드들을 베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남쪽으로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공주역시...교양으로 조금 베운 검술실력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몫 이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공주를 향해 뒤쪽에서 화살하나가 빠르게 날라왔다. 피하지도 못한체 화살소리를 들으며 공주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리란 여기사도 화살소리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위를 흐트리는 순간 자신을 겨누고 있는 언데드 들의 검이 그녀와 공주를 꽤뚫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쿵'
공주를 향해 날라오는 화살을 쳐내며 나무위에서 누군가가 뛰어 내렸다. 짙은 안개때문에 어둠밖에 없는 이 곳에서도 빛나는 갑옷을 입은...무척이나 맑은 빛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빛이었다.
"인첸티브 소드 오브 홀리!"
"홀리 쉴드!"
연속적으로 신성마법을 캐스팅하며 언데드들을 공격하는 기사...빛에 둘러싸인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언데드들을 누비는 그 기사는...어느 순간엔가 마리와 공주를 포위하고 있던 언데드들은 뼛가루가 되어버리고 없었다.
"고마워요. 그런데...누구신지..."
지치고...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공주는 쓰러질듯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그 기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순간 부터는...전형적인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영웅들과는 달랐다. 그 기사는 슬픈 듯한...그리고 외로움이 가득한 눈길로 공주를 쳐다보았다.
"디스파이어러(despairer) 아티에넬 크리센 입니다."
절망하는자라....별 감정 없는 지나가는 여자에게 말하듯 무뚝뚝한 말투로 공주에게 말을 했다. 공주의 앞에 나타난 영웅치고는...너무나도 멋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