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외전 두번째 이야기 -세인트 황태자-

푸른바람·2002. 2. 28. PM 8:01:04·조회 3703·추천 86
제국의 보석 외전(2) 황태자 세인트


제국의 황궁 도서관, 전세계에서 최고의 규모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 전쟁의 기간 중에 황궁내에서 유일하게 손상을 입지 않은체 탈환을 했던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지 몇년 지나지 않은 시기라서 그런지 그 큰 규모에 비해 도서관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정도로 이용하는 사람은 작았다. 하지만 도서관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 한번 쯤 눈길을 주는 곳이 있었는데...거의 매일같이 찾아와 창가쪽에 앉아 있는 한 어린 소년...소년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어려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아이는 무척이나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검은 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옷은 그렇게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맘 때 아이들이 쉽게 옷이 구겨지는 것에 비해 소년의 옷차림은 어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단정했다.

오늘도 그 아이는 언제나 처럼 두꺼운 책을 펼쳐놓은체 책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향해  소년과 같은  검은빛 머리색을 가진 이제 막 말을 배운 것 처럼 보이는 작은 꼬마 한명이 뛰어왔다. 책장넘기는 소리도 들려오지않던 도서관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지만 이상하게도 도서관안의 사람 누구도 눈길을 주거나 화난 표정을 하지는 않았다.

"형, 같이 놀자. 매일 재미없는 책만 보지 말구."

소년이 자신의 키보다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기에 작은 꼬마의 손은 소년의 다리에 밖에 닫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에 잡히는 소년의 바지를 조금씩 당기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시끄러워, 리아인. 지금 여기가 도서관이란 것을 모르니? 지금 책읽고 있는 중이니까 방해하지마."

하지만 리아인이라 불렸던 꼬마는 쉽게 포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형의 바지를 계속 잡아당겼다. 하지만 소년은 더 이상 자신의 동생에게 신경을 쓰지 않은체 다시 책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계속 투정을 부리던 꼬마는 지쳤는지 곧 투정을 부리는 것을 멈추고 도서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정도 상황이면 보통 그 나이또래의 아이라면 우는게 정상이었겠지만 리아인이란 꼬마는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생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소년의 책읽기는 얼마 후 멈춰질 수 밖에 없었다. 도서관의 문이 다시 열리며 한손에는 진갈색 머리의 바닷색눈을 가진 책을 읽고 있는 소년과 비슷한 키의 아이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손에는 리아인이란 꼬마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무척이나 빛나는 금발의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백금발 머리에 흰원피스를 입은 열 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도서관안을 향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도서관에 처음 와보는지 한참이나 두리번 거리던 소녀는 책을 읽고 있는 소년과 리아인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소년쪽을 향해 두 아이를 대리고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주저 앉아 있던 리아인은 그 백금발 머리의 소녀의 모습을 보자 역시 반가운 표정을 하며 소녀와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클라리 누나!, 클라우 형!, 아렐리아!"

리아인은 세명의 이름을 도서관이란 사실을 또 잊었는지 아주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책을 읽고 있던 소년도 리아인의 소리 때문에 다시 책에서 빠져나와 리아인이 달려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아인이 달려가자 아렐리아라 불린 여자아이는 부끄러운듯 클라리라 불린 백금발 머리의 소녀 뒤쪽으로가서 숨어버렸다.

"리아인, 못본 사이에 많이 컸네?"

자신의 뒤쪽으로 숨어버린 여자아이를 다시 앞쪽으로 끌어내며 클라리는 리아인에게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리아인은 아렐리아의 남아있는 손을 잡으며 클라리에게는 방긋 웃는 것으로 답을 했다. 리아인이 추가되어 손을 잡고 있는 이제 네 사람은 책을 읽고 있는 소년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 누나, 형이 책읽어야 한다고 나하고 안놀아줘."

리아인은 클라리를 보며 아까 못다한 투정을 하듯 말을 했지만 뭐, 때렸다거나..동생의 과자를 뺏어 먹었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클라리가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리아인, 세인트 형이 공부하는데 방해하면 안되는 거에요. 이번에는 리아인이 잘못한 것 같네."

클라리는 리아인을 보며 달래듯 말을 했다. 그러자 리아인도 더 이상 투정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냥 아직도 부끄러워 하고 있는 아렐리아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렐리아는 여전히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 리아인의 말에도 아무말 없이 있었다.

"세인트, 책을 보고 있었네? 무슨 책을 읽고 있었니?"

클라리는 밝은 목소리로...역시 도서관안에서는 상당히 큰 소리...하지만 도서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일행을 향해 여전히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있던 세인트라 불린 소년은 책을 덮으며 클라리를 보고는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아이의 말투라고는 별로 생각이 되지 않는...

"안녕하세요. 레이디 클라리, 리투안 병법 교육서 전문가편을 읽고 있었어요."

클라리는 세인트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조금 놀랬다. 이 소년이 천재라는 것은 이미 듣고 있었지만...이 정도 였을 줄은...몰랐었다. 리투안 병법 교육서 전문가편...장교가 되기 위해 사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수업용 교재로써 쓰는 책이었다. 하지만 워낙 책내용이 이해하기가 어려워 병법과목을 수료하지 못해 장교로 임명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책을 여섯살 밖에 안된 아이가 읽고 있었으니...뭐 그냥 무슨 소리도 모른체 읽고 있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소년은 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소년은 한달전에 하급 관리 모집 시험에 참가를 해서 합격을 해 온 나라에 한동안 화제거리를 남겼다. 어린 천재...후에 황제위에 오르는 황태자 세인트 였다.

"세인트, 황제 폐하가  중요한 손님이 오셨으니 인사하기 위해 폐하의 방으로 오라고 하셨단다."

클라리는 여전히 웃는 모습 그대로 세인트를 향해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세인트는 책을 덮은채로 책상 위에 둔체 상당히 높은 의자에서 바닥을 향해 뛰어 내렸다. 하지만 리아인처럼 시끄럽게 소리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 가죠, 레이디 프리안느."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로 세인트는 클라리를 향해 말하고는 혼자 횡하니 도서관 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세인트의 행동을 보던 클라리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세인트 뒤를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갔다.



황제의 방문...문의 광택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문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부셔진 문을 복구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런 황제의 방문을 황제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녀들이 열어주자 세인트는 방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노란색 계통의 장미문양 장식들...옐로우 로즈는 제국을 구한 마법사 핀 프리안느의 별명이었다. 하지만 핀 프리안느가 결혼한 힐튼 가문은 고유의 가문의 문장이 있었던 까닭에 황제가 핀 프리안느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서 황실의 상징을 노란색과 장미로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어머님, 부르셨습니까?"

어마마마란 동양식 호칭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만한 또래의 어린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말투를 세인트는 사용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클라리와 아이들이 들어왔다.

"세인트, 도서관에 있다 오는거니?"

평상복 차림의 황제는 쇼파에서 일어서서 여느 어머니처럼 다정한 말투로 세인트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세인트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특별히 황제에게 달려가서 안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인트, 손님이 오셨단다. 피투안국의 공주님이야."

황제는 쇼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를 가르키며 말을 했다. 연갈색 긴머리에 이직 어린 소녀의 티가 가시지 않은 녹색눈을 가진 여자 였다. 여자는 눈색깔과 똑같은 녹색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언니도 참, 공주님은 무슨 공주님이야. 공주같은 쓸데없는 칭호 버린지가 언젠데..."

피투안국의 공주라 불렸던 여자는 황제에게 꼭 친언니에게 말하는 듯 편안한 말투로 말을 했다. 황제역시 그런 여자를 향해 빙긋 웃을 뿐이었다. 공주 역시 쇼파에서 일어서서 세인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나서 무릎을 굽혀 세인트와 비슷한 눈높이를 맞춘뒤에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황태자 전하. 전 폐하의 친구 미카에요."

세인트는 미카를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인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니, 평생에 걸쳐 아마 유일하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리고 죽을 때까지 세인트가 잊지 못했던 추억....



세인트는 얼마전에 찾은 자신의 비밀 은신처...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사춘기 소년의 유일한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미우나 고우나...정령들의 도움으로 세인트는 투명한 벽 뒤에 숨겨진 정원을 찾을 수 있었다. 세인트는 기분이 좋을 때만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며 이것 저것 수다를 늘어 놓는 하급 바람의 정령들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극히 이성적이이라고 생각한 자신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하지만 정령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정령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뿐이지 정령술사들처럼 정령을 소환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세인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황궁 정원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든 외모에서 사춘기의...특히 미소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외모를 가졌지만 세인트의 딱딱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은 어릴 때 그대로였다. 그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않아 언제나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그나마 자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그의 동생 리아인만이 그에게 진심으로 대해줄 뿐, 그 밖에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욕심 때문에 그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아는 세인트 였기에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가끔씩 냉소만 떠오를 뿐이었다.

마법으로 가려진 문은 사람들이 잘 사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표시를 했다. 세인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는 안쪽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황궁의 동쪽과 서쪽은 부분은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방어하기에도 용이했지만 평상시에는 도시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 세인트가 들어간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인 곳도 역시 아마 도시에서 몇손가락안에 들정도로 멋진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인트는 봄철이라 연두빛으로 가득한 비밀 정원의 한쪽 돌위에 앉아 부두가 보이는 바닷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냉철한 그에게도 말못할 고민거리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어지지 않는 한 여인에 대한 기억...지금 그는 그것이 기억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그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연갈빛 머리에 녹색눈을 가진... 그 여자에 대해 생각을 할 때마다 세인트는 그 또래의 사춘기 소년들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울지도...그렇다고 웃지도 않던...감정이란 것을 모르는 것 같은 세인트의 가슴이....

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비밀 정원에서 앉아 있던 세인트는 회의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돌에서 일어섰다. 6살의 나이에 하급 관리 시험을 통과했던 세인트는 9살에 중급 관리 시험을 통과하고 13살의 나이에 고급 관리, 그리고 14살이 되던 해에 최고급 관리 시험과 중급 무관 시험, 외무부 관리 시험을 통과하고 16살인 지금 제국 서열 9위의 외무대신에 임명을 받았던 것이다. 실력을 중시하는 제국에서 세인트는 황태자란 직위는 사용하지 않은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내었다. 그 무렵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길만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성취해 낸 것이었다.



"피투안국 사신 파견 건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주십시오."

제국이 건국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총리대신 직을 맏고 있는 노대신, 혜르네티스 비아니스공은 최근들어 많이 쇠약해진 건강 때문인지 예전의 당당하던 모습을 많이 잃고 힘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회의를 진행했다. 기사 출신 그는 건강한 체질이었기 때문에 큰 병한번 앓지 않던 그도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황제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별말없이 신하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로 지켜보는 입장의 황제였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반발을 거의 무시한체 독단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었고 대부분 지켜보는 것으로 회의가 끝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황제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이 회의장 안에서는 없었다. 건국초기 엄청난 피바람을 그들의 머릿속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대 전쟁때 적의 편에 붙었던 귀족들, 그리고 황제가 아직 공주였던 시절에 그녀를 암살하려 시도 했던 수많은 왕족과 귀족들을 황제는 한치의 꺼리낌도 없이 가족까지 몰살을 시켰던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을 후 십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황제가 또다시 그런 피바람을 몰고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기에...

"저가 직접 피투안국에 다녀왔으면 합니다. 제국의 상관문제를 비롯, 한참 소란스러운 피투안 왕실의 상황도 분석해보기 위해서는 정보를 듣기만 하는 것 보다는 저가 직접 가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인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황제쪽을 보며 말을 했다. 세인트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그 기억속 여인은 피투안국 공주였었다. 그녀가 공주라면 피투안국에가서 한번쯤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에...그는 자청을 하였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하던 세인트...그는 이 일이 아마 처음으로 공식적인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한 것이리라...그만큼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세인트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특별히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신동...이라 불렸고 이제 외무대신이란 막강한 직책까지 가진 그의 의견에 이의를 달 사람은 가이우스 폰 힐튼이 5년 후 정계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은 의견이에요. 외무대신. 그 안건은 외무대신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지요."

더이상 말하는 사람이 없자. 황제가 직접 안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회의가 시작한 뒤에 말을 하지 않고 있던 황제는 세인트가 직접나서자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세인트를 쳐다보며 직접 말을 하는 것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솔직히 황제는 세인트에게 섭섭한 점이 많았다. 그만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멀리했으니까...그렇다고 그녀가 생각하기에는...아니 다른 정상적인 모든사람이 보기에도 황제가 엄마로써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인 파트레아 아인트 슈타이튼 공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에 외로웠던 황제는 그만큼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었고, 다른 아이들, 리아인과 아리 남매 같은 경우에는 황제의 사랑에 맞게 밝게 자랐다. 하지만 자신과 외형적으로나 아니 어쩌면 내부적인 면까지 자신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은 세인트의 행동은 한 엄마로써 황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업무에서는 자신의 일을 거의 완벽하게 처리를 하고 있었기에 황제는 세인트를 향해 특별히 화를 내거나 섭섭하다는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폐하."

세인트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감사합니다란 표현까지 사용을 했다. 세인트가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의 감정을 표현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넘어갔지만 자신의 자식이이기에 세인트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보다도 세인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황제는 아까 품었던 호기심을 더 크게 느꼈다. 하지만 황제는 이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외모는 아직 어린소년이었지만 세인트는 사생활을 존중해 줄 정도로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황제가 유일하게 자기 아들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이었다.

  

"황태자전하, 어디 편찮으신대라도 있으십니까?"

제국의 사신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가에 모인 피투안국의 한 작은 마을의 주민들을 사이로 세인트는 별로 편치 우울한 표정으로 말위에 앉아 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던 피투안국 대사 그라쿠스 폰 힐튼은 조금 걱정이 담긴 말투로 말을 했다. 건 십년동안 피투안국에 있었던 그라쿠스는 세인트에대해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는 그 비슷한 심정으로 정상적인 소년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아니..아닙니다. 대사. 오늘 따라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아서..."

세인트 그 역시 자신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는 피투안 대사에게 평소처럼 차가운 말투를 사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인트는 결국 황궁에서 자신이 찾던 존재를 보지 못했다. 피투안 왕실의 인간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 여인의 백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는 겉 외모나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 투성이였다. 국가가 그나마 유지라도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정통계승권자가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왕실 내의 권력다툼은 정말 눈뜨고는 못봐줄 정도였으니까...이러한 각 영지들이 이러한 왕실에 반감을 품고 독립을 하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토록 찾던...딱 한번만 더 볼 수 있었으면하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세인트의 심정은 실연을 당한 사춘기 소년의 그 것과 비슷했다. 제국의 황태자를 향한 피투안 국민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 속에서...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세인트는 언제나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의지할 사람 조차 없는...꿈 속의 인물에 매달려서 세인트는 외로움을 버티고 있었다.

"저 분이 황태자님이란다."

"와! 그렇구나. 정말 멋져."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틈 사이에서 순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는.. 익숙한 목소리와 그 비슷한 어린 목소리가 세인트에게 들려왔다. 힘없이 말을 몰던 세인트는 순간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은 점점 앞으로 가고 세인트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자신이 그리던 그 얼굴을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연갈색 머리...녹색눈을 가진 미카란 여인을...그리고 그녀가 그녀와 꼭 닮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세인트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세인트를 향해 기억속의 미소와 전혀 다르지 않는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미카...힘없이 말을 몰던 세인트는 멈추고 그녀에게 달려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마음에 위안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이 생각하던 여인이...자신의 거짓된 환상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기에...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세인트는 조금 씁슬한 마음도 풀겸 유일한 자신만의 공간,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비밀정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피투안국을 다녀온지 십년, 그는 그 이후로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의 권력과 외모를 보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수많은 여자들을 보았지만 그 여자들을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가진 여자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세인트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외모적인 면에서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인트는 느낄 수 없었다. 그 녹색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다른 여자들에게서...그랬기에...결혼할 나이가 다 된 지금에도...그는 제대로된 애인한명 만들지 않았으니까...

마법으로 밝혀진 복도 그 마법의 불빛 근처에서 빛의 정령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정말 자신에게는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령술...마음이 맑은 사람에게만 정령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었는데...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인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항상 정령들을 볼 때마다 뭔가 허탈한 심정이 될 뿐이었다.

세인트...그는 어제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소년을 보았다. 하지만 적으로써...그 것도 너무 강력한...란트 크리센...그는 세인트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자신에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아마...자신의 검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하지만 세인트는 그 검보다는...그녀와 닮은 존재가 더 소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품고 있는...어떻게 보면 자신과 닮은 외로운 소년에게 그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감정적으로...유치하게 소년의 아픈 곳을 노리고 세인트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궁극의 8서클 운석소환 마법..세인트는 태어나서 몇번 느껴보지 못한 안타까운 느낌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열려있었다. 이문은 세인트, 그가 아니면 잘 쓰지 않았기에 세인트는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궁에서 정원쪽을 향해 나아갔다. 마법이 걸려서 언제나 푸르른 정원 하지만 계절에 따라 조금씩 정원의 모습도 변했다. 옐로우 로즈 핀 프리안느가 걸어놓은 마법, 세인트는 마법을 배워보는 것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정원을 볼 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정원으로 나온 세인트, 그의 앞에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한 소녀가 서있었다. 이 소녀가 문을 열고나간 존재였군. 고개를 숙인체 걸어가고 있어서 긴 앞머리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친근함이 소녀에게서 느껴졌다.  순간 비틀거리던 소녀가 넘어져 버렸다. 세인트는 무의식적으로 소녀에게 뛰어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세인트 그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고마워...."

이 목소리...세인트 그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가냘픈....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드는...그리고 자신이 손을 잡아준 소녀가 세인트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세인트는...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감정에 어쩔 수가 없었다. 연갈색 머리에 녹색눈...자신의 기억속의 그녀보다는 아직 조금 어려보였지만...너무나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세인트는 다짐했다. 이번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또 기억 속에 묻어두지 않겠다고...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