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2장 제국의 수도를 향해(3) 옛그림(수정)
푸른바람·2002. 3. 1. PM 2:04:09·조회 3570·추천 64
에피소드 8 -옛 그림-
"클라리, 너도 잠이 안오니?"
"응, 낮에 너무 많이 울었나봐. 주인님아."
클라리도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잠을 잘 못들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들더니. 그리고 나역시 여행을 온 뒤부터는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의 익숙한 침대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며,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할일이 있었는데... 아 맞다! 밑에 걸려있던 그림을 보려고 했었지. 흠... 잊어먹고 있었다. 쩝...잠도 오지 않는데 그 그림이나 보러 가야겠다. 특별히 미술감상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치면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르게 내 관심을 끌어냈다.
"나 그림 보러 갈껀데. 같이 갈래?"
난 옆에 누워있는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혼자가는 것 보다는 클라리와 같이 가는게 왠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쓸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테니.
"주인님아, 무슨그림?"
내 이야기를 들은 클라리는 내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순간적으로 나와 클라리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주보게 되었다. 그래도 요즘엔 적응이 되서 많이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얼굴에서 열이나는 것이. 흠...
"으...응 무슨 이야기 그림인 것 같은데 왠지 눈에 익어서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 가보지 않을레?"
쩝, 난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서 말을 조금 더듬으며 말을 했다. 정말 검 앞에서...무슨.
"응, 주인님아 한번 가보자."
클라리의 밝은 목소리. 그런데 클라리가 말을 할 때마다 작은 바람의 움직임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왠지 기분이 묘해서.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신디와 소피가 깨지 않게 조용히 걸으며.
신디도 표시는 내지 않았어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 것 같다. 초저녁무렵부터 잠이들더니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다. 리아인한테 엎여있었어도 아직 어린 신디에게는 이번처럼 긴 여행, 특히 전과 같은 추위는 견디기가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클라리도 적당히 머리를 정돈하더니, 곧 내 뒤를 따라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림이 어디에 있었었지? 음...아! 1층에 있었었지. 요즘에는 쓸데없는 고민 거리가 많이 있다보니, 얼마전의 일도 잊어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관의 복도에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손님이 별로 없는 겨울철이라 불을 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것인가? 연료로 사용할 기름이 비싸니, 어쨌든 장사라고 할 수 있는 여관이니까 어쩔 수 없지. 정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법을 쓸까? 수많은 영웅 이야기에 나오는 것 처럼 몬스터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공격하며 설치고 다니는 시절도 아니고 여행을 떠난 지금 마을을 공격해 오는 괴물 사냥꾼 놈들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라이트"
왠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에 클라리의 머리에서 빛이 나도록 클라리의 머리카락에다 라이트 마법을 걸었다.
"주인님아! 뭐야!"
갑자기 자신의 머리에서 빛이 나자 놀란 클라리는 나를 향해 항의성이 짙은 목소리로 말을했지만 난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클라리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클라리의 머리에서 빛이나기 시작하니 백금발 머리결이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난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1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 여기야."
그림은 내가 알고 있었던데로 1층 복도에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클라리가 알고 있는 그림인가?
"어머! 주인님아, 이건 우리엄마, 주인님의 스승인 아인트 아저씨, 세레니안느 여제,..그리고 나 옛날 주인님의 모험 내용을 그린 그림들이야. 저게 우리 엄마고 저게 아인트 아저씨.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정말 잘 그렸네?"
클라리는 왠지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감탄을 했다. 어쩐지 눈에 익다고 보니, 아! 그러고 보니. 핀누나는 확실히 모습을 알 것 같았다. 첫번째 그림은 배에서 스승님하고 핀 누나가 해적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는 그림이었다. 스승님의 젊었을 때 모습, 역시 리아인하고 많이 닮았다. 머리색과 눈색만 빼고. 아니...왠지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도 달랐다. 리아인에게서는 전형적인 기사나 장군 같다는 느낌이 느껴지는 반면에 그림속의 스승님에게서는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느낌, 꼭 레인저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왜 난 이 그림을 아까 못 봤지?"
클라리는 이상하다는 듯 혼잣말을 하며 그림들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니 어렸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스승님의 모험이야기가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핀누나하고 철혈 여제가 오크 군단을 단 둘이서 돌파하던 이야기, 흑기사들에게 더럽혀질 위기에 쳐했던 신성도시 테베를 스승님과 핀누나, 그리고 그 동료들이 힘을모아 구해내던 일. 전설의 엘프 빛의 센의 이야기. 모두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빛의 센이란 엘프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내 착각이겠지. 엘프 중에 가장 고귀하다는 그 하이엘프 빛의 센을 내가 봤을리가 없는데.
그리고 계속되는 이야기 신비로운 검은빛 블랙 드레곤과의 만남.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몇날 몇일에 걸려 엄마에게 들으면서 얼마나 좋아 했었다.
다음 그림에서 보이는 한 명의 소년, 저 사람이 클라리의 옛 주인. 티베리우스, 성기사 단장이구나. 어린 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그가 내 나이무렵에 여행을 시작 했었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성기사 제1군단이 포위당해 전멸 당하기 직전에 등장한 스승님의 일행들, 그들의 힘과 지휘력으로 병력의 거의 20배에 가까운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
그림들은 점점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다가가는 것 같았다. 데스나이트 군단으로부터 흰 색 마법 쉴드를 쓴체 간신히 빠져 나오는 사람들, 그런데 선두에 있는 저 사람. 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잊지 못할 그 모습...꿈 속에서도 가끔씩 보이는 나의 옛 기억 속 남아있는 아버지.바로 아버지였다.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던 아버지. 아버지도 엄마가 이야기 해 주던 그 긴 모험이야기에 등장하셨었지. 난 왠지 그 그림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아버지......."
"주인님아, 왜 그래?"
클라리는 여전히 신기한 듯 그림들을 쳐다보다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멈쳐서 있는 내 모습을 봤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아니야.."
난 고개를 흔들며 그 그림을 가슴 속 깊이 새긴체 다음 그림을 향해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그림 핀 누나와 스승님과 함께 서있는 여자. 키는 작고 많이 어려보였지만 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엄마. 어디선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감쌌다. 클라리는 내가 보던 그림들을 보더니 내게 다가와 내 손을 꽉잡아 주었다. 왠지 마음이 따뜻해 지는...이 것 때문이었을까? 클라리와 같이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주인님의 아버지 하고 어머니가 나온 그림이지?"
"......."
클라리의 물음에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 때문에 울지 안아야 한다. 그래, 내가 슬퍼한다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시지는 않으니까. 거의 십년 동안의 외로움과 그리움. 다시 마음 속 깊이 넣어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언제나 혼자는 아니었으니. 스승님, 리아둠, 그리고 클라리.
난 엄마가 그려진 그림에서 떨어져...많은 아쉬움을 남겨둔체. 다음 그림으로 걸어갔다. 다음 그림은 드레곤의 머리에 전체적인 모양은 거북처럼 생긴 배의 그림이었다. 저 배, 어렸을 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실제로 보고 싶었던 그 배였다. 사람이 만든 배가..수룡을 이겼다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 드레곤의 머리처럼 생긴 그곳에서 불도 뿜어낸다고 했었지. 핀누나의 친구였던 어느 동양의 장군이 몰고 왔었다던데. 그 그림을 보며 난 잠시동안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이건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엄마에게 졸라서 몇번이나 다시 들었던, 바로 그 이야기 그림이 보였다. 그 나쁜 마녀를 어떤 엘프 여마법사가 물리치던 이야기, 스승님에게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 대단한 여마법사가 핀누나인줄 몰랐었었다. 그리고 왜 스승님이 핀누나에게 꼼짝을 못하는지도 그제서야 깨달았었으니. 그림은 이야기 내용을 거의 그대로 그리고 있었다. 갈라진 땅, 무너져버린 산, 불꽃과 얼음 조각들이 난무하는 그 격렬한 싸움의 모습 그대로 였다..그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받고 있는 핀누나의 모습, 노란 장미의 꽃잎들이 배경으로 날리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수많은 몬스터들을 스승님과 티베리우스 성기사 단장의 모습 그의 모습이 처음 그림보다 많이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철혈 여제가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없애는 장면들 철혈 여제 역시 그 피투안에 퍼진 그 악명과는 다르게 상당히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님아! 여기 좀 봐 나도 있어!"
클라리가 가르키는 그림을 보니, 전에 클라리에게 들었던 그 이야기 인 것 같았다. 하늘에는 핀 누나가있고 말위에 탄 티베리우스 단장. 그리고 아직 어린 꼬마 모습의 클라리, 클라리는 자신도 그림에 나왔다는 사실에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그림들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나와 클라리는 놀라서 소리가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아까 카운터에서 반쯤 졸고 있던 여관 주인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아..네."
난 갑작스러운 주인의 등장에 잠시 당황해 하며 답을 했다.
"아저씨, 이 그림들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당황한 나와는 달리 클라리는 여관 주인을 보며 궁금한듯 물었다. 클라리의 물음에 아무 대답 없이 그림들을 쳐다보는 그 남자. 여관 주인을 자세히 살펴 보니 낮에 무심결에 볼 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앉아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쳐럼 보였는데,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몸 전체가 나이에 비해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들 모두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몇가지는 실제로 본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지요. 지금은 이렇게 작은 여관의 주인이나 하고 있지만 저역시 한 때는 성기사단원이었습니다. 거의 다 데스나이트로 변해 버린. 저주 받은 군단. 제 2군단의 성기사단원이었었지요.."
..잠깐..아버지도..데스나이트로 변해버린..군단에 있었다고 했었는데...그럼..?
"저..혹시 그럼 이 사람 아세요?"
난 아버지가 그려진 그 그림을 가리키며 여관주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관주인은 뭔가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눈빛으로 내가 가리킨 그 그림을 쳐다보았다.
"알다마다요. 저 역시, 몇 안되는 생존자인데, 저주 받은 군단의. 저도 소대장님 때문에 목숨을 건졌었죠. 아티에넬 크리센 소대장....."
아...이 사람이 아버지의 동료였다니. 전혀 뜻밖의 인연이었다. 클라리 역시 생각 밖이라는 표정으로 여관 주인을 쳐다보았다.
"저, 죄송하지만. 그 때의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내 요청에 여관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림앞에 선체 그림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아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 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당신을 보니 왠지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 이야기라."
"크리센 소대장님! 저희 군단이 지금 어디로 이동하는 것입니까?"
왠지 모를 음침한 기운이 성기사 군단 전체를 감돌고 있었다. 성기사 제 2군단 전원 마법사용이 가능한 마법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 유일한 마법 기사단이었기에 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군단에 입대 신청을 했고 수많은 시험을 통과해 드디어 정식 기사가 될 수 있었다. 평화롭고 강력한 리투안,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수많은 소문들은 좋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몬스터 군단들과 피투안국의 연합 공격 때문에 노스 트립톤이 무너지며, 제국 북부를 수비하고 있는 제 4군단이 전멸한지 얼마안되어 수도인 포세트립톤 마저 점령당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국왕폐하는 목숨을 잃으셨고, 공주님 역시 실종되셨다는 소문은 알게 모르게 기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군단장님의 지시니 따를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크리센 소대장님. 언제나 맡은 일을 열심히하며 부하들을 아끼는 그런 소대장님에게 우리 소대원 모두는 존경을 감추지 않았다. 그 곧은 성격과 귀족 9계급이란 신분 때문에 군단 내부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작 소대장의 직위에 만족하며 머무르고 계셨다.
"네."
이번 행로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도가 무너졌다면 마지막 보루인 제국 남부의 리투니아 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북쪽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고있었다. 적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는게 두려워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정말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섬뜩한 느낌 우리의 행군길 주위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풀한포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렇게 말라붙은 수많은 식물들...그리고 간간히 들짐승들의 시체와 뼈들 역시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짙어지는 검은 안개. 말라버린 황무지에 검은 안개.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소대장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기운... 몬스터라도 이런 죽음의 기운을 풍겨내지는 않습니다."
난 왠지 모를 불안감에 대장님을 향해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나마 이 상황에서 의지가 되는 존재는 소대장님 밖에 없으니.
"그래..자네도 느껴진단 말이지. 음...아무래도..언데드의 기운 같네. 일단 알고 있는 신성마법이과 기도문들은 다 생각해두게."
소대장님 얼굴에도 평소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불안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언데드라니...? 정말, 군단은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하게 심지어는 말발굽 소리 조차 나지 않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적들이 가득한 북부 지역으로 진격한지 한참, 몬스터들과도 마주칠 시점도 되었건만....너무나 조용하다...
"호호호. 잘 오셨어요. 성기사 아니, 이제 데스 나이트가 되겠군요.. 제 2군단 여러분."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도데체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이상한 주문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흐릿해지는 정신. 왠지 모든 것에대한 의욕시 사라지며 힘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홀리 쉴드, 홀리 라이트"
이 소리는 소대장님의 신성 마법 캐스팅 소리.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의식의 끝에서 소대장님의 목소리도 점점 먼 곳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무한한 힘을 가지고 싶지 않나, 그러면 이 곳으로 오게."
여기는 어디지...어두운 공간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가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외쳤지만,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면 안돼!
그순간,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웠던 신에 대한 기도문을 읊었다. 순간 갑자기 환해지는 주위, 하지만 그 어둠에 비해서였지.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지금 내 주위는 그렇게 환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는 그 사실이 지금은 중요할 뿐.
"어서 이 곳에서 벗어나야 하네, 어서!"
소대장님의 목소리 이제서야 그 굳고 강인한 목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소대장님 주위에서는 무척이나 밝은 흰색빛이 뿜어져 나와 우리 소대원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아까 그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그건 바로 소대장님의 빛이었던 것 같다.
소대장님을 선두로 모두들 정신이 없었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어둠을 피해서. 모두들 조금씩 알고 있던 신성마법을 사용하며, 남쪽으로 말을 몰던 우리 앞 쪽에 무엇인가 나타났다. 검게 변해버린 갑옷, 바짝 몸이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얼굴, 데스 나이트 였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없이 많은 그렇다면, 우리 군단 전체가 데스나이트로 변했단 말인가? 설마...그럴리가. 아니 그렇다면 나 역시 소대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들은 이제 동료가 아니야, 망설이지 말게!"
소대장님은 자신의 칼을 뽑아 한치의 꺼리낌 없이 길을 막고 있던 기사, 아니 데스나이트를 배었다. 아직 완벽하게 변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설 속에 나오는 그 것처럼 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 오는 데스나이트. 그런데 저 갑옷 팔 부분에 길게 흠집이난 색은 검게 변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피아넨, 나의 약혼자, 그녀의 갑옷이였다. 왠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누가? 이런 이은 이야기 속에만 있는 일인줄 알았는데. 난 칼을 뽑아 이제 의식이 사라져 버린 내 약혼자, 아니 데스나이트를 배었다.
'우리 이번 전쟁이 끝나면 작은 마을에서 여관이나 만들어서 살자.'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내 귓전에서 끊임 없이 맴돌았다. 소대원들은 모두들 각자의 아픔을 머금고 남쪽으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소대장님, 오직 그를 믿을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말들이 지쳐서 쓰러져도 우리는 말에서 내려 계속 달렸다. 그 무거운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이 그리고, 그 길었던 밤이 끝이나고 평원의 끝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달려 있는 요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린 살았다. 우리만, 우리 소대만.
여관 주인은 뭔가 표현하지 못할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끝냈다.
"그래..크리센 소대장님은 어떻게 되셨소?"
"오크들과의 전투 중 돌아가셨습니다."
난 어린 시절의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했다.
"그래, 그런 분 이시지..."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 차린 것 처럼 보였지만 나를 향해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편히 쉬십시오.."
"네,"
주인은 아니 늙은 기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난 왠지 꿈을 꾼 듯한 기분이다. 뭔가 모를...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런 분이 셨다니. 그래,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뭔가 모를 그런 감정이 솟아 올랐다.
클라리는 가만히 서서 아버지가 그려진 그 그림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다시한번 자세히 그 그림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의 오른쪽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칼을 휘두르는 사람, 여관 주인, 그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아픔을 지니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금 외롭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그렇게 남아있다면 나 역시도..몇 안되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클라리, 그만 올라가자."
"응...."
클라리도 나름데로 그림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저 이야기에 클라리가 더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천장위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왠지 쉽게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꿈 속에서 그리운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
"클라리, 너도 잠이 안오니?"
"응, 낮에 너무 많이 울었나봐. 주인님아."
클라리도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잠을 잘 못들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들더니. 그리고 나역시 여행을 온 뒤부터는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의 익숙한 침대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며,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할일이 있었는데... 아 맞다! 밑에 걸려있던 그림을 보려고 했었지. 흠... 잊어먹고 있었다. 쩝...잠도 오지 않는데 그 그림이나 보러 가야겠다. 특별히 미술감상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치면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르게 내 관심을 끌어냈다.
"나 그림 보러 갈껀데. 같이 갈래?"
난 옆에 누워있는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혼자가는 것 보다는 클라리와 같이 가는게 왠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쓸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테니.
"주인님아, 무슨그림?"
내 이야기를 들은 클라리는 내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순간적으로 나와 클라리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주보게 되었다. 그래도 요즘엔 적응이 되서 많이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얼굴에서 열이나는 것이. 흠...
"으...응 무슨 이야기 그림인 것 같은데 왠지 눈에 익어서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 가보지 않을레?"
쩝, 난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서 말을 조금 더듬으며 말을 했다. 정말 검 앞에서...무슨.
"응, 주인님아 한번 가보자."
클라리의 밝은 목소리. 그런데 클라리가 말을 할 때마다 작은 바람의 움직임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왠지 기분이 묘해서.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신디와 소피가 깨지 않게 조용히 걸으며.
신디도 표시는 내지 않았어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 것 같다. 초저녁무렵부터 잠이들더니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다. 리아인한테 엎여있었어도 아직 어린 신디에게는 이번처럼 긴 여행, 특히 전과 같은 추위는 견디기가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클라리도 적당히 머리를 정돈하더니, 곧 내 뒤를 따라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림이 어디에 있었었지? 음...아! 1층에 있었었지. 요즘에는 쓸데없는 고민 거리가 많이 있다보니, 얼마전의 일도 잊어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관의 복도에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손님이 별로 없는 겨울철이라 불을 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것인가? 연료로 사용할 기름이 비싸니, 어쨌든 장사라고 할 수 있는 여관이니까 어쩔 수 없지. 정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법을 쓸까? 수많은 영웅 이야기에 나오는 것 처럼 몬스터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공격하며 설치고 다니는 시절도 아니고 여행을 떠난 지금 마을을 공격해 오는 괴물 사냥꾼 놈들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라이트"
왠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에 클라리의 머리에서 빛이 나도록 클라리의 머리카락에다 라이트 마법을 걸었다.
"주인님아! 뭐야!"
갑자기 자신의 머리에서 빛이 나자 놀란 클라리는 나를 향해 항의성이 짙은 목소리로 말을했지만 난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클라리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클라리의 머리에서 빛이나기 시작하니 백금발 머리결이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난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1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 여기야."
그림은 내가 알고 있었던데로 1층 복도에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클라리가 알고 있는 그림인가?
"어머! 주인님아, 이건 우리엄마, 주인님의 스승인 아인트 아저씨, 세레니안느 여제,..그리고 나 옛날 주인님의 모험 내용을 그린 그림들이야. 저게 우리 엄마고 저게 아인트 아저씨.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정말 잘 그렸네?"
클라리는 왠지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감탄을 했다. 어쩐지 눈에 익다고 보니, 아! 그러고 보니. 핀누나는 확실히 모습을 알 것 같았다. 첫번째 그림은 배에서 스승님하고 핀 누나가 해적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는 그림이었다. 스승님의 젊었을 때 모습, 역시 리아인하고 많이 닮았다. 머리색과 눈색만 빼고. 아니...왠지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도 달랐다. 리아인에게서는 전형적인 기사나 장군 같다는 느낌이 느껴지는 반면에 그림속의 스승님에게서는 무척이나 자유스러운 느낌, 꼭 레인저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왜 난 이 그림을 아까 못 봤지?"
클라리는 이상하다는 듯 혼잣말을 하며 그림들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니 어렸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스승님의 모험이야기가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핀누나하고 철혈 여제가 오크 군단을 단 둘이서 돌파하던 이야기, 흑기사들에게 더럽혀질 위기에 쳐했던 신성도시 테베를 스승님과 핀누나, 그리고 그 동료들이 힘을모아 구해내던 일. 전설의 엘프 빛의 센의 이야기. 모두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빛의 센이란 엘프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내 착각이겠지. 엘프 중에 가장 고귀하다는 그 하이엘프 빛의 센을 내가 봤을리가 없는데.
그리고 계속되는 이야기 신비로운 검은빛 블랙 드레곤과의 만남.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몇날 몇일에 걸려 엄마에게 들으면서 얼마나 좋아 했었다.
다음 그림에서 보이는 한 명의 소년, 저 사람이 클라리의 옛 주인. 티베리우스, 성기사 단장이구나. 어린 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그가 내 나이무렵에 여행을 시작 했었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성기사 제1군단이 포위당해 전멸 당하기 직전에 등장한 스승님의 일행들, 그들의 힘과 지휘력으로 병력의 거의 20배에 가까운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
그림들은 점점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다가가는 것 같았다. 데스나이트 군단으로부터 흰 색 마법 쉴드를 쓴체 간신히 빠져 나오는 사람들, 그런데 선두에 있는 저 사람. 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잊지 못할 그 모습...꿈 속에서도 가끔씩 보이는 나의 옛 기억 속 남아있는 아버지.바로 아버지였다.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던 아버지. 아버지도 엄마가 이야기 해 주던 그 긴 모험이야기에 등장하셨었지. 난 왠지 그 그림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아버지......."
"주인님아, 왜 그래?"
클라리는 여전히 신기한 듯 그림들을 쳐다보다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멈쳐서 있는 내 모습을 봤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아니야.."
난 고개를 흔들며 그 그림을 가슴 속 깊이 새긴체 다음 그림을 향해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그림 핀 누나와 스승님과 함께 서있는 여자. 키는 작고 많이 어려보였지만 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엄마. 어디선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감쌌다. 클라리는 내가 보던 그림들을 보더니 내게 다가와 내 손을 꽉잡아 주었다. 왠지 마음이 따뜻해 지는...이 것 때문이었을까? 클라리와 같이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주인님의 아버지 하고 어머니가 나온 그림이지?"
"......."
클라리의 물음에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 때문에 울지 안아야 한다. 그래, 내가 슬퍼한다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시지는 않으니까. 거의 십년 동안의 외로움과 그리움. 다시 마음 속 깊이 넣어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언제나 혼자는 아니었으니. 스승님, 리아둠, 그리고 클라리.
난 엄마가 그려진 그림에서 떨어져...많은 아쉬움을 남겨둔체. 다음 그림으로 걸어갔다. 다음 그림은 드레곤의 머리에 전체적인 모양은 거북처럼 생긴 배의 그림이었다. 저 배, 어렸을 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실제로 보고 싶었던 그 배였다. 사람이 만든 배가..수룡을 이겼다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 드레곤의 머리처럼 생긴 그곳에서 불도 뿜어낸다고 했었지. 핀누나의 친구였던 어느 동양의 장군이 몰고 왔었다던데. 그 그림을 보며 난 잠시동안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이건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엄마에게 졸라서 몇번이나 다시 들었던, 바로 그 이야기 그림이 보였다. 그 나쁜 마녀를 어떤 엘프 여마법사가 물리치던 이야기, 스승님에게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 대단한 여마법사가 핀누나인줄 몰랐었었다. 그리고 왜 스승님이 핀누나에게 꼼짝을 못하는지도 그제서야 깨달았었으니. 그림은 이야기 내용을 거의 그대로 그리고 있었다. 갈라진 땅, 무너져버린 산, 불꽃과 얼음 조각들이 난무하는 그 격렬한 싸움의 모습 그대로 였다..그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받고 있는 핀누나의 모습, 노란 장미의 꽃잎들이 배경으로 날리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수많은 몬스터들을 스승님과 티베리우스 성기사 단장의 모습 그의 모습이 처음 그림보다 많이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철혈 여제가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없애는 장면들 철혈 여제 역시 그 피투안에 퍼진 그 악명과는 다르게 상당히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님아! 여기 좀 봐 나도 있어!"
클라리가 가르키는 그림을 보니, 전에 클라리에게 들었던 그 이야기 인 것 같았다. 하늘에는 핀 누나가있고 말위에 탄 티베리우스 단장. 그리고 아직 어린 꼬마 모습의 클라리, 클라리는 자신도 그림에 나왔다는 사실에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그림들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나와 클라리는 놀라서 소리가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아까 카운터에서 반쯤 졸고 있던 여관 주인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아..네."
난 갑작스러운 주인의 등장에 잠시 당황해 하며 답을 했다.
"아저씨, 이 그림들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당황한 나와는 달리 클라리는 여관 주인을 보며 궁금한듯 물었다. 클라리의 물음에 아무 대답 없이 그림들을 쳐다보는 그 남자. 여관 주인을 자세히 살펴 보니 낮에 무심결에 볼 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앉아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쳐럼 보였는데,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몸 전체가 나이에 비해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들 모두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몇가지는 실제로 본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지요. 지금은 이렇게 작은 여관의 주인이나 하고 있지만 저역시 한 때는 성기사단원이었습니다. 거의 다 데스나이트로 변해 버린. 저주 받은 군단. 제 2군단의 성기사단원이었었지요.."
..잠깐..아버지도..데스나이트로 변해버린..군단에 있었다고 했었는데...그럼..?
"저..혹시 그럼 이 사람 아세요?"
난 아버지가 그려진 그 그림을 가리키며 여관주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관주인은 뭔가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눈빛으로 내가 가리킨 그 그림을 쳐다보았다.
"알다마다요. 저 역시, 몇 안되는 생존자인데, 저주 받은 군단의. 저도 소대장님 때문에 목숨을 건졌었죠. 아티에넬 크리센 소대장....."
아...이 사람이 아버지의 동료였다니. 전혀 뜻밖의 인연이었다. 클라리 역시 생각 밖이라는 표정으로 여관 주인을 쳐다보았다.
"저, 죄송하지만. 그 때의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내 요청에 여관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림앞에 선체 그림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아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 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당신을 보니 왠지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 이야기라."
"크리센 소대장님! 저희 군단이 지금 어디로 이동하는 것입니까?"
왠지 모를 음침한 기운이 성기사 군단 전체를 감돌고 있었다. 성기사 제 2군단 전원 마법사용이 가능한 마법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 유일한 마법 기사단이었기에 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군단에 입대 신청을 했고 수많은 시험을 통과해 드디어 정식 기사가 될 수 있었다. 평화롭고 강력한 리투안,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수많은 소문들은 좋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몬스터 군단들과 피투안국의 연합 공격 때문에 노스 트립톤이 무너지며, 제국 북부를 수비하고 있는 제 4군단이 전멸한지 얼마안되어 수도인 포세트립톤 마저 점령당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국왕폐하는 목숨을 잃으셨고, 공주님 역시 실종되셨다는 소문은 알게 모르게 기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군단장님의 지시니 따를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크리센 소대장님. 언제나 맡은 일을 열심히하며 부하들을 아끼는 그런 소대장님에게 우리 소대원 모두는 존경을 감추지 않았다. 그 곧은 성격과 귀족 9계급이란 신분 때문에 군단 내부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작 소대장의 직위에 만족하며 머무르고 계셨다.
"네."
이번 행로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도가 무너졌다면 마지막 보루인 제국 남부의 리투니아 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북쪽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고있었다. 적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는게 두려워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정말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섬뜩한 느낌 우리의 행군길 주위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풀한포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렇게 말라붙은 수많은 식물들...그리고 간간히 들짐승들의 시체와 뼈들 역시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짙어지는 검은 안개. 말라버린 황무지에 검은 안개.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소대장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기운... 몬스터라도 이런 죽음의 기운을 풍겨내지는 않습니다."
난 왠지 모를 불안감에 대장님을 향해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나마 이 상황에서 의지가 되는 존재는 소대장님 밖에 없으니.
"그래..자네도 느껴진단 말이지. 음...아무래도..언데드의 기운 같네. 일단 알고 있는 신성마법이과 기도문들은 다 생각해두게."
소대장님 얼굴에도 평소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불안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언데드라니...? 정말, 군단은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하게 심지어는 말발굽 소리 조차 나지 않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적들이 가득한 북부 지역으로 진격한지 한참, 몬스터들과도 마주칠 시점도 되었건만....너무나 조용하다...
"호호호. 잘 오셨어요. 성기사 아니, 이제 데스 나이트가 되겠군요.. 제 2군단 여러분."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도데체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이상한 주문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흐릿해지는 정신. 왠지 모든 것에대한 의욕시 사라지며 힘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홀리 쉴드, 홀리 라이트"
이 소리는 소대장님의 신성 마법 캐스팅 소리.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의식의 끝에서 소대장님의 목소리도 점점 먼 곳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무한한 힘을 가지고 싶지 않나, 그러면 이 곳으로 오게."
여기는 어디지...어두운 공간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가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외쳤지만,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면 안돼!
그순간,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웠던 신에 대한 기도문을 읊었다. 순간 갑자기 환해지는 주위, 하지만 그 어둠에 비해서였지.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지금 내 주위는 그렇게 환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는 그 사실이 지금은 중요할 뿐.
"어서 이 곳에서 벗어나야 하네, 어서!"
소대장님의 목소리 이제서야 그 굳고 강인한 목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소대장님 주위에서는 무척이나 밝은 흰색빛이 뿜어져 나와 우리 소대원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아까 그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그건 바로 소대장님의 빛이었던 것 같다.
소대장님을 선두로 모두들 정신이 없었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어둠을 피해서. 모두들 조금씩 알고 있던 신성마법을 사용하며, 남쪽으로 말을 몰던 우리 앞 쪽에 무엇인가 나타났다. 검게 변해버린 갑옷, 바짝 몸이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얼굴, 데스 나이트 였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없이 많은 그렇다면, 우리 군단 전체가 데스나이트로 변했단 말인가? 설마...그럴리가. 아니 그렇다면 나 역시 소대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들은 이제 동료가 아니야, 망설이지 말게!"
소대장님은 자신의 칼을 뽑아 한치의 꺼리낌 없이 길을 막고 있던 기사, 아니 데스나이트를 배었다. 아직 완벽하게 변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설 속에 나오는 그 것처럼 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 오는 데스나이트. 그런데 저 갑옷 팔 부분에 길게 흠집이난 색은 검게 변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피아넨, 나의 약혼자, 그녀의 갑옷이였다. 왠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누가? 이런 이은 이야기 속에만 있는 일인줄 알았는데. 난 칼을 뽑아 이제 의식이 사라져 버린 내 약혼자, 아니 데스나이트를 배었다.
'우리 이번 전쟁이 끝나면 작은 마을에서 여관이나 만들어서 살자.'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내 귓전에서 끊임 없이 맴돌았다. 소대원들은 모두들 각자의 아픔을 머금고 남쪽으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소대장님, 오직 그를 믿을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말들이 지쳐서 쓰러져도 우리는 말에서 내려 계속 달렸다. 그 무거운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이 그리고, 그 길었던 밤이 끝이나고 평원의 끝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달려 있는 요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린 살았다. 우리만, 우리 소대만.
여관 주인은 뭔가 표현하지 못할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끝냈다.
"그래..크리센 소대장님은 어떻게 되셨소?"
"오크들과의 전투 중 돌아가셨습니다."
난 어린 시절의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했다.
"그래, 그런 분 이시지..."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 차린 것 처럼 보였지만 나를 향해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편히 쉬십시오.."
"네,"
주인은 아니 늙은 기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난 왠지 꿈을 꾼 듯한 기분이다. 뭔가 모를...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런 분이 셨다니. 그래,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뭔가 모를 그런 감정이 솟아 올랐다.
클라리는 가만히 서서 아버지가 그려진 그 그림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다시한번 자세히 그 그림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의 오른쪽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칼을 휘두르는 사람, 여관 주인, 그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아픔을 지니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금 외롭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그렇게 남아있다면 나 역시도..몇 안되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클라리, 그만 올라가자."
"응...."
클라리도 나름데로 그림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저 이야기에 클라리가 더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천장위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왠지 쉽게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꿈 속에서 그리운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