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3장 수도 포세트립톤 (2) 황태자(수정)
푸른바람·2002. 3. 9. PM 3:25:01·조회 3199·추천 108
에피소드 14 황태자
-세인트 1세, 그는 철혈여제의 노력으로 평화로워진 나라를 반석 위에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친구나 동료의 도움없이 혼자의 힘으로 그 넓은 제국을 그의 20년의 치세 기간 동안 문제 없이 통치한 그의 능력은 정말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독선적인 그의 정치행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 위대했던 철혈여제의 후임으로 황제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가진 나머지 좌절하거나 아니면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은 높게 평가해야한다. 외교적으로는 피투안국왕 란트 1세의 딸, 그레이스 공주와 후에 황제가 되는 황태자 세인트 2세의 결혼을 통해 그 전의 피투안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탈피 강력한 맹방으로써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진 업적이 있다. <제국황제평전>타키투스 폰 힐튼 저-
"신디, 조심해."
"알았어, 오빠"
신디는 창가로 올라서더니 창밖의 경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황제로부터 받은 방은 그런데로 높은 위치에 경치가 좋은 방이었다. 창밖으로 보면 멀리 포세트립톤항과 바다가 보였고 성벽 너머로는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특별히 신경을 써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이번에도 리아인의 농간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아, 나 이 방에서 자본적 있어."
클라리는 방 구석 구석을 추억에 어린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했다. 방은 황궁 내의 방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하함을 주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황궁의 분위기 만큼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물론, 내가 상상하던 것 만큼 화려하는 않았다는 말이지 사우스 피투안에서 우리가 묵었던 그 비싼 여관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움이 느껴졌었다. 침대 세개, 그리고 긴 소파와 테이블, 빨간 벽돌로 된 벽난로와 자줏빛 커텐, 방의 높이만 아니었으면 꼭 최고급 여관에서 묵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았다.
"혹시 리아인하고 아이들을 여기서 돌본건 아니겠지? 클라리."
난 클라리와 리아인의 사이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심정에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하지만 클라리는 눈을 크게 뜨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주인님아 어떻게 알았어? 이 방에서 아이들 어릴 때 돌봐줬었어. 주인님 스승님하고 세리언니하고 급하게 출전할 일이 있으면, 유모보다는 나보고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었으니까. 그럴 때는 옛날 주인님집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여기서 며칠간 지내면서 시녀들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돌봐주곤 했었는데."
그런 과거가 있었던 것이구나. 아무래도 황제가 우리의 숙소로 이 방을 골라준 것은 클라리 때문이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황제라는 입장에서 무시해도 좋을 우리의 존재에 이렇게 신경을 써준다는 사실에 조금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피,뭐해?"
소피는 등에 매고 다니던 자기의 활을 꺼내더니, 이 곳 저 곳을 만지고 있었다. 내 질문에 나와 눈이 마주친 소피는 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역시, 클라리하고 다른 점이 소피는 귀엽다는 느낌이 든다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많은 엘프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활을 손질하고 있어요, 자주 손질을 안해주면 줄이 늘어나서 못쓰게 되서..."
소피는 설명을 하려다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소피는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 애꿎은 활만 만지작 거렸다. 방금 전의 저 행동은 무슨 뜻이지? 조금...알 것 같기도하고, 모르겠다. 여자하고 엘프의 감정파악은 내 능력 밖인 것 같았다.
다시 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등 뒤의 방문 쪽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올 것이 왔구나. 황태자. 한숨을 내쉰 뒤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천천히 열었다.
"크리센 공, 황태자께서 공을 뵜으면 한다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회의실에서 황태자 뒤에 서있던 여자였다. 완벽하게 사무적인 목소리와 얼굴표정. 내가 추정하는 성격의 황태자가 보좌관으로 임명할 만한 여자였다. 뒤 쪽으로 꽉 묶은 머리는 붉은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머릿색을 알기가 힘들었다.
"황태자가. 날 보기를 원하신다라.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난 그 여자를 보며 평소에 내가 사용하던 말투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황태자의 보좌관이라지만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여자에게까지 내가 말을 높일 이유는 없었으니까. 반말로 한다고 그다지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뭐 레이디에 대한 예우에는 어긋나겠지만 보좌관이란 직책 자체가 레이디라고 불리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나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이 여자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역시, 감정이 거의없는 전형적인 일벌레 스타일이었다.
"나 잠시 다녀올께."
난 방쪽으로 돌아서서 한숨을 내쉰 뒤 말을 했다. 소피나 신디야, 내가 하는 행동에 토를 달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클라리 역시, 무슨 일인지 눈치를 챘는지 이번에는 꼭 따라 온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클라리의 본체는 꼭 옆구리에 찬체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에.
대체로 궁안에서는 검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나라는 전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황제 스스로가 워낙 검술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검을 못 차게 한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인지.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는 30년 전에 검사가 아닌 흑마법사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까.
황태자의 보좌관, 그 사무적인 여자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돌아올때는 어떻게 하지? 하긴, 길찾기 마법으로 대충 어떻게 하면 되겠지. 수도에 도착하기 전, 걱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 심정은 그런대로 편안했다. 황제의 확실한 확답이 있어서 인지, 뭐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부담감도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확실히 비 황태자파로 마음을 굳히고 난 뒤라 전보다 고민거리가 훨씬 줄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뭐 만약의 사태에 클라리를 빼앗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제국의 도시 몇개 정도 날려버리면 되니까. 황태자의 무기창고나 보물창고 같은 것도 함께, 그것도 핀누나가 막으면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황태자의 방으로 향하는 길을 보니 황태자의 방은 황제의 방과 같은 층이었지만, 위치는 반대쪽에 있는 것 같았다.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자. 방 배치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의미에서 황태자가 그렇게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도, 누구나 봐도 황태자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생긴 문이 보이며 침묵을 깨고 황태자의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이 곳 입니다."
이 황태자 보좌관도 딱딱한 얼굴 표정만 아니면, 그런데로 괜찮게 생기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품이, 보통 보좌관을 평민이 맞는 것과는 달리, 이 황태자의 보좌관은 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보좌관 하니까 클라리 생각이 난다. 이 보좌관과는 성격이 완전히 극과 극일 것 같다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보좌관의 뒤를 따라 난 마음을 다지며 황태자 방으로 들어섰다.
"크리센 경 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 보좌관은 방에 들어가며 그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마 황태자보고 하는 이야기겠지. 내가 방에 들어선 뒤에는 그 보좌관은 별 말 없이 문을 닫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쌩하게 부는 것이.
"잘 오셨소. 란트 크리센 경."
방에 들어가니 황태자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종이에 뭔가 쓰며 말을 했다. 책상 옆에 잔뜩 싸여 있는 서류들, 그래도 총리대신이라고 업무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서류를 쓰고 있는 가운데 언뜻 보이는 차가운 황태자의 눈빛. 절대 감출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무슨 일로 이 미천한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황태자."
난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내 말에 상당히 심사가 뒤틀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은 뒤 날쳐다보는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느껴지는 냉정함.
"오늘 회의에서의 활약은 잘 보았소. 당신에게 당할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 크리센공 당신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정말 내 실수야."
황태자는 천천히, 차가운 목소리를 되도록이면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며 나를 향해 말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나를 향한 녀석의 차가운 눈빛에서 그다지 악의가 느겨지지 않는 것일까? 공식적인 석상에서 그렇게 당했다면, 나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인데.
"그 말을 하려고 절 부르셨습니까? 황태자. 제국의 총리대신은 별 일이 없나 보군요. 그런 사소한 일로 영주나 불러서 말장난이나 하고."
황태자, 지금 속이 뒤집히는 중이겠지. 다른사람들은 자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할는 것이 당연할 텐데. 나야 뭐, 황태자한테 잘 보여봐야 덕볼 것이 없으니, 그다지 녀석에게 잘보일 필요가 없었다.
황태자의 방은 황태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듯 전체적으로 차가운 분위기였다.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차가움을 전혀 지울 수 없는 듯 보였으니.
"하하. 또 내가 당했군. 좋소 그럼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당신의 그 뛰어난 능력, 그리고 검술. 나를 위해 써줄순 없겠소?"
황태자는 쓰고 있던 국서를 이제는 완전히 한쪽으로 밀쳐내고는 나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별 표정없는 그의 얼굴 밑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그의 감정, 무엇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 감정이 그에게서 느껴졌지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뭘 잘못아시는가 보군요. 황태자. 전 황제폐하 이외에는 충성을 표시할 의무가 없습니다."
내 대답에 황태자는 조금 인상을 찌푸린체 한숨을 내 쉬며 말을 했다. 아직 녀석이 한숨을 내쉴만한 말은 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생각외로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제국 최고의 천재이며 변론술의 대가라던 이 황태자가 난 갑작스러운 황태자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말을 돌리지 마시오. 크리센경. 그러니까 이 황태자가 직접 부탁을 하는게 아니오. 날 도와준다면 당신에게 제국 북부, 동부 지역의 통치권..그리고 그외에도 수많은 이익을 줄 수 있소."
너무나 뻔한 이익, 솔직히 그러한 것을 원했다면 진작에 군대를 조직해서 정벌을 하고 다녔지, 시골 마을이나 지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약한 피투안 정도라면 한달안에 전 지역을 정복할 자신도 있었으니까. 국왕도 될 수 있는데 고작 대영주 직위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당신 세력에 들어가는 대가는?"
대가야 알고 있었지만,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날 끌어들이려는대는 내 능력 말고도 딴 욕심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드는 것은 왜일까?
"대가야. 뭐 대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오. 당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그 검하나면 충분하니까."
하. 역시 클리리를 노렸었군. 예상했던 것 처럼, 리아인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제 확실히 견론이 났다. 황태자 저놈 편에는 절대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클라우 그녀석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황태자를 결정한 걸까? 클라리 때문에.
"거절하겠습니다."
내말을 듣자.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황태자는 가볍게 웃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다시 그 짜증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의 웃음에서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역시. 크리센공 당신이 그렇게 나올줄 알았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당신의 영지가 내 직속 친위군에 의해 짓밟혀도 괜찮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밖에. 수만의 군대가 몰려가면 당신의 그 영지가 버틸 수 있을까..? 가난에 찌든 그 허약한 잡종족들로."
이 것이 지금, 뭐라고 했나? 하, 이제는 인질극이다 이건가 황태자. 녀석은 더 이상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한듯, 변론술의 대가라는 그 명성이 아깝게 가장 치졸한 방법인 협박을 동원하고 있었다. 난 화가 나서 칼을 뽑으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 상황에서 칼을 뽑으면 나만 피해를 볼 뿐이다. 어떻게 황태자 이녀석을 죽이고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신디나, 소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니. 역시 가이우스의 예상이 맞았다. 힘으로 해결하려는. 정말, 갈수록 싫어지게 만드는군. 황태자.
"하하하. 황태자. 스승님에 대한 예우 때문에 말을 높여줬는데 안되겠군.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해! 총 군사동원력이야 8천밖에 안되는 주제에 수만이라...아! 이제 5500이었던가."
이 녀석에게 말을 높일 필요는 전혀없었다. 분명이 자기 입으로 선전포고를 해왔으니까. 정말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지경이었다. 분명히 일년 전의 나였으면 참지못한체 저 녀석을 단칼에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수도에 처음 온 당신이? 또, 가이우스 그녀석의 농간인가?"
황태자는 자신의 군사동원력이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미소를 잃지 않고 있던 그 얼굴을 조금 찌푸리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아니, 가이우스를 향한 이유모를 분노마져 느껴지는 것같았다. 그런데 내가 말안해도 가이우스라는 걸 아는 것 보면..숙적이긴 숙적인가 보군.
"당신의 그 말은 이 황태자에 대한 도전으로 알아듣겠소. 크리센경."
황태자는 분노를 곧 가라앉히고 얼굴에 다시 그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했다. 녀석의 협박 따위는 이제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도전...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아무튼, 황태자 당신의 군대가 내 영지에 한발자국이라도 내 딛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길. 아시다시피 난 피투안 국에서 한 때, 현상금을 천만골드까지 건 살인마였었지. 이제 얼마 더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정 못믿겠다면 지금 이자리에서 보여줄수도 있지."
난 황태자 오른편의 창가로 보이는 바다쪽을 보며 주문을 외웠다. 북부산맥 속에서 사용한뒤 다시는 쓰지 않았던 그 마법. 되도록이면 도시에서 먼 곳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며, 가까이 떨어져도 할 수 없지. 그 때는 제국의 수호신인 핀 누나가 해결해 줄테니까.
"위크닝 미티어 스트라이크(weakening meteor strike)".
황태자는 내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짖기 시작했다. 저녀석 아직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아니면 마법을 조금 쓸 줄 아는 정도인줄만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커다란 빛을 내며 수평선 저 쪽으로 작은 운석이 떨어지는 것이 창가로 보였다. 수평선 저 끝에서 치솟는 물기둥이 이 곳에서도 보일 정도 였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운석이 내가 의도 했던 것 대로 작은 것이 떨어진 것 같아서. 해일이 도시까지 오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배들이 얼마 후 크게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이며, 도시 주민들에게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황태자는 얼굴에서 미소를 완전히 잃고, 넋이 나간 듯 수평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쯤에서 나가 줘야지 대충 내 의도는 전한듯 싶으니까, 이제 저 녀석도 말은 알아들었겠지.
"황태자. 당신이 내 충성을 원한다면 내가 존경할 수 있도록 그 자격을 갖춘 뒤, 그 때 다시 부르길. 그 때 당신의 제안은 다시 한번 살펴 보지. 아..! 그리고 당신 아버님께 감사해야 할거요.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당신의 목숨이 어떻게 됬을지 보장을 못했을 테니까."
난 창가쪽을 쳐다보고 있는 황태자를 뒤에 둔체 방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순간 나를 향한 녀석의 눈빛에서 분노보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보인 것 처럼 느껴진 것은 왜일까? 설마 황태자가 그럴리가 내 착각이었겠지. 어휴.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일까?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물러설 때 없이 난 비황태자파가 되었으니. 왜 무거운 짐을 일부로 지는 걸까? 난.
아니다. 혼자일때 곁에 있어준. 클라리, 이녀석을 나 혼자의 안식을 위해서 버릴 수는 없었다. 고작, 제국 북부령정도에. 그리고 황태자나, 클라우. 두 녀석 모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 손에 클라리를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쨌든 난 다른사람들이 피의 마왕이라 부르는 존재 이니 만큼, 나름대로의 자존심과 신조는 있으니까.
난 천천히, 황궁의 긴 복도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 인생의 긴 행로 역시...
-세인트 1세, 그는 철혈여제의 노력으로 평화로워진 나라를 반석 위에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친구나 동료의 도움없이 혼자의 힘으로 그 넓은 제국을 그의 20년의 치세 기간 동안 문제 없이 통치한 그의 능력은 정말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독선적인 그의 정치행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 위대했던 철혈여제의 후임으로 황제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가진 나머지 좌절하거나 아니면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은 높게 평가해야한다. 외교적으로는 피투안국왕 란트 1세의 딸, 그레이스 공주와 후에 황제가 되는 황태자 세인트 2세의 결혼을 통해 그 전의 피투안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탈피 강력한 맹방으로써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진 업적이 있다. <제국황제평전>타키투스 폰 힐튼 저-
"신디, 조심해."
"알았어, 오빠"
신디는 창가로 올라서더니 창밖의 경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황제로부터 받은 방은 그런데로 높은 위치에 경치가 좋은 방이었다. 창밖으로 보면 멀리 포세트립톤항과 바다가 보였고 성벽 너머로는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특별히 신경을 써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이번에도 리아인의 농간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아, 나 이 방에서 자본적 있어."
클라리는 방 구석 구석을 추억에 어린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했다. 방은 황궁 내의 방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하함을 주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황궁의 분위기 만큼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물론, 내가 상상하던 것 만큼 화려하는 않았다는 말이지 사우스 피투안에서 우리가 묵었던 그 비싼 여관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움이 느껴졌었다. 침대 세개, 그리고 긴 소파와 테이블, 빨간 벽돌로 된 벽난로와 자줏빛 커텐, 방의 높이만 아니었으면 꼭 최고급 여관에서 묵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았다.
"혹시 리아인하고 아이들을 여기서 돌본건 아니겠지? 클라리."
난 클라리와 리아인의 사이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심정에 클라리를 향해 말을 했다. 하지만 클라리는 눈을 크게 뜨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주인님아 어떻게 알았어? 이 방에서 아이들 어릴 때 돌봐줬었어. 주인님 스승님하고 세리언니하고 급하게 출전할 일이 있으면, 유모보다는 나보고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었으니까. 그럴 때는 옛날 주인님집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여기서 며칠간 지내면서 시녀들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돌봐주곤 했었는데."
그런 과거가 있었던 것이구나. 아무래도 황제가 우리의 숙소로 이 방을 골라준 것은 클라리 때문이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황제라는 입장에서 무시해도 좋을 우리의 존재에 이렇게 신경을 써준다는 사실에 조금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피,뭐해?"
소피는 등에 매고 다니던 자기의 활을 꺼내더니, 이 곳 저 곳을 만지고 있었다. 내 질문에 나와 눈이 마주친 소피는 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역시, 클라리하고 다른 점이 소피는 귀엽다는 느낌이 든다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많은 엘프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활을 손질하고 있어요, 자주 손질을 안해주면 줄이 늘어나서 못쓰게 되서..."
소피는 설명을 하려다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소피는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 애꿎은 활만 만지작 거렸다. 방금 전의 저 행동은 무슨 뜻이지? 조금...알 것 같기도하고, 모르겠다. 여자하고 엘프의 감정파악은 내 능력 밖인 것 같았다.
다시 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등 뒤의 방문 쪽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올 것이 왔구나. 황태자. 한숨을 내쉰 뒤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천천히 열었다.
"크리센 공, 황태자께서 공을 뵜으면 한다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회의실에서 황태자 뒤에 서있던 여자였다. 완벽하게 사무적인 목소리와 얼굴표정. 내가 추정하는 성격의 황태자가 보좌관으로 임명할 만한 여자였다. 뒤 쪽으로 꽉 묶은 머리는 붉은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머릿색을 알기가 힘들었다.
"황태자가. 날 보기를 원하신다라.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난 그 여자를 보며 평소에 내가 사용하던 말투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황태자의 보좌관이라지만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여자에게까지 내가 말을 높일 이유는 없었으니까. 반말로 한다고 그다지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뭐 레이디에 대한 예우에는 어긋나겠지만 보좌관이란 직책 자체가 레이디라고 불리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나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이 여자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역시, 감정이 거의없는 전형적인 일벌레 스타일이었다.
"나 잠시 다녀올께."
난 방쪽으로 돌아서서 한숨을 내쉰 뒤 말을 했다. 소피나 신디야, 내가 하는 행동에 토를 달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클라리 역시, 무슨 일인지 눈치를 챘는지 이번에는 꼭 따라 온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클라리의 본체는 꼭 옆구리에 찬체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에.
대체로 궁안에서는 검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나라는 전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황제 스스로가 워낙 검술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검을 못 차게 한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인지.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는 30년 전에 검사가 아닌 흑마법사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까.
황태자의 보좌관, 그 사무적인 여자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돌아올때는 어떻게 하지? 하긴, 길찾기 마법으로 대충 어떻게 하면 되겠지. 수도에 도착하기 전, 걱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 심정은 그런대로 편안했다. 황제의 확실한 확답이 있어서 인지, 뭐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부담감도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확실히 비 황태자파로 마음을 굳히고 난 뒤라 전보다 고민거리가 훨씬 줄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뭐 만약의 사태에 클라리를 빼앗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제국의 도시 몇개 정도 날려버리면 되니까. 황태자의 무기창고나 보물창고 같은 것도 함께, 그것도 핀누나가 막으면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황태자의 방으로 향하는 길을 보니 황태자의 방은 황제의 방과 같은 층이었지만, 위치는 반대쪽에 있는 것 같았다.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자. 방 배치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의미에서 황태자가 그렇게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도, 누구나 봐도 황태자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생긴 문이 보이며 침묵을 깨고 황태자의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이 곳 입니다."
이 황태자 보좌관도 딱딱한 얼굴 표정만 아니면, 그런데로 괜찮게 생기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품이, 보통 보좌관을 평민이 맞는 것과는 달리, 이 황태자의 보좌관은 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보좌관 하니까 클라리 생각이 난다. 이 보좌관과는 성격이 완전히 극과 극일 것 같다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보좌관의 뒤를 따라 난 마음을 다지며 황태자 방으로 들어섰다.
"크리센 경 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 보좌관은 방에 들어가며 그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마 황태자보고 하는 이야기겠지. 내가 방에 들어선 뒤에는 그 보좌관은 별 말 없이 문을 닫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쌩하게 부는 것이.
"잘 오셨소. 란트 크리센 경."
방에 들어가니 황태자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종이에 뭔가 쓰며 말을 했다. 책상 옆에 잔뜩 싸여 있는 서류들, 그래도 총리대신이라고 업무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서류를 쓰고 있는 가운데 언뜻 보이는 차가운 황태자의 눈빛. 절대 감출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무슨 일로 이 미천한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황태자."
난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내 말에 상당히 심사가 뒤틀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은 뒤 날쳐다보는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느껴지는 냉정함.
"오늘 회의에서의 활약은 잘 보았소. 당신에게 당할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 크리센공 당신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정말 내 실수야."
황태자는 천천히, 차가운 목소리를 되도록이면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며 나를 향해 말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나를 향한 녀석의 차가운 눈빛에서 그다지 악의가 느겨지지 않는 것일까? 공식적인 석상에서 그렇게 당했다면, 나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인데.
"그 말을 하려고 절 부르셨습니까? 황태자. 제국의 총리대신은 별 일이 없나 보군요. 그런 사소한 일로 영주나 불러서 말장난이나 하고."
황태자, 지금 속이 뒤집히는 중이겠지. 다른사람들은 자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할는 것이 당연할 텐데. 나야 뭐, 황태자한테 잘 보여봐야 덕볼 것이 없으니, 그다지 녀석에게 잘보일 필요가 없었다.
황태자의 방은 황태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듯 전체적으로 차가운 분위기였다.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차가움을 전혀 지울 수 없는 듯 보였으니.
"하하. 또 내가 당했군. 좋소 그럼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당신의 그 뛰어난 능력, 그리고 검술. 나를 위해 써줄순 없겠소?"
황태자는 쓰고 있던 국서를 이제는 완전히 한쪽으로 밀쳐내고는 나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별 표정없는 그의 얼굴 밑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그의 감정, 무엇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 감정이 그에게서 느껴졌지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뭘 잘못아시는가 보군요. 황태자. 전 황제폐하 이외에는 충성을 표시할 의무가 없습니다."
내 대답에 황태자는 조금 인상을 찌푸린체 한숨을 내 쉬며 말을 했다. 아직 녀석이 한숨을 내쉴만한 말은 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생각외로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제국 최고의 천재이며 변론술의 대가라던 이 황태자가 난 갑작스러운 황태자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말을 돌리지 마시오. 크리센경. 그러니까 이 황태자가 직접 부탁을 하는게 아니오. 날 도와준다면 당신에게 제국 북부, 동부 지역의 통치권..그리고 그외에도 수많은 이익을 줄 수 있소."
너무나 뻔한 이익, 솔직히 그러한 것을 원했다면 진작에 군대를 조직해서 정벌을 하고 다녔지, 시골 마을이나 지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약한 피투안 정도라면 한달안에 전 지역을 정복할 자신도 있었으니까. 국왕도 될 수 있는데 고작 대영주 직위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당신 세력에 들어가는 대가는?"
대가야 알고 있었지만,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날 끌어들이려는대는 내 능력 말고도 딴 욕심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드는 것은 왜일까?
"대가야. 뭐 대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오. 당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그 검하나면 충분하니까."
하. 역시 클리리를 노렸었군. 예상했던 것 처럼, 리아인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제 확실히 견론이 났다. 황태자 저놈 편에는 절대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클라우 그녀석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황태자를 결정한 걸까? 클라리 때문에.
"거절하겠습니다."
내말을 듣자.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황태자는 가볍게 웃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다시 그 짜증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의 웃음에서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역시. 크리센공 당신이 그렇게 나올줄 알았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당신의 영지가 내 직속 친위군에 의해 짓밟혀도 괜찮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밖에. 수만의 군대가 몰려가면 당신의 그 영지가 버틸 수 있을까..? 가난에 찌든 그 허약한 잡종족들로."
이 것이 지금, 뭐라고 했나? 하, 이제는 인질극이다 이건가 황태자. 녀석은 더 이상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한듯, 변론술의 대가라는 그 명성이 아깝게 가장 치졸한 방법인 협박을 동원하고 있었다. 난 화가 나서 칼을 뽑으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 상황에서 칼을 뽑으면 나만 피해를 볼 뿐이다. 어떻게 황태자 이녀석을 죽이고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신디나, 소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니. 역시 가이우스의 예상이 맞았다. 힘으로 해결하려는. 정말, 갈수록 싫어지게 만드는군. 황태자.
"하하하. 황태자. 스승님에 대한 예우 때문에 말을 높여줬는데 안되겠군.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해! 총 군사동원력이야 8천밖에 안되는 주제에 수만이라...아! 이제 5500이었던가."
이 녀석에게 말을 높일 필요는 전혀없었다. 분명이 자기 입으로 선전포고를 해왔으니까. 정말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지경이었다. 분명히 일년 전의 나였으면 참지못한체 저 녀석을 단칼에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수도에 처음 온 당신이? 또, 가이우스 그녀석의 농간인가?"
황태자는 자신의 군사동원력이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미소를 잃지 않고 있던 그 얼굴을 조금 찌푸리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아니, 가이우스를 향한 이유모를 분노마져 느껴지는 것같았다. 그런데 내가 말안해도 가이우스라는 걸 아는 것 보면..숙적이긴 숙적인가 보군.
"당신의 그 말은 이 황태자에 대한 도전으로 알아듣겠소. 크리센경."
황태자는 분노를 곧 가라앉히고 얼굴에 다시 그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했다. 녀석의 협박 따위는 이제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도전...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아무튼, 황태자 당신의 군대가 내 영지에 한발자국이라도 내 딛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길. 아시다시피 난 피투안 국에서 한 때, 현상금을 천만골드까지 건 살인마였었지. 이제 얼마 더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정 못믿겠다면 지금 이자리에서 보여줄수도 있지."
난 황태자 오른편의 창가로 보이는 바다쪽을 보며 주문을 외웠다. 북부산맥 속에서 사용한뒤 다시는 쓰지 않았던 그 마법. 되도록이면 도시에서 먼 곳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며, 가까이 떨어져도 할 수 없지. 그 때는 제국의 수호신인 핀 누나가 해결해 줄테니까.
"위크닝 미티어 스트라이크(weakening meteor strike)".
황태자는 내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짖기 시작했다. 저녀석 아직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아니면 마법을 조금 쓸 줄 아는 정도인줄만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커다란 빛을 내며 수평선 저 쪽으로 작은 운석이 떨어지는 것이 창가로 보였다. 수평선 저 끝에서 치솟는 물기둥이 이 곳에서도 보일 정도 였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운석이 내가 의도 했던 것 대로 작은 것이 떨어진 것 같아서. 해일이 도시까지 오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배들이 얼마 후 크게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이며, 도시 주민들에게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황태자는 얼굴에서 미소를 완전히 잃고, 넋이 나간 듯 수평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쯤에서 나가 줘야지 대충 내 의도는 전한듯 싶으니까, 이제 저 녀석도 말은 알아들었겠지.
"황태자. 당신이 내 충성을 원한다면 내가 존경할 수 있도록 그 자격을 갖춘 뒤, 그 때 다시 부르길. 그 때 당신의 제안은 다시 한번 살펴 보지. 아..! 그리고 당신 아버님께 감사해야 할거요.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당신의 목숨이 어떻게 됬을지 보장을 못했을 테니까."
난 창가쪽을 쳐다보고 있는 황태자를 뒤에 둔체 방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순간 나를 향한 녀석의 눈빛에서 분노보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보인 것 처럼 느껴진 것은 왜일까? 설마 황태자가 그럴리가 내 착각이었겠지. 어휴.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일까?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물러설 때 없이 난 비황태자파가 되었으니. 왜 무거운 짐을 일부로 지는 걸까? 난.
아니다. 혼자일때 곁에 있어준. 클라리, 이녀석을 나 혼자의 안식을 위해서 버릴 수는 없었다. 고작, 제국 북부령정도에. 그리고 황태자나, 클라우. 두 녀석 모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 손에 클라리를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쨌든 난 다른사람들이 피의 마왕이라 부르는 존재 이니 만큼, 나름대로의 자존심과 신조는 있으니까.
난 천천히, 황궁의 긴 복도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 인생의 긴 행로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