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3장 수도 포세트립톤 (4) 황태자의 첫사랑(수정)
푸른바람·2002. 3. 9. PM 3:32:21·조회 3553·추천 78
에피소드16 황태자의 첫사랑
-세인트 1세, 그 무섭도록 냉정하고 이성적인 그도 일생동안 사랑한 여자가 딱 한명 있었다고 한다. 그 여인에 외모에 대해서는 연 갈빛 긴 머리결에 바람이 불면 부러질 것만 같은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고만 전해지고 있다. 피투안 국왕 란트 1세의 동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로 란트 1세의 경우는 동생이 없었으므로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음유시인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세인트 1세의 그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다. <제국황제평전> 타키투스 폰 힐튼 저-
윽. 머리가 아프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니. 꽃들과 나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황궁의 정원인 것 같은데. 역시 술을 너무 마시는게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제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정원에 나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떠오르는 것 같다. 하긴, 정원에 있는게 어때서? 그냥 방으로 올라가기면 하면 되니 그다지 별 문제는 없었다. 노숙을 했다는 것이 조금 그렇지만 지금 자세를 보니 얌전히 앉아있는 것 같으니 옷이 그다지 헝클어졌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몸이 뻑뻑해서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게 기분이 영 이상했다. 어쩐지 전에 리아인과 소피가 술을 마시고 하루종일 잠만 자더라 했더니, 이런 것이었나보다. 앞으로는 조심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뭔가 걸리적 거리는 것 같은데. 술을 마셨다고 이런 느낌이 들리는 없고. 잠깐, 그런데 뭐야? 이거?
잠깐, 이건 여자 옷인데...설마....?!
여자 드레스 였다. 치렁치렁한 드레스. 그것도 분홍색으로...내가 여자 드레스를 입고 있다니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난 근처에 있는 연못가로 허둥지둥 걸어갔다. 하지만 그 것도 이놈의 치마와 뾰족한 구두 때문에 마음데로 걸어 갈 수가 없었다. 연못가에 서서 연못을 보니, 연못의 물에 흐릿하나마 내 모습이 비춰졌다. 이 머리 모양하고, 이 옷은 확실히 여자들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큰일이다, 사우스 트립톤에는 아는 사람이라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이 황궁에서 누구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안 될텐데, 어떻게 할까? 투명마법을 쓸까? 하지만 투명마법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하니. 지금과 같이 내가 아닌 존재가 사용한 마나가 넘쳐나고 있는 이 황궁에서는 안될 것이고.
난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연못가에 주저 앉아 어제의 기억을 곰곰히 더듬기 시작했다. 연회에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뭔가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생각이 안난다. 아 그래! 얼핏 기억나는 점이 방으로 돌아와 클라리보고 내가 어떻게하면 기분이 풀어지겠냐고 했더니 여자옷을 딱 한번만 더 입어봐라고 클라리가 말한 것 같은데.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내가 한다고 한거야? 그러고 나서 왠지 더워서 밖으로 나온 것 같은데.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떠오르지 않고 희미한 부분부분 기억의 파편만 생각이 났다. 나중에 클라리를 만나면 물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따니? 일단 방으로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급선무 일 것 같았다.
난 연못가에서 일어나 일단 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아 걷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게다가 뱃속까지 서서히 쓰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술이란 것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천천히 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겼다. 하지만 갑자기 스르르 다리에 힘이빠져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온몸에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정말 이게 무슨 망신인지. 누구 본사람은 없을까? 꼭, 돌길을 걸을 때 소피가 되버린 듯한 느낌이 었다. 그리고 그 때 소피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역시 술이란 것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 가다니. 하지만 클라리는 이번에도 여전히 멀정하겠지?
일어서는 것도 힘이 들었다. 한참동안 일어서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고마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내 목소리를 아는사람이 들으면 안되는데.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도 아무래도 내 목소리가 아닌 것은 것이 조금 이상했다.. 매우 가늘고 약한 톤의 목소리, 꼭 여자 목소리 같았다..술을 마시고 나면 그 다음날 목소리가 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래선 완전히 여자 같잖아. 아이고, 그런데 누가 내손을 잡아줬지? 일어서서 난 내 손을 잡아 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빛 머리 날카로운 분위기의 얼굴, 황태자잖아. 설마 하지만 저 녀석 얼굴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워낙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아이고, .이녀석 내가 누군지 알면 안되는데, 무슨 망신이야. 저런 녀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두고두고, 약점이 잡힐지도 모르는 일인데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녀석을 마법으로 날려버리고 도망칠까?
"레이디께서는 저가 뵌적이 없는 분이신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잠깐 저녀석,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 것인가? 황태자, 다행히도 내가 누군지를 아직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혹시 나를 놀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닐 것이다. 황태자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황태자라면 금방 알 것이니 되도록이면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감돌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황태자의 그 차가웠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져있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듯 한데. 황태자, 제발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마라구. 네 녀석하고는 안어울려. 황태자는 역시, 예전의 그 차가운 눈빛이 잘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 여자라고 저런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다. 어제 그 무도회에서 황태자에게 접근을 했던 수많은 여자들 모두 나름대로 괜찮게 생긴 여자들도 많이 있었음에도 황태자는 쭉 차가운 눈빛과 냉소만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르쳐 드릴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되도록이면 원래 나의 느리게 천천히 말하는 듯한 말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클라리와 비슷한 되도록이면 빠르고 높은 음의 말투를 쓰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선 목소리가 변한 것이 정말 천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제가 실례를 한 것 같군요. 전 세인트 반 리투안, 제국의 총리대신입니다. 아가씨는?"
흠. 이녀석 진짜로 소개를 하다니. 하지만 이녀석도 여자와 이야기 하는 것에서 서투르 다는 것이 느껴지는 점이.나와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내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말을 돌려야겠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방금 전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하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책에서 읽었던 좋은 구절이 있었는데 아!
"피, 아저씨가 총리대신이면 전 영주님이에요."
'피'라...클라리가 이 광경을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비참해 지는군. 그리고 난 사실데로 말했다. 어찌됬건 나는 영주는 영주이므로. 세인트 그녀석 내대답에 당황해 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전에 회의를 할 때, 당황해 하던 모습과는 다른. 좀 뭔가 많이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세인트도 여자만 만나면 당황해 하는 나와 비슷한류가 확실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세인트라고 부르십시오. 그럼 레이디를 저가 어떻게 불러야 됩니까? 영주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이녀석 그렇게 까지 내 이름을 알고 싶나? 안어울리게 그렇게 썰렁한 농담을 하다니. 그냥 란트 크리센 이다라고 해버리고 싶지만, 이 상황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손해를 보는 것은 나이므로 참기로 했다. 흠. 괜찮은 여자이름이라. 엄마이름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미카에요. 나머진 비밀."
아. 내가 들어도 닭살이 나는 듯한 내 말투와 목소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될까? 정말 마법으로 황태자 녀석을 날려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다. 하지만 어제 황태자 앞에서 저질러 놓은 일때문에 마법을 쓰면 내가 누군지는 머리좋은 황태자가 추측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미카양, 이 넓은 곳에서 혼자 뭐하고 계셨습니까?"
그런건 왜 묻는거야?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렇게 오래 말을 붙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상황을 보니 이녀석이 내가 가는 곳은 끝까지 따라 올 것 같은 분위기이므로. 방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이상황에서 그냥 잠시 말상대를 해주며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겠다.
"아저씨한테 꼭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요. 정원이 예뻐서."
술취해서 여장하고 밖에 나와서 잤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갈수록 내 기분이 비참해졌다. 정말 이래서는 가이우스보고 이중인격이라고 뭐라고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미카양, 제가 이 곳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제가 안내를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런데 이 녀석 취미가 이상한 것 아니야? 아무리 만약 내가 여자라고 칠 경우에는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라고 하더라도. 연못에 비쳤던 내 모습을 볼 때, 절대로 내 원래 나이인 16살 이상으로는 안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황태자 자신보다 10살이나 작은 여자애한테, 아니 정확히는 여장 남자에게 아무튼 왜이렇게 관심을..보이는 거야? 정말 황당스러울 뿐이었다.
"모르는 아저씨를 따라갔다가, 무슨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전 방으로 돌아갈꺼에요."
세인트, 그 차갑게 생긴 이성적인 남자가 무모하게 여자에게 쓸대없는 짓을 해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겠냐마는 이 녀석을 떨굴만한 핑계가 그런 것 밖에 었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황태자 녀석은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계속 이래저래 고민을 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에게 약하다고 해도 어제는 그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런 표정을 하고 있진 않았는데.
"그럼 방까지 제가 모셔 드리겠습니다."
그럴순 없지. 절대로 내가 뭐 때문에 지금 방으로 뛰쳐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싫어요. 전 모르는 남자가, 그것도 아저씨가 졸졸 따라다니는 건 정말 싫어."
흠...정말 내말투, 내가 생각해도 못 봐주겠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클라리나중에 두고 보자. 그리고 하필 만난 사람이 황태자, 이녀석 일께 뭐람. 리아인이었다면 그냥 도와달라 했고 무사히 넘어 갔을텐데. 운명의 신의 장난이란 사람을 너무 곤란하게 만들었다.
"할 수 없군요. 미카양, 다음에 만날 방법은 없겠습니까?"
이녀석. 상당히 미련이 많은 것 같다. 후에 황태자령으로 내 존재를 알기 위해 전국을 뒤지는 것이닐까? 황태자 녀석, 성격을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저씨."
이쯤에서 녀석과 떨어지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에 난 그녀석을 뒤에 둔체 급하게 정원의 구석진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직도 어제 술마신 후유증이 남아있었던 까닭에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놈의 구두는 뛰어 가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가운데 갑자기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또 넘어져 버렸다. 황태자 녀석 앞에서 무슨 망신이야? 난 바닥에 주저 앉은체로 치마를 살짝 들고 무릎을 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 아까는 그냥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아버린 형국이었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달려가다 넘어진 까닭에 다리에 상처가 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치료마법을 쓸수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황태자, 저녀석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이정도 상처는 간단하게 치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황태자 정이 안간다니까.
"미카양 괜찮습니까?"
황태자 녀석이 내가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여오는 것이 보였다. 제발. 네가 사라지는 것이 날 돕는 거라구. 난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잠시,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칼에 베이는 것에 비해 무릎에 상처난게 뭐 대수겠냐마는 이상하게 예민해진 감각이 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예전엔 칼에 몇군데 베여 상처를 입은체로 돌아다녀도 멀쩡 했었는데.
"이런. 피가 나는군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황태자 녀석. 참고로 말하지만 저 얼굴에 누군가를 걱정한느 듯한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무릎을 다쳤다고 했소? 그렇다면 다리를 잘라버리는게 좋을 것 같군.' 하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릴듯 싶으니.
황태자 녀석, 하지만 내 상처를 보더니 갑자기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피가 나는 내 무릎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황금빛실로 테두리에 수가 놓여진 황태자의 손수건이었다. 누가 황태자 아니랄까봐. 손수건도 그런 것만 들고 다닌다니까.
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한점이 그렇게 매일 산을 뛰어다니고 나무를 하고 검술 수련을 하고 하는데도 난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이 나이 때가 되면 남자는 그다지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근육이 생기는 것이 정상이라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남자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어깨도 좁고 여자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리게 되 버렸다.
"미카양, 제가 정원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황태자 녀석, 그 말과 함께 거의 강제적으로 내 허리를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거의 안고 가다시피 해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 녀석, 남의 허리는 왜 잡고 있는거야? 하지만 황태자 생각보다 힘이 좋았다. A-클래스란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군. 쩝...황태자 녀석 역시, 키도 나보다 훨씬 크니.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이전에는 나 역시 내모습을 몰랐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지만 거울로 본 내 모습 키도 작고,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휴...하지만 그런 나에 반해 황태자 녀석은 키도 크고 적당히 체격도 있고 몸의 중심이 잡힌 점이 훨씬 더 남자 답다고 해야 하나?
"아저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어쩔 수 없다. 난 여전히 여자 목소리로 말을 하며 황태자의 팔에 매달린 몸을 바둥 거렸다.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황태자가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그냥 이렇게라도 해야 황태자 녀석이 징그러운 그 손을 내 몸에서 땔 것 같다.
"죄송합니다. 미카양 이렇게 하면 넘어지시는 일은 없으실 테니. 조금 참으십시오. 제가 정원에서 제일 멋진 장소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멋진 곳이고 뭐고, 난 내 방으로 돌아가서 원래 내 옷을 입은 뒤, 쉬고 싶을 뿐이였다. 정말 지금은 그 것 말고 더 이상의 소망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이녀석은 어제 술을 마시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녀석의 몸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역시 머리가 좋은 만큼, 황태자 녀석은 쓸 때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꼭 납치하는 것 같잖아요. 아저씨. 정말 안 놓으면 소리 지를꺼에요."
협박을 해야지. 이 녀석 여자에게 이러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들킨다면 신상에 그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제국의 황태자로써의 체면을 지켜야 하는 입장일테니.
"알겠습니다. 미카양 "
황태자 녀석,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팔에서 힘을 빼버렸다. 미쳐 준비를 하지 못한 내가 또 넘어지려 하는 것을 황태자 녀석이 잡아 줘서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갑자기 놓아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놈의 황태자.
"앗...그렇다고 갑자기 힘을 빼면 어떻게 해요."
정말, 클라리에게 배운 연기실력. 정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나 마음은 더욱더 비참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미카양.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황태자 녀석을 보니, 매우 당황해 하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정말 안 어울리게 그 나이 되도록 데이트 황태자는 데이트 한 번 해본적이 없는 걸까? 꼭 그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황태자 녀석에게 거의 끌려서 그렇게 난 정원 한쪽으로 황태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말 난 왜 이렇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일이 종종 생기는지 모르겠다. 클라리나, 이번에는 황태자. 정말 살을 찌우던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황실 정원의 모습은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구경하기에는 상당히 괜찮았다.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 우리 마을에서 볼 수 없었던 식물들의 모습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한 사실을 즐기기에는 좋지 않았다.
"미카양은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갑자기 쓸데없이 황태자 녀석은 그 것은 왜 또 묻는 것일까?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황태자 녀석을 쳐다보자 나를 보던 황태자 녀석이 헛기침을 몇번 한 뒤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저요? 16살. 아저씨는요?"
이번에도 난 오로지 사실대로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로 내가 사용하는 이 말투..정말....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앞으로는 말을 되도록이면 짧게 끝을 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는 몇살이지? 말을 해놓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것도 궁금했다.
"아...전 26살입니다.."
안어울리게, 뭔가 부끄러운듯 황태자는 조금 머뭇 거리며 말을 했다. 역시 나이가 많은 황태자 였다. 그런데 26살 짜리가 16살짜리에게 눈독을 들이는건 범죄란 생각이 드는데 범죄...이 녀석도 미성년자 보호법이 지정된 나라로 끌고가서 신고를 해야 될 놈이었다. 난 되도록이면 황태자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빌며 어쩔 수 없이 순순히 황태자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됬건 기회가 생기면 잽싸게 도망쳐야겠다. 이 구두 때문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멋진 장소로 온다더니, 왜 벽있는 곳으로 온거야? 설마, 이 녀석, 딴 생각으로...?! 키스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난 조금 긴장을 하며 서 있었다. 위급하면 마법을 쓸 마법을 마음 속에 떠 올리며. 하지만 다행히 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황태자는 벽쪽으로 걸어가 벽의 벽돌 한 곳을 밀었다. 그리고 벽돌이 들어가는 순간에 황태자가 서있던 곳의 벽이 돌아가면서 문이 열렸다. 비밀 문인가? 황태자 별 것을 다 아는군. 이 곳에서 26년동안 살았을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미카양 이쪽으로.."
말은 권하는듯이 하는 황태자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거의 강제로 끌고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런 까닭에 녀석이 들어가면 마법을 사용해 강제로 벽을 닫고 도망치려고 했던 계획도 실패했다. 녀석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 앞에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들어간 정원 그 자체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멋진 곳이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으로 정원 주위의벽이 투명하게 되있었다. 물론...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벽이 없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투명 마법을 이렇게 오래 지속시키다니, 이 것역시...핀누나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투명한 벽 너머로 바닷가의 경치가 그대로 보여졌다. 황태자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풍경, 잠깐 황태자의 방이 1층인데도 황태자 방 창으로 밖을 보았을 때, 성벽으로 그 풍경이 가려져야 정상임에도 가려지지 않은체 바닷가의 경치가 보였었었다. 난 혹시나 하는 심정에 뒤를 돌아보니, 투명해진 벽을 통해 황태자의 방의 창문이 이곳에서 보였다. 이런 저런 놀라운 광경에 난 주위를 조금 호기심을 담아 둘러보고 있었다.
"사실 이 주위는 투명한 벽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제 방에 있는 창을 통한 경우는 제외하고는 안에서는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다 볼 수 없죠. 미카양 놀랍지 않습니까?"
황태자는 무엇인가 아주 큰 비밀을 말하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쩝..하지만 난 이미 그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황태자의 이미지만으로 볼 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황태자 녀석은 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수긍하는 의미로 해석 했는지 계속 다음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이곳을 발견하고 거의 매일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놀사람도 없고, 그리고 이 주위는 다른사람도 안오기때문에 조용해서 책을 읽기도 좋아서.."
잠깐,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솔직히 난 적의 하소연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황태자 녀석은 이런 내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평한 돌을 찾더니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힘든 듯, 이야기를 계속 하는 황태자.
"저한테 남자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녀석은 신기하게도 친구들이 많더군요. 저와 똑같은 조건임에도...어디서 사귀는 지는 몰라도 동생이 친구가 많고 인기가 많다는 것에 솔직히 질투가 나는 것도..사실입니다. 그래서 좀, 동생한테 못할 짓도 많이 했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동생을 육체적으로 괴롭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또,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이 곳에서 어릴 때 제가 운적도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바쁘시고, 아버지 역시, 한번 집에서 나가면 몇년동안 들어오실 줄을 모르시니. 고민을 말할 대상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든 뒤에는 제 자신의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이 녀석도 가이우스와 비슷한 고민을하고 있었군. 그런데 왜 하필 내 앞에서 모두들 말이 많아지는 것일까..정말 그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황태자의 아버지 건에 대해서는 쫌 찔리는 바가 없지 않다. 시간 상으로 보면 스승님이 나와 있었을 무렵은 이미 황태자가 큰 다음이었지만 어쨌든 나도 스승님이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황태자는 기분이 울적한듯, 말을 멈춘체 투명한 벽쪽으로 멀리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황태자를 벗어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저..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전 이만 가볼게요. 그럼 다음에 다시 봐요."
다음에 다시 보긴 뭘봐? 제발 보는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난 그 황태자의 비밀 정원으로 부터 잽싸게 나와 근처 풀 속에 숨었다. 그리고 황태자 녀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황태자 녀석은 곧 내 뒤를 따라 근처까지 와서는 한참동안 내가 간 곳을 찾는 듯하더니 무척이나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한체 포기하며 황궁쪽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설마 내게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 여장 남자한테, 아니 진짜 여자라고 하더라도 출신을 알 수 없는 어린애 한테그 잘나고 머리좋은 황태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으니까.
난 황태자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풀숲에 숨어 있은 뒤에 풀 숲에서 벗어나, 아까 본 문을 통해 궁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따라 우리 방이 높은 곳에 배정 되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 웠다. 또 누구를 마주쳐야 될지 모르니. 난 조심스럽게 건물의 안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복도 하나를 지나고 또 하나를 지나고. 조금만 더 가면 우리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쪽으로 트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제발 모르는 사람이기를...잠깐 저 사람은...?
황제였다. 그런데 황제는 혼자서 그 것도 황제가 입고다닐만한 옷이 아닌 무척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디에 가려고 하는 듯한 눈치인데 황제는 어디를 가는거지?
"황제 폐하...."
난 놀란 목소리로..무의식적으로 황제를 보며 말을했다. 황제의 놀라운 옷차림에 잠시 내가 처한 상황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는 황제의 표정 역시 놀라움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은 나 역시 조금 당황한 느낌이 들었다.
"란트 아니니? 그런데 그 옷차림하고 머리 모양하고 또 목소리는 왜 그런 거야?"
이 모습을 보고 .나라는 것을 척 안 사람은 황제가 거의 처음이었다. 정말, 황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흠...이런 것은 황제인 것과 별 상관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정말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고마웠다.
"상황이 그렇게 됬어요. 폐하 제발 도와주세요.."
내 곤란한 목소리를 들은 황제는 살짝 웃으며 말을했다. 그런데 황제한테 이렇게 아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람들 없을 땐 누나라고 불러라고 했잖아. 란트. 그런데 그렇게 입으니까 정말 여자같은데. 나도 깜빡 속을 뻔 했지 뭐야."
속일려고 속인건 아니라구요. 이건 순전히 클라리의 농간인데. 난 당황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의 옷차림은 연회장에서 입었던 그 금빛 찬란한 옷차림과는 완전히 다른 꼭 하녀들이 입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디 몰레 가려는 옷차림인데. 엄마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에 황제가 공주일 때도 궁에서 종종 빠져나와 도시에 놀러가곤 했었다고 들었다.
"위에는 손님들 숙소가 있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 몰래 방으로 돌아가기는 힘들텐데.란트. 할수없지..오늘 궁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가는건 포기해야 할 것 같군. 란트 날 따라와."
황제는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말을 했다. 황제 역시, 스승님처럼 혼자서 말하고 답을 하는데 익숙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었던가? 아무튼...그런데 황제가 몰래 황궁을 빠져 나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런지. 나이 50이 다되어가는 상황에 황제가 공주였을 때처럼 놀러간다는 것은 더 이상했고.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거 믿을 사람은 황제 밖에 없으니. 그냥 황제 뒤를 따라 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서 이쪽으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듯 했지만 계단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황제가 발을 몇번 톡톡 굴리자. 계단 옆으로 통로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뭐지?.그렇다면 엄마가 해줬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었나?
"예전에 내가 공주였을 때 주로 쓰던 비밀 통로야. 뭐 요즘에도 종종 사용하지만.."
황제의 답이 엄마가 해줬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내가 통로로 들어가자마자 그 통로의 문은 저절로 닫혔다. 비밀 통로 안에는 사람 한명이 간신히 지나갈 듯한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황궁의 복도와는 다르게 매우 어두웠다. 도저히 걷기 조차 힘든 상황. 난 무의식 적으로 라이트 마법을 써서 길을 밝혔다.
"아! 란트 너 마법도 쓸 수 있다고 했었지? 아니면 빛의 정령들 도움을 받아도 되는데."
빛의 정령? 황제가 정령술도 쓸 수 있었나? 엘프도 아닌데. 어떻게 정령술을...난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며, 황제가 정령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비밀통로에는 계단도 많이 있었다. 통로를 통해 걸어가는 동안 엄청난 숫자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으니, 이 곳을 걷는 것 많으로도 체력 훈련의 효과를 상당히 볼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니, 복도의 끝에 막다른 벽이 나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이 다시 황제가 벽의 어느부분을 톡톡 몇번 치자 벽이 갈라지며 아니 열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우리는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가 나온 곳은 바로 일층 복도에 있는 회의실의 앞이었다. 황제도 정말 대단한 여자라니까? 나이든 여자같지 않게 모든 면에서 젊은 사람들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이렇게 사니 늙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두사람은 급히 회의실로 들어가간 뒤, 황제의 방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황제의 방앞에 경비병도 안세워두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그 사실이 다행이었지만 아무튼 이해하기가 힘든 나라였다. 황제는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 허름한 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평소에 황제가 입고 다니는 남자같은 옷이 밖으로 들어났다.
"폐하.....아니..누나 정말 고맙습니다."
"란트 그건 누나 한테 하는 말투가 아니잖니. 그리고 그 옷차림으로 그런 말투로 말하면 정말 안어울려 란트."
황제까지 나를 놀리다니. 정말...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휴...
"란트가 여자였으면 세인트한테 소개 시켜 주는건데. 잘 어울릴 것 같아. 세인트의 그 성격도 많이 고쳐질 것 같고. 세인트는 결혼할 나이가 다 되도 도저히 애인을 만들 생각을 안한다니까..난 세인트보다 더 어렸을 때 세인트를 낳았는데.."
황제의 말에 난 삼키던 침이 목에걸려 기침을 한참동안이나 해야 했다. 갑자기 황태자 이야기를 꺼낼께 뭐야? 안 그래도 그 황태자 세인트 녀석 때문에 한참이나 고생을 하고 왔는데.
"란트, 왜그래? 무슨일 있어?"
"아..아닙니다."
황제는 기침을 하는 나를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놀란 내가 정색을 해서 부인을 하자 어깨를 한번 으쓱 한다음, 전에 시녀들을 부를 때 썼던 그 줄을 또 잡아당겼다. 그러자 밖에서는 보지 못했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정말 순식간에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크리센 영주님 방으로 가서. 영주님의 옷을 하나 받아서 들고오도록."
다시 힘있는 근엄한 목소리로 시녀에게 명령을하는 황제, 이 사람이 완벽한 이중인격인 것 같다. 황제는 시녀가 나가는 것을 본 뒤에야 황제는 다시 원래의 평범한 목소리로 날 보며 말을했다.
"란트 이번에 도와준건 빚이란다. 빚..나중에 내가 부탁하는 것 있으면 꼭 들어줘야 해."
황제가 부탁하는데, 거절할 사람이 이 궁안에 누가 있을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내려더 다 들어야줘야 할 것이다.
"네. 누나....."
난 황제에게 답을 하며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내 작은 경험으로는 너무나 힘든 황제였다. 내 연구 대상에 오늘 부로 두사람이 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시작한 뒤부터는 수도에 들어와서 역시 정신없이 지내기는 마찮가지인 것 같다.
"그 모습으로 누나라고 부르니까 이상한 것 같아. 나도 여자동생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냥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지 않겠니? 란트."
이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한데. 이 황태자하고 황제, 모자간에 오늘 날 잡아먹기로 작정을 한 것일까?
"네?"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체 답을 했다. 그러지 황제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한참동안 웃은 후에야 말을 했다.
"아냐 농담이야.농담. 그렇게 화난 표정을 하지마렴. 아! 그리고 며칠 뒤에 검술대회가 시작 되니. 란트 준비하고 있어. 대회에 등록은 내가 시켜놓을 테니, 그런 사소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검술대회라....휴, 우승할 수 있을까? 실력을 모르는 사람들 투성인데, 그리고 마법대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뭐, 검술대회야 대련 형식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마법 대회는 도저히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그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 하녀가 옷을 받아온 것일까? 그리고 문이 열렸다. 하지만 들어오는건 옷이 아니라....황태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폐하. 연말 예산 사용 총 결산표를 가져왔습니다."
"세인트 딱딱하게 폐하가 뭐니? 평소에는 엄마라고 해라고 하지 않았니?"
황제ㅡ 절대로 황태자의 엄마로 안보였다. 지금 보니 오히려 황태자의 동생 같아 보이기 까지 한다. 어쨌든 다행히, 지금까지는 황태자의 시야에 내가 안들어온 것 같았다. 제발 내게 관심을 가진다거나 하지 말기를...하지만 내 작은 소망은 곧 물거품이 되었다.
"미카양? 미카양이 여기에 어떻게?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황태자는 날 보더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말을 했다. 지금 황제 앞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잃어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원망스럽다는 듯한 그 눈빛 역시 황태자와는 그다지 안어울리는 것 같았다.
"미카..? 둘이 아는 사이였니?"
황제는 황태자의 소리를 듣더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은 후에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 나와 황태자의 모습을 동시에 쳐다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황태자 녀석은 날 쳐다본다고 정신이 없어 황제의 반응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인트,. 그냥 서류는 거기 두고 가렴. 미카양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니까."
황제, 위기에서 두번이나 나를 구해 주었다.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중에 황제가 무슨 부탁을 할지는 몰라도 되도록이면 들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습니다. 폐하."
황태자는 여전히 그 안어울리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듯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황제의 방을 나섰다. 아무리 황태자라도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황태자가 나간 직 후, 황제는 거의 바닥을 구르기 일부 직전의 수준으로 웃기 시작했다.
"란트...황태자한테 여자라고 속였어? 미카라..,정말 대단해. 그 똑똑한 아이를 어떻게 두번이나 당하게 하다니. 정말 넌 신동이란 소리를 들을만해."
내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한참이나 즐거운 듯 웃다가 방문이 다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짖는 황제. 할말이 없군. 그리고 문이 열리며 다행히 이번에 들어온 것은 옷을 들고 있는 시녀였다. 그리고 뒤를 따라 들어오는 이 모든 사건의 원흉 클라리....시녀는 옷을 놓고는 소리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클라리, 란트를 저렇게 꾸민것 클라리 네 솜씨 아니니?"
시녀가 나가자 황제는 다시 근엄했던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을했다.
"응, 언니. 우리 주인님 예쁘지?"
난 클라리를 향해. 화가 담긴 눈빛을 묵묵히 보낼 뿐이었다. 클라리, 못본척 해도 소용없어. 난 계속 클라리를 노려보며 시녀가 놓고간 옷을 주섬주섬 주어 들었다.
"그래.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날 정도야."
답을 하는 황제. 하지만 황제한테야 할 말이 없었다. 황제 아니었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 난 커텐 뒤로 걸어가 그 안에서 머리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여자 옷은 벗기에도 번거로웠다. 밖에서 황제와 클라리가 열심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들어봤자 내게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을테니. 화만 더 날 것이 뻔했다. 난 옷을 다 갈아입은 후, 커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누나 감사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난 황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뭐, 다른 사람들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야. 황제 성격으로 볼 때 조금 무례하게 행동해도 되겠지. 그리고 클라리를 그대로 뒤에 둔체 방 밖을 향하는 것으로 클라리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란트.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는 것 잊으면 안된단다."
다짐하는 듯한 황제의 목소리가 내 뒤쪽으로 들려왔다. 황제 폐하, 도와주셨는데. 제가 뭘 못 들어드리겠습니까? 휴, 정말 내가 이런 외모를 가지게 만든, 신이 원망 스러웠다. 방 밖으로 나온 내 뒤를 클라리가 급하게 따라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클라리는 어제보다 기분은 많이 좋아진 것같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전처럼, 오랫동안 기운 없이 마음을 아파하면 어떻게 할까 했는데. 목걸이를 만져보니 아직 안전하게 내 목에 걸려 있었고 클라리의 본체 역시 무사히 있는 것이 느껴졌다. 쩝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하는 존재인데. 왜 난 클라리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모르겠다.
클라리는 나를 따라 같이 걸으며 내머리를 어제의 그 파란끈으로 묶어주었다. 난 클라리가 내 팔에 매달리는 것도 모르는 척 걸었지만, 클라리가 어제 일로 힘없어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다. 정말 내 마음을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아. 화내지마. 나도 나중에 주인님이 부탁하는 것 하나 들어줄께."
"......."
훔훔 아무리 그래도 아직 클라리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있었던 일이 보통일이어야지. 그렇게 수도에서의 작은 사건이 끝이났다. 하지만 끝일 줄 알았던, 이 사건이 나중에 그렇게 까지 크게 확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오랫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불려질 말도 안되는 사랑이야기 한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숨겨진 진짜,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기 시작하는 것도.
-세인트 1세, 그 무섭도록 냉정하고 이성적인 그도 일생동안 사랑한 여자가 딱 한명 있었다고 한다. 그 여인에 외모에 대해서는 연 갈빛 긴 머리결에 바람이 불면 부러질 것만 같은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고만 전해지고 있다. 피투안 국왕 란트 1세의 동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로 란트 1세의 경우는 동생이 없었으므로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음유시인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세인트 1세의 그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다. <제국황제평전> 타키투스 폰 힐튼 저-
윽. 머리가 아프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니. 꽃들과 나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황궁의 정원인 것 같은데. 역시 술을 너무 마시는게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제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정원에 나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떠오르는 것 같다. 하긴, 정원에 있는게 어때서? 그냥 방으로 올라가기면 하면 되니 그다지 별 문제는 없었다. 노숙을 했다는 것이 조금 그렇지만 지금 자세를 보니 얌전히 앉아있는 것 같으니 옷이 그다지 헝클어졌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몸이 뻑뻑해서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게 기분이 영 이상했다. 어쩐지 전에 리아인과 소피가 술을 마시고 하루종일 잠만 자더라 했더니, 이런 것이었나보다. 앞으로는 조심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뭔가 걸리적 거리는 것 같은데. 술을 마셨다고 이런 느낌이 들리는 없고. 잠깐, 그런데 뭐야? 이거?
잠깐, 이건 여자 옷인데...설마....?!
여자 드레스 였다. 치렁치렁한 드레스. 그것도 분홍색으로...내가 여자 드레스를 입고 있다니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난 근처에 있는 연못가로 허둥지둥 걸어갔다. 하지만 그 것도 이놈의 치마와 뾰족한 구두 때문에 마음데로 걸어 갈 수가 없었다. 연못가에 서서 연못을 보니, 연못의 물에 흐릿하나마 내 모습이 비춰졌다. 이 머리 모양하고, 이 옷은 확실히 여자들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큰일이다, 사우스 트립톤에는 아는 사람이라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이 황궁에서 누구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안 될텐데, 어떻게 할까? 투명마법을 쓸까? 하지만 투명마법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하니. 지금과 같이 내가 아닌 존재가 사용한 마나가 넘쳐나고 있는 이 황궁에서는 안될 것이고.
난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연못가에 주저 앉아 어제의 기억을 곰곰히 더듬기 시작했다. 연회에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뭔가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생각이 안난다. 아 그래! 얼핏 기억나는 점이 방으로 돌아와 클라리보고 내가 어떻게하면 기분이 풀어지겠냐고 했더니 여자옷을 딱 한번만 더 입어봐라고 클라리가 말한 것 같은데.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내가 한다고 한거야? 그러고 나서 왠지 더워서 밖으로 나온 것 같은데.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떠오르지 않고 희미한 부분부분 기억의 파편만 생각이 났다. 나중에 클라리를 만나면 물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따니? 일단 방으로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급선무 일 것 같았다.
난 연못가에서 일어나 일단 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아 걷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게다가 뱃속까지 서서히 쓰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술이란 것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천천히 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겼다. 하지만 갑자기 스르르 다리에 힘이빠져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온몸에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정말 이게 무슨 망신인지. 누구 본사람은 없을까? 꼭, 돌길을 걸을 때 소피가 되버린 듯한 느낌이 었다. 그리고 그 때 소피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역시 술이란 것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 가다니. 하지만 클라리는 이번에도 여전히 멀정하겠지?
일어서는 것도 힘이 들었다. 한참동안 일어서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고마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내 목소리를 아는사람이 들으면 안되는데.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도 아무래도 내 목소리가 아닌 것은 것이 조금 이상했다.. 매우 가늘고 약한 톤의 목소리, 꼭 여자 목소리 같았다..술을 마시고 나면 그 다음날 목소리가 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래선 완전히 여자 같잖아. 아이고, 그런데 누가 내손을 잡아줬지? 일어서서 난 내 손을 잡아 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빛 머리 날카로운 분위기의 얼굴, 황태자잖아. 설마 하지만 저 녀석 얼굴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워낙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아이고, .이녀석 내가 누군지 알면 안되는데, 무슨 망신이야. 저런 녀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두고두고, 약점이 잡힐지도 모르는 일인데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녀석을 마법으로 날려버리고 도망칠까?
"레이디께서는 저가 뵌적이 없는 분이신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잠깐 저녀석,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 것인가? 황태자, 다행히도 내가 누군지를 아직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혹시 나를 놀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닐 것이다. 황태자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황태자라면 금방 알 것이니 되도록이면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감돌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황태자의 그 차가웠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져있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듯 한데. 황태자, 제발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마라구. 네 녀석하고는 안어울려. 황태자는 역시, 예전의 그 차가운 눈빛이 잘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 여자라고 저런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다. 어제 그 무도회에서 황태자에게 접근을 했던 수많은 여자들 모두 나름대로 괜찮게 생긴 여자들도 많이 있었음에도 황태자는 쭉 차가운 눈빛과 냉소만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르쳐 드릴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되도록이면 원래 나의 느리게 천천히 말하는 듯한 말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클라리와 비슷한 되도록이면 빠르고 높은 음의 말투를 쓰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선 목소리가 변한 것이 정말 천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제가 실례를 한 것 같군요. 전 세인트 반 리투안, 제국의 총리대신입니다. 아가씨는?"
흠. 이녀석 진짜로 소개를 하다니. 하지만 이녀석도 여자와 이야기 하는 것에서 서투르 다는 것이 느껴지는 점이.나와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내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말을 돌려야겠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방금 전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하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책에서 읽었던 좋은 구절이 있었는데 아!
"피, 아저씨가 총리대신이면 전 영주님이에요."
'피'라...클라리가 이 광경을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비참해 지는군. 그리고 난 사실데로 말했다. 어찌됬건 나는 영주는 영주이므로. 세인트 그녀석 내대답에 당황해 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전에 회의를 할 때, 당황해 하던 모습과는 다른. 좀 뭔가 많이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세인트도 여자만 만나면 당황해 하는 나와 비슷한류가 확실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세인트라고 부르십시오. 그럼 레이디를 저가 어떻게 불러야 됩니까? 영주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이녀석 그렇게 까지 내 이름을 알고 싶나? 안어울리게 그렇게 썰렁한 농담을 하다니. 그냥 란트 크리센 이다라고 해버리고 싶지만, 이 상황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손해를 보는 것은 나이므로 참기로 했다. 흠. 괜찮은 여자이름이라. 엄마이름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미카에요. 나머진 비밀."
아. 내가 들어도 닭살이 나는 듯한 내 말투와 목소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될까? 정말 마법으로 황태자 녀석을 날려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다. 하지만 어제 황태자 앞에서 저질러 놓은 일때문에 마법을 쓰면 내가 누군지는 머리좋은 황태자가 추측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미카양, 이 넓은 곳에서 혼자 뭐하고 계셨습니까?"
그런건 왜 묻는거야?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렇게 오래 말을 붙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상황을 보니 이녀석이 내가 가는 곳은 끝까지 따라 올 것 같은 분위기이므로. 방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이상황에서 그냥 잠시 말상대를 해주며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겠다.
"아저씨한테 꼭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요. 정원이 예뻐서."
술취해서 여장하고 밖에 나와서 잤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갈수록 내 기분이 비참해졌다. 정말 이래서는 가이우스보고 이중인격이라고 뭐라고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미카양, 제가 이 곳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제가 안내를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런데 이 녀석 취미가 이상한 것 아니야? 아무리 만약 내가 여자라고 칠 경우에는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라고 하더라도. 연못에 비쳤던 내 모습을 볼 때, 절대로 내 원래 나이인 16살 이상으로는 안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황태자 자신보다 10살이나 작은 여자애한테, 아니 정확히는 여장 남자에게 아무튼 왜이렇게 관심을..보이는 거야? 정말 황당스러울 뿐이었다.
"모르는 아저씨를 따라갔다가, 무슨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전 방으로 돌아갈꺼에요."
세인트, 그 차갑게 생긴 이성적인 남자가 무모하게 여자에게 쓸대없는 짓을 해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겠냐마는 이 녀석을 떨굴만한 핑계가 그런 것 밖에 었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황태자 녀석은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계속 이래저래 고민을 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에게 약하다고 해도 어제는 그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런 표정을 하고 있진 않았는데.
"그럼 방까지 제가 모셔 드리겠습니다."
그럴순 없지. 절대로 내가 뭐 때문에 지금 방으로 뛰쳐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싫어요. 전 모르는 남자가, 그것도 아저씨가 졸졸 따라다니는 건 정말 싫어."
흠...정말 내말투, 내가 생각해도 못 봐주겠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클라리나중에 두고 보자. 그리고 하필 만난 사람이 황태자, 이녀석 일께 뭐람. 리아인이었다면 그냥 도와달라 했고 무사히 넘어 갔을텐데. 운명의 신의 장난이란 사람을 너무 곤란하게 만들었다.
"할 수 없군요. 미카양, 다음에 만날 방법은 없겠습니까?"
이녀석. 상당히 미련이 많은 것 같다. 후에 황태자령으로 내 존재를 알기 위해 전국을 뒤지는 것이닐까? 황태자 녀석, 성격을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저씨."
이쯤에서 녀석과 떨어지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에 난 그녀석을 뒤에 둔체 급하게 정원의 구석진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직도 어제 술마신 후유증이 남아있었던 까닭에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놈의 구두는 뛰어 가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가운데 갑자기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또 넘어져 버렸다. 황태자 녀석 앞에서 무슨 망신이야? 난 바닥에 주저 앉은체로 치마를 살짝 들고 무릎을 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 아까는 그냥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아버린 형국이었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달려가다 넘어진 까닭에 다리에 상처가 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치료마법을 쓸수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황태자, 저녀석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이정도 상처는 간단하게 치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황태자 정이 안간다니까.
"미카양 괜찮습니까?"
황태자 녀석이 내가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여오는 것이 보였다. 제발. 네가 사라지는 것이 날 돕는 거라구. 난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잠시,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칼에 베이는 것에 비해 무릎에 상처난게 뭐 대수겠냐마는 이상하게 예민해진 감각이 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예전엔 칼에 몇군데 베여 상처를 입은체로 돌아다녀도 멀쩡 했었는데.
"이런. 피가 나는군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황태자 녀석. 참고로 말하지만 저 얼굴에 누군가를 걱정한느 듯한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무릎을 다쳤다고 했소? 그렇다면 다리를 잘라버리는게 좋을 것 같군.' 하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릴듯 싶으니.
황태자 녀석, 하지만 내 상처를 보더니 갑자기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피가 나는 내 무릎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황금빛실로 테두리에 수가 놓여진 황태자의 손수건이었다. 누가 황태자 아니랄까봐. 손수건도 그런 것만 들고 다닌다니까.
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한점이 그렇게 매일 산을 뛰어다니고 나무를 하고 검술 수련을 하고 하는데도 난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이 나이 때가 되면 남자는 그다지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근육이 생기는 것이 정상이라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남자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어깨도 좁고 여자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리게 되 버렸다.
"미카양, 제가 정원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황태자 녀석, 그 말과 함께 거의 강제적으로 내 허리를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거의 안고 가다시피 해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 녀석, 남의 허리는 왜 잡고 있는거야? 하지만 황태자 생각보다 힘이 좋았다. A-클래스란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군. 쩝...황태자 녀석 역시, 키도 나보다 훨씬 크니.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이전에는 나 역시 내모습을 몰랐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지만 거울로 본 내 모습 키도 작고,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휴...하지만 그런 나에 반해 황태자 녀석은 키도 크고 적당히 체격도 있고 몸의 중심이 잡힌 점이 훨씬 더 남자 답다고 해야 하나?
"아저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어쩔 수 없다. 난 여전히 여자 목소리로 말을 하며 황태자의 팔에 매달린 몸을 바둥 거렸다.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황태자가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그냥 이렇게라도 해야 황태자 녀석이 징그러운 그 손을 내 몸에서 땔 것 같다.
"죄송합니다. 미카양 이렇게 하면 넘어지시는 일은 없으실 테니. 조금 참으십시오. 제가 정원에서 제일 멋진 장소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멋진 곳이고 뭐고, 난 내 방으로 돌아가서 원래 내 옷을 입은 뒤, 쉬고 싶을 뿐이였다. 정말 지금은 그 것 말고 더 이상의 소망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이녀석은 어제 술을 마시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녀석의 몸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역시 머리가 좋은 만큼, 황태자 녀석은 쓸 때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꼭 납치하는 것 같잖아요. 아저씨. 정말 안 놓으면 소리 지를꺼에요."
협박을 해야지. 이 녀석 여자에게 이러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들킨다면 신상에 그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제국의 황태자로써의 체면을 지켜야 하는 입장일테니.
"알겠습니다. 미카양 "
황태자 녀석,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팔에서 힘을 빼버렸다. 미쳐 준비를 하지 못한 내가 또 넘어지려 하는 것을 황태자 녀석이 잡아 줘서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갑자기 놓아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놈의 황태자.
"앗...그렇다고 갑자기 힘을 빼면 어떻게 해요."
정말, 클라리에게 배운 연기실력. 정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나 마음은 더욱더 비참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미카양.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황태자 녀석을 보니, 매우 당황해 하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정말 안 어울리게 그 나이 되도록 데이트 황태자는 데이트 한 번 해본적이 없는 걸까? 꼭 그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황태자 녀석에게 거의 끌려서 그렇게 난 정원 한쪽으로 황태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말 난 왜 이렇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일이 종종 생기는지 모르겠다. 클라리나, 이번에는 황태자. 정말 살을 찌우던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황실 정원의 모습은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구경하기에는 상당히 괜찮았다.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 우리 마을에서 볼 수 없었던 식물들의 모습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한 사실을 즐기기에는 좋지 않았다.
"미카양은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갑자기 쓸데없이 황태자 녀석은 그 것은 왜 또 묻는 것일까?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황태자 녀석을 쳐다보자 나를 보던 황태자 녀석이 헛기침을 몇번 한 뒤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저요? 16살. 아저씨는요?"
이번에도 난 오로지 사실대로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로 내가 사용하는 이 말투..정말....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앞으로는 말을 되도록이면 짧게 끝을 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는 몇살이지? 말을 해놓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것도 궁금했다.
"아...전 26살입니다.."
안어울리게, 뭔가 부끄러운듯 황태자는 조금 머뭇 거리며 말을 했다. 역시 나이가 많은 황태자 였다. 그런데 26살 짜리가 16살짜리에게 눈독을 들이는건 범죄란 생각이 드는데 범죄...이 녀석도 미성년자 보호법이 지정된 나라로 끌고가서 신고를 해야 될 놈이었다. 난 되도록이면 황태자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빌며 어쩔 수 없이 순순히 황태자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됬건 기회가 생기면 잽싸게 도망쳐야겠다. 이 구두 때문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멋진 장소로 온다더니, 왜 벽있는 곳으로 온거야? 설마, 이 녀석, 딴 생각으로...?! 키스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난 조금 긴장을 하며 서 있었다. 위급하면 마법을 쓸 마법을 마음 속에 떠 올리며. 하지만 다행히 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황태자는 벽쪽으로 걸어가 벽의 벽돌 한 곳을 밀었다. 그리고 벽돌이 들어가는 순간에 황태자가 서있던 곳의 벽이 돌아가면서 문이 열렸다. 비밀 문인가? 황태자 별 것을 다 아는군. 이 곳에서 26년동안 살았을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미카양 이쪽으로.."
말은 권하는듯이 하는 황태자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거의 강제로 끌고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런 까닭에 녀석이 들어가면 마법을 사용해 강제로 벽을 닫고 도망치려고 했던 계획도 실패했다. 녀석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 앞에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들어간 정원 그 자체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멋진 곳이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으로 정원 주위의벽이 투명하게 되있었다. 물론...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벽이 없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투명 마법을 이렇게 오래 지속시키다니, 이 것역시...핀누나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투명한 벽 너머로 바닷가의 경치가 그대로 보여졌다. 황태자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풍경, 잠깐 황태자의 방이 1층인데도 황태자 방 창으로 밖을 보았을 때, 성벽으로 그 풍경이 가려져야 정상임에도 가려지지 않은체 바닷가의 경치가 보였었었다. 난 혹시나 하는 심정에 뒤를 돌아보니, 투명해진 벽을 통해 황태자의 방의 창문이 이곳에서 보였다. 이런 저런 놀라운 광경에 난 주위를 조금 호기심을 담아 둘러보고 있었다.
"사실 이 주위는 투명한 벽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제 방에 있는 창을 통한 경우는 제외하고는 안에서는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다 볼 수 없죠. 미카양 놀랍지 않습니까?"
황태자는 무엇인가 아주 큰 비밀을 말하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쩝..하지만 난 이미 그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황태자의 이미지만으로 볼 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황태자 녀석은 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수긍하는 의미로 해석 했는지 계속 다음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이곳을 발견하고 거의 매일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놀사람도 없고, 그리고 이 주위는 다른사람도 안오기때문에 조용해서 책을 읽기도 좋아서.."
잠깐,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솔직히 난 적의 하소연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황태자 녀석은 이런 내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평한 돌을 찾더니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힘든 듯, 이야기를 계속 하는 황태자.
"저한테 남자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녀석은 신기하게도 친구들이 많더군요. 저와 똑같은 조건임에도...어디서 사귀는 지는 몰라도 동생이 친구가 많고 인기가 많다는 것에 솔직히 질투가 나는 것도..사실입니다. 그래서 좀, 동생한테 못할 짓도 많이 했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동생을 육체적으로 괴롭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또,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이 곳에서 어릴 때 제가 운적도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바쁘시고, 아버지 역시, 한번 집에서 나가면 몇년동안 들어오실 줄을 모르시니. 고민을 말할 대상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든 뒤에는 제 자신의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이 녀석도 가이우스와 비슷한 고민을하고 있었군. 그런데 왜 하필 내 앞에서 모두들 말이 많아지는 것일까..정말 그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황태자의 아버지 건에 대해서는 쫌 찔리는 바가 없지 않다. 시간 상으로 보면 스승님이 나와 있었을 무렵은 이미 황태자가 큰 다음이었지만 어쨌든 나도 스승님이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황태자는 기분이 울적한듯, 말을 멈춘체 투명한 벽쪽으로 멀리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황태자를 벗어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저..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전 이만 가볼게요. 그럼 다음에 다시 봐요."
다음에 다시 보긴 뭘봐? 제발 보는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난 그 황태자의 비밀 정원으로 부터 잽싸게 나와 근처 풀 속에 숨었다. 그리고 황태자 녀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황태자 녀석은 곧 내 뒤를 따라 근처까지 와서는 한참동안 내가 간 곳을 찾는 듯하더니 무척이나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한체 포기하며 황궁쪽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설마 내게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 여장 남자한테, 아니 진짜 여자라고 하더라도 출신을 알 수 없는 어린애 한테그 잘나고 머리좋은 황태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으니까.
난 황태자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풀숲에 숨어 있은 뒤에 풀 숲에서 벗어나, 아까 본 문을 통해 궁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따라 우리 방이 높은 곳에 배정 되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 웠다. 또 누구를 마주쳐야 될지 모르니. 난 조심스럽게 건물의 안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복도 하나를 지나고 또 하나를 지나고. 조금만 더 가면 우리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쪽으로 트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제발 모르는 사람이기를...잠깐 저 사람은...?
황제였다. 그런데 황제는 혼자서 그 것도 황제가 입고다닐만한 옷이 아닌 무척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디에 가려고 하는 듯한 눈치인데 황제는 어디를 가는거지?
"황제 폐하...."
난 놀란 목소리로..무의식적으로 황제를 보며 말을했다. 황제의 놀라운 옷차림에 잠시 내가 처한 상황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는 황제의 표정 역시 놀라움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은 나 역시 조금 당황한 느낌이 들었다.
"란트 아니니? 그런데 그 옷차림하고 머리 모양하고 또 목소리는 왜 그런 거야?"
이 모습을 보고 .나라는 것을 척 안 사람은 황제가 거의 처음이었다. 정말, 황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흠...이런 것은 황제인 것과 별 상관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정말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고마웠다.
"상황이 그렇게 됬어요. 폐하 제발 도와주세요.."
내 곤란한 목소리를 들은 황제는 살짝 웃으며 말을했다. 그런데 황제한테 이렇게 아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람들 없을 땐 누나라고 불러라고 했잖아. 란트. 그런데 그렇게 입으니까 정말 여자같은데. 나도 깜빡 속을 뻔 했지 뭐야."
속일려고 속인건 아니라구요. 이건 순전히 클라리의 농간인데. 난 당황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의 옷차림은 연회장에서 입었던 그 금빛 찬란한 옷차림과는 완전히 다른 꼭 하녀들이 입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디 몰레 가려는 옷차림인데. 엄마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에 황제가 공주일 때도 궁에서 종종 빠져나와 도시에 놀러가곤 했었다고 들었다.
"위에는 손님들 숙소가 있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 몰래 방으로 돌아가기는 힘들텐데.란트. 할수없지..오늘 궁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가는건 포기해야 할 것 같군. 란트 날 따라와."
황제는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말을 했다. 황제 역시, 스승님처럼 혼자서 말하고 답을 하는데 익숙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었던가? 아무튼...그런데 황제가 몰래 황궁을 빠져 나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런지. 나이 50이 다되어가는 상황에 황제가 공주였을 때처럼 놀러간다는 것은 더 이상했고.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거 믿을 사람은 황제 밖에 없으니. 그냥 황제 뒤를 따라 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서 이쪽으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듯 했지만 계단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황제가 발을 몇번 톡톡 굴리자. 계단 옆으로 통로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뭐지?.그렇다면 엄마가 해줬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었나?
"예전에 내가 공주였을 때 주로 쓰던 비밀 통로야. 뭐 요즘에도 종종 사용하지만.."
황제의 답이 엄마가 해줬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내가 통로로 들어가자마자 그 통로의 문은 저절로 닫혔다. 비밀 통로 안에는 사람 한명이 간신히 지나갈 듯한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황궁의 복도와는 다르게 매우 어두웠다. 도저히 걷기 조차 힘든 상황. 난 무의식 적으로 라이트 마법을 써서 길을 밝혔다.
"아! 란트 너 마법도 쓸 수 있다고 했었지? 아니면 빛의 정령들 도움을 받아도 되는데."
빛의 정령? 황제가 정령술도 쓸 수 있었나? 엘프도 아닌데. 어떻게 정령술을...난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며, 황제가 정령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비밀통로에는 계단도 많이 있었다. 통로를 통해 걸어가는 동안 엄청난 숫자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으니, 이 곳을 걷는 것 많으로도 체력 훈련의 효과를 상당히 볼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니, 복도의 끝에 막다른 벽이 나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이 다시 황제가 벽의 어느부분을 톡톡 몇번 치자 벽이 갈라지며 아니 열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우리는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가 나온 곳은 바로 일층 복도에 있는 회의실의 앞이었다. 황제도 정말 대단한 여자라니까? 나이든 여자같지 않게 모든 면에서 젊은 사람들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이렇게 사니 늙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두사람은 급히 회의실로 들어가간 뒤, 황제의 방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황제의 방앞에 경비병도 안세워두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그 사실이 다행이었지만 아무튼 이해하기가 힘든 나라였다. 황제는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 허름한 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평소에 황제가 입고 다니는 남자같은 옷이 밖으로 들어났다.
"폐하.....아니..누나 정말 고맙습니다."
"란트 그건 누나 한테 하는 말투가 아니잖니. 그리고 그 옷차림으로 그런 말투로 말하면 정말 안어울려 란트."
황제까지 나를 놀리다니. 정말...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휴...
"란트가 여자였으면 세인트한테 소개 시켜 주는건데. 잘 어울릴 것 같아. 세인트의 그 성격도 많이 고쳐질 것 같고. 세인트는 결혼할 나이가 다 되도 도저히 애인을 만들 생각을 안한다니까..난 세인트보다 더 어렸을 때 세인트를 낳았는데.."
황제의 말에 난 삼키던 침이 목에걸려 기침을 한참동안이나 해야 했다. 갑자기 황태자 이야기를 꺼낼께 뭐야? 안 그래도 그 황태자 세인트 녀석 때문에 한참이나 고생을 하고 왔는데.
"란트, 왜그래? 무슨일 있어?"
"아..아닙니다."
황제는 기침을 하는 나를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놀란 내가 정색을 해서 부인을 하자 어깨를 한번 으쓱 한다음, 전에 시녀들을 부를 때 썼던 그 줄을 또 잡아당겼다. 그러자 밖에서는 보지 못했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정말 순식간에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크리센 영주님 방으로 가서. 영주님의 옷을 하나 받아서 들고오도록."
다시 힘있는 근엄한 목소리로 시녀에게 명령을하는 황제, 이 사람이 완벽한 이중인격인 것 같다. 황제는 시녀가 나가는 것을 본 뒤에야 황제는 다시 원래의 평범한 목소리로 날 보며 말을했다.
"란트 이번에 도와준건 빚이란다. 빚..나중에 내가 부탁하는 것 있으면 꼭 들어줘야 해."
황제가 부탁하는데, 거절할 사람이 이 궁안에 누가 있을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내려더 다 들어야줘야 할 것이다.
"네. 누나....."
난 황제에게 답을 하며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내 작은 경험으로는 너무나 힘든 황제였다. 내 연구 대상에 오늘 부로 두사람이 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시작한 뒤부터는 수도에 들어와서 역시 정신없이 지내기는 마찮가지인 것 같다.
"그 모습으로 누나라고 부르니까 이상한 것 같아. 나도 여자동생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냥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지 않겠니? 란트."
이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한데. 이 황태자하고 황제, 모자간에 오늘 날 잡아먹기로 작정을 한 것일까?
"네?"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체 답을 했다. 그러지 황제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한참동안 웃은 후에야 말을 했다.
"아냐 농담이야.농담. 그렇게 화난 표정을 하지마렴. 아! 그리고 며칠 뒤에 검술대회가 시작 되니. 란트 준비하고 있어. 대회에 등록은 내가 시켜놓을 테니, 그런 사소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검술대회라....휴, 우승할 수 있을까? 실력을 모르는 사람들 투성인데, 그리고 마법대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뭐, 검술대회야 대련 형식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마법 대회는 도저히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그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 하녀가 옷을 받아온 것일까? 그리고 문이 열렸다. 하지만 들어오는건 옷이 아니라....황태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폐하. 연말 예산 사용 총 결산표를 가져왔습니다."
"세인트 딱딱하게 폐하가 뭐니? 평소에는 엄마라고 해라고 하지 않았니?"
황제ㅡ 절대로 황태자의 엄마로 안보였다. 지금 보니 오히려 황태자의 동생 같아 보이기 까지 한다. 어쨌든 다행히, 지금까지는 황태자의 시야에 내가 안들어온 것 같았다. 제발 내게 관심을 가진다거나 하지 말기를...하지만 내 작은 소망은 곧 물거품이 되었다.
"미카양? 미카양이 여기에 어떻게?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황태자는 날 보더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말을 했다. 지금 황제 앞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잃어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원망스럽다는 듯한 그 눈빛 역시 황태자와는 그다지 안어울리는 것 같았다.
"미카..? 둘이 아는 사이였니?"
황제는 황태자의 소리를 듣더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은 후에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 나와 황태자의 모습을 동시에 쳐다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황태자 녀석은 날 쳐다본다고 정신이 없어 황제의 반응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인트,. 그냥 서류는 거기 두고 가렴. 미카양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니까."
황제, 위기에서 두번이나 나를 구해 주었다.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중에 황제가 무슨 부탁을 할지는 몰라도 되도록이면 들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습니다. 폐하."
황태자는 여전히 그 안어울리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듯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황제의 방을 나섰다. 아무리 황태자라도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황태자가 나간 직 후, 황제는 거의 바닥을 구르기 일부 직전의 수준으로 웃기 시작했다.
"란트...황태자한테 여자라고 속였어? 미카라..,정말 대단해. 그 똑똑한 아이를 어떻게 두번이나 당하게 하다니. 정말 넌 신동이란 소리를 들을만해."
내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한참이나 즐거운 듯 웃다가 방문이 다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짖는 황제. 할말이 없군. 그리고 문이 열리며 다행히 이번에 들어온 것은 옷을 들고 있는 시녀였다. 그리고 뒤를 따라 들어오는 이 모든 사건의 원흉 클라리....시녀는 옷을 놓고는 소리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클라리, 란트를 저렇게 꾸민것 클라리 네 솜씨 아니니?"
시녀가 나가자 황제는 다시 근엄했던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을했다.
"응, 언니. 우리 주인님 예쁘지?"
난 클라리를 향해. 화가 담긴 눈빛을 묵묵히 보낼 뿐이었다. 클라리, 못본척 해도 소용없어. 난 계속 클라리를 노려보며 시녀가 놓고간 옷을 주섬주섬 주어 들었다.
"그래.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날 정도야."
답을 하는 황제. 하지만 황제한테야 할 말이 없었다. 황제 아니었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 난 커텐 뒤로 걸어가 그 안에서 머리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여자 옷은 벗기에도 번거로웠다. 밖에서 황제와 클라리가 열심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들어봤자 내게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을테니. 화만 더 날 것이 뻔했다. 난 옷을 다 갈아입은 후, 커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누나 감사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난 황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뭐, 다른 사람들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야. 황제 성격으로 볼 때 조금 무례하게 행동해도 되겠지. 그리고 클라리를 그대로 뒤에 둔체 방 밖을 향하는 것으로 클라리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란트.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는 것 잊으면 안된단다."
다짐하는 듯한 황제의 목소리가 내 뒤쪽으로 들려왔다. 황제 폐하, 도와주셨는데. 제가 뭘 못 들어드리겠습니까? 휴, 정말 내가 이런 외모를 가지게 만든, 신이 원망 스러웠다. 방 밖으로 나온 내 뒤를 클라리가 급하게 따라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클라리는 어제보다 기분은 많이 좋아진 것같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전처럼, 오랫동안 기운 없이 마음을 아파하면 어떻게 할까 했는데. 목걸이를 만져보니 아직 안전하게 내 목에 걸려 있었고 클라리의 본체 역시 무사히 있는 것이 느껴졌다. 쩝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하는 존재인데. 왜 난 클라리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모르겠다.
클라리는 나를 따라 같이 걸으며 내머리를 어제의 그 파란끈으로 묶어주었다. 난 클라리가 내 팔에 매달리는 것도 모르는 척 걸었지만, 클라리가 어제 일로 힘없어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다. 정말 내 마음을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아. 화내지마. 나도 나중에 주인님이 부탁하는 것 하나 들어줄께."
"......."
훔훔 아무리 그래도 아직 클라리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있었던 일이 보통일이어야지. 그렇게 수도에서의 작은 사건이 끝이났다. 하지만 끝일 줄 알았던, 이 사건이 나중에 그렇게 까지 크게 확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오랫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불려질 말도 안되는 사랑이야기 한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숨겨진 진짜,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기 시작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