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3장 수도 포세트립톤 (5) 황제와의 데이트(수정)
푸른바람·2002. 3. 9. PM 3:34:33·조회 4067·추천 55
에피소드 17 황제와의 데이트
-포세트립톤의 황궁에는 수많은 비밀통로와 비밀의 방이 있다고 한다. 철혈여제 세리니안느 1세의 경우 그 비밀통로의 대다수를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후로는 몇개의 통로는 발견되었지만 대다수는 비밀 통로란 이름 그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방 중에는 굉장히 귀중한 고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방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통로에 대한 조사는 아주 중요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일보> 제국력 174년 5월 3일자 사설-
수도에서 무료한 며칠이 흘렀다. 스승님은 언제 뵐수 있을런지. 수도에 온 뒤에도 그 일에 대해서는 말조차 없었다. 스승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궁의 그 많은 방들을 다 찾아 볼 수도 없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태자 녀석을 혹시나 만날까 하는 생각에 두려워 그 사건 이후로는 밖으로 나가지 조차 못하고 잇는 중이었다. 혹시나 내가 여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그런데 클라리는 매일 어디가는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바쁜 것 같이 보였다. 아무리 본체만 무사하면 된다지만 그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황태자나 클라우 녀석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려는지 솔직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소피와 신디, 역시 클라리를 따라 궁의 이 곳 저곳을 구경하는데 동참을 한 까닭에 결국 언제나 방안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은 나였다.
며칠 동안 그래도 머문 곳이라 어느새 익숙해진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시간을 보니 클라리가 돌아올 무렵이겠군.
"이제 돌아온거야?"
난 지루함에 하품을 하며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방안에 들어온 사람은 클라리가 아니라. 정말 뜻 밖에도 황제였었다. 황제가 무슨 일로 여기에 온것일까? 정말, 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에 당황해서 황제에게 예를 한다거나 할 겨를도 없이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황제의 옷차림이 전에 하인들 옷을 입고 있었을 때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할말이 없었다. 밝은 하늘빛 원피스에 하늘빛 머릿띠, 10대들 이나 입고 다닐 듯한 디자인의 옷차림을 황제는 하고 있었다. 황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란트, 혼자 있었구나. 다행이네. 전에 누나 부탁 하나 들어 준다고 했지 않니?"
황제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더니, 내가 멍하니 앉아 있는 의자 근처까지 걸어와서는 말을했다.
"네?....네."
난 여전히 혼란스러은 마음에 조금 더듬 거리며 답을 했다. 그런데 황제는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일까? 클라리한테 당한 것이 하도 많아서, 솔직히 부탁이란 말만 들어도 왠지 불안해 졌다.
"란트, 오늘 하루 나하고 데이트 해줄 수 없겠니? 이 옷을 구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란트 네 나이 또래 맞추기 위해서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가의 주름 몇개 정도는 하루 정도 네가 마법으로 어떻게 해 줘야 할 것 같단다. 그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니?"
데이트, 오십이 다 된 좀있으면 할머니가 될 여자하고라. 책을 통해 얻은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써는 그다지 기뻐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 주위 여자들은 왜 이렇게 날 피곤하게만 만드는지 모르겠다. 뭐, 눈가에 주름 몇개 가리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지만 며칠전,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황제가 날 도와준 것을 잊을 수 없었다. 그다지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정도 황제에게 봉사하는 기분으로 일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황제하고 같이 있으면 세인트 녀석도 어떻게 할 수는 없을테니 안심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네...."
하지만 난 힘없이 황제에게 답을 하며 주문을 외었다. 부분 환영주문, 꼭 황제의 눈가에 있는 주름들이 원래 부터 없었던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법을 쓰고 나서 살펴 보니 정말 저 옷차림에 눈가에 몇개 없던 주름마저 없게 만들었더니, 완전히, 열 몇살,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이건 말도 안돼! 엘프도 아니고 사람이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정말 눈가의 주름이 없는 것 처럼 보이네? 란트 대단하구나. 이런 부탁을 핀언니에게 하기도 그렇고해서 하고 싶어도 못했었단다."
내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황당함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는지 황제는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춰보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뭐 대다수의 나이많은 여자들이 젊게 보인다는 사실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본래의 나이보다 30살이나 젊어보인다는 것은 솔직히 징도가 심했다..
"아마 하루 정도 마법이 지속 될 거에요. 영구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만..그건 별로 안좋을 것 같아서..."
내가 한숨을 쉬며 말을 하자, 황제는 조금 아까운 듯한 표정을 얼굴에 띄었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니 영구적으로 되기를 바랬던 것 같은 눈치이다. 하지만 솔직히 주름살 따위는 가리지 않아도 황제는 충분히 젊어 보였다. 본 나이보다 훨신 더. 아무튼 황제는 곧 다시 웃는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내 팔을 잡고 끌었다.
"그래, 이정도면 충분해. 그럼 란트, 어서 따라와 궁밖으로 나가야지."
말투까지 바뀐 황제, 황제가 사용하는 말투는 이로써 최소한 세가지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엔 젊은 사람들이나 사용할 만한 말투를 사용했으니. 황제의 팔에 끌려 난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휴...난 왜 여자들한테 끌려만 다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닌경우도 며칠전에 있었다. 남자한테 끌려다닌. 그 일은 지금 보다 훨씬 더 끔찍했지만...
문앞까지 걸어간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클라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클라리는 황제와 내 모습을 보더니,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했는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리가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다. 왠만한 일엔, 거의 표정의 변화가 없으니까. 나를 놀릴 때 빼고.
"세리언니...우리 주인님 데리고 어디가려고? 나도 같이 가자. 응?"
제발 그것 만은 여자 두명에게 시달리게 된단느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싫어. 오늘 하루 란트 하고 데이트 할꺼란다. 그런데 진짜 애인이 방해하면 곤란하잖니."
진짜 애인? 이 건 또 무슨 소리지....고민을 해봐야 할 듯. 누가 누구의 진짜 애인이라는 건지. 설마 클라리가? 아니겠지. 우리는 순수한 검과 주인의 사이일 뿐이니.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만 검에게 시달리고 있는 주인이라 해야 되겠지만.
"클라리. 이 일은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네가 책임져야 해. 전에 내 부탁 한개 들어 준다고 했었지? 그냥 오늘은 여기에 있어줄래?안 그러면 너무 피곤할것 같아."
난 한숨을 쉬며 힘없는 목소리로 클라리를 향해 말을했다. 클라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황제를 잠깐 노려보더니, 그래도 되는 건가? 할 수 없다는 듯 소파로 걸어가 주저 앉아 버렸다.
"어휴. 주인님아. 나중에 선물이나 사와. 오십이 다 된 할머니 한테 주인님을 빼앗길 염려는 없을 테니."
오십이 다 된 할머니....그 말에 황제의 눈썹이 꿈틀 하는게 느껴졌다. 그런데 빼앗기긴 뭐가 빼앗겨? 여전히 의미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뭐가 쫓아 오는 듯, 클라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끌고 밖으로 걸어갔다. 잠깐 그런데 이 쪽으로 가면 길이 없는데? 하지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또 어느 구석의 벽 쪽으로 가서 황제가 벽의 한부분을 몇 번 두드리자 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보였다. 이번에는 황제가 정령들을 불러내는 걸 구경도 할겸, 주위가 어두워진 뒤에도 마법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지나자 갑자기 통로가 밝아 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작은 빛덩이 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게 정령인가?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 볼 겨를도 없이. 황제에게 끌려 어제처럼 또 좁은 통로의 계단을 끝없이 오르락 내리락 거려야만 했다. 비밀 통로들은 황제 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먼지가 쌓여 있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 전체 분위기가 그러니까 그렇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까닭에 신기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밑으로 나있는 계단으로 한참동안이나 내려가자 전처럼 또 막다른 벽이 나왔다. 아무래도 저 벽이 출구가 될 듯, 솔직히 어떻게 비밀통로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나가는 방법을 모르는 이상은 비밀통로에 갇히기 십상일 것 같다. 황제는 잠깐 고민을 한 후, 이번에도 벽의 어느 곳을 눌렀다. 그러자 막혀있던 벽이 열리며 밖으로 부터 밝은 빛이 들어왔다.
황제를 따라 밖으로 걸어나와 잠시 밖의 밝은 빛에 적응을 한 뒤에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가 비밀통로로 부터 빠져 나온 곳은 절벽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해가 떠있는 방향으로 볼 때, 황성의 동남쪽인 것 같은데. 그 곳에 이런 절벽이 있었다니. 그런데 우리가 나온 비밀 통로쪽을 다시 돌아보니 어느세 문은 닫혀 있었고 그 곳에는 아무리보아도 절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큰 만 있을 뿐이었다.
"폐하. 그런데 혼자 다니셔도 되는데. 왜 저를?"
그래, 갑자기 궁금해 진다. 제국 검술 챔피언 정도의 실력이면 혼자다녀도 안전에는 별 문제 없을 텐데. 나를 호위나 그런 용도로 부른 것은 아닐테고.
"란트, 밖에 나와서까지 그렇게 부르면 어떻게 해. 밖에 있는 동안은 세리 라고 불러 말도 높이지 말고. 그리고 원래, 여자가 혼자다니면 여러가지 일이 많이 생기잖아. 귀찮은 일도 많고, 전에는 깡패녀석 몇 놈을 패주다가 수도 수비대장이와서 내가 누군지 들키는 바람에 많이 돌아다니지 못한 적도 있었어."
황제는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휴, 그런데 황제의 모습은 회의 할 때, 다른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렇게 옆에 서서 보니. 실제 키는 나보다 작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던데, 황제가 바로 그 확실한 예인 것 같다. 진짜 저런 옷차림에 저런 절대로 나이 50의 아줌마가 사용할 것같지는 않은 말투로 돌아다니면 진짜 친한사람 아니면 황제인 줄 누가 어떻게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란트 덕에 오랫만에 즐겁게 쉴 수 있겠네.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찻집부터 가자."
젊은 아줌마 황제는 클라리가 종종 하는 것 처럼 내 옆에 달라 붙어서는 역시 클라리 처럼 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솔직히 내 생각에는 원래 몇안되는 주름도 가렸고 키도 그렇고 겉외모만 보면 클라리 보다는 황제가 더 나한테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이가 33살이나 차이가 난 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런데 클라리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또 나 없다고 또 울지는 않겠지? 쩝, 이번 경우에는 클라리도 대충 상황을 이해 할 테니, 괜찮겠지.
수도의 풍경은 전에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것 처럼, 정말 구경거리가 충분했다. 자유로운 듯한 느낌 속의 조화,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 대부분이 가지는 주요한 특징이었다. 그리고 전에 수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정말 거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또, 너무 부유하게 보인다거나 하는 사람도 역시 물론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고민이 없는 듯 보이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난 슬쩍 존경스러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란트 왜? 뭐 할말 있어?"
"아니...이 수도 시민들이 너무 평화롭게 보여서...어.."
뒤에 '요'자가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말을 했다. 리아인처럼, 황제도 왠지 모르게 존댓말이 나오게 하는 스타일이라 솔직히 말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다고 해야하나? 그다지 지도자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장소에서도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도록 만드는 힘이 황제에게는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란트 네 영지에 비하면 이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 영지에선 모든 종족들이 다툼없이 잘 지낸다며? 난 적대적인 종족들을 영토내에서 몰아내는 것 밖에 생각을 못 했었었는 걸."
하..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 였었나? 솔직히 난 그다지 한 일이 없었다. 내가 한일이라고는 그들을 오로지 마을로 데려와 줬을 뿐, 그리고 마을에 오는 존재들은 가려서 받았을 뿐, 그 것 밖이었다. 그리고 괴물사냥꾼 녀석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줬다는 그 것 정도만이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제는 그 말을 마친 후 내 팔을 자신의 두팔로 꼭 안듯이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 이렇게 남자한테 기대보는 것도 얼마 만이야. 황제가 된 뒤로는 아인트나 나 모두 바빴고, 좀 여유가 생기려니. 아인트가 그렇게 되버렸으니. 솔직히 말해서 세인트는 얼굴이 백성들에게 너무 알려져서 부탁을 못했었고, 리아인은 좋아하는 애가 있어서 그런지 거절하더라구. 그래서 란트 너한테 부탁한거야. 훗 그러고보니 이 말투도 오랫만에 써보니 재밌네. 왠지 마음까지 젊어지는 것 같아.아까는 놀랬지? 미안해."
스승님사건, 그 사건에 대해서 들으니 황제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로인해 황제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테니. 황제란 자리에 아무나 오르는 것도 아니고, 황제 역시 그동안 많이 바빴을 것 같다. 이 넓은 제국령의 백성들을 이렇게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살게 만들려면.
"아니에.... 괜찮아..."
아직도 말하는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 '요'자가 나올뻔 했다는...원래 내가 사용하던 말투는 높임을 전혀 안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왜 이렇게 황제 앞에서는 말을 낮추기가 힘든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에게 끌려서 수도의 이 곳 저 곳을 보는 것도 사람들이 가끔씩 지나가며 흘끔 쳐다보는 것 말고는 그런데로 괜찮았다. 황제정도의 얼굴이라면 황제란 사실을 모를 경우에는 한번쯤 눈길을 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붙어있으면 종종 내 걸음을 방해하곤 하던 클라리와는 다르게 황제는 똑같이 매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키차이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라면 황제가 조심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란트, 저기야. 저기."
바닷쪽으로 꽤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닷가 근처에 지어져 있는 이층 집이었다.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전체적인 외관이 괜찮게 보였다. 일층은 낚시 용구를 파는 가게인 것 같고, 이층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은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건물 옆 부분에 계단이 있는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뭐 내가 이 곳에 온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게 당연하지라는 핑계를 속으로 중얼 거리며 황제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꼭 분위기가 도적 길드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었지만, 솔직히 내가 도적길드에도 가본 적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책에서 읽을 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지만 위에 올라가 보니 내가 착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찻집이었다.
"세리, 얼마만이야. 이게."
찻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황제의 이름을 무엄하게 부르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서..쳐다보니 별특징이 없는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다. 앉아 있는 곳으로 추정하건데 이 찻집의 주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는 자기가 그렇게 막 이름을 부르는 여자가 이나라 최고권력자 그 철혈여제 세레니안느 1세 황제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미네리, 오랜만이야. 얼굴을 보니 요즘에 잘 지내는 것 같네?"
황제 역시 그 여자를 향해 무척이나 반가운 말투로 말을 했다. 꼭 보통 친구에게 말하는 것 처럼.
"세리, 그런데 정말 너무했어. 그렇게 오랫동안 이 곳에 오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아니? 그런데 세리! 나 있잖아. 사실은 얼마전에 결혼 했어."
얼마전에 결혼 했다라. 분명이 이 여자는 황제의 외모에 속아서, 아마 자기하고 나이가 비슷하다고 착각을 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진짜 나이를 알면, 아마 놀래서 넘어가겠지?
"정말이니? 축하해. 그런데 설마, 피노텐 하고 결혼 한건....아니겠지?"
"맞아. 피노텐 이야. 그이는 또 배타고 가버렸고..."
한숨을 쉬는 미네리 라는 여자. 남편이 선원인가 본데 원래, 이야기 같은데 들어보면 선원들의 아내는 언제나 외로움을 안고 산다고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 그리고 혹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런 까닭에 선원들의 아내 중에는 실제로는 바람이 나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말렸잖니. 모두 내말을 듣지 않은 미네리 네 잘못이야. 그런데 미네리 오늘은 그 자리 있어?"
그 자리라. 황제의 고정석이라도 있는 걸까? 찻집 주인하고도 아주 친한 것 같고, 도데체 무슨 사연인지 궁금해진다. 왠지 황제의 이중 생활의 배일이 조금씩 벋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야. 그 자리는 항상 비워 두는걸. 동업자의 특별한 자리인데."
동업자...? 그럼 찻집에 황제도 투자를 했단 말인가? 황제가 직접 투자를 한 찻집이라...다른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 찻집이 엄청난 인기를 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큰 소리로 황제와 이야기를 하던 그 여자는 갑자기 황제쪽으로 목소리를 낮추고는 말을 이었다.
"언제 부터 사귄 거야? 너 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데, 남자친구는 안 만든다더니. 정말 능력이 좋구나. 저렇게 잘 생긴 사람에다. 나이도 어리고, 젊은 사람이랑 다녀서 그런지 너도 더 젊어진 것 같아 보여."
미네리라는 그 여자는 내가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했을 테지만 엘프 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귀는 꽤 밝은 편인 까닭에 한글자 한글자 모두 정확하게 내 귓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어리다는 말, 33살이 조금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를 보자 뭐가 즐거운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황제가 젊게 보인다라는 말 너무나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가 주름을 가려줬으니 젊어져 보이는게 당연하지.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이 사기꾼 황제, 분명히 나이를 속이는 것은 핀 누나의 영향을 받은 게 틀림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핀누나는 엘프라서 그렇다고 봐줄 수도 있지만, 황제는 엄연히 사람이었다.
"미네리, 그럼 차는 제일 좋은 것으로 부탁해."
난 여자 쪽으로 고개를 꾸벅 하고는 황제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찻집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신경써서 꾸며놓은 듯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생화의 모습, 아마 마법이 걸려있겠지...돈을 벌기위해 마법으로 장사를 하는 마법사도 많다고 한다더니..아무튼 마법이 걸려져 있는 꽃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 꽃을 겨울에 장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일까? 전체적으로 나무로 지은 집의 주요한 특징인 어두운 분위기나 조금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인지, 황성의 색과 비슷한 아이보리색으로 내부를 칠해 놓은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테이블이 하나만 놓여있는 큰 창이 있는 방이었다. 찻집에서 제일 좋은 듯 보이는 방, 테이블보나 의자 역시 그런 것에 대해 잘모르는 내가 보아도 좋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황제를 따라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항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멋진 풍경에 황제가 이 곳을 좋아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감돌았다.
"여긴 언제와도 정말 좋아. 황성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은 많지만, 이 곳은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들어."
황제는 창 밖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다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황제의 강한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원래 황제의 성격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까? 시대의 필요성이 한 개인을 완전히 빼앗아 간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면에서 보면 황태자 세인트는 황제위에 오르기에는 적격이었다. 원래부터 외로웠으니, 황제가 된 뒤에도 그 사실에 대해서 더이상 크게 상처를 입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미운 녀석에게 왠지모를 동정이 갔다.
그렇게 얼마동안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으니, 미네리라는 여자가 차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난 차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다지 즐겨 마시지는 못했고 어쩌다가 마을 축제 때나 술대신 가끔씩 맛을 볼 뿐, 집에서 특별히 따로 마시거나 한 적은 없었다.
"어제 들어온 차인티 제국 특제 수입 차에요."
"아...네..."
미네리라는 여자는 찻잔을 내려 놓으며 날 보며 웃으며 말을했다. 순간적으로 약간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난 찻잔에 입을 댔다. 아직 클라리를 통한 단련이 덜 된 듯...찻잔 속의 진 붉은 빛의 차로 부터 향긋한 냄세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 오랫만에 마셔서 그런지 차향이 더욱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인티 제국 특제 수입 차, 내가 전에 읽었던 책에 따르면 차인티 제국의 차를 최고로 치고 그 다음에 코리안트 왕국 차. 그 다음이 이오니스 공작령에서 만든 차라고 했었다. 예전에는 차인티 제국의 차는 너무 비싸고 코리안트 제국에서 만든 차일 경우는 값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해적들로 인해 교역이 활발하지 못해 구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이오니스 공작령에서 만든 차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요즘엔 코리안트 왕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져 코리안트 왕국의 차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즐겨마시는 서민의 경우에는 주로 코리안트 왕국의 차를 끓여 마신다고 했다.
"그럼 편안히 쉬다 가세요."
"네.."
미네리라는 여자는 계속 나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왠지 나란 존재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듯한 느낌. 여자들 틈에 있어도, 하긴 여자라고 해봤자 검하나, 엘프하나, 어린애 하나지만 솔직히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별로 자신이 없었다. 차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뒤에도 한참이나 방안에서 나를 지켜보던 미네리라는 여자가 인사를 한 후,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본 뒤에 나는 다시 황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황...아니..세리, 그런데 왜 내가 스승님을 못 만나게 해?"
또 황제라 할 뻔 했다. 하긴 속으로 계속 황제라 부르니까. 세리라는 이름이 별로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무튼, 이번 기회에 궁금한 것 하나를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에 직접적으로 황제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인트,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그런 모습을 란트 너한테 보이면 네 마음만 아프잖아. 핀언니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인트가 깨어나면 네게 제일 먼저 알려줄거야."
황제는 슬픈 목소리로 말을했다. 내가 괜히 말을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그 건에 대해서 황제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내가 황제에게 말을 했던 것일까? 왠지 후회가 되었다. 휴...그동안 핀누나가 안보였던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이었나.?
"미안해...."
난 힘없이 황제를 보며 말을했다. 최근 몇개월 동안, 16년을 살면서 사과 한번 안했던 나란 존재가 사과를 할 일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모두 내 잘못이니, 그다지 거부감이 들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모를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란트,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리아인이 말 안했니? 나도 그 차가운 세인트 녀석도, 리아인, 아리 아무도 널 원망하지는 않아."
차라리 미워 죽겠다고 말을 하는게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예전처럼, 마음을 닫고 지내면 되니. 하지만 요즘에는 익숙치 못한 정이라는 감정이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이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많은 아픔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제의 말 중에 세인트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란트, 그런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 오늘 하루는 재미있게 놀기로 하고 나왔잖아."
황제는 슬픈 표정을 풀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황제는 50년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을까? 그녀 역시, 바쁜 생활에 몸을 맏기고는 그 상처를 잊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황제에 대해 엄마가 이야기 해주던 것이 생각이 난다. 황제의 엄마가 황제를 놓으면서 죽었다던 그 이야기 어릴 때는 무심히 들었던 것 같지만 지금의 내 기억 속에는 그 이야기가 제일 뚜렷이 남아 있었다. 왜 그럴까?
"란트, 그 반지 예쁘네? 나 주면 안돼?"
황제의 눈길이 찻잔을 들고 있는 내 손의 사파이어 반지를 향하며 말을 했다. 황제 그 자신이 보석을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방하나에 가득 보석을 쌓아놓고도 지내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듯 보이는데. 왜 이런 작은 반지 하나에..? 하지만 다른 반지면 몰라도 이 반지는 주기가 좀 그렇다.
"좀 곤란한데....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럼 할 수 없지. 뭐."
황제는 생각외로 순순히 물러섰다. 이 반지를 잃어 버렸다가 나중에 무슨 화를 클라리한테 당하려고, 하지만 황제의 눈길을 보니. 계속 반지를 향하고 있었다. 휴, '황제 폐하 이건 정말 안된다구요 정말로!'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이 곳에 있으면 마음에 편해지는 건 좋은데. 왠지 우울해 진다니까...란트. 우리 그냥 쇼핑이나 하러 가자."
차를 다마신 황제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서며 말을했다. 쇼핑이라...여자들은 왜 그렇게 쇼핑을 좋아하는지, 정말 모를일이었다. 난 피곤하기만 하던데, 그렇지만 이럴 때는 물건을 구경하며 고민을 잊을 수도 있으니, 기분을 푸는데는 황제의 말을 따라 쇼핑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방에서 나와 카운터 쪽으로 걸어 가니 미넬리라는 그 여자가 웃으며 우리를 쳐다 보았다.
"세리, 이번에도 배당금 안 가져 갈꺼니?"
배당금? 동업이라고 하더니. 배당금까지, 황제가 황제 위에서 밀려날 때를 대비해 이런 대책을 세운건, 황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볼 때, 아닌 것이 당연했고. 그렇다면 뭐 때문이지?
"응, 이번에 찻값은 배당금에서 빼줘. 배당금은 나중에 결혼할 때 찾을 꺼야. 그 때까지 잘 맡아줘."
황제는 결혼 이야기를 하더니 내쪽을 쓱 쳐다보았다. 미넬리라는 그 여자역시,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보는 것이 영 불안했다.
"알았어. 세리, 이번 달까지 총 532트립 배당금은 이 미넬리가 맡고 있을께."
532트립, 많이도 모였다. 저 많은 돈을 한 번에 주려고 하면 미넬리라는 여자도 힘들텐데, 설마 배당금 만큼 안쓰고 모아두는건 아니겠지? 아니,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리, 자주 찾아와. 다음에는 내 말상대도 되주고 알겠지?"
"응, 미넬리. 그럼 다음에 봐."
황제는 미넬리쪽을 보며 아주 다정하게 이야기를 했다. 역시, 한두번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난 그 여자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황제의 뒤를 따라 그 찻집을 바져 나왔다.
클라리하고 다르게 황제는 같이 다니기에 상당히 편했다. 나를 많이 배려해 준다고 해야하나? 아무튼.겉 외모는 저렇게 어려도 실제 속은 나이 오십이 다 된, 내게는 엄마뻘이 되는 사람이니까.
한동안 갑갑하게 황궁안에서 지내다가 이렇게 밖에 나오니, 그런데로 괜찮았다. 뭐 이정도 걷는다고 피곤할 나도 아니니. 주위에 특별히 우울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 없이 모두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 있으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제국, 정말 무력으로만 이룩한 나라가 아니었다. 절대로...
"란트, 저쪽으로 가자. 이 도시에서 제일 큰 시장이 있어.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해도 헛소리는 아닐꺼야."
황제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했다. 그 얼굴에 그 옷차림으로 그런 말은 안어울린다고요. 잠깐 이 말은 어제 황제가 나한테 한 말인데...
황제는 여전히 내 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머리를 기댄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난 괜찮지만 황제, 저렇게 걸으면 힘들지 않을까? 얼마 걸어가자 건물들의 높이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가게들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시장이 틀림이 없었다. 시장의 규모가 얼핏 보기에도 미들트립톤의 그 것보다 더 커보였다. 리투안국 자체가 처음엔 상인들의 연합에서 시작해서 발전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황제는 다행히도 클라리 처럼 이 곳 저 곳의 물건을 구경한다 거나 하는 것에는 특별히 애착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보다는 시장에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이런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들었다.
"란트, 우리 저기 한 번 가보자."
황제는 날 데리고 악세서리가 가득 놓여진 자판으로 끌고 갔다. 싸구려 임에 틀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이 것 저 것을 들었다 놨다하며, 상당히 즐거운 듯 보이는 표정으로 구경을 했다.
"란트, 네가 하나 골라서 사주면 안돼? 나한테 잘어울릴 것 같은 걸로."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람. 내가 예쁘고 말고 한 걸 알아야 고르지.
"뭐?...."
난 무의식 적으로 튀어나오는 소리에 깜짝놀랬다. 다행히 높임은 하지 않았지만 이러다가 불경죄로 잡혀가는건 아니겠지.
"란트, 하나만 사줘, 응?"
폐하, 제발 나이에 어울리는 기품있는 행동을. 난 조금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황제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진짜 나이가 50이라는 것과 속의 이중 인격중 하나는 정말 살벌하다는 것을 머리속에서 지우면 지금 황제의 모습은 귀엽다는 축에 들기에 충분했다. 자판에서 물건을 팔던 아줌마는 황제를 딸 보듯이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줌마는 이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으로 변할런지....
난 황제의 거의 협박성 애교에 할 수 없이 자판위의 싸구려 물건들을 쳐다, 아니, 정확히는 노려보기 시작했다. 목걸이나 팔지는 싸구려 티가 너무나고 귀걸이도 마찮가지고, 내 눈은 머릿핀 쪽을 향했다. 다행히 머릿핀 쪽에는 싸구려 티가 별로 나지 않는 은제 제품들이 보였다. 은도금하고 순은제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나머지들은 주로 은도금이 대부분이 었지만 머리핀은 대다수가 순은으로 만든 듯했다. 난 그중에 제일 무난한, 그런데 곰인지 강아지인지 모를 동물의 모양이 붙어있는 머리핀을 하나 들어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이거 얼마에요?"
"젊은 양반, 정말 예쁜걸 고르셨네요. 남자치고는 정말 센스가 있어요. 여자친구가 좋아하겠는데요. 그 핀은 1트립이에요."
아줌마는 외모와는 다르게 장사꾼 특유의 그 빠른말투로 말을 뱉어냈다. 여자친구라, 나이 오십먹은 아줌마하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다니. 그런데 뭐? 이 조그마한게 1트립이라고? 하긴, 한끼 식비로 20트립이나 지불한 적도 있으니. 뭐, 난 주머니에서 몇개 안남은 금화 중 한개를 꺼내 그 아줌마에게 내 주었다. 아줌마는 금화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 져서 날 쳐다보았다. 쩝, 내 나이 또래에 보통사람이 금화를 들고 다니진 않겠지. 특히, 이 나라는 부유한 귀족들도 그리 없을 테고 귀족들이라면 이런 시장의 악세사리점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아줌마는 금화를 얼른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옷을 거의 다 뒤지다 싶이 해서 은화세개를 찾아꺼내 내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오세요."
다음에 또 올 때도 이 자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올수 있다면 되도록 이곳으로 오도록 노력을 해주지. 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의 핀을 아줌마에게 받아 황제에게 주었다.
"세리. 마음에 들어?"
쩝, 이제 조금 익숙해 지는 것 같았다. 혹시 이러다가 공식 회의중에 반말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황실 모독죄로 즉결 처형이되는건 아닐까? 설마...
"란트, 곰돌이네? 너무 마음에 들어. 정말 고마워!"
곰이었구나. 황제는 생각 외로 너무 좋아했다. 황제가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화려한 물건들을 원하는데로 얻을 수 있을텐데. 여자는 사소한 것에서 감동을 받는다고 어느 책에 적혀 있었긴 했지만.
황제는 즐거운 표정으로 한참동안 그 머릿핀을 쳐다보더니 자기의 그 짙은 검은빛 머리 한 쪽에 그 핀을 꼽았다.
"잘 어울려? 란트?"
생각외로...황제가 겉외모가 나이가 별로 들지 않아 보여서 그런지 그 핀은 황제와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싸구려임에도 불구하고 싸구려티가 많이 사라진 듯 보였으니.
"생각 했던 거 보다 훨씬."
난 웃으며 답을 했다. 잠시동안 진짜 여자 친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지만,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여자친구가 언제 있어봤어야지. 하지만 순간적으로 가슴이 약간 두근 거리는 것과 왠지 모를 굉장히 편안함이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건, 꼭 친구같지만 또, 그 것과는 약간 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동경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황제가 다시 내 팔을 잡고 복잡한 시장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장의 저 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더니 사람들이 일제히 옆으로 슬슬 비켜서기 시작했다. 혹시 황제가 없어진 걸 알고 찾으러 온건 아닐까? 난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그 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등장하는 것은 다행히 경비병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있는 전형적인 건달들, 거의 모든면에서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제국의 수도에서도 저런 놈들은 사라지지 않는 가 보다. 인구가 많은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데 녀석들은 사우스 피투안에서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녀석들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지나가면서 주위 상점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하나 하나 마음대로 집어 가고 있었다. 정말 도대체...난 한심한 눈빛으로 길 가운데 서서 그 녀석들이 나타나는 것을 황제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저 녀석들한테 스트레스해소 좀 해도 되지?"
황제를 향해 물어보니, 황제는 웃으며 선선히 허락을 해주었다.
"물론, 란트. 하지만 살살해야돼."
하지만 난 녀석들이 시비를 걸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길 가운데 서서, 이미 우리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길 양족으로 피하고 녀석들 앞에는 나와 황제 밖에 남지 않았다. 녀석들은 여덣명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녀석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부러지기 일부직전으로 보이는 칼들을 차고 있었다. 그래도 사우스 피투안 녀석들은 그 검도 없던데. 엄청난 발전이었다. 수도 건달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어 휴....
생각 했던 것 처럼 녀석들은 우리 앞에 오더니, 그다지 무섭게 보이지도 않는 못생긴 얼굴로 인상을 쓰며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혀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이, 꼬마. 네 옆에 있는 여자는 너한테 너무 과한 것 같은데. 나한테 넘기는게 어때? 안 그러면 이 '흑스라임파'의 맛을 좀 봐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나이 오십이 다되가는 아줌마가 그렇게 좋냐? 한심한 놈들. 너희들 같은놈 백명이 달라들어도 아마 황제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엄마에게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말이지. 하지만 수도에 와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딱 좋아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덩치를 보니 나름대로 맷집도 좋게 생겼고, 마음에 드는군.
"'흑슬라임파' 아직까지도 있었었나? 30년전에 나한테 당한 뒤로는 해체된 줄 알았는데."
황제는 혼잣말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했다. 30년전에 황제한테 당했다고? 그럼 황제가 공주였을 시절인데. 쩝, 그 때부터 한 성격 하셨나 보군. 난 조용히 클라리를 검집체로 들고 녀석들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비실 비실한 녀석이 검은 좋은 걸 들고 있군. 좋다. 그 검도 이 형님께서 접수해주지 영광으로 아는게 좋을꺼다."
녀석은 정말 건방지다 못해 한심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런데 검 좋은 줄은 어떻게 아냐...하긴 저런 것도 검이라고 들고 다니니 제대로 검모양만 나는 검만 봐도 좋다고 할 것 같다. 그 살벌한 황태자가 달라해도 안주는 검을 네 녀석들이 달라한다고 줄 것 같냐? 그런데 황태자, 그 녀석 생각을하니 며칠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그동안 참고 있었던 스트레스가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쩝,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다행히도 이런 경우에 평범한 사람들의 주요한 행동처럼 주위에 멀찍히 숨어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도와준다고 나와봤자 귀찮기만 할테니, 더 잘 됬다.
난 녀석들의 헛소리를 무시한체 빠르게 몸을 움직여 녀석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녀석들 중 몇놈은 놀라서 칼을 빼드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닭도 한마리 잡지 못할 칼이 클라리에게 당해낼리가 있을까? 녀석들의 칼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그 위대한 흑슬라임파 일원 중 한명은 옆의 과일 과게에 쳐박혀서 뻗어 버렸다. 이럴 때의 전형적인 전개 처럼, 아마 처음에는 녀석들 대부분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마 또 한번 헛소리를 하겠지? 곱게 도망치면 내가 재미가 없지.
"꼬마 녀석. 검을 제법 쓰는군. 하지만 네 녀석이 우리 일곱을 당해낼 성 싶으냐?"
일곱이 아니라 칠백명을 대려와 봐라. 내가 네 녀석들에게 지는일이 있을지. 그리고는 달려오는 녀석들을 가볍게 피하며 모두들 공평하게 한대씩 쳐주었다. 솔직히 똑바로 검을 뽑았으면 다 죽었을 목숨이지만, 정말 사람이 좋아져도 너무 좋아졌다니까. 난 조용히 스트레스를 해소 하고 있었다. 가학증이라고 했던가? 정신학 기본이라는 책에서 읽어본 기억이 ㄴ나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정신병이 있다던데, 뭐, 난 즐긴다기 보다는 건전하게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사회 정의도 구현할겸 하는 행동이었다. 쩝, 피의 마왕, 살인마가 정의의 구현이라 솔직히 안어울렸다.
그렇게 몇놈을 더 두들겨패니, 이번에 한놈은 내 칼에 맞아 녀석들의 등장에 문을 닫고 있던 옆의 마법꽃집쪽으로 날아가 꽃집의 문을 자신의 몸으로 부셔버렸고. 한놈은 어느 구석으로 날라갔는데,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잽싸게 도망을 친 것 같은데, 아까워라. 한,두대 정도는 더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나머지 네놈의 표정이 역시 예상하고 있던데로 심상치않게 변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장난 한번 쳐볼까?
"아이스 볼트"
적당히 모양만 크고 실제 파워는 거의 없게 조절을 한 얼음 조각 몇 개를 만들어 도망치지 못하게 남아있는 네녀석들의 다리를 향해 쏘았다. 정확하게 날아간 얼음조각들은 녀석들의 발을 땅에 고정시켜버렸다.
"마...마법사닷!."
예상대로 녀석들은 내 마법을 본 이 후에 비명을 지르며 전의를 상실하고. 발이 얼음에 얼려져 움직일 수 없었던 까닭에 바닥에 어설프게 주저앉아 버렸다.
"제...발....목숨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녀석들은 내 쪽을 보며 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봐줄 내가 아니지, 최근에 스트레스 쌓인게 어디 한두개 였나? 난 이번에도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패준 다음에 황제 쪽을 향해 돌아 왔다.
"란트, 정말 아인트를 이겼다는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그 정도 몸놀림이면?"
황제는 감탄하는 눈빛과, 더 무서운건 그뒤에 숨겨진 순수한 검사의 승부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왠지 검술대회에 대한 걱정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 같다. 혹시 허락을 한 것도 황제가 내 검술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동안 가득 찼던 스트레스를 상당수 해결했다는 점은 좋았다. 아무튼 난 황제를 데리고...놀란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황제는 그 녀석들을 지나며 그 녀석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혹시. 당신 패거리에 나이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검은 머리 여검사에 대해 한번 물어봐."
내게 맞아서 거의 반사 상태로 누워있던 녀석은 황제의 말을 듣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간신히 뜨고는 황제를 쳐다본 후, 기절해 버렸다. 도대체 예전에 황제가 저 패거리에게 뭘 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수비대가 몰려오기 전에 급하게 현장을 벗어났다. 한산해 졌던 우리주위도 사건 현장을 어느정도 벗어난 시점에서 다시 사람들로 가득찬 까닭에 방금 전에 우리가 저질렀던 행동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나라가 피투안이었어도 수비대 녀석들 오면 다 날려버리고 모른척 하면 되지만, 옆에 제국의 통치자인 황제를 세워두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었다. 난 그 현장을 벗어나자 황제를 보고 물음을 던졌다.
"세리, 도데체 예전에 무슨 일을 했길레. 그 녀석이 기절할 정도지?"
내 간도 어지간히 큰가 보다. 아무리 황제가 명령으로 지시했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말투로 나이가 30살이나 많은 황제한테 반말을 하다니.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이후의 후환이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아. 예전에 내가 공주였을때, 수도를 돌아다니면서 정의의 사자 흉내를 좀 냈었어. 그 때 해치운 패거리중에 하나가 저 흑슬라임파야. 저 패거리들은 좀 지독하게 손을 봐주긴 했지만, 아직도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나보네."
정의의 사자라....역시 황제의 성격은 지금 이 성격이 진짜인 것 같다. 클라리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근육질이거나 그런 것도 아닌 황제가 그런 검술 실력이라,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부탁하기도 그렇고 그냥 참기로 했다.
피투안 국민들이 실제로 이 황제의 모습을 봐야 할 건데 그럼 대다수가 믿을 수 없다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피투안 국민들은 대부분 머리는 흰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마녀 수준, 좋게 봐주면 히스테리적인 노처녀의 얼굴로 이 황제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이랑 안어울리게 엄청나게 젊게 보이는데다가 꾸미기만 하면 거의 미소녀적 분위기까지 풍기는 존재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뭐, 평소에 입고다니는 남자같은 옷에 그 무게 잡힌 딱딱한 성격으로 돌아가면 왠지 근접하기 힘든 황제의 분위기가 나지만 솔직히 마녀같이 생긴다거나 그런것 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약간의 소란을 벗어나자 황제는 다시 머리를 내 어깨 쪽으로 기울이고 내 팔을 양손으로 꼭 잡은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란트, 그런데 배 안고파?"
수도에 와서는 워낙 먹는거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하고 살아서 그런지 배고프다는 사실 역시 황제가 말해준 뒤에야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만 먹고, 점심 무렵에 나온 까닭에 점심은 먹지 않고 있었다.
"조금..."
"그럼, 오랫만에 밖에서 음식을 먹어봐야지. 흑슬라임파하니까 생각나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그 식당이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어."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를 끌고 복잡한 길을 잘도지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길들을 이렇게 잘 아는지. 길찾기 마법도 황제는 마법사가 아니니 쓸 수 없을 텐데. 뭐 황태자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점은 아무래도 스승님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니. 닮은 사람이 황제말고 더 있을까? 그리고 내가 들은 황제에 대한 소문에 의하면 황제는 지금 현재 제국 삼대 전략가에 포함이 된다고 했다. 바로 한명은 성기사단장 티베리우스 폰 힐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사람역시 생각했던 것 보다 대단한 사람이 었다. 그리고 황태자와 황제. 두사람이었다. 원래 귀족 연맹국가 비슷했 리투안 왕국의 그 독한 귀족들을 다 제거하고 이렇게 절대 황권을 가진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건 바로 내 옆에 걸어가는 현재로서는 황제로 절대로 안보이는 이 여자가 이룩해낸 일이라고 들었다.
얼마 걸어가니 항구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엄청난 크기의 배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는 무장된 형식이나 그런 것으로 볼 때 군함으로 추정되는 배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항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난 호기심에 배들과 부두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항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설마 모든 항구들이 다 이런건 아니겠지? 시장이나 항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 포세트립톤은 정말 활동적인 느낌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란트, 서부 대륙 최고의 항구를 본 소감은?"
황제는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소감이야....뭐 특별한게 있을까?
"항구를 처음 봐서 잘 모르겠지만 정말 크긴 크네. 배들이."
내 말도 안되는 대답을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황제는 별표정의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아인트하고 핀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 항구에도 하루에 배 한 두척이 들어올까 할 정도로 한적했었어. 믿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항구가 활발하게 변할 거라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황제는 추억을 회상하듯 담담한 어투로 말을했다. 담담한 말투로 말을해도 이건 자기 자랑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자랑해도 할말이 없지. 하루에 한 두척이라. 솔직히 거의 수백척의 배가 보이는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해를 거의 등지고 계속 우리가 걷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북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조금씩 조금씩 크게 느껴졌다. 식당에는 도데체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배가 고파 죽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적거리고 있던 주위도 많이 한산해지고 거리의 끝에 한눈에 봐도 여행객들을 위한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식당들과 여관들이 모여있는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그런지 이 거리에서는 시장이나 항구에서 만큼 사람들 모습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란트, 저기야."
황제가 가르킨 방향에는 '노래하는 꽃'이란 간판이 붙은 여관의 모습이 보였다. 노래하는 꽃이라...여관치고는 이름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묵었던 여관들은 고급여관이라서 그런지 이름들이 너무 딱딱하단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북부 산맥의 그 여관은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황제는 하루종일 날 끌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무겁거나 한 것은 아니니...황제는 여전히 변함없는 힘으로 나를 끌고 여관쪽으로 향했다. 여관 건물은 조금 오래된 흔적이 보였지만 나름대로 보수를 해서 낡은 건물임에도 그렇게 폐가처럼 위험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들어가니 카운터에서 앉아서 쉬고 있던 남자가 일어서서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오늘 묵으실건가요?"
남자는 나와 황제쪽을 한번씩 슬쩍 쳐다보더니, 내 쪽을 보고 말을했지만, 내가 끌려 왔는데 할말이 있어야지.
"식사만 하려구요. 지금 식사가 되죠?"
역시 내 생각대로 황제는 아직도 내 귀에는 적응이 안되는 소녀들이나 아가씨가 쓰는 말투로 능청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리아인이나 황태자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입니다. 식당은 이쪽으로..."
그 남자의 뒤를 따라 카운터를 지나 조금 걸어가니 식당의 모습이 보였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물 외형처럼 오래된 느낌이 드는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식당의 장식들의 모습이 보였다. 황제는 식당에서도 한 구석의 어느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많은 테이블 중에 왜 제일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황제에게 불만을 표시할 처지도 아니고 그리 큰일은 아니었기에 난 말없이 황제의 앞에 앉았다. 식당안을 둘러보니, 점심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몇몇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란트, 이 자리가 핀언니하고 아인트하고 처음 만났던 자리야. 정말...오랫만이네. 이 곳에 마지막으로 와본지도 십년도 넘은 것 같아. 예전에는 핀언니하고 아인트하고 종종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황제가 왜 이렇게 구석 자리를 택했는지. 이제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스승님과 핀 누나, 그리고 황제가 처음만났던 자리라. 모두 나와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기에 내게도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도 엄마에게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아까 카운터에 있던 남자와 많이 닮은, 아들로 추정되는 청년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더니 말을했다. 난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황제를 슬쩍 쳐다봤다. 황제가 알아서 하겠지. 솔직히 여행 시작한지도 일주일 밖에 안되고, 클라리 앞에서나 황제 앞에서나 자신도 없는데 특별히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제일 맛있는 것으로 알아서 골라주세요."
황제가 그 청년을 보고 살짝 웃으며 말을하자. 그 청년은 소피가 종종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조금 빨갛게 변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식당의 주방쪽으로 걸어갔다. 저녀석은 또 왜 저러지?
"나 예전에 여기서 낮에 그 흑슬라임파인가 하는 녀석들을 혼내줬었어. 흑슬라임파란 이야기를 들으니 이 식당이 생각이 나서 이 곳에 한번 와본거야. 너희 스승님, 날 제일 처음봤을 때, 내가 흑슬라임파 녀석들 물리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잔뜩 긴장해서는 있더라구.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었는데. 그리고 여기서 핀 언니하고 의자매를 하기로 했었고."
스승님한테 그런 비리가...흠. 나중에 스승님이 정신을 차리면 놀려야겠다는 생각이 얼핏들었다. 그런데 황제는 별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스승님을 굉장히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쩝...왠지 또 미안한 느낌이 든다.
얼마 지나자. .그 청년이 접시를 들고 와서는 음식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요즘엔 비싼 음식들을 많이 먹어 봐서 그런지 별 특징이 없는 듯 보이는 음식들이었지만 맛있는 냄세는 가득 풍겼다. 배도 고픈 것도 있고, 난 그 청년이 음식을 내려놓을 때마다 이 것 저 것 맛을 보느라 바빴다.
"란트, 그런데 넌 아무리 봐도 귀여워. 그런데 우리 애들은 내 자식들인데도 왜 귀여운 맛이 나지 않는지..."
이건. 스승님이 예전에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대사와 비슷한 말인 것 같은데. 솔직히 리아인이나 세인트나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설마 공주도 그런것은?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공주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만나봐야지, 그런데 귀엽다라.
"세리, 여기서 그런 얼굴에, 그런 옷차림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어울려."
헛, 내가 무슨 생각으로 말을 한거야. 난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의 말을 황제를 향해 말을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반말로.
"아. 잠시 잊고 있었어. 란트, 그런데 정말 나 그렇게 젊게 보여?"
다행이었다. 황제는 방금 전 그 말에,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휴...앞으로 조심해야지.
"응. 젊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예쁘기까지해."
사실은 사실이었다. 저렇게 시간을 역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 세계에 늙어가는 아줌마들이 어떻게 생각할런지. 잠깐, 나도 정상적으로 성장을 하지 않는 면이 있는데 나중에 늙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정말?"
황제는 얼굴가득 기분이 좋다는 표정을하고 있었다. 뭐, 예쁘다는데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하겠냐마는. 황제는 진짜 이 상황에서 기억을 지우고 20살 처녀처럼 행동을 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회의실에서 보였으면 회의장에 있는 많은 젊은 신하들이 넘어갔을텐데 회의실에서는 딱딱한 표정을 풀지를 않았다.
요즘에 맛있는 고급음식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 식당의 음식도 맛있었다. 적당히 배가 차오르고 그 청년은 후식으로 추정되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 접시를 내려놓으며 갑자기 말을 하는청년...
"저희 식당은 예전에 황제 폐하께서 공주님이셨을 때 많이 찾으시던 곳입니다. 황제폐하께서도 꼭 아가씨 처럼 검은 머리에 아름다운 분이시라고 저희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던데, 왠지 아가씨를 보니 할머니로부터 수백번도 더 들었던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손님, 귀찮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폐하와 닮았다니 저로써는 영광이에요."
황제는 기쁜듯 붕 뜬 목소리로 그 청년에게 답을 했다. 저 청년이 지금 자기가 말하는 황제가 눈앞에 검은 머리 아가씨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할지. 아마 놀래서 쓰러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주위에 늙어가는 아줌마들이 몰라서 다행이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줌마들의 주도로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황제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이다. 우리 마을이 풍요롭게 된 것도. 절반은 그 살벌한 아줌마들의 노력이었으니까. 후식인 과일이 담겨 있던 접시를 비우며 황제를 보고 말을 했다.
"세리,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아. 황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안 보이면 이상하게 생각을 할 텐데."
난 황제 납치범으로 몰리긴 싫다고, 만약에 황제를 찾기위해 수색대 같은게 나온다면 황제하고 같이 있는 난 일순위로 납치범으로 몰려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내가 죽기까지야 하겠냐마는 이렇게 방어가 잘되있는 성을 뚫고 도망을 치려면 나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휴...그냥 이렇게 란트랑 어디로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데."
황제는 한숨을 쉬더니 아쉬운 듯 말을했다. 황제가 진짜로 30살만 작았어도, 황제의 말을 들어줄 용의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49살 황제랑 황제납치범으로 몰릴위험을 무릎쓰고 멀리 도망칠 용의는 전혀 없었다. 내가 아무말 없이 일어나자. 황제는 따라 일어서더니 계산을 하기 위해 주방쪽에 서 있는 그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청년은 우리를 보더니 곧바로 달려왔다. 휴 이번에도 내가 계산을 해야할 것같은 분위기인데. 대륙 최고의 부자를 옆에 두고 정말 남자라는 존재가 뭔지. 그러고 보니, 황태자 녀석은 내가 데이트하자고 하면 자기가 다 계산을 할까?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하고 있는거야.? 란트...크리센, 정말 타락할 때로 타락해 버렸군.
"얼마죠?"
"6트립입니다."
난 주머니에서 아까 잔돈으로 받았던 은화 두개를 청년에게 주었다. 청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황제를 곁눈으로 슬쩍 쳐다봤다. 아무래도 황제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쩝, 요즘엔 못볼걸 많이 보는 것 같다. 여장남자를 좋아하는 놈이 있지 않나, 나이 오십이 다 된 아이 셋 딸린 여자를 좋아하는 놈이 있지 않나. 휴...
여관에서 나와서 황제와 나는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황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침 무렵에 나왔었는데 어느덧 해가 질 때가 다 되어버렸다. 황제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생각만큼 그렇게 피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스트레스까지 해결할 기회도 있었고...
어느덧 우리가 밖으로 나왔던 비밀통로가 있는 절벽이 보였다. 한번 자났던 길을 다시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에 통로가 있었지? 모두 다 똑같은 절벽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황제는 별 고민도 없이 절벽의 한쪽으로 가서는 돌하나를 쑥 눌렀다. 그러자 우리가 나왔던 그 통로가 그대로 보였다.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황제는 어떻게 아는 것일까? 황제가 들어가고 그 뒤에 내가 따라 들어가자 문은 저절로 닺혔다. 마법같은게 걸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나올 때처럼 한참이나 오르락 내리락 한 후, 갈림길도 상당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길을 잊어버리지 않고 정확하게 우리가 들어왔던 장소로 걸어 나왔다.
"란트, 오늘은 고마웠어."
잠깐....뭔가 잊은 것 같은데...아! 클라리 선물, 깜빡했다. 이런 어떻게 하지? 어쨌든 난 곤란한 표정을 잠시 숨기고 황제에게 답을 했다.
"아니에요. 뭐 특별히 한일도 없고. 스트레스 해소 하는데도 도움이 됬는데요. 누나."
일단 높임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황제에 대한 낮춤이 익숙해지기 전에 그래야지 나중에 중요한 상황에 곤란한 일이 안일어나지, 그런데 정말 클라리 선물은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황제가 발꿈치를 조금들며 얼굴을 들이데더니. 예전에 클라리가 했던 것 처럼, 내입술에 황제 자신의 입술을 댔다. 순간 심장이 조금 두근 거렸다.
이건 또..무슨 일이람? 난 방금전에 일어났던 일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세상에...! 황제하고! 애 셋딸린 아줌마 하고! 이런걸 제국 노대신이들이 알면..날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아무튼 첫키스는 검한테, 두번째 키스는 아줌마한테 뺐겼다. 둘다 미인이긴하지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으...모르겠다.
"아인트 한테는 비밀이야, 란트. 그리고 이건 클라리한테 줘. 너 클라리 선물 못 샀잖아. 그럼 나중에 봐."
황제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머리에서 낮에 내가 사줬던 은색 핀을 뽑더니 내손에 놓고는 복도 쪽으로 달려 가버렸다. 꼭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들 처럼...나이 오십의 아줌마가. 난 잠시 그 자리에서서 마음을 정리한 후에 내방쪽으로 걸어갔다. 휴...도데체 어떻게 되는 건지. 이런 것을 보고 흔히들 불륜이라고 하던데, 방문을 여니, 그동안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계속 날 기다렸는지 클라리는 아까 앉아있던 소파에서 잠이들어 있었다.
"어...주인님 돌아왔네. 재미있었어?"
방문을 닫는 소리가 조금 크다 싶었는데, 그 소리에 잠을 깬 클라리가 눈을 비비며 나를보고는 물었다.
"황제 신하 노릇했는데 재밌을리가 있겠니?"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나빴던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히 말할수 없는 느낌. 좀 스승님한테 찔리는 일이 있었지만.... 난 아까 황제가 주고 갔던 그 곰돌이라고 추정되는 은제 핀을 클라리에게 주었다.
"이거 아까 클라리 너가 사오라고 했던 선물."
"와..정말 귀엽네? 이거 주인님이 고른거야? 세리 언니가 고른건 아니지?"
클라리는 선물을 받더니 낮에 황제가 그랬던 것 처럼 좋아했다. 클라리는 자기의 백금발 머리에 그 핀을 조심스럽게 꼽았다. 황제도 그랬지만 클라리도 생각보다 그 싸구려 핀이 잘 어울렸다. 하긴 둘다 원판이 좋으니까...
"내가 골랐어."
"정말? 주인님 생각보다 예쁜 물건을 잘 고르네. 정말 고마워~. 주인님아."
클라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휴..클라리가 좋아하니 정말 다행이다. 황제는 어떻게 보면 어른 같기도 하고 오늘 낮에 있었던 여러가지 행동은 절대 나이든 어른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모습은 분명이 어른들의 그 것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자세히 아는 신디 같은 능력이 생겼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얼핏들었다. 하지만 쓸데 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다른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다 알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을테니. 눈빛으로 사람의 심성을 아는 능력을 가진 것 만으로도 괴로운 일이 많이 생기는데. 여행하면서도 저절로 칼에 손이 가는 것을 참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 생긴다면, 진짜 말그대로 피의 마왕이 되버리지 않을까? 마음한구석에 나쁜마음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테니. 그런면에서 신디의 능력을 각성시키거나 그런 일은 되도록이면 안할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능력이 발달하면 괴로운건 신디일 뿐이니까.
오늘 황제와의 데이트,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것으로 황제와의 인연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들바람같은 인연이 아니라 왠지 깊은..
-포세트립톤의 황궁에는 수많은 비밀통로와 비밀의 방이 있다고 한다. 철혈여제 세리니안느 1세의 경우 그 비밀통로의 대다수를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후로는 몇개의 통로는 발견되었지만 대다수는 비밀 통로란 이름 그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방 중에는 굉장히 귀중한 고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방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통로에 대한 조사는 아주 중요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일보> 제국력 174년 5월 3일자 사설-
수도에서 무료한 며칠이 흘렀다. 스승님은 언제 뵐수 있을런지. 수도에 온 뒤에도 그 일에 대해서는 말조차 없었다. 스승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궁의 그 많은 방들을 다 찾아 볼 수도 없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태자 녀석을 혹시나 만날까 하는 생각에 두려워 그 사건 이후로는 밖으로 나가지 조차 못하고 잇는 중이었다. 혹시나 내가 여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그런데 클라리는 매일 어디가는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바쁜 것 같이 보였다. 아무리 본체만 무사하면 된다지만 그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황태자나 클라우 녀석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려는지 솔직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소피와 신디, 역시 클라리를 따라 궁의 이 곳 저곳을 구경하는데 동참을 한 까닭에 결국 언제나 방안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은 나였다.
며칠 동안 그래도 머문 곳이라 어느새 익숙해진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시간을 보니 클라리가 돌아올 무렵이겠군.
"이제 돌아온거야?"
난 지루함에 하품을 하며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방안에 들어온 사람은 클라리가 아니라. 정말 뜻 밖에도 황제였었다. 황제가 무슨 일로 여기에 온것일까? 정말, 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에 당황해서 황제에게 예를 한다거나 할 겨를도 없이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황제의 옷차림이 전에 하인들 옷을 입고 있었을 때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할말이 없었다. 밝은 하늘빛 원피스에 하늘빛 머릿띠, 10대들 이나 입고 다닐 듯한 디자인의 옷차림을 황제는 하고 있었다. 황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란트, 혼자 있었구나. 다행이네. 전에 누나 부탁 하나 들어 준다고 했지 않니?"
황제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더니, 내가 멍하니 앉아 있는 의자 근처까지 걸어와서는 말을했다.
"네?....네."
난 여전히 혼란스러은 마음에 조금 더듬 거리며 답을 했다. 그런데 황제는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일까? 클라리한테 당한 것이 하도 많아서, 솔직히 부탁이란 말만 들어도 왠지 불안해 졌다.
"란트, 오늘 하루 나하고 데이트 해줄 수 없겠니? 이 옷을 구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란트 네 나이 또래 맞추기 위해서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가의 주름 몇개 정도는 하루 정도 네가 마법으로 어떻게 해 줘야 할 것 같단다. 그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니?"
데이트, 오십이 다 된 좀있으면 할머니가 될 여자하고라. 책을 통해 얻은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써는 그다지 기뻐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 주위 여자들은 왜 이렇게 날 피곤하게만 만드는지 모르겠다. 뭐, 눈가에 주름 몇개 가리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지만 며칠전,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황제가 날 도와준 것을 잊을 수 없었다. 그다지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정도 황제에게 봉사하는 기분으로 일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황제하고 같이 있으면 세인트 녀석도 어떻게 할 수는 없을테니 안심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네...."
하지만 난 힘없이 황제에게 답을 하며 주문을 외었다. 부분 환영주문, 꼭 황제의 눈가에 있는 주름들이 원래 부터 없었던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법을 쓰고 나서 살펴 보니 정말 저 옷차림에 눈가에 몇개 없던 주름마저 없게 만들었더니, 완전히, 열 몇살,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이건 말도 안돼! 엘프도 아니고 사람이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정말 눈가의 주름이 없는 것 처럼 보이네? 란트 대단하구나. 이런 부탁을 핀언니에게 하기도 그렇고해서 하고 싶어도 못했었단다."
내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황당함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는지 황제는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춰보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뭐 대다수의 나이많은 여자들이 젊게 보인다는 사실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본래의 나이보다 30살이나 젊어보인다는 것은 솔직히 징도가 심했다..
"아마 하루 정도 마법이 지속 될 거에요. 영구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만..그건 별로 안좋을 것 같아서..."
내가 한숨을 쉬며 말을 하자, 황제는 조금 아까운 듯한 표정을 얼굴에 띄었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니 영구적으로 되기를 바랬던 것 같은 눈치이다. 하지만 솔직히 주름살 따위는 가리지 않아도 황제는 충분히 젊어 보였다. 본 나이보다 훨신 더. 아무튼 황제는 곧 다시 웃는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내 팔을 잡고 끌었다.
"그래, 이정도면 충분해. 그럼 란트, 어서 따라와 궁밖으로 나가야지."
말투까지 바뀐 황제, 황제가 사용하는 말투는 이로써 최소한 세가지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엔 젊은 사람들이나 사용할 만한 말투를 사용했으니. 황제의 팔에 끌려 난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휴...난 왜 여자들한테 끌려만 다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닌경우도 며칠전에 있었다. 남자한테 끌려다닌. 그 일은 지금 보다 훨씬 더 끔찍했지만...
문앞까지 걸어간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클라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클라리는 황제와 내 모습을 보더니,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했는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리가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다. 왠만한 일엔, 거의 표정의 변화가 없으니까. 나를 놀릴 때 빼고.
"세리언니...우리 주인님 데리고 어디가려고? 나도 같이 가자. 응?"
제발 그것 만은 여자 두명에게 시달리게 된단느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싫어. 오늘 하루 란트 하고 데이트 할꺼란다. 그런데 진짜 애인이 방해하면 곤란하잖니."
진짜 애인? 이 건 또 무슨 소리지....고민을 해봐야 할 듯. 누가 누구의 진짜 애인이라는 건지. 설마 클라리가? 아니겠지. 우리는 순수한 검과 주인의 사이일 뿐이니.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만 검에게 시달리고 있는 주인이라 해야 되겠지만.
"클라리. 이 일은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네가 책임져야 해. 전에 내 부탁 한개 들어 준다고 했었지? 그냥 오늘은 여기에 있어줄래?안 그러면 너무 피곤할것 같아."
난 한숨을 쉬며 힘없는 목소리로 클라리를 향해 말을했다. 클라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황제를 잠깐 노려보더니, 그래도 되는 건가? 할 수 없다는 듯 소파로 걸어가 주저 앉아 버렸다.
"어휴. 주인님아. 나중에 선물이나 사와. 오십이 다 된 할머니 한테 주인님을 빼앗길 염려는 없을 테니."
오십이 다 된 할머니....그 말에 황제의 눈썹이 꿈틀 하는게 느껴졌다. 그런데 빼앗기긴 뭐가 빼앗겨? 여전히 의미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뭐가 쫓아 오는 듯, 클라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끌고 밖으로 걸어갔다. 잠깐 그런데 이 쪽으로 가면 길이 없는데? 하지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또 어느 구석의 벽 쪽으로 가서 황제가 벽의 한부분을 몇 번 두드리자 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보였다. 이번에는 황제가 정령들을 불러내는 걸 구경도 할겸, 주위가 어두워진 뒤에도 마법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지나자 갑자기 통로가 밝아 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작은 빛덩이 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게 정령인가?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 볼 겨를도 없이. 황제에게 끌려 어제처럼 또 좁은 통로의 계단을 끝없이 오르락 내리락 거려야만 했다. 비밀 통로들은 황제 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먼지가 쌓여 있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 전체 분위기가 그러니까 그렇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까닭에 신기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밑으로 나있는 계단으로 한참동안이나 내려가자 전처럼 또 막다른 벽이 나왔다. 아무래도 저 벽이 출구가 될 듯, 솔직히 어떻게 비밀통로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나가는 방법을 모르는 이상은 비밀통로에 갇히기 십상일 것 같다. 황제는 잠깐 고민을 한 후, 이번에도 벽의 어느 곳을 눌렀다. 그러자 막혀있던 벽이 열리며 밖으로 부터 밝은 빛이 들어왔다.
황제를 따라 밖으로 걸어나와 잠시 밖의 밝은 빛에 적응을 한 뒤에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가 비밀통로로 부터 빠져 나온 곳은 절벽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해가 떠있는 방향으로 볼 때, 황성의 동남쪽인 것 같은데. 그 곳에 이런 절벽이 있었다니. 그런데 우리가 나온 비밀 통로쪽을 다시 돌아보니 어느세 문은 닫혀 있었고 그 곳에는 아무리보아도 절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큰 만 있을 뿐이었다.
"폐하. 그런데 혼자 다니셔도 되는데. 왜 저를?"
그래, 갑자기 궁금해 진다. 제국 검술 챔피언 정도의 실력이면 혼자다녀도 안전에는 별 문제 없을 텐데. 나를 호위나 그런 용도로 부른 것은 아닐테고.
"란트, 밖에 나와서까지 그렇게 부르면 어떻게 해. 밖에 있는 동안은 세리 라고 불러 말도 높이지 말고. 그리고 원래, 여자가 혼자다니면 여러가지 일이 많이 생기잖아. 귀찮은 일도 많고, 전에는 깡패녀석 몇 놈을 패주다가 수도 수비대장이와서 내가 누군지 들키는 바람에 많이 돌아다니지 못한 적도 있었어."
황제는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휴, 그런데 황제의 모습은 회의 할 때, 다른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렇게 옆에 서서 보니. 실제 키는 나보다 작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던데, 황제가 바로 그 확실한 예인 것 같다. 진짜 저런 옷차림에 저런 절대로 나이 50의 아줌마가 사용할 것같지는 않은 말투로 돌아다니면 진짜 친한사람 아니면 황제인 줄 누가 어떻게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란트 덕에 오랫만에 즐겁게 쉴 수 있겠네.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찻집부터 가자."
젊은 아줌마 황제는 클라리가 종종 하는 것 처럼 내 옆에 달라 붙어서는 역시 클라리 처럼 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솔직히 내 생각에는 원래 몇안되는 주름도 가렸고 키도 그렇고 겉외모만 보면 클라리 보다는 황제가 더 나한테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이가 33살이나 차이가 난 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런데 클라리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또 나 없다고 또 울지는 않겠지? 쩝, 이번 경우에는 클라리도 대충 상황을 이해 할 테니, 괜찮겠지.
수도의 풍경은 전에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것 처럼, 정말 구경거리가 충분했다. 자유로운 듯한 느낌 속의 조화,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 대부분이 가지는 주요한 특징이었다. 그리고 전에 수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정말 거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또, 너무 부유하게 보인다거나 하는 사람도 역시 물론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고민이 없는 듯 보이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난 슬쩍 존경스러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란트 왜? 뭐 할말 있어?"
"아니...이 수도 시민들이 너무 평화롭게 보여서...어.."
뒤에 '요'자가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말을 했다. 리아인처럼, 황제도 왠지 모르게 존댓말이 나오게 하는 스타일이라 솔직히 말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다고 해야하나? 그다지 지도자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장소에서도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도록 만드는 힘이 황제에게는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란트 네 영지에 비하면 이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 영지에선 모든 종족들이 다툼없이 잘 지낸다며? 난 적대적인 종족들을 영토내에서 몰아내는 것 밖에 생각을 못 했었었는 걸."
하..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 였었나? 솔직히 난 그다지 한 일이 없었다. 내가 한일이라고는 그들을 오로지 마을로 데려와 줬을 뿐, 그리고 마을에 오는 존재들은 가려서 받았을 뿐, 그 것 밖이었다. 그리고 괴물사냥꾼 녀석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줬다는 그 것 정도만이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제는 그 말을 마친 후 내 팔을 자신의 두팔로 꼭 안듯이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 이렇게 남자한테 기대보는 것도 얼마 만이야. 황제가 된 뒤로는 아인트나 나 모두 바빴고, 좀 여유가 생기려니. 아인트가 그렇게 되버렸으니. 솔직히 말해서 세인트는 얼굴이 백성들에게 너무 알려져서 부탁을 못했었고, 리아인은 좋아하는 애가 있어서 그런지 거절하더라구. 그래서 란트 너한테 부탁한거야. 훗 그러고보니 이 말투도 오랫만에 써보니 재밌네. 왠지 마음까지 젊어지는 것 같아.아까는 놀랬지? 미안해."
스승님사건, 그 사건에 대해서 들으니 황제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로인해 황제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테니. 황제란 자리에 아무나 오르는 것도 아니고, 황제 역시 그동안 많이 바빴을 것 같다. 이 넓은 제국령의 백성들을 이렇게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살게 만들려면.
"아니에.... 괜찮아..."
아직도 말하는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 '요'자가 나올뻔 했다는...원래 내가 사용하던 말투는 높임을 전혀 안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왜 이렇게 황제 앞에서는 말을 낮추기가 힘든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에게 끌려서 수도의 이 곳 저 곳을 보는 것도 사람들이 가끔씩 지나가며 흘끔 쳐다보는 것 말고는 그런데로 괜찮았다. 황제정도의 얼굴이라면 황제란 사실을 모를 경우에는 한번쯤 눈길을 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붙어있으면 종종 내 걸음을 방해하곤 하던 클라리와는 다르게 황제는 똑같이 매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키차이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라면 황제가 조심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란트, 저기야. 저기."
바닷쪽으로 꽤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닷가 근처에 지어져 있는 이층 집이었다.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전체적인 외관이 괜찮게 보였다. 일층은 낚시 용구를 파는 가게인 것 같고, 이층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은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건물 옆 부분에 계단이 있는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뭐 내가 이 곳에 온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게 당연하지라는 핑계를 속으로 중얼 거리며 황제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꼭 분위기가 도적 길드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었지만, 솔직히 내가 도적길드에도 가본 적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책에서 읽을 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지만 위에 올라가 보니 내가 착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찻집이었다.
"세리, 얼마만이야. 이게."
찻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황제의 이름을 무엄하게 부르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서..쳐다보니 별특징이 없는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다. 앉아 있는 곳으로 추정하건데 이 찻집의 주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는 자기가 그렇게 막 이름을 부르는 여자가 이나라 최고권력자 그 철혈여제 세레니안느 1세 황제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미네리, 오랜만이야. 얼굴을 보니 요즘에 잘 지내는 것 같네?"
황제 역시 그 여자를 향해 무척이나 반가운 말투로 말을 했다. 꼭 보통 친구에게 말하는 것 처럼.
"세리, 그런데 정말 너무했어. 그렇게 오랫동안 이 곳에 오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아니? 그런데 세리! 나 있잖아. 사실은 얼마전에 결혼 했어."
얼마전에 결혼 했다라. 분명이 이 여자는 황제의 외모에 속아서, 아마 자기하고 나이가 비슷하다고 착각을 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진짜 나이를 알면, 아마 놀래서 넘어가겠지?
"정말이니? 축하해. 그런데 설마, 피노텐 하고 결혼 한건....아니겠지?"
"맞아. 피노텐 이야. 그이는 또 배타고 가버렸고..."
한숨을 쉬는 미네리 라는 여자. 남편이 선원인가 본데 원래, 이야기 같은데 들어보면 선원들의 아내는 언제나 외로움을 안고 산다고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 그리고 혹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런 까닭에 선원들의 아내 중에는 실제로는 바람이 나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말렸잖니. 모두 내말을 듣지 않은 미네리 네 잘못이야. 그런데 미네리 오늘은 그 자리 있어?"
그 자리라. 황제의 고정석이라도 있는 걸까? 찻집 주인하고도 아주 친한 것 같고, 도데체 무슨 사연인지 궁금해진다. 왠지 황제의 이중 생활의 배일이 조금씩 벋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야. 그 자리는 항상 비워 두는걸. 동업자의 특별한 자리인데."
동업자...? 그럼 찻집에 황제도 투자를 했단 말인가? 황제가 직접 투자를 한 찻집이라...다른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 찻집이 엄청난 인기를 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큰 소리로 황제와 이야기를 하던 그 여자는 갑자기 황제쪽으로 목소리를 낮추고는 말을 이었다.
"언제 부터 사귄 거야? 너 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데, 남자친구는 안 만든다더니. 정말 능력이 좋구나. 저렇게 잘 생긴 사람에다. 나이도 어리고, 젊은 사람이랑 다녀서 그런지 너도 더 젊어진 것 같아 보여."
미네리라는 그 여자는 내가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했을 테지만 엘프 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귀는 꽤 밝은 편인 까닭에 한글자 한글자 모두 정확하게 내 귓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어리다는 말, 33살이 조금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를 보자 뭐가 즐거운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황제가 젊게 보인다라는 말 너무나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가 주름을 가려줬으니 젊어져 보이는게 당연하지.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이 사기꾼 황제, 분명히 나이를 속이는 것은 핀 누나의 영향을 받은 게 틀림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핀누나는 엘프라서 그렇다고 봐줄 수도 있지만, 황제는 엄연히 사람이었다.
"미네리, 그럼 차는 제일 좋은 것으로 부탁해."
난 여자 쪽으로 고개를 꾸벅 하고는 황제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찻집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신경써서 꾸며놓은 듯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생화의 모습, 아마 마법이 걸려있겠지...돈을 벌기위해 마법으로 장사를 하는 마법사도 많다고 한다더니..아무튼 마법이 걸려져 있는 꽃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 꽃을 겨울에 장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일까? 전체적으로 나무로 지은 집의 주요한 특징인 어두운 분위기나 조금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인지, 황성의 색과 비슷한 아이보리색으로 내부를 칠해 놓은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테이블이 하나만 놓여있는 큰 창이 있는 방이었다. 찻집에서 제일 좋은 듯 보이는 방, 테이블보나 의자 역시 그런 것에 대해 잘모르는 내가 보아도 좋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황제를 따라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항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멋진 풍경에 황제가 이 곳을 좋아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감돌았다.
"여긴 언제와도 정말 좋아. 황성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은 많지만, 이 곳은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들어."
황제는 창 밖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다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황제의 강한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원래 황제의 성격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까? 시대의 필요성이 한 개인을 완전히 빼앗아 간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면에서 보면 황태자 세인트는 황제위에 오르기에는 적격이었다. 원래부터 외로웠으니, 황제가 된 뒤에도 그 사실에 대해서 더이상 크게 상처를 입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미운 녀석에게 왠지모를 동정이 갔다.
그렇게 얼마동안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으니, 미네리라는 여자가 차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난 차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다지 즐겨 마시지는 못했고 어쩌다가 마을 축제 때나 술대신 가끔씩 맛을 볼 뿐, 집에서 특별히 따로 마시거나 한 적은 없었다.
"어제 들어온 차인티 제국 특제 수입 차에요."
"아...네..."
미네리라는 여자는 찻잔을 내려 놓으며 날 보며 웃으며 말을했다. 순간적으로 약간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난 찻잔에 입을 댔다. 아직 클라리를 통한 단련이 덜 된 듯...찻잔 속의 진 붉은 빛의 차로 부터 향긋한 냄세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 오랫만에 마셔서 그런지 차향이 더욱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인티 제국 특제 수입 차, 내가 전에 읽었던 책에 따르면 차인티 제국의 차를 최고로 치고 그 다음에 코리안트 왕국 차. 그 다음이 이오니스 공작령에서 만든 차라고 했었다. 예전에는 차인티 제국의 차는 너무 비싸고 코리안트 제국에서 만든 차일 경우는 값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해적들로 인해 교역이 활발하지 못해 구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이오니스 공작령에서 만든 차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요즘엔 코리안트 왕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져 코리안트 왕국의 차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즐겨마시는 서민의 경우에는 주로 코리안트 왕국의 차를 끓여 마신다고 했다.
"그럼 편안히 쉬다 가세요."
"네.."
미네리라는 여자는 계속 나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왠지 나란 존재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듯한 느낌. 여자들 틈에 있어도, 하긴 여자라고 해봤자 검하나, 엘프하나, 어린애 하나지만 솔직히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별로 자신이 없었다. 차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뒤에도 한참이나 방안에서 나를 지켜보던 미네리라는 여자가 인사를 한 후,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본 뒤에 나는 다시 황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황...아니..세리, 그런데 왜 내가 스승님을 못 만나게 해?"
또 황제라 할 뻔 했다. 하긴 속으로 계속 황제라 부르니까. 세리라는 이름이 별로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무튼, 이번 기회에 궁금한 것 하나를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에 직접적으로 황제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인트,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그런 모습을 란트 너한테 보이면 네 마음만 아프잖아. 핀언니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인트가 깨어나면 네게 제일 먼저 알려줄거야."
황제는 슬픈 목소리로 말을했다. 내가 괜히 말을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그 건에 대해서 황제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내가 황제에게 말을 했던 것일까? 왠지 후회가 되었다. 휴...그동안 핀누나가 안보였던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이었나.?
"미안해...."
난 힘없이 황제를 보며 말을했다. 최근 몇개월 동안, 16년을 살면서 사과 한번 안했던 나란 존재가 사과를 할 일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모두 내 잘못이니, 그다지 거부감이 들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모를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란트,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리아인이 말 안했니? 나도 그 차가운 세인트 녀석도, 리아인, 아리 아무도 널 원망하지는 않아."
차라리 미워 죽겠다고 말을 하는게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예전처럼, 마음을 닫고 지내면 되니. 하지만 요즘에는 익숙치 못한 정이라는 감정이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이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많은 아픔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제의 말 중에 세인트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란트, 그런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 오늘 하루는 재미있게 놀기로 하고 나왔잖아."
황제는 슬픈 표정을 풀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황제는 50년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을까? 그녀 역시, 바쁜 생활에 몸을 맏기고는 그 상처를 잊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황제에 대해 엄마가 이야기 해주던 것이 생각이 난다. 황제의 엄마가 황제를 놓으면서 죽었다던 그 이야기 어릴 때는 무심히 들었던 것 같지만 지금의 내 기억 속에는 그 이야기가 제일 뚜렷이 남아 있었다. 왜 그럴까?
"란트, 그 반지 예쁘네? 나 주면 안돼?"
황제의 눈길이 찻잔을 들고 있는 내 손의 사파이어 반지를 향하며 말을 했다. 황제 그 자신이 보석을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방하나에 가득 보석을 쌓아놓고도 지내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듯 보이는데. 왜 이런 작은 반지 하나에..? 하지만 다른 반지면 몰라도 이 반지는 주기가 좀 그렇다.
"좀 곤란한데....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럼 할 수 없지. 뭐."
황제는 생각외로 순순히 물러섰다. 이 반지를 잃어 버렸다가 나중에 무슨 화를 클라리한테 당하려고, 하지만 황제의 눈길을 보니. 계속 반지를 향하고 있었다. 휴, '황제 폐하 이건 정말 안된다구요 정말로!'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이 곳에 있으면 마음에 편해지는 건 좋은데. 왠지 우울해 진다니까...란트. 우리 그냥 쇼핑이나 하러 가자."
차를 다마신 황제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서며 말을했다. 쇼핑이라...여자들은 왜 그렇게 쇼핑을 좋아하는지, 정말 모를일이었다. 난 피곤하기만 하던데, 그렇지만 이럴 때는 물건을 구경하며 고민을 잊을 수도 있으니, 기분을 푸는데는 황제의 말을 따라 쇼핑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방에서 나와 카운터 쪽으로 걸어 가니 미넬리라는 그 여자가 웃으며 우리를 쳐다 보았다.
"세리, 이번에도 배당금 안 가져 갈꺼니?"
배당금? 동업이라고 하더니. 배당금까지, 황제가 황제 위에서 밀려날 때를 대비해 이런 대책을 세운건, 황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볼 때, 아닌 것이 당연했고. 그렇다면 뭐 때문이지?
"응, 이번에 찻값은 배당금에서 빼줘. 배당금은 나중에 결혼할 때 찾을 꺼야. 그 때까지 잘 맡아줘."
황제는 결혼 이야기를 하더니 내쪽을 쓱 쳐다보았다. 미넬리라는 그 여자역시,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보는 것이 영 불안했다.
"알았어. 세리, 이번 달까지 총 532트립 배당금은 이 미넬리가 맡고 있을께."
532트립, 많이도 모였다. 저 많은 돈을 한 번에 주려고 하면 미넬리라는 여자도 힘들텐데, 설마 배당금 만큼 안쓰고 모아두는건 아니겠지? 아니,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리, 자주 찾아와. 다음에는 내 말상대도 되주고 알겠지?"
"응, 미넬리. 그럼 다음에 봐."
황제는 미넬리쪽을 보며 아주 다정하게 이야기를 했다. 역시, 한두번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난 그 여자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황제의 뒤를 따라 그 찻집을 바져 나왔다.
클라리하고 다르게 황제는 같이 다니기에 상당히 편했다. 나를 많이 배려해 준다고 해야하나? 아무튼.겉 외모는 저렇게 어려도 실제 속은 나이 오십이 다 된, 내게는 엄마뻘이 되는 사람이니까.
한동안 갑갑하게 황궁안에서 지내다가 이렇게 밖에 나오니, 그런데로 괜찮았다. 뭐 이정도 걷는다고 피곤할 나도 아니니. 주위에 특별히 우울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 없이 모두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 있으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제국, 정말 무력으로만 이룩한 나라가 아니었다. 절대로...
"란트, 저쪽으로 가자. 이 도시에서 제일 큰 시장이 있어.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해도 헛소리는 아닐꺼야."
황제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했다. 그 얼굴에 그 옷차림으로 그런 말은 안어울린다고요. 잠깐 이 말은 어제 황제가 나한테 한 말인데...
황제는 여전히 내 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머리를 기댄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난 괜찮지만 황제, 저렇게 걸으면 힘들지 않을까? 얼마 걸어가자 건물들의 높이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가게들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시장이 틀림이 없었다. 시장의 규모가 얼핏 보기에도 미들트립톤의 그 것보다 더 커보였다. 리투안국 자체가 처음엔 상인들의 연합에서 시작해서 발전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황제는 다행히도 클라리 처럼 이 곳 저 곳의 물건을 구경한다 거나 하는 것에는 특별히 애착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보다는 시장에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이런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들었다.
"란트, 우리 저기 한 번 가보자."
황제는 날 데리고 악세서리가 가득 놓여진 자판으로 끌고 갔다. 싸구려 임에 틀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이 것 저 것을 들었다 놨다하며, 상당히 즐거운 듯 보이는 표정으로 구경을 했다.
"란트, 네가 하나 골라서 사주면 안돼? 나한테 잘어울릴 것 같은 걸로."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람. 내가 예쁘고 말고 한 걸 알아야 고르지.
"뭐?...."
난 무의식 적으로 튀어나오는 소리에 깜짝놀랬다. 다행히 높임은 하지 않았지만 이러다가 불경죄로 잡혀가는건 아니겠지.
"란트, 하나만 사줘, 응?"
폐하, 제발 나이에 어울리는 기품있는 행동을. 난 조금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황제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진짜 나이가 50이라는 것과 속의 이중 인격중 하나는 정말 살벌하다는 것을 머리속에서 지우면 지금 황제의 모습은 귀엽다는 축에 들기에 충분했다. 자판에서 물건을 팔던 아줌마는 황제를 딸 보듯이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줌마는 이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으로 변할런지....
난 황제의 거의 협박성 애교에 할 수 없이 자판위의 싸구려 물건들을 쳐다, 아니, 정확히는 노려보기 시작했다. 목걸이나 팔지는 싸구려 티가 너무나고 귀걸이도 마찮가지고, 내 눈은 머릿핀 쪽을 향했다. 다행히 머릿핀 쪽에는 싸구려 티가 별로 나지 않는 은제 제품들이 보였다. 은도금하고 순은제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나머지들은 주로 은도금이 대부분이 었지만 머리핀은 대다수가 순은으로 만든 듯했다. 난 그중에 제일 무난한, 그런데 곰인지 강아지인지 모를 동물의 모양이 붙어있는 머리핀을 하나 들어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이거 얼마에요?"
"젊은 양반, 정말 예쁜걸 고르셨네요. 남자치고는 정말 센스가 있어요. 여자친구가 좋아하겠는데요. 그 핀은 1트립이에요."
아줌마는 외모와는 다르게 장사꾼 특유의 그 빠른말투로 말을 뱉어냈다. 여자친구라, 나이 오십먹은 아줌마하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다니. 그런데 뭐? 이 조그마한게 1트립이라고? 하긴, 한끼 식비로 20트립이나 지불한 적도 있으니. 뭐, 난 주머니에서 몇개 안남은 금화 중 한개를 꺼내 그 아줌마에게 내 주었다. 아줌마는 금화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 져서 날 쳐다보았다. 쩝, 내 나이 또래에 보통사람이 금화를 들고 다니진 않겠지. 특히, 이 나라는 부유한 귀족들도 그리 없을 테고 귀족들이라면 이런 시장의 악세사리점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아줌마는 금화를 얼른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옷을 거의 다 뒤지다 싶이 해서 은화세개를 찾아꺼내 내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오세요."
다음에 또 올 때도 이 자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올수 있다면 되도록 이곳으로 오도록 노력을 해주지. 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의 핀을 아줌마에게 받아 황제에게 주었다.
"세리. 마음에 들어?"
쩝, 이제 조금 익숙해 지는 것 같았다. 혹시 이러다가 공식 회의중에 반말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황실 모독죄로 즉결 처형이되는건 아닐까? 설마...
"란트, 곰돌이네? 너무 마음에 들어. 정말 고마워!"
곰이었구나. 황제는 생각 외로 너무 좋아했다. 황제가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화려한 물건들을 원하는데로 얻을 수 있을텐데. 여자는 사소한 것에서 감동을 받는다고 어느 책에 적혀 있었긴 했지만.
황제는 즐거운 표정으로 한참동안 그 머릿핀을 쳐다보더니 자기의 그 짙은 검은빛 머리 한 쪽에 그 핀을 꼽았다.
"잘 어울려? 란트?"
생각외로...황제가 겉외모가 나이가 별로 들지 않아 보여서 그런지 그 핀은 황제와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싸구려임에도 불구하고 싸구려티가 많이 사라진 듯 보였으니.
"생각 했던 거 보다 훨씬."
난 웃으며 답을 했다. 잠시동안 진짜 여자 친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지만,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여자친구가 언제 있어봤어야지. 하지만 순간적으로 가슴이 약간 두근 거리는 것과 왠지 모를 굉장히 편안함이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건, 꼭 친구같지만 또, 그 것과는 약간 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동경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황제가 다시 내 팔을 잡고 복잡한 시장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장의 저 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더니 사람들이 일제히 옆으로 슬슬 비켜서기 시작했다. 혹시 황제가 없어진 걸 알고 찾으러 온건 아닐까? 난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그 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등장하는 것은 다행히 경비병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있는 전형적인 건달들, 거의 모든면에서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제국의 수도에서도 저런 놈들은 사라지지 않는 가 보다. 인구가 많은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데 녀석들은 사우스 피투안에서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녀석들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지나가면서 주위 상점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하나 하나 마음대로 집어 가고 있었다. 정말 도대체...난 한심한 눈빛으로 길 가운데 서서 그 녀석들이 나타나는 것을 황제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저 녀석들한테 스트레스해소 좀 해도 되지?"
황제를 향해 물어보니, 황제는 웃으며 선선히 허락을 해주었다.
"물론, 란트. 하지만 살살해야돼."
하지만 난 녀석들이 시비를 걸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길 가운데 서서, 이미 우리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길 양족으로 피하고 녀석들 앞에는 나와 황제 밖에 남지 않았다. 녀석들은 여덣명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녀석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부러지기 일부직전으로 보이는 칼들을 차고 있었다. 그래도 사우스 피투안 녀석들은 그 검도 없던데. 엄청난 발전이었다. 수도 건달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어 휴....
생각 했던 것 처럼 녀석들은 우리 앞에 오더니, 그다지 무섭게 보이지도 않는 못생긴 얼굴로 인상을 쓰며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혀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이, 꼬마. 네 옆에 있는 여자는 너한테 너무 과한 것 같은데. 나한테 넘기는게 어때? 안 그러면 이 '흑스라임파'의 맛을 좀 봐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나이 오십이 다되가는 아줌마가 그렇게 좋냐? 한심한 놈들. 너희들 같은놈 백명이 달라들어도 아마 황제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엄마에게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말이지. 하지만 수도에 와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딱 좋아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덩치를 보니 나름대로 맷집도 좋게 생겼고, 마음에 드는군.
"'흑슬라임파' 아직까지도 있었었나? 30년전에 나한테 당한 뒤로는 해체된 줄 알았는데."
황제는 혼잣말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했다. 30년전에 황제한테 당했다고? 그럼 황제가 공주였을 시절인데. 쩝, 그 때부터 한 성격 하셨나 보군. 난 조용히 클라리를 검집체로 들고 녀석들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비실 비실한 녀석이 검은 좋은 걸 들고 있군. 좋다. 그 검도 이 형님께서 접수해주지 영광으로 아는게 좋을꺼다."
녀석은 정말 건방지다 못해 한심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런데 검 좋은 줄은 어떻게 아냐...하긴 저런 것도 검이라고 들고 다니니 제대로 검모양만 나는 검만 봐도 좋다고 할 것 같다. 그 살벌한 황태자가 달라해도 안주는 검을 네 녀석들이 달라한다고 줄 것 같냐? 그런데 황태자, 그 녀석 생각을하니 며칠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그동안 참고 있었던 스트레스가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쩝,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다행히도 이런 경우에 평범한 사람들의 주요한 행동처럼 주위에 멀찍히 숨어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도와준다고 나와봤자 귀찮기만 할테니, 더 잘 됬다.
난 녀석들의 헛소리를 무시한체 빠르게 몸을 움직여 녀석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녀석들 중 몇놈은 놀라서 칼을 빼드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닭도 한마리 잡지 못할 칼이 클라리에게 당해낼리가 있을까? 녀석들의 칼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그 위대한 흑슬라임파 일원 중 한명은 옆의 과일 과게에 쳐박혀서 뻗어 버렸다. 이럴 때의 전형적인 전개 처럼, 아마 처음에는 녀석들 대부분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마 또 한번 헛소리를 하겠지? 곱게 도망치면 내가 재미가 없지.
"꼬마 녀석. 검을 제법 쓰는군. 하지만 네 녀석이 우리 일곱을 당해낼 성 싶으냐?"
일곱이 아니라 칠백명을 대려와 봐라. 내가 네 녀석들에게 지는일이 있을지. 그리고는 달려오는 녀석들을 가볍게 피하며 모두들 공평하게 한대씩 쳐주었다. 솔직히 똑바로 검을 뽑았으면 다 죽었을 목숨이지만, 정말 사람이 좋아져도 너무 좋아졌다니까. 난 조용히 스트레스를 해소 하고 있었다. 가학증이라고 했던가? 정신학 기본이라는 책에서 읽어본 기억이 ㄴ나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정신병이 있다던데, 뭐, 난 즐긴다기 보다는 건전하게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사회 정의도 구현할겸 하는 행동이었다. 쩝, 피의 마왕, 살인마가 정의의 구현이라 솔직히 안어울렸다.
그렇게 몇놈을 더 두들겨패니, 이번에 한놈은 내 칼에 맞아 녀석들의 등장에 문을 닫고 있던 옆의 마법꽃집쪽으로 날아가 꽃집의 문을 자신의 몸으로 부셔버렸고. 한놈은 어느 구석으로 날라갔는데,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잽싸게 도망을 친 것 같은데, 아까워라. 한,두대 정도는 더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나머지 네놈의 표정이 역시 예상하고 있던데로 심상치않게 변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장난 한번 쳐볼까?
"아이스 볼트"
적당히 모양만 크고 실제 파워는 거의 없게 조절을 한 얼음 조각 몇 개를 만들어 도망치지 못하게 남아있는 네녀석들의 다리를 향해 쏘았다. 정확하게 날아간 얼음조각들은 녀석들의 발을 땅에 고정시켜버렸다.
"마...마법사닷!."
예상대로 녀석들은 내 마법을 본 이 후에 비명을 지르며 전의를 상실하고. 발이 얼음에 얼려져 움직일 수 없었던 까닭에 바닥에 어설프게 주저앉아 버렸다.
"제...발....목숨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녀석들은 내 쪽을 보며 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봐줄 내가 아니지, 최근에 스트레스 쌓인게 어디 한두개 였나? 난 이번에도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패준 다음에 황제 쪽을 향해 돌아 왔다.
"란트, 정말 아인트를 이겼다는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그 정도 몸놀림이면?"
황제는 감탄하는 눈빛과, 더 무서운건 그뒤에 숨겨진 순수한 검사의 승부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왠지 검술대회에 대한 걱정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 같다. 혹시 허락을 한 것도 황제가 내 검술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동안 가득 찼던 스트레스를 상당수 해결했다는 점은 좋았다. 아무튼 난 황제를 데리고...놀란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황제는 그 녀석들을 지나며 그 녀석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혹시. 당신 패거리에 나이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검은 머리 여검사에 대해 한번 물어봐."
내게 맞아서 거의 반사 상태로 누워있던 녀석은 황제의 말을 듣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간신히 뜨고는 황제를 쳐다본 후, 기절해 버렸다. 도대체 예전에 황제가 저 패거리에게 뭘 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수비대가 몰려오기 전에 급하게 현장을 벗어났다. 한산해 졌던 우리주위도 사건 현장을 어느정도 벗어난 시점에서 다시 사람들로 가득찬 까닭에 방금 전에 우리가 저질렀던 행동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나라가 피투안이었어도 수비대 녀석들 오면 다 날려버리고 모른척 하면 되지만, 옆에 제국의 통치자인 황제를 세워두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었다. 난 그 현장을 벗어나자 황제를 보고 물음을 던졌다.
"세리, 도데체 예전에 무슨 일을 했길레. 그 녀석이 기절할 정도지?"
내 간도 어지간히 큰가 보다. 아무리 황제가 명령으로 지시했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말투로 나이가 30살이나 많은 황제한테 반말을 하다니.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이후의 후환이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아. 예전에 내가 공주였을때, 수도를 돌아다니면서 정의의 사자 흉내를 좀 냈었어. 그 때 해치운 패거리중에 하나가 저 흑슬라임파야. 저 패거리들은 좀 지독하게 손을 봐주긴 했지만, 아직도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나보네."
정의의 사자라....역시 황제의 성격은 지금 이 성격이 진짜인 것 같다. 클라리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근육질이거나 그런 것도 아닌 황제가 그런 검술 실력이라,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부탁하기도 그렇고 그냥 참기로 했다.
피투안 국민들이 실제로 이 황제의 모습을 봐야 할 건데 그럼 대다수가 믿을 수 없다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피투안 국민들은 대부분 머리는 흰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마녀 수준, 좋게 봐주면 히스테리적인 노처녀의 얼굴로 이 황제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이랑 안어울리게 엄청나게 젊게 보이는데다가 꾸미기만 하면 거의 미소녀적 분위기까지 풍기는 존재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뭐, 평소에 입고다니는 남자같은 옷에 그 무게 잡힌 딱딱한 성격으로 돌아가면 왠지 근접하기 힘든 황제의 분위기가 나지만 솔직히 마녀같이 생긴다거나 그런것 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약간의 소란을 벗어나자 황제는 다시 머리를 내 어깨 쪽으로 기울이고 내 팔을 양손으로 꼭 잡은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란트, 그런데 배 안고파?"
수도에 와서는 워낙 먹는거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하고 살아서 그런지 배고프다는 사실 역시 황제가 말해준 뒤에야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만 먹고, 점심 무렵에 나온 까닭에 점심은 먹지 않고 있었다.
"조금..."
"그럼, 오랫만에 밖에서 음식을 먹어봐야지. 흑슬라임파하니까 생각나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그 식당이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어."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를 끌고 복잡한 길을 잘도지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길들을 이렇게 잘 아는지. 길찾기 마법도 황제는 마법사가 아니니 쓸 수 없을 텐데. 뭐 황태자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점은 아무래도 스승님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니. 닮은 사람이 황제말고 더 있을까? 그리고 내가 들은 황제에 대한 소문에 의하면 황제는 지금 현재 제국 삼대 전략가에 포함이 된다고 했다. 바로 한명은 성기사단장 티베리우스 폰 힐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사람역시 생각했던 것 보다 대단한 사람이 었다. 그리고 황태자와 황제. 두사람이었다. 원래 귀족 연맹국가 비슷했 리투안 왕국의 그 독한 귀족들을 다 제거하고 이렇게 절대 황권을 가진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건 바로 내 옆에 걸어가는 현재로서는 황제로 절대로 안보이는 이 여자가 이룩해낸 일이라고 들었다.
얼마 걸어가니 항구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엄청난 크기의 배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는 무장된 형식이나 그런 것으로 볼 때 군함으로 추정되는 배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항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난 호기심에 배들과 부두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항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설마 모든 항구들이 다 이런건 아니겠지? 시장이나 항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 포세트립톤은 정말 활동적인 느낌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란트, 서부 대륙 최고의 항구를 본 소감은?"
황제는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소감이야....뭐 특별한게 있을까?
"항구를 처음 봐서 잘 모르겠지만 정말 크긴 크네. 배들이."
내 말도 안되는 대답을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황제는 별표정의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아인트하고 핀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 항구에도 하루에 배 한 두척이 들어올까 할 정도로 한적했었어. 믿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항구가 활발하게 변할 거라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황제는 추억을 회상하듯 담담한 어투로 말을했다. 담담한 말투로 말을해도 이건 자기 자랑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자랑해도 할말이 없지. 하루에 한 두척이라. 솔직히 거의 수백척의 배가 보이는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해를 거의 등지고 계속 우리가 걷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북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조금씩 조금씩 크게 느껴졌다. 식당에는 도데체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배가 고파 죽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적거리고 있던 주위도 많이 한산해지고 거리의 끝에 한눈에 봐도 여행객들을 위한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식당들과 여관들이 모여있는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 그런지 이 거리에서는 시장이나 항구에서 만큼 사람들 모습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란트, 저기야."
황제가 가르킨 방향에는 '노래하는 꽃'이란 간판이 붙은 여관의 모습이 보였다. 노래하는 꽃이라...여관치고는 이름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묵었던 여관들은 고급여관이라서 그런지 이름들이 너무 딱딱하단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북부 산맥의 그 여관은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황제는 하루종일 날 끌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무겁거나 한 것은 아니니...황제는 여전히 변함없는 힘으로 나를 끌고 여관쪽으로 향했다. 여관 건물은 조금 오래된 흔적이 보였지만 나름대로 보수를 해서 낡은 건물임에도 그렇게 폐가처럼 위험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들어가니 카운터에서 앉아서 쉬고 있던 남자가 일어서서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오늘 묵으실건가요?"
남자는 나와 황제쪽을 한번씩 슬쩍 쳐다보더니, 내 쪽을 보고 말을했지만, 내가 끌려 왔는데 할말이 있어야지.
"식사만 하려구요. 지금 식사가 되죠?"
역시 내 생각대로 황제는 아직도 내 귀에는 적응이 안되는 소녀들이나 아가씨가 쓰는 말투로 능청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리아인이나 황태자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입니다. 식당은 이쪽으로..."
그 남자의 뒤를 따라 카운터를 지나 조금 걸어가니 식당의 모습이 보였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물 외형처럼 오래된 느낌이 드는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식당의 장식들의 모습이 보였다. 황제는 식당에서도 한 구석의 어느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많은 테이블 중에 왜 제일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황제에게 불만을 표시할 처지도 아니고 그리 큰일은 아니었기에 난 말없이 황제의 앞에 앉았다. 식당안을 둘러보니, 점심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몇몇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란트, 이 자리가 핀언니하고 아인트하고 처음 만났던 자리야. 정말...오랫만이네. 이 곳에 마지막으로 와본지도 십년도 넘은 것 같아. 예전에는 핀언니하고 아인트하고 종종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황제가 왜 이렇게 구석 자리를 택했는지. 이제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스승님과 핀 누나, 그리고 황제가 처음만났던 자리라. 모두 나와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기에 내게도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도 엄마에게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아까 카운터에 있던 남자와 많이 닮은, 아들로 추정되는 청년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더니 말을했다. 난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황제를 슬쩍 쳐다봤다. 황제가 알아서 하겠지. 솔직히 여행 시작한지도 일주일 밖에 안되고, 클라리 앞에서나 황제 앞에서나 자신도 없는데 특별히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제일 맛있는 것으로 알아서 골라주세요."
황제가 그 청년을 보고 살짝 웃으며 말을하자. 그 청년은 소피가 종종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조금 빨갛게 변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식당의 주방쪽으로 걸어갔다. 저녀석은 또 왜 저러지?
"나 예전에 여기서 낮에 그 흑슬라임파인가 하는 녀석들을 혼내줬었어. 흑슬라임파란 이야기를 들으니 이 식당이 생각이 나서 이 곳에 한번 와본거야. 너희 스승님, 날 제일 처음봤을 때, 내가 흑슬라임파 녀석들 물리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잔뜩 긴장해서는 있더라구.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었는데. 그리고 여기서 핀 언니하고 의자매를 하기로 했었고."
스승님한테 그런 비리가...흠. 나중에 스승님이 정신을 차리면 놀려야겠다는 생각이 얼핏들었다. 그런데 황제는 별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스승님을 굉장히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쩝...왠지 또 미안한 느낌이 든다.
얼마 지나자. .그 청년이 접시를 들고 와서는 음식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요즘엔 비싼 음식들을 많이 먹어 봐서 그런지 별 특징이 없는 듯 보이는 음식들이었지만 맛있는 냄세는 가득 풍겼다. 배도 고픈 것도 있고, 난 그 청년이 음식을 내려놓을 때마다 이 것 저 것 맛을 보느라 바빴다.
"란트, 그런데 넌 아무리 봐도 귀여워. 그런데 우리 애들은 내 자식들인데도 왜 귀여운 맛이 나지 않는지..."
이건. 스승님이 예전에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대사와 비슷한 말인 것 같은데. 솔직히 리아인이나 세인트나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설마 공주도 그런것은?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공주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만나봐야지, 그런데 귀엽다라.
"세리, 여기서 그런 얼굴에, 그런 옷차림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어울려."
헛, 내가 무슨 생각으로 말을 한거야. 난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의 말을 황제를 향해 말을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반말로.
"아. 잠시 잊고 있었어. 란트, 그런데 정말 나 그렇게 젊게 보여?"
다행이었다. 황제는 방금 전 그 말에,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휴...앞으로 조심해야지.
"응. 젊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예쁘기까지해."
사실은 사실이었다. 저렇게 시간을 역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 세계에 늙어가는 아줌마들이 어떻게 생각할런지. 잠깐, 나도 정상적으로 성장을 하지 않는 면이 있는데 나중에 늙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정말?"
황제는 얼굴가득 기분이 좋다는 표정을하고 있었다. 뭐, 예쁘다는데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하겠냐마는. 황제는 진짜 이 상황에서 기억을 지우고 20살 처녀처럼 행동을 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회의실에서 보였으면 회의장에 있는 많은 젊은 신하들이 넘어갔을텐데 회의실에서는 딱딱한 표정을 풀지를 않았다.
요즘에 맛있는 고급음식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 식당의 음식도 맛있었다. 적당히 배가 차오르고 그 청년은 후식으로 추정되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 접시를 내려놓으며 갑자기 말을 하는청년...
"저희 식당은 예전에 황제 폐하께서 공주님이셨을 때 많이 찾으시던 곳입니다. 황제폐하께서도 꼭 아가씨 처럼 검은 머리에 아름다운 분이시라고 저희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던데, 왠지 아가씨를 보니 할머니로부터 수백번도 더 들었던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손님, 귀찮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폐하와 닮았다니 저로써는 영광이에요."
황제는 기쁜듯 붕 뜬 목소리로 그 청년에게 답을 했다. 저 청년이 지금 자기가 말하는 황제가 눈앞에 검은 머리 아가씨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할지. 아마 놀래서 쓰러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주위에 늙어가는 아줌마들이 몰라서 다행이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줌마들의 주도로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황제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이다. 우리 마을이 풍요롭게 된 것도. 절반은 그 살벌한 아줌마들의 노력이었으니까. 후식인 과일이 담겨 있던 접시를 비우며 황제를 보고 말을 했다.
"세리,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아. 황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안 보이면 이상하게 생각을 할 텐데."
난 황제 납치범으로 몰리긴 싫다고, 만약에 황제를 찾기위해 수색대 같은게 나온다면 황제하고 같이 있는 난 일순위로 납치범으로 몰려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내가 죽기까지야 하겠냐마는 이렇게 방어가 잘되있는 성을 뚫고 도망을 치려면 나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휴...그냥 이렇게 란트랑 어디로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데."
황제는 한숨을 쉬더니 아쉬운 듯 말을했다. 황제가 진짜로 30살만 작았어도, 황제의 말을 들어줄 용의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49살 황제랑 황제납치범으로 몰릴위험을 무릎쓰고 멀리 도망칠 용의는 전혀 없었다. 내가 아무말 없이 일어나자. 황제는 따라 일어서더니 계산을 하기 위해 주방쪽에 서 있는 그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청년은 우리를 보더니 곧바로 달려왔다. 휴 이번에도 내가 계산을 해야할 것같은 분위기인데. 대륙 최고의 부자를 옆에 두고 정말 남자라는 존재가 뭔지. 그러고 보니, 황태자 녀석은 내가 데이트하자고 하면 자기가 다 계산을 할까?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하고 있는거야.? 란트...크리센, 정말 타락할 때로 타락해 버렸군.
"얼마죠?"
"6트립입니다."
난 주머니에서 아까 잔돈으로 받았던 은화 두개를 청년에게 주었다. 청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황제를 곁눈으로 슬쩍 쳐다봤다. 아무래도 황제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쩝, 요즘엔 못볼걸 많이 보는 것 같다. 여장남자를 좋아하는 놈이 있지 않나, 나이 오십이 다 된 아이 셋 딸린 여자를 좋아하는 놈이 있지 않나. 휴...
여관에서 나와서 황제와 나는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황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침 무렵에 나왔었는데 어느덧 해가 질 때가 다 되어버렸다. 황제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생각만큼 그렇게 피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스트레스까지 해결할 기회도 있었고...
어느덧 우리가 밖으로 나왔던 비밀통로가 있는 절벽이 보였다. 한번 자났던 길을 다시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에 통로가 있었지? 모두 다 똑같은 절벽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황제는 별 고민도 없이 절벽의 한쪽으로 가서는 돌하나를 쑥 눌렀다. 그러자 우리가 나왔던 그 통로가 그대로 보였다.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황제는 어떻게 아는 것일까? 황제가 들어가고 그 뒤에 내가 따라 들어가자 문은 저절로 닺혔다. 마법같은게 걸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나올 때처럼 한참이나 오르락 내리락 한 후, 갈림길도 상당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길을 잊어버리지 않고 정확하게 우리가 들어왔던 장소로 걸어 나왔다.
"란트, 오늘은 고마웠어."
잠깐....뭔가 잊은 것 같은데...아! 클라리 선물, 깜빡했다. 이런 어떻게 하지? 어쨌든 난 곤란한 표정을 잠시 숨기고 황제에게 답을 했다.
"아니에요. 뭐 특별히 한일도 없고. 스트레스 해소 하는데도 도움이 됬는데요. 누나."
일단 높임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황제에 대한 낮춤이 익숙해지기 전에 그래야지 나중에 중요한 상황에 곤란한 일이 안일어나지, 그런데 정말 클라리 선물은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황제가 발꿈치를 조금들며 얼굴을 들이데더니. 예전에 클라리가 했던 것 처럼, 내입술에 황제 자신의 입술을 댔다. 순간 심장이 조금 두근 거렸다.
이건 또..무슨 일이람? 난 방금전에 일어났던 일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세상에...! 황제하고! 애 셋딸린 아줌마 하고! 이런걸 제국 노대신이들이 알면..날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아무튼 첫키스는 검한테, 두번째 키스는 아줌마한테 뺐겼다. 둘다 미인이긴하지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으...모르겠다.
"아인트 한테는 비밀이야, 란트. 그리고 이건 클라리한테 줘. 너 클라리 선물 못 샀잖아. 그럼 나중에 봐."
황제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머리에서 낮에 내가 사줬던 은색 핀을 뽑더니 내손에 놓고는 복도 쪽으로 달려 가버렸다. 꼭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들 처럼...나이 오십의 아줌마가. 난 잠시 그 자리에서서 마음을 정리한 후에 내방쪽으로 걸어갔다. 휴...도데체 어떻게 되는 건지. 이런 것을 보고 흔히들 불륜이라고 하던데, 방문을 여니, 그동안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계속 날 기다렸는지 클라리는 아까 앉아있던 소파에서 잠이들어 있었다.
"어...주인님 돌아왔네. 재미있었어?"
방문을 닫는 소리가 조금 크다 싶었는데, 그 소리에 잠을 깬 클라리가 눈을 비비며 나를보고는 물었다.
"황제 신하 노릇했는데 재밌을리가 있겠니?"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나빴던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히 말할수 없는 느낌. 좀 스승님한테 찔리는 일이 있었지만.... 난 아까 황제가 주고 갔던 그 곰돌이라고 추정되는 은제 핀을 클라리에게 주었다.
"이거 아까 클라리 너가 사오라고 했던 선물."
"와..정말 귀엽네? 이거 주인님이 고른거야? 세리 언니가 고른건 아니지?"
클라리는 선물을 받더니 낮에 황제가 그랬던 것 처럼 좋아했다. 클라리는 자기의 백금발 머리에 그 핀을 조심스럽게 꼽았다. 황제도 그랬지만 클라리도 생각보다 그 싸구려 핀이 잘 어울렸다. 하긴 둘다 원판이 좋으니까...
"내가 골랐어."
"정말? 주인님 생각보다 예쁜 물건을 잘 고르네. 정말 고마워~. 주인님아."
클라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휴..클라리가 좋아하니 정말 다행이다. 황제는 어떻게 보면 어른 같기도 하고 오늘 낮에 있었던 여러가지 행동은 절대 나이든 어른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모습은 분명이 어른들의 그 것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자세히 아는 신디 같은 능력이 생겼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얼핏들었다. 하지만 쓸데 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다른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다 알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을테니. 눈빛으로 사람의 심성을 아는 능력을 가진 것 만으로도 괴로운 일이 많이 생기는데. 여행하면서도 저절로 칼에 손이 가는 것을 참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 생긴다면, 진짜 말그대로 피의 마왕이 되버리지 않을까? 마음한구석에 나쁜마음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테니. 그런면에서 신디의 능력을 각성시키거나 그런 일은 되도록이면 안할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능력이 발달하면 괴로운건 신디일 뿐이니까.
오늘 황제와의 데이트,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것으로 황제와의 인연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들바람같은 인연이 아니라 왠지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