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4장 제국 검술 대회-5(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3. 17. AM 11:41:21·조회 3617·추천 49
에피소드 22 제국 검술 대회 (5)
"주인님아 늦겠어! 빨리 일어나!"
"으..응?"
클라리의 급한 목소리에 꿈의 뒷자락을 떨쳐내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윽, 피곤해. 어제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공주가 쓸 때 없는 짓까지 했던 관계로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힘을 써야 했다니, 정말, 평소에 여자들한테 죄진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여자들한테, 그것도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들한테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이러다가 시합 시간에 늦겠어. 빨리 준비해! 주인님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8강전이 있는 날이었지,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클라우 그 녀석과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이길 수 있을까? 흠, 안되면 좀 비겁하긴 해도 보조마법을 잔뜩 쓰고 싸우면 되므로 일단 내가 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휴, 고결한 기사님께서 생각하시고 있는 것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이다.
난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어제 그 일 때문에 더러워진 흰 망토를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든 다음에 옷 위에 걸쳤다. 이왕 마법을 쓰는 김에 앞으로 먼지같은게 안 묻도록 마법을 걸어놔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하찮은 곳에 마나를 낭비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예전에는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법을 쓰지 않았으므로 왠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가끔씩 잊어 버린다고 해야하나?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참동안 적들을 검으로 물리치다가 도중에 마법을 사용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었다. 흠, 내 상태도 심각하군.
"주인님아. 머리끈."
난 클라리가 주는 흰색의 머리끈, 원래 파란색 아니었나? 아무튼 클라리가 준 머리끈을 받았다.
"주인님아 그 머리끈 있잖아. 내가 며칠 밤동안 만든거야. 잊어버리면 안돼."
내가 머리끈을 한참을 살펴보고 있자 클라리가 말을했다. 머리 끈을 보니 아무래도 바느질 솜씨가 미숙해서 그런지 이상한 점이 곳곳에 보였지만, 그래도 깨끗한 흰천에 백합무늬와 란트 크리센이란 이름이 수가 놓아져 있었다. 귀찮게 할 때는 정말 누군가 줘버리고 싶은 클라리지만 이럴 때는 정말 고마웠다. 어찌됬건 최근 일년동안 클라리가 실체화 된 뒤에는 내가 혼자 했어야 될 일을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도와주므로, 그리고 정말 몇년동안 잊고 있었던 정이 담긴 관심이란 것을 보여줬으니까.
난 머리끈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묶고 사람의 탈을 쓴 짐 세개를 데리고 마차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또 플라이를 써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 쉬고도 몸상태가 이렇는데, 또 쓰면 어떻게 될런지 그냥 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차고 역시 말들이 머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황궁에서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깨끗했다. 보통의 마굿간들과는 질적으로 너무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똥냄세나 그밖의 말 냄세도 거의 나지 않으니까. 역시 여자가 황제다보니, 청결이란 문제에서는 거의 완벽한 것 같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이런 저런 사실을 떠나서 차고안의 통풍문제 역시 완벽했다. 정말, 황궁을 설계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싶은 적이 한번 두번이 아니었다.
황실 마차가 세워 있던 곳을 보니 벌써 떠나고 없었다. 이야기를 해주고 가면 안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데도 자기들끼리만 가고 없다니, 특히 황제하고 리아인한테 섭섭했다. 공주야,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황제하고 리아인은 그렇지 않으므로 그런데 그들은 어제 공주가 자살소동을 벌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런지 아마 공주가 말을하지 않은 이상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모두들 마차에 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마부석 위에 뛰어 올라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여전히 열심히 말을 모는 제국 서열 5위, 고결한 백합의 기사,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 나으리..윽,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더욱더 비참해지므로.
"주인님아. 투덜거리지마 레이디들을 위해서 이정도를 못해주면 기사님이 아니지."
또다시 얄맙게 들리기 시작하는 클라리의 목소리, 난 기사 같은거 그다지 하고싶지 않다고, 그리고 레이디라, 괭장한 혈통에 상황파악에 매우 뛰어난데다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가진 괭장한 꼬맹이 한명, 도대체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는 그리고 나이가 얼만지 모를 엘프 한명과 수다쟁이 검한자루. 흠, 정말 대단한 레이디를 모시고 가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쯤되고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라도 했을텐데.
난 한숨을 계속 내쉬며 마차를 몰았다. 우리 마차가 오는 것을 본 근위대 기사들이 이제는 눈에 익었는지 검문같은 것 없이 문을 바로 열어주었다. 내가 예의상 마차를 몰면서 기사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기사들 역시 내 직위 때문인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전과는 상당히 다른 나름대로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서 답인사를 해주는 것이 보였다.
황성 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황성의 문 앞에 흰 깃발, 분명히 흰 천이 아니라 깃발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어제 황제가 말했던 백합의 기사 응원단인가? 내가 걸어나오자 사람들이 엄청난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것 참, 난 며칠 전에 경기장에 갈 때와는 다르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호위를 받아 경기장을 향했다. 주위의 집들을 둘러보니 집의 창가로 나와서 흰 깃발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시합하는 것을 단 한번 본 것 밖에 없을 텐데, 그리고 단 이틀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흰 깃발을 준비했단 말이었다. 나를 응원해 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도 대단했다. 내 인기가 그렇게 까지 치솟았나? 이러면 티베리우스 단장과의 시합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응원면에서 그다지 밀릴 것은 없을 것 같다.
클라리가 마차 안쪽에서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하늘로 마법의 불꽃들을 쏘아 올렸다. 그래 클라리도 저걸 할 수 있었다고 했었지. 수많은 마법의 불꽃들이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욱더 열광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응원단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는 어린 남자 아이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클라리, 가끔씩 뜻밖의 행동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될 때 보다는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데 정말, 이러다가 나중에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겨 수도에서 걸어다니기도 힘든것이 아닐까? 난 앞머리카락을 내려 되도록이면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정말 체질에 안 맞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영웅하고는 안어울리는 것 같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도 좋아하고, 권력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고, 그렇지만 이런 환호성에는 익숙하지 않는 완전히 영웅과는 관계가 없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생긴 것도 영웅들의 그 카리스마적인 모습과는 관계가 없는 나약한 도련님의 모습이었다. 항상 느끼는 점이었지만 정말 마음에 안들게도 내 얼굴은 남자다운 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황태자 녀석까지 여자 옷을 입은 날 여자로 착각하지를 않나. 정말.
다행히도 백합의 기사 응원단 때문에 처음 경기장을 향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차를 움직일 수 있었던 까닭에 늦잠 때문에 매우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지않고 경기장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지 마자 경기장의 큰 정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 대회에서야 꼭 우승을 안해도 되지만 오늘은 그 클라우 녀석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니까.
마차를 몰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다른 마차들은 다 도착한 것 같았다. 한번 와봐서 그런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황실 마차가 일찌감치 와서 마차들 앞쪽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바퀴 하나를 헐렁하게 풀어놓아 버릴까? 그냥! 그런데 잘못하다간 그 제국법 들먹이는 기사들한테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참도록 해야 겠다. 그놈의 황실이 뭔지.
난 급하게 마차를 세우고나서 내게 배정된 방으로 짐덩어리 일행들을 끌고 달려 갔다. 방으로 가는 복도의 벽이 함성에 울리는 것을 보니, 벌써 첫경기가 시작을 한 것 같다. 첫 경기는 티베리우스 단장하고 그 이자벨이라는 엘프와의 시합이었는데.
흰색 백합무늬의 깃발 밑에 있는 그 저절로 열리는 방문을 열고 우리 일행은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달려와서 그런지 숨을 가쁘게 내 쉬었다. 난 거의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고 다른 세명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예상대로 경기는 벌써 시작된 상태였다. 이자벨이란 그 날렵한 엘프는 무리하게 접근하지 않고 멀직히 떨어져서 티베리우스 단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칼을 든체 천천히 엘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광적인 파란색 깃발들, 이제 그렇게 부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그런데로 있으니까.
한동안 지루한 대치를 계속한 까닭에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내 긴장이 조금 풀어지려는 순간 엘프는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듯 유연하게 티베리우스 단장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정말 엘프 아니랄까봐 검술역시 상당히 자연의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검술을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 자체 역시 엘프에게 불리한 것 같다. 소피의 예를 볼 때에도, 거의 대부분 인공적인 돌로 이루어진 경기장에서 엘프가 자기 실력을 확실히 다 발휘하기는 힘들 테니까. 핀누나도 엘프일 텐데, 왜 그런것은 염두해 두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 엘프 길드 마스터라는 그 남자도 숲 속에서는 훨씬 더 뛰어난 검술을 선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나뭇잎같이 부드러운 검술 역시, 뛰어난 검술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수련을 할 때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반으로 자르는 것 처럼, 티베리우스 단장의 단 한번의 칼 휘두름에 엘프의 공격은 간단히 차단 되었다. 거기에다 역시 경기장 탓이었는지. 그 나뭇잎이 날리는 듯한 공격 역시 넓은 공터에서 바람한점 안 부는 맑은날, 별 움직임의 다양함 없이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과 비슷하게 보였다. 이래선 정말 여러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을 것 같았다.
역시 16강전 때와는 다르게 티베리우스 단장이 매우 조심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실력이 있는 사람의 여유로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음만 먹었으면 방금 전에 티베리우스 단장이 엘프를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엘프라서 봐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엘프는 그렇게 자신의 공격이 차단당하자 칼을 빼고 물러서더니,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저 엘프도 실력의 차이를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 파악마저 하지 못한다면, 그건 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엘프이므로 승부에 대한 집착 역시 사람보다는 약할 테니.
지고 나서도 별 표정의 변화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엘프, 저 엘프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엘프의 이미지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소피는? 항상 내 예상을 빗나가니, 엘프가 맞긴 맞는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뾰족하고 나무를 잘타는 걸 보면 엘프가 맞긴 맞는데.
다시 사람들의 함성에 경기장이 한 번 진동을 하며 티베리우스 단장은 푸른색 깃발 밑으로 되돌아 갔다.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이 준결승까지 오르는 건 확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자기가 가진 능력을 다 들어내지 않은 것 같이 보이니까. 티베리우스 단장은 16강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이 처음에 서 있던 자리에서 거의 이동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 엘프가 있는 쪽으로 정확히 직선으로 조금 걸어갔을 뿐, 조금도 방향히 틀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정식으로 전력을 다해서 싸울 때는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조편성상 준결승이 되기 전까지는 단장하고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조금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우승을 해야 한다면 티베리우스 단장도 이겨야 할 것이므로 그렇게 남의 일인양하며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잠시 후에 16강전에서처럼 심판이 다시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다음 시합은 리아인과 메넬리오 수비대장의 시합이었다. 사제 대결이라, 이 시합역시 나름대로 왠지 흥미를 끄는 것 같았다. 메넬리오 수비대장은 A+클래스 리아인은 A클래스, 객관적인 평가상으로는 메넬리오 대장이 앞서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이 다르므로, 미묘한 실력 차이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게다가 나이차이도 있으므로 한참나이인 리아인에 비해 메넬리오 대장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친절한 황자님의 두번째 시합 정말 기대가 되는군.
"8강전 두번째 시합 출전자는 메넬리오 비아니스 북부 수비대장!"
16강전에 먼저 소개를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간단히 소개를 하는 심판, 훔, 그러고보니 리아인하고 메넬리오대장, 두 사람모두 인기가 많았었는데 응원대결도 본시합 못지 않게 치열하게 벌어질 것 같았다.
"Green Lion of North! 메넬리오! Green Lion! 메넬리오! Green LIon!"
이번에는 경기장의 한 곳에 초록색 깃발을 든 사람이 모여서 앉아 있었다. 어제는 경기장 곳곳에 퍼져 있었는데, 효과적인 응원을 위해서일까? 아무튼 응원단이라는 사람들도 응원을 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서 꽤 준비를 많이 한 것 처럼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그 나름대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넬리오 대장은 투구를 쓴체 그 초록색 망토를 두르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전 시합에서는 투구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는 뜻인가? 메넬리오 대장이 경기장 가운데로 가까이 다가오자 심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우리의 친절한 황자님의 소개 차례, 그나저나 기분은 좀 풀렸을지 궁금했다. 어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걸 리아인이 알았다면, 벌써 그 클라우 녀석을 죽이러 달려갔겠지. 그런 일이 있었단 소식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리아인은 어제의 공주의 자살소동은 모르는 것 같다.
"상대는 리아인 슈타이튼 황자 전하!"
노란색 깃발 밑에서 리아인 역시 투구를 쓴체 걸어나왔다. 맑은 날씨 때문에 금빛 갑옷이 더욱더 반짝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것도 황족만의 특권이겠지. 뭐, 황실에서 다른 쓸데 없는 일에 낭비를 해서 백성들이 살기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무시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Kind Prince! 리아인! The Kind Prince! 리아인!"
리아인이 나오자, 리아인의 방이 있는 곳, 위의 관중석 주위에서 푸른색 깃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응원단의 인원수가 메넬리오 보다는 리아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며칠 전에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혹시 16강전 마지막에 그 행동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심했다. 한 사람은 나라를 위해 평생을 몸받쳐서 일한 사람인데, 그런 사소한 일에 이렇게 인기가 밀리게 되다니. 정말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마찮가지인가? 내가 리투안 제국을 위해 한 일은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까.
리아인이 경기장 가운데 서고 두사람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흠, 사제의 대결, 나하고 스승님하고 대련할 때는 처음엔 내가 매일 지다가 뒤에가서는 거의 내가 이겼었는데. 이 사제간은 어떤 결과가 될까?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두사람은 서로 상대를 향해 집중한 체 한동안 서있었다. 사제 지간이기에 서로에 대해 너무 완벽하게 아는관계로 두 사람 모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응원단들이 서로 각자 지지하는 사람들의 별명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커져갔다. 왠지 별 관계없는 나도 흥분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된 공격, 두사람은 완벽하게 똑같은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누가 사제지간 아니랄까봐. 하지만 똑같은 검술을 사용한다면, 체력면에서 뛰어난 리아인이 유리하지 않을까? 스승들이 제자한테 모든 기술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게다가 메넬리오 대장에게는 연륜에 바탕이된 실전 경험이란 것이 있으므로. 아인트 스승님도 그랬을까? 쩝, 다가르쳐 주시기도 전에 쓰러지시게됬지만, 저 두사람을 보고 있으니, 계속해서 스승님의 생각이 나는 까닭에 기분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두사람은 한동안 딱 맞춘듯, 정확히 똑같은 검술을 사용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두사람은 조금 숨이 찬듯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도 완벽히 똑같은 꼭 쌍둥이의 대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 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두사람이 똑같이 검을 역수로 쥐는 것이었다. 도데체 뭘 하려는 것일까?
그러더니 완벽하게 같은 자세로 검을 아주빠르게 휘둘렀다. 검풍의 대결이라 해야하나? 검과 검기로 인해 생성이 된 진공의 반원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저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살벌한 공격을 하다니. 서로 서로를 생각해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사용한거겠지만, 아무튼 저런 공격을 아무 방어 없이 직격으로 맞으면 보통사람은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두개의 진공의 반원이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음이 났다. 일순 조용해 지는 경기장, 그러나 그 후 두 사람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큰 함성을 질렀다. 원하지 않든 원했든 지금 저 두사람은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번 공격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이러다가 시합이 끝나지 않는건 아닌지하는 말도 안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그런데 언뜻 메넬리오 대장의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하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듯 보이는 리아인, 검을 휘두르는 리아인의 칼을 맞서는 것 처럼 메넬리오 대장 역시 앞으로 내었다. 하지만 검과 검이 충돌을 하려는 순간 몸 전체를 아래쪽으로 숙인 메넬리오 대장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유연한 동작으로 리아안의 갑옷의 복부부분을 정확히 가격했다. 황실 가문이 쓰는 갑옷은 갑옷이다 보니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리아인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조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선 리아인은 투구를 벗어버리며 나와 여행할때 보였던, 그 의미모를 웃음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주제에, 그런 웃음은 안어울린다고 리아인. 하지만 그 순간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메넬리오를 향해 뛰어가던 리아인이 높게 위쪽으로 뛰었던 것이다.
"스킬 오브 미티어 스트라이크!"
헛, 이건 며칠전에 그 곰같이 생긴 용병대장 녀석이 쓰던 건데, 하지만 원조보다 리아인이 쓰는 것이 훨씬 더 모양새가 괜찮았다.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괭장한 검기가 리아인의 검에서 생기며 무게까지 더한 확실히 중심이 잡힌 공격이 메넬리오 대장을 향해 내리쳤다. 순간, 메넬리오 대장이 멈칫 하는 것으로 볼 때, 확실히 리아인이 어제 그 용병대장 녀석이 쓰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면 저 냉정한 메넬리오 대장이 저렇게 당황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당황한 나머지 피하지 못한, 당황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피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메넬리오 대장은 급히 칼을 위쪽으로 들어 그 기술을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이 충돌하는 순간,메넬리오 대장이 칼을 놓쳤다. 제자의 승리였다.
메넬리오 대장은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경기에서 진 사람 같지 않게, 밝게 웃으며 리아인에게 걸어가 리아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시합할 때는 그렇게 살벌하게 싸우더니, 사이가 좋은 사제지간이 맞긴 맞았나 보다. 리아인은 스승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양측의 응원단은 큰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메넬리오가 지는 순간 잠잠해 졌던 녹색 깃발을 든 메넬리오의 응원단 역시, 다시 환호를 했으니까. 휴, 왠지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간단한 하지만 뭔가 따뜻한 마무리를 가진 후, 두사람은 서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스승님 생각이 계속 나는 것이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주인님아! 괜찮아?"
옆을 보니 클라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클라리는 미운면 만큼이나 고마운 면도 많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몇 년전부터 클라리는 내가 혼자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곤 했었으니까.
"응, 그냥 좀 스승님 생각이 나서."
난 소파 깁숙히 몸을 기대며 힘없이 대답을 했다. 클라리는 내 볼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을했다. 사람이 아니라고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손길.
"마음아파 하면 안돼 주인님아. 주인님이 마음아파 하면 내 마음속에도 그대로 전해 지니까."
난 클라리의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경기장을 쳐다보았다. 다음 시합은 황태자와 가이우스의 라이벌 대결인가? 어떻게 보면 정말 비슷한 두사람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그래서 라이벌인 두 남자였다. 정치적으로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리고 두사람은 똑 같은 A-클래스 였으니까, 시합이 더욱더 흥미진진하다고 해야 할까? 기분을 풀기에는 괜찮은 구경일 것 같다. 흠...이번에는 가이우스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이 벌어지겠군. 불쌍한 황태자.16강에서도 재수 없게 인기가 많은 카렌 비아니스, 그 미모의 여기사하고 싸우는 바람에 많은 야유를 들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절정인 가이우스하고 싸워야 한다니. 이래저래 양쪽으로 치이는군. 차라리 클라우 녀석하고 저 녀석이 붙었으면 그런데로 괜찮았을 텐데.
"8강전 세번째 시합의 출전자는 세인트 반 리투안 황태자 전하!"
황태자는 경기장 곳곳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노란색 깃발들 사이로 그 금빛 투구를 쓴체 걸어 나왔다. 같은 스타일의 갑옷을 입었지만 리아인이 키가 더 크다보니 황태자는 리아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위압감이나 그런 것을 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역시도 충분히 내가 부러워할 만한 체격은 되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가이우스 처럼 그렇게 민중들에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그런 체질은 아닌 것 같았다. 그 것보다는 주도 면밀하게 실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상대는 가이우스 폰 힐튼 경!"
이름이 불리고 가이우스가 파란색 깃발 밑에서 걸어나오자. 파란 깃발을 든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쩝, 못봐주겠군. 하지만 그 때 우리 마을에 가이우스 녀석이 왔었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아닐 경우에는 녀석은 별로 여자들한테 관심을 두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가이우스는 자신의 응원단 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투구를 쓴 뒤,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리고 가볍게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가이우스, 일단 황태자는 황태자니까. 예우는 해줘야 되겠지.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라이벌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이길지. 이번에도 역시 승부를 쉽게 예측하기가 힘든 시합이었다. 파란색 망토와 노란색 망토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벽으로 둘러싸이긴 둘러싸였지만 워낙 경기장이 크다보니, 시합을 하고 있는 중에도 바람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다.
"두사람 모두, 속임수 같은 건 쓰지 못하겠군. 서로에 대해 둘 모두 너무나 잘 알테니까."
무의식적으로 나온 내 혼잣말을 들은 내방에 있던 짐덩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궁금해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
"주인님아..그게 무슨 말이야?"
그 짐덩이들을 대표해서 클라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런, 어쩌다가 말을해서 귀찮게 되버렸담. 요즘엔 나도 모르게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여러가지면에서 탈이란 생각이 들었다.
"16강전에서도 너희들도 봤겠지만 황태자가 시합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약간 비겁한 방법을 썼잖아. 반칙은 아니었지만 워낙 머리가 좋으니,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면에서는 정말 뛰어나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가이우스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을걸. 반대 역시 마찮가지이고,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낼 밖에."
두사람은 시합이 시작 되자마자 가까이 접근을 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미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아는만큼 빈틈을 노리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금 전에 끝났던 사제 대결에 비해서는 두사람의 실력 모두 한 단계씩 떨어지는 관계로 기대를 크게 했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실망이 큰 편이었다.
황태자의 허벅지 쪽을 노리고 가이우스가 휘두르는 칼을 황태자는 간신히 막아내었다. 아마 순간적으로 황태자가 가이우스의 검의 움직임을 놓쳤던 것 같다. 녀석, 싸우다가 무슨 생각을 하길레. 검의 움직임을 놓치는 거냐구. 흠.
그런데 별 특색 없는 기사들의 검술만 계속 보니까, 왠지 지루해 졌다. 스승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다시 한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경기를 계속 보다보니,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술이 유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아인과 메넬리오 두 사람을 제외하고, 클라우, 그 녀석이나. 지금 싸우고 있는 두사람이나 검술의 형태가 티베리우스 단장과 상당히 비슷했다. 재미있을줄 알았더니, 영.
두사람의 실력은 정말 객관적인 데이터 상처럼 정말 막상 막하를 자랑하였다. 정말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은 어떻게 보면 똑같은 검술을 사용하던 방금 전 시합보다 더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태자는 순간적으로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가이우스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가이우스를 향해 공격을 했다. 하지만 가이우스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황태자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애꿎은 가이우스의 망토가 황태자의 칼에 조금 베어져 버렸다.
하지만 승부는 전혀 우연찮은 곳에서 결정이 나 버렸다. 공격을 하기 위해 뛰어가던 가이우스의 발 밑에 있던 흙이 순간적으로 내려 앉은 것이다. 아마 며칠전에 그 용병대장에 의해 파여졌던 구멍으로 생각되는데, 흙을 부어서 복구를 한것이 아직 굳지를 않았나보다, 불쌍한 가이우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중심을 잃으며 넘어지려는 것을 칼로 간신히 지탱을 했다. 수많은 여성 응원단들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겠지. 설사 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마 이길 생각을 했다면 저상황에서 칼을 그대로 쥔체 굴러서 황태자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아무튼 생각외의 행운을 얻은 황태자는 가이우스의 목에 칼을 대었다.
황태자가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환호는 가이우스가 더 많이 받았다. 투구를 벗고 웃는 모습으로 자신의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모습은, 쩝, 뭐라 말하기 힘들군 아무튼 그에 반해 우연찮은 행운으로 이긴 까닭에다 원래 응원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황태자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시간이 돌아왔다. 최근 며칠동안 얼마나 이 기회를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클라우 그 녀석과의 시합이었다. 아무튼 녀석과의 시합을 기다리다 보니, 여러가지가 뒤섞인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휴, 검을 들고 나가는 사람의 자세가 이래서는 안돼는데, 그러고보니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검을 들고 나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8강전 마지막 시합 출전자는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크리센공!"
심판이 특별히 배려해주는 소개를 들으며 난 경기장 쪽으로 난 문을 열고 걸어갔다. 클라리는 이번에는 별 말이 없었다. 아마 클라우 그 녀석과의 시합이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던 방 위쪽으로 엄청난 수의 흰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백합무늬가 그려진 당사자인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안되지만 정말 멋지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왠지 다른 사람들의 응원을 보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 깃발들 사이로 여전히 보이는 흰색 천들, 윽, 아직도 저걸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었나? 정말 못 말리겠군.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란트!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란트!"
내 이름이 별로 길지 않은 관계로 별명과 음을 맞추려는지 내 이름을 연속으로 두번 말하는 것이 들렸다. 흠, 응원단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라는 이름의 쑈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됬건 나를 위해 응원을 해준다는 사실이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클라우디우스 폰 힐튼 군단장."
이번에도 별 어조의 변화 없이 딱딱하게 소개를 하는 심판, 흠 심판이 이렇게 공정하지 못해서야 되는건지. 뭐 나야 손해 볼 건 없지만 아무튼 보라색 깃발 밑 방에서 그 녀석이 걸어 나오자 관중석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공주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만고불변의 그 말도 안되는 법칙에 피해를 녀석은 입고 있었지만 저 녀석 때문에 공주가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것으로 볼 때, 저 정도는 충분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여자가 사랑을 할 때, 가장 절망할 때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완벽한 무관심을 보일 때라고 했다. 녀석은 며칠 전에 그걸 공주한테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걸어오는 녀석의 눈빛이 영 예사롭지가 않았다. 언뜻언뜻 비치는 엄청난 살기, 정말 자기가 뭐 잘한 것 있다고, 녀석은 경기장 가운데에 서서 칼을 뽑았다. 보랏빛 검신에 조금 음산한 기운 가까이서 보니 마검이 틀림이 없었다. 물론 주인의 인격을 먹어치우는 그런 마검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리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녀석을 보고 있으니 점점 내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껴졌다. 우리마을에 쳐들어 오는 녀석들을 처리할 때와는 다른..또다른 분노가.
나는 검을 뽑았다. 녀석의 눈길이 순간 내 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쳐다봐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정말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나게 만든다니까. 그런데 평소보다 클라리에게서 뻗어 나오는 흰빛이 더욱더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낮에는 자세히 안보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흰빛, 정확히는 검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눈이 그렇게 썩 좋지 않은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양의 흰빛이 나왔다. 클라리, 너도 화늘 내는거니? 그 순간 녀석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네 녀석이 그 검에서, 누나에게서, 그 정도의 힘이 나오게 할 수 있는거지?"
상당히 놀란 듯한 눈빛, 이 녀석도 내가 마법사일 뿐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건가? 그리고 나도 이렇게 이 검에서 이렇게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라구. 하지만 실력의 차이라면 이번 시합에서 확실히 보여줄 수 있지.
"지금부터 확실히 느끼게 해주지."
난 마음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제를 하며 그렇게 대답을했다. 정말 내가 저 녀석이 죽지 않을 정도에서 끝낼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 되었다. 녀석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 클라리가 더 슬퍼할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저 녀석을 죽여 버리면 핀 누나 볼 면목이 없게 되니까.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아주 약간의 이성을 남겨둔체 칼을 몸의 움직임에 맏겼다. 검은빛 플레이트에 보라색검, 우울한 표정, 정말싫다. 클라리가 슬퍼하던, 마음아파 하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다. 조금 남겨져있는 이성이 사라지려는 것을 마음을 추스려 잡았다.
아무래도 녀석은 자기의 신장의 우위를 이용해서 승부를 보려는 듯 바로 직접적인 공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신체는 빈약해도 힘이 왠만한 오크 전사 녀석들한테도 안 질 정도는 되는데.
녀석의 보라색 검을 아직도 적응이 안될 정도로 빛을 내고 있는 클라리로 막았다. 검기리 충돌하는 순간 난 천천히 몸에 힘을 줘서 녀석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빛나가자 녀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힘으로 승부를 내려 했던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은 느낌.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이 녀석 강하긴 강했다. 결정적으로 실전 경험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괴물 사냥꾼 녀석들 우두머리급 20명 정도하고 검으로만 싸워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강하면 무엇할까? 힘을 사용할 곳을 모르는데.
녀석은 힘에서 승부를 낼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잠시 뒤로 물러섰다. 16강전에는 거의 사용조차 안했던 보랏빛 그 마검에서 나오는 기운이 시합이 진행 될 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역시 마검은 마검이다 보니, 썩 기분이 좋은 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의 성향이 완전한 악인 것도 아닌 좀, 카오스적 성향이 강한 검 같은데, 저런 검이 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별로 기억을 뒤지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저히 풀지 않고는 못버틸 정도로 화가 나는 감정을 추스리기도 힘드므로.
이번에는 내가 공격을 해볼까? 이럴때 죽이지 않고 가장 타격을 많이 줄 수 있는게 제일 좋았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과 대련할 때가 생각이 났다. 스승님은 결정적인 타격은 나에게 왠만하면 주지 않았지만, 자잔한 타격은 괭장히 많이 입혔다. 뭐, 하룻밤 자고나면 회복이 되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몸에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당하는 그 날은 괭장히 아팠었다. 아무래도 그 방식대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군. 아무리 미운 녀석이지만. 정말,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난 스승님의 속검 공격법을 이용해서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왠만큼의 스피드가 아니라면 녀석의 시야를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기에 난 스승님과 대련할 때 이상의 스피드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녀석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녀석 스스로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놓치는 것이 보였다. 난 녀석에게 최대한 근접을 해서 아주 빠르게 복부와 허벅지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중 몇 번은 차단당했지만 대부분 정확하게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검끼리 한 번 부딪혔다고 생각할 동안 난 정확히 복부에 2대 양 허벅지에 한 대씩 타격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 눈에 검이 부딪힌 것으로 보이는 수만큼 녀석이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티베리우스 단장이 16강전에서 사용한 방법과 비슷한 공격법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티베리우스 단장은 검의 스피드를 이용했지만 난 스승님께 배웠든 몸 전체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확실히 클라우 녀석의 갑옷이 워낙 좋은 갑옷이 되다보니 계속 때려도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공격이 지속 될 수록 녀석이 내 검을 막아내는 빈도가 높아졌다. 확실히 이 녀석은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목숨을 건 실전을 몇번 겪는다면 훨씬 강해질 수 있을 정도로...하지만 이렇게 곱게 공격을 막히면서 보내줄 수는 없지.
난 순간적으로 검의 움직임을 괭장히 늦혔다. 솔직히 스승님과 대결을 한 이후로 일대일 대결은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왠만하면 내 검술 보다는 스승님이 내게 사용했던 검술을 활용해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이나 황제의 실력도 모르는데, 그 시합도 오기전에 기술을 다 선보이면 나만 불리하잖아.
갑자기 느려진 내 검의 움직임에 녀석이 당황해 하는 것이 느껴쪘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뿐 녀석은 곳 정신을 차리고 내 검의 움직임에 맞춰 칼을 휘둘렀다. 역시, 풀플레이트를 입고 있는 사람 답지 않게 움직임에 별로 걸리적 거린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정말 16강전에 붙었던 그 쓰레기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녀석만 아니었으면 동료로 삼고 싶다는 기분이 들정도로 녀석은 강했다.
녀석은 내 공격을 계속 막기만 막고 있었다. 내가 녀석의 왼쪽 팔쪽을 노리고 검을 움직였을 때 순간적으로 녀석의 눈빛이 살짝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위험하다! 그 느낌이 스치는 순간 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녀석의 검의 범위 밖으로 물러섰다.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내 쪽을 향해 뻗어오는 것을 느꼈다. 보랏색의. 역시 보통검이 아니었다. 분노에 정신을 잃어서, 녀석의 움직임 조차 파악을 하지 못했다니. 역시 언제나 냉정한 마음으로 싸우던 이야기 속의 영웅들과는 확실히 난 거리가 멀었다. 스승님도 그랬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검을 들었을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홀리 쉴드!"
난 클라리를 중심으로 급하게 막을 펼쳤다. 클라리의 흰 색 기운이 강해졌던 까닭 때문인지 보통 때 였으면 종이 한장 정도의 막 밖에 못 만들었을 시간에 그런데로 방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두께의 막이 생겼다.
흰색 막에 충돌한 녀석의 검의 보랏빛 기운이 막에 밀려 밖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간 환호하는 관중들. 아무튼 녀석의 검의 기운에 클라리를 잡고 있던 내 손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아무 방어 없이 급소에 직격으로 맞았으면 나역시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녀석 날 죽여도 상관 없다는 생각인가? 그런데 막을 뚫고 들어온 작은 검기에 별로 표시는 나지 않지만 내 옆머리카락이 짤려 경기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녀석, 정말 날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군. 녀석의 검의 능력도 생각외로 힘이 대단했다. 녀석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아 약간 남겨두었던 이성이 사라지고, 왠만하면 쓰지 않는 즉살의 공격이 나가려는 것을 순간적으로 제어했다.
내가 녀석의 공격을 막자 녀석은 이번에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방금전의 공격이 회심의 일격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녀석을 보니 전체적으로 많이 피곤해 보이는 듯했다. 그래, 내가 입힌 타격도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 방금 전 같이 무리한 공격을 하다니. 아무튼 자잔한 타격을 줘봤자. 녀석이 별로 큰 피해를 입는 것 같지도 않고, 나도 이번 공격에 대한 보답정도는 해줘야 도리겠지.
"인첸티브 소드 오브 홀리!"
신성계 보조 마법은 악마나 언데드가 아닌 이상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을테니, 녀석이 이 공격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정도에서 끝을내야 하겠다. 더 했다가는 진짜로 녀석을 죽일 지도 모르니까, 녀석이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나라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내 감정을 추스리기도 힘겨웠다.
난 녀석이 방어를 하든, 뭘 하든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강하게 빛을 내고 있는 클라리가 내 마법에 더욱더 많은 양의 흰빛을 쏟아내는 것을 느끼며, 정확하게 몸과 수평이 되도록 검을 세워서 내리쳤다. 녀석은 가슴부분에서 자신의 칼로 막았지만 공격을 막았지만, 이번 공격은 막아봤자. 소용이 없을텐데, 녀석의 보랏빛 검과 내 검이 충돌하는 순간 녀석의 그 두꺼운 검은빛 풀플레이트 갑옷이 정확히 일자로 양분되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몸에 큰 타격을 입히거나 하지는 않았군. 하지만 충격은 상당할텐데, 버티고 있다니 역시 대단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녀석은 뒤로 넘어지며 기절해 버렸다. 흠흠...너무 심한 기술을 썼나? 뭐, 녀석이 한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지.
녀석의 갑옷이 두동강으로 나눠지며 녀석이 쓰러지는 순간 적막에 휩싸였던 관중석은 잠시 후엄청난 함성에 휩싸였다. 이번 경기 역시 확실히 쑈로써의 가치로서는 충분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 시합에 화려한 빛까지 난무 했으니까. 정말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쑈를 하게되는 이 기분이란.
경기장 구석에서 치료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휴, 분풀이를 조금 하고 나니 기분이 많이 괜찮아 지는 것 같았다. 역시 난 검을 들고 싸워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타입인가? 그러고 보니, 녀석이 입고 있던 갑옷 역시 그런대로 좋은 갑옷이었던 것 같은데, 둘로쪼개서 어떻게 한담. 뭐, 힐튼 집안이야. 돈이 많기로 유명하니, 어떻게 하겠지.
녀석은 치료사들이 한참동안이나 힐을 쏟아 부어준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그 보랏빛검을 지팡이 삼아 쩔뚝거리며 자신의 방이 있는 경기장 한 쪽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처량해 보였다. 갑옷 없이 갑옷아래 받쳐 입는 셔츠만 입은체로 걸어가는 것을 보니, 하지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날 돌아 본 녀석의 눈빛에는 여전히 상당한 적의가 담겨져 있었다. 핀누나와 같은 바닷색눈, 저런 눈빛이 아니었다면 꽤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눈빛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어찌됬건, 8강전에서 스트레스 해소라는 목표는 달성했고 난 "The Pure Knight of Lily!"란
여전히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별명을 들으며, 흰색 백합깃발 밑 내방으로 돌아갔다. 무엇인가, 확실하게 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 같아 조금 그렇지만.
방을 여니, 클라리는 침대에 가만히 힘없는 표정으로 누워서 있었다. 별 표정 없이, 휴, 우는 것 보다. 왠지 더 마음이 아팠다. 소피와 신디가 동경의 눈빛으로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는 듯 쳐다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난 클라리에게 걸어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클라리는 침대에서 일어 서더니, 힘없는 표정을 지우고.나를 보며 웃으며, 작지만 왠지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했다.
"주인님아...그런데 있잖아. 양파껍질들처럼, 날 둘러싸고 있던, 옛날 추억들, 기억들을 모두 벗겨버리면,.결국 양파처럼 아무 것도 남는게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거 있지."
말을마치며 클라리는 조용히 내 품에 안겼다. 방안에는 경기를 마찬지 얼마 안된 까닭에 여전히 거친 내 숨소리만 가득 울리고 있었다. 일부러 이쪽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린체 조용히 빈 경기장을 쳐다봐주고 있는 소피와 신디.
"나...솔직히...무서웠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그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두배정도 더 많이 살아온 클라리 하지만 기댈 곳이라곤. 역시 내 작은 가슴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였다. 나 역시, 마찮가지겠지만. 휴, 그래. 내가 어떻게보면 바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이유도, 항상 어려울 때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붙잡은 것 역시 그 뿐이었으므로.
"주인님아 늦겠어! 빨리 일어나!"
"으..응?"
클라리의 급한 목소리에 꿈의 뒷자락을 떨쳐내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윽, 피곤해. 어제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공주가 쓸 때 없는 짓까지 했던 관계로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힘을 써야 했다니, 정말, 평소에 여자들한테 죄진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여자들한테, 그것도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들한테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이러다가 시합 시간에 늦겠어. 빨리 준비해! 주인님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8강전이 있는 날이었지,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클라우 그 녀석과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이길 수 있을까? 흠, 안되면 좀 비겁하긴 해도 보조마법을 잔뜩 쓰고 싸우면 되므로 일단 내가 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휴, 고결한 기사님께서 생각하시고 있는 것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이다.
난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어제 그 일 때문에 더러워진 흰 망토를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든 다음에 옷 위에 걸쳤다. 이왕 마법을 쓰는 김에 앞으로 먼지같은게 안 묻도록 마법을 걸어놔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하찮은 곳에 마나를 낭비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예전에는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법을 쓰지 않았으므로 왠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가끔씩 잊어 버린다고 해야하나?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참동안 적들을 검으로 물리치다가 도중에 마법을 사용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었다. 흠, 내 상태도 심각하군.
"주인님아. 머리끈."
난 클라리가 주는 흰색의 머리끈, 원래 파란색 아니었나? 아무튼 클라리가 준 머리끈을 받았다.
"주인님아 그 머리끈 있잖아. 내가 며칠 밤동안 만든거야. 잊어버리면 안돼."
내가 머리끈을 한참을 살펴보고 있자 클라리가 말을했다. 머리 끈을 보니 아무래도 바느질 솜씨가 미숙해서 그런지 이상한 점이 곳곳에 보였지만, 그래도 깨끗한 흰천에 백합무늬와 란트 크리센이란 이름이 수가 놓아져 있었다. 귀찮게 할 때는 정말 누군가 줘버리고 싶은 클라리지만 이럴 때는 정말 고마웠다. 어찌됬건 최근 일년동안 클라리가 실체화 된 뒤에는 내가 혼자 했어야 될 일을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도와주므로, 그리고 정말 몇년동안 잊고 있었던 정이 담긴 관심이란 것을 보여줬으니까.
난 머리끈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묶고 사람의 탈을 쓴 짐 세개를 데리고 마차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또 플라이를 써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 쉬고도 몸상태가 이렇는데, 또 쓰면 어떻게 될런지 그냥 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차고 역시 말들이 머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황궁에서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깨끗했다. 보통의 마굿간들과는 질적으로 너무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똥냄세나 그밖의 말 냄세도 거의 나지 않으니까. 역시 여자가 황제다보니, 청결이란 문제에서는 거의 완벽한 것 같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이런 저런 사실을 떠나서 차고안의 통풍문제 역시 완벽했다. 정말, 황궁을 설계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싶은 적이 한번 두번이 아니었다.
황실 마차가 세워 있던 곳을 보니 벌써 떠나고 없었다. 이야기를 해주고 가면 안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데도 자기들끼리만 가고 없다니, 특히 황제하고 리아인한테 섭섭했다. 공주야,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황제하고 리아인은 그렇지 않으므로 그런데 그들은 어제 공주가 자살소동을 벌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런지 아마 공주가 말을하지 않은 이상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모두들 마차에 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마부석 위에 뛰어 올라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여전히 열심히 말을 모는 제국 서열 5위, 고결한 백합의 기사,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 나으리..윽,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더욱더 비참해지므로.
"주인님아. 투덜거리지마 레이디들을 위해서 이정도를 못해주면 기사님이 아니지."
또다시 얄맙게 들리기 시작하는 클라리의 목소리, 난 기사 같은거 그다지 하고싶지 않다고, 그리고 레이디라, 괭장한 혈통에 상황파악에 매우 뛰어난데다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가진 괭장한 꼬맹이 한명, 도대체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는 그리고 나이가 얼만지 모를 엘프 한명과 수다쟁이 검한자루. 흠, 정말 대단한 레이디를 모시고 가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쯤되고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라도 했을텐데.
난 한숨을 계속 내쉬며 마차를 몰았다. 우리 마차가 오는 것을 본 근위대 기사들이 이제는 눈에 익었는지 검문같은 것 없이 문을 바로 열어주었다. 내가 예의상 마차를 몰면서 기사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기사들 역시 내 직위 때문인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전과는 상당히 다른 나름대로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서 답인사를 해주는 것이 보였다.
황성 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황성의 문 앞에 흰 깃발, 분명히 흰 천이 아니라 깃발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어제 황제가 말했던 백합의 기사 응원단인가? 내가 걸어나오자 사람들이 엄청난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것 참, 난 며칠 전에 경기장에 갈 때와는 다르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호위를 받아 경기장을 향했다. 주위의 집들을 둘러보니 집의 창가로 나와서 흰 깃발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시합하는 것을 단 한번 본 것 밖에 없을 텐데, 그리고 단 이틀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흰 깃발을 준비했단 말이었다. 나를 응원해 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도 대단했다. 내 인기가 그렇게 까지 치솟았나? 이러면 티베리우스 단장과의 시합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응원면에서 그다지 밀릴 것은 없을 것 같다.
클라리가 마차 안쪽에서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하늘로 마법의 불꽃들을 쏘아 올렸다. 그래 클라리도 저걸 할 수 있었다고 했었지. 수많은 마법의 불꽃들이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욱더 열광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응원단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는 어린 남자 아이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클라리, 가끔씩 뜻밖의 행동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될 때 보다는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데 정말, 이러다가 나중에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겨 수도에서 걸어다니기도 힘든것이 아닐까? 난 앞머리카락을 내려 되도록이면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정말 체질에 안 맞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영웅하고는 안어울리는 것 같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도 좋아하고, 권력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고, 그렇지만 이런 환호성에는 익숙하지 않는 완전히 영웅과는 관계가 없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생긴 것도 영웅들의 그 카리스마적인 모습과는 관계가 없는 나약한 도련님의 모습이었다. 항상 느끼는 점이었지만 정말 마음에 안들게도 내 얼굴은 남자다운 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황태자 녀석까지 여자 옷을 입은 날 여자로 착각하지를 않나. 정말.
다행히도 백합의 기사 응원단 때문에 처음 경기장을 향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차를 움직일 수 있었던 까닭에 늦잠 때문에 매우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지않고 경기장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지 마자 경기장의 큰 정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 대회에서야 꼭 우승을 안해도 되지만 오늘은 그 클라우 녀석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니까.
마차를 몰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다른 마차들은 다 도착한 것 같았다. 한번 와봐서 그런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황실 마차가 일찌감치 와서 마차들 앞쪽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바퀴 하나를 헐렁하게 풀어놓아 버릴까? 그냥! 그런데 잘못하다간 그 제국법 들먹이는 기사들한테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참도록 해야 겠다. 그놈의 황실이 뭔지.
난 급하게 마차를 세우고나서 내게 배정된 방으로 짐덩어리 일행들을 끌고 달려 갔다. 방으로 가는 복도의 벽이 함성에 울리는 것을 보니, 벌써 첫경기가 시작을 한 것 같다. 첫 경기는 티베리우스 단장하고 그 이자벨이라는 엘프와의 시합이었는데.
흰색 백합무늬의 깃발 밑에 있는 그 저절로 열리는 방문을 열고 우리 일행은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달려와서 그런지 숨을 가쁘게 내 쉬었다. 난 거의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고 다른 세명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예상대로 경기는 벌써 시작된 상태였다. 이자벨이란 그 날렵한 엘프는 무리하게 접근하지 않고 멀직히 떨어져서 티베리우스 단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칼을 든체 천천히 엘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광적인 파란색 깃발들, 이제 그렇게 부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그런데로 있으니까.
한동안 지루한 대치를 계속한 까닭에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내 긴장이 조금 풀어지려는 순간 엘프는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듯 유연하게 티베리우스 단장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정말 엘프 아니랄까봐 검술역시 상당히 자연의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검술을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 자체 역시 엘프에게 불리한 것 같다. 소피의 예를 볼 때에도, 거의 대부분 인공적인 돌로 이루어진 경기장에서 엘프가 자기 실력을 확실히 다 발휘하기는 힘들 테니까. 핀누나도 엘프일 텐데, 왜 그런것은 염두해 두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 엘프 길드 마스터라는 그 남자도 숲 속에서는 훨씬 더 뛰어난 검술을 선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나뭇잎같이 부드러운 검술 역시, 뛰어난 검술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수련을 할 때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반으로 자르는 것 처럼, 티베리우스 단장의 단 한번의 칼 휘두름에 엘프의 공격은 간단히 차단 되었다. 거기에다 역시 경기장 탓이었는지. 그 나뭇잎이 날리는 듯한 공격 역시 넓은 공터에서 바람한점 안 부는 맑은날, 별 움직임의 다양함 없이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과 비슷하게 보였다. 이래선 정말 여러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을 것 같았다.
역시 16강전 때와는 다르게 티베리우스 단장이 매우 조심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실력이 있는 사람의 여유로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음만 먹었으면 방금 전에 티베리우스 단장이 엘프를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엘프라서 봐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엘프는 그렇게 자신의 공격이 차단당하자 칼을 빼고 물러서더니,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저 엘프도 실력의 차이를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 파악마저 하지 못한다면, 그건 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엘프이므로 승부에 대한 집착 역시 사람보다는 약할 테니.
지고 나서도 별 표정의 변화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엘프, 저 엘프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엘프의 이미지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소피는? 항상 내 예상을 빗나가니, 엘프가 맞긴 맞는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뾰족하고 나무를 잘타는 걸 보면 엘프가 맞긴 맞는데.
다시 사람들의 함성에 경기장이 한 번 진동을 하며 티베리우스 단장은 푸른색 깃발 밑으로 되돌아 갔다.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이 준결승까지 오르는 건 확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자기가 가진 능력을 다 들어내지 않은 것 같이 보이니까. 티베리우스 단장은 16강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이 처음에 서 있던 자리에서 거의 이동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 엘프가 있는 쪽으로 정확히 직선으로 조금 걸어갔을 뿐, 조금도 방향히 틀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정식으로 전력을 다해서 싸울 때는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조편성상 준결승이 되기 전까지는 단장하고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조금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우승을 해야 한다면 티베리우스 단장도 이겨야 할 것이므로 그렇게 남의 일인양하며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잠시 후에 16강전에서처럼 심판이 다시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다음 시합은 리아인과 메넬리오 수비대장의 시합이었다. 사제 대결이라, 이 시합역시 나름대로 왠지 흥미를 끄는 것 같았다. 메넬리오 수비대장은 A+클래스 리아인은 A클래스, 객관적인 평가상으로는 메넬리오 대장이 앞서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이 다르므로, 미묘한 실력 차이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게다가 나이차이도 있으므로 한참나이인 리아인에 비해 메넬리오 대장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친절한 황자님의 두번째 시합 정말 기대가 되는군.
"8강전 두번째 시합 출전자는 메넬리오 비아니스 북부 수비대장!"
16강전에 먼저 소개를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간단히 소개를 하는 심판, 훔, 그러고보니 리아인하고 메넬리오대장, 두 사람모두 인기가 많았었는데 응원대결도 본시합 못지 않게 치열하게 벌어질 것 같았다.
"Green Lion of North! 메넬리오! Green Lion! 메넬리오! Green LIon!"
이번에는 경기장의 한 곳에 초록색 깃발을 든 사람이 모여서 앉아 있었다. 어제는 경기장 곳곳에 퍼져 있었는데, 효과적인 응원을 위해서일까? 아무튼 응원단이라는 사람들도 응원을 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서 꽤 준비를 많이 한 것 처럼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그 나름대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넬리오 대장은 투구를 쓴체 그 초록색 망토를 두르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전 시합에서는 투구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는 뜻인가? 메넬리오 대장이 경기장 가운데로 가까이 다가오자 심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우리의 친절한 황자님의 소개 차례, 그나저나 기분은 좀 풀렸을지 궁금했다. 어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걸 리아인이 알았다면, 벌써 그 클라우 녀석을 죽이러 달려갔겠지. 그런 일이 있었단 소식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리아인은 어제의 공주의 자살소동은 모르는 것 같다.
"상대는 리아인 슈타이튼 황자 전하!"
노란색 깃발 밑에서 리아인 역시 투구를 쓴체 걸어나왔다. 맑은 날씨 때문에 금빛 갑옷이 더욱더 반짝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것도 황족만의 특권이겠지. 뭐, 황실에서 다른 쓸데 없는 일에 낭비를 해서 백성들이 살기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무시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Kind Prince! 리아인! The Kind Prince! 리아인!"
리아인이 나오자, 리아인의 방이 있는 곳, 위의 관중석 주위에서 푸른색 깃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응원단의 인원수가 메넬리오 보다는 리아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며칠 전에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혹시 16강전 마지막에 그 행동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심했다. 한 사람은 나라를 위해 평생을 몸받쳐서 일한 사람인데, 그런 사소한 일에 이렇게 인기가 밀리게 되다니. 정말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마찮가지인가? 내가 리투안 제국을 위해 한 일은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까.
리아인이 경기장 가운데 서고 두사람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흠, 사제의 대결, 나하고 스승님하고 대련할 때는 처음엔 내가 매일 지다가 뒤에가서는 거의 내가 이겼었는데. 이 사제간은 어떤 결과가 될까?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두사람은 서로 상대를 향해 집중한 체 한동안 서있었다. 사제 지간이기에 서로에 대해 너무 완벽하게 아는관계로 두 사람 모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응원단들이 서로 각자 지지하는 사람들의 별명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커져갔다. 왠지 별 관계없는 나도 흥분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된 공격, 두사람은 완벽하게 똑같은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누가 사제지간 아니랄까봐. 하지만 똑같은 검술을 사용한다면, 체력면에서 뛰어난 리아인이 유리하지 않을까? 스승들이 제자한테 모든 기술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게다가 메넬리오 대장에게는 연륜에 바탕이된 실전 경험이란 것이 있으므로. 아인트 스승님도 그랬을까? 쩝, 다가르쳐 주시기도 전에 쓰러지시게됬지만, 저 두사람을 보고 있으니, 계속해서 스승님의 생각이 나는 까닭에 기분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두사람은 한동안 딱 맞춘듯, 정확히 똑같은 검술을 사용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두사람은 조금 숨이 찬듯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도 완벽히 똑같은 꼭 쌍둥이의 대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 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두사람이 똑같이 검을 역수로 쥐는 것이었다. 도데체 뭘 하려는 것일까?
그러더니 완벽하게 같은 자세로 검을 아주빠르게 휘둘렀다. 검풍의 대결이라 해야하나? 검과 검기로 인해 생성이 된 진공의 반원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저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살벌한 공격을 하다니. 서로 서로를 생각해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사용한거겠지만, 아무튼 저런 공격을 아무 방어 없이 직격으로 맞으면 보통사람은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두개의 진공의 반원이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음이 났다. 일순 조용해 지는 경기장, 그러나 그 후 두 사람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큰 함성을 질렀다. 원하지 않든 원했든 지금 저 두사람은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번 공격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이러다가 시합이 끝나지 않는건 아닌지하는 말도 안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그런데 언뜻 메넬리오 대장의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하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듯 보이는 리아인, 검을 휘두르는 리아인의 칼을 맞서는 것 처럼 메넬리오 대장 역시 앞으로 내었다. 하지만 검과 검이 충돌을 하려는 순간 몸 전체를 아래쪽으로 숙인 메넬리오 대장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유연한 동작으로 리아안의 갑옷의 복부부분을 정확히 가격했다. 황실 가문이 쓰는 갑옷은 갑옷이다 보니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리아인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조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선 리아인은 투구를 벗어버리며 나와 여행할때 보였던, 그 의미모를 웃음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주제에, 그런 웃음은 안어울린다고 리아인. 하지만 그 순간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메넬리오를 향해 뛰어가던 리아인이 높게 위쪽으로 뛰었던 것이다.
"스킬 오브 미티어 스트라이크!"
헛, 이건 며칠전에 그 곰같이 생긴 용병대장 녀석이 쓰던 건데, 하지만 원조보다 리아인이 쓰는 것이 훨씬 더 모양새가 괜찮았다.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괭장한 검기가 리아인의 검에서 생기며 무게까지 더한 확실히 중심이 잡힌 공격이 메넬리오 대장을 향해 내리쳤다. 순간, 메넬리오 대장이 멈칫 하는 것으로 볼 때, 확실히 리아인이 어제 그 용병대장 녀석이 쓰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면 저 냉정한 메넬리오 대장이 저렇게 당황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당황한 나머지 피하지 못한, 당황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피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메넬리오 대장은 급히 칼을 위쪽으로 들어 그 기술을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이 충돌하는 순간,메넬리오 대장이 칼을 놓쳤다. 제자의 승리였다.
메넬리오 대장은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경기에서 진 사람 같지 않게, 밝게 웃으며 리아인에게 걸어가 리아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시합할 때는 그렇게 살벌하게 싸우더니, 사이가 좋은 사제지간이 맞긴 맞았나 보다. 리아인은 스승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양측의 응원단은 큰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메넬리오가 지는 순간 잠잠해 졌던 녹색 깃발을 든 메넬리오의 응원단 역시, 다시 환호를 했으니까. 휴, 왠지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간단한 하지만 뭔가 따뜻한 마무리를 가진 후, 두사람은 서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스승님 생각이 계속 나는 것이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주인님아! 괜찮아?"
옆을 보니 클라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클라리는 미운면 만큼이나 고마운 면도 많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몇 년전부터 클라리는 내가 혼자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곤 했었으니까.
"응, 그냥 좀 스승님 생각이 나서."
난 소파 깁숙히 몸을 기대며 힘없이 대답을 했다. 클라리는 내 볼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을했다. 사람이 아니라고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손길.
"마음아파 하면 안돼 주인님아. 주인님이 마음아파 하면 내 마음속에도 그대로 전해 지니까."
난 클라리의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경기장을 쳐다보았다. 다음 시합은 황태자와 가이우스의 라이벌 대결인가? 어떻게 보면 정말 비슷한 두사람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그래서 라이벌인 두 남자였다. 정치적으로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리고 두사람은 똑 같은 A-클래스 였으니까, 시합이 더욱더 흥미진진하다고 해야 할까? 기분을 풀기에는 괜찮은 구경일 것 같다. 흠...이번에는 가이우스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이 벌어지겠군. 불쌍한 황태자.16강에서도 재수 없게 인기가 많은 카렌 비아니스, 그 미모의 여기사하고 싸우는 바람에 많은 야유를 들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절정인 가이우스하고 싸워야 한다니. 이래저래 양쪽으로 치이는군. 차라리 클라우 녀석하고 저 녀석이 붙었으면 그런데로 괜찮았을 텐데.
"8강전 세번째 시합의 출전자는 세인트 반 리투안 황태자 전하!"
황태자는 경기장 곳곳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노란색 깃발들 사이로 그 금빛 투구를 쓴체 걸어 나왔다. 같은 스타일의 갑옷을 입었지만 리아인이 키가 더 크다보니 황태자는 리아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위압감이나 그런 것을 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역시도 충분히 내가 부러워할 만한 체격은 되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가이우스 처럼 그렇게 민중들에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그런 체질은 아닌 것 같았다. 그 것보다는 주도 면밀하게 실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상대는 가이우스 폰 힐튼 경!"
이름이 불리고 가이우스가 파란색 깃발 밑에서 걸어나오자. 파란 깃발을 든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쩝, 못봐주겠군. 하지만 그 때 우리 마을에 가이우스 녀석이 왔었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아닐 경우에는 녀석은 별로 여자들한테 관심을 두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가이우스는 자신의 응원단 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투구를 쓴 뒤,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리고 가볍게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가이우스, 일단 황태자는 황태자니까. 예우는 해줘야 되겠지.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라이벌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이길지. 이번에도 역시 승부를 쉽게 예측하기가 힘든 시합이었다. 파란색 망토와 노란색 망토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벽으로 둘러싸이긴 둘러싸였지만 워낙 경기장이 크다보니, 시합을 하고 있는 중에도 바람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다.
"두사람 모두, 속임수 같은 건 쓰지 못하겠군. 서로에 대해 둘 모두 너무나 잘 알테니까."
무의식적으로 나온 내 혼잣말을 들은 내방에 있던 짐덩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궁금해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
"주인님아..그게 무슨 말이야?"
그 짐덩이들을 대표해서 클라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런, 어쩌다가 말을해서 귀찮게 되버렸담. 요즘엔 나도 모르게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여러가지면에서 탈이란 생각이 들었다.
"16강전에서도 너희들도 봤겠지만 황태자가 시합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약간 비겁한 방법을 썼잖아. 반칙은 아니었지만 워낙 머리가 좋으니,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면에서는 정말 뛰어나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가이우스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을걸. 반대 역시 마찮가지이고,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낼 밖에."
두사람은 시합이 시작 되자마자 가까이 접근을 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미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아는만큼 빈틈을 노리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금 전에 끝났던 사제 대결에 비해서는 두사람의 실력 모두 한 단계씩 떨어지는 관계로 기대를 크게 했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실망이 큰 편이었다.
황태자의 허벅지 쪽을 노리고 가이우스가 휘두르는 칼을 황태자는 간신히 막아내었다. 아마 순간적으로 황태자가 가이우스의 검의 움직임을 놓쳤던 것 같다. 녀석, 싸우다가 무슨 생각을 하길레. 검의 움직임을 놓치는 거냐구. 흠.
그런데 별 특색 없는 기사들의 검술만 계속 보니까, 왠지 지루해 졌다. 스승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다시 한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경기를 계속 보다보니,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술이 유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아인과 메넬리오 두 사람을 제외하고, 클라우, 그 녀석이나. 지금 싸우고 있는 두사람이나 검술의 형태가 티베리우스 단장과 상당히 비슷했다. 재미있을줄 알았더니, 영.
두사람의 실력은 정말 객관적인 데이터 상처럼 정말 막상 막하를 자랑하였다. 정말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은 어떻게 보면 똑같은 검술을 사용하던 방금 전 시합보다 더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태자는 순간적으로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가이우스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가이우스를 향해 공격을 했다. 하지만 가이우스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황태자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애꿎은 가이우스의 망토가 황태자의 칼에 조금 베어져 버렸다.
하지만 승부는 전혀 우연찮은 곳에서 결정이 나 버렸다. 공격을 하기 위해 뛰어가던 가이우스의 발 밑에 있던 흙이 순간적으로 내려 앉은 것이다. 아마 며칠전에 그 용병대장에 의해 파여졌던 구멍으로 생각되는데, 흙을 부어서 복구를 한것이 아직 굳지를 않았나보다, 불쌍한 가이우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중심을 잃으며 넘어지려는 것을 칼로 간신히 지탱을 했다. 수많은 여성 응원단들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겠지. 설사 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마 이길 생각을 했다면 저상황에서 칼을 그대로 쥔체 굴러서 황태자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아무튼 생각외의 행운을 얻은 황태자는 가이우스의 목에 칼을 대었다.
황태자가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환호는 가이우스가 더 많이 받았다. 투구를 벗고 웃는 모습으로 자신의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모습은, 쩝, 뭐라 말하기 힘들군 아무튼 그에 반해 우연찮은 행운으로 이긴 까닭에다 원래 응원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황태자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시간이 돌아왔다. 최근 며칠동안 얼마나 이 기회를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클라우 그 녀석과의 시합이었다. 아무튼 녀석과의 시합을 기다리다 보니, 여러가지가 뒤섞인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휴, 검을 들고 나가는 사람의 자세가 이래서는 안돼는데, 그러고보니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검을 들고 나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8강전 마지막 시합 출전자는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크리센공!"
심판이 특별히 배려해주는 소개를 들으며 난 경기장 쪽으로 난 문을 열고 걸어갔다. 클라리는 이번에는 별 말이 없었다. 아마 클라우 그 녀석과의 시합이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던 방 위쪽으로 엄청난 수의 흰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백합무늬가 그려진 당사자인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안되지만 정말 멋지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왠지 다른 사람들의 응원을 보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 깃발들 사이로 여전히 보이는 흰색 천들, 윽, 아직도 저걸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었나? 정말 못 말리겠군.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란트! The Pure Knight of Lily! 란트! 란트!"
내 이름이 별로 길지 않은 관계로 별명과 음을 맞추려는지 내 이름을 연속으로 두번 말하는 것이 들렸다. 흠, 응원단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라는 이름의 쑈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됬건 나를 위해 응원을 해준다는 사실이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클라우디우스 폰 힐튼 군단장."
이번에도 별 어조의 변화 없이 딱딱하게 소개를 하는 심판, 흠 심판이 이렇게 공정하지 못해서야 되는건지. 뭐 나야 손해 볼 건 없지만 아무튼 보라색 깃발 밑 방에서 그 녀석이 걸어 나오자 관중석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공주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만고불변의 그 말도 안되는 법칙에 피해를 녀석은 입고 있었지만 저 녀석 때문에 공주가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것으로 볼 때, 저 정도는 충분히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여자가 사랑을 할 때, 가장 절망할 때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완벽한 무관심을 보일 때라고 했다. 녀석은 며칠 전에 그걸 공주한테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걸어오는 녀석의 눈빛이 영 예사롭지가 않았다. 언뜻언뜻 비치는 엄청난 살기, 정말 자기가 뭐 잘한 것 있다고, 녀석은 경기장 가운데에 서서 칼을 뽑았다. 보랏빛 검신에 조금 음산한 기운 가까이서 보니 마검이 틀림이 없었다. 물론 주인의 인격을 먹어치우는 그런 마검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리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녀석을 보고 있으니 점점 내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껴졌다. 우리마을에 쳐들어 오는 녀석들을 처리할 때와는 다른..또다른 분노가.
나는 검을 뽑았다. 녀석의 눈길이 순간 내 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쳐다봐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정말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나게 만든다니까. 그런데 평소보다 클라리에게서 뻗어 나오는 흰빛이 더욱더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낮에는 자세히 안보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흰빛, 정확히는 검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눈이 그렇게 썩 좋지 않은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양의 흰빛이 나왔다. 클라리, 너도 화늘 내는거니? 그 순간 녀석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네 녀석이 그 검에서, 누나에게서, 그 정도의 힘이 나오게 할 수 있는거지?"
상당히 놀란 듯한 눈빛, 이 녀석도 내가 마법사일 뿐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건가? 그리고 나도 이렇게 이 검에서 이렇게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라구. 하지만 실력의 차이라면 이번 시합에서 확실히 보여줄 수 있지.
"지금부터 확실히 느끼게 해주지."
난 마음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제를 하며 그렇게 대답을했다. 정말 내가 저 녀석이 죽지 않을 정도에서 끝낼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 되었다. 녀석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 클라리가 더 슬퍼할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저 녀석을 죽여 버리면 핀 누나 볼 면목이 없게 되니까.
심판의 깃발이 올라가고, 아주 약간의 이성을 남겨둔체 칼을 몸의 움직임에 맏겼다. 검은빛 플레이트에 보라색검, 우울한 표정, 정말싫다. 클라리가 슬퍼하던, 마음아파 하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다. 조금 남겨져있는 이성이 사라지려는 것을 마음을 추스려 잡았다.
아무래도 녀석은 자기의 신장의 우위를 이용해서 승부를 보려는 듯 바로 직접적인 공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신체는 빈약해도 힘이 왠만한 오크 전사 녀석들한테도 안 질 정도는 되는데.
녀석의 보라색 검을 아직도 적응이 안될 정도로 빛을 내고 있는 클라리로 막았다. 검기리 충돌하는 순간 난 천천히 몸에 힘을 줘서 녀석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빛나가자 녀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힘으로 승부를 내려 했던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은 느낌.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이 녀석 강하긴 강했다. 결정적으로 실전 경험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괴물 사냥꾼 녀석들 우두머리급 20명 정도하고 검으로만 싸워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강하면 무엇할까? 힘을 사용할 곳을 모르는데.
녀석은 힘에서 승부를 낼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잠시 뒤로 물러섰다. 16강전에는 거의 사용조차 안했던 보랏빛 그 마검에서 나오는 기운이 시합이 진행 될 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역시 마검은 마검이다 보니, 썩 기분이 좋은 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의 성향이 완전한 악인 것도 아닌 좀, 카오스적 성향이 강한 검 같은데, 저런 검이 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별로 기억을 뒤지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저히 풀지 않고는 못버틸 정도로 화가 나는 감정을 추스리기도 힘드므로.
이번에는 내가 공격을 해볼까? 이럴때 죽이지 않고 가장 타격을 많이 줄 수 있는게 제일 좋았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과 대련할 때가 생각이 났다. 스승님은 결정적인 타격은 나에게 왠만하면 주지 않았지만, 자잔한 타격은 괭장히 많이 입혔다. 뭐, 하룻밤 자고나면 회복이 되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몸에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당하는 그 날은 괭장히 아팠었다. 아무래도 그 방식대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군. 아무리 미운 녀석이지만. 정말,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난 스승님의 속검 공격법을 이용해서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왠만큼의 스피드가 아니라면 녀석의 시야를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기에 난 스승님과 대련할 때 이상의 스피드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녀석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녀석 스스로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놓치는 것이 보였다. 난 녀석에게 최대한 근접을 해서 아주 빠르게 복부와 허벅지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중 몇 번은 차단당했지만 대부분 정확하게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검끼리 한 번 부딪혔다고 생각할 동안 난 정확히 복부에 2대 양 허벅지에 한 대씩 타격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 눈에 검이 부딪힌 것으로 보이는 수만큼 녀석이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티베리우스 단장이 16강전에서 사용한 방법과 비슷한 공격법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티베리우스 단장은 검의 스피드를 이용했지만 난 스승님께 배웠든 몸 전체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확실히 클라우 녀석의 갑옷이 워낙 좋은 갑옷이 되다보니 계속 때려도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공격이 지속 될 수록 녀석이 내 검을 막아내는 빈도가 높아졌다. 확실히 이 녀석은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목숨을 건 실전을 몇번 겪는다면 훨씬 강해질 수 있을 정도로...하지만 이렇게 곱게 공격을 막히면서 보내줄 수는 없지.
난 순간적으로 검의 움직임을 괭장히 늦혔다. 솔직히 스승님과 대결을 한 이후로 일대일 대결은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왠만하면 내 검술 보다는 스승님이 내게 사용했던 검술을 활용해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이나 황제의 실력도 모르는데, 그 시합도 오기전에 기술을 다 선보이면 나만 불리하잖아.
갑자기 느려진 내 검의 움직임에 녀석이 당황해 하는 것이 느껴쪘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뿐 녀석은 곳 정신을 차리고 내 검의 움직임에 맞춰 칼을 휘둘렀다. 역시, 풀플레이트를 입고 있는 사람 답지 않게 움직임에 별로 걸리적 거린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정말 16강전에 붙었던 그 쓰레기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녀석만 아니었으면 동료로 삼고 싶다는 기분이 들정도로 녀석은 강했다.
녀석은 내 공격을 계속 막기만 막고 있었다. 내가 녀석의 왼쪽 팔쪽을 노리고 검을 움직였을 때 순간적으로 녀석의 눈빛이 살짝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위험하다! 그 느낌이 스치는 순간 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녀석의 검의 범위 밖으로 물러섰다.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내 쪽을 향해 뻗어오는 것을 느꼈다. 보랏색의. 역시 보통검이 아니었다. 분노에 정신을 잃어서, 녀석의 움직임 조차 파악을 하지 못했다니. 역시 언제나 냉정한 마음으로 싸우던 이야기 속의 영웅들과는 확실히 난 거리가 멀었다. 스승님도 그랬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검을 들었을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홀리 쉴드!"
난 클라리를 중심으로 급하게 막을 펼쳤다. 클라리의 흰 색 기운이 강해졌던 까닭 때문인지 보통 때 였으면 종이 한장 정도의 막 밖에 못 만들었을 시간에 그런데로 방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두께의 막이 생겼다.
흰색 막에 충돌한 녀석의 검의 보랏빛 기운이 막에 밀려 밖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간 환호하는 관중들. 아무튼 녀석의 검의 기운에 클라리를 잡고 있던 내 손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아무 방어 없이 급소에 직격으로 맞았으면 나역시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녀석 날 죽여도 상관 없다는 생각인가? 그런데 막을 뚫고 들어온 작은 검기에 별로 표시는 나지 않지만 내 옆머리카락이 짤려 경기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녀석, 정말 날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군. 녀석의 검의 능력도 생각외로 힘이 대단했다. 녀석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아 약간 남겨두었던 이성이 사라지고, 왠만하면 쓰지 않는 즉살의 공격이 나가려는 것을 순간적으로 제어했다.
내가 녀석의 공격을 막자 녀석은 이번에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방금전의 공격이 회심의 일격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녀석을 보니 전체적으로 많이 피곤해 보이는 듯했다. 그래, 내가 입힌 타격도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 방금 전 같이 무리한 공격을 하다니. 아무튼 자잔한 타격을 줘봤자. 녀석이 별로 큰 피해를 입는 것 같지도 않고, 나도 이번 공격에 대한 보답정도는 해줘야 도리겠지.
"인첸티브 소드 오브 홀리!"
신성계 보조 마법은 악마나 언데드가 아닌 이상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을테니, 녀석이 이 공격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정도에서 끝을내야 하겠다. 더 했다가는 진짜로 녀석을 죽일 지도 모르니까, 녀석이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나라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내 감정을 추스리기도 힘겨웠다.
난 녀석이 방어를 하든, 뭘 하든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강하게 빛을 내고 있는 클라리가 내 마법에 더욱더 많은 양의 흰빛을 쏟아내는 것을 느끼며, 정확하게 몸과 수평이 되도록 검을 세워서 내리쳤다. 녀석은 가슴부분에서 자신의 칼로 막았지만 공격을 막았지만, 이번 공격은 막아봤자. 소용이 없을텐데, 녀석의 보랏빛 검과 내 검이 충돌하는 순간 녀석의 그 두꺼운 검은빛 풀플레이트 갑옷이 정확히 일자로 양분되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몸에 큰 타격을 입히거나 하지는 않았군. 하지만 충격은 상당할텐데, 버티고 있다니 역시 대단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녀석은 뒤로 넘어지며 기절해 버렸다. 흠흠...너무 심한 기술을 썼나? 뭐, 녀석이 한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지.
녀석의 갑옷이 두동강으로 나눠지며 녀석이 쓰러지는 순간 적막에 휩싸였던 관중석은 잠시 후엄청난 함성에 휩싸였다. 이번 경기 역시 확실히 쑈로써의 가치로서는 충분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 시합에 화려한 빛까지 난무 했으니까. 정말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쑈를 하게되는 이 기분이란.
경기장 구석에서 치료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휴, 분풀이를 조금 하고 나니 기분이 많이 괜찮아 지는 것 같았다. 역시 난 검을 들고 싸워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타입인가? 그러고 보니, 녀석이 입고 있던 갑옷 역시 그런대로 좋은 갑옷이었던 것 같은데, 둘로쪼개서 어떻게 한담. 뭐, 힐튼 집안이야. 돈이 많기로 유명하니, 어떻게 하겠지.
녀석은 치료사들이 한참동안이나 힐을 쏟아 부어준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그 보랏빛검을 지팡이 삼아 쩔뚝거리며 자신의 방이 있는 경기장 한 쪽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처량해 보였다. 갑옷 없이 갑옷아래 받쳐 입는 셔츠만 입은체로 걸어가는 것을 보니, 하지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날 돌아 본 녀석의 눈빛에는 여전히 상당한 적의가 담겨져 있었다. 핀누나와 같은 바닷색눈, 저런 눈빛이 아니었다면 꽤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눈빛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어찌됬건, 8강전에서 스트레스 해소라는 목표는 달성했고 난 "The Pure Knight of Lily!"란
여전히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별명을 들으며, 흰색 백합깃발 밑 내방으로 돌아갔다. 무엇인가, 확실하게 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 같아 조금 그렇지만.
방을 여니, 클라리는 침대에 가만히 힘없는 표정으로 누워서 있었다. 별 표정 없이, 휴, 우는 것 보다. 왠지 더 마음이 아팠다. 소피와 신디가 동경의 눈빛으로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는 듯 쳐다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난 클라리에게 걸어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클라리는 침대에서 일어 서더니, 힘없는 표정을 지우고.나를 보며 웃으며, 작지만 왠지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했다.
"주인님아...그런데 있잖아. 양파껍질들처럼, 날 둘러싸고 있던, 옛날 추억들, 기억들을 모두 벗겨버리면,.결국 양파처럼 아무 것도 남는게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거 있지."
말을마치며 클라리는 조용히 내 품에 안겼다. 방안에는 경기를 마찬지 얼마 안된 까닭에 여전히 거친 내 숨소리만 가득 울리고 있었다. 일부러 이쪽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린체 조용히 빈 경기장을 쳐다봐주고 있는 소피와 신디.
"나...솔직히...무서웠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그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두배정도 더 많이 살아온 클라리 하지만 기댈 곳이라곤. 역시 내 작은 가슴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였다. 나 역시, 마찮가지겠지만. 휴, 그래. 내가 어떻게보면 바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이유도, 항상 어려울 때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붙잡은 것 역시 그 뿐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