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4장 제국 검술대회-7(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3. 17. AM 11:45:57·조회 4398·추천 43
에피소드 24 제국 검술 대회 (7)
"으..... 머리야...."
난 한 손으로 지끈지끈 쑤셔오는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건 분명히 어제 술을 마신 후유증이 틀림이 없었다. 오늘은 두 시합이나 해야 하는데, 몸 컨디션이 영 그렇군. 난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마차를 몰고 있었다.
난 앞에 가는 황실 마차를 따라 잡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뭐, 시합을 하거나 내기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만은 왠지 빨리 경기장에 도착하고 싶은 욕구를 왠지 크게 느끼고 있었다.
같이 황궁에서 지내면서도 지금까지 계속 늦잠자는 버릇이 있는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 황제 일당들은 자기들끼리 경기장에 가버리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솔직히 더 불리한 점이 황실마차는 저 먼 곳까지 사람들이 비켜서있어 일직선으로 길이 뚫려 있는 까닭에 정상적인 마차의 속도를 그대로 낼 수 있었지만 그에 비해 우리가 탄 마차 앞은 백합의 기사 응원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뭐, 첫날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추월하기는 거의 불가능게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조금 편법이지만 장난이나 한번 쳐볼까?
"슬립!"
황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을 향해 난 마법을 걸었다. 잠들기, 황실마차에는 기본적으로 상당한 마법 방어력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말에게까지 마법 방어를 해놓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한번 해봤는데 효과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내가 마법을 걸자마자 마차를 끌고 있던 말 네 마리는 길가에서 갑자기 잠이 들어버렸다. 훔훔 내가 생각해도 좀 사악한 방법인 것 같지만, 어찌됬건 그 덕택에 내 마차는 황실마차를 추월할 수 있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마부석에 앉아서 어쩔 줄 몰라하고있는 황실 마부, 그 죽을상을 한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함이 들었다. 뭐,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우리마차가 황실마차를 지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황실마차의 문이 열리며, 고귀한 네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크리센공! 잠시만 마차를 멈추십시오."
리아인의 굵직한 목소리가 뒤쪽으로부터 들려왔다. 난 그냥 못들은척 하고 말을 계속 몰고가고 싶은 욕구가 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난 마차를 세웠다.
"무슨 일로?"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리아인을 쳐다보며 말을했다. 설마 같이 타고 가자는,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마차의 말들이 갑자기 잠이들어서, 크리센공의 마차를 같이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리아인은 꽤 당황해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당황함을 되도록 감추며 내게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괜찮고 말고 할게 어딨냐? 제국령안에서 누가 황제일가가 마차를 같이타고 가자 하는데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봐도 절대로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사실은 내가 말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난 더욱더 할말이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네, 타세요."
난 리아인을 향해 힘없이 답을 했다. 결국, 우리 마차에 모두가 타게 되었다는, 이런걸 보고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건가? 나도 참, 어쩌다 이렇게 됬는지 모르겠다. 황제 일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정도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체, 우리 마차로 건너왔다. 그런데 잠깐, 우리 마차는 4인승인데, 저 사람들이 다 타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리 공주가 안쪽에 타지 않고 마부석, 내 옆자리로 올라왔다. 시합이 없는 까닭인지 이번에는 갑옷은 걸치지 않고 그냥 공주가 입고 다닐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예쁜 분홍빛 외투에는 좀 어울리지 않게 등에 검을 매고 있었지만 공주니까 뭐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쪽에 들었다.
"저 마부석에 한번 앉아보고 싶었어요. 괜찮죠? 란트공"
밝게 웃으며 제국 검술대회 예선을 통과한 실력을 가진 사람답게 날렵하게 마부석으로 올라오는 공주, 도저히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동작이었다. 어쨌든 며칠 전의 그 아픔을 그런데로 이겨낸 것 같이 보여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야 괜찮지만, 공주님께서 이런 곳에 타고 가셔도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흠, 황제의 성격으로 볼 때, 공주 역시 그런 것을 별로 따질 것 같지는 않지만, 솔직히 여자가 옆에 앉아 있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클라리가 옆에 있을 때도 마차를 모는데 상당한 지장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도 보통의 여자가 아닌 제국의 공주이었으므로.
"공주가 이런 곳에 앉으면 안 된다는 법같은건 없으니까 괜찮아요."
황제와 비슷한 밝은 말투 이게 원래 공주의 성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동안 보여 줬던 그 우울한 느낌이 아닌. 그런데 공주가 마부석에 앉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마차안에서 누가 마부석 쪽으로 건너왔다. 백금발 머리, 클라리였다. 한동안 마부석에는 잘 안오더니 오늘은 갑자기 무슨 바람으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클라리 넌 또 왜?"
어제의 일로 역시 상당히 악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클라리를 향해 말을했다. 뭐, 그 덕택에 귀한 마법의 지팡이를 얻기는 얻었지만 그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의 양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쉽게 용서를 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냥 뒤가 비좁은 것 같아서."
내게는 그냥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했지만, 클라리는 공주 쪽을 한번 노려본뒤, 내 한쪽 팔을 자기의 두 팔로 꼭 안았다. 갑자기 왜 그러지? 흠, 가끔씩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소피와 클라리의 관계나, 이번 경우나, 나중에 누구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물어 봐야겠다. 황제한테 한번 물어볼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머리를 설래설래 흔들고는 마차를 몰아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주가 앞에 앉아 있으니, 신기하게도 황실마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서쥐서 상당히 편리했다. 공주가 그렇게 유명했나? 흠, 공주랑 많이 닮은 황제가 밖에 돌아다닐때는 아무도 황제라고 생각을 안하던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공주의 도움 때문인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탑승자가 네명이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기장에는 제일 먼저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전처럼 아쉬운듯 쳐다보는 팬들을 뒤에 둔체 아직 마차가 한대도 세워지지 않은 넓직한 경기장에 기분좋게 난 마차를 세워 놓았다.
"크리센공, 그런데 마차를 괭장히 잘 모시는 것 같아요. 다른 때는 마차 안에 앉아 있어도 마차를 타고 나면 속이 불편했었는데, 마부석에 앉아 있어도 별로 마차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안들었어요."
공주는 웃으며 날 쳐다보며 말을했다. 흠, 칭찬은 분명히 칭찬인데, 듣고 나서도 기분이 그렇게 썩 좋아지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게다가 왠지 졸지에 마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또 왜그런 것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그 말을 한 사람한테 매일 마차나 몰고 마부취급을 받게 해 주면 뭐라 이야기 할지 묻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 말을 한 사람도 무슨 학자나 그런 사람일 텐데, 자기가 그 당사자가 되지 않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그 당사자의 상황을 직접 격어보지 못한 사람이 그 존재에 대해 뭐라고할 자격은 없었다. 뭐, 솔직히 아무일도 안하고 놀고 먹는 사람보다야 마부라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존경을 받을 만하지만, 어쨌든 난 별로 마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휴, 하지만 고귀하신 제국의 공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답을 해야겠지?
"아직 마차를 모는 것이 서툴러 조심스럽게 몰아 그런 것 같습니다. 혹 불편하신점은 없으셨습니까?"
"아니에요. 아주 능숙하시던데요. 검술 솜씨 만큼. "
검술 솜씨. 흠, 이번의 말은 확실히 칭찬의 성격이 강한 것 같았다. 이제 확실히 마음을 정리한 건가? 내가 그 클라우 녀석을 이겼는데도, 검술 이야기를 꺼넨것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한데, 여자의 마음이란 이해하기 힘든 것이므로 내가 뭐라 말하기가 그랬다.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네요. 크리센공. 언제나 감사드려요."
공주는 그 말을 끝으로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항상 도움이라, 이번에는 내가 저지른 일인데, 양심의 가책을 상당히 받고 있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한심한 짓이나 하고 있게 됬는지 모르겠다. 정말, 최근 며칠 동안 내가 엄청나게 타락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공주의 힘없는 모습이 아닌 정상적인 모습을 보니, 확실히 공주는 어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뭐 나보다 한 네 다섯살 정도 많을 뿐이지만 어떻게 보면 편하게 대할 때의 황제보다도 지금의 공주의 모습에서 더 어른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황제는 나이가 오십이 다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어린 소녀같다는 느낌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난 클라리가 마부석에서 내리고 난 뒤, 천천히 내렸다. 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벌써 다 마차 밖에 나와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태자 녀석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저 녀석이 갑자기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하긴, 오늘 저 녀석하고 시합이 있지만, 그 것 때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어제 일로 무슨 눈치를 채거나 한건 아니겠지?
"저, 크리센공, 혹시 동생분은 안 오셨습니까?"
황태자는 정말 안어울리게 한참동안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내게 입을 열었다.
헛,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녀석 진심인 것 같은데, 세상에 현재 적이라고 볼 수 있는 나한테까지 그 일로 말을 걸다니, 다행히 소피나 신디한테 말을 걸거나 해서 정보를 알아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눈치를 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디와 소피와도 만약을 대비해서 나중에 입을 맞춰 놓아야겠다. 딴소리 못하게, 그런데 대답은 어떻게 하지? 뭐, 실제로 있는 인물도 아닌데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말해야 겠다.
"숲에 있는 집에 물건 정리하러 간다고 했었는데, 무슨일이십니까? 고귀하신 황태자께서 미천한 저의 여동생께 관심을 가지시다니."
난 상당히 다른 사람이 봤으면 불손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투로 나는 황태자에게 말을했다. 황태자는 내 대답을 듣자 냉정하던, 그 얼굴이 벌겋게 변하는게 보였다. 저 녀석이 흥분을 하다니, 정말 의외였다. 뒤에서는 황제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리만 내지 않은체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으 열받아. 완전히 황제 앞에서 쑈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리아인 역시 대충 눈치를 챘는지, 익숙한 그 의미모를 미소를 하고 있었다.
"폐하, 그럼 전 방이 멀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난 황태자를 무시한체 즐거워하는 황제에게 말 마디마다 힘을 주어 말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고는 일행들을 데리고 방쪽으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갔다. 얼마 걸어가서 황제 일행이 보이지 않자 난 바로 클라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네 책임이야!"
"뭐, 주인님도 황태자 앞에서 연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던데 혹시 바라고 있었던 것 아니야?"
"뭐라고?...어휴.."
으, 이게 정말 클라리는 내 시선을 외면하며 내 화를 더욱더 돋구려고 하는 듯한 의도의 말투를 일부러 일부러 능청스럽게 사용하며 말을 했다. 검이 아니라 정말 원수다 원수야. 내가 참자 참어. 이 사건에 대허서는 지금 싸워봤자 나만 손해니까.
난 화를 식히며 방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놈의 방은 왜이리 먼지, 며칠동안 계속 느꼈던 점이었지만 내년에는 방을 옮겨달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클라리와의 말싸움으로 냉각된 분위기 그대로 이제 익숙해진 흰색 백합무늬 깃발 밑에 도착을 한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4강전 첫 시합 출전자는 티베리우스 폰 힐튼 성기사 단장님!"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방에 도착한 뒤 그런대로 꽤 시간이 지나서야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도착시간이 늦어서 경기장에 들어서지도 못할 뻔도 했었다는 사실이 세삼 머리속에 떠올랐다.그 때 늦은 이유는 아마 그 골치아픈 공주의 자살소동의 후유증이었지? 어쨌든 다시는 플라이 마법을 쓰나 봐라 정말. 아무튼 이제 내게도 꽤 익숙한 응원소리를 들으며 티베리우스 단장은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상대는 리아인일 텐데,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실력이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객관적인 데이터 상으로나 지금까지 경기로 보거나.
"상대는 리아인 슈타이튼 황자전하!"
리아인은 자신의 방에서 여전히 지금까지와 별 다를 바 없는 비슷한 걸음거리와 복장으로 경기장으로 걸어나왔다.
"Kind Prince! 리아인!"
친절한 황자님, 리아인의 별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에 반해 황태자의 별명은 'Cold Prince' 차가운 황자 였지. 황제가 되려면 백성들한테 인기도 많아야 할텐데, 생각 외로 황태자는 인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인지. 하긴 진정한 통치자는 인기같은데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황태자 녀석이 진정한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장에는 푸른색 깃발과 노란색 깃발이 거의 반반씩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중에 가장 열광적인 응원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 다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계속 기사들의 대결만 보니 조금 지겨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처음 16강전 말고는 대부분 기사들만 올라와서 별 변화 없는 티베리우스 단장식 검술을 모두들 사용했다. 뭐, 리아인의 깜짝 쑈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어쨌든 지루한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고 리아인과 티베리우스 단장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한 뒤 검을 뽑았다. 티베리우스 단장의 승리가 거의 확실하지만 리아인의 실력 역시 그리 무시할 정도는 아니니까 어느정도라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진정한 실력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사람 역시 한참동안 서로를 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신중한 성격의 리아인이 실력의 차를 알면서도 함부로 검을 움직이진 않을 것같고 티베리우스 단장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고수가 가지는 약간의 여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적막을 깨고 티베리우스 단장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속도로 리아인 쪽을 향해 움직였다.
세상에 마법을 이용해서 가볍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그래도 풀플레이트를 입고 저 속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내가 시합을 할 때 방금 전의 그 것을 보았다면 조금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인 역시 단장의 빠른 움직임에 당황한 듯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급히 방어자세로 전환했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단장의 칼을 리아인이 막아내었다.
휴, 클라리로부터 티베리우스 단장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지금은 클라리에게 뭘 부탁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이런 저런 이유로 옆에 있는 클라리를 슬쩍 쳐다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경기에 집중을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일까?
다시 경기장쪽을 보니 리아인은 거의 방어만 하고 있었다. 매우 빠르면서도 정확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에 리아인은 막아내기 급급했다. 실전을 경험한 노장과 젊은이의 차이가 저런 곳에서 나오는 건지. 솔직히 나도 강한 사람과 붙은 경험은 별로 없는데 걱정이 되었다. 하긴 그 전에는 몇년동안 스승님과 거의 매일 같이 대련을 하곤 했었지만 그로 부터 꽤 시간이 지났으므로 확실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공격을 하는 것을 보며, 리아인은 자신의 팔에 최대한 힘을 줘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을 내리쳤다. 그 충격에 티베리우스 단장의 빠른 공격이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리아인은 뒤쪽으로 몸을 빼며 검을 역순으로 쥐었다. 메넬리오 대장과의 시합에서 보여줬던 그 검풍을 쓰려는 것 같은데, 역시 리아인은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전에 보았던 그 진공의 막이 티베리우스 단장을 향해 날라갔다. 메넬리오 단장 때 처럼 반대쪽에서 다시 검풍을 만들어 막아내기에는 검풍이 생겨난 장소가 티베리우스 단장과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단장은 곧 검을 약간 움직여서 진공의 막을 분쇄시켜 버렸다. 휴, 내가 저런 사람하고 싸워야 한단 말이야? 그럼 황제는 도데체 얼마나 대단하단 이야기인지.
그런데 티베리우스 단장이 검풍을 상쇄시키는 사이 리아인은 티베리우스 단장쪽으로 뛰어왔다.
"스킬 오브 미티어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전에 보여줬던 그 기술을 썼다. 정말, 저렇게 빨리 남의 기술 중에 자기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저렇게 자기에 맞게 잘 쓰는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든데.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리아인의 모습을 본 티베리우스 단장은 피하지않고 오히려 리아인이 뛰어 내려오고 있는 쪽으로 뛰어올랐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리아인을 향해 뛰어 오르는 순간 정말 순간적으로 엄청난 검기를 자신의 검에서 뿜어냈다. 마법검이나 마검, 정령검 같은 검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노란색 망토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리아인과 푸른빛의 단장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아마 리아인의 공격이 중력에 도움을 더 받기 전에 차단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두 가지 검의 기운이 충돌하며 큰 빛이 생기더니 땅으로 추락하듯 떨어지는 두사람. 땅에 착지를 하는 순간 승부는 났다. 중심을 잡으며 똑바른 자세로 서있는 티베리우스 단장, 하지만 리아인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 검을 떨어트리며 앞으로 넘어졌다. 티베리우스 단장의 승리였다.
리아인은 바닥에서 일어서서 투구를 벗어 흐르는 땀을 닦고는 떨어진 검을 주어 검집에 넣었다. 리아인의 실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괜찮았다. 역시 내가 장군으로 추천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노란색 깃발의 응원단은 조용해 지고 푸른색 깃발을 든 응원단들만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 흠.
티베리우스 단장과 리아인 두사람은 악수를 하고 다시 그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내 시합이군. 난 시합에 나갈 준비를 하며 심판의 소리를 기다렸다. 심판이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다음 4강전 시합인 세인트 반 리투안 황태자전하와 란트 크리센공의 시합은 황태자전하께서 기권을 하심으로써 란트 크리센공의 승리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난 문 뒤에서 황당함에 가만히 서있었다. 황태자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기권을 했는지 모르겠다. 으, 그 녀석도 좀 패주고 싶었는데, 클라우 그 녀석 꼴이 나지 않기 위해서라면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소 해소 대상이 한명 사라졌다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럼 티베리우스 단장님과 란트 크리센공의 2강전 준결승 시합은 잠시 휴식시간 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중석에서 노란색 깃발이 걸려 있는쪽 방을 향해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저 사람들이 지금 저방이 누구 방인줄 알고 그러는지, 보통 때 같았으면 한마디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라고 밖에 할 수 없을 행동을 관중들은 하고 있었다. 총리 대신 친위대 진격 하면 몰살당할 가능성이 상당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긴 그렇게 했다가는 수도 전체에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니 저렇게 황태자가 참고 있겠지. 그리고 축제기간에 흥분한 관중들의 행동이니, 조금 이해를 해줘도 될 것 같다.
난 방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검을 들고 몸을 풀었다. 마법으로 약간 손을 보지 않았으면 오늘 이렇게 걸어다니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 신성마법계통으로도 적성이 맞다는 사실에 상당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워낙 쓸일이 많이 생기니, 그런데 솔직히 나같은 놈이 신성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점이었다. 원래 신성마법이야 신에 대한 믿음이 깊은 성직자가 쓰거나 아니면 백마법사들이 조금 쓸 수 있는 그 정도 인데, 난 어찌된 일인지. 고위 성직자가 쓸 수 있다는 신성계열 마법도 빙계계열 마법만큼 잘 쓸 수 있었다. 뭐 부활까지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다른 백마법사나 성직자들이 보면 꽤 황당해 할 정도까지 쓸 수 있었다.
"주인님아, 그런데 주인님 마을에서 최근에 매일 책만 읽었잖아. 방하나가 책으로 가득 찰 정도로 그런데 도대체 모두 몇권 정도 읽은 거야?"
칼을 휘두르고 있는 내 뒤쪽으로 클라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지? 흠,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데. 하지만 대답을 안해주면 계속 귀찮게 할 것 같기도 같고. 그냥 짧게 대답을 해줄까?
"하루에 두세권 정도 읽었으니까. 한 구백권 정도는 읽었는것 같은데?"
구백권, 생각을 해보니 내가 읽은 책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사람들이 도시로 갈 때마다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읽곤 했었다. 특별히 할일도 없었고 가이우스가 온 뒤에 왠지 여러가지 궁금한 일이 많았으니까. 아무튼 이것 저것 종류별로 책을 많이도 읽었었다. 뭐, 내가 읽은 책중에 요리책, 집안일 대백과, 청소잘하는법 100가지, 그런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 모은 책들로 그리 크지 않은 우리 집의 방하나 가득 책이 싸여 있었다. 책장같은데 정리가 된 것이 아니라, 말 그래도 아무렇게 싸여서 그런데 그 책들은 어떻게 됬을까? 뭐 우리집에 들어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놓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아 그럼 읽은 책의 내용 다 기억해?"
클라리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가 마을에서 계속 책만 붙들고 앉아 있을 그 때는 묻지도 않았으면서, 지금은 왜 묻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었는데 어느정도 기억은 해야지. 그걸 다 잊어먹으면 책만 읽고 지냈던 일년은 그냥 날린 것과 마찮가지일 것이다.
"대충, 연습하는데 방해 되니까 말 걸지마."
난 클라리에게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도 정말, 점점 더 유치해져 가는 것 같은데. 싫다 싫어. 클라리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경기장 쪽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책이야기를 꺼내서 내 화를 풀려고 했던 의도 였던 것 같은데, 클라리한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어제 일을 생각해보면 정말 용서가 되지 않았다. 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직접 그 당사자가 되면 변태가 아닌 이상은 결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소피와 신디가 작게 이야기를 하는 소리 말고는 잠깐 동안 방안이 조용해 졌다. 흠, 소피도 왠만하면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신디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디는 아무하고나 다 잘 친해지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런데 왜 요즘엔 신디가 나한테 말을 잘 안하는 것인지, 여행을 떠난 뒤부터는 나한테 잘 말을 붙이지 않았다. 왜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조금 섭섭했다. 나중에 한번 이유를 물어볼까?
휴식시간이라 응원하는 소리도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고, 클라리는 내 말을 들은 뒤부터 계속 고개를 숙인체 경기장쪽을 향해 돌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화난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으, 이런데서 무너지면 안되는데.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저절로 클라리 쪽으로 움직여서 클라리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클라리는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내손을 꼭 잡았다. 클라리에 대해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을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고, 보호해줘야 할 만큼 약하게 느껴질때도 있지만, 또 어떤때는 너무 강하게 보일 때도 있고. 정말머리아파.
휴식 시간이 끝이 났는지 심판이 다시 경기장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까지 상대 중 제일 강적인가? 드디어 티베리우스 단장과의 시합이었다.
"준결승전 출전자는 블루이글! 티베리우스 폰 힐튼 성기사 단장님!"
관중석에는 4강전에서 보였던 푸른색 깃발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고 블루 이글을 외치는 엄청난 함성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끼며 난 경기장쪽으로 난 문앞에 섰다. 며칠 전 같았으면 이 응원소리를 걱정했겠지만 내게도 응원단이 있으니까.
"상대는 백합의 기사! 란트 슈타이튼 남파나단 자치령주!"
난 심판의 소개를 듣자마자 문을 열고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왠지 스승님과 저녁식사를 걸고 대련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조금 흥분되는 마음, 내 뒤쪽으로 백합응원단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는 별로 필요 없다고만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솔직히 조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 가운데는 이미 티베리우스 단장이 햇빛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푸른색 미스릴 갑옷을 입은체 서있었다. 난 천천히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클라리의 옛주인이라는 점, 그리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에서 존경하던 영웅들 중 한 분이라는 점에 대한 예우였다.
"란트 영주, 내 갑옷은 내 아들 녀석의 갑옷처럼 두동강을 내지는 말게나. 이 갑옷, 생각보다 꽤 비싼 갑옷이라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날 쳐다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농담을 하였다. 푸른색 미스릴 갑옷...저 갑옷을 팔면 아마 작은 성 몇 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내 현상금이었던 천만 골드정도면 저 갑옷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 클라리와의 생활 때문에 나도 농담으로 대응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간신히 그 충동을 억누르고 멋적은 표정을 짓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양쪽 응원단의 뜨거운 함성소리와 함께 경기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갔다. 난 천천히 클라리를 검집에서 뽑아 들고는 티베리우스 단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자세, 수많은 경험에서 나온 자세라는 것을 이렇게 칼을 들고 마주서있게 된 뒤에야 정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클라우 그 녀석과는 또 다른 많은 추억이 느껴지는 듯한 눈으로 내가 들고 있는 클라리를 쳐다보았다. 클라리의 옛 주인, 역시 한번쯤 승부를 낼 필요는 있겠지. 어떻게 보면 클라리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줬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클라리를 물려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었다.
순간 순간 꼭 슬로우 마법이 걸린 것 같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흐르고 티베리우스 단장이 먼저 엄청난 기운과 함께 내 쪽을 향해 공격을 들어왔다. 난 클라리에게서 힘을 뽑아내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몸전체가 푸른색 기운에 뒤덮인 것 같이 보이던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과 클라리가 부딪혔다. 윽, 엄청난 충격, 지금까지 느껴본 것 중 가장 강한 충격이었다. 공격을 직접 받은 것도 아니고 검과 검이 충돌했을 뿐인데 이런 충격이 오다니.
난 단장의 검을 튕겨내고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전 공격으로 보건데 힘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았고,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은 빠른 움직임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것도 4강전 시합에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솔직히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시도를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장의 푸른색 검을 밀어내며 난 뒤쪽으로 몸을 뺐다. 그리고 일단 스승님의 검술을 그대로 적용을 해보기로 했다. 내 스스로 만든 기술이라고 해야 여러명을 상대할 때 쓰던 검술이니까 이 상황에는 안어울릴 것 같고.
빠른 스피드에 기초를한 힘이 실린 공격, 스승님이 주장하기로는 아인트식 필승검법 이라고 했었지만 나한테도 종종 지곤 했던 검술이라는 것으로 볼 때, 필승이라는 말은 왠지 안 어울렸다. 아무튼 스승님의 검술을 중심으로 단장을 향해 파고 들었다. 물론 내가 키가 작은 신체적 여건상 하체부분을 노리며 하지만 내 빠른 공격을 단장은 별다른 검의 움직임 없이 정확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클라우 녀석과 싸울 때와 마찮가지로 이번에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푸른빛 검과 내 흰빛의 클라리가 부딪히는 모습만 관중들에게 보이기는 마찮가지겠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내가 전혀 단장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내 공격을 막아낸 뒤 잠시 틈이 있는 동안을 정확히 노린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 이번에는 왼쪽 겨드랑이쪽으로 오는 칼을 간신히 피했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피해를 볼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었다. 역시 스승님의 검술은 통하지 않는 건가?
"아인트 공의 검술을 거의 완벽하게 쓰다니. 확실히 제자로써의 자격이 충분하군. 하지만 그 검술로는 안타깝게도 날 이길 수 없다네. 25년 전의 검술대회 결승에서 내가 무너뜨린 검술도 그 검술이니까."
한참동안 검을 주고 받은 뒤 잠시 물러선 동안 티베리우스 단장이 내 마음을 꽤뚤어 본 듯 말을 했다. 역시 스승님의 검술로는 안되는 걸까? 그렇다면 스승님 이외에는 검증이 되지 않은 내 검술로 해야하는 걸까?
"란트 영주, 그럼 내 공격을 한번 막아 보게나."
티베리우스 단장은 얼굴에 상당히 흥분한 하지만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띄웠다. 결국 가장 염려하던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책에 따르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 여겨지는 호적수가 새로 등장했을 때는 꼭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리고 그 실력을 다 보려고 하는 것이 무인들의 특성이라고 했는데. 검술대회 전부터 걱정을하던 그 감정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단장은 자신의 검에서 푸른빛 기운을 더욱더 강하게 뿜여내며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움직여왔다.
정확하면서도 빠르고 강한 공격, 티베리우스 단장이 블루이글이라 불리는 이유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얼굴쪽으로 휘둘러진 칼의 검기에 길었던 앞머리칼이 조금 잘려나가며 간신히 피했다.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정말 이놈의 부자는 남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 까지 닮았다.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실전에 단련된 거의 완벽해 보이는 단장의 공격에 막아내지도 못하고 간신히 피하고만 있었다. 내가 이렇게 수세에 몰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오랫만이었다. 난 얼굴 위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정말 딴 생각을하고 있었는데. 몸이 저절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연속적으로 계속 그래, 머리로는 잊고 있었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스승님과의 대련, 스승님이 대련할 때 스승님이 나에게 공격을 해올 때 중점적으로 해 왔던 검술이 바로 이 검술이었다. 스승님은, 그 때도 티베리우스 단장에게 졌던 것을 잊지 않고 계셨던 걸까? 스승님한테 그런면이 있었다니. 정말,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을 정확히 막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방금전의 상황과는 반대로 된 것 같다.
내가 계속 공격을 막아내자 티베리우스단장의 미소짓고 있던 얼굴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공격하던 티베리우스 단장은 숨을 돌리려는지 잠시 나와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나 역시, 처음에 피하느라 체력을 소모한 까닭인지. 조금 피곤해진 몸을 잠시 진정시켰다.
"하, 이렇게 검술 시합에 흥미를 느껴보기는 정말 오랫만이군. 자네 정도면 어쩌면 황제한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군. 적어도 방어에서는."
티베리우스 단장은 가쁘게 숨을 쉬면서도 내게 말을 하였다. 다른 시합에서도 이렇게 서로 말을 했을까? 계속 도청마법을 걸어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어찌됬건 이번시합에서 내가 질 수는 없다. 진다는 것은, 클라리의 새 주인으로써의 자격이 그만큼 모자란다는 것이니까. 이제..확인 되지 않은...몸과 마음에서 동시에 피를 흘리며 터득한...내 검술을 한번 써볼까?
난 클라우 녀석과 시합이후로는 더욱더 많은 빛을 뿜어내는 클라리를 들고 티베리우스 단장을 향해 공격을 했다. 빠른 움직임으로, 그리고 클라리의 빛을 이용해 잔상을 만들며 티베리우스 단장을 공격하는 방법. 잔상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파워는 약해지지만, 정확한 타격이 들어갔을 경우에는 힘이 약해졌어도 그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니 이기기 위해서는 있어야 한다. 원래, 동시에 실력이 모자란 여러명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이번에는 실력이 뛰어난 한명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여섯명으로 나누어진 내 잔상의 공격을 티베리우스단장은 정확히 네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개는 정확히 티베리우스 단장의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장딴지를 가격했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공격, 거의 완벽하던 티베리우스 단장의 자세가 조금씩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마무리를.
"인첸티브 소드 오브 아이스!"
클라리의 흰빛 기운에 약간의 파란색이 섞여 연한 하늘빛의 기운이 나왔다. 내 추측이 맏다면 단장의 선한 기운 때문에 신성계열의 강화마법을 걸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약하게 빙계계열의 강화마법을 걸었다. 내가 줬던 타격과 나이의 영향도 약간 섞여 티베리우스 단장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 보였지만, 그래도 단장은 여전히 당당한 자세로 서있었다. 이번에도 여섯개로 나눠지는 잔상, 티베리우스 단장은 떨어진 체력에도 여전히 잔상 세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개가 정확하게 단장의 푸른빛 갑옷 곳곳에 타격을 입히는 순간 단장은 자신의 푸른빛 검을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순간 조용해 졌던 경기장의 적막을 깨고 내가 있던 방 위쪽 백합의 기사 응원단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휴, 제국 사대 영웅 중 한사람인 티베리우스 성기사단장을 내가 이긴 것이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쓰러질 정도까지 한 건 너무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핀 누나가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정신 없이 마무리를 해 놓고도 왠지 불안해 졌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티베리우스 단장은 곧 바닥에서 일어섰다. 조금 비틀거리는 것이, 조금 그렇지만.
"란트 영주, 정말 대단하군. 그런 기술을 감추고 있었다니. 그래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은 발전하지도 않겠지. 아무튼, 검술로써 내가 이렇게 무릎을 꿇게 만든건. 황제와 자네 스승말고는 자네가 처음이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비틀거리며 걸어와 내 작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자신의 방쪽으로 돌아가는 티베리우스 단장. 난 급히 티베리우스 단장쪽으로 걸어가 티베리우스 단장을 부축하며 옆에 섰다. 그래도 제국의 영웅이 저렇게 절뚝거리며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니. 그리고 솔직히 티베리우스 단장의 모습에서 스승님과 그리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내가 달려가게 만들었다.
"고맙네."
다행히, 티베리우스 단장은 자존심 때문에 내 도움을 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어른의 따뜻한 정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 관심을 다시 느끼며 티베리우스 단장의 푸른색 독수리 깃발 밑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방 가까이 다가가자 가이우스가 방에서 나와 티베리우스 단장의 부축을 이어받았다.
"란트 영주, 시간이 나면 꼭 실버캐슬로 찾아오게나. 자네라면 언제나 대 환영일세. 그리고 황제폐하를 꼭 이겨야 하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얼굴가득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괭장히 편안해 보였다. 가이우스는 날 보더니, 리아인의 의미모를 웃음과는 다른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게 지어보였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랑하려는 것일까?
"네."
난 짧게 대답을 하며 티베리우스 단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티베리우스 단장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봤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내 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왜 푸른색 깃발을 든 사람들까지 날 쳐다보며 환호를 하는거지? 흠, 티베리우스 단장을 이겼으면 원래 더 않좋게 봐야 하는게 아니었나? 정말 모를일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좋지 않은 몸에 어려운 상대를 만나서 무리를 했더니, 컨디션이 영 좋지않았다. 돌아갈 때는 클라리보고 마차를 좀 대신 몰아달라고 해야겠다. 휴, 이제 결승전만 남은건가? 가이우스 때문에 얼떨결에 참가를 하긴 했지만, 검술대회, 생각했던 것 보다 재미가 있었다. 그나저나 내일은 푹쉬어야지 무슨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으..... 머리야...."
난 한 손으로 지끈지끈 쑤셔오는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건 분명히 어제 술을 마신 후유증이 틀림이 없었다. 오늘은 두 시합이나 해야 하는데, 몸 컨디션이 영 그렇군. 난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마차를 몰고 있었다.
난 앞에 가는 황실 마차를 따라 잡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뭐, 시합을 하거나 내기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만은 왠지 빨리 경기장에 도착하고 싶은 욕구를 왠지 크게 느끼고 있었다.
같이 황궁에서 지내면서도 지금까지 계속 늦잠자는 버릇이 있는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 황제 일당들은 자기들끼리 경기장에 가버리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솔직히 더 불리한 점이 황실마차는 저 먼 곳까지 사람들이 비켜서있어 일직선으로 길이 뚫려 있는 까닭에 정상적인 마차의 속도를 그대로 낼 수 있었지만 그에 비해 우리가 탄 마차 앞은 백합의 기사 응원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뭐, 첫날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추월하기는 거의 불가능게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조금 편법이지만 장난이나 한번 쳐볼까?
"슬립!"
황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을 향해 난 마법을 걸었다. 잠들기, 황실마차에는 기본적으로 상당한 마법 방어력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말에게까지 마법 방어를 해놓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한번 해봤는데 효과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내가 마법을 걸자마자 마차를 끌고 있던 말 네 마리는 길가에서 갑자기 잠이 들어버렸다. 훔훔 내가 생각해도 좀 사악한 방법인 것 같지만, 어찌됬건 그 덕택에 내 마차는 황실마차를 추월할 수 있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마부석에 앉아서 어쩔 줄 몰라하고있는 황실 마부, 그 죽을상을 한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함이 들었다. 뭐,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우리마차가 황실마차를 지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황실마차의 문이 열리며, 고귀한 네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크리센공! 잠시만 마차를 멈추십시오."
리아인의 굵직한 목소리가 뒤쪽으로부터 들려왔다. 난 그냥 못들은척 하고 말을 계속 몰고가고 싶은 욕구가 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난 마차를 세웠다.
"무슨 일로?"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리아인을 쳐다보며 말을했다. 설마 같이 타고 가자는,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마차의 말들이 갑자기 잠이들어서, 크리센공의 마차를 같이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리아인은 꽤 당황해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당황함을 되도록 감추며 내게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괜찮고 말고 할게 어딨냐? 제국령안에서 누가 황제일가가 마차를 같이타고 가자 하는데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봐도 절대로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사실은 내가 말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난 더욱더 할말이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네, 타세요."
난 리아인을 향해 힘없이 답을 했다. 결국, 우리 마차에 모두가 타게 되었다는, 이런걸 보고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건가? 나도 참, 어쩌다 이렇게 됬는지 모르겠다. 황제 일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정도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체, 우리 마차로 건너왔다. 그런데 잠깐, 우리 마차는 4인승인데, 저 사람들이 다 타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리 공주가 안쪽에 타지 않고 마부석, 내 옆자리로 올라왔다. 시합이 없는 까닭인지 이번에는 갑옷은 걸치지 않고 그냥 공주가 입고 다닐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예쁜 분홍빛 외투에는 좀 어울리지 않게 등에 검을 매고 있었지만 공주니까 뭐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쪽에 들었다.
"저 마부석에 한번 앉아보고 싶었어요. 괜찮죠? 란트공"
밝게 웃으며 제국 검술대회 예선을 통과한 실력을 가진 사람답게 날렵하게 마부석으로 올라오는 공주, 도저히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동작이었다. 어쨌든 며칠 전의 그 아픔을 그런데로 이겨낸 것 같이 보여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야 괜찮지만, 공주님께서 이런 곳에 타고 가셔도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흠, 황제의 성격으로 볼 때, 공주 역시 그런 것을 별로 따질 것 같지는 않지만, 솔직히 여자가 옆에 앉아 있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클라리가 옆에 있을 때도 마차를 모는데 상당한 지장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도 보통의 여자가 아닌 제국의 공주이었으므로.
"공주가 이런 곳에 앉으면 안 된다는 법같은건 없으니까 괜찮아요."
황제와 비슷한 밝은 말투 이게 원래 공주의 성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동안 보여 줬던 그 우울한 느낌이 아닌. 그런데 공주가 마부석에 앉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마차안에서 누가 마부석 쪽으로 건너왔다. 백금발 머리, 클라리였다. 한동안 마부석에는 잘 안오더니 오늘은 갑자기 무슨 바람으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클라리 넌 또 왜?"
어제의 일로 역시 상당히 악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클라리를 향해 말을했다. 뭐, 그 덕택에 귀한 마법의 지팡이를 얻기는 얻었지만 그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의 양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쉽게 용서를 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냥 뒤가 비좁은 것 같아서."
내게는 그냥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했지만, 클라리는 공주 쪽을 한번 노려본뒤, 내 한쪽 팔을 자기의 두 팔로 꼭 안았다. 갑자기 왜 그러지? 흠, 가끔씩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소피와 클라리의 관계나, 이번 경우나, 나중에 누구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물어 봐야겠다. 황제한테 한번 물어볼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머리를 설래설래 흔들고는 마차를 몰아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주가 앞에 앉아 있으니, 신기하게도 황실마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서쥐서 상당히 편리했다. 공주가 그렇게 유명했나? 흠, 공주랑 많이 닮은 황제가 밖에 돌아다닐때는 아무도 황제라고 생각을 안하던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공주의 도움 때문인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탑승자가 네명이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기장에는 제일 먼저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전처럼 아쉬운듯 쳐다보는 팬들을 뒤에 둔체 아직 마차가 한대도 세워지지 않은 넓직한 경기장에 기분좋게 난 마차를 세워 놓았다.
"크리센공, 그런데 마차를 괭장히 잘 모시는 것 같아요. 다른 때는 마차 안에 앉아 있어도 마차를 타고 나면 속이 불편했었는데, 마부석에 앉아 있어도 별로 마차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안들었어요."
공주는 웃으며 날 쳐다보며 말을했다. 흠, 칭찬은 분명히 칭찬인데, 듣고 나서도 기분이 그렇게 썩 좋아지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게다가 왠지 졸지에 마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또 왜그런 것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그 말을 한 사람한테 매일 마차나 몰고 마부취급을 받게 해 주면 뭐라 이야기 할지 묻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 말을 한 사람도 무슨 학자나 그런 사람일 텐데, 자기가 그 당사자가 되지 않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그 당사자의 상황을 직접 격어보지 못한 사람이 그 존재에 대해 뭐라고할 자격은 없었다. 뭐, 솔직히 아무일도 안하고 놀고 먹는 사람보다야 마부라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존경을 받을 만하지만, 어쨌든 난 별로 마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휴, 하지만 고귀하신 제국의 공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답을 해야겠지?
"아직 마차를 모는 것이 서툴러 조심스럽게 몰아 그런 것 같습니다. 혹 불편하신점은 없으셨습니까?"
"아니에요. 아주 능숙하시던데요. 검술 솜씨 만큼. "
검술 솜씨. 흠, 이번의 말은 확실히 칭찬의 성격이 강한 것 같았다. 이제 확실히 마음을 정리한 건가? 내가 그 클라우 녀석을 이겼는데도, 검술 이야기를 꺼넨것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한데, 여자의 마음이란 이해하기 힘든 것이므로 내가 뭐라 말하기가 그랬다.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네요. 크리센공. 언제나 감사드려요."
공주는 그 말을 끝으로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항상 도움이라, 이번에는 내가 저지른 일인데, 양심의 가책을 상당히 받고 있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한심한 짓이나 하고 있게 됬는지 모르겠다. 정말, 최근 며칠 동안 내가 엄청나게 타락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공주의 힘없는 모습이 아닌 정상적인 모습을 보니, 확실히 공주는 어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뭐 나보다 한 네 다섯살 정도 많을 뿐이지만 어떻게 보면 편하게 대할 때의 황제보다도 지금의 공주의 모습에서 더 어른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황제는 나이가 오십이 다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어린 소녀같다는 느낌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난 클라리가 마부석에서 내리고 난 뒤, 천천히 내렸다. 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벌써 다 마차 밖에 나와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태자 녀석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저 녀석이 갑자기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하긴, 오늘 저 녀석하고 시합이 있지만, 그 것 때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어제 일로 무슨 눈치를 채거나 한건 아니겠지?
"저, 크리센공, 혹시 동생분은 안 오셨습니까?"
황태자는 정말 안어울리게 한참동안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내게 입을 열었다.
헛,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녀석 진심인 것 같은데, 세상에 현재 적이라고 볼 수 있는 나한테까지 그 일로 말을 걸다니, 다행히 소피나 신디한테 말을 걸거나 해서 정보를 알아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눈치를 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디와 소피와도 만약을 대비해서 나중에 입을 맞춰 놓아야겠다. 딴소리 못하게, 그런데 대답은 어떻게 하지? 뭐, 실제로 있는 인물도 아닌데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말해야 겠다.
"숲에 있는 집에 물건 정리하러 간다고 했었는데, 무슨일이십니까? 고귀하신 황태자께서 미천한 저의 여동생께 관심을 가지시다니."
난 상당히 다른 사람이 봤으면 불손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투로 나는 황태자에게 말을했다. 황태자는 내 대답을 듣자 냉정하던, 그 얼굴이 벌겋게 변하는게 보였다. 저 녀석이 흥분을 하다니, 정말 의외였다. 뒤에서는 황제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리만 내지 않은체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으 열받아. 완전히 황제 앞에서 쑈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리아인 역시 대충 눈치를 챘는지, 익숙한 그 의미모를 미소를 하고 있었다.
"폐하, 그럼 전 방이 멀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난 황태자를 무시한체 즐거워하는 황제에게 말 마디마다 힘을 주어 말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고는 일행들을 데리고 방쪽으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갔다. 얼마 걸어가서 황제 일행이 보이지 않자 난 바로 클라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네 책임이야!"
"뭐, 주인님도 황태자 앞에서 연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던데 혹시 바라고 있었던 것 아니야?"
"뭐라고?...어휴.."
으, 이게 정말 클라리는 내 시선을 외면하며 내 화를 더욱더 돋구려고 하는 듯한 의도의 말투를 일부러 일부러 능청스럽게 사용하며 말을 했다. 검이 아니라 정말 원수다 원수야. 내가 참자 참어. 이 사건에 대허서는 지금 싸워봤자 나만 손해니까.
난 화를 식히며 방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놈의 방은 왜이리 먼지, 며칠동안 계속 느꼈던 점이었지만 내년에는 방을 옮겨달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클라리와의 말싸움으로 냉각된 분위기 그대로 이제 익숙해진 흰색 백합무늬 깃발 밑에 도착을 한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4강전 첫 시합 출전자는 티베리우스 폰 힐튼 성기사 단장님!"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방에 도착한 뒤 그런대로 꽤 시간이 지나서야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도착시간이 늦어서 경기장에 들어서지도 못할 뻔도 했었다는 사실이 세삼 머리속에 떠올랐다.그 때 늦은 이유는 아마 그 골치아픈 공주의 자살소동의 후유증이었지? 어쨌든 다시는 플라이 마법을 쓰나 봐라 정말. 아무튼 이제 내게도 꽤 익숙한 응원소리를 들으며 티베리우스 단장은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상대는 리아인일 텐데, 아무래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실력이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객관적인 데이터 상으로나 지금까지 경기로 보거나.
"상대는 리아인 슈타이튼 황자전하!"
리아인은 자신의 방에서 여전히 지금까지와 별 다를 바 없는 비슷한 걸음거리와 복장으로 경기장으로 걸어나왔다.
"Kind Prince! 리아인!"
친절한 황자님, 리아인의 별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에 반해 황태자의 별명은 'Cold Prince' 차가운 황자 였지. 황제가 되려면 백성들한테 인기도 많아야 할텐데, 생각 외로 황태자는 인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인지. 하긴 진정한 통치자는 인기같은데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황태자 녀석이 진정한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장에는 푸른색 깃발과 노란색 깃발이 거의 반반씩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중에 가장 열광적인 응원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 다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계속 기사들의 대결만 보니 조금 지겨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처음 16강전 말고는 대부분 기사들만 올라와서 별 변화 없는 티베리우스 단장식 검술을 모두들 사용했다. 뭐, 리아인의 깜짝 쑈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어쨌든 지루한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고 리아인과 티베리우스 단장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한 뒤 검을 뽑았다. 티베리우스 단장의 승리가 거의 확실하지만 리아인의 실력 역시 그리 무시할 정도는 아니니까 어느정도라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진정한 실력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사람 역시 한참동안 서로를 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신중한 성격의 리아인이 실력의 차를 알면서도 함부로 검을 움직이진 않을 것같고 티베리우스 단장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고수가 가지는 약간의 여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적막을 깨고 티베리우스 단장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속도로 리아인 쪽을 향해 움직였다.
세상에 마법을 이용해서 가볍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그래도 풀플레이트를 입고 저 속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내가 시합을 할 때 방금 전의 그 것을 보았다면 조금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인 역시 단장의 빠른 움직임에 당황한 듯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급히 방어자세로 전환했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단장의 칼을 리아인이 막아내었다.
휴, 클라리로부터 티베리우스 단장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지금은 클라리에게 뭘 부탁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이런 저런 이유로 옆에 있는 클라리를 슬쩍 쳐다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경기에 집중을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일까?
다시 경기장쪽을 보니 리아인은 거의 방어만 하고 있었다. 매우 빠르면서도 정확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에 리아인은 막아내기 급급했다. 실전을 경험한 노장과 젊은이의 차이가 저런 곳에서 나오는 건지. 솔직히 나도 강한 사람과 붙은 경험은 별로 없는데 걱정이 되었다. 하긴 그 전에는 몇년동안 스승님과 거의 매일 같이 대련을 하곤 했었지만 그로 부터 꽤 시간이 지났으므로 확실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공격을 하는 것을 보며, 리아인은 자신의 팔에 최대한 힘을 줘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을 내리쳤다. 그 충격에 티베리우스 단장의 빠른 공격이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리아인은 뒤쪽으로 몸을 빼며 검을 역순으로 쥐었다. 메넬리오 대장과의 시합에서 보여줬던 그 검풍을 쓰려는 것 같은데, 역시 리아인은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전에 보았던 그 진공의 막이 티베리우스 단장을 향해 날라갔다. 메넬리오 단장 때 처럼 반대쪽에서 다시 검풍을 만들어 막아내기에는 검풍이 생겨난 장소가 티베리우스 단장과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단장은 곧 검을 약간 움직여서 진공의 막을 분쇄시켜 버렸다. 휴, 내가 저런 사람하고 싸워야 한단 말이야? 그럼 황제는 도데체 얼마나 대단하단 이야기인지.
그런데 티베리우스 단장이 검풍을 상쇄시키는 사이 리아인은 티베리우스 단장쪽으로 뛰어왔다.
"스킬 오브 미티어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전에 보여줬던 그 기술을 썼다. 정말, 저렇게 빨리 남의 기술 중에 자기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저렇게 자기에 맞게 잘 쓰는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든데.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리아인의 모습을 본 티베리우스 단장은 피하지않고 오히려 리아인이 뛰어 내려오고 있는 쪽으로 뛰어올랐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리아인을 향해 뛰어 오르는 순간 정말 순간적으로 엄청난 검기를 자신의 검에서 뿜어냈다. 마법검이나 마검, 정령검 같은 검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노란색 망토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리아인과 푸른빛의 단장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아마 리아인의 공격이 중력에 도움을 더 받기 전에 차단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두 가지 검의 기운이 충돌하며 큰 빛이 생기더니 땅으로 추락하듯 떨어지는 두사람. 땅에 착지를 하는 순간 승부는 났다. 중심을 잡으며 똑바른 자세로 서있는 티베리우스 단장, 하지만 리아인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 검을 떨어트리며 앞으로 넘어졌다. 티베리우스 단장의 승리였다.
리아인은 바닥에서 일어서서 투구를 벗어 흐르는 땀을 닦고는 떨어진 검을 주어 검집에 넣었다. 리아인의 실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괜찮았다. 역시 내가 장군으로 추천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노란색 깃발의 응원단은 조용해 지고 푸른색 깃발을 든 응원단들만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 흠.
티베리우스 단장과 리아인 두사람은 악수를 하고 다시 그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내 시합이군. 난 시합에 나갈 준비를 하며 심판의 소리를 기다렸다. 심판이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다음 4강전 시합인 세인트 반 리투안 황태자전하와 란트 크리센공의 시합은 황태자전하께서 기권을 하심으로써 란트 크리센공의 승리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난 문 뒤에서 황당함에 가만히 서있었다. 황태자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기권을 했는지 모르겠다. 으, 그 녀석도 좀 패주고 싶었는데, 클라우 그 녀석 꼴이 나지 않기 위해서라면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소 해소 대상이 한명 사라졌다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럼 티베리우스 단장님과 란트 크리센공의 2강전 준결승 시합은 잠시 휴식시간 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중석에서 노란색 깃발이 걸려 있는쪽 방을 향해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저 사람들이 지금 저방이 누구 방인줄 알고 그러는지, 보통 때 같았으면 한마디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라고 밖에 할 수 없을 행동을 관중들은 하고 있었다. 총리 대신 친위대 진격 하면 몰살당할 가능성이 상당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긴 그렇게 했다가는 수도 전체에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니 저렇게 황태자가 참고 있겠지. 그리고 축제기간에 흥분한 관중들의 행동이니, 조금 이해를 해줘도 될 것 같다.
난 방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검을 들고 몸을 풀었다. 마법으로 약간 손을 보지 않았으면 오늘 이렇게 걸어다니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 신성마법계통으로도 적성이 맞다는 사실에 상당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워낙 쓸일이 많이 생기니, 그런데 솔직히 나같은 놈이 신성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점이었다. 원래 신성마법이야 신에 대한 믿음이 깊은 성직자가 쓰거나 아니면 백마법사들이 조금 쓸 수 있는 그 정도 인데, 난 어찌된 일인지. 고위 성직자가 쓸 수 있다는 신성계열 마법도 빙계계열 마법만큼 잘 쓸 수 있었다. 뭐 부활까지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다른 백마법사나 성직자들이 보면 꽤 황당해 할 정도까지 쓸 수 있었다.
"주인님아, 그런데 주인님 마을에서 최근에 매일 책만 읽었잖아. 방하나가 책으로 가득 찰 정도로 그런데 도대체 모두 몇권 정도 읽은 거야?"
칼을 휘두르고 있는 내 뒤쪽으로 클라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지? 흠,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데. 하지만 대답을 안해주면 계속 귀찮게 할 것 같기도 같고. 그냥 짧게 대답을 해줄까?
"하루에 두세권 정도 읽었으니까. 한 구백권 정도는 읽었는것 같은데?"
구백권, 생각을 해보니 내가 읽은 책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사람들이 도시로 갈 때마다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읽곤 했었다. 특별히 할일도 없었고 가이우스가 온 뒤에 왠지 여러가지 궁금한 일이 많았으니까. 아무튼 이것 저것 종류별로 책을 많이도 읽었었다. 뭐, 내가 읽은 책중에 요리책, 집안일 대백과, 청소잘하는법 100가지, 그런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 모은 책들로 그리 크지 않은 우리 집의 방하나 가득 책이 싸여 있었다. 책장같은데 정리가 된 것이 아니라, 말 그래도 아무렇게 싸여서 그런데 그 책들은 어떻게 됬을까? 뭐 우리집에 들어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놓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아 그럼 읽은 책의 내용 다 기억해?"
클라리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가 마을에서 계속 책만 붙들고 앉아 있을 그 때는 묻지도 않았으면서, 지금은 왜 묻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었는데 어느정도 기억은 해야지. 그걸 다 잊어먹으면 책만 읽고 지냈던 일년은 그냥 날린 것과 마찮가지일 것이다.
"대충, 연습하는데 방해 되니까 말 걸지마."
난 클라리에게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도 정말, 점점 더 유치해져 가는 것 같은데. 싫다 싫어. 클라리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경기장 쪽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책이야기를 꺼내서 내 화를 풀려고 했던 의도 였던 것 같은데, 클라리한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어제 일을 생각해보면 정말 용서가 되지 않았다. 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직접 그 당사자가 되면 변태가 아닌 이상은 결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소피와 신디가 작게 이야기를 하는 소리 말고는 잠깐 동안 방안이 조용해 졌다. 흠, 소피도 왠만하면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신디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디는 아무하고나 다 잘 친해지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런데 왜 요즘엔 신디가 나한테 말을 잘 안하는 것인지, 여행을 떠난 뒤부터는 나한테 잘 말을 붙이지 않았다. 왜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조금 섭섭했다. 나중에 한번 이유를 물어볼까?
휴식시간이라 응원하는 소리도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고, 클라리는 내 말을 들은 뒤부터 계속 고개를 숙인체 경기장쪽을 향해 돌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화난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으, 이런데서 무너지면 안되는데.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저절로 클라리 쪽으로 움직여서 클라리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클라리는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내손을 꼭 잡았다. 클라리에 대해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을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고, 보호해줘야 할 만큼 약하게 느껴질때도 있지만, 또 어떤때는 너무 강하게 보일 때도 있고. 정말머리아파.
휴식 시간이 끝이 났는지 심판이 다시 경기장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까지 상대 중 제일 강적인가? 드디어 티베리우스 단장과의 시합이었다.
"준결승전 출전자는 블루이글! 티베리우스 폰 힐튼 성기사 단장님!"
관중석에는 4강전에서 보였던 푸른색 깃발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고 블루 이글을 외치는 엄청난 함성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끼며 난 경기장쪽으로 난 문앞에 섰다. 며칠 전 같았으면 이 응원소리를 걱정했겠지만 내게도 응원단이 있으니까.
"상대는 백합의 기사! 란트 슈타이튼 남파나단 자치령주!"
난 심판의 소개를 듣자마자 문을 열고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왠지 스승님과 저녁식사를 걸고 대련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조금 흥분되는 마음, 내 뒤쪽으로 백합응원단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는 별로 필요 없다고만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솔직히 조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 가운데는 이미 티베리우스 단장이 햇빛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푸른색 미스릴 갑옷을 입은체 서있었다. 난 천천히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클라리의 옛주인이라는 점, 그리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에서 존경하던 영웅들 중 한 분이라는 점에 대한 예우였다.
"란트 영주, 내 갑옷은 내 아들 녀석의 갑옷처럼 두동강을 내지는 말게나. 이 갑옷, 생각보다 꽤 비싼 갑옷이라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날 쳐다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농담을 하였다. 푸른색 미스릴 갑옷...저 갑옷을 팔면 아마 작은 성 몇 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내 현상금이었던 천만 골드정도면 저 갑옷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 클라리와의 생활 때문에 나도 농담으로 대응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간신히 그 충동을 억누르고 멋적은 표정을 짓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양쪽 응원단의 뜨거운 함성소리와 함께 경기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갔다. 난 천천히 클라리를 검집에서 뽑아 들고는 티베리우스 단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자세, 수많은 경험에서 나온 자세라는 것을 이렇게 칼을 들고 마주서있게 된 뒤에야 정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은 클라우 그 녀석과는 또 다른 많은 추억이 느껴지는 듯한 눈으로 내가 들고 있는 클라리를 쳐다보았다. 클라리의 옛 주인, 역시 한번쯤 승부를 낼 필요는 있겠지. 어떻게 보면 클라리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줬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클라리를 물려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었다.
순간 순간 꼭 슬로우 마법이 걸린 것 같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흐르고 티베리우스 단장이 먼저 엄청난 기운과 함께 내 쪽을 향해 공격을 들어왔다. 난 클라리에게서 힘을 뽑아내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몸전체가 푸른색 기운에 뒤덮인 것 같이 보이던 티베리우스 단장의 검과 클라리가 부딪혔다. 윽, 엄청난 충격, 지금까지 느껴본 것 중 가장 강한 충격이었다. 공격을 직접 받은 것도 아니고 검과 검이 충돌했을 뿐인데 이런 충격이 오다니.
난 단장의 검을 튕겨내고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전 공격으로 보건데 힘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았고,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은 빠른 움직임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것도 4강전 시합에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솔직히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시도를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장의 푸른색 검을 밀어내며 난 뒤쪽으로 몸을 뺐다. 그리고 일단 스승님의 검술을 그대로 적용을 해보기로 했다. 내 스스로 만든 기술이라고 해야 여러명을 상대할 때 쓰던 검술이니까 이 상황에는 안어울릴 것 같고.
빠른 스피드에 기초를한 힘이 실린 공격, 스승님이 주장하기로는 아인트식 필승검법 이라고 했었지만 나한테도 종종 지곤 했던 검술이라는 것으로 볼 때, 필승이라는 말은 왠지 안 어울렸다. 아무튼 스승님의 검술을 중심으로 단장을 향해 파고 들었다. 물론 내가 키가 작은 신체적 여건상 하체부분을 노리며 하지만 내 빠른 공격을 단장은 별다른 검의 움직임 없이 정확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클라우 녀석과 싸울 때와 마찮가지로 이번에도 티베리우스 단장의 푸른빛 검과 내 흰빛의 클라리가 부딪히는 모습만 관중들에게 보이기는 마찮가지겠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내가 전혀 단장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내 공격을 막아낸 뒤 잠시 틈이 있는 동안을 정확히 노린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 이번에는 왼쪽 겨드랑이쪽으로 오는 칼을 간신히 피했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피해를 볼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었다. 역시 스승님의 검술은 통하지 않는 건가?
"아인트 공의 검술을 거의 완벽하게 쓰다니. 확실히 제자로써의 자격이 충분하군. 하지만 그 검술로는 안타깝게도 날 이길 수 없다네. 25년 전의 검술대회 결승에서 내가 무너뜨린 검술도 그 검술이니까."
한참동안 검을 주고 받은 뒤 잠시 물러선 동안 티베리우스 단장이 내 마음을 꽤뚤어 본 듯 말을 했다. 역시 스승님의 검술로는 안되는 걸까? 그렇다면 스승님 이외에는 검증이 되지 않은 내 검술로 해야하는 걸까?
"란트 영주, 그럼 내 공격을 한번 막아 보게나."
티베리우스 단장은 얼굴에 상당히 흥분한 하지만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띄웠다. 결국 가장 염려하던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책에 따르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 여겨지는 호적수가 새로 등장했을 때는 꼭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리고 그 실력을 다 보려고 하는 것이 무인들의 특성이라고 했는데. 검술대회 전부터 걱정을하던 그 감정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단장은 자신의 검에서 푸른빛 기운을 더욱더 강하게 뿜여내며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움직여왔다.
정확하면서도 빠르고 강한 공격, 티베리우스 단장이 블루이글이라 불리는 이유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얼굴쪽으로 휘둘러진 칼의 검기에 길었던 앞머리칼이 조금 잘려나가며 간신히 피했다.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정말 이놈의 부자는 남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 까지 닮았다.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실전에 단련된 거의 완벽해 보이는 단장의 공격에 막아내지도 못하고 간신히 피하고만 있었다. 내가 이렇게 수세에 몰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오랫만이었다. 난 얼굴 위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정말 딴 생각을하고 있었는데. 몸이 저절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연속적으로 계속 그래, 머리로는 잊고 있었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스승님과의 대련, 스승님이 대련할 때 스승님이 나에게 공격을 해올 때 중점적으로 해 왔던 검술이 바로 이 검술이었다. 스승님은, 그 때도 티베리우스 단장에게 졌던 것을 잊지 않고 계셨던 걸까? 스승님한테 그런면이 있었다니. 정말,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티베리우스 단장의 공격을 정확히 막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방금전의 상황과는 반대로 된 것 같다.
내가 계속 공격을 막아내자 티베리우스단장의 미소짓고 있던 얼굴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공격하던 티베리우스 단장은 숨을 돌리려는지 잠시 나와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나 역시, 처음에 피하느라 체력을 소모한 까닭인지. 조금 피곤해진 몸을 잠시 진정시켰다.
"하, 이렇게 검술 시합에 흥미를 느껴보기는 정말 오랫만이군. 자네 정도면 어쩌면 황제한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군. 적어도 방어에서는."
티베리우스 단장은 가쁘게 숨을 쉬면서도 내게 말을 하였다. 다른 시합에서도 이렇게 서로 말을 했을까? 계속 도청마법을 걸어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어찌됬건 이번시합에서 내가 질 수는 없다. 진다는 것은, 클라리의 새 주인으로써의 자격이 그만큼 모자란다는 것이니까. 이제..확인 되지 않은...몸과 마음에서 동시에 피를 흘리며 터득한...내 검술을 한번 써볼까?
난 클라우 녀석과 시합이후로는 더욱더 많은 빛을 뿜어내는 클라리를 들고 티베리우스 단장을 향해 공격을 했다. 빠른 움직임으로, 그리고 클라리의 빛을 이용해 잔상을 만들며 티베리우스 단장을 공격하는 방법. 잔상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파워는 약해지지만, 정확한 타격이 들어갔을 경우에는 힘이 약해졌어도 그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니 이기기 위해서는 있어야 한다. 원래, 동시에 실력이 모자란 여러명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이번에는 실력이 뛰어난 한명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여섯명으로 나누어진 내 잔상의 공격을 티베리우스단장은 정확히 네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개는 정확히 티베리우스 단장의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장딴지를 가격했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공격, 거의 완벽하던 티베리우스 단장의 자세가 조금씩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마무리를.
"인첸티브 소드 오브 아이스!"
클라리의 흰빛 기운에 약간의 파란색이 섞여 연한 하늘빛의 기운이 나왔다. 내 추측이 맏다면 단장의 선한 기운 때문에 신성계열의 강화마법을 걸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약하게 빙계계열의 강화마법을 걸었다. 내가 줬던 타격과 나이의 영향도 약간 섞여 티베리우스 단장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 보였지만, 그래도 단장은 여전히 당당한 자세로 서있었다. 이번에도 여섯개로 나눠지는 잔상, 티베리우스 단장은 떨어진 체력에도 여전히 잔상 세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개가 정확하게 단장의 푸른빛 갑옷 곳곳에 타격을 입히는 순간 단장은 자신의 푸른빛 검을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순간 조용해 졌던 경기장의 적막을 깨고 내가 있던 방 위쪽 백합의 기사 응원단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휴, 제국 사대 영웅 중 한사람인 티베리우스 성기사단장을 내가 이긴 것이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티베리우스 단장이 쓰러질 정도까지 한 건 너무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핀 누나가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정신 없이 마무리를 해 놓고도 왠지 불안해 졌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티베리우스 단장은 곧 바닥에서 일어섰다. 조금 비틀거리는 것이, 조금 그렇지만.
"란트 영주, 정말 대단하군. 그런 기술을 감추고 있었다니. 그래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은 발전하지도 않겠지. 아무튼, 검술로써 내가 이렇게 무릎을 꿇게 만든건. 황제와 자네 스승말고는 자네가 처음이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비틀거리며 걸어와 내 작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자신의 방쪽으로 돌아가는 티베리우스 단장. 난 급히 티베리우스 단장쪽으로 걸어가 티베리우스 단장을 부축하며 옆에 섰다. 그래도 제국의 영웅이 저렇게 절뚝거리며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니. 그리고 솔직히 티베리우스 단장의 모습에서 스승님과 그리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내가 달려가게 만들었다.
"고맙네."
다행히, 티베리우스 단장은 자존심 때문에 내 도움을 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어른의 따뜻한 정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 관심을 다시 느끼며 티베리우스 단장의 푸른색 독수리 깃발 밑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방 가까이 다가가자 가이우스가 방에서 나와 티베리우스 단장의 부축을 이어받았다.
"란트 영주, 시간이 나면 꼭 실버캐슬로 찾아오게나. 자네라면 언제나 대 환영일세. 그리고 황제폐하를 꼭 이겨야 하네."
티베리우스 단장은 얼굴가득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괭장히 편안해 보였다. 가이우스는 날 보더니, 리아인의 의미모를 웃음과는 다른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게 지어보였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랑하려는 것일까?
"네."
난 짧게 대답을 하며 티베리우스 단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티베리우스 단장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봤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내 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왜 푸른색 깃발을 든 사람들까지 날 쳐다보며 환호를 하는거지? 흠, 티베리우스 단장을 이겼으면 원래 더 않좋게 봐야 하는게 아니었나? 정말 모를일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좋지 않은 몸에 어려운 상대를 만나서 무리를 했더니, 컨디션이 영 좋지않았다. 돌아갈 때는 클라리보고 마차를 좀 대신 몰아달라고 해야겠다. 휴, 이제 결승전만 남은건가? 가이우스 때문에 얼떨결에 참가를 하긴 했지만, 검술대회, 생각했던 것 보다 재미가 있었다. 그나저나 내일은 푹쉬어야지 무슨일이 있더라도!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