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4장 제국 검술 대회-8(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3. 17. AM 11:48:10·조회 2716·추천 77
에피소드 25 제국검술대회 (8)
-수천년간 내려오면서 퍼졌던 그 수많은 아틸란티스 제국의 황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리투안제국의 건립된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일부는 북쪽 산맥을 넘어 파나단 땅에서 정체를 감추고 피투안 왕실의 통치하에 살고 있다는 설도 있고 또 일설은 슐레인 사막을 너머 동방의 땅 끝으로가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웠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수의 사라진 제국의 황족들이 리투안 제국 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혼란기가 도래한다면, 또 그들이 어떠한 위험을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국 건립 30년 후에 벌어졌던 초대황제 세레니안느 1세 암살 미수 사건에서 시작된 그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란과 같은....- 제국일보 294년 6월 22일자 사설-
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체 침대위에서 죽은듯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 동안 떨어진 체력을 만회하기 위한이란 핑계아래. 아, 그런데 저녁 무렵에 검술대회 결승 전야 파티가 있다고 했었지? 뭐, 내일이 시합이니까 난 얼굴만 내밀고 일찍 빠져나와도 이해를 해주겠지.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한데 그냥 무시해 버릴까? 아니다. 혹시 스승님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르니. 한번 나가봐야지. 난 잠결에 헝클어진 머리와 옷을 대충 정리하고 문으로 다가가 열었다.
"무슨 일이죠?"
문을 열고 보니. 앞에 서있는 사람은 그 황제의 차가운 여자 보좌관이었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쪽으로 꽉 묶은 흠, 이번이 두번째로 보는 것이다. 솔직히 황태자 그 녀석 하고 관견이 된 까닭에 반갑지가 않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다른 곳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이 여자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다.
흠, 그건 그렇고 황태자 녀석이 또 여기에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께서 이 서신을 미카 크리센 양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크리센양 계십니까?"
헛, 황태자녀석이 나한테 볼일이 없다는 것은 다행인데. 아니, 따지고 보면 나한테 볼일이 있다는 말이 잖아. 그런데 이 녀석이 왜 갑자기 무슨 서신을?
"동생은 지금 잠시 나갔습니다. 제게 주시면 전하도록 하죠."
휴. 방금 침대에서 일어나 부시시한 꼴을 황태자의 보좌관한테 보이다니. 이건 내 자존심으로써 일생일대의 타격이었다. 그냥 문두드리는 소리를 무시할걸하고 후회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황태자의 그 여자 보좌관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하며, 내게 깔끔하게 봉투에 넣어져 있는 편지를 주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곧바로 계단쪽을 향해 걸어갔다. 휴, 황태자나 저 여자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이 안간다니까. 난 황태자의 보좌관이 가자마자 급히 방문을 닫고 소파쪽으로 걸어가 앉으며 황태자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친애하는 미카양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미카양께서 이 편지를 12월 27일, 오늘 받으셨다면
저녁 때 있을 연회에 꼭 참석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혼자 오시기 난처하다거나 하시면 저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럼 저녁때 뵐 수 있기를.
으, 이녀석 연애편지까지 이렇게 딱딱하게 쓰냐? 하긴 나도 편지를 써본적은 한번도 없으니. 내가 뭐라고 할건 아니지만. 뭐, 황태자 녀석 백날 기다려보라지. 미카는 안 갈껀데. 꼭 다른사람 말하는 것 처럼 하니까, 이상하지만 말이다. 잠깐! 그런데 방금 보좌관이 미카가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답한 것 같은데? 그럼 결국 오늘 황궁에 있는건 확실하다는 이야기고, 직접 모시러 가겠다는 말은 오지 않으면 방으로 찾아오겠다는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가는 눈치를 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일단 의심을 하면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 시작할 테고, 내가 동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테니까. 으, 어떻게 한다? 혼란스러운 머리로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방문이 열리고 클라리 일당, 클라리, 신디, 소피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아~! 침대에서 일어났네?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앉아있어. 뭐 안좋은일 있어?"
난 말없이 들고 있던 편지를 클라리에게 넘겼다. 편지를 받은 뒤 잠시 후, 폭소를 터트리는 클라리.
"푸하하! 주인님아 이거 주인님이 처음으로 받은 연애편지지? 그런데 남자한테 받아서 어떻게 해. 푸하하!"
지금 웃게 생겼냐? 누군 미치겠는데. 으, 클라리에 의해 강제로 여장을 당한지 이틀도 안 지난 이 상황에서 또 여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클라리. 웃지만 말고 대책을 세워봐. 대책을!"
"주인님이 여장을 하고 참석을 하면 간단하지."
클라리는 여전히 배를 잡고 웃으며 말을 했다. 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간신히 억제하고 입을 열었다. 신디와 소피는 클라리가 갑자기 왜 웃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란 말이야. 검술대회 결승 진출자가 검술대회 결승 기념 파티에 참석을 안할 수는 없잖아 일단 얼굴이라도 내밀어야 하는데. 그러면 여장이고 뭐고 할 기회도 없다구."
한참을 웃던 클라리는 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계속 웃은 뒤에야 간신히 웃음을 멈추었다.
"어제 미카는 수도에 없다고, 황태자한테 말했었잖아. 그럼 오늘 파티도 참석할 수 없는 거고 간단하잖아."
클라리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을했다.
"그게 미카가 잠시 볼일을 보러나갔다고 말을 했단 말이야. 황태자의 보좌관한테."
"뭐?"
클라리는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 누가 알고 그랬나? 이런 내용의 편지 일줄 알았으면 그런 소리를 안했지.
"그래, 이제 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지? 제발 대책 좀 생각해 봐. 자치령주 보좌관 나으리께서 이런 것 정도 해결을 못해주시지는 않겠지?"
난 클라리를 보며 부탁 반 빈정거림 반을 섞인 말투로 말을 했다. 으. 정말 수도에 오는게 아니었는데. 수도에 온 뒤부터는 정말 계속 이상한 일만 생기고 있었다.
클라리는 작전을 다시 한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알겠지? 주인님아 되도록이면 신속 정확!"
난 당부하듯 말하는 클라리의 말을 뒤로 한체 며칠 전에 입었던 연회복 차림으로 급하게 연회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연회는 막 시작된 것 같았고 황태자 역시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 갑자기 왜 여자들이 모여드는거야? 어린애 한테 무슨 관심이, 설마 검술대회 때문에 그런건 아니겠지? 이런건 아무래도 불길한데, 확실히 이번 연회는 되도록이면 빨리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부러 황태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를 졸졸 따라 오는 여자들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런 곳에 스트레스를 받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황태자는 날 발견했는지 내 쪽으로 걸어왔다.
"크리센공, 인기가 상당히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생분은 연회에 오신다는 이야기가 없으셨습니까?"
앞에 말이 상당히 걸리적 거렸지만, 작전은 작전인지라. 생각했던데로 질문을 던져오는 황태자에게 작전 그래로 말을했다.
"이런 곳에는 부끄러워서 못 오겠다더군요. 전하. 미카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무리 미천한 저일지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난 일부러 살기를 잔뜩 담아 말을 했다. 뭐, 그런데 특별히 꿈쩍할 황태자도 아니었지만,
나와 황태자 주위에 모여 있던 여자들은 순간적인 살기에 놀랐는지. 모두들 놀란표정으로 뒤쪽으로 물러섰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귀찮을 때는 가끔씩 써야겠다. 여자들은 역시 피곤해.
난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사람들 눈에 많이 뛰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 말을 들은 황태자는 정확히 예상대로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황태자가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난 리아인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리아인은 내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리아인, 나 내일 시합때문에 연습하러가니까 누가 나 찾으면 그렇게 말해줘요."
리아인은 갑자기 다짜고짜 말을하는 날 잠깐 놀란듯 쳐다보았다. 뭐, 그 정도에 신경쓸 리아인은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니 아렐리아는 어디갔는지 리아인 옆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리아인은 여전히 어리둘절한 표정으로 답을했다. 난 리아인의 답을 듣자 마자 난 사람들의 시선에 안뛰는 곳으로 급하게 걸어가서
"헤이스트!"
급히 다른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연회장 베란다 쪽으로 움직였다.
"플라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방 창문이 있는 곳으로 조금 피곤해 지겠지만 그래도 플라이 마법을 써서 날아갔다. 완벽한 작전! 같은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없으니까 나와 미카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황태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이었다. 난 플라이 마법 때문에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쓰러지듯 우리방 창문쪽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아 빨리 어서!"
방에는 이미 클라리와 소피, 신디가 내가 입을 여자 옷을 들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으, 정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목에 칼을 드리대도 맨정신으로 여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건데, 난 급히 연회복을 벗어서 침대 밑에 숨기고는 연녹빛 파스텔 톤의 여자 드레스를 클라리 일당의 도움을 받아 입기 시작했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예상했던 것처럼 황태자는 내가 옷을 갈아 입는 것보다 한발 늦게 올라왔다.
"보이스 체인지"
뭐, 술 마신 후의 목소리로 내 목소리를 바꾸는 마법 정도야, 원래 내 목소리를 조금 변형만 하면 되니까 식은 죽 먹기였다.
"누구세요?"
으, 듣기싫은 내 변한 목소리.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런 나를 보며 클라리가 웃고 있는 것이 더 참기가 힘들었다.
"미카양, 세인트 입니다. 연회에 모시려 가려고 왔습니다만."
역시 황태자 정말 사랑에 빠지면 체면이고 뭐고 없는 걸까? 고작 여자하나 때문에 저 차가운 황태자가 이렇게 직접 모시러까지 오다니 설마설마 했었지만 정말 의외였다.
"옷갈아입는 중이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흐, 정말, 먹고 살라고, 아니 그건 아니구나, 아무튼 살다보니 별짓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는 대충 다 입었고, 클라리가 마무리로 머릿 손질을 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해서 마법의 지팡이 까지 다시 본래 크기로 만들어서 한손에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남자용 마법의 지팡이는 악세사리 적인 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지팡이는 여자가 쓰던 지팡이가 되다보니 뭐 디자인 적인 면에서 깔끔하고 괜찮았다. 들고 다녀도 촌스럽다거나 그런 것과는 멀었으니까.
"자. 끝!"
클라리는 밖에는 들리지 않게 작게 뭐가 기쁜 지는 몰라도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말을했다. 난 한숨을 내쉬고는 문쪽으로 문을 열었다. 예상 했던 대로 문을 여니 황태자가 서있었다. 그런데 황태자 왜 불길하게 얼이빠진 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거야?
"펴...편지는 보셨습니까? 미카양."
황태자는 안어울리게 얼굴이 빨갛게 되서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세상에,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지을줄이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이.
"네. 아저씨. 아니, 황태자 전하라고 해야하나요? 그런데 저 그런 곳에 가는건 처음이라."
으, 난 되도록이면 부끄러운척을 하며 목소리를 작게 낮춰서 황태자 녀석을 향해 말을 했다. 으, 정말 마음에 안들어 정말 성질대로라면 황태자를 흠씬 두들겨 패준 다음에 제국을 떠나는 건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십시오. 미카양께서 편하시다면."
황태자는 무릎을 꿇으며, 꼭 기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아가씨들에게 하는 것 처럼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내 왼손을 잡았다. 정말 다행인건 장갑을 끼고 있는 덕택에 직접적인 손의 접촉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으, 정말 속에서 뭐가 올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자 그럼 가실까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손을 잡은체로 연회장쪽으로 내려갔다. 플라이 마법을 써서 그런지 걸음을 옮기는데, 연기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힘없이 걸어가졌다. 평소의 내 발걸음과는 다르게. 그런데 이러다가 황태자가 청혼이라도 하면 정말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스승님만 깨어나면 난 수도를 떠날테니까 상관이 없겠지만, 제발 스승님 빨리좀 깨어나세요! 제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연회장에 도착을 했다. 잠깐,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란트라는 것을 눈치를 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난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않기를 빌며 약간 고개를 숙인체 황태자의 손에 끌려 연회장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와 황태자가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클라리와 내가 들어갔을때 처럼 일순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으,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해. 특히, 황태자를 쫓아다니던 여자들의 시선은 괭장했다. 이런걸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질투라고 했었던가? 흠, 그러고 보니 클라리의 행동 중에도 이런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클라리가 질투를?
그리고 약간의 살기어린 여자들의 시선이야 무시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차림을 때 항상 기분이 나쁜건 남자들의 시선이다. 멀대같이 말라서 여성적인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여장 남자한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놈들이 많은지.
점점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있는 것이, 탑에서 뛰어내린 아리 공주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조금 연회장 안쪽으로 걸어가니 리아인과 아렐리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에는 아렐리아가 없더니 아무래도 조금 늦게 연회장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아인은 날 보더니 상당히 놀란 눈빛을 했다. 다행히 "크리센공!"하고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아렐리아인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점이, 눈치를 채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리아인, 크리센 공의 동생이신 미카 크리센양 이시네. 미카양, 저의 동생인 리아인, 그리고 이분은 동생의 약혼자인 아렐리아양 입니다."
황태자는 일일이 친절하게 소개를 다 해주고 있었다. 날 쳐다보던 리아인은 그제서야 상황을 알겠는지. 그 주특기인 의미모를 웃음을 지은체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두사람쪽을 향해, 클라리에게 배운 여자 드레스를 입었을 때의 인사법으로 치마를 살짝 들고 인사를 했다. 휴, 이제 한 숨밖에 더이상 안 나왔다.
"세인트 오빠, 아니 황태자 전하. 언제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애인을 구하셨어요?"
아렐리아는 그 특유의 클라리와 비슷한 말투로 황태자에게 말을 했다. 예쁘고 귀여운. 정말 비극이다. 요즘엔 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황태자를 쳐다보니, 전 연회에서는 차가운 냉소만 짓고 있었던 황태자가 이번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밝게 웃고 있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있으면 다른사람들한테도 인기가 그렇게 없게 되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리고 진짜 날 대할 때도 저렇게 딴 감정없이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면 이미지도 괜찮았을 테고. 쩝.
그런데 옆에서 자세히 황태자 녀석을 살펴보니, 황태자가 클라우 그 녀석이 착용하고 있었던 검은빛 갑옷에 검은 빛 망토를 두른체, 평소의 그 표정으로 있다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흑태자의 모습이 떠 오를 것 같다. 예전에 아틸란티스 제국의 황태자였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끝없이 몰려오는 수십만 북방의 이민족들을 자신이 이끄는 단 삼천의 친위 기사단만으로 막아내었던 그 역시 이 잘난 황태자 처럼 검은빛 머리에 검은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그렇게 보니 내가 책에서 읽을 때 느꼈던 이미지와 확실히 비슷했다. 보통때 삐딱하게만 봤을때는 않좋은 면만 보이더니.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이 녀석이 현재로서는 내 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리고 리아인하고 사이 역시 생각했던 것 만큼 그렇게 나쁜것 같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적이지만 어찌됬건 형제는 형제니까 그런 것일까? 혹시 괜히 나만 흥분해서 이렇게 황태자를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휴, 황태자 녀석과 리아인, 아렐리아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난 혼란스러운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며 조용히 옆에 서 있었다. 그냥 황궁 연회장에 트롤한마리 소환해서 풀어놓고 그 틈에 사라져 버릴까? 하지만, 그 전에 황실 보호 마법 장벽에 걸려서 소환이 불가 될 것 같기도 하고 30년 전의 대 전쟁때, 핀 누나가 물리쳤던 그 악마에 홀린 여자가 소환 술사 였다니까, 아마 소환 마법에 대한 방어는 완벽할 것이라고 추정을 할 때, 내 헛된 망상은 불가능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카양 그런데 혹시 손에 들고 있는 그 지팡이 마법의 지팡이 아니에요?"
난 잠시 긴장을 풀고 있다가 적응이 안되는 호칭에 한참이 지나서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아렐리아 쪽을 쳐다보니, 아렐리아의 시선이 내 손에 있는 지팡이를 향해 있었다. 그냥 호신용겸 장식용으로 들고 나온 마법사의 지팡이가 관심을 끌다니. 그러고 보니 아렐리아 역시 마법사 인 것 같았다.
"네."
난 아렐리아가 말투에서 내 정체를 눈치를 채지 않게 하기 위해 되도록 짧게 답을 했다.
"그럼 미카양도 크리센공처럼 마법사이셨어요? 저도 마법사인데, 전 5클레스 마스터 6클레스는 아직 익스퍼트 수준이에요."
6클레스 익스퍼트, 내가 마법을 처음 배울 때 그냥 페이지 구분하는 숫자인줄 알았던 그 숫자가 실제로는 마법사의 실력을 구분하는 것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마 5클레스를 완전히 마스터 하고 난 뒤였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솔직히 8클래스 마스터 라고 하면 황태자가 눈치를 채겠지? 그냥 조금 줄여서 말을 해야 되겠다.
"전 아직 5클레스 마스터 밖에 못했어요."
아렐리아는 같은 마법사를 만나게 된 기쁨인지 아니면 자기보다 조금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을 만난 기쁨인지. 내 말을 듣자 생각보다 아주 좋아했다.
"미카양 나이가 어려보이는데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벌써 5클레스 마스터라니."
정확히는 8클래스 마스터 입니다. 보여달라면 중앙대평원에 구멍 몇개 정도는 뚫어 드릴 수는 있답니다. 난 속으로 혼자 헛소리를 하며 겉으로는 클라리에게 확실하게 훈련받은 여성스러운, 정말 싫다,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렐리아는 자기 머리쪽에 손을 대더니 머릿핀 같은 것을 뽑아내었다. 갑자기 커지는 머릿핀,하지만 그것은 머릿핀이 아니라 마법의 지팡이 였다. 분홍빛 긴 막대 끝에 진 붉은 색 보석이 박혀있는 내 생각이 맞다면 화염계열일 것이다. 리아인과 황태자 두 사람은 갑자기 커진 머릿핀에 순간 놀란 눈초리로 아렐리아의 마법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화염계열이네요."
난 이번에도 내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무의식 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말하는 버릇, 가끔씩 곤란한 상황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별 문제가 없었군. 이 버릇도 빨리 고치든지 해야지.
"네 맞아요. 미카양. 화염계열, 제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지팡이에요. 미카양꺼 만큼 예쁘죠?"
아렐리아는 왠지 모를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마법지팡이를 껴않으며 내게 말을했다.
"아렐리아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마법지팡이가 훨씬 더 예쁜 것 같은데요?"
으, 살기 싫어. 정말, 이 놈의 뭐같은 자존심만 아니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진 않을 텐데, 난 일부러 님자를 붙였다. 어찌됬건 나보다 나이도 많고 뭐 그렇다고 미카가 남파나단 자치령주라는 고위직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우리 서로 지팡이를 바꿀까요?"
아렐리아의 목소리, 헛, 내가 화염계열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서 뭐하려구. 화염계열 마법을 쓸일도 없을텐데, 난 순간 황당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니에요. 미카양. 전 그냥 농담으로 한건데. 그렇게 놀란 표정을 하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흐, 이게 정말 클라리랑 똑 닮았다. 사람 놀려먹는 것 까지, 난 순간 내가 놀림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했지만, 간신히 표정은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정말 귀여워. 크리센 공도 그렇고 미카양도 그렇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꼭 마루 인형같아!"
아렐리아는짧게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로 날 보며 말을했다. 화난 것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구별을 못하냐? 그런데 마루 인형 같다라, 마루 인형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물건을 모아둔 상자안에서 인형을 보았던 것 같은데, 그 때 엄마가 그 인형들을 보고 마루 인형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가 더 있다가는 황태자님의 소중한 미카양을 울릴 것 같네요. 그럼 저흰 이만 사라질게요. 황태자 전하, 미카양. 아! 그리고 황태자 전하 아무리 사랑에는 나이차가 없다고 해도 열살 정도면 이미 범죄랍니다."
범죄, 뭘 알긴 아는군. 확실히 제국에도 미성년자 보호법을 제정하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제국 회의가 다시 열릴 때 한번 의견을 내봐야겠다. 아렐리아는 그말을 마친후 리아인을 끌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무대 쪽으로 사라졌다.
난 아무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쉰 후, 황태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으, 되도록이면 빨리 그냥 피곤하다 말을하고 황태자로부터 빠져나와야지.
전에는 처음이라 잘 몰랐었는데, 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드레스들은 괜찮은 색상에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들어졌었지만 생각 외로 보석이나 귀금속으로 몸전체를 덮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장식 몇개나 목걸이, 반지하나 그 정도 뿐이었지,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 같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석으로 도배를 하거나 하는 연회는 결코 아니었다.
"미카양, 춤을 추실 줄은 아시죠?"
모를리가 있나? 클라리한테 확실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남자가 추는 방법에서 조금 변형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외로 쉬웠었다. 정말 들키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한다니까?
"네. 조금요."
내 대답이 끝나자 마자 난 황태자 녀석에게 끌려서,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생전 여자와 춤을 추는 일이 없던, 황태자가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니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상황이 심각했다. 난 황태자의 손을 잡고 아직 조금 어설프나마, 곡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제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춤을 추다가 연회장 가운데에 있는 연단의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는 날 보며 그냥 싱긋 웃을 뿐이었다.
"미카양, 얼마 후에 있을 제국 마법 대회에는 참가하실 겁니까?"
황태자는 춤을 추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마법 대회, 검술 대회 결승에도 진출을 했으니. 별로 출전을 해야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그리고 미카로 참가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요. 아직 실력도 모자라고 그런 자리는 왠지 부끄러워서."
제국 마법 대회,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르므로 귀찮은 일에 휩싸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황태자는 내 말을 들은 뒤 잠시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참가해보십시오. 미카양, 이번 마법 대회 우승자에게는 특별히 무슨 귀한 마법기구를 준다고 저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 옆에 춤을 추는 사람과 부딪히려는 것을 황태자가 잡아 주었다. 마법 기구..아마 마법대회라면 핀 누나가 주관을 할텐데, 어떤 마법 기구일까? 예전에는 무기는 클라리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마법의 지팡이를 얻은 이 후로는 왠지 마법의 기구라는 것에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마법의 지팡이로 마법을 쓰면 그만큼 마법을 사용하기가 편했으니까.
"저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몰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지만 미카양의 오라버님이신 크리센공 께서는 뛰어난 마법사이시니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을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승도 하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아렐리아 시장이 최근 대회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받고 있으니까. 미카양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황태자는 숨이 차지도 않는지 춤을 추면서도 말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난 황태자의 말에 아무 대답없이 그냥 있었다. 마법대회에 참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 가를 놓고 마음 속으로 엄청난 갈등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6클레스 익스퍼트가 최고성적이라. 아무리 마법길드가 봉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마법사들의 실력이 너무 떨어진건 아닐까? 하긴 아렐리아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발전할 가능성이 무한히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설마 마법대회도 검술대회 처럼 사람들끼리 대결을 해서 우승자를 정하는 것은 아니겠지.
휴, 불편한 다른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원해서 추는 춤이 아니다보니.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거의 절반은 고의로 춤을 추다가 황태자 녀석의 발을 밟아 버리며 스트레스를 조금 해소한 뒤, 난 주저앉아 버렸다.
"미카양, 괜찮으십니까?"
황태자 녀석은 상당히 아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아픈 표정 없이 오히려 주저 앉아버린 날 걱정하는 것이었다. 저녀석, 정말 빠져도 단단히 빠졌군. 심각해, 이 녀석 내가 란트 크리센 이라는 걸 알면 아마 평생동안 쫓아다니며 괴롭힐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왠지 불안했다.
"좀. 피곤해서요."
난 황태자가 잡아주는 손에 힘없는 척, 그리고 솔직히 힘이 별로 없었다. 일어서서 조금 비틀 거리며 황태자에게 내 몸의 중량을 잔뜩실어 무대 밖으로 걸어나왔다. 으, 이 정도 보복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아무튼 오늘 있었떤 이 이야기는 무덤까지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밖으로 나온 황태자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가이우스 폰 힐튼."
황태자는 작게 신음하듯, 가이우스의 이름을 말했다. 황태자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가이우스가 왠 여자하고 같이 오는 것이었다. 흠, 가이우스 한테도 애인이 있었나? 이건 정말 금시 초문인데, 깔끔한 파란색 계통의 연회복을 입은 가이우스 옆에 붉은 색머리. 어떻게 보면 스승님과 리아인과 비슷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키가 큰 여자가 역시 파란색 계통의 드레스를 입고 서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이우스를 연회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가이우스 정도라면 눈치를 채지 않을까? 가이우스는 우리를 보더니, 황태자가 싫어하든 말든 다가왔다. 옆에 있던 그 키가 큰 여자와 함께.
"황태자 전하, 드디어 차기 황태자비가 되실 분을 결정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이제 제국의 앞날에도 서광이 비칠듯하군요."
가이우스는 웃으며 말을 했지만 내가 들어도 황태자에게 좋은의도로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뭐 황태자비? 정말 저주를 내려라 저주를.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런데 이중인격을 극복한 가이우스, 생각보다 꽤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차가운 얼굴로 저 이야기를 했을 텐데, 웃는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다니.
"고맙소, 가이우스 폰 힐튼 경, 경도 그 뛰어난 외모로 많은 레이디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시더니, 결국 마음을 정한 거요?"
오, 황태자의 매서운 일격. 잠깐, 그런데 내가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거야?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적인 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무튼 그 대화가 잠시 끝난 후 두 사람은 마음에도 없이 웃는 척을 하였다. 어휴, 라이벌이라는게 뭔지.
"가이우스 경, 이 레이디께서는 크리센 공의 동생분이신 미카 크리센 이시네. 제국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며 또, 크리센 공과 각별한 사이인 자네가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가이우스는 내 쪽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가이우스가 눈치를 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쩝, 가이우스는 그 직 후 황태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전하 제가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차기 황태자 비가 되실 분이 크리센 가문에서 나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었는데 정말 의외입니다."
가이우스는 여전히 그 말투를 유지한체 말을 이었다. 휴, 아마 나와 황태자가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을 가지고 황태자를 비꼬는 것 같은데.
"다 그게 자네 덕분이 아니겠는가. 가이우스경, 그런데 옆에 계시는 레이디는 누구신지 소개를 해주지 않겠나?"
황태자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 가이우스 옆에 서있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했다. 황태자의 말을 들은 그 여자는 가이우스 대신 황태자를 향해 인사를 한 후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저 여자의 정체가 궁금한건 사실이었으니까. 나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이우스가 여자와 같이 다니는 것을 본적이 없다.
"만나게 되서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전 가이우스 님의 수석 보좌관 안드리아 피넬 입니다."
수석 보좌관, 역시 그랬군. 내 예상으로는 아마 따라 다니는 여자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보좌관을 데리고 연회에 온 것 같았다. 솔직히 나같이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에게도 그렇게 뒤를 졸졸 따라오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뭐, 가이우스 정도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될테니까.
"가이우스 경도 보좌관을 두고 있었다니. 제가 몰랐던 사실이군요. 뭐 피투안 주제 대사 일을 가이우스 경 혼자 계속 해결을 하기에는 능력적으로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겠지만."
정말 웃고 있는 얼굴로 두사람 모두 상대방이 상당히 화가 날만한 답을 하고 있었다. 하긴 웃는다는게 거의 냉소적인 웃음이였지만, 순간 두사람 모두의 모습에서 내가 싫어하는 황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으 짜증나 말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이렇게 하고 있을 것 같군.
"세인트 아저, 아니 황태자 전하, 정원 구경을 다시 해보고 싶은데, 안내해 주실 수 있으세요?"
난 황태자에게 더 심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작은 스트레스를 취하기로 했다. 흠 뭔가 이상한 말이었되어버렸군.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정말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 행동을 해주었다.
"물론입니다. 미카양."
황태자는 언제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었냐는 듯 나를 쳐다보며 다시 그 안어울리는 따뜻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했다. 황태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동안 가이우스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 확실히 눈치를.
"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폐하."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가이우스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는 옆에 서있던 안드리아라는 여자와 함께 연회장의 한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가이우스가 가고나자 황태자는 나를 데리고 내가 얼마전에 이 사기극을 위해 연회장을 탈출했던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빛나는 정원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빛나는 정원이라,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요"
황태자의 목소리에 조금 움찔하며 난 답을 했다. 황태자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황궁에 바로 이 연회장 뒷편에 있는 정원을 빛나는 정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회가 있는 날이면 정원 풀 사이로 작은 불빛들이 생기며 정원전체가 빛나게 되죠. 하지만 생각 외로 그 정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모두들 연회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작은 아름다움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것이랍니다. 하긴, 어떻게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며 황태자는 시크럽고 밝은 연회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은 외롭고 슬픈 목소리로 말을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라, 으, 왠지 동정심이 가는게.그런데 내가 이 녀석을 동정하고 말고 할게 어딨을까? 하지만 솔직히 비슷한 입장이기에 같은 연민의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말 적이 아니었다면, 아니 되기 전에 이런 모습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클라리를 노리지 않았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베란다로 걸어나가니, 아까는 급해서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정원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런데 밝은 연회장에 적응이 되 있어서 그런지 정원에서 난다는 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황태자가 앞장을 서고 난 그 뒤를 따라 치마를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몇 번 입어봐서, 이말을 하니 다시 비참해 지는군, 아무튼 적응이 된 까닭에 처음처럼 그렇게 넘어질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뭐 여전히 어색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정원 가까이 내려와서 살펴보니, 정말 풀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클라리도 보여주면 좋아할텐데, 읏 내가 왜 그 망할 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인데.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고, 확실히 마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빛이나지?
난 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묶어 올렸던 머리카락이 조금 풀렸는지 몸을 숙인 내 얼굴 근처로 내려와 바람에 조금씩 날라며 간지럽혔다. 그리고 바람에 조금씩 움직이는 빛을 내는 풀들.
"정령들입니다."
녀석 내가 궁금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황태자 녀석은 정확히 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전에 황제하고 있었을 때는 정령들의 모습이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하위급 요정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 황태자 저 녀석은 어떻게 정령들인지 알았지?
"정령들?"
순간 긴장한..무의식적으로 원래의 말투가 입으로 나갔다. 그런데 목소리 때문인지 다행히 황태자는 눈치를 채지 않은 것 같다. 조심 해야지, 잘못하다가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황제 폐하나 방금전에 본 저의 동생 리아인처럼 정령을 소환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은 저도 정령술 능력이 미약하게나마 있어서 그런지 정령들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마음이 맑지 못해서 정령들이 제 소환을 응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태자는 짧게 탄식하듯 말을했다. 잠깐, 방금 황제하고 리아인이라고 말을 했는데, 뭐? 리아인이 정령술을? 세상에! 리아인과 정령술이라. 지금까지 내 앞에서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데, 하긴 쓸일도 없었고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그 덩치 큰 리아인이 정령술을 쓴다라? 난 순간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풋..."
그러고 보니 얼마만에 웃어보는 걸까? 스승님과 지낼 때는 가끔씩 웃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웃은 기억이 없었다. 역시, 내 감정이 되돌아 오는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오랫만에 웃는 웃음이 황태자 이 녀석 앞이라니. 황태자는 내 웃음소리에 의문이 잔뜩 담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저씨, 심각한 상황에 웃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그 덩치 큰 어저씨가 정령술을 쓴다고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고정관념일까? 정령술은 소녀들이나, 엘프를 닮은 아주 연약해 보이는 남자들만 쓴다고 생각 하는 것은 황태자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 역시 즐겁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전 어릴 때 부터 항상 그렇다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정령술을 쓰는 리아인이라, 생각을 해보니 미카양의 말처럼 역시 안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진실 어린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인기가 있을텐데. 휴.
황태자는 그렇게 한참동안 웃은 뒤, 조용히 빛나는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대 쪽으로 나를 대리고 걸어갔다. 달빛과 빛나는 정원에서 나오는 빛이 어울려 분수대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황태자는 내가 분수대 가에 앉기 전에 잽싸게 자신의 망토를 벗어 밑에 받쳐주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두려워진다. 황태자가 내가 란트 크리센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봐.
"아! 미카양 이 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또 전처럼 사라지시면 꼭 찾으러 갈겁니다."
"....."
정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일을 말하는 군. 으, 황태자 저 녀석 내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따. 저 녀석도 클라리처럼 내 마음을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느끼고 있었다. 휴,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하긴 이 상황에서는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황태자는 그..협박성 발언을 마친 후 연회장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무슨 일이지? 아무튼 조금이나마 스트레스에 가득차인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난 조금씩 부는 바람에 약간 씩 물결이 생기는 분수대의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을 내려 다 보았다. 밝은 달빛 때문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올려진 머리, 달빛에 비쳐서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근육이라고는 볼 수도 없는 팔과 다리, 깔끔한 디자인의 드레스 내가 봐도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짧게 나오는 한숨, 요즘에는 정말 한숨을 쉬는 일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어떤 전설에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뛰어 들어 죽은 미소년이 있었다던데, 자기 얼굴에 반해서가 아니라 남자같이 생기지 않은 자기 얼굴에 한탄을 해서 호수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난 순간 들리는 인기척에 분수대 수면에서 눈을 때고 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황태자 발걸음 소리는 아닌데 만약을 대비해서 난 내가 들고 있던 마법의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마나가 들어감에 따라 마법의 지팡이에서 조금식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나는 마법의 지팡이에 의지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사람은 주황빛 머리 카렌경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전에 검술대회에서 봤던 것 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때는 갑옷을 입고 하나도 꾸미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연회 드레스 차림에 기사인 까닭에 그리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런데로 꾸몄으니까.
"미카양 맞으시죠?"
잠깐, 분명히 카렌, 이 여기사의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네....누구시죠?"
난 괜히 누군지 모르는 척 당황한 얼굴로, 뭐 솔직히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을 했다.
"전 카렌 비아니스라고 해요."
편하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딱딱한 기사의 말투를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 수록 분명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남자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여기사를 가까이에서 자셓 쳐다보았다. 이 모습을 클라리가 봤으면 또 뭐라 했을 것 같긴 하지만, 뭐 카렌 이란 저 여기사는 분명히 날 여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 상관없겠지.
"아! 그 유명한 여기사 카렌 경이세요?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전 미카 크리센,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의 동생이에요."
실제로 반가운 것도 있고, 하지만 클라리에게 배운데로 연기를 확실하게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붕붕 뜬 말투, 휴.
"저도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미카양. 앉아도 되죠?"
"네,"
내 대답을 들은 카렌은 조심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밤이라 분수대가 차가울 텐데, 난 황태자 녀석이 할 짓도 없이 망토를 깔아줘서 괜찮지만.
확실히, 왜 그렇게 남자들의 인기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카렌을 살펴보니 여자로서 갖춰야 할건 다 갖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기품과 여성미가 모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카양께서 밑에 깔고 계신 것이 황태자님의 망토지요?"
갑자기 그건 왜 묻는거지? 뭐, 검술대회에서 황태자에게 져서 앙심을 품어서 그런 것 같은 눈치는 아닌데..
"네?...네."
카렌은 조용히 무엇을 생각하는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갑자기 나타나서는 황태자의 망토가 어쩌고 저쩌고는 왜 묻는 것일까?
카렌도 그 후 말을 하지 않고 한동안 주위는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 적막을 깨고 카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카양은 황태자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난 도저히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좋지.
"그냥 친한 오빠 같아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아무것도..아니에요."
카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한숨은 내 전용인줄 알았는데. 이 여자도 한숨을 쉴 일이 있었나? 그런데 잠시 후 연회장 쪽으로 부터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발소리는 확실히 황태자..였다. 도대체 어디 갔다가 오는건지.
"미카양,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카렌, 당신도 있었어? 다행이군. 미카양 혼자 계셔서 걱정을 했었는데 카렌 당신이 있었다니."
나한텐 높임말, 카렌한테는 약간낮춤. 뭔가 거꾸로 된것 같은데? 잠깐, 그런데 왜 황태자가 카렌한테 낮춤을 하는 것일까? 카렌이 그런 대우를 받을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기 카렌은 여자인데다 게가가 기사직 까지 맡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존중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카렌은 황태자의 말에 뭔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카양, 카렌경은 저의 수석보좌관입니다. 아마 처음 보셨죠?"
뭐? 잠깐....이 여자가 황태자의 수석 보좌관이었단 말이야? 그럼 낮에 그 안경끼고 인상을 푹쓴 딱딱한 여자가 카렌경? 으, 정말. 이렇게 달라질 수가? 난 놀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런데 카렌경 아버지, 메넬리오 수비대장은 비 황태자파가 아니었었나? 이 집안도 클라우하고 티베리우스 부자처럼 이해를 못할 것 같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아저씨..아니 황태자 전하. 카렌경은 오늘 처음 뵜어요."
난 더듬 거리며 간신히 황태자의 말에 답을 했다. 요즘엔 거짓말도 많이하고, 타락을 해도 정말 너무 타락을 해버린 것 같다. 난 머리속에는 계속 낮의 그 여자와 지금 본 이 모습을 매치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 했더니.
"카렌 아무튼 고맙네. 이제 가도 괜찮아."
"네, 전하."
황태자는 나와는 달리 카렌에게는 상당히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했다. 카렌은 힘없이 일어서더니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연회장쪽이 아닌 그냥 황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황태자 녀석 저런 여자를 곁에 곁에 두고 왜 딴데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이제 저도 그냥 올라가서 쉬면 안되요? 피곤해서.."
난 되도록이면 힘없이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며 말을 했다. 이제 적당히 놀아줬으니, 제발 봐줘. 황태자.
"미카양,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데 황태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큰 소리가 하며 황궁의 옥상에서 밤하늘을 향해 불꽃이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진짜 화약이라는 것으로 만든 불꽃놀이였다. 마법으로 할 때와는 다르게 '쓍'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색색깔의 불꽃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미카양, 마음에 드십니까.?"
"네...."
난...솔직히 새로운 광경에...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며 불꽃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약으로 만든 불꽃놀이는 마법으로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어떤 느낌이 있었다. 저 화약이란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코리안트 왕국의 함대는 수룡도 상대를 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불꽃들은 그런 힘보다는 그냥 아름다울 뿐이었다.
황태자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서 하늘의 불꽃들을 구경했다. 황태자, 생각외로 신경을 많이쓰는 것을 보니 조금 그에게 미안해졌다.
휴, 아무래도 황태자와 미카와의 인연역시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써는 절망적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천년간 내려오면서 퍼졌던 그 수많은 아틸란티스 제국의 황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리투안제국의 건립된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일부는 북쪽 산맥을 넘어 파나단 땅에서 정체를 감추고 피투안 왕실의 통치하에 살고 있다는 설도 있고 또 일설은 슐레인 사막을 너머 동방의 땅 끝으로가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웠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수의 사라진 제국의 황족들이 리투안 제국 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혼란기가 도래한다면, 또 그들이 어떠한 위험을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국 건립 30년 후에 벌어졌던 초대황제 세레니안느 1세 암살 미수 사건에서 시작된 그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란과 같은....- 제국일보 294년 6월 22일자 사설-
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체 침대위에서 죽은듯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 동안 떨어진 체력을 만회하기 위한이란 핑계아래. 아, 그런데 저녁 무렵에 검술대회 결승 전야 파티가 있다고 했었지? 뭐, 내일이 시합이니까 난 얼굴만 내밀고 일찍 빠져나와도 이해를 해주겠지.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한데 그냥 무시해 버릴까? 아니다. 혹시 스승님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르니. 한번 나가봐야지. 난 잠결에 헝클어진 머리와 옷을 대충 정리하고 문으로 다가가 열었다.
"무슨 일이죠?"
문을 열고 보니. 앞에 서있는 사람은 그 황제의 차가운 여자 보좌관이었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쪽으로 꽉 묶은 흠, 이번이 두번째로 보는 것이다. 솔직히 황태자 그 녀석 하고 관견이 된 까닭에 반갑지가 않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다른 곳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이 여자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다.
흠, 그건 그렇고 황태자 녀석이 또 여기에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께서 이 서신을 미카 크리센 양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크리센양 계십니까?"
헛, 황태자녀석이 나한테 볼일이 없다는 것은 다행인데. 아니, 따지고 보면 나한테 볼일이 있다는 말이 잖아. 그런데 이 녀석이 왜 갑자기 무슨 서신을?
"동생은 지금 잠시 나갔습니다. 제게 주시면 전하도록 하죠."
휴. 방금 침대에서 일어나 부시시한 꼴을 황태자의 보좌관한테 보이다니. 이건 내 자존심으로써 일생일대의 타격이었다. 그냥 문두드리는 소리를 무시할걸하고 후회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황태자의 그 여자 보좌관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하며, 내게 깔끔하게 봉투에 넣어져 있는 편지를 주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곧바로 계단쪽을 향해 걸어갔다. 휴, 황태자나 저 여자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이 안간다니까. 난 황태자의 보좌관이 가자마자 급히 방문을 닫고 소파쪽으로 걸어가 앉으며 황태자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친애하는 미카양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미카양께서 이 편지를 12월 27일, 오늘 받으셨다면
저녁 때 있을 연회에 꼭 참석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혼자 오시기 난처하다거나 하시면 저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럼 저녁때 뵐 수 있기를.
으, 이녀석 연애편지까지 이렇게 딱딱하게 쓰냐? 하긴 나도 편지를 써본적은 한번도 없으니. 내가 뭐라고 할건 아니지만. 뭐, 황태자 녀석 백날 기다려보라지. 미카는 안 갈껀데. 꼭 다른사람 말하는 것 처럼 하니까, 이상하지만 말이다. 잠깐! 그런데 방금 보좌관이 미카가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답한 것 같은데? 그럼 결국 오늘 황궁에 있는건 확실하다는 이야기고, 직접 모시러 가겠다는 말은 오지 않으면 방으로 찾아오겠다는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가는 눈치를 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일단 의심을 하면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 시작할 테고, 내가 동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테니까. 으, 어떻게 한다? 혼란스러운 머리로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방문이 열리고 클라리 일당, 클라리, 신디, 소피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아~! 침대에서 일어났네?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앉아있어. 뭐 안좋은일 있어?"
난 말없이 들고 있던 편지를 클라리에게 넘겼다. 편지를 받은 뒤 잠시 후, 폭소를 터트리는 클라리.
"푸하하! 주인님아 이거 주인님이 처음으로 받은 연애편지지? 그런데 남자한테 받아서 어떻게 해. 푸하하!"
지금 웃게 생겼냐? 누군 미치겠는데. 으, 클라리에 의해 강제로 여장을 당한지 이틀도 안 지난 이 상황에서 또 여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클라리. 웃지만 말고 대책을 세워봐. 대책을!"
"주인님이 여장을 하고 참석을 하면 간단하지."
클라리는 여전히 배를 잡고 웃으며 말을 했다. 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간신히 억제하고 입을 열었다. 신디와 소피는 클라리가 갑자기 왜 웃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란 말이야. 검술대회 결승 진출자가 검술대회 결승 기념 파티에 참석을 안할 수는 없잖아 일단 얼굴이라도 내밀어야 하는데. 그러면 여장이고 뭐고 할 기회도 없다구."
한참을 웃던 클라리는 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계속 웃은 뒤에야 간신히 웃음을 멈추었다.
"어제 미카는 수도에 없다고, 황태자한테 말했었잖아. 그럼 오늘 파티도 참석할 수 없는 거고 간단하잖아."
클라리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을했다.
"그게 미카가 잠시 볼일을 보러나갔다고 말을 했단 말이야. 황태자의 보좌관한테."
"뭐?"
클라리는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 누가 알고 그랬나? 이런 내용의 편지 일줄 알았으면 그런 소리를 안했지.
"그래, 이제 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지? 제발 대책 좀 생각해 봐. 자치령주 보좌관 나으리께서 이런 것 정도 해결을 못해주시지는 않겠지?"
난 클라리를 보며 부탁 반 빈정거림 반을 섞인 말투로 말을 했다. 으. 정말 수도에 오는게 아니었는데. 수도에 온 뒤부터는 정말 계속 이상한 일만 생기고 있었다.
클라리는 작전을 다시 한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알겠지? 주인님아 되도록이면 신속 정확!"
난 당부하듯 말하는 클라리의 말을 뒤로 한체 며칠 전에 입었던 연회복 차림으로 급하게 연회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연회는 막 시작된 것 같았고 황태자 역시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 갑자기 왜 여자들이 모여드는거야? 어린애 한테 무슨 관심이, 설마 검술대회 때문에 그런건 아니겠지? 이런건 아무래도 불길한데, 확실히 이번 연회는 되도록이면 빨리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부러 황태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를 졸졸 따라 오는 여자들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런 곳에 스트레스를 받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황태자는 날 발견했는지 내 쪽으로 걸어왔다.
"크리센공, 인기가 상당히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생분은 연회에 오신다는 이야기가 없으셨습니까?"
앞에 말이 상당히 걸리적 거렸지만, 작전은 작전인지라. 생각했던데로 질문을 던져오는 황태자에게 작전 그래로 말을했다.
"이런 곳에는 부끄러워서 못 오겠다더군요. 전하. 미카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무리 미천한 저일지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난 일부러 살기를 잔뜩 담아 말을 했다. 뭐, 그런데 특별히 꿈쩍할 황태자도 아니었지만,
나와 황태자 주위에 모여 있던 여자들은 순간적인 살기에 놀랐는지. 모두들 놀란표정으로 뒤쪽으로 물러섰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귀찮을 때는 가끔씩 써야겠다. 여자들은 역시 피곤해.
난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사람들 눈에 많이 뛰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 말을 들은 황태자는 정확히 예상대로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황태자가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난 리아인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리아인은 내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리아인, 나 내일 시합때문에 연습하러가니까 누가 나 찾으면 그렇게 말해줘요."
리아인은 갑자기 다짜고짜 말을하는 날 잠깐 놀란듯 쳐다보았다. 뭐, 그 정도에 신경쓸 리아인은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니 아렐리아는 어디갔는지 리아인 옆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리아인은 여전히 어리둘절한 표정으로 답을했다. 난 리아인의 답을 듣자 마자 난 사람들의 시선에 안뛰는 곳으로 급하게 걸어가서
"헤이스트!"
급히 다른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연회장 베란다 쪽으로 움직였다.
"플라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방 창문이 있는 곳으로 조금 피곤해 지겠지만 그래도 플라이 마법을 써서 날아갔다. 완벽한 작전! 같은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없으니까 나와 미카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황태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이었다. 난 플라이 마법 때문에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쓰러지듯 우리방 창문쪽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아 빨리 어서!"
방에는 이미 클라리와 소피, 신디가 내가 입을 여자 옷을 들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으, 정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목에 칼을 드리대도 맨정신으로 여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건데, 난 급히 연회복을 벗어서 침대 밑에 숨기고는 연녹빛 파스텔 톤의 여자 드레스를 클라리 일당의 도움을 받아 입기 시작했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예상했던 것처럼 황태자는 내가 옷을 갈아 입는 것보다 한발 늦게 올라왔다.
"보이스 체인지"
뭐, 술 마신 후의 목소리로 내 목소리를 바꾸는 마법 정도야, 원래 내 목소리를 조금 변형만 하면 되니까 식은 죽 먹기였다.
"누구세요?"
으, 듣기싫은 내 변한 목소리.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런 나를 보며 클라리가 웃고 있는 것이 더 참기가 힘들었다.
"미카양, 세인트 입니다. 연회에 모시려 가려고 왔습니다만."
역시 황태자 정말 사랑에 빠지면 체면이고 뭐고 없는 걸까? 고작 여자하나 때문에 저 차가운 황태자가 이렇게 직접 모시러까지 오다니 설마설마 했었지만 정말 의외였다.
"옷갈아입는 중이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흐, 정말, 먹고 살라고, 아니 그건 아니구나, 아무튼 살다보니 별짓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는 대충 다 입었고, 클라리가 마무리로 머릿 손질을 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해서 마법의 지팡이 까지 다시 본래 크기로 만들어서 한손에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남자용 마법의 지팡이는 악세사리 적인 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지팡이는 여자가 쓰던 지팡이가 되다보니 뭐 디자인 적인 면에서 깔끔하고 괜찮았다. 들고 다녀도 촌스럽다거나 그런 것과는 멀었으니까.
"자. 끝!"
클라리는 밖에는 들리지 않게 작게 뭐가 기쁜 지는 몰라도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말을했다. 난 한숨을 내쉬고는 문쪽으로 문을 열었다. 예상 했던 대로 문을 여니 황태자가 서있었다. 그런데 황태자 왜 불길하게 얼이빠진 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거야?
"펴...편지는 보셨습니까? 미카양."
황태자는 안어울리게 얼굴이 빨갛게 되서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세상에,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지을줄이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이.
"네. 아저씨. 아니, 황태자 전하라고 해야하나요? 그런데 저 그런 곳에 가는건 처음이라."
으, 난 되도록이면 부끄러운척을 하며 목소리를 작게 낮춰서 황태자 녀석을 향해 말을 했다. 으, 정말 마음에 안들어 정말 성질대로라면 황태자를 흠씬 두들겨 패준 다음에 제국을 떠나는 건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십시오. 미카양께서 편하시다면."
황태자는 무릎을 꿇으며, 꼭 기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아가씨들에게 하는 것 처럼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내 왼손을 잡았다. 정말 다행인건 장갑을 끼고 있는 덕택에 직접적인 손의 접촉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으, 정말 속에서 뭐가 올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자 그럼 가실까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손을 잡은체로 연회장쪽으로 내려갔다. 플라이 마법을 써서 그런지 걸음을 옮기는데, 연기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힘없이 걸어가졌다. 평소의 내 발걸음과는 다르게. 그런데 이러다가 황태자가 청혼이라도 하면 정말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스승님만 깨어나면 난 수도를 떠날테니까 상관이 없겠지만, 제발 스승님 빨리좀 깨어나세요! 제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연회장에 도착을 했다. 잠깐,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란트라는 것을 눈치를 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난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않기를 빌며 약간 고개를 숙인체 황태자의 손에 끌려 연회장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와 황태자가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클라리와 내가 들어갔을때 처럼 일순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으,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해. 특히, 황태자를 쫓아다니던 여자들의 시선은 괭장했다. 이런걸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질투라고 했었던가? 흠, 그러고 보니 클라리의 행동 중에도 이런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클라리가 질투를?
그리고 약간의 살기어린 여자들의 시선이야 무시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차림을 때 항상 기분이 나쁜건 남자들의 시선이다. 멀대같이 말라서 여성적인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여장 남자한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놈들이 많은지.
점점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있는 것이, 탑에서 뛰어내린 아리 공주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조금 연회장 안쪽으로 걸어가니 리아인과 아렐리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에는 아렐리아가 없더니 아무래도 조금 늦게 연회장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아인은 날 보더니 상당히 놀란 눈빛을 했다. 다행히 "크리센공!"하고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아렐리아인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점이, 눈치를 채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리아인, 크리센 공의 동생이신 미카 크리센양 이시네. 미카양, 저의 동생인 리아인, 그리고 이분은 동생의 약혼자인 아렐리아양 입니다."
황태자는 일일이 친절하게 소개를 다 해주고 있었다. 날 쳐다보던 리아인은 그제서야 상황을 알겠는지. 그 주특기인 의미모를 웃음을 지은체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두사람쪽을 향해, 클라리에게 배운 여자 드레스를 입었을 때의 인사법으로 치마를 살짝 들고 인사를 했다. 휴, 이제 한 숨밖에 더이상 안 나왔다.
"세인트 오빠, 아니 황태자 전하. 언제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애인을 구하셨어요?"
아렐리아는 그 특유의 클라리와 비슷한 말투로 황태자에게 말을 했다. 예쁘고 귀여운. 정말 비극이다. 요즘엔 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황태자를 쳐다보니, 전 연회에서는 차가운 냉소만 짓고 있었던 황태자가 이번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밝게 웃고 있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있으면 다른사람들한테도 인기가 그렇게 없게 되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리고 진짜 날 대할 때도 저렇게 딴 감정없이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면 이미지도 괜찮았을 테고. 쩝.
그런데 옆에서 자세히 황태자 녀석을 살펴보니, 황태자가 클라우 그 녀석이 착용하고 있었던 검은빛 갑옷에 검은 빛 망토를 두른체, 평소의 그 표정으로 있다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흑태자의 모습이 떠 오를 것 같다. 예전에 아틸란티스 제국의 황태자였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끝없이 몰려오는 수십만 북방의 이민족들을 자신이 이끄는 단 삼천의 친위 기사단만으로 막아내었던 그 역시 이 잘난 황태자 처럼 검은빛 머리에 검은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그렇게 보니 내가 책에서 읽을 때 느꼈던 이미지와 확실히 비슷했다. 보통때 삐딱하게만 봤을때는 않좋은 면만 보이더니.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이 녀석이 현재로서는 내 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리고 리아인하고 사이 역시 생각했던 것 만큼 그렇게 나쁜것 같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적이지만 어찌됬건 형제는 형제니까 그런 것일까? 혹시 괜히 나만 흥분해서 이렇게 황태자를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휴, 황태자 녀석과 리아인, 아렐리아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난 혼란스러운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며 조용히 옆에 서 있었다. 그냥 황궁 연회장에 트롤한마리 소환해서 풀어놓고 그 틈에 사라져 버릴까? 하지만, 그 전에 황실 보호 마법 장벽에 걸려서 소환이 불가 될 것 같기도 하고 30년 전의 대 전쟁때, 핀 누나가 물리쳤던 그 악마에 홀린 여자가 소환 술사 였다니까, 아마 소환 마법에 대한 방어는 완벽할 것이라고 추정을 할 때, 내 헛된 망상은 불가능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카양 그런데 혹시 손에 들고 있는 그 지팡이 마법의 지팡이 아니에요?"
난 잠시 긴장을 풀고 있다가 적응이 안되는 호칭에 한참이 지나서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아렐리아 쪽을 쳐다보니, 아렐리아의 시선이 내 손에 있는 지팡이를 향해 있었다. 그냥 호신용겸 장식용으로 들고 나온 마법사의 지팡이가 관심을 끌다니. 그러고 보니 아렐리아 역시 마법사 인 것 같았다.
"네."
난 아렐리아가 말투에서 내 정체를 눈치를 채지 않게 하기 위해 되도록 짧게 답을 했다.
"그럼 미카양도 크리센공처럼 마법사이셨어요? 저도 마법사인데, 전 5클레스 마스터 6클레스는 아직 익스퍼트 수준이에요."
6클레스 익스퍼트, 내가 마법을 처음 배울 때 그냥 페이지 구분하는 숫자인줄 알았던 그 숫자가 실제로는 마법사의 실력을 구분하는 것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마 5클레스를 완전히 마스터 하고 난 뒤였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솔직히 8클래스 마스터 라고 하면 황태자가 눈치를 채겠지? 그냥 조금 줄여서 말을 해야 되겠다.
"전 아직 5클레스 마스터 밖에 못했어요."
아렐리아는 같은 마법사를 만나게 된 기쁨인지 아니면 자기보다 조금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을 만난 기쁨인지. 내 말을 듣자 생각보다 아주 좋아했다.
"미카양 나이가 어려보이는데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벌써 5클레스 마스터라니."
정확히는 8클래스 마스터 입니다. 보여달라면 중앙대평원에 구멍 몇개 정도는 뚫어 드릴 수는 있답니다. 난 속으로 혼자 헛소리를 하며 겉으로는 클라리에게 확실하게 훈련받은 여성스러운, 정말 싫다,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렐리아는 자기 머리쪽에 손을 대더니 머릿핀 같은 것을 뽑아내었다. 갑자기 커지는 머릿핀,하지만 그것은 머릿핀이 아니라 마법의 지팡이 였다. 분홍빛 긴 막대 끝에 진 붉은 색 보석이 박혀있는 내 생각이 맞다면 화염계열일 것이다. 리아인과 황태자 두 사람은 갑자기 커진 머릿핀에 순간 놀란 눈초리로 아렐리아의 마법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화염계열이네요."
난 이번에도 내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무의식 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말하는 버릇, 가끔씩 곤란한 상황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별 문제가 없었군. 이 버릇도 빨리 고치든지 해야지.
"네 맞아요. 미카양. 화염계열, 제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지팡이에요. 미카양꺼 만큼 예쁘죠?"
아렐리아는 왠지 모를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마법지팡이를 껴않으며 내게 말을했다.
"아렐리아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마법지팡이가 훨씬 더 예쁜 것 같은데요?"
으, 살기 싫어. 정말, 이 놈의 뭐같은 자존심만 아니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진 않을 텐데, 난 일부러 님자를 붙였다. 어찌됬건 나보다 나이도 많고 뭐 그렇다고 미카가 남파나단 자치령주라는 고위직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우리 서로 지팡이를 바꿀까요?"
아렐리아의 목소리, 헛, 내가 화염계열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서 뭐하려구. 화염계열 마법을 쓸일도 없을텐데, 난 순간 황당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니에요. 미카양. 전 그냥 농담으로 한건데. 그렇게 놀란 표정을 하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흐, 이게 정말 클라리랑 똑 닮았다. 사람 놀려먹는 것 까지, 난 순간 내가 놀림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했지만, 간신히 표정은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정말 귀여워. 크리센 공도 그렇고 미카양도 그렇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꼭 마루 인형같아!"
아렐리아는짧게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로 날 보며 말을했다. 화난 것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구별을 못하냐? 그런데 마루 인형 같다라, 마루 인형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물건을 모아둔 상자안에서 인형을 보았던 것 같은데, 그 때 엄마가 그 인형들을 보고 마루 인형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가 더 있다가는 황태자님의 소중한 미카양을 울릴 것 같네요. 그럼 저흰 이만 사라질게요. 황태자 전하, 미카양. 아! 그리고 황태자 전하 아무리 사랑에는 나이차가 없다고 해도 열살 정도면 이미 범죄랍니다."
범죄, 뭘 알긴 아는군. 확실히 제국에도 미성년자 보호법을 제정하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제국 회의가 다시 열릴 때 한번 의견을 내봐야겠다. 아렐리아는 그말을 마친후 리아인을 끌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무대 쪽으로 사라졌다.
난 아무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쉰 후, 황태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으, 되도록이면 빨리 그냥 피곤하다 말을하고 황태자로부터 빠져나와야지.
전에는 처음이라 잘 몰랐었는데, 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드레스들은 괜찮은 색상에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들어졌었지만 생각 외로 보석이나 귀금속으로 몸전체를 덮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장식 몇개나 목걸이, 반지하나 그 정도 뿐이었지,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 같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석으로 도배를 하거나 하는 연회는 결코 아니었다.
"미카양, 춤을 추실 줄은 아시죠?"
모를리가 있나? 클라리한테 확실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남자가 추는 방법에서 조금 변형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외로 쉬웠었다. 정말 들키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한다니까?
"네. 조금요."
내 대답이 끝나자 마자 난 황태자 녀석에게 끌려서,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생전 여자와 춤을 추는 일이 없던, 황태자가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니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상황이 심각했다. 난 황태자의 손을 잡고 아직 조금 어설프나마, 곡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제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춤을 추다가 연회장 가운데에 있는 연단의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는 날 보며 그냥 싱긋 웃을 뿐이었다.
"미카양, 얼마 후에 있을 제국 마법 대회에는 참가하실 겁니까?"
황태자는 춤을 추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마법 대회, 검술 대회 결승에도 진출을 했으니. 별로 출전을 해야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그리고 미카로 참가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요. 아직 실력도 모자라고 그런 자리는 왠지 부끄러워서."
제국 마법 대회,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르므로 귀찮은 일에 휩싸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황태자는 내 말을 들은 뒤 잠시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참가해보십시오. 미카양, 이번 마법 대회 우승자에게는 특별히 무슨 귀한 마법기구를 준다고 저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 옆에 춤을 추는 사람과 부딪히려는 것을 황태자가 잡아 주었다. 마법 기구..아마 마법대회라면 핀 누나가 주관을 할텐데, 어떤 마법 기구일까? 예전에는 무기는 클라리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마법의 지팡이를 얻은 이 후로는 왠지 마법의 기구라는 것에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마법의 지팡이로 마법을 쓰면 그만큼 마법을 사용하기가 편했으니까.
"저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몰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지만 미카양의 오라버님이신 크리센공 께서는 뛰어난 마법사이시니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을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승도 하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아렐리아 시장이 최근 대회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받고 있으니까. 미카양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황태자는 숨이 차지도 않는지 춤을 추면서도 말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난 황태자의 말에 아무 대답없이 그냥 있었다. 마법대회에 참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 가를 놓고 마음 속으로 엄청난 갈등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6클레스 익스퍼트가 최고성적이라. 아무리 마법길드가 봉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마법사들의 실력이 너무 떨어진건 아닐까? 하긴 아렐리아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발전할 가능성이 무한히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설마 마법대회도 검술대회 처럼 사람들끼리 대결을 해서 우승자를 정하는 것은 아니겠지.
휴, 불편한 다른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원해서 추는 춤이 아니다보니.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거의 절반은 고의로 춤을 추다가 황태자 녀석의 발을 밟아 버리며 스트레스를 조금 해소한 뒤, 난 주저앉아 버렸다.
"미카양, 괜찮으십니까?"
황태자 녀석은 상당히 아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아픈 표정 없이 오히려 주저 앉아버린 날 걱정하는 것이었다. 저녀석, 정말 빠져도 단단히 빠졌군. 심각해, 이 녀석 내가 란트 크리센 이라는 걸 알면 아마 평생동안 쫓아다니며 괴롭힐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왠지 불안했다.
"좀. 피곤해서요."
난 황태자가 잡아주는 손에 힘없는 척, 그리고 솔직히 힘이 별로 없었다. 일어서서 조금 비틀 거리며 황태자에게 내 몸의 중량을 잔뜩실어 무대 밖으로 걸어나왔다. 으, 이 정도 보복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아무튼 오늘 있었떤 이 이야기는 무덤까지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밖으로 나온 황태자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가이우스 폰 힐튼."
황태자는 작게 신음하듯, 가이우스의 이름을 말했다. 황태자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가이우스가 왠 여자하고 같이 오는 것이었다. 흠, 가이우스 한테도 애인이 있었나? 이건 정말 금시 초문인데, 깔끔한 파란색 계통의 연회복을 입은 가이우스 옆에 붉은 색머리. 어떻게 보면 스승님과 리아인과 비슷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키가 큰 여자가 역시 파란색 계통의 드레스를 입고 서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이우스를 연회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가이우스 정도라면 눈치를 채지 않을까? 가이우스는 우리를 보더니, 황태자가 싫어하든 말든 다가왔다. 옆에 있던 그 키가 큰 여자와 함께.
"황태자 전하, 드디어 차기 황태자비가 되실 분을 결정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이제 제국의 앞날에도 서광이 비칠듯하군요."
가이우스는 웃으며 말을 했지만 내가 들어도 황태자에게 좋은의도로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뭐 황태자비? 정말 저주를 내려라 저주를.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런데 이중인격을 극복한 가이우스, 생각보다 꽤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차가운 얼굴로 저 이야기를 했을 텐데, 웃는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다니.
"고맙소, 가이우스 폰 힐튼 경, 경도 그 뛰어난 외모로 많은 레이디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시더니, 결국 마음을 정한 거요?"
오, 황태자의 매서운 일격. 잠깐, 그런데 내가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거야?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적인 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무튼 그 대화가 잠시 끝난 후 두 사람은 마음에도 없이 웃는 척을 하였다. 어휴, 라이벌이라는게 뭔지.
"가이우스 경, 이 레이디께서는 크리센 공의 동생분이신 미카 크리센 이시네. 제국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며 또, 크리센 공과 각별한 사이인 자네가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가이우스는 내 쪽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가이우스가 눈치를 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쩝, 가이우스는 그 직 후 황태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전하 제가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차기 황태자 비가 되실 분이 크리센 가문에서 나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었는데 정말 의외입니다."
가이우스는 여전히 그 말투를 유지한체 말을 이었다. 휴, 아마 나와 황태자가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을 가지고 황태자를 비꼬는 것 같은데.
"다 그게 자네 덕분이 아니겠는가. 가이우스경, 그런데 옆에 계시는 레이디는 누구신지 소개를 해주지 않겠나?"
황태자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 가이우스 옆에 서있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했다. 황태자의 말을 들은 그 여자는 가이우스 대신 황태자를 향해 인사를 한 후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저 여자의 정체가 궁금한건 사실이었으니까. 나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이우스가 여자와 같이 다니는 것을 본적이 없다.
"만나게 되서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전 가이우스 님의 수석 보좌관 안드리아 피넬 입니다."
수석 보좌관, 역시 그랬군. 내 예상으로는 아마 따라 다니는 여자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보좌관을 데리고 연회에 온 것 같았다. 솔직히 나같이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에게도 그렇게 뒤를 졸졸 따라오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뭐, 가이우스 정도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될테니까.
"가이우스 경도 보좌관을 두고 있었다니. 제가 몰랐던 사실이군요. 뭐 피투안 주제 대사 일을 가이우스 경 혼자 계속 해결을 하기에는 능력적으로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겠지만."
정말 웃고 있는 얼굴로 두사람 모두 상대방이 상당히 화가 날만한 답을 하고 있었다. 하긴 웃는다는게 거의 냉소적인 웃음이였지만, 순간 두사람 모두의 모습에서 내가 싫어하는 황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으 짜증나 말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이렇게 하고 있을 것 같군.
"세인트 아저, 아니 황태자 전하, 정원 구경을 다시 해보고 싶은데, 안내해 주실 수 있으세요?"
난 황태자에게 더 심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작은 스트레스를 취하기로 했다. 흠 뭔가 이상한 말이었되어버렸군.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정말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 행동을 해주었다.
"물론입니다. 미카양."
황태자는 언제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었냐는 듯 나를 쳐다보며 다시 그 안어울리는 따뜻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했다. 황태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동안 가이우스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 확실히 눈치를.
"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폐하."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가이우스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는 옆에 서있던 안드리아라는 여자와 함께 연회장의 한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가이우스가 가고나자 황태자는 나를 데리고 내가 얼마전에 이 사기극을 위해 연회장을 탈출했던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빛나는 정원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빛나는 정원이라,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요"
황태자의 목소리에 조금 움찔하며 난 답을 했다. 황태자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황궁에 바로 이 연회장 뒷편에 있는 정원을 빛나는 정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회가 있는 날이면 정원 풀 사이로 작은 불빛들이 생기며 정원전체가 빛나게 되죠. 하지만 생각 외로 그 정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모두들 연회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작은 아름다움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것이랍니다. 하긴, 어떻게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며 황태자는 시크럽고 밝은 연회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은 외롭고 슬픈 목소리로 말을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라, 으, 왠지 동정심이 가는게.그런데 내가 이 녀석을 동정하고 말고 할게 어딨을까? 하지만 솔직히 비슷한 입장이기에 같은 연민의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말 적이 아니었다면, 아니 되기 전에 이런 모습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클라리를 노리지 않았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베란다로 걸어나가니, 아까는 급해서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정원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런데 밝은 연회장에 적응이 되 있어서 그런지 정원에서 난다는 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황태자가 앞장을 서고 난 그 뒤를 따라 치마를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몇 번 입어봐서, 이말을 하니 다시 비참해 지는군, 아무튼 적응이 된 까닭에 처음처럼 그렇게 넘어질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뭐 여전히 어색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정원 가까이 내려와서 살펴보니, 정말 풀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클라리도 보여주면 좋아할텐데, 읏 내가 왜 그 망할 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인데.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고, 확실히 마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빛이나지?
난 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묶어 올렸던 머리카락이 조금 풀렸는지 몸을 숙인 내 얼굴 근처로 내려와 바람에 조금씩 날라며 간지럽혔다. 그리고 바람에 조금씩 움직이는 빛을 내는 풀들.
"정령들입니다."
녀석 내가 궁금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황태자 녀석은 정확히 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전에 황제하고 있었을 때는 정령들의 모습이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하위급 요정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 황태자 저 녀석은 어떻게 정령들인지 알았지?
"정령들?"
순간 긴장한..무의식적으로 원래의 말투가 입으로 나갔다. 그런데 목소리 때문인지 다행히 황태자는 눈치를 채지 않은 것 같다. 조심 해야지, 잘못하다가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황제 폐하나 방금전에 본 저의 동생 리아인처럼 정령을 소환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은 저도 정령술 능력이 미약하게나마 있어서 그런지 정령들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마음이 맑지 못해서 정령들이 제 소환을 응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태자는 짧게 탄식하듯 말을했다. 잠깐, 방금 황제하고 리아인이라고 말을 했는데, 뭐? 리아인이 정령술을? 세상에! 리아인과 정령술이라. 지금까지 내 앞에서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데, 하긴 쓸일도 없었고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그 덩치 큰 리아인이 정령술을 쓴다라? 난 순간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풋..."
그러고 보니 얼마만에 웃어보는 걸까? 스승님과 지낼 때는 가끔씩 웃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웃은 기억이 없었다. 역시, 내 감정이 되돌아 오는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오랫만에 웃는 웃음이 황태자 이 녀석 앞이라니. 황태자는 내 웃음소리에 의문이 잔뜩 담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저씨, 심각한 상황에 웃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그 덩치 큰 어저씨가 정령술을 쓴다고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고정관념일까? 정령술은 소녀들이나, 엘프를 닮은 아주 연약해 보이는 남자들만 쓴다고 생각 하는 것은 황태자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 역시 즐겁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전 어릴 때 부터 항상 그렇다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정령술을 쓰는 리아인이라, 생각을 해보니 미카양의 말처럼 역시 안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진실 어린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인기가 있을텐데. 휴.
황태자는 그렇게 한참동안 웃은 뒤, 조용히 빛나는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대 쪽으로 나를 대리고 걸어갔다. 달빛과 빛나는 정원에서 나오는 빛이 어울려 분수대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황태자는 내가 분수대 가에 앉기 전에 잽싸게 자신의 망토를 벗어 밑에 받쳐주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두려워진다. 황태자가 내가 란트 크리센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봐.
"아! 미카양 이 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또 전처럼 사라지시면 꼭 찾으러 갈겁니다."
"....."
정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일을 말하는 군. 으, 황태자 저 녀석 내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따. 저 녀석도 클라리처럼 내 마음을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느끼고 있었다. 휴,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하긴 이 상황에서는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황태자는 그..협박성 발언을 마친 후 연회장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무슨 일이지? 아무튼 조금이나마 스트레스에 가득차인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난 조금씩 부는 바람에 약간 씩 물결이 생기는 분수대의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을 내려 다 보았다. 밝은 달빛 때문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올려진 머리, 달빛에 비쳐서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근육이라고는 볼 수도 없는 팔과 다리, 깔끔한 디자인의 드레스 내가 봐도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짧게 나오는 한숨, 요즘에는 정말 한숨을 쉬는 일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어떤 전설에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뛰어 들어 죽은 미소년이 있었다던데, 자기 얼굴에 반해서가 아니라 남자같이 생기지 않은 자기 얼굴에 한탄을 해서 호수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난 순간 들리는 인기척에 분수대 수면에서 눈을 때고 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황태자 발걸음 소리는 아닌데 만약을 대비해서 난 내가 들고 있던 마법의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마나가 들어감에 따라 마법의 지팡이에서 조금식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나는 마법의 지팡이에 의지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사람은 주황빛 머리 카렌경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전에 검술대회에서 봤던 것 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때는 갑옷을 입고 하나도 꾸미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연회 드레스 차림에 기사인 까닭에 그리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런데로 꾸몄으니까.
"미카양 맞으시죠?"
잠깐, 분명히 카렌, 이 여기사의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네....누구시죠?"
난 괜히 누군지 모르는 척 당황한 얼굴로, 뭐 솔직히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을 했다.
"전 카렌 비아니스라고 해요."
편하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딱딱한 기사의 말투를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 수록 분명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남자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여기사를 가까이에서 자셓 쳐다보았다. 이 모습을 클라리가 봤으면 또 뭐라 했을 것 같긴 하지만, 뭐 카렌 이란 저 여기사는 분명히 날 여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 상관없겠지.
"아! 그 유명한 여기사 카렌 경이세요?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전 미카 크리센,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의 동생이에요."
실제로 반가운 것도 있고, 하지만 클라리에게 배운데로 연기를 확실하게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붕붕 뜬 말투, 휴.
"저도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미카양. 앉아도 되죠?"
"네,"
내 대답을 들은 카렌은 조심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밤이라 분수대가 차가울 텐데, 난 황태자 녀석이 할 짓도 없이 망토를 깔아줘서 괜찮지만.
확실히, 왜 그렇게 남자들의 인기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카렌을 살펴보니 여자로서 갖춰야 할건 다 갖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기품과 여성미가 모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카양께서 밑에 깔고 계신 것이 황태자님의 망토지요?"
갑자기 그건 왜 묻는거지? 뭐, 검술대회에서 황태자에게 져서 앙심을 품어서 그런 것 같은 눈치는 아닌데..
"네?...네."
카렌은 조용히 무엇을 생각하는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갑자기 나타나서는 황태자의 망토가 어쩌고 저쩌고는 왜 묻는 것일까?
카렌도 그 후 말을 하지 않고 한동안 주위는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 적막을 깨고 카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카양은 황태자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난 도저히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좋지.
"그냥 친한 오빠 같아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아무것도..아니에요."
카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한숨은 내 전용인줄 알았는데. 이 여자도 한숨을 쉴 일이 있었나? 그런데 잠시 후 연회장 쪽으로 부터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발소리는 확실히 황태자..였다. 도대체 어디 갔다가 오는건지.
"미카양,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카렌, 당신도 있었어? 다행이군. 미카양 혼자 계셔서 걱정을 했었는데 카렌 당신이 있었다니."
나한텐 높임말, 카렌한테는 약간낮춤. 뭔가 거꾸로 된것 같은데? 잠깐, 그런데 왜 황태자가 카렌한테 낮춤을 하는 것일까? 카렌이 그런 대우를 받을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기 카렌은 여자인데다 게가가 기사직 까지 맡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존중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카렌은 황태자의 말에 뭔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카양, 카렌경은 저의 수석보좌관입니다. 아마 처음 보셨죠?"
뭐? 잠깐....이 여자가 황태자의 수석 보좌관이었단 말이야? 그럼 낮에 그 안경끼고 인상을 푹쓴 딱딱한 여자가 카렌경? 으, 정말. 이렇게 달라질 수가? 난 놀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런데 카렌경 아버지, 메넬리오 수비대장은 비 황태자파가 아니었었나? 이 집안도 클라우하고 티베리우스 부자처럼 이해를 못할 것 같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아저씨..아니 황태자 전하. 카렌경은 오늘 처음 뵜어요."
난 더듬 거리며 간신히 황태자의 말에 답을 했다. 요즘엔 거짓말도 많이하고, 타락을 해도 정말 너무 타락을 해버린 것 같다. 난 머리속에는 계속 낮의 그 여자와 지금 본 이 모습을 매치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 했더니.
"카렌 아무튼 고맙네. 이제 가도 괜찮아."
"네, 전하."
황태자는 나와는 달리 카렌에게는 상당히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했다. 카렌은 힘없이 일어서더니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연회장쪽이 아닌 그냥 황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황태자 녀석 저런 여자를 곁에 곁에 두고 왜 딴데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이제 저도 그냥 올라가서 쉬면 안되요? 피곤해서.."
난 되도록이면 힘없이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며 말을 했다. 이제 적당히 놀아줬으니, 제발 봐줘. 황태자.
"미카양,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데 황태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큰 소리가 하며 황궁의 옥상에서 밤하늘을 향해 불꽃이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진짜 화약이라는 것으로 만든 불꽃놀이였다. 마법으로 할 때와는 다르게 '쓍'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색색깔의 불꽃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미카양, 마음에 드십니까.?"
"네...."
난...솔직히 새로운 광경에...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며 불꽃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약으로 만든 불꽃놀이는 마법으로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어떤 느낌이 있었다. 저 화약이란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코리안트 왕국의 함대는 수룡도 상대를 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불꽃들은 그런 힘보다는 그냥 아름다울 뿐이었다.
황태자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서 하늘의 불꽃들을 구경했다. 황태자, 생각외로 신경을 많이쓰는 것을 보니 조금 그에게 미안해졌다.
휴, 아무래도 황태자와 미카와의 인연역시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써는 절망적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