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5장 운명의 수레바퀴(7) 구르기 시작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3. 23. PM 6:47:01·조회 2544·추천 65
"주인님아, 괜찮아?"
난 머리를 바늘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늘어져 있는 백금발 클라리가 내 머리위에 물수건을 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주위에 있는 익숙한 얼굴들의 걱정스러운 눈빛, 입을 열려고 해도 열 힘이 없어서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휴, 리아인과 아렐리아가 있는 것을 보고, 황궁으로 들어오는 도중에 그리고 기억이 없었다. 또 쓰러진걸까? 지금 이 몸상태로는 회복 마법도 사용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주인, 아직 성장기에 마법을 그렇게 함부로 난사하면 아무리 튼튼한 몸이라도 버티지 못한다."
훗, 아미의 목소리,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처음엔 죽이려고까지 했으면서 걱정까지 하다니. 아픈 와중에도 드래곤이 조금 걱정이 담긴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런 드래곤 옆에서 말이 없이 지켜보기만 하고 있는 두 엘프.
마을에서 가끔씩 이렇게 쓰러졌을 때는 깨어났을 때 항상 혼자였었는데,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어제 너무 폼을 잡았던 걸까? 마나도 그리 충분하게 남아있지도 않으면서 날씨를 건드리다니, 하지만 리아인과 아렐리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왠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머리의 통증이 조금 사그라 들자. 온몸이 화끈 거리며 곳곳이 쑤셔오는 것 같았다. 이런, 얼마만에 이렇게 아파보는 것일까? 피곤해서 녹초가 된 적은 종종 있었어도 이렇게 아픈적은 별로 없었는데.
"클라리.....그런데 누가 날 이 방에..."
분명히 복도에서 쓰러져 있었는데, 아렐리아하고 리아인이 들어오면서 발견을 한걸까? 아니면 클라리가 데려왔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세인트 황태자가 업고 왔어. 주인님을. "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설마, 그 녀석이 아니겠지. 미카면 몰라도 그 녀석은 날 엄청 싫어 한단 말이지. 게다가 내가 얼마나 그 녀석이 화날만한 행동만 했었는데, 미카한테 잘보이려고 그럴 수도 있긴하겠지만 내가 죽어버리면 미카하고 지내기도 더 편할 테니 아픈 날 대려올리가 없었다. 물론, 나와 미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황태자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 날 방까지?
"주인님아~! 너무해. 이렇게 아프고 말이야.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아까 전부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울듯말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클라리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난 힘이 없었지만 간신히 손을 들어 클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왠지 어색하다. 이렇게 많은 존재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니, 아니, 아주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작은 기억들이 머리에 스쳤다. 그때도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었고, 날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두사람, 엄마와 아빠, 희미하게 생각이 날듯 말듯 하는 것이 내 마음을 더욱더 안타깝게 했다. 어쨌든 이제는 혼자가 아닌건가?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듯 했다. 누워있는 내 쪽을 향해 오는 발자국 소리, 두사람 이상인 것 같은데, 마법을 쓸 수만 있으면 마법으로 치료를 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마법을 써서 치료를 하는 것은 아편을 피우는 것과 비슷하게 치료 마법에도 중독이 되어버릴 수 있다. 요즘에는 중독 증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몸스스로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니까.
"란트, 괜찮은거니?"
검은 빛 머리, 황제였다. 그 뒤를 따라 오는 리아인과 신디, 누워있는 내 눈에도 이제서야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디, 리아인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신디를 리아인과 함께 보내는 것, 어쩔 수 없다. 물론 리아인도 어떻게 보면 적국으로 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많은 정예군사들 틈에서 지내는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여행같은 경우에는 어떤 위험이 올지 모르니, 인질이 될 수도 있고 분명히 있을 황제를 노리는 암살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쩝, 아파서 누워있는 주제에 정말 별 걱정을 다하는군...
"누나, 여행은 어떻게 하죠? 저 때문에 혹시 늦어지는건 아닌지.."
난 간신히 입을 열어 황제를 보며 말을 했다. 나도 감상적이 되어버린 건지, 내가 다른 사람의 사정에 대해 걱정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다. 황제는 내 말을 들은 뒤 열이나는 것이 나 스스로도 느껴질정도로 달아오른 내 볼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표정 그대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마. 여행은. 란트, 아프면 안돼, 지금은 너 혼자가 아니잖니. 이렇게 아파서 누워 있으니 그 씩씩하던 백합의 기사님이 꼭 아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
황제한테는 내가 아기로 보이는게 오히려 당연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평상복 차림에서는 언제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로 보이던 황제에게서 왠지 엄마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긴 엄마보다 황제가 나이가 더 많지만, 지금까지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던 걱정해 주는 어른, 엄마와 비슷한 존재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다 큰 아이를 3명이나 가지고 있는 애 엄마였지. 황제도
휴, 난 여전히 익숙치 않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또다시 잠이들었다.
".... 그래서 내일부터는 리아인 오빠하고 같이 지내야 한다. 알겠지?"
또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정신이 서서히 맑아지며 클라리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귀로 흘러들어왔다. 클라리가 신디에게 말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훙, 나 오빠따라 가고 싶은데..."
신디의 목소리, 훔 신디는 리아인을 더 좋아하던게 아니었나? 난 약간의 의문을 가지며 침대에 누워있는 그대로 신디와 클라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럼 오빠가 힘들어져서 또 아플 수도 있는데, 따라갈꺼니?"
뭐, 그다지 아플 이유까지야. 솔직히 클라리 네가 스트레스를 줘도 더 많이 준단말이야. 협박성 발언까지 하다니. 아무튼 어린애는 많이 상대해본듯한 분위기가 확실히 풍긴다.
"훙....그래도..."
신디 요즘에는 말도 잘 알걸더니 그래도 헤어지기는 싫은 걸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신디하고 지낸지도 2년이 다되어 가는 것 같다. 처음 만나던 그 날, 피에 찌든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내 감정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나가 조금씩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회복마법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난 정신을 집중해서 되도록이면 마나가 작게 들도록 회복마법을 사용했다.
"릴리브 페티그레이트"
"힐"
어쨌든 조금 미약한 면이 없지 않았찌만 쓰고나니 조금 기분이 낳아지는 것 같다. 확실히 열이 가라앉고, 머리를 바늘로 쑤시는 것같은 통증도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이 좋긴 좋다니까. 마법을 쓰지 않고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주인님아, 일어났어?"
내 주문소리를 들었는지, 클라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증은 많이 가셨지만 워낙 피곤한 까닭에 그대로 누워있는 체로 클라리를 쳐다보았다.
"으...응. 그런데 다른 녀석들은 어디갔니?"
주위에는 클라리와 신디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티티나 아미 같은 경우에는 낯설은 곳일텐데, 뭐 그 녀석들 실력에 누구한테 죽거나 다치기야 하겠냐마는 걱정이 되었다. 아파서 골골거리면서 쓸데없이 딴 녀석들 걱정은 왜 하는지. 나도 요즘의 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리 언니하고 모두 저녁먹으러 갔어."
그렇구나. .훔, 그런데 드래곤의 식사량을 해결하려면 장난이 아닐텐데, 하긴 황제한테야 남아도는게 돈일테니 별 상관이 있겠냐마는. 그러고보니 그 걱정을 안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식사량을 여행중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쩝. 안되면 고기 덩어리를 확대마법을 써서 커다랗게 만들어서 먹여주면 될 것 같기도.
"클라리, 넌? 너도 저녁 먹어야지."
그래 클라리 제가 얼마나 음식을 먹는걸 좋아하는데, 요리하는 것하고 먹는 것 모두 아주 능숙했다.
"괜찮아. 주인님아. 난 음식 같은 것 안 먹어도 상관이 없는걸. 우리 아기같은 주인님이 이렇게 누워있는데 걱정이 되서 어떻게 저녁을 먹을 수 있어."
클라리는 피식 웃으며 말을 했다. 아기, 물론 나이로보면 상당한 나이 차이가 있겠지만, 아기라니. 으, 화를낼 기운도 없다. 황제한테 들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는데 왜 클라리 한테 들으면 화가나는 것일까? 흠, 하지만 고마운건 사실이다. 사람모습으로 나온 뒤 부터는 한끼도 빠지지 않고 꼭 식사를 했었는데, 나 때문에 그걸 포기를 하다니.
"우리 주인님도 밥을 먹어야지. 몸이 않좋을 때는 꼭 밥을 먹어야해요."
완전히 몸이 않좋은 어린애 한테 엄마가 말을 하는 말투. 원래 아이들 키우는건 클라리 전문이라고 했었지? 으, 정말 몸상태만 좋았어도, 하지만 간신히 앉아 있을 수준이었지. 팔을 드는 것 조차 힘들었다. 지금 이 상태로 무엇을 먹는 거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클라리는 테이블 위에 보존마법이 걸려져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그릇에 담긴 스프를 조심스럽게 들고 침대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서 왠지 불길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는 클라리.
"주인님아 '아!' 해봐."
.아무리 몸상태가 엉망이라지만, 난 팔을 들어서 클라리의 손에서 스푼을 뺐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힘이없는 느릿느릿한 내 손의 움직임으로 팔팔한 클라리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포기< 하지만 난 입을 다문체 클라리의 행동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었다. 몸상태가 상태니 만큼., 식욕도 별로 없고.
"훙, 난 주인님 걱정이 되서 저녁까지 안먹고 이렇게 스프까지 만들어 왔는데...주인님이 내 성의를 무시하다니. 너무해!"
그 말을 하며 눈 가득 눈물이 고이는 클라리. 내 정신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버티기가 힘들다. 휴, 마음이 쓰리군. 난 눈 딱 감고 입을 벌렸다. 눈을 감은 이유란, 곧바로 밝은 표정으로 기회다! 하는 클라리의 표정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 질 것 같기 때문. 입 속으로 따뜻한 스프가 흘러들어왔다. 확실히 보존마법이 걸려 있었다. 생각외로 맛있기도 하고 클라리의 요리실력이야 바느질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니까.
"주인님아. 정말 아프면 안돼. 그렇게 가끔씩 쓰러질 때마다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 정말로."
하지만 클라리는 내 예상과 다르게 여전히 슬픈 목소리 그대로 였다. 훌, 이번에는 진심이었나보다. 예전의 나였다면 방 한구석에서 시체처럼 며칠동한 혼자 누워 있다가 조금 병이 나으면 오곤 했었겠지.
신디는? 신디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침대 위에서 나와 클라리 쪽에 등을 둔체 돌아서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클라리가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 그 말 때문일까? 사회성 결핍인 나는 다른 사람들 마음, 아니 여자와 어린애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남자들이라면 대충이라도 자신이 있는데..
"알았어, 앞으로 조심할께."
난 스프를 삼키고 나서 클라리를 보며 말을 했다. 조금 더 일찍 검에서 클라리가 나와 있었으면 내가 조금 덜 외롭지 않았을까? 좀 이기적인 생각인 것 같다. 클라리는 클라리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었을 테니까. 누군가 날 지켜준다라는 것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것이지만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다.
"신디,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난 클라리가 대충 먹을 것을 다 먹여 준 후, 훔, 어감이 좀 그렇군. 어쨌든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신디를 향해 말을 했다. 하지만 신디는 내 말을 듣고도 고개를 돌리거나 하지를 않았다. 아무리 날 요즘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말까지 무시하는건 조금 너무한데, 쩝.
"신디, 오빠가 신디한테 잘못한게 있는거야?"
난 몸상태가 안좋아서 힘이 없는 목소리 그대로 신디를 보며 말을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이런 말투로 마음에 내켜서 말을 하는 대상은 신디 밖에 없다. 요즘에 와서야 감정을 많이 숨기고 예의상 정중하게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원래 내 말투는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짧은 어투 였다. 하지만 갈수록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어투로 바뀌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신디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끝까지 말을 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언제나 밝게 있는 신디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 본다. 휴...
"신디, 너도 리아인을 좋아하잖아, 오빠는 위험한 곳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신디를 대려갈 수 없어. 한동안 리아인하고 지낼 수는 없겠니?"
내말이 끝이 나자 신디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운체로 날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말을 했다. 휴, 신디가 울다니.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한번도 신디가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 치고는...마음이 강한 까닭이었을까?
"나...오빠하고.. 클라리.. 언니...하고.. 헤어지기 싫단 말이야! 리아인 아저씨도 좋지만 그래도 오빠하고 클라리 언니가 더 좋아."
신디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휴, 어떻게 해야 하지?
"신디, 오빠 여행이 끝이나면 신디를 찾으러 달려올께.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뭐, 대미궁에서 관만 다시 찾으면 되니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겠냐마는.
"엄마, 아빠도 그렇게 말을 하고는, 신디한테 오지 않았단 말이야. 신디를 혼자 버려두고. 그리고 밤에 이상한 아저씨들이 날 잡아갈 때도,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나한테 오지 않았어. 언니하고 오빠도 그럴거지?"
신디는 여전히 우는 체로 말을 했다. 그래 그랬었지. 신디의 부모도 모두 죽었었지. 그 놈의 피투안 왕족과 귀족들 세리 황제처럼 누군가 나타나서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몸상태가 편치 않았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신디가 울고 있는 침대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신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디에게 말을 했다.
"신디, 신디의 엄마하고 아빠도 신디가 싫어서 신디한테 오시지 않은 건 아닐 거야. 두분 모두 신디에게 오시고 싶어도 오실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오빠는 약속할께, 무슨 일이 있어도 신디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신디, 믿어줄 수 있지?"
난 진심을 담아 신디에게 말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신디, .휴, 마음이 아프다. 정이든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 그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슬픈 일일 테니. 헤어진다는 것, 그 것도 영원히 그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쓰러진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황궁을 떠나기 위해 달랑 배낭하나를 든체 복도를 걸어갔다. 절대로 매지 않았다. 여성용 배낭을 매고 다니고 싶진 않단말이야. 정말 이제 여장과 관련된 물품이라면 뭐든지 사양하고 싶었다.
황제가 정문에서 기다린 다고 했었는데, 최근에 몸을 너무 혹사해서 그런지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하긴 하루를 멀다하고 체력적 마나적 소비를 같이 했었으니, 몸상태가 멀쩡한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생각만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몇가지 일들을 제외하고는 재미있었던 일도 많이 있었으니까 괜찮지.
빛이나는 복도, 나중에 나도 큰 집을 만들 기회가 생기면 한 번 써볼까? 훔, 이제 돈도 많으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봉급을 무식하게 많이 받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동안 재무대신이라는 늙은이가 찾아와서 남파나단 영지에 상관을 설치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해서, 뭐 해라고 했지. 참고로 상관에서 지내려면 몬스터들하고도 별 꺼리낌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물건 사러 매일 사람들을 도시로 보내는 것도 그렇고, 제국의 상관 정도면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나 저나 신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날 그렇게 말을 하고, 내가 다시 쓰러진 뒤에는 신디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직 어린애라는 것일까? 엄마와 아빠의 존재와 이별, 모르겠다. 나도.
"언제 이 곳에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클라리의 혼잣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클라리에게는 많은 추억히 깃든 곳일테니. 클라리, 그나저나 실버캐슬, 티베리우스단장의 저택에는 들리지 않아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수도에 와서 원래 자신의 집이라 할 수 있는 그 곳에 가보지 않는다는건, 물론 시간이야 있었지만 클라리는 가보지 않았다. 아직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것,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내 뒤를 따라오는 짐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파티, 솔직히 클라리를 제외하고는 말을 거의하지 않는다는. 뭐 시끄러운 것 보다는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모두 겉모습은 여자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모두들 너무 조용하다. 하긴 다크엘프와 엘프들에게 말을 기대하는 나도 문제지만, 그리고 제일 문제는 아미, 말을 거의 하지도 않다가 약해도 드래곤인 까닭에 가끔씩 내 16년 짧은 인생에 사회성 결핍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질문을 해서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뭐, 그냥 모른다하고 넘어가도 되지만, 그래도 주인이라고 불리는데 자존심이 있지.
황제는 우리가 떠나는 틈에 쓸쩍 끼여서 몰래 떠난다고 했다. 공표는 했지만 자기가 돌아다니는 위치는 노출시키고 쉽지 않다는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자들이 언제 노릴지 모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황제의 성격상 필요할 경우에는 무섭도록 냉정하게 변하지만, 편안한 상태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공식적으로 여행을 떠나면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임이 당연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이동하는 것이 필요했다. 어디에 들를 때마다 촌장, 영주, 그리고 시장 같은 인물들과 인사를 해야 하니까.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꽤 긴 여행을 떠남에도 불구하고 핀누나가 준 이 모양새를 빼고는 거의 완벽한 것 같은 이 가방 덕택에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별다른 짐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다가 이 가방을 잃어버리면 큰 일 나는게 아닌가? 하긴 돈이야 모두들 많이 있으니까. 가방을 잃으면 필요한 물건들을 즉시 재구입하면 되지. 제국 최고의 부자를 곁에 두는데 무슨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있을까?
어느덧 황궁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앞에는 꽤 큰 크기의 마차가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실용적으로 보이는 황제가 타고다니는 마차 답지 않게 꾸미는 것이나 편안함과 관련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크기만 큰, 아니 튼튼하게도 보였다. 모험가 전용마차였다.
황궁 문을 지나 밖으로 걸어나오자 마차 앞에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잘 아는 녀석들.
"란트! 어서 와!"
황제의 목소리, 그런데 황제의 복장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정말 사람이 할 말이 없게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황제는 하늘색 둥근 모자를 쓰고, 어린애들이나 입을 법한 스타일의 하늘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다. 또 저 옷은 어디서 구한거야? 정말 누가 황제라고 해도 못믿겠다. 저 복장이면.
그 옆에서 상당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있는 스승님, 앞으로 항동안 성에 눌러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황태자, 저 녀석이 아픈날 방까지 업어줬다? 여전히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의미모를 미소의 리아인, 지금 옷차림 상태로는 오히려 황제의 언니처럼 보이는 아리 공주, 황제 일가가 모두 나와 있었다.
"란트, 저 골치덩어리 사모님을 잘 모셔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예쁘고 젊어 보여도 나이에다 애가 셋까지 딸렸으니까. 꼬리 친다고 넘어가지 말고 알겠지!"
"......"
벌써 당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며 나머지 팔로 머리를 막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오랫만에 느끼는 스승님의 기운. 그러고보니 스승님을 만나러 와놓고는 정작 스승님과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스승님을 보러와서는 딴 일만 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스승님의 웃는 모습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았다.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았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럴까.
하지만 그말을 들은 황제가 스승님을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자. 꼼짝못하는 스승님. 확실히 공처가 기질이 상당히 보인다니까 스승님도, 그런데 그나저나 어떻게 예전에는 황궁을 탈출했던거지? 저런 황제를 두고.
"크리센공, 미카양은 같이가지 않으십니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황태자 녀석, 그래도 날 도와줬으니..오늘만은 그냥 곱게 넘어가 줘야 겠다. 괜히 시비거는 것도 이제 재미도 없고.
"전에는 고마웠습니다. 전하. 그리고 미카는 마나를 너무 많이 소비해서 몸상태가 좋지않아 자기 집에서 조금 쉬고 있겠다더군요."
난 황태자에게 말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순화시켜서 말을 했다. 미카가 마나를 많이 소비했다는 말에 황태자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게 변했다. 어떻게 보면 걱정을 하는 듯한 표정 같기도 한데, 에이, 황태자 저 녀석은 걱정과는 그다지 않어울린단 말이지.
"저기. 크리센공, 이건 선물이에요. 여행 무사히 다녀오시길 빌게요."
이 목소리, 황제의 평상시 목소리보다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 날 여러모로 귀찮게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술고래 아리 공주였다. 그런데 갑자기 왠 선물? 난 의아함에 공주를 쳐다보니 공주가 곱게 접은 손수건을 나에게 주었다. 흰색, 최근들어서 나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색깔, 클라리보다 월등한 솜씨로 백합무늬가 수가 놓여진 손수건이었다. 훔,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라 이건가? 공주가 직접 수놓은 손수건. 제대로 된 기사였으면 목숨을 걸고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할 아주 괭장한 물건이지만, 난 특별히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공주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니까.
"공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론 탑에 다시는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죠?"
내 말을 들은 공주는 가볍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클라우 그녀석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니까. 공주도 나보다 4살이 많다고 했었나? 이래저래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들 속에서 정말, 그나마 나모다 나이가 어리던 신디조차 두고 다니니.
황제를 선두로 마차에 올랐다. 마부석에는 소피와 티티 자매를 보내 버리고, 확실히 나도 많이 사악해 졌다. 아이보릿빛, 맑은 햇빛에 빛나는 황궁을 뒤에 둔체 마차는 천천히 황성의 문쪽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신디, 끝까지 보러 오지 않는걸까? 난 아쉬움에 마차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순간 황궁의 문에서 뛰쳐나오는 익숙한 형체, 훗, 이야기 속에 많이 등장하는 이별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래도...
"오빠! 꼭 돌아와야해! 알겠지!"
신디는 눈에는 눈물을 흘리며, 날 향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꼬마에게 못할 짓을 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무사히 돌아오면 되는거다. 난 신디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네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작아지며,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아무 제지도 하지 않는 황성문을 통과해서 마차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출발이 내 청춘을 날려버린,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꿔버린,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는 것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