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6장 남부대로 (6) 아티에넬요세-1(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4. 2. PM 11:32:33·조회 2473·추천 64
-우리는 여기서 잠깐 란트 1세의 부모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다.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훌륭한 부모가 있었던 것 처럼, 란트 1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 란트 1세의 경우 아인트 슈타이튼 공에게 교육을 받았던 시절 이전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의문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란트 1세의 어머니인 미카 크리센에 대해서는 공주였던 신분인만큼 대략적으로나마 알려져 있지만 아버지인 아티에넬 크리센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미궁에 빠져 있다. 하지만 필자는 너무나 예상 밖의 장소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아티에넬 요새, 지금은 세인트 요새라 불리는 남부산맥에 위치한 요새의 예전이름이다.....<8인의 통치자 -란트 1세편- > 마키아벨리 비아니스 저-
끈임없이 밀려 오는 피로와 무기력감, 사우스 트립톤의 그 사건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다.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그 기억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가 죽어가던 모습, 잔느란 엘프와 기사의 눈물, 왠지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계속 날 감쌌다.
"주인님아!, 밥좀 먹어. 어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잖아. 다시 병이 나면 어떻게 해."
클라리가 마차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내려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밥이라, 귀찮다.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 조차도. 클라리 한테는 미안 했지만 난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짧게 마쳤다.
"미안해, 입맛이 없어."
어제 비밀 감사관이란 쓸데없는 놀이를 한 까닭에 도시에서 급하게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또 들판 한가운데에서 노숙을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밖으로 밀려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종일 이것저것, 반쯤 잠이든 상태로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상념에 휩싸여 있는 동안 마차는 남부 산맥 근처에 위치한 숲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랫만에 보는 숲, 온통 평야와 들판 분인 제국에서 숲을 보기 위해서는 산맥근처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숲이 드문 제국이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숲이 많은 다른 나라보다 제국에서 엘프들의 모습을 훨씬 더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란트, 억지로라도 조금 먹으렴. 건강을 해친단다. 흠....이 누나가 찌찌라도 줄까?"
황제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보더니 갑자기 말을 끝마칠 무렵에는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찌지? 엄마들이 어린 아기들 한테 먹이는 것인데. 무슨 다 큰 나한테, 난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우리 순진한 주인님한테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세리 언니!"
그런데 황제의 말을 들은 클라리가 갑자기 흥분을 해서 황제를 향해 말을 했다. 방금 그말에 클라리가 화낼 이유가 있었나? 생각하기도 귀찮은데, 그냥 신경쓰지 말자.
"농담이니까, 화내지마렴. 클라리. 그런데 정말 누가 란트에게 정식으로 성교육 좀 해줘야 할텐데. 이제 나이도 됬고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게 할 수는 없잖니."
성교육? 책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이라 했는데, 뭐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것하고 나이하고는 무슨 상관인지. 머리야. 그냥 그렇지 해야 되겠다.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인데 피곤하게 쓸때 없는 곳에서 고민하기 싫다. 그나마 잠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래, 언니. 하지만 아인트 아저씨도 수도에 있고 마땅한 사람이 없잖아. 그렇다고 그런 내용의 책을 구해 줄 수도 없고."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클라리, 정말 나만 빼놓고 요즘에는 끼리끼리 서로만 이해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니까. 소피,티티 자매. 아미와 황제, 이번에는 황제와 클라리. 꼭 소외된 듯한 기분에, 별로 좋지 않았던 기분이 더욱더 나빠지는 것 같다.
"훔, 그냥 내가 몸으로 직접 가르쳐 줄까?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할 것 같은데."
황제는 나를 향해 웃으며, 하지만 평소의 웃음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웃음이었다. 이상해..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정신력이 약해진 상태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불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 했다.
"세리 언니! 언니 나이가 이제 50이야 서른 살도 넘게 차이나는 우리 주인님을 건드리는 건 분명히 범죄야! 범죄!"
다시 흥분해서 말을 하는 클라리, 난 성교육을 몸으로 직접 가르쳐 준다는 말과 건드리는 것과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지만 내 지식으로는 쉽게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머! 클라리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렴,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클라리 너와 나중에서 누가 더 귀엽게 생겼는지. 그리고 우리 란트하고 누가 더 잘 어울리는지. 아마 내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인정하는 점이다. 클라리는 성격과는 다르게 겉모습은 순수함과 지성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뿜어져 나온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외모지만 귀엽다고 보기에는 조금 그렇다. 그리고 키도 큰 대다 연령도 대략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므로 나와는 나이차이가 꽤 있게 보인다. 누나와 동생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황제는 주름살을 마법으로 완벽하게 제거를 한 까닭에 정말 17, 8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 같이 보였다. 신의 농감임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란트라니, 무슨 소리를! 어제 꼭두각시로 좀 돌아다녔다고 이제 노예로 생각하는 건지.
"그래, 언니가 귀엽다고 해. 그런데 방금전의 이야기는 귀엽고 순수한 소녀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 주인님은 아줌마의 유혹따위에는 안넘어가요. 얼마나 눈이 높은데."
흥분한 수준이 점점 강하지는 클라리, 훌. 뭐때문에 그렇게 황제의 말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훔. 그리고 클라리의 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점이 성교육을 몸을 직접가르쳐 준다는 것과 어린 외모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건지. 난 두사람의 대화에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갔다. 이해하기가 힘든 까닭에 스트레스를 조금 받기는 받았지만.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왠지 그 기억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관심을 쏟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소녀가 할 이야기는 아니긴 아닌 것 같네, 하지만 클라리, 뒷 말은 아쉽게 됬어. 우리 란트하고 난 벌써 키스까지 한 사이인건 몰랐지?"
헛, 황제가 정말 누굴 죽이려고? 난 날벼락이 두려워 등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두사람쪽을 향해 등을 돌린체 반대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 키스는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황제가 일방적으로 기습을 한 것이란 말이야.
"정말이야? 주인님아? 나한테만 키스한게 아니었어?"
난 자는 척 하며 클라리의 말을 조용히 무시를 했다. 클라리는 한동안 내등을 구타하며 내 의사를 알아보려 했지만 난 눈을 감은체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면 더 심각해질 것 같다. 어휴, 나이많은 여자들한체 왜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팔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흠, 그리고 분위기상 일단 말싸움에서 황제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평소같았으면 클라리의 패배에 기뻐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후환이 왠지 두려웠기 때문, 하지만 생각외로 내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클라리가 그다지 화를 많이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먼저 달래주던지 해야 될 것 같다.
누군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눈음 감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다. 황제나 클라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아미가 어딜 가는 건가? 하지만 난 갑자기 얼굴근처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눈을 떠 버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소피의 작은 얼굴, 그리고 소피의 입술이 내 입에 다았다. 순간, 난 꼭 얼어 붙은듯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소피가 무슨 키스를? 슬쩍 황제와 클라리 쪽을 보니, 역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는 내가 쳐다보자 평소처럼 얼굴이 빨갛게, 하지만 평소보다 색깔이 더 짙었다, 된체 마부석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왠지 수도에서 나온 뒤부터 소피가 조금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모를 적극적 듯한 느낌이 드니까. 아무래도 티티의 영향이 틀림이 없었다. 사악한 잡종 다크엘프같으니라구. 난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앉아버렸다.
"주인님!" "란트!"
동시에 들리는 두 나이많은 여자들의 목소리,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란말이야? 기운도 없는데. 몸을 일으켜 세우니 더 힘이드는 것 같다. 거기에다 두 여자의 무서운 눈초리는 날 더욱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주인님아! 정말 저 나이많은 아줌마하고 키스했어?"
드디어 올 것이, 쩝. 클라리는 날향해 뭔가 심술이 잔뜩난 듯한 표정의 얼굴을 드리밀며 말을 했다. 난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 할 뿐이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난 그 때도 이번처럼 당한 것이라구.
"백합의 기사님께서 기사님을 사모하는 이 여린 소녀의 가슴에 상처를 주시다니, 기사님이 그렇게 여자를 밝히시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클라리 너머에서 들리는 절대 아줌마의 목소리 같지 않는 아줌마의 목소리. 난 이 상황에 대해 상당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소녀 흉내를 내고 있는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힘이 빠지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그리고 내 머리가 저절로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쿵'
"주인님아, 정신차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난 흐릿하게 들려오는 클라리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요즘에는 왜이렇게 쓰러지는 일이 많을까? 마을에 있었을 때는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최근에는 너무 쓸데없는 일에 마법을 난사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이제 조심해야지..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이 다행히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은 것 같다. 뭐 다음날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만약 하루가 지났으면 벌써 북부 산맥에 도착을 했었어야 한다.
"주인님아, 일어났어? 흑흑, 미안해. 주인님 몸상태도 좋지 않는데, 신경쓰게 해서...."
내가 눈을 뜨자마자 클라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휴,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니까? 그런데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클라리가 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 졌다. 내 체질도 참 특이하지. 휴.
"괜찮아. 클라리,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먹을 것 좀 줄래?"
배도 고프고, 클라리도 달래줄겸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는 순간 내 말투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말투에 있던 무뚝뚝하고 차가운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성격이 변한 것처럼 말투도 변한 것일까?
"흑,..알았어. 흑... 주인님아... 내..가 맛있는 걸...로만 골라서 줄께. 흑."
클라리는 눈과 입으로는 울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마음이 씁쓸한게 영 아팠다. 그래,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옆에있는 날 위해주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클라리는 배낭에서 과일들을 꺼내서는 그릇에 넣고 갈아서 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러는 것이 영 어색했지만.
"기사님이, 이렇게 매일 쓰러지면 어떻게 하니, 네가 아프면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어?."
황제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꼬집으면서 말을 했다. 확실히 어린애와 같은 얼굴과는 다르게 어른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느껴본 듯한, 엄마와 비슷한 느낌, 얼굴과 복장이 내 또래 같아서 조금 어색했지만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이 조금 뜨거워 지는 것 같다.
"주인님아 갑자기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니까, 과일 주스부터 먼저 마시고 조금 있다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께."
난 클라리가 컵에 담아서 주는 주스를 아무말 없이 마셨다. 여러가지 과일이 섞인 단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비어잇는 위속으로 갑자기 뭔가 들어가니 속이 조금 쓰렸다. 휴, 수도의 화려함에 빠져 있는 동안 내 스스로 나란 존재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이들이 나에게 주는 것만큼 나도 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것인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앞쪽에 많은 인간들의 무리가 오고 있다. 수는 약 천명정도."
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일일까? 숲길에서 천명이나 몰려올 정도라면, 최소한 도적들은 아니었다. 도둑들이 아무리 규모가 커도 천명이나 되지는 않으니. 난 힘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앞의 존재들에 대해 집중을 했다. 나 혼자 있으면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황제하고 같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몸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이 상황에서 강한적이 나타나면 곤란할텐데. 쩝. 그래도 과일주스나마 조금 먹고 난 후라서 그런지 기운이 조금나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니 숲에 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닦여 있었다. 물론 들판에서의 길보다는 폭이 조금 좁았지만 나머지는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이렇게 길이 잘 닦여 있어선 도둑들이 도둑질을 하기도 힘들 것 같다.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면 정규군이 정찰을 하거나 경비를 서기 쉽기 때문에 정규군의 영향권이 확대되고 그 만큼 도적들의 활동범위 역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맞은편에서 서로 마주보고 달려오는 까닭에 생각외로 빨리 아미가 말한 인간들의 무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장미문양의 깃발, 제국 정규군이었다. 훔, 무슨일일까? 아! 어제 황제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다른 요세로 엘프들을 보냈었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그냥 지나가도 별 이상이 없을 듯,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던 까닭에다 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움직임으로 길을 완전히 다 매우고 행군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없이 마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 마차에 황제가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저 군대의 책임자가 어떤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구경할 일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없겠지.
맞은편의 군대는 우리 마차의 바로 앞까지 와서야 간신히 행군을 멈추었다. 그리고 보병 중심의 군단에서 제일 앞에서 말위에 앉아있는 기사복장을 한 사람이 우리 마차를 향해 말을 몰아오더니 마차의 창이 있는 쪽에서 말을 멈추었다. 투구를 밑으로 보이는 얼굴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엘리트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카렌경하고 비슷한 이미지였다.
"남부 수비대 대대장 하인리히 프란세츠 입니다."
난 마차안쪽에서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은체 대대장이란 기사를 보며 말을 했다. 이전에 마부와 노예로 오인받던 기억이 떠올라서. 흠흠.
"무슨 일이죠? 프란세츠 경. 제국 서열 5위, 남파나단 자치령주, 나 란트 크리센의 마차를 멈추게 할 권한이 대대장한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난 수도에 있는 동안 배운 시건방진 말투로 특히 '나'를 강조해서 기사를 내려보며 말을 했다. 하지만 기운이 영 없어서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무표정의 상태로 있던 기사는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며 말에서 내리더니 갑자기 마차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헛. 자치령주라고 이런 예의를 차리지는 않을테고,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자치령주라고 해서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경비병조차도, 그렇다면 검술대회 우승자라서?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크리센공의 마차일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우스 트립톤에서 반란 사건을 적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가는 도중이라, 그쪽에서 오시는 것 같아 혹시 사정을 물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무례를 범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크리센공."
경외심이라고 표현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가득담긴 말투로 나를 향해 말을하는 기사, 난 이 기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대우는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괜찮습니다. 프란세츠경. 아, 그리고 사우스 피투안의 일이라면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지나는 길에 본 바로는 어제 오후 무렵에 반역을한 미한 시장은 목숨을 잃었고 그가 모은 용병대들은 수도 외곽경비대에 의해 모두 제거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난 이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기사를 향해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정말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솔직히 명칭만 서열 5위지, 내가 그 명칭에 알맞는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부하는 것도 아닐텐데.
"감사드립니다, 크리센공. 무례를 범한 점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꼭 왕쯤 되는 사람한테 기사가 취하는 예우를하고 있었다. 훔, 황제를 뒤에두고 이런 대우를 받는 것도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기사는 다시한번 내가 아는바로는 최고의 예의를 갖춘 인사를 내게 한 후 말위에 올라타서 부대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곤 부관에게 무엇인가 지시를 내린 후 군사들의 대형을 움직여서 우리 마차가 아무런 지장없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난 그 모습을 본 후, 긴장이 풀려서 다시 마차안쪽에 퍼질러 앉았다. 그다지 없던 힘이 쭉 빠지는 것이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란세츠가 우리 마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것이 창밖으로 얼핏 보이며 마차는 부대사이를 천천히 지나 가던길을 계속 향했다.
"누나, 그런데 우리가 오늘 도착할 예정인 요새 이름이 뭐에요?"
군사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라 지도에도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아서, 원래 그다지 그런 곳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라 잊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저 기사를 보니,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황제에게 말을 걸며 황제의 눈치도 조금 살폈다. 솔직히 내가 황제라도 자기 이외에 따른 사람에게 저런 예우를 표하는 것을 보면 조금 기분이 나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티에넬 요새."
황제는 평소와는 다르게 짧게 말을 끝냈다. 요새이름이 아티에넬이었군. 그런데 잠깐, 아티에넬 요새라고?
"네? 설마....?"
순간 난 당황스러움에 황제에게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 그 설마가 맞아. 란트, 너의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의 이름을 붙인 요세지."
아티에넬 크리센,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 날 대신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녹슨칼, 오크, 피, 어느덧 희미한 이미지의 파편로써만 떠오르는 그 기억을 다시 되세기며 난 한숨을 쉬었다. 난 아버지가 기사였단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요새에 이름까지 붙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을까?
"란트, 어린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제국 서열 5위의 위치에 앉아도 귀족들이 겉으로 들어나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니? 그리고 실력 중심으로 관료를 임명하는 제국에서 아직 검증받지 못한 너의 실력만 보고? 아니야. 아니란다. 란트. 물론, 검술대회 우승을 하며 최소한 장군으로써의 실력은 검증받았겠지만..."
황제는 장난스러운 어투를 버리고 약간의 차가운 느낌이 섞인, 그런 말투로 말을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말한 것 두가지 모두,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아무리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이라도, 제국에서 스승님의 존재가 높다고 하더라도 스승님의 제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제국 서열 5위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난 조용히 황제의 눈을 보았다. 검은빛 흑진주 같은 눈, 하지만 아름다움 이외에도 뭔가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눈. 그 눈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강한 빛을 뿜어 내었다.
"바로, 네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 제국 개국 공신중 하나이며, 임시 성기사 제 1, 2 통합군단 군단장. 바로 네 아버지의 직함이야.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 군단으로부터 이 아티에넬 요세를 지켰던 아티에넬 크리센경. 아마, 네 아버지가 없었으면 지금의 제국이 없었을지도 몰라, 나도 고작 작은 도시의 영주를 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피폐해진 더 이상 회생불가능의 나라를 맡게되어 지금 이렇게 여행을 다닐 처지는 되지 못했겠지."
황제는 강하게, 하지만 차분한 뭔가 사람을 빨아드리는 힘이 있는 그 어투로 나에게 말을 했다. 아버지. 왜, 이렇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걸까? 내가 읽었던 대전쟁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포세트립톤에서 리투니아를 향하는 길목, 북부산맥에 위치한 그 요세에서 최후에 남은 몇안되는 성기사 제 1군단과 제 2군단 기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들과 싸웠다. 그렇게 수십일 동안 계속된 전투가 끝이나고, 언데드 군단은 그 요세를 멀리 우회해서 리투니아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리투니아 공방전, 역사란 가정은 필요치 않지만 난 지금 이자리에서 이런 의문을 던져 보고 싶다. 북부산맥에서 언데드 군단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지금 쓰여진 역사처럼 리투니아가 점령당하기 직전에 황제가 이끄는 지원군이 과연 도착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물론 아니오일 것이다. 지금 이자리에서 필자는 다시한번 성기사단의 기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이야기의 주역이 나의 아버지였단 말인가?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항상 편안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버지가 기사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였을 줄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스승님과 같은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제국의 개국 공신이라니? 그렇다면 그 기사가 내 관직명이 아닌 내 이름을 듣고 그렇게 존경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었나?
"그래 란트, 제국 서열 5위의 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었어, 아티에넬 크리센공이 너의 어머니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와 제국을 떠나 잠적한 이후로 항상."
결국 모든 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산, 후후. 난 부모님께 받은것이라곤 이 몸뚱이리와 엄마의 목걸이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잠깐, 방금 전에 들었던 말중에,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 아버지가 기사인 것은 알고 있었어도 엄마가 공주라니? 그것도 피투안 국의? "네? 저희 어머니가 공주라고 하셨어요? 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아니,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엄마가 공주라니, 하긴 다른 아줌마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은 있었지만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 예전에 엄마를 보고 미카 공주라고 부르는 것을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난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란트, 너 몰랐었니? 그래, 그렇구나.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겠지. 너희 어머니가 네게 말을 했을리는 당연히 없고, 결국 내가 말을 해줘야 운명인 듯 싶으니, 란트, 놀라지말고 들어. 네 어머니는 피투안국 왕위계승권 1위, 너의 할아버지인 하레스 피투안 베르크의 외동딸이었떤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란다."
황제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한체 말을 했다. 난 아버지가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사실 다음으로 방금전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엄마는 한번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도 마찮가지였고, 그게 그런 이유였었다니. 난 충격적인 사실에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럼 전에 죽였던 피투안국 왕자는 친척이란 소리잖아. 세상에.
"그럼 지금 피투안 국왕과 저는 무슨 사이에요?"
난 조금 걱정이 되서 황제를 향해 말을했다.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기를.
"흠, 지금 피투안국왕은 란트, 네 고조할아버지의 후실 소생의 후손중 하나이니까 먼친척은 되겠네."
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핏줄, 그런 존재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것은 싫었다. 그나마 먼 친척이란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지.
"너 예전에 피투안국 왕자를 죽였던 사실 때문에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그 왕 녀석 국제관계만 아니었으면 당장 군대를끌고 가서 제거해 버렸을 거란다. 란트, 자 흥분하지말고 내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렴. 언젠가는 알게될 사실이지만 지금 내가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황제는 장난스러운 어린애 말투에서 이제 완전히 어른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쩝, 그런데 지금까지도 충격적이었는데 이 이상 충격적인 일이 있을까?
"란트, 미카 공주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무래도 피투안 국왕이 시킨일인 것 같아. 정당성이 부족한 자신의 왕위 때문에 항상 불안해 했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넌 죽이지 않았더구나,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널 숨겨준 것 같기도하고."
난 마음속에서 무언가 내려 앉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즘에는 전혀 꾸지 않았던 그 어린시절의 꿈, 피투안국의 기사라고 했던 괴물사냥꾼 녀석이, 왕실의 사주를 받았단 말인가? 난 참기위해 노력을 했지만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한번도 공주라고 말을 하지 않았던, 왕위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던 우리 엄마를 고작,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한다니. 정말 이 주체 할수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날 숨겨줬다는 사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의 기억은 엄마가 죽는 그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스승님이 있는 곳에서 정신을 차렸었지.
"란트, 잠시 마음을 가라 앉힐 시간을 가지렴, 란트 너의 엄마도 네가 그렇게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을거야."
황제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난 두가지 새로운 사실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니, 이제 이해가 된다. 내가 제국 서열 5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내가 아무런 능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스승님과 핀누나, 황제는 날 지켜줬을 것이란것을 말이다. 왜 난 혼자 남겨졌을까 하고, 부모님에 대해 원망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엄마는 세상에 날 혼자만 남겨둔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 피투안국왕을 향해 치솟았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 앉는 것이 느꼈졌다. 이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난 마음을 되도록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이 내게 남겨준 많은 인연들.
"란트, 이번 여행이 끝나고 마음이 가라앉거든 생각해 보렴. 군대를 일으켜서 네가 잃었던 것을 되찾던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제국에서 편하게 살던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널 응원해 줄테니까."
짧게 한숨을 쉰 뒤 말을 하는 황제, 난 황제에게 하고 싶은 많은 말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손을 꼭 잡아주는 클라리, 난 클라리를 향해 웃어주었다. 힘든 표정을 없애고. 군대를 이끌고 피투안국을 정복해서 나보고 왕이 되어란 말인가? 일단 내게 정당성이 있을테니, 하지만 모르겠다. 그런 것에 대해선. 나 역시 왕권강화란 명목아래 또 다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로서 명확해진 사실이 있다. 앞으로 무슨일이 있던 난 지킬 것이다. 내 소중한 존재들을. 그들이 내게 그랬던 것 처럼.
끈임없이 밀려 오는 피로와 무기력감, 사우스 트립톤의 그 사건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다.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그 기억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가 죽어가던 모습, 잔느란 엘프와 기사의 눈물, 왠지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계속 날 감쌌다.
"주인님아!, 밥좀 먹어. 어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잖아. 다시 병이 나면 어떻게 해."
클라리가 마차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내려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밥이라, 귀찮다.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 조차도. 클라리 한테는 미안 했지만 난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짧게 마쳤다.
"미안해, 입맛이 없어."
어제 비밀 감사관이란 쓸데없는 놀이를 한 까닭에 도시에서 급하게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또 들판 한가운데에서 노숙을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밖으로 밀려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종일 이것저것, 반쯤 잠이든 상태로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상념에 휩싸여 있는 동안 마차는 남부 산맥 근처에 위치한 숲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랫만에 보는 숲, 온통 평야와 들판 분인 제국에서 숲을 보기 위해서는 산맥근처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숲이 드문 제국이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숲이 많은 다른 나라보다 제국에서 엘프들의 모습을 훨씬 더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란트, 억지로라도 조금 먹으렴. 건강을 해친단다. 흠....이 누나가 찌찌라도 줄까?"
황제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보더니 갑자기 말을 끝마칠 무렵에는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찌지? 엄마들이 어린 아기들 한테 먹이는 것인데. 무슨 다 큰 나한테, 난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우리 순진한 주인님한테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세리 언니!"
그런데 황제의 말을 들은 클라리가 갑자기 흥분을 해서 황제를 향해 말을 했다. 방금 그말에 클라리가 화낼 이유가 있었나? 생각하기도 귀찮은데, 그냥 신경쓰지 말자.
"농담이니까, 화내지마렴. 클라리. 그런데 정말 누가 란트에게 정식으로 성교육 좀 해줘야 할텐데. 이제 나이도 됬고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게 할 수는 없잖니."
성교육? 책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이라 했는데, 뭐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것하고 나이하고는 무슨 상관인지. 머리야. 그냥 그렇지 해야 되겠다.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인데 피곤하게 쓸때 없는 곳에서 고민하기 싫다. 그나마 잠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래, 언니. 하지만 아인트 아저씨도 수도에 있고 마땅한 사람이 없잖아. 그렇다고 그런 내용의 책을 구해 줄 수도 없고."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클라리, 정말 나만 빼놓고 요즘에는 끼리끼리 서로만 이해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니까. 소피,티티 자매. 아미와 황제, 이번에는 황제와 클라리. 꼭 소외된 듯한 기분에, 별로 좋지 않았던 기분이 더욱더 나빠지는 것 같다.
"훔, 그냥 내가 몸으로 직접 가르쳐 줄까?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할 것 같은데."
황제는 나를 향해 웃으며, 하지만 평소의 웃음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웃음이었다. 이상해..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정신력이 약해진 상태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불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 했다.
"세리 언니! 언니 나이가 이제 50이야 서른 살도 넘게 차이나는 우리 주인님을 건드리는 건 분명히 범죄야! 범죄!"
다시 흥분해서 말을 하는 클라리, 난 성교육을 몸으로 직접 가르쳐 준다는 말과 건드리는 것과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지만 내 지식으로는 쉽게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머! 클라리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렴,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클라리 너와 나중에서 누가 더 귀엽게 생겼는지. 그리고 우리 란트하고 누가 더 잘 어울리는지. 아마 내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인정하는 점이다. 클라리는 성격과는 다르게 겉모습은 순수함과 지성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뿜어져 나온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외모지만 귀엽다고 보기에는 조금 그렇다. 그리고 키도 큰 대다 연령도 대략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므로 나와는 나이차이가 꽤 있게 보인다. 누나와 동생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황제는 주름살을 마법으로 완벽하게 제거를 한 까닭에 정말 17, 8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 같이 보였다. 신의 농감임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란트라니, 무슨 소리를! 어제 꼭두각시로 좀 돌아다녔다고 이제 노예로 생각하는 건지.
"그래, 언니가 귀엽다고 해. 그런데 방금전의 이야기는 귀엽고 순수한 소녀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 주인님은 아줌마의 유혹따위에는 안넘어가요. 얼마나 눈이 높은데."
흥분한 수준이 점점 강하지는 클라리, 훌. 뭐때문에 그렇게 황제의 말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훔. 그리고 클라리의 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점이 성교육을 몸을 직접가르쳐 준다는 것과 어린 외모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건지. 난 두사람의 대화에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갔다. 이해하기가 힘든 까닭에 스트레스를 조금 받기는 받았지만.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왠지 그 기억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관심을 쏟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소녀가 할 이야기는 아니긴 아닌 것 같네, 하지만 클라리, 뒷 말은 아쉽게 됬어. 우리 란트하고 난 벌써 키스까지 한 사이인건 몰랐지?"
헛, 황제가 정말 누굴 죽이려고? 난 날벼락이 두려워 등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두사람쪽을 향해 등을 돌린체 반대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 키스는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황제가 일방적으로 기습을 한 것이란 말이야.
"정말이야? 주인님아? 나한테만 키스한게 아니었어?"
난 자는 척 하며 클라리의 말을 조용히 무시를 했다. 클라리는 한동안 내등을 구타하며 내 의사를 알아보려 했지만 난 눈을 감은체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면 더 심각해질 것 같다. 어휴, 나이많은 여자들한체 왜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팔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흠, 그리고 분위기상 일단 말싸움에서 황제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평소같았으면 클라리의 패배에 기뻐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후환이 왠지 두려웠기 때문, 하지만 생각외로 내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클라리가 그다지 화를 많이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먼저 달래주던지 해야 될 것 같다.
누군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눈음 감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다. 황제나 클라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아미가 어딜 가는 건가? 하지만 난 갑자기 얼굴근처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눈을 떠 버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소피의 작은 얼굴, 그리고 소피의 입술이 내 입에 다았다. 순간, 난 꼭 얼어 붙은듯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소피가 무슨 키스를? 슬쩍 황제와 클라리 쪽을 보니, 역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는 내가 쳐다보자 평소처럼 얼굴이 빨갛게, 하지만 평소보다 색깔이 더 짙었다, 된체 마부석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왠지 수도에서 나온 뒤부터 소피가 조금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모를 적극적 듯한 느낌이 드니까. 아무래도 티티의 영향이 틀림이 없었다. 사악한 잡종 다크엘프같으니라구. 난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앉아버렸다.
"주인님!" "란트!"
동시에 들리는 두 나이많은 여자들의 목소리,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란말이야? 기운도 없는데. 몸을 일으켜 세우니 더 힘이드는 것 같다. 거기에다 두 여자의 무서운 눈초리는 날 더욱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주인님아! 정말 저 나이많은 아줌마하고 키스했어?"
드디어 올 것이, 쩝. 클라리는 날향해 뭔가 심술이 잔뜩난 듯한 표정의 얼굴을 드리밀며 말을 했다. 난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 할 뿐이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난 그 때도 이번처럼 당한 것이라구.
"백합의 기사님께서 기사님을 사모하는 이 여린 소녀의 가슴에 상처를 주시다니, 기사님이 그렇게 여자를 밝히시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클라리 너머에서 들리는 절대 아줌마의 목소리 같지 않는 아줌마의 목소리. 난 이 상황에 대해 상당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소녀 흉내를 내고 있는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힘이 빠지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그리고 내 머리가 저절로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쿵'
"주인님아, 정신차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난 흐릿하게 들려오는 클라리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요즘에는 왜이렇게 쓰러지는 일이 많을까? 마을에 있었을 때는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최근에는 너무 쓸데없는 일에 마법을 난사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이제 조심해야지..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이 다행히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은 것 같다. 뭐 다음날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만약 하루가 지났으면 벌써 북부 산맥에 도착을 했었어야 한다.
"주인님아, 일어났어? 흑흑, 미안해. 주인님 몸상태도 좋지 않는데, 신경쓰게 해서...."
내가 눈을 뜨자마자 클라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휴,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니까? 그런데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클라리가 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 졌다. 내 체질도 참 특이하지. 휴.
"괜찮아. 클라리,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먹을 것 좀 줄래?"
배도 고프고, 클라리도 달래줄겸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는 순간 내 말투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말투에 있던 무뚝뚝하고 차가운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성격이 변한 것처럼 말투도 변한 것일까?
"흑,..알았어. 흑... 주인님아... 내..가 맛있는 걸...로만 골라서 줄께. 흑."
클라리는 눈과 입으로는 울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마음이 씁쓸한게 영 아팠다. 그래,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옆에있는 날 위해주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클라리는 배낭에서 과일들을 꺼내서는 그릇에 넣고 갈아서 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러는 것이 영 어색했지만.
"기사님이, 이렇게 매일 쓰러지면 어떻게 하니, 네가 아프면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어?."
황제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꼬집으면서 말을 했다. 확실히 어린애와 같은 얼굴과는 다르게 어른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느껴본 듯한, 엄마와 비슷한 느낌, 얼굴과 복장이 내 또래 같아서 조금 어색했지만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이 조금 뜨거워 지는 것 같다.
"주인님아 갑자기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니까, 과일 주스부터 먼저 마시고 조금 있다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께."
난 클라리가 컵에 담아서 주는 주스를 아무말 없이 마셨다. 여러가지 과일이 섞인 단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비어잇는 위속으로 갑자기 뭔가 들어가니 속이 조금 쓰렸다. 휴, 수도의 화려함에 빠져 있는 동안 내 스스로 나란 존재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이들이 나에게 주는 것만큼 나도 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것인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앞쪽에 많은 인간들의 무리가 오고 있다. 수는 약 천명정도."
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일일까? 숲길에서 천명이나 몰려올 정도라면, 최소한 도적들은 아니었다. 도둑들이 아무리 규모가 커도 천명이나 되지는 않으니. 난 힘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앞의 존재들에 대해 집중을 했다. 나 혼자 있으면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황제하고 같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몸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이 상황에서 강한적이 나타나면 곤란할텐데. 쩝. 그래도 과일주스나마 조금 먹고 난 후라서 그런지 기운이 조금나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니 숲에 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닦여 있었다. 물론 들판에서의 길보다는 폭이 조금 좁았지만 나머지는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이렇게 길이 잘 닦여 있어선 도둑들이 도둑질을 하기도 힘들 것 같다.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면 정규군이 정찰을 하거나 경비를 서기 쉽기 때문에 정규군의 영향권이 확대되고 그 만큼 도적들의 활동범위 역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맞은편에서 서로 마주보고 달려오는 까닭에 생각외로 빨리 아미가 말한 인간들의 무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장미문양의 깃발, 제국 정규군이었다. 훔, 무슨일일까? 아! 어제 황제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다른 요세로 엘프들을 보냈었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그냥 지나가도 별 이상이 없을 듯,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던 까닭에다 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움직임으로 길을 완전히 다 매우고 행군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없이 마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 마차에 황제가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저 군대의 책임자가 어떤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구경할 일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없겠지.
맞은편의 군대는 우리 마차의 바로 앞까지 와서야 간신히 행군을 멈추었다. 그리고 보병 중심의 군단에서 제일 앞에서 말위에 앉아있는 기사복장을 한 사람이 우리 마차를 향해 말을 몰아오더니 마차의 창이 있는 쪽에서 말을 멈추었다. 투구를 밑으로 보이는 얼굴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엘리트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카렌경하고 비슷한 이미지였다.
"남부 수비대 대대장 하인리히 프란세츠 입니다."
난 마차안쪽에서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은체 대대장이란 기사를 보며 말을 했다. 이전에 마부와 노예로 오인받던 기억이 떠올라서. 흠흠.
"무슨 일이죠? 프란세츠 경. 제국 서열 5위, 남파나단 자치령주, 나 란트 크리센의 마차를 멈추게 할 권한이 대대장한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난 수도에 있는 동안 배운 시건방진 말투로 특히 '나'를 강조해서 기사를 내려보며 말을 했다. 하지만 기운이 영 없어서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무표정의 상태로 있던 기사는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며 말에서 내리더니 갑자기 마차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헛. 자치령주라고 이런 예의를 차리지는 않을테고,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자치령주라고 해서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경비병조차도, 그렇다면 검술대회 우승자라서?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크리센공의 마차일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우스 트립톤에서 반란 사건을 적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가는 도중이라, 그쪽에서 오시는 것 같아 혹시 사정을 물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무례를 범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크리센공."
경외심이라고 표현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가득담긴 말투로 나를 향해 말을하는 기사, 난 이 기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대우는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괜찮습니다. 프란세츠경. 아, 그리고 사우스 피투안의 일이라면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지나는 길에 본 바로는 어제 오후 무렵에 반역을한 미한 시장은 목숨을 잃었고 그가 모은 용병대들은 수도 외곽경비대에 의해 모두 제거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난 이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기사를 향해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정말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솔직히 명칭만 서열 5위지, 내가 그 명칭에 알맞는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부하는 것도 아닐텐데.
"감사드립니다, 크리센공. 무례를 범한 점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꼭 왕쯤 되는 사람한테 기사가 취하는 예우를하고 있었다. 훔, 황제를 뒤에두고 이런 대우를 받는 것도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기사는 다시한번 내가 아는바로는 최고의 예의를 갖춘 인사를 내게 한 후 말위에 올라타서 부대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곤 부관에게 무엇인가 지시를 내린 후 군사들의 대형을 움직여서 우리 마차가 아무런 지장없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난 그 모습을 본 후, 긴장이 풀려서 다시 마차안쪽에 퍼질러 앉았다. 그다지 없던 힘이 쭉 빠지는 것이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란세츠가 우리 마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것이 창밖으로 얼핏 보이며 마차는 부대사이를 천천히 지나 가던길을 계속 향했다.
"누나, 그런데 우리가 오늘 도착할 예정인 요새 이름이 뭐에요?"
군사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라 지도에도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아서, 원래 그다지 그런 곳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라 잊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저 기사를 보니,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황제에게 말을 걸며 황제의 눈치도 조금 살폈다. 솔직히 내가 황제라도 자기 이외에 따른 사람에게 저런 예우를 표하는 것을 보면 조금 기분이 나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티에넬 요새."
황제는 평소와는 다르게 짧게 말을 끝냈다. 요새이름이 아티에넬이었군. 그런데 잠깐, 아티에넬 요새라고?
"네? 설마....?"
순간 난 당황스러움에 황제에게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 그 설마가 맞아. 란트, 너의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의 이름을 붙인 요세지."
아티에넬 크리센,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 날 대신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녹슨칼, 오크, 피, 어느덧 희미한 이미지의 파편로써만 떠오르는 그 기억을 다시 되세기며 난 한숨을 쉬었다. 난 아버지가 기사였단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요새에 이름까지 붙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을까?
"란트, 어린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제국 서열 5위의 위치에 앉아도 귀족들이 겉으로 들어나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니? 그리고 실력 중심으로 관료를 임명하는 제국에서 아직 검증받지 못한 너의 실력만 보고? 아니야. 아니란다. 란트. 물론, 검술대회 우승을 하며 최소한 장군으로써의 실력은 검증받았겠지만..."
황제는 장난스러운 어투를 버리고 약간의 차가운 느낌이 섞인, 그런 말투로 말을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말한 것 두가지 모두,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아무리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이라도, 제국에서 스승님의 존재가 높다고 하더라도 스승님의 제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제국 서열 5위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난 조용히 황제의 눈을 보았다. 검은빛 흑진주 같은 눈, 하지만 아름다움 이외에도 뭔가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눈. 그 눈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강한 빛을 뿜어 내었다.
"바로, 네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 제국 개국 공신중 하나이며, 임시 성기사 제 1, 2 통합군단 군단장. 바로 네 아버지의 직함이야.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 군단으로부터 이 아티에넬 요세를 지켰던 아티에넬 크리센경. 아마, 네 아버지가 없었으면 지금의 제국이 없었을지도 몰라, 나도 고작 작은 도시의 영주를 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피폐해진 더 이상 회생불가능의 나라를 맡게되어 지금 이렇게 여행을 다닐 처지는 되지 못했겠지."
황제는 강하게, 하지만 차분한 뭔가 사람을 빨아드리는 힘이 있는 그 어투로 나에게 말을 했다. 아버지. 왜, 이렇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걸까? 내가 읽었던 대전쟁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포세트립톤에서 리투니아를 향하는 길목, 북부산맥에 위치한 그 요세에서 최후에 남은 몇안되는 성기사 제 1군단과 제 2군단 기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끝없이 몰려오는 언데드들과 싸웠다. 그렇게 수십일 동안 계속된 전투가 끝이나고, 언데드 군단은 그 요세를 멀리 우회해서 리투니아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리투니아 공방전, 역사란 가정은 필요치 않지만 난 지금 이자리에서 이런 의문을 던져 보고 싶다. 북부산맥에서 언데드 군단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지금 쓰여진 역사처럼 리투니아가 점령당하기 직전에 황제가 이끄는 지원군이 과연 도착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물론 아니오일 것이다. 지금 이자리에서 필자는 다시한번 성기사단의 기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이야기의 주역이 나의 아버지였단 말인가?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항상 편안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버지가 기사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였을 줄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스승님과 같은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제국의 개국 공신이라니? 그렇다면 그 기사가 내 관직명이 아닌 내 이름을 듣고 그렇게 존경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었나?
"그래 란트, 제국 서열 5위의 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었어, 아티에넬 크리센공이 너의 어머니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와 제국을 떠나 잠적한 이후로 항상."
결국 모든 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산, 후후. 난 부모님께 받은것이라곤 이 몸뚱이리와 엄마의 목걸이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잠깐, 방금 전에 들었던 말중에,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 아버지가 기사인 것은 알고 있었어도 엄마가 공주라니? 그것도 피투안 국의? "네? 저희 어머니가 공주라고 하셨어요? 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아니,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엄마가 공주라니, 하긴 다른 아줌마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은 있었지만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 예전에 엄마를 보고 미카 공주라고 부르는 것을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난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란트, 너 몰랐었니? 그래, 그렇구나.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겠지. 너희 어머니가 네게 말을 했을리는 당연히 없고, 결국 내가 말을 해줘야 운명인 듯 싶으니, 란트, 놀라지말고 들어. 네 어머니는 피투안국 왕위계승권 1위, 너의 할아버지인 하레스 피투안 베르크의 외동딸이었떤 미카 피투안 베르크 공주란다."
황제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한체 말을 했다. 난 아버지가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사실 다음으로 방금전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엄마는 한번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도 마찮가지였고, 그게 그런 이유였었다니. 난 충격적인 사실에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럼 전에 죽였던 피투안국 왕자는 친척이란 소리잖아. 세상에.
"그럼 지금 피투안 국왕과 저는 무슨 사이에요?"
난 조금 걱정이 되서 황제를 향해 말을했다.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기를.
"흠, 지금 피투안국왕은 란트, 네 고조할아버지의 후실 소생의 후손중 하나이니까 먼친척은 되겠네."
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핏줄, 그런 존재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것은 싫었다. 그나마 먼 친척이란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지.
"너 예전에 피투안국 왕자를 죽였던 사실 때문에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그 왕 녀석 국제관계만 아니었으면 당장 군대를끌고 가서 제거해 버렸을 거란다. 란트, 자 흥분하지말고 내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렴. 언젠가는 알게될 사실이지만 지금 내가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황제는 장난스러운 어린애 말투에서 이제 완전히 어른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쩝, 그런데 지금까지도 충격적이었는데 이 이상 충격적인 일이 있을까?
"란트, 미카 공주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무래도 피투안 국왕이 시킨일인 것 같아. 정당성이 부족한 자신의 왕위 때문에 항상 불안해 했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넌 죽이지 않았더구나,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널 숨겨준 것 같기도하고."
난 마음속에서 무언가 내려 앉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즘에는 전혀 꾸지 않았던 그 어린시절의 꿈, 피투안국의 기사라고 했던 괴물사냥꾼 녀석이, 왕실의 사주를 받았단 말인가? 난 참기위해 노력을 했지만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한번도 공주라고 말을 하지 않았던, 왕위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던 우리 엄마를 고작,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한다니. 정말 이 주체 할수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날 숨겨줬다는 사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의 기억은 엄마가 죽는 그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스승님이 있는 곳에서 정신을 차렸었지.
"란트, 잠시 마음을 가라 앉힐 시간을 가지렴, 란트 너의 엄마도 네가 그렇게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을거야."
황제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난 두가지 새로운 사실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니, 이제 이해가 된다. 내가 제국 서열 5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내가 아무런 능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스승님과 핀누나, 황제는 날 지켜줬을 것이란것을 말이다. 왜 난 혼자 남겨졌을까 하고, 부모님에 대해 원망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엄마는 세상에 날 혼자만 남겨둔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 피투안국왕을 향해 치솟았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 앉는 것이 느꼈졌다. 이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난 마음을 되도록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이 내게 남겨준 많은 인연들.
"란트, 이번 여행이 끝나고 마음이 가라앉거든 생각해 보렴. 군대를 일으켜서 네가 잃었던 것을 되찾던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제국에서 편하게 살던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널 응원해 줄테니까."
짧게 한숨을 쉰 뒤 말을 하는 황제, 난 황제에게 하고 싶은 많은 말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손을 꼭 잡아주는 클라리, 난 클라리를 향해 웃어주었다. 힘든 표정을 없애고. 군대를 이끌고 피투안국을 정복해서 나보고 왕이 되어란 말인가? 일단 내게 정당성이 있을테니, 하지만 모르겠다. 그런 것에 대해선. 나 역시 왕권강화란 명목아래 또 다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로서 명확해진 사실이 있다. 앞으로 무슨일이 있던 난 지킬 것이다. 내 소중한 존재들을. 그들이 내게 그랬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