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6장 남부대로 (8) 아티에넬요세-3(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4. 13. PM 7:00:16·조회 2389·추천 91
에피소드 41 아티에넬요세(3)


넓은 평원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두 부대가 마주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인간들의 부대였고 반대쪽의 부대의 구성원은 멀리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엘프들인 것 같았다. 엄청난 수의 인간들의 부대 가운데에서 백마를 타고 있는 나. 꿈인 것 같은데, 왕자병도 아니고 무슨 이런 꿈을...

"폐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 옆에서 말을타고 있던 붉은색 머리의 남자가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누구지? 왠지 많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적의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이유일까? 만난적도 없는 사람인데, 하긴 요즘에 워낙 붉은색 머리의 남자들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알고 있네, 재리온 공. "

뼛속부터 박혀져 있는 듯한 위엄이 담긴 어투, 절대로 평소의 내 어투는 아니었다. 재리온이라. 이름 역시 처음듣는 사람이지만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시선은 어느순간 맞은편의 엘프들을 향해 다가가 있었다. 멀리 상대편 진형 가운데에 보이는 백금발 머리의 엘프, 어떻게 보면 핀누나하고도 닮은 것 같기도 한, 아니 더 비슷한 존재가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런 그 엘프를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이 솟아 올랐다. 왜 그렇지? 하지만 곧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인지도 확실치 않은 존재는 검을 뽑아들었다. 신비한 색의 보석이 박힌검, 전에 황제가 나한테 보여준 적이  있는 그 검이었다. 이걸 내가 왜 들고 있는 걸까?

"전군! 진군하라!"

내 외침이 평야의 곳곳까지 퍼지며 인간들의 부대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밖의 시끄러운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무슨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푹신한 침대와 넓은 방, 여관인가? 아! 아까 와이번하고 싸우다가 또 쓰러져버렸지. 휴, 무슨 망신이람. 꼭 여자같이 매일 쓰러지기만 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체력단련도 해야 할 것 같다.

"란트, 정신이 드니?"

황제의 목소리, 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검은 두건을 풀고는 창가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네, 누나. 그런데 여긴? 그리고 모두들 어디갔어요?"

난 힘이 없는 목소리로 황제를 보며 말을 했다. 황제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쪽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말을했다.

"여긴 마을회관이야. 그리고 다른 애들은 모두들 축제에 끌려갔단다. 난 백합의 기사님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해서 간신히 이렇게 남았지."

휴, 결국 와이번들을 물리치긴 물리쳤구나하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내가 이렇게 마을 회관에 곱게 눕혀져 있는 것으로 볼 때는.

"죄송해요. 또 걱정을 끼쳐서."

난 황제에게 미안함을 담아 말을 했다. 몸조심하라고 쓰러지지 말라고 한게 몇시간 전이었는데 또 이렇게 쓰러져서 동료들이 걱정을 하게 만들어버렸으니까.

"알긴 알고 계시네요? 백합의 기사님. 앞으론 왠만한 적이 아니면 나타나도 가만히있어. 혼자서 해결하려고 무리하지 마렴.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나도 내 한 목숨 지킬 정도의 능력은 있으니까."

황제는 내 볼을 꼬집으며 말을 했다. 황제의 말대로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한 일주일 정도 아니 최소한 며칠은 푹 쉬어야지 그러지 않다가는 몸이 정말 박살이 나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매일 쉬겠다고 말만하고 정작 쉰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그런데 아까 모두들 어떻게 하늘에 떠오른 거에요?"

정령술이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꼈지만 확인하는 의미에서 황제에게 말을했다. 솔직히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실제로 황제와 소피, 클라리의 도움이 없었으면 정말 죽을뻔 했었다.

"나하고 소피는 각자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 떠올랐고 클라리는 마법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전부 누나의 정령술로 떠오른게 아니었어요?"

난 그 때까지 황제가 모두 날 수 있게 만든 줄 알고 있었는데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나는 중급 정령은 하나만 겨우 부를 수 있는 능력밖에 없어. 소피도 엘프라서 그런지 중급정령을 부를줄 알던데? 티티는 정령술을 쓸줄 모른다고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두고 우리만 널 도와주러 갔던거야."

아, 소피도 엘프였었지? 하긴 엘프들이 정령술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더 이상하니까. 종종 소피가 엘프라는 사실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에 있었을 무렵에는 내가 그렇지 않았던것 같은데. 흠, 그리고 티티는 다크엘프들 틈에서 자라서 정령술을 쓰지 못하는 걸까?

편치않은 몸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황제가 날 말렸다.

"란트, 그냥 곱게 누워 있으렴. 내가 나가 볼테니까."

황제는 다시 검은빛 두건을 입위까지 올린 뒤에 방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백발의 노기사, 프란세츠 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축제에는 안가고 무슨일로 여기에 왔는지. 황제는 프란세츠 대장의 모습을 보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그런 황제의 모습을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던 프란세츠 대장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내모습을 발견하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깨어나셨군요. 크리센공, 혹시 쉬시는데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프란세츠 대장은 내가 있는 침대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제는 다시 창가쪽으로 걸어갔다.

"괜찮습니다. 프란세츠 대장.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난 나를 향해 걸어오는 프란세츠 대장을 향해 답을 했다. 와이번들도 물리쳤고,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공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와이번들의 공격에 피해를 크게 입었을 겁니다. 그런데 크리센 공, 공께서 전설에 등장하는 드래곤 나이트이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 아까는 분노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아미의 위에 올라탔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마을 사람들한테 내가 드래곤 나이트라고 선전을하고 다니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오늘 저 때문에 더 피해가 크게 생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난 되도록이면 드래곤 나이트라는 사실에서 관심을 돌리기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실제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특히, 엄마를 잃은 그 소년에게는. 그리고 아무생각도 안하고 와이번들을 마을 위에서 베어버리느라 추락하는 와이번들 때문에 건물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크리센공,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공께서 오시지 않으셨으면 저희는 와이번들을 막을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프란세츠 대장은 정색을 하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예의상 말은 저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말을 해주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크리센공. 혹시 그 와이번 라이더의 이름이 레이트가 아니었습니까?"

프란세츠 대장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며 목소리를 낮추고는 나에게 말을 했다. 낮에 그 재수없는 녀석, 그래 그 녀석의 이름이 레이트 였다. 그런데 프란세츠 대장이 그 녀석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것일까?

"네, 맞습니다. 스스로 레이트경이라고 지칭 하더군요."

내말을 들은 프란세츠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숨을 머리를 감싸잡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레이트는 저희 마을에 살던 아이였습니다. 크리센 공의 아버님이신 아티에넬경을 동경하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죠. 다른 점이 있다면 와이번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뿐, 하지만 몬스터로 생각되던 와이번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역시 좋게 생각되지는 않았지요. 그러던 중, 레이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레이트가 어느날 집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천공의 기사가 되겠다는 쪽지만 남겨놓고, 그게 십년 전입니다."

사람들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이유로 이 곳을 공격한 걸까? 그리고 살아돌아간 그 수많은 와이번들이 작은 마을을 기습하면 순식간에 전멸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그 애국심이 강한 미한 시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착했던 레이트가 와이번들을 이끌고 쳐들어 온 것도, 요즘 상황을 보면, 꼭 30년전의 대전쟁 바로 직전의 그 혼란스러움 같아 왠지 모르게 불안해 지곤 합니다. 그 때도 평화롭던 나라가 갑자기 혼란스러워 졌었는데 말입니다."

시장의 말에 황제를 흘끔 쳐다보니 황제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황제역시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는 모습. 아무래도 자신의 나라에 대한 걱정이겠지?

"프란세츠 대장, 앞으로 조심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궁수부대를 훈련시키고, 능력이 조금 모자라도 일단 마법사들을 많이 모아서 방어에 신경을 쓰도록 하십시오. 저희가 떠나고 나면 또 와이번들이 쳐들어 올지도 모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마는, 그래도 왠지 불안한 마음에 노기사를 향해 말을 했다. 갓 열일곱살이 된 꼬마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이 좀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흔적이 남이 있는 이 요세에 대해 왠지모를 애착이 갔다.

"고맙습니다. 크리센공,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그래도 제국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크리센공의 아버님, 아티에넬 경의 이름을 딴 요세이지 않습니까? 다음에는 이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프란세츠 대장과 같은 스타일의 사람은 헛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 마음을 놓기로 했다. 정 안되면 수도에 지원을 요청하면 천마기사단이 해결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 원래 비밀에 붙여져 있는 기사단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나도 알게 되었다. 천마 기사단, 전원 폐가수스를 타고 있으며 여기사들로만 구성되었다고 들었다. 뭐 본적이 없으니 확실히는 모르지만...아무튼 평소에는 그냥 수도 경비대에 포함되어 있다가 필요할 경우에 어딘가에서 키우고 있는 폐가수스를 타고 출동을 한다고 들었다. 대전쟁 때, 하늘로 공격해오는 수많은 마물들과, 서큐버스, 와이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기억 때문에 평화가 정착된 뒤에 흑마술에 저항력이 강한 여자들로만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출동한 적은 한번도 없으니, 나중에 황제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프란세츠 대장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본 뒤에 다시 침대에 들어누워버렸다. 황제는 대장이 나간 후에도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듯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사랑이 황제만큼이나 큰 통치자도 드물테니까, 걱정이 될만도 하지. 자신이 완벽하게 평화를 구축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30년이지나서 갑자기 이런 일들이 생기니까.

"누나, 걱정이되면 그냥 수도로 돌아가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관은 저가 찾아서 올게요."

난 황제를 향해 말을 했다. 황제는 다시 두건을 벗으며 내가 있는 침대를 향해 다시 걸어왔다. 확실히 두건을 벗은 황제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였다.

"아니야, 란트. 조금 더 여행을 계속하는게 좋을 것 같아. 이런 일들도 수도에 있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더 컸잖아. 조금 걱정이 되긴하지만, 아인트나 티베를 믿으니까."

황제는 어두웠던 표정을 감추곤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말을 했다. 한 나라와 수많은 백성들을 짊어지고 있는, 편하려고 생각하면 더 없이 편한 자리였지만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30년간, 백성들의 사랑과 인기를 받을만한 사람이다. 구원의 여신...



마차는 요세의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수많은 마을 주민들에게 둘러싸인체, 하지만 이번에는 마을사람들이 크리센공이 아닌 백합의 기사를 외치고 있었다. 어제의 그 사건 때문에 그럴까? 아무튼 좀 힘들었지만 잠을 푹자고 나니 기분이 괜찮았다. 고생을하면 할수록 체력과 마나가 회복되는 것이 더 빨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일인지, 나쁜일인지, 쩝. 내 비정상적인 능력은 꼭 내가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사람들과 그다지 생활을하지 않았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검술대회와 마법대회를 거쳐본 결과로 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단 17살의 나이에 제국 최고를 뽑는 검술대회와 마법대회를 우승하였다는 것은.솔직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승님과 황제, 핀누나가 말한 것 처럼, 플라타니오와 미탄젤의 가호를 받고 태어났어도,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황제의 경우 19살정도에야 간신히 검술 실력 A-클래스, 플라타니오의 가호를 받은 핀 누나의 경우에도 130살 정도가 될 때까지 5클래스에 불과했었다. 그에 반해 난, 운이 조금 따랐지만 현재 S클래스의 대접을 받고 있는 황제와 티베리우스 단장을 이길 정도니까. 가이우스가 말할때도 나보고 S+클래스라고 했었다. 거기에 전설에 등장한다던 드래곤 나이트까지 되다니.

"주인님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해?"

난 클라리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클라리를 쳐다보았다. 클라리와 아리, 소피, 티티는 어제밤에 내가 다시 잠이든 뒤에야 방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억지로 끌려간 것 치고는 오늘 아침에 보니, 모두들 기분이 상당히 좋아보였다는 것. 흠흠.

창밖을 보니 어느세 마을의 남쪽 문에 도착하고 있었다.

"수도에 계시는 예쁜 아리 공주님 생각."

나도 점점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가져가는 것일까? 아니, 난 절대로 평범한 사람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비정상적인 능력부터 출신까지, 그냥 평범한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흉내에 불과할지라도, 그리고 조금 힘들어도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 잃고 싶지는 않았다.

"힝, 주인님 정말로 아리 공주 생각을 했어?"

내말을 들은 클라리는 몸을 기대고 있던 것을 바로하고,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귀찮았는데 요즘에는 클라리의 이런 반응이 재미가 있었다. 난 클라리를 무시하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나를 지켜줬던 것처럼, 아버지가 지켜준 사람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마을사람들에게 왠지모를 친밀감이 느껴졌다. 오늘도, 떠나지 못하게 마을사람들이 몰려와서 말리는 것을 간신히 마다하고,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왠지 수상한 제국의 분위기에 되도록이면 빨리, 이번일을 마치고 수도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주장을 했다. 어제 얼핏 보았던 황제의 그 표정이 계속 머리속에 떠올라서.

마을 밖으로 나와 마차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고, 요세에 주둔하던 기사들은 말을타고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마차를 따라 달려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크리센공, 그럼 저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리투니아까지 호위를 해드릴 수도있습니다만."

그 기사들의 제일 앞에서 말을 몰아오던 프란세츠 대장의 말에 난 마차를 잠시 멈추게 했다. 호위라, 솔직히 나보다도 요세가 더 불안한 것 같은데 또 와이번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와이번들이 걱정입니다만."

난 창을통해 프란세츠대장을 향해 이야기를 했다. 어제는 그렇게 넘어갔지만 왠지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직위가 낮다면 마차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례이겠지만, 다행히도 내 직위가 더 높기에, 몸상태도 좀 그렇고 그냥 안에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저흴 믿어주십시오. 안돼면 저희들도 등에 날개를 달고 날아 와이번들과 육탄전을 해서라도 잡겠습니다."

프란세츠 대장은, 그 주름가득한 얼굴가득 자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들을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행 계속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으니까.

"그럼 다음에 뵐 수 있기를."

벌써 말머리를 돌려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 프란세츠 대장에게 인사를 했다.

"고결한 백합이 전 대륙에 가득 피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난 대장의 비유적인 인사를 들으며 난 조금 웃는 표정을 지은체 그를 향해 고개를 조금 숙인 뒤에 마차를 출발시켰다. 고결한 백합이라, 훗 아직도 그 별명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그 레이트인가 하는 녀석에게도 말했듯이. 차라리 피의 광전사란 별명이 나에게 더 잘 알맞으니까.

"누나, 그런데 리투니아까지는 며칠정도 걸리죠?"

배웅하러 나온 기사들과 헤어진지 얼마지나서 황제를 보며 물어보았다. 물론 지도야 미리 봤지만, 정확히 며칠정도 걸릴지는 실제 경험이 없으면 알기 힘들었다.

"흠, 적당히 마을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맞춰서 가면 6일정도, 전처럼 노숙을 할 각오를하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 3일하고 반나절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던 황제는 말을 했다. 3일하고 반나절, 어쩔 수 없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또 노숙을 감행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산맥을 내려온 마차는 다시 깊게 펼쳐진 숲의 가운데로 난 길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전민들이 많이 불태웠던 까닭에 숲이 많이 사라졌었지만, 대전쟁 때 인구의 급감으로 일손이 많이 부족해지고, 황제가 워낙 선정을 한 까닭에 화전민들이 다시 도시와 마을들로 돌아온 뒤, 숲이 다시 깊어지기 시작했다고 얼마전 수도의 황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에 적혀 있었다. 여행할 곳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단 생각에서 읽었는데, 아버지 이야기와 같은 중요한 이야기는 없고, 그런 쓸 곳 없는 자잔한 이야기만 잔뜩 적혀 있었다.

뭐 다시 숲이 시작 되었지만 마차가 움직이는데는 전처럼 별 지장이 없었다. 역시 잘 닦여진 길 때문에, 엘프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엘프들이 그다지 많은 반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길이 완성이되어 있었겠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이라, 마을에서도 혼자 있으면 항상 주위에서 날아다니곤 했었는데, 피투성이가 되서 사람들이 다 피할 때도, 새들은 언제나 내곁에 있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새들도 어떻게 보면 내 몇안되는 소중한 친구중에 하나 였었다라고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흰 빛의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마차안으로 들어와 내 어깨에 앉았다. 마을에 있을 때도 많이 본적이 있는 익숙한 새.

"별꽃새."

난 무의식적으로 내가 붙인 이름을 읊었다. 뭐 새 이름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왠지 이름이 그럴 것 같아서 붙여 주었었다. 그런데 내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마차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 어깨를 향했다.

"주인님아, 이 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왜 주인님 어깨에 앉아 있는거야?"

클라리는 신기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서 노래를 지저귀고 있는 새를 보며 말을 했다. 이 새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흠, 마을에 있을 때도, 날 보며 도망치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란트, 그런데 카니아의 예전 이름이 별꽃새인 것은 어떻게 알았어? 아틸란티스 제국 시대에 별꽃새란 이름으로, 제국의 상징인 새였어. 지금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야."

카니아? 이 새이름이 카니아였나. 훔 난 모르던 일이다. 그리고 이 새가 아틸란티스 제국의 상징이라니.

"네? 전 그냥 왠지 이 새이름이 별꽃새라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는데.  정말로 이 새 이름이 별꽃새였어요?"

난 황제를 향해 되물었다. 훔, 조금 기분이 그렇군, 나보다 이전에 이 새를 보고 별꽃새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응, 아틸란티스 제국을 처음 세운 황제가 새 이름 별꽃새라고 하고 국조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어. 무슨 이유로 결정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아틸란티스를 처음 세웠을 때라, 삼천년 전이란 이야기군. 그러고 보니, 내가 읽었던 책에서도 아틸란티스 제국의 초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워낙 오래전의 이야기다보니 그렇겠지만, 황제의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갔다. 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날아가지 않고 내 어깨에 앉아있었다.

"저하고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우연치고는 조금 신기한데요? 그 초대 황제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주세요. 누나."

난 황제를 향해 이야기를 했다. 황제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나도 잘몰라, 워낙 기록이 없어서. 그 새이름이 별꽃새였다는 것도 핀 언니한테 들었는걸? 제국 말기의 시대상이 워낙 혼란스럽다보니, 초기의 기록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져 버렸었어. 그리고 이 새 이름이 카니아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제국 말기 무렵이기 때문에. 별꽃새란 이름은 전설의 새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하는 학자까지 있었다니까."

황제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니,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는 정말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보였었는데, 흠. 사람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클라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주인님아, 그건 내가 이야기를 해줄게. 엄마가 나한테 준 기억 속에 그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

진지해진 클라리의 표정, 원래 클라리의 외모에는 이런 모습이 잘 어울리지만, 평소에 이런 표정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까닭에 꼭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대 황제 이름은...리안타니우스 플라타니아일꺼야. 흔히들 플라타니오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었고, 황제도 그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웠었다고 해. 마법사들의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마법실력도 뛰어났고, 그 못지 않게 검술실력 역시 훌륭했다고 전해져. 외모는 천사같이 찬란히 빛나는 금발과 녹색의 눈이 인상깊었다고들 해. 젊은 시절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조금씩 조금씩 영토를 넓혀가며 당시에 세력이 미미했던 인간들을세력을 결집했다고 했어. 그리고 서부대륙의 패권을 놓고, 당시에는 대륙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엘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인간들이 그 뒤부터는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뭐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초대황제에 대한 것 모두야."

클라리는 정말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읽듯이 말을 했다. 훗 자기의 지식이 아니라 전해받은 지식이니 저렇게 말을 할 수 밖에 없겠지?

플라타니오, 별과 마법사의 여신이다. 나도 이 신에게 가호를 받아 이렇게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가지게 되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을 했다. 흠, 그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했다라, 그리고 전혀 몰랐던 사실은 인간들과 엘프의 전쟁이다. 엘프들이 무슨 욕심이 있다고 그랬을까? 하긴 시대가 흐르고, 엘프들이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클라리의 말을 들은 뒤에는 궁금증이 해소되기는 커녕 더 커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왠지 친숙한듯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 나와 관련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예전에는 인간과 엘프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니, 그런 이유였구나. 나중에 엘프들을 통해서 그 시대 이야기도 한 번 정리해 봐야지."

황제의 혼잣말, 황제는 왜 자신이 그 사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황제도 역사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 했으니까.

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내 옆에서 지저귀던 별꽃새를 쳐다보았다. 앉아있던 새는 클라리와 나를 꼭 한번씩 쳐다보는 것 같더니 창밖을 통해 날아가버렸다. 별꽃새.

아틸란티스 제국, 한 때는 서부 대륙 전체를 지배하던 나라, 결국 수십개의 나라들로 나누어진 뒤 사라져버린 나라지만 음유시인들은 그 때의 영광을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 초대 황제, 나중에 핀누나의 오빠라는 엘프족 수장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차는 도로를 따라 달려갔고 시간도 흘러갔다.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스쳐지나간 시간도, 잃어버린 시간도, 기억도, 사랑도, 인물도, 다시 모이고 있었다.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