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7장 리투니아(5) 반복-2(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6. 5. PM 11:14:15·조회 2375·추천 58
에피소드 46 반복-2



저녁 회의는 간단하게 끝이났다. 지탄그 군단의 전면적인 침략 소식에 리투니아의 주요요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만큼 그다지 혼란스러워 한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예전의 대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조금 암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학자나 관료같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 흠흠.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애국심이 투철하다고 해야할지.

일단 지금까지 파악된 정보에 대해 아렐리아가 요인들에게 말을 하고 일단 준비를 취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국 회의는 끝이났다. 그래도 제국 제2의 도시라는 자존심이 있다는 것일까? 대략 5만에 이르는 병력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시장님, 그럼 저희 함대는 일단 지탄그 쪽의 동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 테이블의 끝에서 드레이크 쿡 사략함대 제독의 목소리,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던 제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리투니아의 유일한 고위 무장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제독. 아까 테라스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난 제독 쪽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침묵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정찰이라. 사략함대에게 더 이상 적합한 임무는 없었다. 내가 읽어본 책의 정보에 따르면.

"네, 제독. 그럼 부탁드릴게요. 일단 저희가 입수한 정보가 정확한 사실이 맞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군요."

제독은 테이블에서 일어서서 아렐리아와 내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회의가 끝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 얻었다는 뜻일까? 후, 역시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코리안트 국에 지원군 요청을 하기 위해 루이안 부시장을 보내려 하는데, 다른 의견 있으신분 말씀해 보세요."

아렐리아의 말에 다시 한번 놀라는 리투니아의 주요 요인들, 타국에 지원군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닐테니까. 실제로는 황제가 너무나도 쉽게 결정을 내려버렸지만, 어떻게 보면 황제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통치자스타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쩝, 황제가 명분만 따지는 스타일이었면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저, 폐하의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대부분이 30대 정도의 젊은 사람들 뿐인 이 곳에서 그런데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남자가 질문을 했다. 별로 유심히 듣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기억이 맏다면 저 남자가 리투니아 재무담당관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내 옆에 앉아있는 황제가 기분이 좋은듯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는 것은 으음? 저 재무담당관 황제 앞에서 점수를 많이 얻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들었다. 저사람은 나중에 황제가 수도에 돌아간 뒤, 출세길에 상당히 이익을 받을듯.

"물론, 폐하의 허락은 받았어요. 오늘 낮에 전서구를 받았고, 이 외교권에 대해서는 폐하께서 제게 위임을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 말과 함께 언제 황제한테 받아뒀는지 두루마리 한장을 펼쳤다. 그 두루마리를 펼치자 내 비밀감사관 증명서 처럼, 두루마리에서 금빛의 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그 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 후에는 서로 수근거리기만 할 뿐,  특별히 아렐리아를 향해서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의견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럼 제일 빠른 쾌속선 다섯척을 편성해서 내일 날이 밝는데로 출발하도록 하세요. 루이안 부시장."

그런데 저런 꼬마를 보내면 혹시 코리안트 국에서 무시를 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천재라니까. 뭔가 해주겠지. 그리고 다섯척의 함선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었다. 최소한 다섯척의 함대라면 해적들의 습격을 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병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다섯척이나 되는 쾌속선을 낭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네, 시장님."

아렐리아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꼬마 부시장. 하지만 고개를 다시 고개를 드는순간 내 옆에 있는 인물을 곁눈으로 한번 슬쩍 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설마 저 꼬마, 40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유부녀와의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거기에다 신분 차이까지. 흠. 루이안 녀석을 한동안 딴 나라로 보내 놓는게 좋겠다는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닷바람을 한동안 쐐면 정신을 차리겠지.

"그럼, 각자 전쟁에 대비해서 물자를 비축하고, 맡은 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만 회의를 마치도록하죠."

정말 평소에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성격이 어린애 같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장역할을 할 때, 역시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하긴 시장이란 위치를 아무나 맡게 되는게 아닐테니까. 하지만 회의가 끝이 났어도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들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긴 전쟁이라는 것, 평화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겪어내기가 힘든 것일 테니.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회의장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회의도 끝이나고 이제 내가 더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으니.. 그냥 방에가서 침대 위에서 저녁 때, 다 못잔 잠이나 푹 자야지.

"영주님! 영주님이 계시는 방은 어디에요?"

뒤쪽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 분홍빛 드레스를 하늘 거리며 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황제의 목소리였다. 물론 지금은 내 직속 부장이라고 위장을 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목소리와 함께 세인트를 비롯한 황제의 자식들이 생각이 나며, 그리고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는, 흠. 난 식은땀이 조금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처음에 황제의 이런 모습을 봤을 때는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는데, 너무 이중적인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4층의 해안가로 향한 곳의 복도의 제일 끝방입니다. 누님!"

난 다른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지만 아무튼 황제가 들을 수 있는 한 가장 큰 목소리로 누님! 이란 말을 강조해서 말을 했다.  

"이 귀여운 소녀보고, '누님' 이라뇨? 영주님, 그냥 '세리' 라고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이 것도 황명이라고 해석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의 황제의 역할에 충실해서 내 부장으로써 부탁을 하는 것이라 생각을 해야 할지. 하지만 황제의 표정을 유심히 보니 아무래도 황명에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폭군이 따로 없다니까.

"영주님, 지금 제 옷차림 어때 보여요?"

황제는 내 앞에서 치마를 살짝 잡고 한바퀴를 삥 돌고는, 클라리가 종종 그러듯 내 옆에 바싹 붙으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클라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붙어도 걷는데는 그다지 지장이 없다는 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주책이지. 정말 원래의 나이만 아니면, 하다못해 애 셋딸린 아줌마가 아니었다면 좀 그렇다고 해줄 수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여행 첫날밤에 그 시체를 보고 있던 황제의 무표정한 괴기스러운 모습, 절대로 죽기전에 머릿속에서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세리. 하지만 나이와는 그다지 잘 안어울리는 것 같군요."

역시 내 간이 배 밖에 나온 것일까? 황제한테 말 대꾸를. 뭐, 하긴 이런 일 가지고 겁을 먹는다면 황제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내말을 들은 황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흠흠, 난 사실에 최대한 충실해서 말했을 뿐인데.

"흠흠. 그런데 영주님은 그럼 클라리 보좌관이 더 좋아요? 제가 더 좋아요?"

회의실로 부터 조금 떨어진 곳, 주위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 말투와 호칭을 그대로 유지한체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클라리나 황제나 둘다 좋고 말고를 떠나서 골치 아프기 그지 없는 존재였다. 간단히 말해서 날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황명입니까? 아니면 순수하게 제 부장으로써 물으시는 겁니까?"

내 대답에 황제는 잠시 머뭇 거리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황명이라면, 대답이야 정해지는 법이고 '폐하의 충실한 신하로써, 폐하 이상 제가 경애하는 존재가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라고 해야 하고, 만약 부장으로써 묻는 것이라면, '상급자의 권위로 부장의 질문은 기각하겠네.' 라고 하면 되니까, 눈치 빠른 황제가 내의도를 모를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승리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말싸움을 하면 무조건 적으로 질 수 밖에 없었던 나도 최근에는 종종 말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곤 했다. 이 것도 경험의 덕이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 이런 것 가지고 기뻐하다니 정말, 나도 참.

"그냥 백합의 기사님을 사모하는 연약한 레이디의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될까요?"

헛, 이번에는 내가 당한 것 같다. 원래 기사라는 존재가 레이디의 요청을 거절하면 안되는 것이니까. 이 경우에는 무슨 이유를 대서 거부를 하게 되더라도 내가 손해를 보게 되있었다. 답을 하지 않는 이상. 아, 그러고보니 궁금한게 하나 있었다. 이 상황에서 말을 돌리기 딱 좋은.

"아! 누나, 그런데 제국과 코리안트 동맹이면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코리안트 국에서 선뜻 이 곳까지 지원군을 보내줄까요? 그다지 이익을 볼 것도 없을텐데요."

내 옆에 딱 붙어서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황제는 내 질문을 듣자 얼굴에서 장난스러웠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약간의 수심이 느껴지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는 황제. 황제 역시 그 것이 고민거리였던 것일까?

"그래,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 그 동안 민간 교류는 계속 해왔지만, 30년 전처럼 아무 조건 없이 코리안트국이 우리를 도와줄지 모르겠어. 원래 국제관계라는 것이 냉정하잖아."

황제는 말을 마친후 한숨을 내쉬었다. 한 나라를 짊어지고 있는 것 치고는 너무나 작은 황제의 어깨, 저 가냘픈 몸으로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나라를 이끌어왔다니. 진정한 군주란 국가란 존재에 혹사당하는 노예라 했던 어떤 책의 내용이 생각이 난다. 처음에 제국의 황제라는 존재로 황제를 만났을 때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몇 주간의 같이 여행을 하며 평범한 황제의 평범한 모습을 본 뒤라 그런지 그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만약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거에요?"

내 질문에 황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를 다시 한숨을 내쉰뒤 답을 했다.

"그럼 할 수 없지, 우리힘으로 해볼 수 밖에. 잠깐, 그나저나 아까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못들었어. 란트! 어서 대답해."

내가 말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다그치는 황제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동안 내방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으니까.

"누나, 그럼 나중에 뵈요."

"란트!"

황제의 외침을 무시하고, 난 급히 방문을 열어, 안에 있던 소피와 티티, 클라리가 놀란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며 아까 옷을 갈아입었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궈 버렀다. 요즘엔 정말 모두들 왜 그렇게 곤란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인지. 소피를 비롯해서..클라리, 이제 황제까지.

난 작은방에 놓여져 있는 일인용 침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런 내 귀로 들어오는 소피의 노랫소리. 잠깐 소피가 노래를? 하긴 엘프들은 특성상 노래를 잘부른 다고 했었지. 소피의 노래라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빛 한줄기 없는 칠흙빛 밤하늘

둥근 보름달 조차 희미해진 암흑의 그 곳

단 한줄기 비춰오는 깨끗한 흰빛의 별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에 빛조차 가려진

연약한 작은 풀들이 빛을 잃고 말라붙은 곳

단 한송이 피워오른 순수한 흰빛의 꽃



드넓은 광야 작은 풀숲하나 쉴 곳 없는  

하늘에는 배고픈 독수리만 가득한 그 곳

단 한마리 날아가는 고요한 흰빛의 새



깊은 숲으로 뒤덮인 해가 지는 대륙

끝없이 분열하는 허약한 인간들 사이 그 곳

단 한줄기 높이 솟은 고결한 흰빛의 검



아~~! 온화한 백색의 신이여

인간을 위해 그는 권능을 버렸네



아~~! 현명한 백색의 군주여

인간을 위해 그는 안락을 버렸네



아~~! 강인한 백색의 기사여

인간을 위해 그는 사랑을 버렸네



세월은 흐르고

인간들의 짧은 역사도 흐르며

모든 것을 바친 영웅 역시 잊혀지고

그리고 인간들은 영웅을 배신했네



세월은 흐르고

엘프들의 작은 노래도 흐르며

모든 것을 바친 적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리고 엘프들은 적을 그리워하네



엘프들은 노래하지 않지

그의 끝없는 무용담을

그로 인해 이루워진 인간들의 풍요를

그의 힘으로 바뀌어진 대륙의 역사를



하지만 엘프들은 노래하네

그를 배신할 인간들을 위해 그가 버렸던

그를 잊을 인간들을 위해 그가 잃어버린

그의 진실된 사랑하나를...



소피의 노랫소리가 멈추었다. 무척이나 맑은 목소리, 그리고 노래와 그다지 인연없는 내가 느끼기에도 아름답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소피는 엘프가 맞기는 맞았군. 그런데 분명이 처음 듣는 노랫말이었지만 또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노래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 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와~! 소피 정말 노래를 잘부르네? 훔, 소피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거야? 나도 처음들어보는 것 같은데. 아니 언젠가 한번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클라리는 언제 소피와 싸웠냐는 듯 무척이나 감동받은 목소리로 소피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옆방에서 들려왔다. 클라리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흠. 이번에도 마음이 통한 것일까? 그나저나 소피는 뭐 때문에 노래를 부른 것일까? 쩝, 뭐 그냥 소피 자신이 부르고 싶었으니까 불렀겠지만 평소에 소피에게 볼 수 없었던 행동이므로 왠지 궁금했다.

"저도 정확히는 잘 몰라요. 하지만 예전에 엘프들하고 전쟁을 했던, 하지만 또 엘프를 사랑한  인간의 왕을 노래한 것이란 것만 기억이 나네요."

엘프를 사랑한 인간이라? 티베리우스 단장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보군. 그런데 엘프와 인간들이 전쟁을 했다라. 예전에 아틸란티스의 황제도 엘프들과 전쟁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인간들과 엘프들의 전쟁 무슨 이유였을까? 쩝, 노래일 뿐인데 왜이렇게 마음이 써지는 것일까? 사랑을 버린 인간이라...또 엘프를 사랑한,  그리고 백색의 군주.

"소피, 부탁인데 다시 한번만 불러줄 수 있지?"

"네....에.."

클라리의 아양을 떠는 목소리와 소피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 대충 옆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나한체 그러는 것 처럼 클라리가 소피에게 매달려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는 거겠지. 쩝 그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클라리의 행동에 소피는 당황했을테고...다시 소피의 노랫소리가 천천히 하지만 맑게 울려퍼지기 시작하며, 난 서서히 몰려오는 잠을 거부하지 않고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주인님아! 어서 일어나! 급한 일이야! 급한일!"

시끄러운 소리에 난 간신히 눈을 떴다. 작은방, 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방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남쪽으로 난 창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해가 떠도 한참 전에 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소피의 노래를 듣다 잠이 들어버렸지. 휴 늦잠을 잔 것인가? 그런데 이 시끄러운 소리는 아무래도 클라리가 잠겨진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 잠에서 덜깬 듯 굳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워 방문 쪽으로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무슨일이야? 클라리."

내 짜증스런 목소리를 들은 클라리의 불평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클라리는 예상과는 다르게 평소처럼 불평을 하지 않고 말을 했다.

"아테네이오스 군대가 리투안 국경을 넘어 이오니스시를 포위해 버렸대. 지금 그 전령이 도착해서 아렐리아를 만나고 있어. 빨리 주인님도 회의실로 오라고 하던데?."

"아테네이오스라고 했어?"

아직 잠이 덜깨서 그런가? 위로 고개를 들어 클라리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는 것을 느끼며 짜쯩스러운 목소리로 클라리에게 말을 했다.

"응"

내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예상외로 순순히 답을 하는 클라리, 뭔가 다급하다는 것을 클라리도 느낀 것인지. 휴, 그런데 아테네이오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어제 아렐리아가 말하더니, 결국 전쟁인 것인가? 두국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다니 리투안, 황제의 고민거리가 또 하나 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국가간의 관계에 우연이란 것이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 특히 전쟁과 관련된 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지탄그와 아테네이오스간의 모종의 결탁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뭐, 그다지 경험도 없는 내가 헛소리 하는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난 대충 몸을 정돈해서 회의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어제 방에 있었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회의실로 가는 내 뒤를 따라오는 클라리,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클라리가 있으면 황제가 어제같이 곤란한 질문을 하지는 않을테니까.

잠에서 덜 깨었다는 맹점이 있었지만 어찌됬건, 몇번 와본적이 있는 길이라 그런지 어제에 비해서 회의장으로 향하는 길이 그다지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나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그렇게 급하게 부르는 것인지...

회의실 앞으로 다가가자 경비병이 알아보는 것인지 내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난 간단하게 답인사를 한 뒤, 회의실의 그 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회의실의 테이블에는 어제 저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사람들이 아마 리투니아의 실질적인 행정관료들이겠지.

"크리센공, 조금 늦으셨군요."

아렐리아의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 저말을 간단하게 풀이하면 " 또 늦잠을 잤네요~!"란 뜻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쩝 기분이 썩좋지는 못했다. 정말 리투니아 전체를 하번 감사해 버릴까? 관료들이 속속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싶은 모양이군.

"네, 이런저런 일로 조금 바빠서 늦었습니다. 특히 감..."

"아! 크리센공 부탁 드릴 일이 있어서 급하게 모셔오라고 했어요. 바쁘실텐데 죄송해요."

감, 이라는 말에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려는지 아렐리아가 눈치를 채고는 급하게 내 말을 끈는 것이 보였다. 바쁘긴 뭐가 바빠? 계속 자고 있었는데. 흠흠, 정말 비밀감사관이란 직책, 처음에는 황제의 꼭두각시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다지 반가운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승리감을 느끼며 난 어제처럼 내자리를 찾아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영주님, 오셨어요? 세리는 영주님이 오시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황제의 목소리, 그 순간 좋았던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내 옆에 앉아있는 황제를 곁눈으로 슬쩍 쳐다보았다. 핫,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눈가에 조금씩 떨림이 있는 것이 난 이제 죽었다. 스승님, 제발 황제 폐하 좀 어떻게 해주세요. 난 수도에서 서류와 씨름하고 있을 스승님을 향해 원망을 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클라리는 자리에 앉지 않고 황궁에서처럼 내 의자 뒤에 서서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서류를 몇장 든체 서 있었다. 딴에는 보좌관 흉내를 내 보겠다는 건데. 한숨밖에 나오지 않겠지만 최소한 황제의 장난에 클라리가 방어막 구실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을 보고 이이제이 전법이라고 하던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테이블의 끝에는 어제 보지 못한 풀플레이트 차림의 기사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갑옷의 곳곳이 상처가 나 있고, 며칠간 씻지를 못했는지 얼굴에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캐닌 경, 힘드시겠지만 다시 한번 이오니스의 상황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지원군 총사령관을 맡으실 분이 방금 오셨으니."

저 기사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이오니스에서 이 곳까지 온 기사였나? 잠깐, 지원군 총사령관을 맡으실 분이 방금 오셨단 말은...? 설마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

"네, 시장님.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이오니스를 벗어날 무렵, 이오니스는 바다쪽을 제외한 삼면을, 국경을 침범한 뒤 리투안 국경수비대를 전멸시킨 아테네이오스의 군대에 의해 포위당했습니다. 바다쪽에서는 아테네이오스 해군력을 이오니스 주둔 해군력이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나, 육지에서는 아테네니오스가 언제 그렇게 많은 병력을 마련했는지 군사력의 차이가 매우 커서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지원군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역시, 아테네이오스, 기사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오랜 시간 전쟁을 준비한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투니아의 육상 군사력이 6000이니까, 이오니스 정도라면 3000내지 많아도 5000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국가 단위의 전쟁이라면 수만의 병력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수성하는 측이 공성하는 측보다 유리하다고 할지라도 병사수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조금 힘들 것 같다. 게다가 이오니스 역시 요새같은 산성이 아니라 평지에 있는 성이니, 방어측에서도 그다지 크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캐닌 경, 이오니스 측에서는 얼마만큼의 지원군을 요청했지요?"

아렐리아의 질문에 기사는 잠시 숨을 돌린 후, 입을 열었다.

"3000정도를 보내 주셨으면 한다고 영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000이라, 리투니아 역시 지탄그가 언제처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절반의 병력인 3000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위협을 겪고 있는 이오니스를 무시한다면, 최악의 경우 이오니스가 정복당하고 리투니아에서 두나라의 연합 군대를 맞아 싸워야할 가능성도 있었다.

"1000명, 지원군은 1000명 밖에 보내드릴 수 없어요. 캐닌 경. 아까 말씀 드렸듯이, 저희 역시 지탄그의 국의 군대가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1000명이란 말에 그 기사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적은 수만이 될지도 모르는데 고작 1000명의 지원군이면 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성밖에서 전멸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기사가 사색이 될만 도하지, 그 말을 마친후 아렐리아가 날 보며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총사령관은 란트 크리센 자치령주님께서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면, 들어주실 수 있으시죠?"

난 슬쩍 황제를 쳐다보니, 황제의 눈치가 승락을 해라는? 난 그다지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구요! 고작 1000명을 이끌고 몇만이 될지 모르는 군대를 상대해야 할 전쟁에 뛰어들어라니.

"시장님, 1000명이라고 하셨습니까? 시장님, 제발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리투니아의 사정이 아무리 다급하다고 해도 1000명은 너무 적은 수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말해주는 캐닌이란 기사. 난 황제의 압력을 버티며 대답을 보류한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캐닌 경, 경의 말씀은, 제국 검술 대회에서 우승을 한 크리센공의 능력뿐만 아니라, 크리센 공께 우승자리를 양보한 황제폐하의 능력까지 의심하는 뜻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크리센 공 한분의 능력만으로도 2000이란 병사력의 가치 이상은 충분히 될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헛, 고난이도의 술책을 사용하는 아렐리아,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내가 못가겠다고 발뺌을 할 수 없게 되잖아. 완전히 난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졸지에 허락하는 것이 되버렸군.

"시장님, 제말 뜻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아렐리아의 고난이도 화법에 걸려든 기사는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휴, 불쌍한 기사 내가 도와줘야지.

"시장님, 지원군은 언제쯤 출발할 예정이죠?"

내 질문에 아렐리아의 기사를 향하고 있던 아렐리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말 완전히 승락한 꼴이 되버렸군. 세상에 내 주제에 군대를 지휘하다니. 병법서 같은거야 잔뜩 읽어뒀지만 실전하고 이론은 다르다는 사실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검술 교본서 수백권을 읽었다고 검술의 달인이 되지는 않는 것 처럼. 자신에게 더 이상 아렐리아의 시선이 오지 않자, 그 기사는 간신히 진정을 하는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출발을 할 예정이에요. 소집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있고, 저녁이나 밤에 출발하는 것은 군대 전체의 사기에 그다지 좋지 않으니."

내일 아침이라...정말 뭘 믿고, 내게 군사를 딸려 보내는 것일까? 잠깐, 그러고보니, 나보다는 황제의 지휘능력을 더 믿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라면 1000명의 군사력으로 10배 이상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난 아미의 도움을 받은 독자적인 군대나 다름 없는 역할을 하고, 이제 일주일이 지났으니 드레곤으로 폴리모프까지 할 수 있으니, 수천의 군사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대충 이런 것이 황제와 아렐리아의 생각인 것 같군. 아까 기사에게 예를 들 때 황제의 말을 꺼낸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

"그럼 그렇게 결정을 하도록 하지요. 다른 분들 께서는 각 구역에서 1소대씩 차출해서 늦어도 오늘 저녁까지,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세요. 그 밖에 모병활동은 어제 결정한 그대로 변경없이 계속 해서 해주세요."

아렐리아의 말에 관료들은 별 표정의 변화없이 들고 온 서류에 묵묵이 무엇인가를 적을 뿐이었다. 아미가 있으면 인간들한테 죽는일은 없을 테지만 본격적인 전쟁에 뛰어 드는 것이라면 조금 위험했다. 하긴, 내가 특별히 내 목숨을 귀중하게 여긴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정말 어떻게 보면 제 3자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깁숙하게 제국의 일에 관여하게 될 줄은 이 모두는 내가 운이 없었던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또, 운이 지나치게 많던가.

"캐닌경, 그럼 피곤하실텐데 목욕이라도 하시며 몸을 풀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시장님."

아렐리아의 말에 그 기사는 고개를 숙인 후, 한 하녀의 뒤를 따라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필요한 것을 다 적은 듯한 관료들이 한둘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네사람. 아니 두명의 사람과 한명의 하프엘프, 그리고 검하나.

"폐하, 도대체 무슨 생각이시죠? 제가 총사령관이라니요. 그 것도 지극히 도박성이 강한 전쟁에서.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전 군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악에 바치다 보니, 폐하란 호칭이 저절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군, 공식적인 석상에서 말을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내 말을 들은 황제는 이런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한번 경험을 쌓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란트?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섰다는 것일 간과하지마, 설마 제국의 황제인 내가 나라를 버려두고, 승산도 없는 전투에 무책임하게 죽을 곳을 찾아 뛰어들겠어?"

정신학 기본이란 제목이 붙어 있던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과로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의 증상으로 자살을 고려하는 중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황제는 잊고 있군. 어쨌든 황제가 저정도로 말할 정도면 승산이 있다는 것인가? 수십배의 군대를 상대로?

"8서클 마스터 마법사의 능력은 일반 사병 수만명 이상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크리센공. 게다가 공께서는 대륙에서 두번째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마법사이시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죠? "

나를 향해 말을 하는 아렐리아. 아렐리아의 말싸움 공격방법이 칭찬 방법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기를 해야하는게 내 운명이라는 걸까?

"휴, 정말. 전 뭐 병사들의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라는 이야긴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을 더 우선시 할테니. 일단 직책을 맡았으니 언제나 처럼 돕도록 하지요. 폐하. 부장으로써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

난 다시 한번 폐하라는 말을 강조하며 원망섞인 눈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정말 황관만 찾고 돌아오면 끝이날 줄 알았던 여행인데, 그러고 보니 점점 황관이 있는 곳을 향해 원하든 원치 않던 가고 있기는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영주님, 소녀 세리는 영주님의 부장으로써,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보필하도록 할께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황제는 다시 한번 절대로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그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답을 했다.

난 한숨을 내 쉬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쩝. 전쟁이라 또, 사람들의 피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간의 전쟁이라면, 용병이 아닌, 눈빛이 사악한 죄많은 녀석들이 아닌,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희생을 당할 그 당사자에게는 그 작은 것이 큰 것 이상으로 소중할 수도 있으니까.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