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7장 리투니아(7) 출전전야-2(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6. 22. PM 1:39:54·조회 2173·추천 50
에피소드 48 출전전야-2
"주인님아, 배 안 고파?"
클라리는 배를 욺켜쥔체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배가 고프기는 왜 안고파? 이 모든 일이 다 누구 때문인데. 정말 오랫만에 본격적인 운동을 한데다 사람들에게 시달렸던 까닭에 뱃속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이 굳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조금 훈련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오느라 조금 먼 곳까지 정신없이 걸어온 까닭에 시간이 조금 많이 흘렀다. 지금 시청에 돌아가 봤자 저녁 무렵은 지났을 테니, 이런 저런 상황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야 될 것 같다. 난 클라리를 향해 원망섞인 눈초리로 노려본 다음, 일행들과 함께 부둣가의 가까운 곳에 보이는 식당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둣가인 까닭에 식당안에는 선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실내에 들어와서 살펴보니 꽤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 그 넓은 식당 안에 있는 남자 선원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쪽을 향했다. 쩝, 그럴 만도하지, 선원이라면 여자란 존제에 대해서는 꼼짝을 못할텐데, 성격이 어떻든 최소한 보통이상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세명이나 등장을 했으니.
난 그다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생각에 허릿춤에 차고 있는 검을 되도록 강조하는 걸음으로 식당 한구석을 향해 걸어가 앉았다. 어찌됬건 낮의 반응으로 볼 때, 나란 존제는 귀족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았고, 게다가 검도 차고 있으니 아무리 만만하게 보인다고 해도 쉽게 시비를 건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노예에서 귀족으로 상승한 것은 옷차림을 비롯한 여러가지 것들의 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으로 보여진다는게 그다지 흡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예로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선원들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체 흘끔흘끔 이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계급제도는 많이 쳘폐되었어도 그래도 귀족은 귀족으로써의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인가?
"어서오세요,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우리쪽을 향해 식당의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외모와 차림세를 보니, 이야기 같은 곳에 종종 등장하는 것처럼,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의 딸 쯤 되는 것 같았다. 식당 안에는 이 여자 이 외에도 많은 종업원이 있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왠지 그런 것 같다.
"오늘 특별 메뉴는?"
내 질문에 종업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답을 했다.
"전복 정식이에요. 오늘따라 싱싱한 전복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전복 요리라. 돈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군. 하지만 그다지 다른 일에 돈을 쓸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제국의 상관에 보관되어 있는 돈만 해도 엄청난 양이니, 조금 써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다지 한 일도 없이 엄청난 급료를 제국의 정부로 부터 받았던 까닭에. 게다가 오늘 지출한 돈 만큼 격투기 대회의 상금으로 다시 보충을 해서 실제로 밖에 나와 사용한 돈의 액수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 전복 정식으로 3인분, 1인분은 채소와 과일류의 음식으로 준비해 줘."
아랫사람에게 말을 하는 완벽한 낮춤, 원래 내가 주로 사용하던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고귀한 인물들과 같이 지내오는 동안 높임을 주로 사용했던 이유로 말의 사용에 조금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의 내 신세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상중의 하나였다.
"네, 손님, 전복 정식 3인분, 채소와 과일류로 1인분, 아주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자 종업원은 주문한 내용을 활달한 목소리로 되풀이 한 다음 부엌쪽을 향해 걸어갔다. 난 여자 종업원이 걸어간 뒤 소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피, 이 것."
난 아까 받은 그 '인어의 눈물'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품에서 꺼내 소피에게 건내주었다. 소피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테이블위에 놓여진 그 목걸이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란트, 고마워요."
목걸이를 쥔 소피는 언제나의 소피처럼 얼굴이 조금 빨갛게 된체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소피가 저 목걸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던 내 추측이 맞은 것 같았다.
"주인님, 목걸이 소피한테 줄거야? 힝, 나도 가지고 싶은데..."
옆에 앉아 있던 클라리는 조금 투정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지만 말하는 목소리에서 정말 꼭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이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클라리의 이 말은 무시해도 별 상관은 없다는 말. 클라리와의 수년간의 생활 중 끝에 터득한 노하우였다.
"클라리, 넌 낮에 장신구하고 옷하고 잔뜩 사줬잖아."
내 대답에 클라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투정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클라리가 산 물건들은 목걸이 세개, 팔찌 두개 이상하게도 반지는 사지 않았지만, 그런 보석류와 그 밖에 셀 수 없는 숫자의 옷가지들. 아무리 주인이 돈이 많기로서니 그렇게 막써도 되는 걸까?
소피의 옆에 앉아 있던 티티는 소피가 쥐고 있는 목걸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얼굴에 빙긋 미소를 띄우는 것이 보였다. 저 다크 엘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레 저런 표정을 하는거야? 클라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 만큼이나 티티가 미소를 지을 때 역시 불안감이 드는 것은 마찮가지였다. 최근에 티티의 주도로 곤란한 일을 많이 겪었던 까닭인 것 같다.
한참동안이나 목걸이를 꼭 쥐고만 있던 소피는 티티의 도움을 받아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었다. 원래 선물을 한 내가 걸어줘야 하겠지만, 쩝 그런 일은 그다지 하기가 그랬다. 그런데 목걸이가 소피의 목에 걸리는 순간, 보석에서 순간 빛이 난 것처럼 느껴진 것은...? 내가 불빛에 반짝인 것을 잘못본 것일까? 아무런 마법적인 기운이 그 목걸이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본 것이겠지. 오늘따라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까 그 남자 엘프의 모습을 잘 못 본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착시 현상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이오니스에 아테네이오스군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
"그래, 그게 사실인가? 난 혹시나 했는데, 전쟁이라니...."
"내일 이오니스로 지원군을 보낸다고 하던데, 아테네이오스 녀석들 갑자기 전쟁을 일으키다니, 녀석들 단단히 미쳐도 미쳤지."
선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낮춘체 수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그 기사가 구원을 요청하러 온지 별로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 소문이 퍼진 것일까? 아무래도 지원군의 모집 건 때문에 그 소문이 더욱더 빨리 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탄그 군이 바로 이 도시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쩝,아마도 그 사실을 일반 시민들이 알았다면 길거리 격투대회 따위에 열광하고 있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오니스 역시 같은 제국내의 도시였지만, 수백년간 독립된 나라로 있다가 다시 제국에 편입된지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는 생각이 많이 부족했다. 동맹국 정도의 취급 이상은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제국의 몇안되는 약점중에 하나라고 할까? 아직 나라전체가 완벽히 결집되어 있는 듯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춧돌을 하나 빼면 무너질 수도 있는 집같이, 하지만 기본 토대가 워낙 튼튼하니 만약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곧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춧돌 하나를 빼는 것 역시, 스승님과 황제,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과 같은 인물들이 있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테니.
"음식 나왔습니다~"
주위 선원들을 비롯한 식당의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을 기울여 듣고 있는 동안 음식이 다 만들어졌는지, 아까 주문을 받아간 그 여자 종업원이 접시를 하나씩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있었다. 정말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음식들이 반갑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난 체면 같은 것을 무시한체 급히 숫가락을 들어 내 앞에 놓인 전복 스프를 한 숫가락 떴다. 그런데 그 순간, 식당문이 열리며 왁자직걸하게 열댓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하지만 뭐, 나와 그다지 상관이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므로 난 숫가락에 담긴 스프를 입에 넣어 목구멍으로 흘러 넣었다. 배가 고픈 이 상황에서는 먹는게 무조건 적으로 우선이었으니까.
"엇! 이게 누구십니까? 그 쌈잘하시는 귀족 도련님이 아니십니까?"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조금 전의 격투기 대회에서 나와 싸웠던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이 곳에는? 부둣가라도 격투기 대회가 있었던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에 난 조금 의외라는 말투로 그 사람을 향해 말을 했다.
"당신은? 아까..."
"훗, 같은 식당에서 만나게 되다니 이 것도 인연이겠군요. 귀족도련님, 이 미천한 평민이 동석해도 실례는 되지 않겠지요?"
여전히 조금 건방지다는 느낌이 드는 말투로 말을 하는 녀석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바로 옆의 빈 의자에 앉아 버렸다. 녀석의 어투에 격투기 대회 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높임을 사용한다는 정도? 하지만 제국에서 귀족에게 그다지 높임을 사용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제국은 이번 황제의 등극 이후로 신분차이에 대한 제약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역시 법적일뿐 실제로는 수천년간 복잡하게 나눠져 있던 계급이 단 30년 사이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 더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만큼 힘든 일이 없을 테니. 어찌됬건 그런 까닭에 귀족들이 평민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경향은 여전히 사라지지 못하고 있었다.
난 숫가락을 들고있던 숫가락을 아쉬움이 가득담긴 눈으로 쳐다본 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다음 주위를 살펴 보니, 아무래도 지금 막 식당에 들어온 사람들과 이 남자가 모두 일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아무래도 작은 용병단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분위기나 실력상 이 사람이 용병대장일 가능성이 높았고.
"귀족도련님, 전 카밀 메르틴이라 합니다. 이리 저리 둘러대며 길게 끄는 것은 체질에 맞지도 않고 단도 직입적으로 말씀 드리죠. 아까 도련님께 무례를 했던 것은 사과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귀족도령하면 자기일조차 제대로 못하며 부모의 재산 덕에 간신히 목숨을 유지해 나가는 변변찮은 놈들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제가 졌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술이 아닌 당신의 격투기 실력을 보니,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과라? 카밀이란 이 녀석은 전과는 다르게 그 건방진 말투를 완전히 없애고,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로 내게 말을 했다. 녀석의 말처럼 귀족 도령들이 대체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특히 제국보다 피투안이 더 심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과 집안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황태자 녀석과 리아인은 황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해결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힐튼집안 등. 건전한 의식을 가진 귀족들도 충분히 많이 있었다. 쩝, 그러고 보니, 내가 왕족이라고 지금 귀족 편을 들고 있는 건가? 나도 참.
그리고 검술이 아닌 격투기 실력을 보았다는 말 역시, 의미가 깊었다. 검술이야 기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귀족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수련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격투기는 정말 나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어느 귀족 가문에서 자신의 자식이 격투기를 하도록 시킬리가 없었다.
"귀족 치고는 좀 험하게 자라서 그렇겠지. 난 란트 크리센이라고 하오."
난 녀석의 말에 별 다른 감정을 싫지 않은체 답을 했다. 물론, 답의 내용은 낮에 녀석이 했던 말에 대한 답도 들어가 있었다. 녀석은 내 대답에 조금 웃은 후,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외모와 다르게 성격 역시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도련님. 훗, 제가 귀족들에게 당한 것이 많다보니, 귀족에 대해 좋게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도련님 처럼 고생한번 안하고 큰 것같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분께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손바닥을 보니, 험하게 자랐다는 당신의 말이 이해가 가는 듯 싶습니다."
녀석의 말에 난 내 손바닥을 보았다. 손바닥의 곳곳에 있는 굳은살, 검을 어릴 때부터 잡아왔다는 흔적이었다. 뭐, 다른 사람들의 굳은살과는 다르게 실제로 만져보면 촉감은 평범한 살과 그다지 차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편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는 충분했다. 물론 손등을 비롯한 손의 바깥부분은 여자손과 비슷할 정도로 여리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는한 그 사실 역시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정말 난 이런 점에서 여러가지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다. 고생을 하고서도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을 받지 못하니 말이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기적인 귀족 녀석들 때문에 30년 전의 대전쟁 때,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같은 귀족이라도 플라비우스 부시장님처럼 목숨을 버리며 성과 시민들을 위해 희생하셨던 분도 계셨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기억이 속에 남아있는 플라비우스 부시장님에게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도련님과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카밀, 이 사람은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다지 망설임도 없이 계속 내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 사람 역시 30년 전의 대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사람들 중 하나인가? 휴, 플라비우스 부시장, 아렐리아의 할아버지이고, 티베리우스 단장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이 리투니아성이 이 곳으로 피난을 온 귀족들의 배신으로 몬스터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쳐했을 때, 그가 자신의 목숨 따위는 포기하며 병사들의 진두에서 지휘를 하며 방어를 했던 까닭에 리투니아가 점령당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관점에서 극선에 가까운 행동을 했던 사람과 나같은 놈을 비유하다니, 아렐리아의 할아버지께 실례나 되지 않을런지 모르겠다.
"아니,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그 분과 비교조차 될 수 있을리가 없지."
내 대답에 녀석은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린 후 말을 이었다. 내가 녀석의 눈빛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 그다지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제 사람보는 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확실히 보장하죠. 란트 도련님은 분명히, 큰 인물을 될 것입니다. 역사의 한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분명히 역사의 한페이지에 이름을 남기긴 남겼다. 희대의 살인마이며 피의 마왕으로.
영웅, 난세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난 분명히 아니었다. 스승님이나 아버지,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과 같은 영웅이 되기에는 난 여러가지 점에서 어긋나는 것이 많은 관게로. 오히려 그런면에서는 차라리 황태자 녀석이 나보다는 더 영웅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녀석은 겉으로 드러난 나쁜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밀,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걸까? 내가 제국 서열 5위라는 것을 알리가 없고, 카밀의 말이 아부는 아닌 것 같지만 그다지 기뻐할 만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단순한 호감에서 나오는 친분의 표시 정도라고 생각을 할까?
그 뒤에 이어진 잠깐의 침묵 속에서 난 일단 다급한 식욕을 해결하기에 분주했다. 난 정신없이 음식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적당히 배가 찬 다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시간이 꽤 흐른 까닭인지, 넓은 식당안에는 아까 들어온 이 카밀이란 용병의 일행일듯한 사람과 우리 일행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많던 종업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음식을 시켰는지 카밀이란 이 용병은 우리 테이블에서 천연덕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다시 남은 음식을 마저 먹기 위해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한 때의 사람들이 식당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저녁 무렵은 이미 지났을 텐데, 그 쪽을 쳐다보니, 외모가 용병인 카밀의 일행들 보다 더 험악해 보이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들을 본 카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저 녀석들도 용병단인가?
"카밀 메르틴, 드디어 찾았군, 녀석들. 쫓기고 있는 주제에 격투기 대회에까지 고개를 내밀다니, 카밀, 내게 내어줄 목숨이 하나 더 있나 보구나. 하하하."
갑자기 식당안으로 난입한 녀석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회색빛 옷의 남자는 허릿춤에서 칼을 뽑아들며, 악당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대사를 전형적으로 읊고 있었다. 그 들의 등장에 카밀과 그의 일행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들 역시 칼을 뽑아들었다. 적대적 사이인가? 하지만 인원 수에서는 절대적으로 카밀일행이 열세였다. 카밀의 일행은 열대여섯명 정도인데 반해, 방금 들어온 놈들은 서른을 훨씬 넘긴듯 보였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느껴지는 기운이 여관의 밖에도 녀석들의 패거리가 상당수 더 있는 것 같았다.
"라쉬카 크라비어스! 네 녀석이 어떻게 제국의 영토까지? 제국의 치안대가 네 녀석들을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카밀의 분노한 목소리는 라쉬카라 불린, 회색빛의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카밀의 목소리를 듣고도 라쉬카라 불린 사람은 별 감정의 동요없이 차분히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라쉬카란 저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눈빛을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빛이 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내 허릿춤에서 칼이 뻗어나가 녀석의 목숨을 빼앗았을. 그리고 카밀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제국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위치의 사람인 것 같다.
"후후, 네 녀석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제국에 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보군. 통행증 정도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지, 카밀. 마법사를 화나게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모르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지."
그말을 마친 녀석은 자신의 손에 마나를 모우더니 식당의 주방쪽을 향해 뻗었다. 헛, 저녀석 마법사 였었나? 내가 방어막을 캐스팅을 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순간적으로 식당안에 몰아치는 광풍, 그 광풍은 식당과 주방을 나누고 있던 작은 벽을 뚫고 주방에 직격을 했다. 그리고 터지는 비명소리...
"꺅! 아빠! 괜찮으세요! 아빠."
아까 그 여자 종업원의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젠장, 저 녀석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다니,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에게 까지! 단지 자신의 적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 하기 위해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입히다니.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저 곳에 사람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 눈빛 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카밀 측의 사람들의 얼굴빛은 점점 더 어두워 지는 것이 보였다.
"라쉬카! 괴물 사냥꾼 녀석!, 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못할 오크들 수백을 살해한 네녀석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젠장! 게다가 그 녀석들은 옆 마을 인간들이 굶어죽어가고 있을 때, 자신의 음식까지 나눠졌었다구! 그리고 죄없는 사람들까지 또 일에 끌어드리다니!"
카밀의 목소리, 잠깐, 그런데 저 녀석이 괴물 사냥꾼이었다고? 어쩐히 하는 행동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난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부엌쪽을 향해 광범위하게 치료마법을 사용한 다음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카밀과 저 라쉬카라는 녀석과의 사연, 우리마을에서 벌어졌던 일과도 비슷한 일이 라쉬카와 카밀 저 두명의 사이에서도 일어났던 것일까?
"후후, 오크들은 모두 죽여야할 인간들의 적일 뿐, 게다가 그들의 목을 모아가면 돈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이상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냐? 어쨌든, 네 녀석이 이 크라비어스님의 일을 방해한 것이 네 실수 였다. 그런 네 녀석의 죄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선 약간의 희생쯤이야 불가피하지.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 식당은 이미 포위 된지 오래고. 이제 전처럼 피할 곳도 없는 것 같이 보이니, 이만 이 지겨운 악연을 끊도록 하는게 좋겠군. 뭐 무릎을 꿇고 목숨을 빈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말이 끝이나도 카밀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체 조금 긴장한, 그리고 약간의 공포가 느껴지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라쉬카는 카밀이 서 있는 우리쪽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카밀은 검을 욺켜 쥔체 그의 모습을 쳐다 보며 절망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젠장, 도련님 어서 옆으로 피하십시오.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련님께까지 피해를 입힐 수는 없습니다."
카밀 저녀석도 영웅의 기질이 조금 있는 것일까? 그런데 저 괴물 사냥꾼 녀석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관하지 않은체 마법을 캐스팅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참지는 못할 것 같다. 난 피하라는 카밀의 말을 무시하고 묵묵히 마법을 캐스팅 하고 있는 녀석을 쳐다볼 뿐이었다.
"홀리 쉴드!"
녀석의 마법이 완성된 순간, 그 전에 이미 준비가 된 캐스팅으로 생겨난 흰색의 막이 라쉬카란 녀석이 쏘아보낸 날카로운 바람의 기운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보이는 괴물사냥꾼 녀석,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랫만에 괴물 사냥꾼 녀석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랫만에 괴물 사냥꾼을 물리칠 수 있겠군. 난 그 라쉬카란 녀석 만큼이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카밀의 앞에 일어서서 괴물 사냥꾼 녀석을 쳐다보았다.
"젠장, 넌 왠 애송이 녀석이냐? 우리일에 관계가 없는 놈이면 방해하지 말고 어서 꺼져!"
라쉬카는 자신의 마법이 막혔기 때문인지, 화가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애송이라. 그래 누가 애송이인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8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세상에 그리 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리고 애송이라 불릴 정도로 약하다는 생각도 해본적은 없고. 만약 8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애송이로 불릴 정도로 마법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이미 이 세상은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인해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나와 일행의 목숨을 노렸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네 녀석이 말한데로 마법사를 화나게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네 녀석에게도 한번 보여주는게 좋을 것 같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 일행 중 아무도, 저 라쉬카란 괴물 사냥꾼 녀석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태평스럽게 식사를 하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 도대체 뭘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하긴 저들중 단 한명만으로도 충분히 라쉬카란 녀석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말을 마친 후, 내 말에 화가 난 까닭인지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이 보이는 괴물 사냥꾼 녀석이 캐스팅하기 전, 최대한 좁은 범위에서 집중적인 파워가 생길수 있도록 마법을 외웠다.
"홀리 스톰!"
백여개에 가까운 숫자의 흰색의 구가 녀석과 녀석의 일행인 듯한 용병들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나마 하고 있던 캐스팅 마져 실패해 버린 듯 보이는 그 괴물사냥꾼 녀석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흰색의 구를 쳐다보았다. 저 표정을 보니, 평소에 나쁜 행동을 많이 했었던 것 같군. 정말 바르게 산 사람이라면 신성계 공격 마법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신성계 공격마법은 그들의 죄의 무게만큼 타격을 입히니.
괴물사냥꾼 녀석 주위에 있던 검을 든 패거리들은 흰색의 구를 맞는 순간, 대부분 쓰러져 버렸다. 라쉬카 녀석은 흰 구체가 자신의 몸에 날라드는 순간 자신의 마나를 분출해 간신히 마법을 막아낸 듯 보였다. 하지만 이미 녀석의 회색빛 옷은 너덜너덜하게 되었고, 녀석은 서 있는 것 조차 버겨운 듯 보였다.
"어떻게 고위 신성 마법을? 네 녀석 신관인가?"
라쉬카란 녀석은 신음하듯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을 했다. 괴물 사냥꾼 주제에 궁금한 것이 너무 많군. 녀석을 향해 생겨난 마음에서 이는 분노,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제어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맹목적인 분노는 아닌 것 같았다.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마''법''사' 라고. 아이스 볼트 일레븐! 스나이핑 포인트!"
난 녀석을 향해 말을 한 직 후, 캐스팅을 완료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생겨난 열한개의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은 그 마법사가 서 있는 곳을 단 한 곳을 향해 집중이 되어 뻗어져 나갔다. 마법을 캐스팅 하는 순간 저 녀석을 살려서 배후를 알아보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법사를 한 곳에 가두어서 정보를 캐낸 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란 생각에 그 잠깐의 망설임은 곧 사라져 버렸다.
"일레븐 캐스팅! 어떻게 제국에...제국에...이런 실력의 마법사가 또 있었!"
녀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얼음 조각들을 보며 말을 했다. 사는 것 조차 포기한 듯 보이는 녀석의 온몸을 얼음조각들이 관통하였다. 그리고 얼음 조각들이 사라지고 녀석은 몸전체가 피투성이가 된체 바닥에 쓰러졌다.
"라쉬카님! 무슨 일입니까?"
라쉬카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던 까닭인지 갑자기 밖에서 우르르 쏟아져들어오는 라쉬카 녀석의 나머지 일당, 아까 식당안에 있었던 녀석들의 동료들의 수보다 지금 들어온 녀석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아무리 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많은 수의 무장 병력이 돌아다니는데도 제국 경비대는 제지하지 않고 뭘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평화시기라고지만 이정도 수준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었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 동양의 속담처럼 완벽해 보이던 리투안의 치안도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안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바닥에 쓰러진 패거리의 모습과 라쉬카의 모습을 보더니 모두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다지 힘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히 마무리를 해두는 것이 제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군. 저 녀석들이 도시에서 난동을 피우면 곤란하니까. 가이우스의 정보록에 기록되어 있는 내가 죽인 사람의 수가 이번에도 급격히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 블레스터. 트리플!"
세개의 마법진을 통해 생겨난 얼음 조각들은 지금 들어온 녀석들을 향해 무차별 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대량 살상, 하지만 최근에 사람들을 죽일 때 들던 왠지모를 찝찝함이 이번에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괴물 사냥꾼 녀석들이기 때문일까? 피의 전사로서의 내 기질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 소피, 티티, 이만 돌아가자."
난 넋을 놓고 있는 카밀일행들과 다르게 식사를 마친 뒤,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있는 우리 일행들을 향해 말을 했다. 이런 곳에서 더 있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분위기상 이만 떠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에 돌아가면 아렐리아보고 해결을 해달라고 해야 되겠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그 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했고. 제국은 괴물 사냥꾼들의 영토내 출입을 법적으로 엄금하고 있었다.
난 검과 엘프자매가 테이블에서 일어서고 있는 동안 검을 든체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카밀에게 금화 100개가 든 돈주머니를 주며 말을 했다.
"나중에 여관 주인이 정신을 차리면 식당 수리비로 대신 좀 지불해 줘. 치안대에 대한 걱정은 하지말고, 내가 손을 써볼테니."
카밀은 돈주머니를 받으며, 여전히 멍하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쩝, 뭔가 말을 더 해주고 싶지만. 그다지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아무리 놀랬다고 하지만 저렇게 멍하니 쳐다보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면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걸까?
난 카밀과 그의 동료들을 뒤에 둔체 일행들을 데리고 시체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식당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내 뒤를 향해 카밀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란트 도련님, 당신의 정체는...도대체?"
난 돌아서서 카밀을 향해 최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줬다. 어짜피 나중에 시체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안대가 오면 알게 될테니까. 그리고 뭐 그다지 내가 황제도 아니고 내 신분에 대해 비밀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제국 서열 5위,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
허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카밀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난 식당을 빠져 나와 시청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아렐리아한테 뭐라고 말을 한다? 리투니아의 선량한 시민과 제국 서열 5위의 고위 관료인 란트 크리센 영주를 살해하려고해서 수십여명의 가까운 사람들을 죽여버렸다고 하면 이해를 할까? 비밀 감사관의 직책을 이용해서 그 라쉬카 녀석이 말을 했던 '줄' 건을 이용해서 밀어 붙이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괴물 사냥꾼을 제국의 영토내에 들인 그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으니까 내가 몰아붙이면 아렐리아는 아무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식당에서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은체 조용해진 클라리와 엘프자매, 이 잠깐의 적막 속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고독감이 드는 것 같았다. 당시에도 느꼈던 것 처럼, 괴물사냥꾼 패거리를 죽였다는 사실에 그다지 후회나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피의 전사 였다는 증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고독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래도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였을 때, 하루를 멀다하고 괴물사냥꾼 녀석들과 싸우던, 그 때의 기억과 고독감.
"주인님아, 배 안 고파?"
클라리는 배를 욺켜쥔체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배가 고프기는 왜 안고파? 이 모든 일이 다 누구 때문인데. 정말 오랫만에 본격적인 운동을 한데다 사람들에게 시달렸던 까닭에 뱃속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이 굳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조금 훈련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오느라 조금 먼 곳까지 정신없이 걸어온 까닭에 시간이 조금 많이 흘렀다. 지금 시청에 돌아가 봤자 저녁 무렵은 지났을 테니, 이런 저런 상황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야 될 것 같다. 난 클라리를 향해 원망섞인 눈초리로 노려본 다음, 일행들과 함께 부둣가의 가까운 곳에 보이는 식당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둣가인 까닭에 식당안에는 선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실내에 들어와서 살펴보니 꽤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 그 넓은 식당 안에 있는 남자 선원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쪽을 향했다. 쩝, 그럴 만도하지, 선원이라면 여자란 존제에 대해서는 꼼짝을 못할텐데, 성격이 어떻든 최소한 보통이상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세명이나 등장을 했으니.
난 그다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생각에 허릿춤에 차고 있는 검을 되도록 강조하는 걸음으로 식당 한구석을 향해 걸어가 앉았다. 어찌됬건 낮의 반응으로 볼 때, 나란 존제는 귀족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았고, 게다가 검도 차고 있으니 아무리 만만하게 보인다고 해도 쉽게 시비를 건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노예에서 귀족으로 상승한 것은 옷차림을 비롯한 여러가지 것들의 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으로 보여진다는게 그다지 흡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예로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선원들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체 흘끔흘끔 이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계급제도는 많이 쳘폐되었어도 그래도 귀족은 귀족으로써의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인가?
"어서오세요,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우리쪽을 향해 식당의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외모와 차림세를 보니, 이야기 같은 곳에 종종 등장하는 것처럼,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의 딸 쯤 되는 것 같았다. 식당 안에는 이 여자 이 외에도 많은 종업원이 있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왠지 그런 것 같다.
"오늘 특별 메뉴는?"
내 질문에 종업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답을 했다.
"전복 정식이에요. 오늘따라 싱싱한 전복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전복 요리라. 돈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군. 하지만 그다지 다른 일에 돈을 쓸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제국의 상관에 보관되어 있는 돈만 해도 엄청난 양이니, 조금 써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다지 한 일도 없이 엄청난 급료를 제국의 정부로 부터 받았던 까닭에. 게다가 오늘 지출한 돈 만큼 격투기 대회의 상금으로 다시 보충을 해서 실제로 밖에 나와 사용한 돈의 액수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 전복 정식으로 3인분, 1인분은 채소와 과일류의 음식으로 준비해 줘."
아랫사람에게 말을 하는 완벽한 낮춤, 원래 내가 주로 사용하던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고귀한 인물들과 같이 지내오는 동안 높임을 주로 사용했던 이유로 말의 사용에 조금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의 내 신세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상중의 하나였다.
"네, 손님, 전복 정식 3인분, 채소와 과일류로 1인분, 아주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자 종업원은 주문한 내용을 활달한 목소리로 되풀이 한 다음 부엌쪽을 향해 걸어갔다. 난 여자 종업원이 걸어간 뒤 소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피, 이 것."
난 아까 받은 그 '인어의 눈물'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품에서 꺼내 소피에게 건내주었다. 소피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테이블위에 놓여진 그 목걸이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란트, 고마워요."
목걸이를 쥔 소피는 언제나의 소피처럼 얼굴이 조금 빨갛게 된체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소피가 저 목걸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던 내 추측이 맞은 것 같았다.
"주인님, 목걸이 소피한테 줄거야? 힝, 나도 가지고 싶은데..."
옆에 앉아 있던 클라리는 조금 투정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지만 말하는 목소리에서 정말 꼭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이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클라리의 이 말은 무시해도 별 상관은 없다는 말. 클라리와의 수년간의 생활 중 끝에 터득한 노하우였다.
"클라리, 넌 낮에 장신구하고 옷하고 잔뜩 사줬잖아."
내 대답에 클라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투정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클라리가 산 물건들은 목걸이 세개, 팔찌 두개 이상하게도 반지는 사지 않았지만, 그런 보석류와 그 밖에 셀 수 없는 숫자의 옷가지들. 아무리 주인이 돈이 많기로서니 그렇게 막써도 되는 걸까?
소피의 옆에 앉아 있던 티티는 소피가 쥐고 있는 목걸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얼굴에 빙긋 미소를 띄우는 것이 보였다. 저 다크 엘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레 저런 표정을 하는거야? 클라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 만큼이나 티티가 미소를 지을 때 역시 불안감이 드는 것은 마찮가지였다. 최근에 티티의 주도로 곤란한 일을 많이 겪었던 까닭인 것 같다.
한참동안이나 목걸이를 꼭 쥐고만 있던 소피는 티티의 도움을 받아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었다. 원래 선물을 한 내가 걸어줘야 하겠지만, 쩝 그런 일은 그다지 하기가 그랬다. 그런데 목걸이가 소피의 목에 걸리는 순간, 보석에서 순간 빛이 난 것처럼 느껴진 것은...? 내가 불빛에 반짝인 것을 잘못본 것일까? 아무런 마법적인 기운이 그 목걸이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본 것이겠지. 오늘따라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까 그 남자 엘프의 모습을 잘 못 본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착시 현상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이오니스에 아테네이오스군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
"그래, 그게 사실인가? 난 혹시나 했는데, 전쟁이라니...."
"내일 이오니스로 지원군을 보낸다고 하던데, 아테네이오스 녀석들 갑자기 전쟁을 일으키다니, 녀석들 단단히 미쳐도 미쳤지."
선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낮춘체 수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그 기사가 구원을 요청하러 온지 별로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 소문이 퍼진 것일까? 아무래도 지원군의 모집 건 때문에 그 소문이 더욱더 빨리 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탄그 군이 바로 이 도시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쩝,아마도 그 사실을 일반 시민들이 알았다면 길거리 격투대회 따위에 열광하고 있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오니스 역시 같은 제국내의 도시였지만, 수백년간 독립된 나라로 있다가 다시 제국에 편입된지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는 생각이 많이 부족했다. 동맹국 정도의 취급 이상은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제국의 몇안되는 약점중에 하나라고 할까? 아직 나라전체가 완벽히 결집되어 있는 듯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춧돌을 하나 빼면 무너질 수도 있는 집같이, 하지만 기본 토대가 워낙 튼튼하니 만약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곧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춧돌 하나를 빼는 것 역시, 스승님과 황제,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과 같은 인물들이 있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테니.
"음식 나왔습니다~"
주위 선원들을 비롯한 식당의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을 기울여 듣고 있는 동안 음식이 다 만들어졌는지, 아까 주문을 받아간 그 여자 종업원이 접시를 하나씩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있었다. 정말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음식들이 반갑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난 체면 같은 것을 무시한체 급히 숫가락을 들어 내 앞에 놓인 전복 스프를 한 숫가락 떴다. 그런데 그 순간, 식당문이 열리며 왁자직걸하게 열댓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하지만 뭐, 나와 그다지 상관이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므로 난 숫가락에 담긴 스프를 입에 넣어 목구멍으로 흘러 넣었다. 배가 고픈 이 상황에서는 먹는게 무조건 적으로 우선이었으니까.
"엇! 이게 누구십니까? 그 쌈잘하시는 귀족 도련님이 아니십니까?"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조금 전의 격투기 대회에서 나와 싸웠던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이 곳에는? 부둣가라도 격투기 대회가 있었던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에 난 조금 의외라는 말투로 그 사람을 향해 말을 했다.
"당신은? 아까..."
"훗, 같은 식당에서 만나게 되다니 이 것도 인연이겠군요. 귀족도련님, 이 미천한 평민이 동석해도 실례는 되지 않겠지요?"
여전히 조금 건방지다는 느낌이 드는 말투로 말을 하는 녀석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바로 옆의 빈 의자에 앉아 버렸다. 녀석의 어투에 격투기 대회 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높임을 사용한다는 정도? 하지만 제국에서 귀족에게 그다지 높임을 사용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제국은 이번 황제의 등극 이후로 신분차이에 대한 제약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역시 법적일뿐 실제로는 수천년간 복잡하게 나눠져 있던 계급이 단 30년 사이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 더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만큼 힘든 일이 없을 테니. 어찌됬건 그런 까닭에 귀족들이 평민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경향은 여전히 사라지지 못하고 있었다.
난 숫가락을 들고있던 숫가락을 아쉬움이 가득담긴 눈으로 쳐다본 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다음 주위를 살펴 보니, 아무래도 지금 막 식당에 들어온 사람들과 이 남자가 모두 일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아무래도 작은 용병단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분위기나 실력상 이 사람이 용병대장일 가능성이 높았고.
"귀족도련님, 전 카밀 메르틴이라 합니다. 이리 저리 둘러대며 길게 끄는 것은 체질에 맞지도 않고 단도 직입적으로 말씀 드리죠. 아까 도련님께 무례를 했던 것은 사과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귀족도령하면 자기일조차 제대로 못하며 부모의 재산 덕에 간신히 목숨을 유지해 나가는 변변찮은 놈들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제가 졌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술이 아닌 당신의 격투기 실력을 보니,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과라? 카밀이란 이 녀석은 전과는 다르게 그 건방진 말투를 완전히 없애고,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로 내게 말을 했다. 녀석의 말처럼 귀족 도령들이 대체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특히 제국보다 피투안이 더 심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과 집안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황태자 녀석과 리아인은 황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해결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힐튼집안 등. 건전한 의식을 가진 귀족들도 충분히 많이 있었다. 쩝, 그러고 보니, 내가 왕족이라고 지금 귀족 편을 들고 있는 건가? 나도 참.
그리고 검술이 아닌 격투기 실력을 보았다는 말 역시, 의미가 깊었다. 검술이야 기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귀족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수련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격투기는 정말 나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어느 귀족 가문에서 자신의 자식이 격투기를 하도록 시킬리가 없었다.
"귀족 치고는 좀 험하게 자라서 그렇겠지. 난 란트 크리센이라고 하오."
난 녀석의 말에 별 다른 감정을 싫지 않은체 답을 했다. 물론, 답의 내용은 낮에 녀석이 했던 말에 대한 답도 들어가 있었다. 녀석은 내 대답에 조금 웃은 후,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외모와 다르게 성격 역시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도련님. 훗, 제가 귀족들에게 당한 것이 많다보니, 귀족에 대해 좋게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도련님 처럼 고생한번 안하고 큰 것같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분께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손바닥을 보니, 험하게 자랐다는 당신의 말이 이해가 가는 듯 싶습니다."
녀석의 말에 난 내 손바닥을 보았다. 손바닥의 곳곳에 있는 굳은살, 검을 어릴 때부터 잡아왔다는 흔적이었다. 뭐, 다른 사람들의 굳은살과는 다르게 실제로 만져보면 촉감은 평범한 살과 그다지 차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편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는 충분했다. 물론 손등을 비롯한 손의 바깥부분은 여자손과 비슷할 정도로 여리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는한 그 사실 역시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정말 난 이런 점에서 여러가지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다. 고생을 하고서도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을 받지 못하니 말이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기적인 귀족 녀석들 때문에 30년 전의 대전쟁 때,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같은 귀족이라도 플라비우스 부시장님처럼 목숨을 버리며 성과 시민들을 위해 희생하셨던 분도 계셨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기억이 속에 남아있는 플라비우스 부시장님에게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도련님과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카밀, 이 사람은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다지 망설임도 없이 계속 내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 사람 역시 30년 전의 대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사람들 중 하나인가? 휴, 플라비우스 부시장, 아렐리아의 할아버지이고, 티베리우스 단장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이 리투니아성이 이 곳으로 피난을 온 귀족들의 배신으로 몬스터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쳐했을 때, 그가 자신의 목숨 따위는 포기하며 병사들의 진두에서 지휘를 하며 방어를 했던 까닭에 리투니아가 점령당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관점에서 극선에 가까운 행동을 했던 사람과 나같은 놈을 비유하다니, 아렐리아의 할아버지께 실례나 되지 않을런지 모르겠다.
"아니,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그 분과 비교조차 될 수 있을리가 없지."
내 대답에 녀석은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린 후 말을 이었다. 내가 녀석의 눈빛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 그다지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제 사람보는 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확실히 보장하죠. 란트 도련님은 분명히, 큰 인물을 될 것입니다. 역사의 한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분명히 역사의 한페이지에 이름을 남기긴 남겼다. 희대의 살인마이며 피의 마왕으로.
영웅, 난세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난 분명히 아니었다. 스승님이나 아버지, 그리고 티베리우스 단장과 같은 영웅이 되기에는 난 여러가지 점에서 어긋나는 것이 많은 관게로. 오히려 그런면에서는 차라리 황태자 녀석이 나보다는 더 영웅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녀석은 겉으로 드러난 나쁜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밀,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걸까? 내가 제국 서열 5위라는 것을 알리가 없고, 카밀의 말이 아부는 아닌 것 같지만 그다지 기뻐할 만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단순한 호감에서 나오는 친분의 표시 정도라고 생각을 할까?
그 뒤에 이어진 잠깐의 침묵 속에서 난 일단 다급한 식욕을 해결하기에 분주했다. 난 정신없이 음식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적당히 배가 찬 다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시간이 꽤 흐른 까닭인지, 넓은 식당안에는 아까 들어온 이 카밀이란 용병의 일행일듯한 사람과 우리 일행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많던 종업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음식을 시켰는지 카밀이란 이 용병은 우리 테이블에서 천연덕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다시 남은 음식을 마저 먹기 위해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한 때의 사람들이 식당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저녁 무렵은 이미 지났을 텐데, 그 쪽을 쳐다보니, 외모가 용병인 카밀의 일행들 보다 더 험악해 보이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들을 본 카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저 녀석들도 용병단인가?
"카밀 메르틴, 드디어 찾았군, 녀석들. 쫓기고 있는 주제에 격투기 대회에까지 고개를 내밀다니, 카밀, 내게 내어줄 목숨이 하나 더 있나 보구나. 하하하."
갑자기 식당안으로 난입한 녀석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회색빛 옷의 남자는 허릿춤에서 칼을 뽑아들며, 악당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대사를 전형적으로 읊고 있었다. 그 들의 등장에 카밀과 그의 일행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들 역시 칼을 뽑아들었다. 적대적 사이인가? 하지만 인원 수에서는 절대적으로 카밀일행이 열세였다. 카밀의 일행은 열대여섯명 정도인데 반해, 방금 들어온 놈들은 서른을 훨씬 넘긴듯 보였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느껴지는 기운이 여관의 밖에도 녀석들의 패거리가 상당수 더 있는 것 같았다.
"라쉬카 크라비어스! 네 녀석이 어떻게 제국의 영토까지? 제국의 치안대가 네 녀석들을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카밀의 분노한 목소리는 라쉬카라 불린, 회색빛의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카밀의 목소리를 듣고도 라쉬카라 불린 사람은 별 감정의 동요없이 차분히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라쉬카란 저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눈빛을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빛이 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내 허릿춤에서 칼이 뻗어나가 녀석의 목숨을 빼앗았을. 그리고 카밀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제국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위치의 사람인 것 같다.
"후후, 네 녀석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제국에 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보군. 통행증 정도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지, 카밀. 마법사를 화나게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모르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지."
그말을 마친 녀석은 자신의 손에 마나를 모우더니 식당의 주방쪽을 향해 뻗었다. 헛, 저녀석 마법사 였었나? 내가 방어막을 캐스팅을 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순간적으로 식당안에 몰아치는 광풍, 그 광풍은 식당과 주방을 나누고 있던 작은 벽을 뚫고 주방에 직격을 했다. 그리고 터지는 비명소리...
"꺅! 아빠! 괜찮으세요! 아빠."
아까 그 여자 종업원의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젠장, 저 녀석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다니,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에게 까지! 단지 자신의 적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 하기 위해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입히다니.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저 곳에 사람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 눈빛 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카밀 측의 사람들의 얼굴빛은 점점 더 어두워 지는 것이 보였다.
"라쉬카! 괴물 사냥꾼 녀석!, 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못할 오크들 수백을 살해한 네녀석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젠장! 게다가 그 녀석들은 옆 마을 인간들이 굶어죽어가고 있을 때, 자신의 음식까지 나눠졌었다구! 그리고 죄없는 사람들까지 또 일에 끌어드리다니!"
카밀의 목소리, 잠깐, 그런데 저 녀석이 괴물 사냥꾼이었다고? 어쩐히 하는 행동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난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부엌쪽을 향해 광범위하게 치료마법을 사용한 다음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카밀과 저 라쉬카라는 녀석과의 사연, 우리마을에서 벌어졌던 일과도 비슷한 일이 라쉬카와 카밀 저 두명의 사이에서도 일어났던 것일까?
"후후, 오크들은 모두 죽여야할 인간들의 적일 뿐, 게다가 그들의 목을 모아가면 돈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이상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냐? 어쨌든, 네 녀석이 이 크라비어스님의 일을 방해한 것이 네 실수 였다. 그런 네 녀석의 죄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선 약간의 희생쯤이야 불가피하지.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 식당은 이미 포위 된지 오래고. 이제 전처럼 피할 곳도 없는 것 같이 보이니, 이만 이 지겨운 악연을 끊도록 하는게 좋겠군. 뭐 무릎을 꿇고 목숨을 빈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말이 끝이나도 카밀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체 조금 긴장한, 그리고 약간의 공포가 느껴지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라쉬카는 카밀이 서 있는 우리쪽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카밀은 검을 욺켜 쥔체 그의 모습을 쳐다 보며 절망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젠장, 도련님 어서 옆으로 피하십시오.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련님께까지 피해를 입힐 수는 없습니다."
카밀 저녀석도 영웅의 기질이 조금 있는 것일까? 그런데 저 괴물 사냥꾼 녀석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관하지 않은체 마법을 캐스팅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참지는 못할 것 같다. 난 피하라는 카밀의 말을 무시하고 묵묵히 마법을 캐스팅 하고 있는 녀석을 쳐다볼 뿐이었다.
"홀리 쉴드!"
녀석의 마법이 완성된 순간, 그 전에 이미 준비가 된 캐스팅으로 생겨난 흰색의 막이 라쉬카란 녀석이 쏘아보낸 날카로운 바람의 기운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보이는 괴물사냥꾼 녀석,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랫만에 괴물 사냥꾼 녀석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랫만에 괴물 사냥꾼을 물리칠 수 있겠군. 난 그 라쉬카란 녀석 만큼이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카밀의 앞에 일어서서 괴물 사냥꾼 녀석을 쳐다보았다.
"젠장, 넌 왠 애송이 녀석이냐? 우리일에 관계가 없는 놈이면 방해하지 말고 어서 꺼져!"
라쉬카는 자신의 마법이 막혔기 때문인지, 화가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애송이라. 그래 누가 애송이인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8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세상에 그리 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리고 애송이라 불릴 정도로 약하다는 생각도 해본적은 없고. 만약 8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애송이로 불릴 정도로 마법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이미 이 세상은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인해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나와 일행의 목숨을 노렸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네 녀석이 말한데로 마법사를 화나게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네 녀석에게도 한번 보여주는게 좋을 것 같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 일행 중 아무도, 저 라쉬카란 괴물 사냥꾼 녀석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태평스럽게 식사를 하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 도대체 뭘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하긴 저들중 단 한명만으로도 충분히 라쉬카란 녀석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말을 마친 후, 내 말에 화가 난 까닭인지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이 보이는 괴물 사냥꾼 녀석이 캐스팅하기 전, 최대한 좁은 범위에서 집중적인 파워가 생길수 있도록 마법을 외웠다.
"홀리 스톰!"
백여개에 가까운 숫자의 흰색의 구가 녀석과 녀석의 일행인 듯한 용병들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나마 하고 있던 캐스팅 마져 실패해 버린 듯 보이는 그 괴물사냥꾼 녀석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흰색의 구를 쳐다보았다. 저 표정을 보니, 평소에 나쁜 행동을 많이 했었던 것 같군. 정말 바르게 산 사람이라면 신성계 공격 마법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신성계 공격마법은 그들의 죄의 무게만큼 타격을 입히니.
괴물사냥꾼 녀석 주위에 있던 검을 든 패거리들은 흰색의 구를 맞는 순간, 대부분 쓰러져 버렸다. 라쉬카 녀석은 흰 구체가 자신의 몸에 날라드는 순간 자신의 마나를 분출해 간신히 마법을 막아낸 듯 보였다. 하지만 이미 녀석의 회색빛 옷은 너덜너덜하게 되었고, 녀석은 서 있는 것 조차 버겨운 듯 보였다.
"어떻게 고위 신성 마법을? 네 녀석 신관인가?"
라쉬카란 녀석은 신음하듯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을 했다. 괴물 사냥꾼 주제에 궁금한 것이 너무 많군. 녀석을 향해 생겨난 마음에서 이는 분노,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제어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맹목적인 분노는 아닌 것 같았다.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마''법''사' 라고. 아이스 볼트 일레븐! 스나이핑 포인트!"
난 녀석을 향해 말을 한 직 후, 캐스팅을 완료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생겨난 열한개의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은 그 마법사가 서 있는 곳을 단 한 곳을 향해 집중이 되어 뻗어져 나갔다. 마법을 캐스팅 하는 순간 저 녀석을 살려서 배후를 알아보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법사를 한 곳에 가두어서 정보를 캐낸 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란 생각에 그 잠깐의 망설임은 곧 사라져 버렸다.
"일레븐 캐스팅! 어떻게 제국에...제국에...이런 실력의 마법사가 또 있었!"
녀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얼음 조각들을 보며 말을 했다. 사는 것 조차 포기한 듯 보이는 녀석의 온몸을 얼음조각들이 관통하였다. 그리고 얼음 조각들이 사라지고 녀석은 몸전체가 피투성이가 된체 바닥에 쓰러졌다.
"라쉬카님! 무슨 일입니까?"
라쉬카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던 까닭인지 갑자기 밖에서 우르르 쏟아져들어오는 라쉬카 녀석의 나머지 일당, 아까 식당안에 있었던 녀석들의 동료들의 수보다 지금 들어온 녀석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아무리 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많은 수의 무장 병력이 돌아다니는데도 제국 경비대는 제지하지 않고 뭘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평화시기라고지만 이정도 수준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었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 동양의 속담처럼 완벽해 보이던 리투안의 치안도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안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바닥에 쓰러진 패거리의 모습과 라쉬카의 모습을 보더니 모두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다지 힘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히 마무리를 해두는 것이 제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군. 저 녀석들이 도시에서 난동을 피우면 곤란하니까. 가이우스의 정보록에 기록되어 있는 내가 죽인 사람의 수가 이번에도 급격히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 블레스터. 트리플!"
세개의 마법진을 통해 생겨난 얼음 조각들은 지금 들어온 녀석들을 향해 무차별 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대량 살상, 하지만 최근에 사람들을 죽일 때 들던 왠지모를 찝찝함이 이번에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괴물 사냥꾼 녀석들이기 때문일까? 피의 전사로서의 내 기질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 소피, 티티, 이만 돌아가자."
난 넋을 놓고 있는 카밀일행들과 다르게 식사를 마친 뒤,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있는 우리 일행들을 향해 말을 했다. 이런 곳에서 더 있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분위기상 이만 떠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에 돌아가면 아렐리아보고 해결을 해달라고 해야 되겠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그 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했고. 제국은 괴물 사냥꾼들의 영토내 출입을 법적으로 엄금하고 있었다.
난 검과 엘프자매가 테이블에서 일어서고 있는 동안 검을 든체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카밀에게 금화 100개가 든 돈주머니를 주며 말을 했다.
"나중에 여관 주인이 정신을 차리면 식당 수리비로 대신 좀 지불해 줘. 치안대에 대한 걱정은 하지말고, 내가 손을 써볼테니."
카밀은 돈주머니를 받으며, 여전히 멍하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쩝, 뭔가 말을 더 해주고 싶지만. 그다지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아무리 놀랬다고 하지만 저렇게 멍하니 쳐다보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면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걸까?
난 카밀과 그의 동료들을 뒤에 둔체 일행들을 데리고 시체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식당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내 뒤를 향해 카밀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란트 도련님, 당신의 정체는...도대체?"
난 돌아서서 카밀을 향해 최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줬다. 어짜피 나중에 시체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안대가 오면 알게 될테니까. 그리고 뭐 그다지 내가 황제도 아니고 내 신분에 대해 비밀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제국 서열 5위, 남파나단 자치령주 란트 크리센."
허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카밀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난 식당을 빠져 나와 시청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아렐리아한테 뭐라고 말을 한다? 리투니아의 선량한 시민과 제국 서열 5위의 고위 관료인 란트 크리센 영주를 살해하려고해서 수십여명의 가까운 사람들을 죽여버렸다고 하면 이해를 할까? 비밀 감사관의 직책을 이용해서 그 라쉬카 녀석이 말을 했던 '줄' 건을 이용해서 밀어 붙이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괴물 사냥꾼을 제국의 영토내에 들인 그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으니까 내가 몰아붙이면 아렐리아는 아무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식당에서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은체 조용해진 클라리와 엘프자매, 이 잠깐의 적막 속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고독감이 드는 것 같았다. 당시에도 느꼈던 것 처럼, 괴물사냥꾼 패거리를 죽였다는 사실에 그다지 후회나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피의 전사 였다는 증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고독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래도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였을 때, 하루를 멀다하고 괴물사냥꾼 녀석들과 싸우던, 그 때의 기억과 고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