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5장 리투니아(8) 출전전야-3(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7. 13. PM 6:32:32·조회 2268·추천 71
에피소드 49 출전전야-3


-대전쟁, 언데드와 다른 이종족 몬스터들의 군대, 그리고 그들과 연합한 피투안국의 군대가 북부 산맥을 넘으며 시작된 전쟁이다. 약 3여년간에 걸친 전쟁은 세레니안느 1세가 이끄는 군대가 피투안국의 수도, 피투니아의 궁성을 점령함으로써 리투안-엘프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이로 인해 서부대륙 전체가 입은 피해는 승자와 패자 모두 처참할 정도였다. 리투안 국을 예로 들자면 20세이상 50세 미만의 성인남자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으며 총인구 수 역시 사분의 삼으로 격감했다. 또한 리투안 왕궁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성기사단 다섯 군단 중, 두 개의 군단이 전멸, 그 외의 세 개의 군단 중 제 3군단을 제외한 1, 2 군단 역시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혜를 입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수많은 농경지가 황무지로 변하여 식량 생산량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세리나안느 1세의 현명한 통치 하에서도 제국이 전쟁의 상처를 거의 치료하는데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너무나 백성을 사랑했던 군주가 통치하는 신생 제국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난 것이 아니었다.......<제국 황제 평전 -세레레니안느 1세편-> 타키투스 폰 힐튼-



부둣가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렐리아에게 설명을 하니, 아렐리아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괴물 사냥꾼들이 도시 안에 들어 왔다는 사실에 나만큼이나 분노하여 화를 내는 아렐리아, 화가 난 아렐리아가 리투니아 치안대장들을 불러 한시간여에 걸쳐 잔소리를 하는 것을 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훔, 화같은 것은 낼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던 저 하프 엘프의 새로운 모습에 왠지모를 흥미를 느끼며, 이런 저런 고민 거리는 뒤에 던져 둔체 구경을 했다. 그리고 치안대장들이 물러난 후 그 '줄'에 대해 조사를 하려는 듯, 아렐리아가 은밀하게 정보원들을 푸는 모습 역시 지켜 보았다. 역시 시장의 위치를 맡기에는 무척이나 어린 그녀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한 도시의 시장을 맡고도 충분할 만큼의 주도면밀한 면이 아렐리아에게서 느껴졌다. 정보원들. 가이우스 녀석도 저런 정보원들을 동원해서 정보를 얻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아렐리아의 그런  모습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대충 사건이 해결이 된 후,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사건이 해결은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던, 나는 아렐리아의 황당한 부탁을 받는 순간 한숨을 내 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밖에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몸을 쉬지도 못하고 지금 이렇게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그 황당한 부탁이란 나보고, 병사들 앞에서 출전 연설을 하라는 것. 세상에 내가 언제 그런 것을 한 적이 있다고 연설을 하라는 것인지, 아렐리아와 황제의 의도가 궁금했다.

"으아! 연설문이라니!"

난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깨끗한 흰색의 종이를 보며 절규를 했다. 책은 많이 읽어봤어도 언제 내가 글을 써본 적이 있어야지 연설문을 쓰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클라리가 웃고 있는 것이 옆으로 보였다. 정말, 보좌관이라면서 이럴 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웃고나 있다니, 해고 시켜 버리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아 그러지말구, 세리 언니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어때?"

그 뒤에도 한동안 테이블 위의 종이를 노려보고만 있던, 내 귀로 클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요즘따라 황제를 만나는 것이 정말 두려웠다. 그 황제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황당한 행동들 때문에, 아직 정신이 이상해 질 정도로 황제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닐텐데. 어찌됬건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난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황제가 묵고 있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황제는 방을 혼자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렐리아의 방, 바로 옆이라고 하니 낮에 내가 걱정했던 것과 같이 황제의 안전문제를 걱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시장님의 바로 옆방인데 보안면에서는 이 시청 내에서는 가장 신경을 많이 쓸 것이 틀림이 없으니까. 게다가 아렐리아는 황제와 같은 뛰어난 검사가 아니라 마법사일 뿐이므로 그런면에서는 황제보다 더 많은 주의가 필요했을 것 같다.

내가 걸어가자 시청의 곳곳에 있는 경비병들과 하녀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며칠 있었다고 내 얼굴을 알아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덕택에 검문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고 황제가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어서 편하긴 했다. 난 황제의 방문 앞에 서서 큰 숨을 한번 들이 쉰 뒤에 황제의 방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너머로 황제의 그 소녀 말투가 들려왔다. 여행을 나온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도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모양이군, 정말 못말린다니까. 난 방안쪽에서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를 들은 후 또 다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저에요. 란트."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문이 활짝 열리며, 황제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황제를 쳐다보니 황제는 예전에 보았던 그 유아틱한 잠옷을 입고 무척이나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황제의 위치로 활동을 할경우 감정이란 것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것에 반해, 평상시의 황제는 감정의 표현이 과장되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 였다. 그동안 참고 지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까?

"어머, 영주님! 이렇게 직접 영주님을 사모하는 이 소녀의 방에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황제는 내가 황제의 그런 말투에 곤혹스러워 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더욱더 강도를 높여서 그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 제발. 그 말투는!"

조금 짜증이 섞인 내 목소리를 들은 황제는 그냥 방안 쪽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난 돌아갈까하고 생각을 하다, 그 연설문의 일이 떠오르는 순간 한숨을 내 쉰 후에 황제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황제가 머무는 방은  꽤 화사하게 꾸며져 있는 방이었다. 그리고 크기도 일인실이라기에는 꽤 큰 편이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장식이나 그런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침대라던지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아마 예전에는 왕비의 방으로 쓰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들었다.  

"영주님, 오늘은 무슨 일로 이 소녀를 찾으셨나요?"

또 바뀐 황제의 말투,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딱딱해진 아마 추측하건데 실제로 부장이 사용하는 말투로 황제는 말을 했다. 꼭 저런 말투를 계속 사용할 필요는 없을텐데, 듣는 귀를 조심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의실과 같은 곳이라면 방음이 철저하겠지만 이 곳은 아닐테니. 그리고 어쩌면 아직 정체를 밝혀 내지 못한 그 '줄'이 어떻게 보면 갑작스럽게 등장한 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 나와 내 주변에 대해 어느정도의 관심을 보이는게 정상일 것이다. 복도나 거리 같이 움직이는 것 보다 손님용 방으로 정해진 이런 고정된 장소가 더 위험한 것이다. 어찌됬건 지금은 전시, 그녀가 황제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된다면 그녀에게 그다지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황제의 앞에서 황제의 상관으로써 행세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연설문 때문에 왔어요. 특별히 글을 써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어서."

난 황제가 앉은 작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으며 머리에 한 손을 올린체 말을 했다. 그런데 황제가 순순히 도아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곤란해 하는 것을 저렇게 좋아하는 황제인데,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전에는 황제한테 짜증까지 냈으므로, 정말 내간도 많이 커졌지 평상시였다면 즉결처형감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등에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주님 같이 모든 것에 출중하신 분이 고작 연설문 가지고 쩔쩔 매시면 어떻게 하죠?"

왠지 비꼬는 듯한 황제의 말투, 저런 말은 원래 잘난척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들어야 될 말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제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척을 한 기억이 없었다. 그다지 잘난 것도 없었고.

"누나, 제발 그러지말고 좀 도와주세요. 안되면 내일 연설같은 것 다 무시하고 출전을 할거에요."

난 조금 협박성이 담긴 말을 섞어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뭐, 황제에게 협박이 통하겠냐마는 그냥 투정같은 것이라고 해야할까? 황제가 가끔씩 장난을치고, 지금 겉 외모는 소녀처럼 보이지만, 왠지모르게 황제에게 내가 의지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왠지 무엇인가 끌리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핀누나와는 다르게, 황제는 대하기가 어려운 면도 없지 않지만 가까이 있으면 매우 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게는 누나나 엄마와 비슷한 존재일 것 같다. 어릴 때의 추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던 엄마란 존재에 대한 느낌과 비슷했으니까.

"알겠어요. 영주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황제는 침대쪽으로 걸어가더니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빈종이 몇장과 필기구, 그리고 작은 책 한 권을 들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리투니아에 도착한 이후에 그렇게까지 내 가방에 자신의 짐을 보관하기를 거부하던 황제가 부피가 큰 짐은 내 가방 속으로 던져 넣었지만, 아직까지 여자가 매고 다니기에는 꽤 큰 가방에 자신의 자잔한 짐을 담아 들고다니고 있었다. 뭐, 자잔한 짐이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물건의 귀중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각종 국서에 기밀 문서들에다가 여러가지 도장들. 그리고 황제임을 나타내는 증표들.

다른 물건들의 용도야 이상황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있겠지만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왜 책이 필요한 것일까? 난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황제의 한손에 쥐여진 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내 의문은 풀어졌다.

"영주님, 이건 제가 연설문 쓰는 요령같은 것을 정리해둔 책이에요. 원래 첫째 한테 주려고 했는데 첫째에겐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나중에 손자나 태어나면 줄 생각이에요.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니까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난 황제가 내미는 책을 조심스럽게 받아 책장을 넘겼다. 황제가 연설문 쓰는 요령에 대해서 정리한 책이라니? 세상에! 그렇다면 저 책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다. 황제의 연설실력이야 내가 직접 보거나 들은 적은 없지만 전 대륙이 인정하는 바이니, 뭐 황제의 말처럼 만만찮은 연설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세인트 녀석한테야 그다지 필요가 없을 테지만, 나같이 연설의 연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책이었다.

책장에는 국서에 황제가 공식적인 석상에서 사용하는 힘있는 글씨체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매우 부드러운 여자의 글씨체로 글이 쓰여 있었다. 글역시, 황제의 다른 모든 면처럼 이중적인 것일까?

황제란 직위, 통치자란 직위는 신이 되거나 아니면 타락한 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황제의 경우는 그 둘 중 신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의 본 모습을 깊이 숨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본 모습은 아주 조금씩 조심스럽게 표현이 될 뿐, 말투나 글씨체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써드릴테니, 제가 빌려드린 그 책을 읽고 조금 공부 좀 해두세요. 나중에 쓸 일이 많이 있을지도 모를테니까요."

황제는 별 다른 감정의 표현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흰색의 백지에 펜에 잉크를 찍어 빠르게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술술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난 핀누나가 준 내 품 속에 있는 마법책의 앞에 황제가 준 그 책을 넣어 두었다. 하지만 그다지 나란 존제가 연설문을 써야할 일이 더 생길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왕이나 장군이 될리는 없을 것이니, 하지만 배워둬서 그다지 손해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 한 번씩 읽어두기로 했다.  최소한 황제의 손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겠지.

"자, 여기 다 적었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시겠네요. 영주님!"

황제의 목소리를 보니, 아무래도 무엇인가 섭섭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계속 황제가 말하는 말투를 듣고나서 생각을 해보니, 일부러 딱딱하게 말을 하는 것 이외에도 무엇인가 다른 감정이 말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설마 황제가 내가 아까 황제의 말투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고 삐지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클라리도 아니고 나이 50에 애 셋딸린 황제가 그럴리가 없었다. 게다가 큰 제국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배포가 큰 존재인데, 아까와 같은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삐진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황제에 대한 기만이겠지. 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황제가 준 연설문을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받은 책속에 끼어넣었다.

"고마워요. 세리누나."

난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있는 황제에게 조금 웃으며 답을 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니, 이 모두가 황제 때문에 생긴 사건이기는 하지만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었다. 솔직히 조금 귀찮다는 감정, 그리고 새로운 사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황제의 행동이 특별히 내게 나쁘다거나 하는점은 없었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을 보던 황제가 눈을 크게 뜨더니 얼굴에 약간의 놀라는 듯한 표정이 황제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란트, 방금 웃은거야?"

다시 평소의 반말로 돌아온 황제, 황제는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하며 날 쳐다보았다. 웃은게 어때서? 난 황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해 의문을 담은 눈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란트, 다시 한번 웃어봐. 란트 네가 웃으니까 너무너무 귀여워~!"

웃으려고해도, 저런 소리를 듣고 웃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귀엽다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그러고 보니, 황제 앞에서 특별히 웃거나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마찮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나란 존재와 미소나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아무래도 상황을 보니, 일단 목적은 달성했고 되도록 빨리 황제의 방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나, 그럼 저 이만 가볼께요. 처음 대장직을 맡는 것이라 이것 저것 준비할 일이 많아서요."

내 인사를 들은 황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 팔을 붙잡았다. 이 놈의 황제가 갑자기 왜 날? 그러고 생각을 해보니, 실제로 할일이 많았다. 연설문에 신경을 쓰느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인데, 부대 구성표라던지, 관직이나 직책표등 잡다한 자료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란트, 이 누나 앞에서 한번만 더 웃어보지 않을래? 응?"

황제는 무척이나 간절하게 내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왠지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난 황제의 말을 무시한체 황제에게 붙잡힌 한쪽 팔을 빼서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누나, 그럼 내일 뵈요."

내가 팔을 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황제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황제를 향해 잽싸게 작별 인사를 했다.

"란트, 너~!"

황제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뒤로 한체, 우리 방쪽을 향해 최대한 빠른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왔다. 휴, 정말. 난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정말 없었다. 그런데 내가 거울로 내 모습을 보아도, 뭐 남자답지 않게 생겼다거나 그런 말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귀엽다는 말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무표정한 어떻게 보면 조금 어두운 느낌의 얼굴, 그런 것과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놀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내 관점과는 다른 까닭에서인지 귀엽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찌 됬건 이제 곧 스물이 가까워지는 남자에게 귀엽다고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으악! 이 서류 뭉치들은 도대체 또 뭐야? 연설문만 적으면 끝나는게 아니었어?"

난 클라리가 보좌관이랍시고 어디선가 받아와서 건내주는 서류뭉치들을 건내 받으며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잡다한 서류가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주인님아, 다 대장님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서류란 말이야 왠만해서는 읽어두는게 좋을거야. 주인님은 무관시험 같은 것을 쳐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더욱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다른 소대장이나 대대장에게 무시를 안당한단 말이야."

오랜만에 옳은 말을 하는 클라리,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다지 그 옳은 말이 반갑지가 않았다. 정말 이 많은 서류들을 도대체 어떻게 본다. 하지만 서류들을 대충 훑어보던 나는 그나마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클라리, 천여명이나 되는 사병들의 이름에다 주소, 부모이름, 그리고 출신성분, 학력따위를 줄줄 외우고 있어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to. 보좌관 클라리 핀 프리안느 라 적혀 있는 서류는 또 왜 나한테 주는거야. 이 책은 또 뭐야? '전시상황에서의 여성 보좌관용 지침서'라니...?"

내 말을 들은 클라리는 당황한 표정을 허둥지둥 내게 넘겨준 서류를 다시 뺏어가서 뒤적거리기 시작 했다. 정말, 스스로 자청해서 보좌관을 한다고 했으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도움보다는 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류를 다시 뒤적거리던 클라리가 다시 내게 서류를 건내줬을 때는 처음 건내준 서류의 양의 삼분의 일로 줄어 있었다. 어쩐지 처음 클라리가 줬던 서류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고 했더니 이런 이유 였었던 것 같다. 삼분의 일이나 남았지만 어쨌든 양이 줄어드니 왠지 가뿐해진 듯한 느낌. 난 클라리를 한번 노려본 다음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나이 17살의 어린애에대가 제국에서 요하는 자격도 없는 인간한테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서류를 살피는 동안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으아, 그냥 나중에 적이 나타나면 마법으로 몇 번 두들기고 끝내버려야겠다. 귀찮아."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은 클라리는 나에게 준 서류만큼이나 양이 많은 자신 앞으로 온 서류들을 뒤적거리다 말고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아, 만약 적 한테도 마법사가 있어서 주인님의 공격이 큰 효과를 못보면 어떻게 할꺼야? 그냥 무시하고 계속 쓰면 주인님 또 쓰러져 버릴텐데."

아픈 곳을 건드리는 클라리,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원래 공격하는 입장이 방어하는 입장보다 불리한 것이 당연하니, 최소한 그상대가 7서클 정도의 마법사만 되더라도 내가 마법으로만 해결을 하기에는 상당히 버겨울 수 밖에 없었다. 뭐, 비상시에는 아미를 동원해서 브레스로 쓸어버리는 방법이 있었지만 아미 역시 자주 동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드레곤 치고는 나이가 어린 까닭에 폴리모프 수에 제한이 있었으므로. 게다가 아무리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꼭 아미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둘 사이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주종관게 보다는 친구란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클라리의 말에 반박을 할 말을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내신세야.

"소피, 티티, 너희들도 적당히 준비를 해두는게 좋을 거야. 전과 달리 이번에는 꽤 위험해 질지도 모를테니까."

내 말을 들은 소피가 조금 불안한 듯한 느낌이 드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반해 티티는 내 말에도 별표정 없이 묵묵히 자신의 허릿춤에 차고 있던 레이피어를 꺼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쟁인가요?"

소피는 그런 일이 제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와 클라리의 대화를 통해서 이미 알아차린 것 같은 눈치, 아무래도 전쟁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소피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피는 예상했던 것처럼, 매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떤 것일까? 하지만 묻기에는 조금 쑥쓰러운 면이 없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소피에게는 티티라는 좋은 의논 상대가 있으므로 그렇게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찌됬건 소피 역시 여전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활을 꺼내서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소피가 저 활을 들고 실제 전투에 나섰을 때의 소피의 위력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예전에 노예로 잡혀 있었다는 것 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나름대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예전에 소피를 노예사냥꾼 녀석들로부터 구할 때, 소피를 가두워 둔 곳의 방비가 다른 곳 보다 더 철저한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넘어갔었지만, 아무래도 마법에다 정령까지 사용할 수 있는 소피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제일 위에 놓여있는 서류의 첫장을 넘겼다. 제일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은 지원군의 종류 편성표였다. 기사 30, 중기병 70, 경기병 300, 중보병 400, 경보병 200으로 구성되어 있는, 어떻게 보면 평균적인 구성보다는 기동력을 조금 중시한 것 처럼 보이는 구성이었다. 아무래도 지원군이라는 입장과, 그리고 기병이라는 것이 공성전보다는 야전에서 더 가치가 있는 까닭에 그렇게 편성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몇명 없는 기사를 30명이나 붙여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다. 나같이 지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른 지휘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으므로 기사들의 경우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지휘 모두 가능했으므로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기사들이 나 같은 어떻게 보면 지휘관으로써는 애송이에 불과한 존재의 말에 순순히 따라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점도 아렐리아가 어련히 배려를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놓아두기로 했다. 시장의 위치로써 행동을 할 때는 아렐리아 역시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폭이 컸으므로.

그 다음 서류는 병참에 대한 것이었다. 병참은 대략 한달 분량으로 준비를 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오니스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게잡아 일주일 정도 걸리므로 비상시에 이오니스로 돌아올 양까지 계산한듯 보였다. 세심한 준비, 여자들만의 특징이 얼핏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양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 서류들을 언제 다 볼 수 있으련지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 주제에 지원군 대장이라니, 솔직히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직책을 맡았음에도 거부하지 못하는 내 신세에 대해 심각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나이 많은 여자들한테 발목이 잡혀서 꼼짝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미화되서 표현 될지도 모를 첫 출전 전야의 밤은, 엄청난 양의 서류들 속에 파묻혀서 흘러갔다. 이 전쟁으로 나란 존재의 운명이 그렇게 바뀌게 될리라고는 그 당시의 나,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모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마음 속에서는 그 큰 운명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일부러 인식하기를 피하고 있었던 것, 그 것 뿐이었을 것이다.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