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8장 전란에 휩싸인 제국(1) 출전-1(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7. 22. PM 7:20:41·조회 2279·추천 61
에피소드 50 출전-1
-피투안 크리센 왕가의 초대 국왕, 란트 1세의 첫출전 기록은 놀랍게도 남부 리투니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제 2차 대전쟁 중, 이오니스 지원군의 사령관의 직위를 받아 아테네이오스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던 바로 그 것이다. 제 2차 대전쟁 중, 남부지역에서의 철혈여제와 세인트 1세의 화려한 업적 때문에 이 흥미로운 사실 역시 역사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필자가 사료를 연구하던 중 발견한 사실은, 남부지역의 전황에서 란트 1세의 공 역시 세인트 1세나 철혈여제 못지않게 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많은 란트 1세의 공적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세인트 1세나 철혈여제의 공적으로 바뀌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후세의 제국의 역사가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들 뿐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제국의 역사가로써 올바른 역사를 알려야할 필요성을 느끼기에 책의 주제에서는 벗어났지만 간략하게나마 란트 1세의 업적을 적고자 한다. 란트 1세 역시 앞에서 예를 들었던 수많은 제국의 위대한 황제들 못지않게 배울점이 많은 훌륭한 통지자들 중 한 사람이므로, 란트 1세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필자가 이 책을 지필하게 된 목적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 것이 제국의 국력의 변화에 상관없이 수백년동안이나 신의를 지킨 피투안 왕실에 대한, 한 때는 제국의 총리대신직을 맡았던 제국의 백성 중 한사람으로써의 조그마한 감사의 표시이다.<제국 황제 평전-번외편 란트 1세-> 타키투스 폰 힐튼-
난 평소와는 다른 어떻게 보면, 조금 긴장된 상태로 옷을 입고 있었다. 난 그런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닌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천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지휘자로써 서는 것, 천여명의 적들 앞에서 그들의 적으로써 서본 경험은 많이 있었지만, 지금 이런 상황은 내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처음 장교로 임명을 받았을 때, 나처럼 이런 느낌을 느끼셨을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번 쯤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휴, 긴장이라? 정말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어떤 적을 앞에 두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이런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주인님아, 이제 나갈 시간이야."
"으, 응."
난 다시 내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정돈한 다음 방에서 나왔다. 그런 내 뒤에는 클라리와 황제, 그리고 소피, 티티가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 한명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긴장된 마음 때문에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았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난 백합의 기사 복장 차림에 흰색 망토를 두르고, 그리고 어깨 부분에는 흰색바탕에 금빛의 백합무늬가 새겨진 어깨 부분을 가릴 수 있게 된 방어구를 전과는 달리 추가로 착용했다. 어깨 위 백합 무늬의 방어구는 리투니아시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투니아의 상징 역시 내 상징과 같은 백합이었던 까닭에 내가 그 후에 리투니아 군을 지휘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경우에도 내가 착용을 하고 다녀도 별 무리는 없을 듯 했다. 쩝, 리투니아의 상징을 도용한 것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그랬지만, 뭐 시의 상징과 가문의 상징은 별개이므로. 그리고 아렐리아에게 이 사실에 대해 물어봤더니, 오히려 리투니아시로써는 영광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볼 때, 확실히 욕을 얻어먹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는 클라리는 그 전까지는 생전 입은 적이 없는 흰색 바탕의 여성용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까닭에, 평소의 외모에도 조금씩 남아있던 그 이지적인 느낌이 더욱더 강조되는 것 같았다. 물론, 클라리의 본 성격이야 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클라리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라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 복장과 외모만으로만 따진다면 보좌관이란 직책에 클라리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실제로는 어제 그 서류사건만 보더라도 그다지 내게 도움이 되지않고 있었지만 어쨌든 형식상으로나마 클라리가 보좌관은 보좌관이므로 보좌관에 어울리는 외모라도 가진 것이 그렇지 않은 것 보다는 나을테지. 그런데 딱딱한 사무적인 옷차림을 하면, 그 절세의 미모가 거의 사라지는 카렌과는 달리, 클라리의 경우에는 이차림 나름대로 또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해. 나 뿐만 아니라 클라리 역시 어떤 옷이든지 잘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복장은 평소에 입고 다니던 그 가죽갑옷 대신 하프플레이트 갑옷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눈 부분만 들어나 있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얼굴을 가려야할 일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계속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는 무엇인가 의심을 받기 쉽기 때문인 듯 했다. 하지만 황제가 지금 내 직속 부장으로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무장을 한 상태로 있다면, 투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더라도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황제가 저런 모습을 취하지 않았나 싶다.
'피의 전사'로써 살던 내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기쁘다고 표현을 해야할까? 처음 이 일을 맏게 되었을 때 느꼈던 귀찮다는 감정보다 지금은 왠지모를 기대감까지 드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런 내 감정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솔직히 어제밤에 잔뜩 싸여있던 서류를 해결하던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렸다.
"란트, 긴장하지말고, 마음 편히 먹으렴. 알겠지?"
뒤에서 들리는 황제의 목소리,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되도록이면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웠다. 확실히 황제는 나이 50이 그냥 나이 50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긴장했다는 것을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하지만 내가 긴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긴장을 푼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난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 황제가 준 연설문 쪽지를 품 속에서 꺼내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벌써 몇 번이나 보는 것이었지만, 걸어가는 동안 무엇인가 다른 것에 집중을 하는게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번 연설문을 읽어두기로 했다. 황제가 적어준 연설문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었지만, 그다지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도 무엇인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명문장이었다. 그리고 나란 존재에 대해 황제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제국을 통치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 연설문을 제대로 소화를 해낼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나답지 않게 왜 이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렇게 잡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하니.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시청의 복도의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었다. 난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문에 도착하자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하인들이 문을 활짝열었다. 밝게 내리쬐이는 햇빛, 그 눈부심 때문에 잠시 보이지 않았던 눈이 다시 보이게 되었을 쯤, 내 눈앞에는 천여명의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정열이 되어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깨끗하게 관리된, 무기와 갑옷들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조금 눈이 부셨지만, 왠지 모를 이 감동이란, 정말, 아까부터 느꼈던 점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생겨나는 이 감정들을 나 역시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유전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들었지만.
"크리센공, 이쪽으로."
먼저 밖에 나와있던 아렐리아가 나를 단상으로 이끌었다. 헛, 드디어 연설인가? 난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렐리아의 뒤를 따라 단상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가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서자, 수천의 병사들의 눈이 나를 향하며, 주위는 적막으로 휩싸였다. 호기심이 담긴 듯한 눈빛. 아무래도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어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이런 상황은 겪어왔었으므로 별 문제는 없었다. 단상 옆에 황제와 아렐리아가 선 뒤, 난 그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나는 이번 이오니스 지원군의 총사령관직을 맡은 란트 크리센이다.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 나이는 사령관직을 맡기에는 아직 어리고, 경험 또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 란트 크리센이 사령관직을 맡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시 이 곳, 리투니아로 돌아올 무렵에는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리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다. ............
........황족이나 귀족들이 아닌, 제군들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여러분들의 수많은 후손들을 위해서 싸워주길 부탁한다. 이상이다."
"세레니안느! 리투니아! 플라비우스! 리투니아!"
내 말이 끝나자 병사들에게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휴 드디어 끝이났구나. 난 단상에서 내려오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부분의 말은 황제가 적은 연설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전혀 의외의 면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그 역시 황제의 장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휴, 그나저나 연설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어색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더듬거리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기진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밑에 있던 클라리가 저렇게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란트.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렇게 내가 써준 연설문을 잘 소화해 내다니."
황제는 병사들의 함성 속에서 약간의 놀람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정신이 없어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는데, 황제가 날 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주인님은 정말 정말 대단해! 못하는게 없다니까."
클라리의 목소리. 흠흠, 그래도 처음한 연설이었는데,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말에 기분은 그런대로 좋았다. 클라리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최소한 못하지는 않았단 이야기겠군. 난 연설을 하느라 얼굴에 흘렀던 땀을 닦은 다음 병사들의 행렬의 제일 앞쪽에 있는 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병사들의 행렬 앞 부분에 서 있던 기사 한명이 말에선 내려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더니, 투구를 벗은 뒤,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 아무래도 저 기사가 기사들의 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오니스 지원군 제 1 대대장 카이사르 폰 힐튼, 사령관각하께 병사들을 대표해 인사 올립니다."
힐튼? 그럼 아렐리아의 친척이란 말인가? 제 1 대대장, 사령관과 그의 부장에게 일이 생겼을 경우, 우선적으로 지휘권을 맡는 위치,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 역시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 다는 점이었다. 카이사르란 기사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나이가 이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시선을 아래쪽을 향하고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풍겨지는 느낌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는 실제로 전투를 겪어보면 느끼겠지만 말이다. 휴, 이럴 때는 답을 해주는 것이 예라고 했었지. 책에서는 어떻게 했더라?
"카이사르 경, 아직 많은 면에서 모자란 나를 많이 이끌어 주도록 부탁드리오."
난 책에서 읽은 것처럼, 무릎을 굽힌 카이사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을 했다. 이 것 역시 처음 한 것 치고는 꽤 자연스럽게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쳐다보는 카이사르,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나란 존재에 대해 무엇인가 깊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광입니다. 사령관 각하, 미숙하게나마 최선을 다해 사령관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를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는 카이사르, 그의 눈에 비친 난 어떤 존재일런지, 역시 한낮 어린아이로 생각을 하는 것일까? 흠흠. 이 제 1대대장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면, 부대를 지휘하기가 힘들다고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탈 말은 온통 흰색의 털을 가진 백마였는데 특이하게도 갈기털과 말 발굽 주변의 털은 검은 빛이었다. 그런데 저 말 아무래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저 말을 봤지?
'주인, 어서 타라.'
헛, 머릿속에 울리는 이 목소리는 아미의 목소린데, 그러고보니 아미가 아까 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미가 어디에 있는거지? 그다지 걱정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뭐, 아미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며칠 안에 찾아올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아미,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꼭 메세지 마법처럼 마음 속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나 역시 마음 속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렸다. 전에 아미가 마음이 통한다고 했으므로 이런식으로 하면 말이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인, 바로 앞, 말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상태다.'
뭐 말? 난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내 눈앞에 있는 흰색의 말을 쳐다보았다. 컥, 저 말이 아미란 말이지? 어쩐지 안면이 있다고 했더니. 그런데 이 드래곤이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말로 변한 것일까?
'아미, 말로 변해도 괜찮은 거야?'
'말이 어떻다고 그러는가? 주인. 내게는 말이나 인간이나 별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흠 그 것도 그렇겠지. 드래곤이란 존재에게는 말이나 인간, 둘 다 하찮은 생명체일테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라니!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아무래도 가슴으로 이해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종족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
"영주님, 뭐하세요. 어서 말에 오르셔야죠.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미마(馬) 앞에서 잠시 당혹스러운 마음에 머뭇거리고 있었던, 나를 향해 황제가 갑자기 무슨 일이랴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황제를 향해 아무일도 아니라는 표현으로 고개를 저은 후,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아미 위에 올라탔다. 세상에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말을 타게되다니?! 나란 존재는 정말 특이한 경험을 많이하게 되는 것 같다. 쩝, 이제 그 말을 외칠 차례인가? 조용히 살던 내 체질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지휘관으로써는 필수적인 행동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군, 출진하라!"
내가 칼을 높이 빼들고 외치자, 천여명의 장병들은 서서히 내 뒤를 따라 동쪽의 성문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 많은 수의 리투니아 시민들이 길가로 나와 행군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배웅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수건을 들고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꽃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게중에는 음식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병사들의 가족이 병사들을 위해 준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병사들을 향해 환호를 했지만, 틈틈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 병사들의 가족들인듯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 전까지의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사라졌던 걱정이 조금씩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천 여명의 생명이 나란 존재에게 달렸다는 것 바로 그 것이 다시 생각이 나며, 내 칼에 죽어갔던 녀석들이 보기에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행군을 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종종 나를 향하는 것을 느꼈지만, 뭐 이제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다지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렐리아 시장이나 부시장 같이 젊은 고위 관료에 대해 익숙해진 리투니아 시민들이겠지만, 그래도 장군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나이라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지휘자란 경험이 풍부할 수록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지휘 경험은 없었지만, 이 평화로운 시기의 제국의 장교들에 비해서 결코 전투 경험은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좀 허약한 면이 없진 않아도 수많은 괴물사냥꾼들, 그리고 정벌군과 전투를 벌여 피의 전사, 피의 마왕이란 호칭을 받았던 나이므로.
그런데 성문에 거의 다다른 순간, 갑자기 행군을 하고 있던 우리 앞에 수십여명의 무장을 한, 용병들로 보이는 사람들 뛰어들었다. 갑자기 무슨? 난 조금 당황을 해서 칼을 뽑으려 하는 순간, 그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 난 그들이 공격의사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하며 허릿춤을 향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을 한 다음 앞에 뛰어든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그 용병들의 제일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카밀 메르틴, 어제 내가 도와줬던 그 용병대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난 손을 들어 병사들의 행군을 멈춘 다음 카밀 쪽을 향해 말을 몰아 갔다.
"카밀, 무슨 이유로 행군을 방해하는 것이오? 군대의 행군을 방해하면, 즉결처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무릎을 꿇고 있던 카밀은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크리센공,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공께서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이제 저희의 목숨은 공의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공께 보답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카밀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정중한 말투. 어제 일은 그냥 그 괴물 사냥꾼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뿐인데. 카밀이 감사할 필요는 없었다.
"카밀, 지금 난 개인이 아니라, 한 군대의 지휘관이오. 이런 일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소."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에 주위에서 병사들을 배웅하던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그리고 뒤 쪽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 역시 무슨일인지 궁금해 하는 듯한 눈치였다.
"크리센공, 부탁드립니다. 제발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카밀의 말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황제와 그 카이사르란 기사가 말을 몰아 우리쪽을 향해 다가왔다. 두사람 모두 확실히 내 의도를 알아차리는 군, 카이사르경 이사람과 별문제가 생가지만 않는다면 그 역시 이번 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우리와 합류를 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카이사르경."
일단 카이사르에게 먼저 묻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라면 일단 내 의사를 따를 가능성이 높았으니, 그나마 내가 독단적으로 행동을 했을 때 불만을 가질 사람이라면 카이사르이 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그런데 카이사르경은 앞에 있는 카밀을 보더니 무척이나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사령관 각하, 제 생각에는 합류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카밀 메르틴 저 사람과 카밀의 부하들의 실력이라면 전 리투안이 알아줄 정도이니,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규군 자체를 혐오하는 저사람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정규군을 혐오한다고? 훔, 처음 듣는 이야기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 카밀이 꽤 유명한 존재인 것 같았다. 뭐, 검술 실력은 보지 못했지만 그 정도의 격투기 실력만큼 검술이 된다면, 최소한 A클레스 이상의 실력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 실제로 부대에 합류를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카이사르 제 1 대대장이 동의를 했다면 이제는 내 의사대로 해도 되겠지?
"카밀 허락하도록 하지. 그럼 지금 부터 자네를 제 11대대장으로 임명할테니, 따라오도록 하게. 단, 식량이나 보급품에 대해서는 따로 그 만큼의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이네."
원래, 공적인 면에서 지휘자는 철저해야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일단 식량이나 보급품 사정은 충분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 것과는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지 다른 병사들이 불만을 가지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뭐, 돈이야 남아돌고 있는 내가 지불하겠지만, 그래도 말은 이렇게 해두는게 여러가지 면에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입니다. 크리센공.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공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카밀은 그 말을 마치자 카밀과 그의 부하들이 갑자기 자신의 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낸 뒤, 내가 말릴 겨를도 없이 빠르게 자신들의 팔에 나이프를 'L'자로 그었다. 나이프가 지나간 자리에서 붉은 색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란트의 이니셜중 첫글자인 L 자 가끔씩 충성을 맹세할 때 저런 방법을 쓴다고 했는데. 컥, 카밀 저사람 정말 진심인 것일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서 꼭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부장, 카밀 대대장에게 그 들의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게."
"네, 사령관."
훗훗, 카밀과 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던 황제는 내 말을 듣자 내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는 카밀 쪽을 말을 몰아가서 카밀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다. 훔훔, 황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나름대로 꽤 재미가 있었다. 물론, 그게 내 목숨이 달려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황제의 말을 들은 후, 카밀은 나를 향해 다시한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뒤, 행렬의 뒤쪽을 향해 부하들을 데리고 이동을 했다. 대충 수를 보니, 약 70여명의 용병들, 어제 식당에 있었던 카밀의 부하들의 약 세 배에 이르는 숫자였다. 뭐,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지 어제 그 괴물 사냥꾼 녀석과 싸워 올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꽤 많은 수 인것 같았다. 어제는 아무래도 도시내에서 너무 많은 숫자가 돌아다니면 눈에 띄이기 쉽기 때문에 나눠서 다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까닭에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생긴 것 같다. 아마 이오니스 도시 안까지 괴물사냥꾼이 들어오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그런 예상을 벗어나 그 괴물사냥꾼 녀석은 '줄'을 들먹이며 천연덕스럽게 자기 패거리를 끌고 도시안에서 나타났었고. 확실히 이 사실은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뭐, 아렐리아에게 맡겨놨으니 잘 해결해 놓겠지.
그렇게 약간의 소란이 정리 된 후, 부대는 다시 성문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주나 사령관으로써의 내가 아닌, 란트 크리센으로써의 나를 따르는 부하가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고, 책임져야할 짐덩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쩝, 그런데 70명이 추가되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병력으로 수만의 군대와 제대로 싸울 수는 있을까? 뭐, 별수 있을까? 황제의 그 자신감을 믿어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천여명의 사람들과 홀로 마주서서 싸우는 것이 아닌, 그들의 지휘자로서의 첫 경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투안 크리센 왕가의 초대 국왕, 란트 1세의 첫출전 기록은 놀랍게도 남부 리투니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제 2차 대전쟁 중, 이오니스 지원군의 사령관의 직위를 받아 아테네이오스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던 바로 그 것이다. 제 2차 대전쟁 중, 남부지역에서의 철혈여제와 세인트 1세의 화려한 업적 때문에 이 흥미로운 사실 역시 역사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필자가 사료를 연구하던 중 발견한 사실은, 남부지역의 전황에서 란트 1세의 공 역시 세인트 1세나 철혈여제 못지않게 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많은 란트 1세의 공적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세인트 1세나 철혈여제의 공적으로 바뀌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후세의 제국의 역사가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들 뿐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제국의 역사가로써 올바른 역사를 알려야할 필요성을 느끼기에 책의 주제에서는 벗어났지만 간략하게나마 란트 1세의 업적을 적고자 한다. 란트 1세 역시 앞에서 예를 들었던 수많은 제국의 위대한 황제들 못지않게 배울점이 많은 훌륭한 통지자들 중 한 사람이므로, 란트 1세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필자가 이 책을 지필하게 된 목적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 것이 제국의 국력의 변화에 상관없이 수백년동안이나 신의를 지킨 피투안 왕실에 대한, 한 때는 제국의 총리대신직을 맡았던 제국의 백성 중 한사람으로써의 조그마한 감사의 표시이다.<제국 황제 평전-번외편 란트 1세-> 타키투스 폰 힐튼-
난 평소와는 다른 어떻게 보면, 조금 긴장된 상태로 옷을 입고 있었다. 난 그런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닌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천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지휘자로써 서는 것, 천여명의 적들 앞에서 그들의 적으로써 서본 경험은 많이 있었지만, 지금 이런 상황은 내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처음 장교로 임명을 받았을 때, 나처럼 이런 느낌을 느끼셨을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번 쯤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휴, 긴장이라? 정말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어떤 적을 앞에 두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이런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주인님아, 이제 나갈 시간이야."
"으, 응."
난 다시 내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정돈한 다음 방에서 나왔다. 그런 내 뒤에는 클라리와 황제, 그리고 소피, 티티가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 한명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긴장된 마음 때문에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았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난 백합의 기사 복장 차림에 흰색 망토를 두르고, 그리고 어깨 부분에는 흰색바탕에 금빛의 백합무늬가 새겨진 어깨 부분을 가릴 수 있게 된 방어구를 전과는 달리 추가로 착용했다. 어깨 위 백합 무늬의 방어구는 리투니아시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투니아의 상징 역시 내 상징과 같은 백합이었던 까닭에 내가 그 후에 리투니아 군을 지휘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경우에도 내가 착용을 하고 다녀도 별 무리는 없을 듯 했다. 쩝, 리투니아의 상징을 도용한 것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그랬지만, 뭐 시의 상징과 가문의 상징은 별개이므로. 그리고 아렐리아에게 이 사실에 대해 물어봤더니, 오히려 리투니아시로써는 영광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볼 때, 확실히 욕을 얻어먹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는 클라리는 그 전까지는 생전 입은 적이 없는 흰색 바탕의 여성용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까닭에, 평소의 외모에도 조금씩 남아있던 그 이지적인 느낌이 더욱더 강조되는 것 같았다. 물론, 클라리의 본 성격이야 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클라리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라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 복장과 외모만으로만 따진다면 보좌관이란 직책에 클라리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실제로는 어제 그 서류사건만 보더라도 그다지 내게 도움이 되지않고 있었지만 어쨌든 형식상으로나마 클라리가 보좌관은 보좌관이므로 보좌관에 어울리는 외모라도 가진 것이 그렇지 않은 것 보다는 나을테지. 그런데 딱딱한 사무적인 옷차림을 하면, 그 절세의 미모가 거의 사라지는 카렌과는 달리, 클라리의 경우에는 이차림 나름대로 또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해. 나 뿐만 아니라 클라리 역시 어떤 옷이든지 잘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복장은 평소에 입고 다니던 그 가죽갑옷 대신 하프플레이트 갑옷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눈 부분만 들어나 있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얼굴을 가려야할 일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계속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는 무엇인가 의심을 받기 쉽기 때문인 듯 했다. 하지만 황제가 지금 내 직속 부장으로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무장을 한 상태로 있다면, 투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더라도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황제가 저런 모습을 취하지 않았나 싶다.
'피의 전사'로써 살던 내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기쁘다고 표현을 해야할까? 처음 이 일을 맏게 되었을 때 느꼈던 귀찮다는 감정보다 지금은 왠지모를 기대감까지 드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런 내 감정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솔직히 어제밤에 잔뜩 싸여있던 서류를 해결하던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렸다.
"란트, 긴장하지말고, 마음 편히 먹으렴. 알겠지?"
뒤에서 들리는 황제의 목소리,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되도록이면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웠다. 확실히 황제는 나이 50이 그냥 나이 50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긴장했다는 것을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하지만 내가 긴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긴장을 푼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난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 황제가 준 연설문 쪽지를 품 속에서 꺼내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벌써 몇 번이나 보는 것이었지만, 걸어가는 동안 무엇인가 다른 것에 집중을 하는게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번 연설문을 읽어두기로 했다. 황제가 적어준 연설문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었지만, 그다지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도 무엇인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명문장이었다. 그리고 나란 존재에 대해 황제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제국을 통치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 연설문을 제대로 소화를 해낼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나답지 않게 왜 이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렇게 잡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하니.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시청의 복도의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었다. 난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문에 도착하자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하인들이 문을 활짝열었다. 밝게 내리쬐이는 햇빛, 그 눈부심 때문에 잠시 보이지 않았던 눈이 다시 보이게 되었을 쯤, 내 눈앞에는 천여명의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정열이 되어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깨끗하게 관리된, 무기와 갑옷들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조금 눈이 부셨지만, 왠지 모를 이 감동이란, 정말, 아까부터 느꼈던 점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생겨나는 이 감정들을 나 역시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유전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들었지만.
"크리센공, 이쪽으로."
먼저 밖에 나와있던 아렐리아가 나를 단상으로 이끌었다. 헛, 드디어 연설인가? 난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렐리아의 뒤를 따라 단상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가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서자, 수천의 병사들의 눈이 나를 향하며, 주위는 적막으로 휩싸였다. 호기심이 담긴 듯한 눈빛. 아무래도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어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이런 상황은 겪어왔었으므로 별 문제는 없었다. 단상 옆에 황제와 아렐리아가 선 뒤, 난 그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나는 이번 이오니스 지원군의 총사령관직을 맡은 란트 크리센이다.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 나이는 사령관직을 맡기에는 아직 어리고, 경험 또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 란트 크리센이 사령관직을 맡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시 이 곳, 리투니아로 돌아올 무렵에는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리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다. ............
........황족이나 귀족들이 아닌, 제군들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여러분들의 수많은 후손들을 위해서 싸워주길 부탁한다. 이상이다."
"세레니안느! 리투니아! 플라비우스! 리투니아!"
내 말이 끝나자 병사들에게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휴 드디어 끝이났구나. 난 단상에서 내려오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부분의 말은 황제가 적은 연설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전혀 의외의 면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그 역시 황제의 장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휴, 그나저나 연설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어색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더듬거리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기진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밑에 있던 클라리가 저렇게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란트.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렇게 내가 써준 연설문을 잘 소화해 내다니."
황제는 병사들의 함성 속에서 약간의 놀람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정신이 없어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는데, 황제가 날 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주인님은 정말 정말 대단해! 못하는게 없다니까."
클라리의 목소리. 흠흠, 그래도 처음한 연설이었는데,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말에 기분은 그런대로 좋았다. 클라리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최소한 못하지는 않았단 이야기겠군. 난 연설을 하느라 얼굴에 흘렀던 땀을 닦은 다음 병사들의 행렬의 제일 앞쪽에 있는 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병사들의 행렬 앞 부분에 서 있던 기사 한명이 말에선 내려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더니, 투구를 벗은 뒤,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 아무래도 저 기사가 기사들의 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오니스 지원군 제 1 대대장 카이사르 폰 힐튼, 사령관각하께 병사들을 대표해 인사 올립니다."
힐튼? 그럼 아렐리아의 친척이란 말인가? 제 1 대대장, 사령관과 그의 부장에게 일이 생겼을 경우, 우선적으로 지휘권을 맡는 위치,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 역시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 다는 점이었다. 카이사르란 기사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나이가 이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시선을 아래쪽을 향하고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풍겨지는 느낌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는 실제로 전투를 겪어보면 느끼겠지만 말이다. 휴, 이럴 때는 답을 해주는 것이 예라고 했었지. 책에서는 어떻게 했더라?
"카이사르 경, 아직 많은 면에서 모자란 나를 많이 이끌어 주도록 부탁드리오."
난 책에서 읽은 것처럼, 무릎을 굽힌 카이사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을 했다. 이 것 역시 처음 한 것 치고는 꽤 자연스럽게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쳐다보는 카이사르,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나란 존재에 대해 무엇인가 깊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광입니다. 사령관 각하, 미숙하게나마 최선을 다해 사령관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를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는 카이사르, 그의 눈에 비친 난 어떤 존재일런지, 역시 한낮 어린아이로 생각을 하는 것일까? 흠흠. 이 제 1대대장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면, 부대를 지휘하기가 힘들다고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탈 말은 온통 흰색의 털을 가진 백마였는데 특이하게도 갈기털과 말 발굽 주변의 털은 검은 빛이었다. 그런데 저 말 아무래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저 말을 봤지?
'주인, 어서 타라.'
헛, 머릿속에 울리는 이 목소리는 아미의 목소린데, 그러고보니 아미가 아까 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미가 어디에 있는거지? 그다지 걱정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뭐, 아미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며칠 안에 찾아올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아미,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꼭 메세지 마법처럼 마음 속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나 역시 마음 속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렸다. 전에 아미가 마음이 통한다고 했으므로 이런식으로 하면 말이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인, 바로 앞, 말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상태다.'
뭐 말? 난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내 눈앞에 있는 흰색의 말을 쳐다보았다. 컥, 저 말이 아미란 말이지? 어쩐지 안면이 있다고 했더니. 그런데 이 드래곤이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말로 변한 것일까?
'아미, 말로 변해도 괜찮은 거야?'
'말이 어떻다고 그러는가? 주인. 내게는 말이나 인간이나 별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흠 그 것도 그렇겠지. 드래곤이란 존재에게는 말이나 인간, 둘 다 하찮은 생명체일테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라니!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아무래도 가슴으로 이해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종족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
"영주님, 뭐하세요. 어서 말에 오르셔야죠.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미마(馬) 앞에서 잠시 당혹스러운 마음에 머뭇거리고 있었던, 나를 향해 황제가 갑자기 무슨 일이랴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황제를 향해 아무일도 아니라는 표현으로 고개를 저은 후,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아미 위에 올라탔다. 세상에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말을 타게되다니?! 나란 존재는 정말 특이한 경험을 많이하게 되는 것 같다. 쩝, 이제 그 말을 외칠 차례인가? 조용히 살던 내 체질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지휘관으로써는 필수적인 행동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군, 출진하라!"
내가 칼을 높이 빼들고 외치자, 천여명의 장병들은 서서히 내 뒤를 따라 동쪽의 성문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 많은 수의 리투니아 시민들이 길가로 나와 행군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배웅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수건을 들고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꽃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게중에는 음식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병사들의 가족이 병사들을 위해 준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병사들을 향해 환호를 했지만, 틈틈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 병사들의 가족들인듯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 전까지의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사라졌던 걱정이 조금씩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천 여명의 생명이 나란 존재에게 달렸다는 것 바로 그 것이 다시 생각이 나며, 내 칼에 죽어갔던 녀석들이 보기에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행군을 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종종 나를 향하는 것을 느꼈지만, 뭐 이제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다지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렐리아 시장이나 부시장 같이 젊은 고위 관료에 대해 익숙해진 리투니아 시민들이겠지만, 그래도 장군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나이라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지휘자란 경험이 풍부할 수록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지휘 경험은 없었지만, 이 평화로운 시기의 제국의 장교들에 비해서 결코 전투 경험은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좀 허약한 면이 없진 않아도 수많은 괴물사냥꾼들, 그리고 정벌군과 전투를 벌여 피의 전사, 피의 마왕이란 호칭을 받았던 나이므로.
그런데 성문에 거의 다다른 순간, 갑자기 행군을 하고 있던 우리 앞에 수십여명의 무장을 한, 용병들로 보이는 사람들 뛰어들었다. 갑자기 무슨? 난 조금 당황을 해서 칼을 뽑으려 하는 순간, 그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 난 그들이 공격의사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하며 허릿춤을 향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을 한 다음 앞에 뛰어든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그 용병들의 제일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카밀 메르틴, 어제 내가 도와줬던 그 용병대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난 손을 들어 병사들의 행군을 멈춘 다음 카밀 쪽을 향해 말을 몰아 갔다.
"카밀, 무슨 이유로 행군을 방해하는 것이오? 군대의 행군을 방해하면, 즉결처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무릎을 꿇고 있던 카밀은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크리센공,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공께서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이제 저희의 목숨은 공의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공께 보답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카밀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정중한 말투. 어제 일은 그냥 그 괴물 사냥꾼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뿐인데. 카밀이 감사할 필요는 없었다.
"카밀, 지금 난 개인이 아니라, 한 군대의 지휘관이오. 이런 일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소."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에 주위에서 병사들을 배웅하던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그리고 뒤 쪽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 역시 무슨일인지 궁금해 하는 듯한 눈치였다.
"크리센공, 부탁드립니다. 제발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카밀의 말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황제와 그 카이사르란 기사가 말을 몰아 우리쪽을 향해 다가왔다. 두사람 모두 확실히 내 의도를 알아차리는 군, 카이사르경 이사람과 별문제가 생가지만 않는다면 그 역시 이번 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우리와 합류를 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카이사르경."
일단 카이사르에게 먼저 묻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라면 일단 내 의사를 따를 가능성이 높았으니, 그나마 내가 독단적으로 행동을 했을 때 불만을 가질 사람이라면 카이사르이 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그런데 카이사르경은 앞에 있는 카밀을 보더니 무척이나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사령관 각하, 제 생각에는 합류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카밀 메르틴 저 사람과 카밀의 부하들의 실력이라면 전 리투안이 알아줄 정도이니,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규군 자체를 혐오하는 저사람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정규군을 혐오한다고? 훔, 처음 듣는 이야기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 카밀이 꽤 유명한 존재인 것 같았다. 뭐, 검술 실력은 보지 못했지만 그 정도의 격투기 실력만큼 검술이 된다면, 최소한 A클레스 이상의 실력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 실제로 부대에 합류를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카이사르 제 1 대대장이 동의를 했다면 이제는 내 의사대로 해도 되겠지?
"카밀 허락하도록 하지. 그럼 지금 부터 자네를 제 11대대장으로 임명할테니, 따라오도록 하게. 단, 식량이나 보급품에 대해서는 따로 그 만큼의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이네."
원래, 공적인 면에서 지휘자는 철저해야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일단 식량이나 보급품 사정은 충분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 것과는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지 다른 병사들이 불만을 가지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뭐, 돈이야 남아돌고 있는 내가 지불하겠지만, 그래도 말은 이렇게 해두는게 여러가지 면에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입니다. 크리센공.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공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카밀은 그 말을 마치자 카밀과 그의 부하들이 갑자기 자신의 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낸 뒤, 내가 말릴 겨를도 없이 빠르게 자신들의 팔에 나이프를 'L'자로 그었다. 나이프가 지나간 자리에서 붉은 색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란트의 이니셜중 첫글자인 L 자 가끔씩 충성을 맹세할 때 저런 방법을 쓴다고 했는데. 컥, 카밀 저사람 정말 진심인 것일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서 꼭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부장, 카밀 대대장에게 그 들의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게."
"네, 사령관."
훗훗, 카밀과 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던 황제는 내 말을 듣자 내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는 카밀 쪽을 말을 몰아가서 카밀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다. 훔훔, 황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나름대로 꽤 재미가 있었다. 물론, 그게 내 목숨이 달려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황제의 말을 들은 후, 카밀은 나를 향해 다시한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뒤, 행렬의 뒤쪽을 향해 부하들을 데리고 이동을 했다. 대충 수를 보니, 약 70여명의 용병들, 어제 식당에 있었던 카밀의 부하들의 약 세 배에 이르는 숫자였다. 뭐,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지 어제 그 괴물 사냥꾼 녀석과 싸워 올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꽤 많은 수 인것 같았다. 어제는 아무래도 도시내에서 너무 많은 숫자가 돌아다니면 눈에 띄이기 쉽기 때문에 나눠서 다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까닭에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생긴 것 같다. 아마 이오니스 도시 안까지 괴물사냥꾼이 들어오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그런 예상을 벗어나 그 괴물사냥꾼 녀석은 '줄'을 들먹이며 천연덕스럽게 자기 패거리를 끌고 도시안에서 나타났었고. 확실히 이 사실은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뭐, 아렐리아에게 맡겨놨으니 잘 해결해 놓겠지.
그렇게 약간의 소란이 정리 된 후, 부대는 다시 성문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주나 사령관으로써의 내가 아닌, 란트 크리센으로써의 나를 따르는 부하가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고, 책임져야할 짐덩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쩝, 그런데 70명이 추가되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병력으로 수만의 군대와 제대로 싸울 수는 있을까? 뭐, 별수 있을까? 황제의 그 자신감을 믿어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천여명의 사람들과 홀로 마주서서 싸우는 것이 아닌, 그들의 지휘자로서의 첫 경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