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8장 전란에 휩싸인 제국(2) 출전-2(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7. 31. PM 8:37:52·조회 2144·추천 83
에피소드 51 출전-2
-지휘관이 그 자신의 부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때는 어떠한 변명도 합법화 될 수 없다. 진정한 지휘관이란, 부하들의 나이, 연령, 성향들을 떠나 그 들의 마음을 얻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그 과정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옛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고 지휘관의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받은 지휘관들이야 말로 실로 존경 받아 마땅할 인물들이다. <8인의 통치자들-마키아벨리 비아니스>-
난 행군을 하는 동안 아미의 도움을 받아, 지금 우리가 행군하고 있는 곳 주변의 지형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다. 드래곤의 예민한 감각 때문인지, 아미는 나와 똑같은 위치,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바로 밑에서 말 노릇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정확한 정보를 내게 살펴 주고 있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말을 전하기 때문에 다른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사령관 각하. 아무래도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어디서 숙영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제 1 대대장, 카이사르가 말의 속도를 빨리해 내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냈다. 훔, 비가온다고? 아미가 미리 내게 비가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말에 그다지 당황해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날씨도 맑은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하는 호기심을 담아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나란 존재를 심어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출전 전에 준비를 해뒀던 지식과 아미에게 새로 들은 정보를 활용해 카이사르 대대장을 향해 되도록 거창하게 답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이 속도로 약 2시간 정도 행군을 더 하면, 비를 피해 숙영하기에 괜찮은 장소가 있다고 알고 있소. 숙영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지만, 비도 올테니 오늘은 그 곳에서 숙영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카이사르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정말, 난 예전에 읽었던 영웅소설들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장들이 사용하는 말투를 적절하게 활용해 카이사르에게 답을 해주었다. 출전을 하기 전에는 말투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 외로 직접 그 상황을 겪게 되니 그다지 힘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그다지 겪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카이사르는 정말 생각 밖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표정을 감춘 뒤, 내 질문에 답을 했다.
"현명하신 사령관께서 내리신 결정에 미혹한 제가 어찌 감히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두시간 후에 숙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다른 대대장들에게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체 내 의견에 따르겠다는 의사만을 보인 카이사르의 화법,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아마 카이사르는 다른 대답을 했겠지?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렇게 나를 향해 놀란 표정이나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상적인 사람들과 비슷해 지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더욱더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사르가 뒤쪽으로 말을 돌려 기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간 직후, 처음부터 말머리 하나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조금 뒤처진 상태에서 내 옆에서 말을 몰고 있었던 황제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했다.
"사령관, 정말 대단하신데요? 모르시면 제가 대신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됬네요. 언제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셨어요?"
황제는 말에 존칭을 붙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꼭, 엄마가 어린 자기 아들을 칭찬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얼굴이 가려진체 목소리만 들으니, 그래도 거부감이 적게 드는 것 같다. 아무리 예쁘다고해도 황제는 정상적인 사람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났으므로 보면 볼수록 더욱더 그 거부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가 또 엘프나 하프엘프였다면 모르겠지만 황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너무나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냥 그렇게 젊은 할머니거니 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엔 말투나 행동까지 젊은 사람들 행세를 하려고 하니, 그냥 그렇게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어제 밤에 밤새도록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그 서류들로부터 이 정도로라도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 시간이 아까워서 어떻게 하겠나? 지금 이 사령관을 무시하는 것이오? 세리 부장! 아니면 사령관에게 제공되는 제국의 서류가 미흡하다고 생각을 하시는거요?"
난 이왕 이렇게 된 것, 최근에 황제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다풀자는 의도로 황제에게 조금 사나운 말투로 말을 했다. 그리고 뒤에 덧붙인 말은 일부러 황제가 제국의 대표자라는 것을 의식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도 황제는 그다지 화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후후, 사령관 각하. 각하는 확실히 혼자서 싸우시는 것보다는 지휘관의 위치에 더 잘어울리시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각하께 종종 이런 기회가 생기면 세리 부장은 정말 기쁠 것 같아요."
헛, 다시 말투를 바꿔서 말을 하는 황제. 그런데 잠깐, 이런 기회가 종종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은 앞으로도 나를 되도록이면 많이 부려먹겠다는 황제의 의도를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보복을 하다니, 정말 이러다가 황제가 죽는 그 날까지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얼핏 들었다. 난 왠지모를 식은 땀이 등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급히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얕은 언덕이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잘 다져진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었다. 보통 이 시간 무렵이면 도시의 성문이 올라가기 전에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길에 마차나 여행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여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니스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인지 넓은 남부대로는 꽤 한적했다. 그 덕택에 진군을 하는데, 그다지 지장을 받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업국가인 리투안의 도시라면 어느도시라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것을 그다지 반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북부 파나단 지역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을 일월말이었지만, 대륙의 최남단에 속하는 이 곳에서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의 도움까지 받아 이미 늦봄의 따뜻한 기운이 가득 감돌고 있었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 근처로 내려가고 있는 오후, 눈 앞에 보이는 동쪽하늘에서 얼마 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구름의 양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아미나 카이사르의 말처럼 비가 오긴 올 모양인 것 같다. 카이사르, 확실히 평범한 기사와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무엇인가 달랐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특별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그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얕으막한 언덕이 뒤에서 바람을 가려주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는 숙영지로써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곳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니 숙영지 뿐만 아니라, 새로 마을을 새우거나 하기에도 좋은 위치였다. 물론, 숙영지로 하기에는 어느정도의 신중한 정찰이 필수적으로 있어야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의 좋은 숙영장소를 발견했을 경우, 내가 읽었던 책에 따라 설명하자면 한, 두시간 정도 진군이 늦어지는 일이 었더라도 되도록이면 그 장소에서 숙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만큼 숙영지의 위치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전시에는 언제 적군의 기습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장소에서는 기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사들이 분주히 천막들을 세우고 그 주위에 간단한 울타리를 두르는 등 숙영지 준비에 한참이었다. 내가 특별히 따로 지시를 내리거나 할 필요도 없이 능숙하게 숙영지를 건설하는 모습을 보며, 무관이 아닌 문관인 아렐리아가 임시직이지만, 어쨌든 남부수비대 대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세삼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눈에는 그렇게 장난많은 아가씨로만 보였던 아렐리아는 그 자신이 시장으로써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확실히 새롭게 다시 도약하는 나라, 무엇인가 특별한 점이 너무나 많이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보이고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정도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서도 이렇게 뛰어나게 훈련효과를 발휘하는 제국군인데, 아무리 많은 대군이 쳐들어 왔다고 하더라도 근위대 다음으로 정예를 배치하기 마련인 국경수비대가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왠지 의아스러웠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제국사정에 익숙치 않은 나였으므로 그다지 확신을해서 조사를 한다거나 할만한 것은 못되었다. 또 그 정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을 가진 위치도 아니었으므로, 쩝, 비밀감사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닌가?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난 클라리, 황제, 소피와 티티를 데리고 빠른 속도로 세워지고 있는 숙영지의 곳곳을 조금은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둘러보았다. 그런데 숙영지의 한쪽으로 다가갔을 무렵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센 대장님!"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카밀과 그의 70여명의 부하들이 어설픈 솜씨로 자신들 딴에는 열심히 천막을 세우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용병들인 그들에게 제국 정규군용 천막은 아무래도 어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용병들은 대체로 작은 텐트를 쓰거나 날씨가 좋을 때는 그냥 밖에서 노숙을 하곤 했으므로, 천막을 세워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에다 특별히 설치 방법을 훈련받거나 한적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카밀, 무슨일인가?"
카밀은 곤란스러운 듯한 표정을 한체 머리를 긁적이며, 내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인 후, 말을 했다. 아무래도 천막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없을지 허락을 맡으려는 의도인 것 같다.
"저, 대장님, 그냥 저희들은 텐트를 사용하면 안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천막은 익숙치가 않아서, 저 모습들을 보십시오. 대장님. 정말 이러다간 내일 출발할 때까지도 설치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카밀은 천막 앞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가리키며 무언가 절박함이 담긴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휴,정말. 용병들이란, 난 그런 카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카밀. 자네들은 특별히 텐트를 설치하도록 하게."
뭐, 어쨌든 이 용병들이 제국 정규군 소속인 것도 아니었고, 나로 인해서 임시로 합류를 하게된 입장이었으므로, 꼭 제국 정규군의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들을 합류시킨 내가 책임을지면 간단하니까.
"감사합니다. 대장! 그럼 전 비가오기 전에 텐트를 설치해야 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카밀은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급히 그들의 부하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카밀의 말을 들은 용병들이 모두들 죽다 살아난 것 같은 표정을 하는 것을 보며 난 이번엔 짐덩어리들을 단체로 짊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 암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설마 그럴리가 하며 애써 그 생각을 부정하고는 용병들의 천막과는 달리 이제 거의 완공되어가는 사령관용 천막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저희 병력은 이오니스를 포위하고 있는 병력의 약 십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저희가 이오니스성에 접근을 하는 것도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큰 천막안에는 11명의 대대장들과, 제 1소대장, 그리고 황제와 클라리를 포함 열다섯명의 사람이 임시로 놓여진 테이블을 가운데에 둔체 앉아 있었다. 지금 말을 한 사람은 제 3대대장 젤로트, 첫 인상부터 그다지 편한 상대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 예상이 정확했다.
첫 회의는 대체로 가벼운 주제로 시작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젤로트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지금 나로써도 가장 어려워하는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기선 제압, 아무래도 나이 어린 내 지휘를 받는 다는 사실이 젤로트 저 녀석한테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린 네 놈은 가만히 구석에 박혀 있고 우리들이 알아서 하겠다 하는 분위기로 나가겠지? 그렇다면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뭐, 하지만 그다지 무례한 말투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좋게 좋게 해결하기로 했다.
"보좌관, 테이블 위에 이오니스 주변 지도를 펼쳐 놓도록."
내 말을 들은 클라리는 심각한 분위기 때문인지 다행히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보좌관 그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전에 수도에서 본, 스승님의 그 마법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그 마법검도 본 성격이 클라리 만큼이나 이상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
클라리가 테이블 위에 이오니스 주변의 지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진 군사지도를 펼친 후에 난 최근 며칠간 대략적으로나마 생각을 해오던 작전을 정리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 3 대대장 젤로트 쪽을 한번 쳐다본 다음, 클라리의 본신을 검집체로 들어 지휘봉 대신으로 사용을 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오니스의 지형을 살펴보면, 여러분들도 알고 있듯이 이오니스의 서북쪽은 중부산맥의 마지막 자락에 닿아있어 자연적인 방어벽이 구축되어 있소, 그리고 중부산맥은 또한 이오니스를 기준으로 이오니스의 서쪽과 이오니스의 북쪽 지역을 가르는 역할까지 해주고 있소."
내가 설명을 하자, 비교적 상세히 귀를 기울이는 몇몇의 기사들과,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한 무성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몇몇의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마법으로 확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이오니스의 서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곳은 바로 이 작은 샛길 단 하나뿐이오. 그런 까닭에 이오니스의 서쪽 지역으로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보냈다가는 보급이 끊길 경우 그들은 고립되어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보통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대부분 알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들 역시 아까 젤로트경이 말했던 것처럼 이오니스를 지원하기 위해 고작 그들의 십분의 일 정도 밖에 안되는 병력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므로, 이오니스의 서쪽을 포위하는 것을 그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오. 공성전에서 성안팎의 물자 공급이 풍부해지고, 성에 일정 수 이상의 지원군마져 도착하게 된다면, 그 성을 점령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것 또한 그들 역시 모를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이 서쪽에는 어떤 병력이 배치될 것 같소? 보급도 필요없고, 그리고 일정수 이상의 병력을 별어려움 없이 막아낼 수 있는 군사들이라면."
난 잠시 말을 멈추고 천막안에 모인 대장들을 한번 둘러보며 그들의 의사를 물었다. 이번에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고 있는 기사들과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있는 기사들로 나눠져 버렸다. 정말.
"그렇다면, 사령관께서는 성 서쪽에 언데드나 골렘군단 같은 것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회의가 시작할 무렵부터 아무말 없이 하지만 주의 깊게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카이사르가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천막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카이사르에게 집중 되었다. 심지어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하품이나하고 있던 기사까지 모두. 난 카이사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지적했소. 카이사르경.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오. 마법사길드가 봉인 당한 후 쇠퇴기를 것고 있는 본국의 마법과 달리 아테네이오스는 규모는 크진 않지만 아직 상당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카이사르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기사들의 반응이 꽤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반응이 그 기사의 역량을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하면 내가 너무 확대해석을 한 것일까?
"잠깐, 언데드나 골렘이라고 하셨습니까? 마법사라고는 단 한명도 없는 저희가 그 들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냥 회군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대로된 지휘관도 없는 이 상황에서 그냥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찮가지 일인데 절대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후, 도저히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화를 내며, 제 9대대장 하이렛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일어서서 말을 했다. 제대로된 지휘관도 없다라, 저 녀석 언데드나 골렘손에 죽기 전에 내 손에 죽고 싶은 모양이군. 제대로된 마법사가 그다지 많지 않은 리투안에서 언데드나 골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저 녀석은 마지막에 해서는 안될 이야기를 했다. 그 지휘관이 정말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임에도 해서는 안되는 말. 게다가 난 그다지 내세우고 싶진 않지만 객관적인 서열에서도 저 녀석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은 위치의 인물이 아닌가.
"하이렛 경! 회군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아테네이오스군이 이오니스를 점령하면 그 다음 칼 끝은 어디로 돌리겠습니까?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하이렛 경 당신이 그러고도 진정 기사라고 할 수 있겠소!"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제 1소대장 밀러는 하이렛의 헛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하이렛에게 화를 냈다. 제 1소대장의 경우 평민이나 귀족 9계급등, 다른 장교들에 비해 출신 성분이 미약한 아닌 사람들이 맡고 있는 경우가 되부분이었고, 그런 까닭에 어떻게 보면 일반 사병들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그 였으므로 기사라는 작자가 고작 자신의 안위를 위해, 리투니아의 시민들은 생각도하지 않고 출발한지 얼마나 됬다고 군대를 회군하자는 의견을 낸다는 사실에 더욱더 분노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러, 고작 평민 출신 일개 소대장 주제에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대드는 것이냐!"
하이렛은 얼굴이 벌겋게 되서 밀러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정말 이 녀석은 시간이 흐를 수록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하고 있군. 이번에도 일개 소대장 주제에란 말만 했어도 좋게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중요한 건 앞에 평민 출신이란 말은 왜 붙는 건지. 그리고 내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 역시, 원래는 귀족 9계급 출신의 제 1소대장의 위치였으므로, 지금 밀러 소대장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나로써는 하이렛, 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분위기가 더 이상 험악해지기져서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변하기 전에 적당히 끝낼 필요가 있겠군.
난 아무 소리도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캐스팅을 완료한 다음, 몇 개의 얼음조각을 만들어 하이렛을 향해 날려 보냈다. 한개는 정확히 심장 바로 위의 갑옷을 얼려버렸고, 나머지 두조각은 각각 목과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도록 했다. 얼음조각이 스쳐지나간 자리에 생긴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이렛 경, 지금 우리군에 마법사가 없다고 하셨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방금 전의 공격에 얼마전까지 얼굴이 벌겋게 되서 화를 내던 사람이 맡냐는 듯, 이번에는 하이렛의 얼굴 색이 파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하이렛의 심장 바로 위의 얼려진 갑옷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천막안의 사람들.
"이거 참. 내가 한 때는 현상금 천만 골드의 피의 전사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나보군, 하이렛 경, 얼음 조각들이 당신 목을 향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신께 감사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이렛 당신을 군법 제 7조 5항에 의거, 상관 모독 혐의로 대대장 직을 박탈 하며, 추가로 군법 제 13조 8항, 부대 사기 저하 금지법 위반 혐의, 기사 규약 19항 신분 차별적 발언 금지 위반 혐의 추가로, 대대장직과 기사 작위를 박탈, 당신의 신분을 평민 신분으로 강등하겠소. 군사령관에 부여된 권한과 총리대신에 준하는 비밀 감사관의 권한으로 남 파나단 자치령주이며 이오니스 지원군 사령관 란트 크리센이 판결을 내림괴 동시에 집행하는 바이오."
난 그 말을 마치며, 여전히 품속에 잘 보관해 두고 있었던 비밀감사관 증명서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언제나 처럼 증명서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와 천막안을 가득 매웠다. 세리와 클라리를 비롯한 원래 있던 일행들을 제외하고는 경악하는 기사들, 단 한사람 카이사르를 제외한 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부터 제 1소대장 밀러 베이커를 임시로 공석인 제 9대대장이 임명하오."
내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조금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밀러는 그 다음 이어진 내 말을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숙여 명령을 따름을 표시 하며, 여전히 그 표정을 유지한체 급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천막안의 침묵, 그 침묵을 깨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다지 말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는 병사들은 뭣들하고 있는가? 어서 죄인 하이렛 프리멜을 이 곳에서 끌어내거라!."
흠,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하는 것을 잊고 있었군.
"카이사르 경! 경께서 어떻게..."
하이렛은 무언가 호소하듯 카이사르를 향해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하이렛을 카이사르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무말 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던 하이렛은 카이사르의 호통에 허둥지둥 천막안으로 들어온 병사들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냄에도 아까 보였던 그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별 저항없이 맥없이 끌려갈 뿐이었다. 난 겉으로 표시하지도 못한체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각하, 시간도 늦은 것 같고 하니, 이 쯤에서 회의를 끝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회의가 시작할 때부터, 카이사르만큼이나 회의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보고있었던 황제의 입에서도 역시 말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회의를 끊으면 너무 독단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으니, 황제가 대신 끊어주겠다는 의미인가? 솔직히 지금 분위기로 회의를 더 이상 진행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의 황제는 사람이 실컷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꿈적도 안하고 그나마 마지막에 가서야 단 한번 도움을 주다니,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꼭 출전하기 전에 말할 때는 자기만 믿으면 되는 것 같이 말했었으면서 말이다.
"그래, 그럼 오늘은 다들 피곤할테니. 이 쯤에서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소. 내일 역시 행군이 길어질 것 같으니 푹 쉬어 두도록 하시오."
"네, 각하."
내 말에 동시에 대답하는 그 들에게서 처음과는 달리, 나를 무시한다거나 하는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대답을 마차지마자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듯 모두들 황급히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천막에서 나간 카이사르가 쓸쩍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진 것 같다고 느낀 것은 내 착각일까?
"사령관 각하, 정말 괭장하시던데요? 정말 처음으로 지휘관을 맡은 사람같이 보이지가 않던걸요? 혹시 천부적으로 이런 방면으로 재능을 타고나신 것 아니에요?"
황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이번에도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헛, 나도 내가 왜이렇게 잘 해내는지 모르겠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히 내가 처음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 17세, 이 비슷한 일이 생길 시간도, 기회도 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익숙한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정말 황제의 말처럼 재능을 타고 난 것일까? 아니, 그런 것과는 왠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휴, 귀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 세리 부장."
난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겸, 항의겸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그다지 황제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음. 확실히 우리 주인님은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니까. 광전사, 요리사, 하인, 마부, 기사, 사령관, 왕자님,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미소녀 공주님!"
클라리는 밖에 들리지는 않을 정도로 그다지 크지 않게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냥 넘어갈 성질의 말은 분명히 아니었다. 특히 가장 마지막의 말,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캐스팅을 하는 것을 본 클라리는 정장차림이라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천막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잠깐, 그런데 옆에 있는 황제는 왜 고개를 끄덕이고 있냔 말이야! 정말, 못살겠다. 못살어.
-지휘관이 그 자신의 부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때는 어떠한 변명도 합법화 될 수 없다. 진정한 지휘관이란, 부하들의 나이, 연령, 성향들을 떠나 그 들의 마음을 얻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그 과정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옛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고 지휘관의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받은 지휘관들이야 말로 실로 존경 받아 마땅할 인물들이다. <8인의 통치자들-마키아벨리 비아니스>-
난 행군을 하는 동안 아미의 도움을 받아, 지금 우리가 행군하고 있는 곳 주변의 지형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다. 드래곤의 예민한 감각 때문인지, 아미는 나와 똑같은 위치,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바로 밑에서 말 노릇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정확한 정보를 내게 살펴 주고 있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말을 전하기 때문에 다른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사령관 각하. 아무래도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어디서 숙영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제 1 대대장, 카이사르가 말의 속도를 빨리해 내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냈다. 훔, 비가온다고? 아미가 미리 내게 비가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말에 그다지 당황해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날씨도 맑은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하는 호기심을 담아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나란 존재를 심어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출전 전에 준비를 해뒀던 지식과 아미에게 새로 들은 정보를 활용해 카이사르 대대장을 향해 되도록 거창하게 답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이 속도로 약 2시간 정도 행군을 더 하면, 비를 피해 숙영하기에 괜찮은 장소가 있다고 알고 있소. 숙영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지만, 비도 올테니 오늘은 그 곳에서 숙영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카이사르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정말, 난 예전에 읽었던 영웅소설들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장들이 사용하는 말투를 적절하게 활용해 카이사르에게 답을 해주었다. 출전을 하기 전에는 말투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 외로 직접 그 상황을 겪게 되니 그다지 힘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그다지 겪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카이사르는 정말 생각 밖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표정을 감춘 뒤, 내 질문에 답을 했다.
"현명하신 사령관께서 내리신 결정에 미혹한 제가 어찌 감히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두시간 후에 숙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다른 대대장들에게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체 내 의견에 따르겠다는 의사만을 보인 카이사르의 화법,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아마 카이사르는 다른 대답을 했겠지?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렇게 나를 향해 놀란 표정이나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상적인 사람들과 비슷해 지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더욱더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사르가 뒤쪽으로 말을 돌려 기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간 직후, 처음부터 말머리 하나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조금 뒤처진 상태에서 내 옆에서 말을 몰고 있었던 황제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했다.
"사령관, 정말 대단하신데요? 모르시면 제가 대신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됬네요. 언제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셨어요?"
황제는 말에 존칭을 붙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꼭, 엄마가 어린 자기 아들을 칭찬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얼굴이 가려진체 목소리만 들으니, 그래도 거부감이 적게 드는 것 같다. 아무리 예쁘다고해도 황제는 정상적인 사람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났으므로 보면 볼수록 더욱더 그 거부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가 또 엘프나 하프엘프였다면 모르겠지만 황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너무나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냥 그렇게 젊은 할머니거니 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엔 말투나 행동까지 젊은 사람들 행세를 하려고 하니, 그냥 그렇게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어제 밤에 밤새도록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그 서류들로부터 이 정도로라도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 시간이 아까워서 어떻게 하겠나? 지금 이 사령관을 무시하는 것이오? 세리 부장! 아니면 사령관에게 제공되는 제국의 서류가 미흡하다고 생각을 하시는거요?"
난 이왕 이렇게 된 것, 최근에 황제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다풀자는 의도로 황제에게 조금 사나운 말투로 말을 했다. 그리고 뒤에 덧붙인 말은 일부러 황제가 제국의 대표자라는 것을 의식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도 황제는 그다지 화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후후, 사령관 각하. 각하는 확실히 혼자서 싸우시는 것보다는 지휘관의 위치에 더 잘어울리시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각하께 종종 이런 기회가 생기면 세리 부장은 정말 기쁠 것 같아요."
헛, 다시 말투를 바꿔서 말을 하는 황제. 그런데 잠깐, 이런 기회가 종종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은 앞으로도 나를 되도록이면 많이 부려먹겠다는 황제의 의도를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보복을 하다니, 정말 이러다가 황제가 죽는 그 날까지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얼핏 들었다. 난 왠지모를 식은 땀이 등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급히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얕은 언덕이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잘 다져진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었다. 보통 이 시간 무렵이면 도시의 성문이 올라가기 전에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길에 마차나 여행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여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니스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인지 넓은 남부대로는 꽤 한적했다. 그 덕택에 진군을 하는데, 그다지 지장을 받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업국가인 리투안의 도시라면 어느도시라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것을 그다지 반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북부 파나단 지역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을 일월말이었지만, 대륙의 최남단에 속하는 이 곳에서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의 도움까지 받아 이미 늦봄의 따뜻한 기운이 가득 감돌고 있었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 근처로 내려가고 있는 오후, 눈 앞에 보이는 동쪽하늘에서 얼마 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구름의 양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아미나 카이사르의 말처럼 비가 오긴 올 모양인 것 같다. 카이사르, 확실히 평범한 기사와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무엇인가 달랐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특별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그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얕으막한 언덕이 뒤에서 바람을 가려주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는 숙영지로써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곳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니 숙영지 뿐만 아니라, 새로 마을을 새우거나 하기에도 좋은 위치였다. 물론, 숙영지로 하기에는 어느정도의 신중한 정찰이 필수적으로 있어야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의 좋은 숙영장소를 발견했을 경우, 내가 읽었던 책에 따라 설명하자면 한, 두시간 정도 진군이 늦어지는 일이 었더라도 되도록이면 그 장소에서 숙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만큼 숙영지의 위치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전시에는 언제 적군의 기습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장소에서는 기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사들이 분주히 천막들을 세우고 그 주위에 간단한 울타리를 두르는 등 숙영지 준비에 한참이었다. 내가 특별히 따로 지시를 내리거나 할 필요도 없이 능숙하게 숙영지를 건설하는 모습을 보며, 무관이 아닌 문관인 아렐리아가 임시직이지만, 어쨌든 남부수비대 대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세삼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눈에는 그렇게 장난많은 아가씨로만 보였던 아렐리아는 그 자신이 시장으로써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확실히 새롭게 다시 도약하는 나라, 무엇인가 특별한 점이 너무나 많이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보이고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정도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서도 이렇게 뛰어나게 훈련효과를 발휘하는 제국군인데, 아무리 많은 대군이 쳐들어 왔다고 하더라도 근위대 다음으로 정예를 배치하기 마련인 국경수비대가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왠지 의아스러웠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제국사정에 익숙치 않은 나였으므로 그다지 확신을해서 조사를 한다거나 할만한 것은 못되었다. 또 그 정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을 가진 위치도 아니었으므로, 쩝, 비밀감사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닌가?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난 클라리, 황제, 소피와 티티를 데리고 빠른 속도로 세워지고 있는 숙영지의 곳곳을 조금은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둘러보았다. 그런데 숙영지의 한쪽으로 다가갔을 무렵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센 대장님!"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카밀과 그의 70여명의 부하들이 어설픈 솜씨로 자신들 딴에는 열심히 천막을 세우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용병들인 그들에게 제국 정규군용 천막은 아무래도 어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용병들은 대체로 작은 텐트를 쓰거나 날씨가 좋을 때는 그냥 밖에서 노숙을 하곤 했으므로, 천막을 세워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에다 특별히 설치 방법을 훈련받거나 한적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카밀, 무슨일인가?"
카밀은 곤란스러운 듯한 표정을 한체 머리를 긁적이며, 내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인 후, 말을 했다. 아무래도 천막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없을지 허락을 맡으려는 의도인 것 같다.
"저, 대장님, 그냥 저희들은 텐트를 사용하면 안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천막은 익숙치가 않아서, 저 모습들을 보십시오. 대장님. 정말 이러다간 내일 출발할 때까지도 설치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카밀은 천막 앞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가리키며 무언가 절박함이 담긴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휴,정말. 용병들이란, 난 그런 카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카밀. 자네들은 특별히 텐트를 설치하도록 하게."
뭐, 어쨌든 이 용병들이 제국 정규군 소속인 것도 아니었고, 나로 인해서 임시로 합류를 하게된 입장이었으므로, 꼭 제국 정규군의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들을 합류시킨 내가 책임을지면 간단하니까.
"감사합니다. 대장! 그럼 전 비가오기 전에 텐트를 설치해야 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카밀은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급히 그들의 부하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카밀의 말을 들은 용병들이 모두들 죽다 살아난 것 같은 표정을 하는 것을 보며 난 이번엔 짐덩어리들을 단체로 짊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 암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설마 그럴리가 하며 애써 그 생각을 부정하고는 용병들의 천막과는 달리 이제 거의 완공되어가는 사령관용 천막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저희 병력은 이오니스를 포위하고 있는 병력의 약 십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저희가 이오니스성에 접근을 하는 것도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큰 천막안에는 11명의 대대장들과, 제 1소대장, 그리고 황제와 클라리를 포함 열다섯명의 사람이 임시로 놓여진 테이블을 가운데에 둔체 앉아 있었다. 지금 말을 한 사람은 제 3대대장 젤로트, 첫 인상부터 그다지 편한 상대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 예상이 정확했다.
첫 회의는 대체로 가벼운 주제로 시작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젤로트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지금 나로써도 가장 어려워하는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기선 제압, 아무래도 나이 어린 내 지휘를 받는 다는 사실이 젤로트 저 녀석한테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린 네 놈은 가만히 구석에 박혀 있고 우리들이 알아서 하겠다 하는 분위기로 나가겠지? 그렇다면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뭐, 하지만 그다지 무례한 말투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좋게 좋게 해결하기로 했다.
"보좌관, 테이블 위에 이오니스 주변 지도를 펼쳐 놓도록."
내 말을 들은 클라리는 심각한 분위기 때문인지 다행히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보좌관 그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전에 수도에서 본, 스승님의 그 마법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그 마법검도 본 성격이 클라리 만큼이나 이상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
클라리가 테이블 위에 이오니스 주변의 지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진 군사지도를 펼친 후에 난 최근 며칠간 대략적으로나마 생각을 해오던 작전을 정리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 3 대대장 젤로트 쪽을 한번 쳐다본 다음, 클라리의 본신을 검집체로 들어 지휘봉 대신으로 사용을 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오니스의 지형을 살펴보면, 여러분들도 알고 있듯이 이오니스의 서북쪽은 중부산맥의 마지막 자락에 닿아있어 자연적인 방어벽이 구축되어 있소, 그리고 중부산맥은 또한 이오니스를 기준으로 이오니스의 서쪽과 이오니스의 북쪽 지역을 가르는 역할까지 해주고 있소."
내가 설명을 하자, 비교적 상세히 귀를 기울이는 몇몇의 기사들과,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한 무성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몇몇의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마법으로 확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이오니스의 서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곳은 바로 이 작은 샛길 단 하나뿐이오. 그런 까닭에 이오니스의 서쪽 지역으로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보냈다가는 보급이 끊길 경우 그들은 고립되어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보통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대부분 알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들 역시 아까 젤로트경이 말했던 것처럼 이오니스를 지원하기 위해 고작 그들의 십분의 일 정도 밖에 안되는 병력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므로, 이오니스의 서쪽을 포위하는 것을 그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오. 공성전에서 성안팎의 물자 공급이 풍부해지고, 성에 일정 수 이상의 지원군마져 도착하게 된다면, 그 성을 점령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것 또한 그들 역시 모를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이 서쪽에는 어떤 병력이 배치될 것 같소? 보급도 필요없고, 그리고 일정수 이상의 병력을 별어려움 없이 막아낼 수 있는 군사들이라면."
난 잠시 말을 멈추고 천막안에 모인 대장들을 한번 둘러보며 그들의 의사를 물었다. 이번에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고 있는 기사들과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있는 기사들로 나눠져 버렸다. 정말.
"그렇다면, 사령관께서는 성 서쪽에 언데드나 골렘군단 같은 것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회의가 시작할 무렵부터 아무말 없이 하지만 주의 깊게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카이사르가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천막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카이사르에게 집중 되었다. 심지어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하품이나하고 있던 기사까지 모두. 난 카이사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지적했소. 카이사르경.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오. 마법사길드가 봉인 당한 후 쇠퇴기를 것고 있는 본국의 마법과 달리 아테네이오스는 규모는 크진 않지만 아직 상당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카이사르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기사들의 반응이 꽤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반응이 그 기사의 역량을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하면 내가 너무 확대해석을 한 것일까?
"잠깐, 언데드나 골렘이라고 하셨습니까? 마법사라고는 단 한명도 없는 저희가 그 들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냥 회군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대로된 지휘관도 없는 이 상황에서 그냥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찮가지 일인데 절대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후, 도저히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화를 내며, 제 9대대장 하이렛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일어서서 말을 했다. 제대로된 지휘관도 없다라, 저 녀석 언데드나 골렘손에 죽기 전에 내 손에 죽고 싶은 모양이군. 제대로된 마법사가 그다지 많지 않은 리투안에서 언데드나 골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저 녀석은 마지막에 해서는 안될 이야기를 했다. 그 지휘관이 정말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임에도 해서는 안되는 말. 게다가 난 그다지 내세우고 싶진 않지만 객관적인 서열에서도 저 녀석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은 위치의 인물이 아닌가.
"하이렛 경! 회군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아테네이오스군이 이오니스를 점령하면 그 다음 칼 끝은 어디로 돌리겠습니까?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하이렛 경 당신이 그러고도 진정 기사라고 할 수 있겠소!"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제 1소대장 밀러는 하이렛의 헛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하이렛에게 화를 냈다. 제 1소대장의 경우 평민이나 귀족 9계급등, 다른 장교들에 비해 출신 성분이 미약한 아닌 사람들이 맡고 있는 경우가 되부분이었고, 그런 까닭에 어떻게 보면 일반 사병들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그 였으므로 기사라는 작자가 고작 자신의 안위를 위해, 리투니아의 시민들은 생각도하지 않고 출발한지 얼마나 됬다고 군대를 회군하자는 의견을 낸다는 사실에 더욱더 분노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러, 고작 평민 출신 일개 소대장 주제에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대드는 것이냐!"
하이렛은 얼굴이 벌겋게 되서 밀러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정말 이 녀석은 시간이 흐를 수록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하고 있군. 이번에도 일개 소대장 주제에란 말만 했어도 좋게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중요한 건 앞에 평민 출신이란 말은 왜 붙는 건지. 그리고 내 아버지 아티에넬 크리센 역시, 원래는 귀족 9계급 출신의 제 1소대장의 위치였으므로, 지금 밀러 소대장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나로써는 하이렛, 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분위기가 더 이상 험악해지기져서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변하기 전에 적당히 끝낼 필요가 있겠군.
난 아무 소리도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캐스팅을 완료한 다음, 몇 개의 얼음조각을 만들어 하이렛을 향해 날려 보냈다. 한개는 정확히 심장 바로 위의 갑옷을 얼려버렸고, 나머지 두조각은 각각 목과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도록 했다. 얼음조각이 스쳐지나간 자리에 생긴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이렛 경, 지금 우리군에 마법사가 없다고 하셨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방금 전의 공격에 얼마전까지 얼굴이 벌겋게 되서 화를 내던 사람이 맡냐는 듯, 이번에는 하이렛의 얼굴 색이 파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하이렛의 심장 바로 위의 얼려진 갑옷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천막안의 사람들.
"이거 참. 내가 한 때는 현상금 천만 골드의 피의 전사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나보군, 하이렛 경, 얼음 조각들이 당신 목을 향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신께 감사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이렛 당신을 군법 제 7조 5항에 의거, 상관 모독 혐의로 대대장 직을 박탈 하며, 추가로 군법 제 13조 8항, 부대 사기 저하 금지법 위반 혐의, 기사 규약 19항 신분 차별적 발언 금지 위반 혐의 추가로, 대대장직과 기사 작위를 박탈, 당신의 신분을 평민 신분으로 강등하겠소. 군사령관에 부여된 권한과 총리대신에 준하는 비밀 감사관의 권한으로 남 파나단 자치령주이며 이오니스 지원군 사령관 란트 크리센이 판결을 내림괴 동시에 집행하는 바이오."
난 그 말을 마치며, 여전히 품속에 잘 보관해 두고 있었던 비밀감사관 증명서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언제나 처럼 증명서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와 천막안을 가득 매웠다. 세리와 클라리를 비롯한 원래 있던 일행들을 제외하고는 경악하는 기사들, 단 한사람 카이사르를 제외한 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부터 제 1소대장 밀러 베이커를 임시로 공석인 제 9대대장이 임명하오."
내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조금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밀러는 그 다음 이어진 내 말을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숙여 명령을 따름을 표시 하며, 여전히 그 표정을 유지한체 급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천막안의 침묵, 그 침묵을 깨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다지 말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는 병사들은 뭣들하고 있는가? 어서 죄인 하이렛 프리멜을 이 곳에서 끌어내거라!."
흠,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하는 것을 잊고 있었군.
"카이사르 경! 경께서 어떻게..."
하이렛은 무언가 호소하듯 카이사르를 향해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하이렛을 카이사르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무말 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던 하이렛은 카이사르의 호통에 허둥지둥 천막안으로 들어온 병사들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냄에도 아까 보였던 그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별 저항없이 맥없이 끌려갈 뿐이었다. 난 겉으로 표시하지도 못한체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각하, 시간도 늦은 것 같고 하니, 이 쯤에서 회의를 끝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회의가 시작할 때부터, 카이사르만큼이나 회의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보고있었던 황제의 입에서도 역시 말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회의를 끊으면 너무 독단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으니, 황제가 대신 끊어주겠다는 의미인가? 솔직히 지금 분위기로 회의를 더 이상 진행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의 황제는 사람이 실컷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꿈적도 안하고 그나마 마지막에 가서야 단 한번 도움을 주다니,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꼭 출전하기 전에 말할 때는 자기만 믿으면 되는 것 같이 말했었으면서 말이다.
"그래, 그럼 오늘은 다들 피곤할테니. 이 쯤에서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소. 내일 역시 행군이 길어질 것 같으니 푹 쉬어 두도록 하시오."
"네, 각하."
내 말에 동시에 대답하는 그 들에게서 처음과는 달리, 나를 무시한다거나 하는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대답을 마차지마자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듯 모두들 황급히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천막에서 나간 카이사르가 쓸쩍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진 것 같다고 느낀 것은 내 착각일까?
"사령관 각하, 정말 괭장하시던데요? 정말 처음으로 지휘관을 맡은 사람같이 보이지가 않던걸요? 혹시 천부적으로 이런 방면으로 재능을 타고나신 것 아니에요?"
황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이번에도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헛, 나도 내가 왜이렇게 잘 해내는지 모르겠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히 내가 처음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 17세, 이 비슷한 일이 생길 시간도, 기회도 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익숙한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정말 황제의 말처럼 재능을 타고 난 것일까? 아니, 그런 것과는 왠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휴, 귀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 세리 부장."
난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겸, 항의겸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그다지 황제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음. 확실히 우리 주인님은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니까. 광전사, 요리사, 하인, 마부, 기사, 사령관, 왕자님,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미소녀 공주님!"
클라리는 밖에 들리지는 않을 정도로 그다지 크지 않게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냥 넘어갈 성질의 말은 분명히 아니었다. 특히 가장 마지막의 말,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캐스팅을 하는 것을 본 클라리는 정장차림이라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천막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잠깐, 그런데 옆에 있는 황제는 왜 고개를 끄덕이고 있냔 말이야! 정말, 못살겠다. 못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