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8장 전란에 휩싸인 제국(5) 출전-5(수정)

푸른바람 BlueWind·2002. 8. 22. AM 2:46:34·조회 2115·추천 55
에피소드 54 출전-5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카이사르경."

방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부분은 제외한 나머지 사실들을 정확하게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이들을 완전히 장확한 상황이었다면 적당히 통보만하고 끝을 내도 되었겠지만, 내 외모 때문인지, 내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 모자란 능력때문인지, 아직 사령관으로써 인정을 받지 못한 나였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쩝, 사령관으로 부임한지 단 3일만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무리가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갑작스런 내 지적에 카이사르는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그는 아주 미묘한 눈빛의 변화를 곧 잠재우고 별다른 흔들림 없이 답을 했다. 사람들과 그다지 많은 접촉을 해보지 못한 나였지만 확실히 여러가지 면에서 그가 일개 대대장을 맡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찰이 목적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지원군이 파견되었다는 정보정도는 그들역시 알고 있었을테고, 그렇다면 우리의 규모나 역량들을 파악하려는 의도일 것 같습니다."

그 역시 내 질문에 대한 내용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인지, 그는 그다지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드는 듯한 인물. 그런데 그다지 실권도 없는대다 나이도 어린 영주인 내 주제에 부하 욕심을 내서 어떻게 하겠냐마는 그래도 욕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건 임시이지만 현재로써는 그는 내 부하인 까닭에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왜 그렇게 괴물사냥꾼 녀석들이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지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젤로트 경, 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소?"

난 어제 처음부터 매서운 질문을 던졌던 젤로트를 한번 씩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누가 누구 기를 누르려고, 후후. 하지만 어제 몰래 엿들었던 대화 내용도 있었고, 근본적으로 사람이 그다지 악하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봐주기로 결심을 했다. 내가 봐준다고해서 그다지 달라질 건 없지만 말이다.

"흠흠, 저 역시 카이사르 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사령관 각하."

내가 질문의 화살을 젤로트 자신에게로 돌리자, 카이사르와는 달리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얼굴에 들어낸체 헛기침을 몇 번한 뒤, 젤로트는 답을 했다. 기사인 까닭에 옷차림을 비롯해서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으로 있는 젤로트였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왠지 모르게 호탕하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필립요세에 와서야 세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젤로트가 바로 이 필립 요세 수비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는 점이었다. 필립 요세에 주둔병만 해도 약 1500여명에 이르는데,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이오니스 지원군에 고작 100여명을 지휘하는 대대장의 직책으로 자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사람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그 역시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의견은 없으시오?"

난 젤로트가 답한 후에 주위에 있는 기사들을 잠깐 둘러본 후 입을 열었지만, 답을 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어제 회의 사건으로 인해 기사들이 꽤 얼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란 적절히 다루기가 힘든 것인가 보다. 그런면에서 보면 정말 황제는 대단한 여자였다. 어찌됬건 최소한 전과 달리 내 말을 무시한다거나 부주의하게 듣는 듯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다행이라 해야할 것 같다. 난 말을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의 목표는 카이사르경께서 말한 정찰 이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소. 그 마법사들의 속성이 한명은 바람이었고 한명은 암흑이었던 것은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암흑계열 흑마법사의 출현에 다른 의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오. 부대 전체에 저주를 건다거나, 아니면 주요 요인에 대한 암살, 저주 같은 의도까지 있었던 것 같소."

내 말을 들은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사전 공작, 이번 마법사들의 침입에는 여러가지 의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부대의 기습에 대한 방어력 테스트라던지, 기타등등, 그리고 지휘관으로써 나란 존재에 대한 역량을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그들이 그런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녀석들을 죽여서 보내는 것이 제일 확실한 해결 방법이었을텐데, 쩝, 워낙 텔레포트마법을 능숙하게 쓰는 녀석들이니 손을 써볼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마법사는 나혼자 밖이라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고. 제국에 마법사 길드가 존속했다면 아마 지금 우리 부대에도 5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두세명정도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녀석들이 지금과 같이 활개를 피우며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겠지. 왠지모르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위기는 한 번 넘겼으니, 되도록이면 신속하게 행군을해서 이오니스성에 도달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우리군이 적에게 노출되었을 것에 대해 대비해 일단 대외적으로는 우리군이 선발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게 좋을 것 같소."

이 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들, 쩝, 어제는 그렇게 못잡아 먹을 것 같이 난리를 피우더니, 이제는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휴, 정말 못살겠다. 못살겠어. 어찌됬건 다른 의견도 없으니 다른 할일도 잔뜩 있고 일단 회의를 종결시키는게 좋을 것 같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것도 중요할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평범한 적과 전투를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은 없는 것 같으니 이만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소."

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필립요세 내의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일단 내가 비켜주면 저희들기리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것이 정상적인 총 지휘관과 부하들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지휘관이라는 위치는 항상 자기가 이끄는 부하들에게 신경을 써야 했지만 또, 그들이 지휘관을 어렵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둬야 후에 지휘관의 권위가 제대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하들이 진심으로 지휘관을 따르고 존경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내가 그 정도의 위치에까지 오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클라리, 네 몸은 무슨 이상 없어?"

회의장을 빠져나온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는 클라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흑마법사의 흑마법을 클라리로 막은게 조금 염려가 되어서였다. 아무리 클라리가 힘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클라리와 흑마법은 상극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예전에 클라리가 검속에 있을 때, 했던 말이 흑마법을 막을 때는 왠만하면 자신의 몸으로 막지 말라고 했으니까. 아까는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응, 갑자기 힘이 조금 빠져나가버린 것 같아."

역시, 앞으로 조심을해야 할 것 같다. 슬쩍 클라리 쪽을 보니, 확실히 평소에 비해 조금 힘이 없어보이기는 보였다. 물론, 원체 건강한 클라리니 그다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클라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어쨌든 걱정거리 중 하나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주인님아, 그런데 세리 언니가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거야? 혹시 무슨일 있었어?"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클라리는 평소처럼 내 옆에 찰싹 붙어서 내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다. 클라리가 이러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다. 그런데 왠지 전과는 달리 그다지 기분이 나쁘다거나 귀찮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신기했다. 확실히 클라리에게 내가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 그게. 내가 누나에게 말 실수를 했어. 내가 그런 소릴하다니. 난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는데, 휴."

난 조금 씁쓸함 마음을 담아 클라리에게 말을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왠지 그 클라우 녀석과 똑같은 놈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더 비참해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내 쉬고 있는 내 어깨에 클리리는 자신의 볼을 비비며, 그 자신의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주인님이 세리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생각에 주인님이 그렇게 나쁜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주인님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만큼 마음이 차갑지 못하니까."

클라리, 이 검이 그래도 나란 존재에 대해 믿어준다는 것일까? 누군가에대한 맹목적인 믿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만큼 상처가 큰 법이었다. 클라리가 클라우 그 녀석에게 상처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고, 난 절대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다짐했다. 소중한 존재의 몸과 마음이 상처를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

"고마워, 클라리."

난 클라리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다음, 황제가 머물고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 난 클라리를 뒤에 둔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임에도 황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체 작은 움직임도없이 창 밖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정말, 아무리 검술에 자신이 있고 섭섭한게 많다고 하더라도 정말 암살자라도 오면 어떻게 할 생각인지, 확실히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이 있었다. 황제의 옆에서서 보니, 황제는 갑옷도 벗지 않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검은빛 머리 카락 역시 투구를 쓸 때하는 것처럼 뒤로 묶어서 올린 그대로였다.

"왜 난 내 아이들의 마음만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힘없는 말투, 내 아이들. 아마 황제의 자식들을 말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나 역시, 그 아이들에 포함을 시켜준다는 말일까? 나 같은 존재가?

"그다지 관련도 없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나 잘 알 수 있는데,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그 아이들의 마음만은 왜 다른 엄마들만큼 잘 알 수 없는 걸까?"

자조 섞인 말투, 황제가 우울한 표정을 한체 있는 것은 다행히도 내가 화를 낸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나니까 할말은 없지만.

"평생동안 너무나도,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발자국이라도 더 걸어간게 내 자신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단다. 정말로.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내 아이들은 조금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해서, 그래서 였는데."

쩝, 역할 갈등이라고 했었나? 두가지 이상의 지위를 가진 존재가 그가 맡은 역할들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두 역할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 보통 어느 한가지를 포기하면 되었지만 황제라는 위치와 어머니라는 위치 둘 모두 그렇게 포기하고 넘어갈 수 만은 없는 것이었다. 쩝, 하다 못해 스승님이라도 계속 황제 옆에 있으셨다면 지금 황제가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를 책임감에 미안한 마음도 점점 더 커지는 것도 느껴졌다.

"이 못난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난 더, 조금 더 노력할 수 없었던 것일까?"

쩝, 못난 엄마란 말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고, 그리고 조금 더 노력할 여유란게 황제에게 있었을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휴, 그런데 내가 어린 여자애들 달래는 것도 힘든데, 아줌마를 달래는 것은 솔직히 무리인 것 같다. 텔레포트 마법을 써서 스승님을 이 곳을 잠시 모셔올까? 하지만 그 것도 불가능한게, 사실은 내가 좌표계산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방법이야 알지만 방법을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8서클 마법사 치고는 기초가 꽤 부실하다고 해야할듯.

"세인트, 그 아이도 내가 그렇게 싫은 걸까? 그래서 내게 밉게 보이도록 행동을 하는 것인지. 란트 너도 솔직히 말하렴. 내가 그렇게 귀찮고 싫은거니?"

컥, 그럴리가 있을리가 없잖습니까, 황제 폐하. 솔직히 조금 귀찮은 건 사실이지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황제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제국 최고 권력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수십만의 적군도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암살시도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의 자식들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를 어린애 한명까지 추가되어서. 쩝. 아줌마라고 해도 여자가 우는걸 보는 건 정말 싫다. 그 것도 내게 소중한 존재라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니까. 난 나중에 무엄하다고 욕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황제의 양 어깨를 내 작은 손으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절대로 아니에요. 저 같은 녀석한테까지 배려를 해주는 누나에게 제가 그렇게 생각할리가 없잖아요. 아까는 다만 걱정이 되서 그랬을 뿐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난 조금 긴장된 마음을 다스리느라 숨을 고른 다음 여전히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 황제에게 다시 말을 했다.

"그리고 누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녀석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세인트 황태자가 누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니, 분명히 싫어하지 않을거에요. 그리고 그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도 누나가 잘 알고 있잖아요."

내 말을 듣고도 황제는 한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이 세상에 외로운 존재는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세상을 조금씩 접해보며, 사람들 모두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다른사람들과 함께 하며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라는 것도. 그래도 쩝, 세인트 그 녀석은 정말 행복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엄마가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이 악인이었던 선한 사람이었던, 어쨌든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히며, 그렇게 살지는 않아도 되었을텐데. 지금 우울한 표정의 황제의 모습을 보니, 그 동안 참고 있었던 많은 외로움이 끝없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숨겨둔체 인식하지 않으려고 하던 슬픔까지도.

눈에서 볼을 타고 밑으로 흘러내리는 무언가 따뜻한 것, 정말 오랫만이었다. 슬픔 때문에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울 나이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계속 나오는 계속 나오는 것일까? 황제를 달래주러와서 내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다니. 나도 참.

"그래, 네 말이 맞아. 란트, 분명히 그럴거야."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예전에도 이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따스함을, 아무리 강한체 하고 있어도 자신의 마음까지는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으앙~~!"

난 결국 어린애 처럼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다. 이렇게 울 위치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클라리가 그렇게 자주 우는 것도 지금에서야 진심으로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래 마음껏 한번 울으려무나, 란트. 힘든일이 있으면 마음속에 감쳐둔체 아픔을 참고 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알겠니?"

황제는 다정하지만, 무엇인가 씁쓸한 감정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여전히 내 등을 두드리며 말을 했다. 나이 열일곱, 제국 서열 5위, 그리고 한 부대의 사령관, 그 직책과는 어울리지 않게 난 오랫만에 소리를 내서 마음껏 울 수 있었다. 마음 속 깊이 싸여 있던 많은 것들이 씻어 나갈 수 있도록.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던 란트가 진정을하고 클라리와 함께 나가는 것을 본 뒤, 세리 황제는 방한구석에 놓인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란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세리 황제는 왠지모를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란트의 말 때문에 여러가지 고민과 함께 떠올랐던 왠지 모를 외로움, 외모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그녀 역시 늙어가고 있는 것임을 세리는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중년 여성의 우울증'

그런 제목의 심리학 서적이 제국 도서관에 꽂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세리는 피식 웃었다. 통치자란 위치 때문에 수십년간의 세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어느세 중년의 나이였다. 그리고 오랫만에 가지는 휴가, 휴가라는 이름을 붙여 란트를 따라왔지만 아인트가 자신의 제자인 란트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녀 역시 란트란 존재에 대한 애착이컸다. 그녀와 란트의 엄마 미카공주가 평범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항상 무뚝뚝하게 있는 것이 문제였지만 란트란 소년은 왠지 모르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소년이었으므로.

'내가 지금 사자를 한마리 키우고 있는게 아닐까? 내 발등을 물지도 모르는?'

황제는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이 생각이 떠오른 이유도 역시 제국의 통치자란 자신의 입장 때문이라는 것을 황제는 느끼고 있었다. 란트가 언젠가는 한 나라의 국왕이 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리고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최근 며칠간 너무나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미카, 아티에넬 그들 덕택이었으니까. 란트는 알고 있을까? 그들이 항상 자신의 곁에 함께한다는 것을.'

황제는 마음속에 떠오른 잡생각을 지우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위기, 하지만 그녀는 어떤 면에서 이 것 역시 또다른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차례 전란을 겪었고 그 상처를 없애느라 수십년을 바친 그녀 자신에게는 너무나 잔혹한 상황이었지만, 난세는 언제나 영웅을 부른다고 했었기에 이 일이 모두 란트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성장하기 위한 무대, 그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긴다면 앞으로 수많은 위기를 겪을 제국의 앞날도 더욱더 다져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세리의 혼란스런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이 50, 가녀리지만 또 누구보다 강한 제국의 통치자는 신께 기도했다. 그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존재들이 서로 상처를 주는 일은 없기를. 타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녀의 작은 소망까지 신은 무시하진 않았다.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