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0장 수린 요새 탈환작전-1

푸른바람 BlueWind·2002. 11. 17. PM 2:16:59·조회 2124·추천 50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서 난 회의에 참가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까 전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진정시킨 후였다.

"주인님아, 오늘 무리를 해도 괜찮아?"

클라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대체로 내가 아프고 난 후에는 클라리와 사이가 좋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뭐, 그만큼  그런 상황에서 클라리가 내게 도움을 많이  준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회의를 서서하는 건 아니겠지. 뭐, 몸은 대충 회복이 된 것 같아. 세리 누나가 저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뭐, 몸이야 회복된 지는 오래되었고, 지금은 다만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난 한쪽 어깨를 조금 숙여 클라리가 망토를 달기 쉽게 만들어주었다. 흠, 확실히 혼자 옷을 갈아입는 것보다는

클라리가 도와주니까 편하군. 물론, 클라리야 추기경이 떠난 바로 직 후에 옷을 갈아입어 회의에 참가할 준비를 마쳤었다. 뒤로  묶은 머리, 그리고 단정한 정장차림, 클라리는 평소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지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쩝, 클라리의 기본이미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것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시간 다 됐지? 그럼 가자."

대충 회의 시간에 맞추어 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의 뒤를 따라 회의실 쪽을 향했다. 그 동안 돌아다닌 적이 없어서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오니스의 관저 역시 그냥 평범한 관저라고 보기에는 화려한 편이었다. 뭐,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오니스 대공 저택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니까 그럴만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오니스는 역시

포세트립톤이나 리투니아에 비하면 많이 초라한 편이었다. 뭐,아무래도 그 둘은 모두 황제와 국왕을 위해 지어진 궁전이었고, 이 곳은 대공 저택이란 차이 때문이겠지.

내가 있던 방에서 몇 층 아래에 회의실이 위치해 있는 듯 했다. 회의에 참가하려는 듯 복도에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리투니아에서와는 달리 이 곳에는 척 보기에도 무장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국경 가까이 위치해 있는 성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수십년 간 전쟁이 없었음에도 이런 세세한 인사배치에까지 신경을 썼던 황제의 배려가 놀라웠다. 하긴 제대로 된 무장이 없었다면 5만여의  군대를 상대로 이렇게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합의 기사님!"

난 누군가 부르는 날 부르는 소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고 전혀 내게 맞지 않는 호칭임에도 어느세 적응이 돼 버린 나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그 추기경을 제외한 추기경의 일행들의 모습이 있었다.

"크리센공,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포세트립톤의 엘프 길드 마스터, 그리고 동엘프족 수장 루이라고 합니다."

컥, 그냥 엘프길드 마스터 정도가 아니라, 동엘프족 수장이라고? 그럼 거의 왕에 가까운인물이잖아? 그런 인물이 저렇게 돌아다니다니 정말 의외였다. 쩝, 역시 엘프니까 가능한 일인걸까? 그리고 그 정도의 인물이 되니까 포세트립톤의 엘프 길드 마스터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이제 거의 회복이 되었습니다. 루이 경께서도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 때 분명히 네크로멘서가 쏘아보낸 기운에 충격을 받아 기절을 했던 까닭에 내가 마차에 실어서 보냈었다. 내 질문을 듣자 동엘프족 수장 루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예. 그 때는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공께서 제 생명의 은인이시군요. 엘프의 관습 중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신 분께 보답을  반드시 해야 한답니다. 언젠가 반드시 그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헛, 무슨 그냥 죽으면 귀찮아 질 것 같아 살려줬을 뿐인데, 꼭 그럴 것까지야. 게다가 저 놈은 그냥 평범한 엘프도 아니고 동엘프 족 수장이었다. 그런 수장이 보답을 하겠다니? 왠지 부담스러웠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난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등에 바스타드를 매고 있는 그 엘프는 왠지 불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엘프 뒤에 있던 여자엘프가 앞으로 나서더니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저 엘프도 검술대회 때 출전을 했었지?

"크리센공, 제 이름은 이자벨 수니아. 제 생명을 구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허허, 할말이 없군.

"전 세레스 아쿠아마린이라고 해요. 저도 감사드려요."

밝에 웃으며 말을 하는 이 여자는 마법대회 때의 그 폭력마도사. 하지만 그 때와는 달리 로브를 입지 않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슈츠를 입고 있는 것이 마법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양식으로 설명하자면 무투가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만큼이나 잘생기신 크리센공, 역시 미남은 미남을 알아보는군요. 절 살려주시다니. 카이트 골든스켈 감사 올립니다."

허허, 이 남자는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슬라임을 얼려버리던 그 마법사. 그런데 추기경은 어째서 이런 사람들과 같이 다닌 걸까? 하긴 추기경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했

지만 말이다.

"저는 하인젤이라고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크리센공께 도움을 받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아! 이 남자도 어디선가 많이 본적이 있다고  생각을 했더니, 검술 대회 가이우스와 16강전에서 싸웠던 그 남자였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모두들 한 번씩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휴, 아닙니다. 전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말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별로 살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주인님아, 회의 시간이 다되어 가는 것 같아. 어서 가야지."

뒤에서 클라리가 재촉하는 소리에 내 앞에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 추기경의 일행들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전 회의 때문에 이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따로 또 뵙도록 하지요."

난 그 루이란 엘프길드 마스터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엘프족 수장이니 존중을 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을 높였다. 귀찮긴 귀찮았지만 인간세상에서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냥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의식적으로 예의를 차리려했으면 꽤 힘들었을텐데, 그렇지 않고 어릴 때부터 해왔던 것처럼 아주 익숙하게 예의를 차린다거나 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크리센공. 폐를 끼친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루이란 엘프는 자신의 옷차림이나 그런 것과는 달리 매우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솔직히 검술대회 때 처음 보았을 때는 그 복장만큼이나 성격도 엽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내 추측이 빗나간 것이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뵈요. 크리센공.”

그 폭력마도사, 하지만 왠지 저 여자를 보면 왠지 모를 공포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흠흠, 뭐 무섭다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 뭔가 표현하기가 묘한. 공포감.

난 그 들을 뒤에 두고 다시 하녀의 뒤를 따라 회의장 쪽을 향했다.

회의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다시 내 쪽으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 뭐 이제는 이 시선도 익숙해 줬으므로 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직 황제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황제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다행이군. 회의 첫날부터 지각을 하면, 쩝.

난 회의실 안에 있던 하녀의 인도를 받아 내 자리로 걸어갔다. 자리는 황제의 오른쪽 열 첫 자리, 흠. 고위 관료로써 대접은 해준다는 말인 걸까? 그리고 내 맞은 편에는 바로 그 이오니스 자치령주가 앉아 있었다. 흐흐흠. 그런데 이오니스 자치령주가 날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헛, 저 인간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이지? 눈빛은 그다지 악하지 않았지만 저사람에게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뭐 자신을 잡아가려 했던 사람에게 바로 호감을 느끼는게 더 이상하겠지.

“크리센공,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자치령주는 그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정중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설마 또 잡아가려하는건 아니겠지. 하긴 뭐,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의 내가 잡아가려 한다고 잡혀갈 상황도 아니지만 말이다.

“네, 많이 좋아 졌습니다.”

나 역시 적의를 감추고 최대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이오니스 영주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이오니스 영주가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었다.

“크리센공, 제가 미력하여 크리센공께 무례를 범하였던 점 사죄드립니다.”

컥, 사과를 해도 이 건 좀 심하지 않았나? 그 것도 자신들의 부하가 널린 회의실에서 이러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손해를 많이 볼텐데, 헐. 휴, 여전히 앙금이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황제의 얼굴을 봐서라도 좋게 넘어가야 할테니.

“아닙니다. 다르넨시스공, 자치령주란 폐하 이외에는 충성을 하지 않는 존재,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맡기신 이 성을 지키기 위해서 불기피한 선택을 하셨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용서를 하셨는데 제가 그 사실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적당히 하며, 자치령주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크리센공.”

쩝, 하지만 그냥 이렇게 넘어가기에는 왠지 억울한데, 뭔가 한마디 더 해주지 않고는 너무 억울해서 못살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르넨시스공, 아무리 이 성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공의 손자뻘밖에 되지 않는 절 제 이야기는 들어 보시지도 않고 적에게 넘기시려 한 것은 정말 너무 하셨습니다.”

넌 존대를 사용했지만 조금 투정하는 목소리로 이오니스 영주에게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영주는 그제서야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날 한참이나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설마, 지금에 와서야 내가 아직 성인이 안된 어린애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겠지?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크리센공.”

영주는 그 말을 하며 엷게 미소를 띄운 뒤 내 손을 다시 한번 잡은 후, 다시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폐하께서 오십니다.”

흠, 드디어 우리 위대하신 황제께서 납시는 것인가? 내게는 익숙지 않은 황제의 모습을 볼 것이란 생각이 드니 왠지 기대가 되었다. 황제의 엽기적인 모습이야 종종 보아 왔지만, 황제로써의 황제의 모습을 본 경험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엉거주춤한 포즈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전에 별로 그다지 해보지 못한 행동인지라, 익숙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황제는 머리를 포니테일 형식으로 묶어 올렸고, 옷은 남성 정장을 입고 있었다. 흠흠, 예전에 수도에 있었을 때도 저런 옷차림이었지. 확실히 저 옷차림의 황제는 주책 맞은 아줌마라는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지금의 그녀에게선 강인한 군주의 모습만 찾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황제는 회의실 중앙의 자리에 앉으며, 내게는 익숙하지 않는 어조로 말을 했다. 그래도 꽤 오랜만에 보는데, 쩝. 병문안도 오지 않았으면서 아는 척도 안하다니. 뭐, 황제란 위치가 그런 것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별 수 있나?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황제는 꼭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내 쪽을 한번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헐. 아는 척은 하는군.

“크리센공, 이제 몸은 괜찮은 건가요?”

쩝, 높임말이라니. 어쨌든 관심을 표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 되겠지? 평소와 같았으면 괜히 무시를 해서 불만을 표시해야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다가는 정말 죽음을 자초하는 일 일테니 말이다.

“예, 폐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내가 읽었던 책에 따르면 이런 황제의 사소한 관심도 내 지위를 확고히 해주는데 큰 힘이 된다고 했었다. 그만큼 황제의 측근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나? 지금 황제의 행동은 아무래도 그런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라면 날 부려먹기 위해서 미리 술수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황제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후 입을 열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평소의 그 주책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신하들 앞에 선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 요즘 들어 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종종 떠올랐다. 예전에는 군주라는 직위 자체를 혐오했지만 황제의 모습을 지켜보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황제는 황제라는 직위에 있음으로써 더욱더 빛이 나는 존재였으므로.

“아테네이오스 측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다르넨시스 공?”

황제의 물음에 이오니스 영주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에서 불쑥 종이 뭉치가 튀어 나왔다. 난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니 클라리의 짓이었다. 헛, 딴에는 보좌관이라고 할 일은 하겠다는 말인가?

“최근 며칠 간 국지적인 전투는 있어왔지만 그다지 큰 전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산맥의 통로를 방어하던 수린 요새가 적에게 기습을 당하여 적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산맥의 통로? 아! 전에 이오니스 지도에서 보았던 성의 북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를 말하는 것 같았다. 잠깐, 그런데 그 중요한 곳을 잃었다고? 헛. 그 통로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 성이 포위에 대한 걱정 없이 전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네크로멘서 녀석과 싸운 것도 그 때문이었고.

“일단 산맥의 아래에 병사들을 배치해 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적들이 산맥 아래로 밀고 들어올 경우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오니스 영주는 착찹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말은 이제는 육로를 통한 보급에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규모의 병사들이야 넘어오지 못하겠지만 소규모 별동대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규모 별동대들이 넘어와 민간 수송 마차나 수송부대를 급습한다면 육로를 통한 보급이 마비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수린 요새의 탈환에 대해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도록 하세요.”

황제는 다르넨 영주의 말이 끝이난 후,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본 후 말을 했다. 회의실 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니 벌써 이 곳의 사람들도 황제의 통제아래에 놓인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만큼 황제의 카리스마야 대단했으므로.

"적들도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정공법으로 다시 탈환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왠지 익숙한 목소리란 생각이 들어 쳐다보니, 바로 젤롯트였다. 카이사르야 지원군의 제 1대대장이니 당연히 참석하는 것이고, 젤롯트가 회의에 참가한 것은 아무래도 그의 본래 직책이 필립요새의 사령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쩝, 어쨌든 이 상황에서 처음 자신의 의견을 낸다는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일텐데 말이다. 하긴 내가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그 것 역시 자신의 그 직설적인 성격 때문이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것은 거의 불가능 하오. 젤롯트 경. 수린 요새에 정공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마찮가지오. 우리측에서 요새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 가파른 경사와 좁은 통로, 게다가 공성무기 같은 것들은 사용할 엄두조차 낼 수 없소. 적들이 수린 요새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요새 수비대장의 안이한 태도로 인해 초래된 일이었을 뿐이오."

다르넨 영주의 말에 젤롯트는 별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쩝, 다르넨 영주의 말로 볼 때, 난공불락 적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요새인듯했다. 가파른 경사, 공성무기 사용의 불가능 대군의 이동이 불가능한 좁은 통로,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요새를 빼앗긴 거야?

"요새를 향한 다른 통로는 없습니까?"

젤롯트 옆에 있던 카이사르의 말이었다. 카이사르의 특징이라면 언제나 조용히 있다가 기습적으로 핵심을 찌르는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이 것 역시 젤롯트처럼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겠지.

"안타깝게도 없소."

다르넨 영주는 절망스러운 표정을 한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달리 황제를 보니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쩝, 실제 황제의 표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 표정들에 대해 다 알면 거의 기절해 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회의장안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 쪽을 향했다. 그 말을 한 사람, 아니 존재는 바로 엘프길드마스터 루이였다.

"무슨 말이십니까? 루이경."

젤롯트 때와는 달리 꽤 정중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영주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엘프족 수장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엘프의 말에 황제는 흥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회의가 시작한 뒤 처음으로 황제의 표정이 변했다. 흠.

"수린 요새로 가는 다른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르넨시스공."

루이는 회의전에 나와 만났을 때와는 달리 엘프다운 어조로 답을 했다. 쩝, 루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쨌든 희망이 생긴 건가?

"제가 이 곳에 영주로 지낸지 30여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수린요새로 향하는 다른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루이경, 제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루이의 말에 영주는 의아함과 함께, 왠지모를 기대가 섞인 눈으로 루이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쩝, 성을 지키기 위해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지원군 사령관까지 적에게 넘기려 했던 사람이니. 그로써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을 것이었다.

"물론,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길은 바로 저희 엘프들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르넨 영주는 다시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엘프들의 길, 다시 말하자면 산과 숲에 익숙한 엘프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란 뜻이다. 그 외의 다른 종족이 그 길을 이용하기에는 여러가지 힘든면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중간에 나무 위로만 움직여야되는 곳에다 줄 하나에 의지해 절벽을 오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말그대로 그 길로 가기에는 초인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엘프들의 길로 갈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루이 경. 그리고 저희 성내의 동원가능한 엘프들을 모두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300여명, 게다가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면 뛰어난 궁수인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그들을 동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다르넨 영주는 한숨을 내 쉰 후, 루이를 보며 답을 했다. 쩝, 불쌍한 영주.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다니.

"영주님, 아닙니다. 지금 별도로 동원할 수 있는 인간 부대들 중, 엘프들의 길을 이용할 수 있는 부대가 단 한부대 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 카이사르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작은 소리였음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에 등장하는 뛰어난 인물들의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였다. 필요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것. 쩝, 그렇다고 젤롯트같은 사람이 모자라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지휘관으로써는 훌륭한 능력을 보이는 인물이었으므로.

"정녕 그런 부대가 있단 말씀이오? 도데체 무슨 부대를 말씀하시는 것이오? 카이사르경."

그런 인간 부대가 있다고? 쩝, 철인들만 모아놓은 부대겠군. 그런 부대를 한부대 정도 소지하고 있다면 전략의 운용에 큰 도움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장터에서는 그만큼 부대의 기동성이 중요하였으므로, 그런부대를 실전에서 활용하자면 아마 적 식량창고의 급습이나 식량부대의 약탈, 그리고 후방 교란 등의 역할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군 제 11 임시 편성 대대. 속칭 질풍 용병단. 단장은 카밀 메르틴 입니다."

컥? 뭐라고, 카밀 부하 녀석들이 그렇게 대단한 녀석들이었단 말이야? 헛, 좀 평범한 병사들 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거야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뜻 밖이었다. 그럼 도대체 그 쓰레기 같은 용병단 녀석들에게 왜 쫓겨다녔던거야? 단지 상대에 마법사가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나? 휴. 정말.

"뭐라고 하셨소? 질풍 용병단이 지원군 제 11 대대라고 하셨소? 그들은 아무리 많은 보수를 약속해도 정규군에 편입돼기를 거부하기로 유명한 용병단이 아니오?"

그 때 카이사르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나보고 대답을 해라고? 휴, 녀석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군.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일에 심히 혼란스러운데 말이다.

"제가 그 용병단장과 용병단원 수십명의 생명을 구해줬습니다. 그 사건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 스스로 자청해서 제 휘하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무보수 입니다."

무보수라고 해도, 내 봉급에서 적당히 해결을 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 많은돈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게다가 돈이 있어봤자 사용되는 용도야 뻔했다. 클라리의 사치품 목록을 추가시켜주는 용도 정도겠지. 그런데 왜 저 인신매매범 영주가 놀라는 표정, 아니 정확히는 전혀 뜻 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하는거야? 휴.

"그럼 그 일은 지원군 제 11 대대가 맡는게 좋겠군요. 이번 탈환 작전에 총지휘를 맡아 주겠어요? 크리센공?"

헛, 이놈의 황제가 뭐라고? 그럼 오늘 회의에 참석 시키려 했던 이유가 이 것 때문이었단 말이야? 젠장. 할말이 없군. 이놈의 황제는 누굴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수천의 병력에다 신성마법까지 먹히지 않는 언데드 병과 상대를 시키지를 않나, 이제는 고작 수십명으로 난공불락의 철벽요새를 탈환해라고? 차라리 그냥 자살을 해라지. 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려고 했다.

"루이 경께서도 도와주시겠죠?"

하지만 황제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엘프 루이를 향해 말을 했다. 컥, 이놈의 황제가, 정말 폭군이 따로 없다니까.

"물론입니다. 힘의 주인이시여. 크리센공의 일이라면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제 휘하의 엘프들과 동료들도 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헛, 이렇게 되면 빼도박도 못하게 되잖아? 저놈의 엘프가 크리센공의 일이라면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란 말은 도대체 왜 꺼내는 거야? 사람 처치 곤란하게,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은 생각은 정말 없다구!

"그럼 이 번 일은 크리센공께서 맡기로 하는 걸로 하겠어요. 그럼 그에 대한 것은 별도로 지시하도록 하고, 그 외의 안건이 있으면 말해보도록 하세요."

잔인한 황제의 말에 난 통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에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절 무시하고 난 황제를 향해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에 집중을 했다. 물론, 황제야 내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회의를 쭉 진행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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