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0장 수린 요새 탈환작전-9
푸른바람 BlueWind·2002. 12. 19. PM 11:15:03·조회 1864·추천 78
에피소드 68 수린 요새 탈환 작전-9
서문은 꼭 폐성처럼 불하나 켜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서문의 주위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난 무슨 함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미를 통해 주위의 인기척을 살피도록 하였고, 난 최대한 집중을 해서 마나의 기운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모두 이상 없음. 난 비어있는 서쪽 성벽과 성문의 주요지점을 제압하기 위해 돌입했다. 하지만 역시, 무방비 상태, 아무래도 우리를 포위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끌고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주요지점을 무방비 상태로 두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와 동시에 동쪽으로 간 엘프들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왔다.
난 카밀 녀석들에게 성문을 올리도록 지시를 내린 뒤, 성벽 위로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를 다급함에 쫓기며, 성벽 위에 올라서자마자 난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이미지 마법. 클라리의 불꽃놀이 마법을 응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하늘에는 미리 약속되었던 별모양의 이미지가 크게 떠올랐다. 물론 성의 동쪽에서는 볼 수 없도록 설정을 해놓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긴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지휘관을 맡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울려오는 조용하던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소리, 설마 여기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숨어있었던 것인가? 그러고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뿐이었다. 하긴 이 주위의 지형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무척이나 상세히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성문 가까이 접근하는 그들의 깃발을 보는 순간 난 전혀 뜻밖의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까지, 아니 지금도 내 지휘아래에 있는 병사들, 카이사르를 비롯한 리투니아의 병사들이었던 것이었다. 제일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해 달려오는 카이사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저들을 보니 왠지 안심이 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래도 그동안 정이든 까닭인 것 같았다. 이 것 역시 황제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쩝, 그렇지만 이 고생을 시켜놓고 이 정도 배려에 누가 감동할 줄 아나?
난 플라이 마법을 써서 성문 아래 쪽으로 내려가 그들을 맞이했다. 카이사르는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급히 내 앞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사령관 각하."
카이사르는 말에서 내린 뒤 다만 나를 불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 무엇인가 다른 많은 것이 담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도록 하세.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말이야. 녀석들의 대응이 기습을 당한 것치고는 너무 치밀해."
카이사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 위에 올라탔다. 내가 탈 말은 하고 걱정을 할 필요없이 별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기사 한 명이 말 하나를 끌고 와 내 앞에 대기시켰다. 물론, 아미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좋은 말인 것 같았다.
"젤롯트 경, 경은 3,4소대와 함께 이 곳에 남아 성문을 지키도록 해주시오."
카이사르의 뒤를 따라 온 젤롯트를 향해 말을 하자 젤롯트는 별말 없이 고개를 숙여 명령을 따를 것을 표시했다. 난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요새를 가로질러 동쪽 성벽 쪽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이미 주위는 평범한 사람도 사물을 분간하기 쉬울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쩝,
그런데 길 저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역시 마주 달리고 있었던 까닭에 서로 꽤 빨리 접근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여 살펴보니 엘프였다. 동쪽 성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난 잠시 행렬을 멈추고, 그 엘프를 기다렸다.
가까이 다가온 엘프는 엘프와는 어울리지 않게 급하게 뛰어왔는지 조금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급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무슨 일이오? 동쪽 성벽을 장악하는데 실패하였소?"
엘프는 숨을 잠시 참으며 입을 열었다.
"동, 동쪽 성벽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지원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크리센공."
엘프는 그 말을 한 뒤 다시 숨을 돌렸다. 뭐, 그거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동쪽 성벽을 장악하기 위해 엘프들을 보냈던 것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나 어제 살펴본 바로도 험한 지형과 성벽을 활용해서 적은 수의 엘프들이지만 어느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므로 동쪽 성벽을 장악했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무슨 이유지?
"그렇다면 별 문제가 될 일이 없지 않소?"
내 말에 엘프는 고개를 저으며 답을 했다.
"다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문이 부서져 있었고, 해자도 어느정도 매워져 있었습니다. 성벽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이 상태에서 오십의 병력으로 수천의 병사를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급히 지원을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출발하기 전에 이미 적들의 선두가 시야권 안에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뭐? 성문이 부서졌다고? 녀석들 이 곳을 점령할 때 성문을 부서 놓은 뒤 아예 복구를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다 해자까지 매워져 있었다고? 아무래도 산 위 먼 곳에서 살펴봤던 까닭에 그런 세세한 것까지 살피지 못한 내 실수였다. 젠장.
"일이 급하게 되었군. 카이사르, 카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도록 지시를 내려주게."
"네, 대장"
"네, 각하"
두사람은 대답을 한 뒤 각자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느낀 점이었는데 그렇게까지 고생을 하고서도 카밀 녀석들은 전혀 지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시가지라 말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말의 속도에 그렇게 뒤쳐지지 않는 속도로 행군을 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전투들을 비롯해 새삼 카밀 녀석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엘프들의 눈이 좋은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시야권 안에 들어왔다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요새라고 해도 거의 산성에 가까운 요새의 시가지를 통과해서 방어준비까지 해야만 했다.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엘프들의 사격 실력에다 성벽이나 해자가 있었다면 그 정도의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엘프들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성벽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엘프들이 전멸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확실히 아미에 비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의 성능, 다급한 내 마음과 달리 말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녀석들이 타고 있는 말의 속도 역시 내가 타고 있는 말과 비슷하거나 조금 느린 것을 볼 때, 그리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중앙광장, 새벽 어둠 속에서와는 달리 밝은 햇빛 아래에서 본 광장의 광경은 처참했다. 광장 가득한 적들의 시체, 그리고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점이지만 녀석들이 흘린 피 말고도 조금 시간이 지난 듯한 핏자국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아마, 이 핏자국은 이 요새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추측하던 것과는 달리 요새에 남아있는 흔적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그 전에 요새를 수비하고 있었던 요새 수비대 역시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싸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잠시 멈칫한 부대의 행군을 다시 추스려 동쪽 성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발, 루이경이 잘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멀리서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물론, 이 함성은 우리측 병사들의 함성이 아니었다. 아마 성을 공격하려는 적들이 내지르는 목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만큼 내 마음 역시 다급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며칠간 행군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내 체력이나 마나상태가 내 예상 보다 더 급격히 소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 동안의 나태한 생활이 내 상태를 더욱더 악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로 마법이나 제대로 써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 너머로 동쪽 성벽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아직까지 적들이 성벽에 도착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벽의 곳곳에 서 있는 엘프들의 분주한 모습과 더욱더 크게 들려오는 적들의 함성은 상황이 그리 여의치는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카이사르 경, 2소대와 10소대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지휘해서 성벽 위의 방어를 맡도록 하시오."
카이사르는 내 말을 듣는 즉시 손동작 몇 번으로 부대를 지휘해서 성벽 위를 향해 이동해갔다. 그리고 난 카밀의 부하들과 2소대 10소대를 이끌고 부서진 성문 쪽을 향해 다가갔다. 성문 너머 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질서정연하게 우리 쪽을 향해 병사들을 행군시켜오는 적의 병사들. 엘프들의 화살을 방패를 통해 막아내며, 서서히 접근을 해오는 적들의 모습을 보는순간 이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쌍한 황제. 또다시 오랜 시간 동안 고생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어쩔까 그 역시 그녀의 운명인 것을.
잠깐, 황제를 생각하니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오니스를 보호한다는 방어막, 그 방어막의 열쇠가 이 곳에 있는데 방어막의 범위가 이 곳까지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절대 열세인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측 병사들의 휘생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더군다나 필요했다. 쩝, 그렇다면 내가 없는 동안 시간을 끌 방법을 마련해야 되겠군.
난 운용 가능한 마나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워! 아이스 워! 윈드 워!"
성문을 가득 매우는 흙벽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그 흙벽을 얼음벽으로 덮고 그 밖에 추가로 바람으로 보조를 했다. 이정도면 상대편 마법사들이 성벽을 공격 해도 왠만큼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밀, 만약 저 성문이 무너지가 붕괴되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줘. 해줄 수 있지?"
내 물음에 카밀은 이번에도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대장. 맡겨만 주십시오."
난 카밀의 등을 두드려 준 다음,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미, 카밀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카밀을 도와줘.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드레곤으로 현신을 했으면 좋겠어. 네가 다칠 수도 있는데, 하기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주인의 부탁이라면.'
아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내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성문 바로 위 성벽에는 루이의 모습이 보였다. 내 모습을 본 루이는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풀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별의 뜻이셨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성벽을 빼앗길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루이경. 생각 외로 적들이 강해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루이경,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떤 작전 때문에 잠시 요새 중앙으로 제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루이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답을 했다.
"네, 별의 뜻이여. 조금 힘든 전투이기는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루이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내 말을 따라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난 다시 플라이 마법을 써서 하늘로 솟아올라 적들의 사기도 떨어뜨리고 약간의 시간이나마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약을 대비해서 약간의 마나만을 남겨 놓은체 마법을 시전했다.
"블리자드"
적들의 중앙부를 노리고 쓴 마법은 순간 어느 정도 적들을 혼란시키는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예상했던 것처럼 적진의 곳곳에서 곧 둥근 방어막이 솟아올라 보호를 했지만 이정도 효과면 충분했다. 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이 까지 솟아 오른 다음 요새 중앙의 사령부 건물 쪽으로 움직였다. 병사들에게 지휘관이 전투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여주면 부대 전체의 사기에 그다지 좋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님아!"
컥, 이 익숙한 목소리. 클라리였다. 워낙 전투에 집중을 하느라 어제 점심까지 클라리에게 식사를 얻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리란 존재 자체를 있었다. 그나저나 뭐 때문에 따라온거지? 어쨌든 난 급한 상황인 만큼 클라리를 무시하고 중앙 사령부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예전과는 달리 그래도 꽤 자유롭게 플라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까닭인지 말에 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나가 거의 소진된 상태에서 몸에 많은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쩝. 순간 현기증이 왔지만 난 참으며 땅으로 내려와 비어있는 중앙사령부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주인님아! 같이가!"
난 이번에도 클라리의 말을 무시한체 급히 수없이 지도를 보며 외워둔 것처럼 중앙사령부 지하를 향해 둥근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 3층, 어두침침한 이 곳에는 횃불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한동안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습한 습기와 함께 불쾌한 냄세로 가득했다. 하지만 난 그런거에 신경쓸 여유도 없이 급히 품속에서 이오니스 대공의 옥새를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벽에서 큰 빛이 뿜어나오며 벽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쩝.
"주인님아! 헉! 헉! 휴 간신히 따라잡았다."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내 곁으로 다가온 클라리는 숨이 찬 듯 큰 숨을 몇번 내쉬었다.
"그러게 뭐 때문에 따라왔어?"
이런 저런 신경 쓰이는 일 때문에 날카로워진 난 조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클라리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클라리는 그런 내 말투에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빙긋 웃으며 답을 했다.
"우리 귀여운 주인님을 혼자 보내기는 불안하잖아."
컥, 저, 저게? 확실히 저놈의 클라리는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그렇게 팍팍 말로 복수를 하니. 잠깐, 이럴 시간이 없지. 이놈의 클라리 때문에 정말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난 클라리를 향한 시선을 다시 벽 쪽을 향해 돌렸다. 벽은 이미 열려 있는 상태였다. 쩝, 일분 일초에 사람 목숨이 달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며 클라리를 다시 한번 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딴청을 피우는 클라리. 난 그냥 클라리를 전처럼 무시하기로 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벽 밖과는 달리 공기도 그리 탁하지 않았고 빛을 내는 마법석이 곳곳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늑한 느낌까지 맴돌고 있었다. 난 조금 긴장된 움직임으로 방 가운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내가 방 가운데로 다가서자 갑자기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더니, 바닥이 조금 갈라지며 땅에서 둥근색 판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그 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의 기운, 이오니스 전체에 방어막이 펼쳐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보통 이정도의 다른 존재의 마나를 느끼게 된다면 압박감이나 왠지모를 거부감이 들기마련인데, 신기하게도 그리 압박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눈앞까지 솟아오른 둥근색 판, 그 둥근색 판 가운데 도장 모양과 일치하는 문양이 파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난 다시 정신을 잡고 재빨리 옥새를 그 문양에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주인님아! 왜 그래?"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한 클라리의 목소리.
서문은 꼭 폐성처럼 불하나 켜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서문의 주위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난 무슨 함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미를 통해 주위의 인기척을 살피도록 하였고, 난 최대한 집중을 해서 마나의 기운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모두 이상 없음. 난 비어있는 서쪽 성벽과 성문의 주요지점을 제압하기 위해 돌입했다. 하지만 역시, 무방비 상태, 아무래도 우리를 포위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끌고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주요지점을 무방비 상태로 두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와 동시에 동쪽으로 간 엘프들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왔다.
난 카밀 녀석들에게 성문을 올리도록 지시를 내린 뒤, 성벽 위로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를 다급함에 쫓기며, 성벽 위에 올라서자마자 난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이미지 마법. 클라리의 불꽃놀이 마법을 응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하늘에는 미리 약속되었던 별모양의 이미지가 크게 떠올랐다. 물론 성의 동쪽에서는 볼 수 없도록 설정을 해놓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긴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지휘관을 맡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울려오는 조용하던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소리, 설마 여기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숨어있었던 것인가? 그러고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뿐이었다. 하긴 이 주위의 지형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무척이나 상세히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성문 가까이 접근하는 그들의 깃발을 보는 순간 난 전혀 뜻밖의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까지, 아니 지금도 내 지휘아래에 있는 병사들, 카이사르를 비롯한 리투니아의 병사들이었던 것이었다. 제일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해 달려오는 카이사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저들을 보니 왠지 안심이 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래도 그동안 정이든 까닭인 것 같았다. 이 것 역시 황제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쩝, 그렇지만 이 고생을 시켜놓고 이 정도 배려에 누가 감동할 줄 아나?
난 플라이 마법을 써서 성문 아래 쪽으로 내려가 그들을 맞이했다. 카이사르는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급히 내 앞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사령관 각하."
카이사르는 말에서 내린 뒤 다만 나를 불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 무엇인가 다른 많은 것이 담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도록 하세.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말이야. 녀석들의 대응이 기습을 당한 것치고는 너무 치밀해."
카이사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 위에 올라탔다. 내가 탈 말은 하고 걱정을 할 필요없이 별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기사 한 명이 말 하나를 끌고 와 내 앞에 대기시켰다. 물론, 아미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좋은 말인 것 같았다.
"젤롯트 경, 경은 3,4소대와 함께 이 곳에 남아 성문을 지키도록 해주시오."
카이사르의 뒤를 따라 온 젤롯트를 향해 말을 하자 젤롯트는 별말 없이 고개를 숙여 명령을 따를 것을 표시했다. 난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요새를 가로질러 동쪽 성벽 쪽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이미 주위는 평범한 사람도 사물을 분간하기 쉬울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쩝,
그런데 길 저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역시 마주 달리고 있었던 까닭에 서로 꽤 빨리 접근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여 살펴보니 엘프였다. 동쪽 성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난 잠시 행렬을 멈추고, 그 엘프를 기다렸다.
가까이 다가온 엘프는 엘프와는 어울리지 않게 급하게 뛰어왔는지 조금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급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무슨 일이오? 동쪽 성벽을 장악하는데 실패하였소?"
엘프는 숨을 잠시 참으며 입을 열었다.
"동, 동쪽 성벽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지원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크리센공."
엘프는 그 말을 한 뒤 다시 숨을 돌렸다. 뭐, 그거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동쪽 성벽을 장악하기 위해 엘프들을 보냈던 것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나 어제 살펴본 바로도 험한 지형과 성벽을 활용해서 적은 수의 엘프들이지만 어느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므로 동쪽 성벽을 장악했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무슨 이유지?
"그렇다면 별 문제가 될 일이 없지 않소?"
내 말에 엘프는 고개를 저으며 답을 했다.
"다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문이 부서져 있었고, 해자도 어느정도 매워져 있었습니다. 성벽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이 상태에서 오십의 병력으로 수천의 병사를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급히 지원을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출발하기 전에 이미 적들의 선두가 시야권 안에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뭐? 성문이 부서졌다고? 녀석들 이 곳을 점령할 때 성문을 부서 놓은 뒤 아예 복구를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다 해자까지 매워져 있었다고? 아무래도 산 위 먼 곳에서 살펴봤던 까닭에 그런 세세한 것까지 살피지 못한 내 실수였다. 젠장.
"일이 급하게 되었군. 카이사르, 카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도록 지시를 내려주게."
"네, 대장"
"네, 각하"
두사람은 대답을 한 뒤 각자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느낀 점이었는데 그렇게까지 고생을 하고서도 카밀 녀석들은 전혀 지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시가지라 말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말의 속도에 그렇게 뒤쳐지지 않는 속도로 행군을 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전투들을 비롯해 새삼 카밀 녀석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엘프들의 눈이 좋은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시야권 안에 들어왔다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요새라고 해도 거의 산성에 가까운 요새의 시가지를 통과해서 방어준비까지 해야만 했다.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엘프들의 사격 실력에다 성벽이나 해자가 있었다면 그 정도의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엘프들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성벽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엘프들이 전멸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확실히 아미에 비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의 성능, 다급한 내 마음과 달리 말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녀석들이 타고 있는 말의 속도 역시 내가 타고 있는 말과 비슷하거나 조금 느린 것을 볼 때, 그리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중앙광장, 새벽 어둠 속에서와는 달리 밝은 햇빛 아래에서 본 광장의 광경은 처참했다. 광장 가득한 적들의 시체, 그리고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점이지만 녀석들이 흘린 피 말고도 조금 시간이 지난 듯한 핏자국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아마, 이 핏자국은 이 요새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추측하던 것과는 달리 요새에 남아있는 흔적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그 전에 요새를 수비하고 있었던 요새 수비대 역시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싸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잠시 멈칫한 부대의 행군을 다시 추스려 동쪽 성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발, 루이경이 잘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멀리서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물론, 이 함성은 우리측 병사들의 함성이 아니었다. 아마 성을 공격하려는 적들이 내지르는 목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만큼 내 마음 역시 다급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며칠간 행군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내 체력이나 마나상태가 내 예상 보다 더 급격히 소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 동안의 나태한 생활이 내 상태를 더욱더 악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로 마법이나 제대로 써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 너머로 동쪽 성벽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아직까지 적들이 성벽에 도착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벽의 곳곳에 서 있는 엘프들의 분주한 모습과 더욱더 크게 들려오는 적들의 함성은 상황이 그리 여의치는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카이사르 경, 2소대와 10소대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지휘해서 성벽 위의 방어를 맡도록 하시오."
카이사르는 내 말을 듣는 즉시 손동작 몇 번으로 부대를 지휘해서 성벽 위를 향해 이동해갔다. 그리고 난 카밀의 부하들과 2소대 10소대를 이끌고 부서진 성문 쪽을 향해 다가갔다. 성문 너머 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질서정연하게 우리 쪽을 향해 병사들을 행군시켜오는 적의 병사들. 엘프들의 화살을 방패를 통해 막아내며, 서서히 접근을 해오는 적들의 모습을 보는순간 이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쌍한 황제. 또다시 오랜 시간 동안 고생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어쩔까 그 역시 그녀의 운명인 것을.
잠깐, 황제를 생각하니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오니스를 보호한다는 방어막, 그 방어막의 열쇠가 이 곳에 있는데 방어막의 범위가 이 곳까지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절대 열세인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측 병사들의 휘생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더군다나 필요했다. 쩝, 그렇다면 내가 없는 동안 시간을 끌 방법을 마련해야 되겠군.
난 운용 가능한 마나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워! 아이스 워! 윈드 워!"
성문을 가득 매우는 흙벽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그 흙벽을 얼음벽으로 덮고 그 밖에 추가로 바람으로 보조를 했다. 이정도면 상대편 마법사들이 성벽을 공격 해도 왠만큼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밀, 만약 저 성문이 무너지가 붕괴되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줘. 해줄 수 있지?"
내 물음에 카밀은 이번에도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대장. 맡겨만 주십시오."
난 카밀의 등을 두드려 준 다음,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미, 카밀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카밀을 도와줘.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드레곤으로 현신을 했으면 좋겠어. 네가 다칠 수도 있는데, 하기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주인의 부탁이라면.'
아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내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성문 바로 위 성벽에는 루이의 모습이 보였다. 내 모습을 본 루이는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풀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별의 뜻이셨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성벽을 빼앗길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루이경. 생각 외로 적들이 강해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루이경,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떤 작전 때문에 잠시 요새 중앙으로 제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루이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답을 했다.
"네, 별의 뜻이여. 조금 힘든 전투이기는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루이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내 말을 따라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난 다시 플라이 마법을 써서 하늘로 솟아올라 적들의 사기도 떨어뜨리고 약간의 시간이나마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약을 대비해서 약간의 마나만을 남겨 놓은체 마법을 시전했다.
"블리자드"
적들의 중앙부를 노리고 쓴 마법은 순간 어느 정도 적들을 혼란시키는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예상했던 것처럼 적진의 곳곳에서 곧 둥근 방어막이 솟아올라 보호를 했지만 이정도 효과면 충분했다. 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이 까지 솟아 오른 다음 요새 중앙의 사령부 건물 쪽으로 움직였다. 병사들에게 지휘관이 전투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여주면 부대 전체의 사기에 그다지 좋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님아!"
컥, 이 익숙한 목소리. 클라리였다. 워낙 전투에 집중을 하느라 어제 점심까지 클라리에게 식사를 얻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리란 존재 자체를 있었다. 그나저나 뭐 때문에 따라온거지? 어쨌든 난 급한 상황인 만큼 클라리를 무시하고 중앙 사령부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예전과는 달리 그래도 꽤 자유롭게 플라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까닭인지 말에 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나가 거의 소진된 상태에서 몸에 많은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쩝. 순간 현기증이 왔지만 난 참으며 땅으로 내려와 비어있는 중앙사령부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주인님아! 같이가!"
난 이번에도 클라리의 말을 무시한체 급히 수없이 지도를 보며 외워둔 것처럼 중앙사령부 지하를 향해 둥근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 3층, 어두침침한 이 곳에는 횃불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한동안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습한 습기와 함께 불쾌한 냄세로 가득했다. 하지만 난 그런거에 신경쓸 여유도 없이 급히 품속에서 이오니스 대공의 옥새를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벽에서 큰 빛이 뿜어나오며 벽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쩝.
"주인님아! 헉! 헉! 휴 간신히 따라잡았다."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내 곁으로 다가온 클라리는 숨이 찬 듯 큰 숨을 몇번 내쉬었다.
"그러게 뭐 때문에 따라왔어?"
이런 저런 신경 쓰이는 일 때문에 날카로워진 난 조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클라리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클라리는 그런 내 말투에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빙긋 웃으며 답을 했다.
"우리 귀여운 주인님을 혼자 보내기는 불안하잖아."
컥, 저, 저게? 확실히 저놈의 클라리는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그렇게 팍팍 말로 복수를 하니. 잠깐, 이럴 시간이 없지. 이놈의 클라리 때문에 정말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난 클라리를 향한 시선을 다시 벽 쪽을 향해 돌렸다. 벽은 이미 열려 있는 상태였다. 쩝, 일분 일초에 사람 목숨이 달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며 클라리를 다시 한번 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딴청을 피우는 클라리. 난 그냥 클라리를 전처럼 무시하기로 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벽 밖과는 달리 공기도 그리 탁하지 않았고 빛을 내는 마법석이 곳곳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늑한 느낌까지 맴돌고 있었다. 난 조금 긴장된 움직임으로 방 가운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내가 방 가운데로 다가서자 갑자기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더니, 바닥이 조금 갈라지며 땅에서 둥근색 판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그 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의 기운, 이오니스 전체에 방어막이 펼쳐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보통 이정도의 다른 존재의 마나를 느끼게 된다면 압박감이나 왠지모를 거부감이 들기마련인데, 신기하게도 그리 압박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눈앞까지 솟아오른 둥근색 판, 그 둥근색 판 가운데 도장 모양과 일치하는 문양이 파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난 다시 정신을 잡고 재빨리 옥새를 그 문양에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주인님아! 왜 그래?"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한 클라리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