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1장 끝없는 여정(2)
푸른바람 BlueWind·2002. 12. 30. AM 12:12:55·조회 2389·추천 46
에피소드 71 끝없는 여정-2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밀이 머무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이 모습으론 한동안 녀석을 만나지 못하겠지. 쩝. 내일부터의 일도 있고 해서, 카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황제의 말에 따르면, 카밀 녀석은 몸 상태가 그리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스 영주성 안에서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그 오두막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타고난 그 성격은 못 버리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사치에 대한 거부감이 카밀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클라리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성에 남아 있었다. 여행 준비부터 해서, 날 변신시킬 준비를 할거라고 하던데 클라리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어제 황제의 제의를 승낙하면서 각오한 일인데 새삼 생각해본들 내 마음만 괴로울 뿐이었다. 그래도 내 외모 때문에 이런 기회라도 생겨서 다행이었다. 황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으니까. 왠지 모르게 황제에게서 엄마의 잔형을 찾으려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리라도 좋다고 난 생각한다. 그 만큼 황제 역시 이런저런 면에서 내게 많은 것을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리 손해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황제의 외모가 엄마랑은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긴 문제였지만 말이다.
아미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상태라 오두막까지 난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방어막의 가동으로 인해 직접적인 위험에서 벗어난 까닭인지 이오니스 주민들의 표정은 전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곳곳에 있는 시장들도 꽤 활기를 뛰고 있었고, 어디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에 수많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난 내가 한 일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오니스 성이 점령을 당했더라면, 이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우리마을에 들어오던 사람들과 비슷한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만할 헐벗은 난민들이 되었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내일부터 해야만 할 그 거북한 임무 역시 수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헤리탄, 돈을 조금 아껴야 되지 않겠나? 우리 가난한 떠돌이 검사께서 오늘 따라 돈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려?"
이 독특한 억양의 말투, 난 호기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잡화점에서 걸어나오는 드워프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드워프의 목소리였군. 그런데 둘 모두 왠지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헤리탄이란 이름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난 기억을 뒤지며, 잠시 멈춰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뭐,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밀한테야 오늘 안으로 찾아가면 될테니 별 문제는 없었다.
"이번 임무를 마치고 나니 돈이 좀 생겼거든요. 트메베. 트메베도 참가하지 그러셨어요?"
헤리탄이라 불린 검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드워프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트메베라 불렸던 드워프가 그 남자를 향해 웃으며 답을 했다.
"하하, 도끼도 없는 드워프가 전투에 참가해서 뭘 하겠나. 내가 검을 차면 바닥에 질질 끌린다는 것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러게 미리 준비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
남자의 말에 드워프는 남자의 허리 부분을 손으로 툭툭치며, 꽤 호쾌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자네같이 든든한 검사가 곁에 있는데, 내가 무기를 가질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러고 보니, 우리도 내일부터 다시 여행일세 그려."
"여유돈도 있고, 오늘 단단히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네요."
드워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훔, 서로 꽤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때, 잡화점 문이 열리며 아마 내가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되는 여자가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헤리탄, 트메베. 이제 옷가게로 향할 차례지?"
"세레스, 아무리 그래도 돈이 여유가 있을 때, 아껴둬야지 그렇게 마구 쓰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폭력마도사 세레스. 하지만 마도사라기 보다는 무투가에 다 가까운 그 여자였다. 그러고 보니, 저 드위프하고 검사, 그 때 언데드와 싸울 때, 추기경 옆에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 폭력 마도사 세레스는 검사와 드워프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거의 강제로 끌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니 왠지 클라리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흠. 워낙 정신없는 상황 때문인지 그들은 날 못 본 듯 했다. 하긴 세레스는 한명의 드워프와 한명의 성인남자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말이 달려가는 수준의 속도를 내며 지나갔으니 날 볼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들도 추기경의 일행일테니, 아무래도 내일부터 같이 다니게 될 것 같았다. 한동안 시끄러워지겠군 하는 걱정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함께 난 한숨을 내쉬었다.
"카밀, 그래서 내일부터는 내 동생의 호위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해줄 수 있지?"
내가 이런 저런 상황설명을 적당히 꾸며서 카밀에게 이야기를 하자, 카밀은 내 말에 머리를 감싸고는 조금 고민을 했다. 카밀의 고민하는 모습이라,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난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이야기를 했다. 카밀은 잠시 후에 고개를 들더니 날 보며 힘없이 답을 했다.
"네, 대장, 마음 같아선 저도 대장을 따라가고 싶지만, 대장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녀석들한테 준비를 시켜놓겠습니다. 그런데 대장의 동생 분은 예쁘신가요?"
카밀 저 녀석 잘 나가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긴 저 녀석도 한참 무렵의 남자니까 그런데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수십명의 남자 녀석들과 여자 모습으로 지내야 한단 말이잖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뭐, 소피, 티티, 아미, 클라리 같은 외모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뛰어난 존재들도 같이 있을 테니 별다른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불안을 가라앉혔다.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못생기지는 않은 것 같더군."
흐흠, 내 스스로 예쁘다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좋아하는 녀석도 있으니 최소한 못생기진 않았단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카밀은 내 대답에, 뭔가 기대를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흐흠. 저 모습을 보니 여행 중에 좀 놀려먹어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혹시 저 녀석이 눈치를 채면 어떻게 하지? 쩝. 뭐 그 때는 사실을 말해야 되겠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 때 일이고, 난 최소한 지금 그 사실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그래도 성직자를 보호하는 임무니까. 옷이라도 좀 제대로 된 것들을 입어둬, 아마 옷도 배급을 해줄 것 같은데, 불편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할 생각하지 말고 웬만하면 입어두는게 좋을 거야. 최소한 싸구려 옷은 안 줄테니까 말이야."
내 말에 카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희들은 남자옷이라도 입지. 난 도대체 뭐란 말이야? 난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솟는 것을 억누르며, 카밀의 오두막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녀석, 내가 자기를 구해줬다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정이 갔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의지를 해도 그다지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다는 믿음이 서는 녀석이었으니까 내가 녀석들을 데려가려 하는 것이었다. 흐흠, 그래도 플라타니오 사제의 능력 덕택에 저 녀석이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 덕택에 녀석이 반쯤 눈에 눈물이 고인 상태로 내게 이야기를 하는 다시는 못볼 것을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난 의자에 앉아서 조금 불퉁한 상태로 내 앞에 놓여진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주한 클라리, 일당. 클라리는 날 여장시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운체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클라리가 날 소꿉놀이 인형으로 생각하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꿉놀이 인형 신세라. 참. 그런데 그 전까지의 여장과는 달리 이번에는 꽤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적진으로 들어가는데다 그 곳에는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존재들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는 내 머리끈을 푼 다음 한동안 제대로 다듬지 못한 머리결을 빗으로 계속 빗어 내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머릿손질을 하자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많이 헝클어진 머리결이 곧게 다듬어 지는 것이 거울을 통해 보였다. 머리를 풀고 보니, 확실히 머리도 많이 길어져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머리가 길면 검을 쓰는데 지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 검술의 특성상 머리길이는 검을 쓰는데 별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긴만큼 잘 묶어두기만 하면 전투시에 균형을 잡거나 할 때 쓸모가 많았다. 동물들이 꼬리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까? 뭐, 이러쿵저러쿵해도 머리를 자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머리를 자르는데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머릿손질을 한 까닭인지 내 연갈빛 머리카락에서도 조금씩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흐흠, 새삼 깨달은 사실. 하긴 그동안 누적된 먼지 때문에 머리카락에서 빛이 난다는 게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손질을 마친 뒤 클라리는 내 앞으로 와서는 조금 특이한 솔 달린 막대기를 들었다.
"주인님아 눈감으면 안돼."
클라리 이놈의 검이 무슨 짓을 하려고, 난 불안감이 담긴 눈으로 클라리를 보았다. 클라리는 그 솔 달린 막대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 눈 근처로 대더니, 속눈썹을 다듬기 시작했다. 켁, 이건 도대체 뭐 때문에 하는 거야? 난 클라리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눈을 감을 번했지만, 간신히 클라리의 행동이 마무리 될 때까지 참았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 정말 제국이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일을 절대 맏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며,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그 아테네이오스란 국가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번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엷게 분을 바르는 것으로 기본적인 몸단장이 끝난 다음, 클라리는 날 일으켜 세우더니, 황제에게 전해받은 그 플라타니오 사제복을 내게 입히기 시작했다. 사제복은 마법사의 로브와 비슷했지만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의 옷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일색인 유하네리스의 여사제 복과는 달리 플라타니오의 사제복은 왠지 푹신푹신 한 느낌이 드는 흰색 천에 금빛의 장식과 무늬가 연하게 들어간 스타일의 옷이었다. 거기에다 보통 그림책 같은 곳에서 여사제들이 쓰곤 하는 모자도 옷 위에 올려져 있었다. 꼭 원기둥 같은 둥근 모자의 가운데에는 플라타니오의 상징인 별무늬가 금실로 새겨져 있었다.
쩝, 저 옷을 입으면 정말 여자로 오해받지 않을 수가 없겠군. 난 한숨을 내 쉬며 클라리가 유도하는데로 몸을 움직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싸움을 해서 옷을 입은 뒤, 거울을 쳐다보니, 정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예전의 나와는 다른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군, 최소한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테니. 난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의자에 주저 앉아버렸다.
"우아! 다른 어떤 옷보다도 이 옷이 주인님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리고 예전에 여자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지금 주인님이 훨씬 더 예뻐."
이 말을 듣고 기뻐해야 될지. 난 다시 한번 한숨을 내 쉬었다.
난 옷을 입은 다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공식적으로도 설명을 해둬야, 나중에 일어날 많은 마찰들을 무마시킬 수 있다는 황제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아테네이오스 첩자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이 아테네이오스 측에 전달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가 회의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전에 크리센공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방안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물론, 황제를 포함해서. 난 머쓱한 것을 되도록 표시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일일이 그 들의 인사에 답을 했다. 최고 사제가 이 정도의 위치였다니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플라타니오 교단의 미카 크리센 최고 사제님이십니다. 종교 총회에 참석하시기 위해 테베로 향하시던 중, 이 자리에 모시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초청을 받아들여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고 사제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선체로 날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하며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흐흠, 황제 역시 연기력 하나는 일품이군. 난 조금 긴장한 것이 표시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황제에게 답을 했다.
"아닙니다. 폐하. 한낮 신관에 불과한 저를 이런 자리에 초대해 주시다니,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난 되도록 차분한 어조를 유지해서 황제에게 답을 했다. 왠지 속이 타는 것 같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여장을 해서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들키지 않아야 된다는 쪽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전까지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여자옷을 입었고,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회의실 안에 있던 신하들 모두 한번씩 날 쳐다보았다. 카이사르 녀석이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날쳐다보는게 조금 부담스러웠을 뿐,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못채는 것 같았다. 카이사르도 눈치를 첸 것까지는 아니고, 뭔가 다른 의미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았고, 난 갑자기 장난기가 돌아, 날 쳐다보는 카이사르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흐흠, 그런데 카이사르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 표시가 날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얼굴이 붉어진 카이사르는 당황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흐흠, 이 짓도 꽤 재밌군. 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차분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일단 방어막이 설치가 되었으니, 우리측으로써는 상황변화를 주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일설에 따르면 지탄그 군의 침입까지 예상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수천의 병력밖에 없는 우리가 필리포니스나 마케이아를 지원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아테네이오스 측에 길이 차단되어, 지원하러 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에요. 물론, 포세트립톤 측에서 다른 방법을 내겠지만 우리로써는 일단 이 남부지역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이에대해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도록 하세요."
황제는 일단 상황설명을 세세히 회의에 참가한 대신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사용하는 말이나 어조는 무척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와는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일단, 리투니아 측에서 보낸 지원군에 천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편성시켜 리투니아로 회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가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지탄그군이 리투니아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르넨 이오니스 영주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로 뽑힌 참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수린 요새 탈환을 위해 열었던 회의와는 달리 활발하게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간의 시간이나 그들에게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회의가 진행되었고, 황제는 전과는 달리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다지 여자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적당히 회의가 끝이 나고, 일단 포세트립톤에서 보내는 지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그전에 우선적으로 리투니아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또한 초여름무렵 수확하기로한 보리를 최대한 빨리 수확하여 식량 사정을 조금 더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또한 해군력을 빠른시일내 최대한 육성하여 지탄그군의 움직임을 파악, 그들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저지시킬 수 있으면 저지하는 방향으로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 역시 나왔다. 확실히 지금의 이 회의를 지켜보며 제국의 관리들이 바보들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무장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의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교양이 필요했으니까. 어쨌든 그들 역시 시험을 통해 뽑힌 관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회의가 마무리되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회의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최고사제란 입장 때문에 최소한 황제의 눈치를 보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편했다. 그리고 나올 때 역시 내게 예를 표하는 신하들, 플라타니오 교단이 많이 약해졌어도, 내 느낌이었지만 정신적인 면에선 여전히 많은 존경을 받는 것 같았다. 하긴, 그 동안의 여러 가지 활동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막중한 임무를 내가 이어받았단 말인가? 흐흠.
"저 최고 사제님."
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잠시 인식을 못하고 있다가 곧, 날 부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날 부른 사람은 카이사르였다. 저 녀석이 왜 날 불렀지? 혹시 알아차린 것일까?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카이사르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플라타니오 식으로 성호를 끄으며, 플라타니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Eurrl Isill Wid Mu(별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난 조금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방금 전에 말했던 말은 플라타니오 신자들이 서로 인사를 할 때, 종종 사용하는 플라타니오어라고 했다. 물론 플라타니오어를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플라타니오 고위급 신관밖에 없었지만, 보통 플라타니오 신자들도 간단한 말 한두개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난 당황함을 감추고 미리 공부해뒀던 플라티니오 최고 사제의 예법에 따라 그의 머리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다음, 플라타니오 어로 답을 했다.
"Ely Hamill Min Firu(언제나 들꽃의 마음으로)"
공용어로 번역하면 뭔가 허전한 듯한 내용의 말이었지만 인사라는 것이 그 말 자체가 가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까. 난 답을 마친 뒤, 그의 머리에서 손을 때고 카이사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절 부르셨나요? 별을 따르는 자여."
그래도 꽤 능숙하게 답변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클라리와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플라타니오 사제의 예법을 공부하느라 고생을 했지. 그나저나 정말 의외였다. 카이사르가 플라타니오의 신도였다니, 힐튼 집안은 대부분 유하네리스의 신도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최고 사제님. 전 최고 사제님께서 신의 곁으로 가신 뒤에 제 어머니께서 언젠가는 최고 사제님께서 다시 우리 앞에 서시리라 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다니. 항상 당신께서 다시 돌아오시길 기다리셨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이제 여한이 없으실 것입니다."
흐흠, 카이사르의 어머니가 플라타니오 신자였던 것 같다. 그 영향으로 그 역시 플라타니오의 신도가 되었던 것이고, 어쨌든 플라타니오 신자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왠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 이 사람이라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저는 그 분의 의지 중 하나일 뿐, 제가 없더라도 그 분은 언제다 모든 존재의 곁에 계신답니다. 들에 핀 작은 꽃에도, 하늘을 날아가는 작은 새에도, 그리고 바닥에 구르는 작은 돌맹이에게도 언제나 그 분께서는 함께 하시지요."
흐흠,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꼭,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카이사르에게 답을 해주고 있었다.
"네. 최고 사제님. 제가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나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미흡한 힘이나마 그 분의 뜻을 이루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조금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정말 카이사르의 어머니의 믿음이 독실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카이사르가 이렇게까니 행동할 이유가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후훔, 어쨌든 힘이 되어 주겠다는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더 자세한 것들을 묻고 싶었지만 최고 사제란 신분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체 다시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 다음 플라타니오 어로 인사를 했다.
"Pumillniss Dio Wid Mu(순결한 뜻이 함께 하길)"
그리고 난 그에게서 돌아서서 내 방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뒤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카이사르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 같았다. 후훔. 난 카이사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합격점이었던 것 같군.
"미카."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럽게 날 부르는 소리에 난 깜짝 놀라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처다보니, 그 곳엔 황제가 서있었다. 저 놈의 황제가 사람을 놀래켜 죽일일이 있나? 쩝.
"네, 폐하. 무슨 일이시죠?"
난 여러 가지 스트레스의 표현으로 되도록 냉정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냥 빙긋이 웃으며 답을 했다.
"역시, 잘 해내실 것 같네요. 최고 사제님. 일부러 밝히지 않는 다면, 정말 아무도 눈치를 체지 못하겠어요."
주위에 사람이 지나갈 것을 걱정한 때문일까 황제는 말을 낮추지 않고 말을 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었지만, 황제의 성격상 그런 것은 아닌 듯 싶었다.
"그리고 정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우셔요. 확실히 제 아들의 눈이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네요."
흐흠, 잠깐, 여기서 세인트 녀석의 이야기는 왜 나오는거야? 흐흠, 저놈의 황제가 무슨? 하지만 내 마음을 감추고 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띈 채 황제에게 답을 했다.
"그럼 폐하,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신의 뜻이 함께 하시길."
난 그 말을 하며 플라타니오 식으로 성호를 그은 다음, 황제를 지나쳐서 걸음을 옮겼다. 흐흐흠, 이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황제의 권위를 깎는다거나 하는 일만 하지 않는 다면 황제가 특별히 흠을 잡지 않는 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난 그냥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황제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황제가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귀에다 입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란트, 그냥 기분 풀어주려고 장난친거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렴. 네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게 만들어. 정말 미안해.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말이야."
황제의 그 말은 이성적으로는 너무나 수긍이 갔지만 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복장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싸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지. 쩝. 휴, 최고사제로써 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 것이 정말 신의 뜻이라면, 신은 정말 내게 잔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수를 셀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래도 내 곁에 스승님, 핀누나, 황제, 그리고 클라리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누나. 그런데 제가 곁에 없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지탄그 군과의 전투도 그리 쉽지만은 아닐 것 같은데."
여자 목소리로 누나라고 말하는 것이 그랬지만, 어쨌든 나 역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 말을 들은 황제는 날 한번 꼭 껴안아주며, 말을 했다.
"걱정하지마렴. 란트. 지금보다 더 힘든일도 이겨냈었으니. 하지만 정말 미안하구나. 언제나 널 사지로 몰아넣어야만 하다니, 나중에 미카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아."
이 따스함, 내 기억 속에 느껴지던 그 따스함과 다르지 않았다. 휴, 황제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그런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최근 며칠간 싸였던 스트레스가 왠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내 마음 역시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 황제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바빴던 하루가 지나가고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밀이 머무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이 모습으론 한동안 녀석을 만나지 못하겠지. 쩝. 내일부터의 일도 있고 해서, 카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황제의 말에 따르면, 카밀 녀석은 몸 상태가 그리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스 영주성 안에서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그 오두막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타고난 그 성격은 못 버리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사치에 대한 거부감이 카밀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클라리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성에 남아 있었다. 여행 준비부터 해서, 날 변신시킬 준비를 할거라고 하던데 클라리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어제 황제의 제의를 승낙하면서 각오한 일인데 새삼 생각해본들 내 마음만 괴로울 뿐이었다. 그래도 내 외모 때문에 이런 기회라도 생겨서 다행이었다. 황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으니까. 왠지 모르게 황제에게서 엄마의 잔형을 찾으려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리라도 좋다고 난 생각한다. 그 만큼 황제 역시 이런저런 면에서 내게 많은 것을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리 손해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황제의 외모가 엄마랑은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긴 문제였지만 말이다.
아미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상태라 오두막까지 난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방어막의 가동으로 인해 직접적인 위험에서 벗어난 까닭인지 이오니스 주민들의 표정은 전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곳곳에 있는 시장들도 꽤 활기를 뛰고 있었고, 어디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에 수많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난 내가 한 일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오니스 성이 점령을 당했더라면, 이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우리마을에 들어오던 사람들과 비슷한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만할 헐벗은 난민들이 되었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내일부터 해야만 할 그 거북한 임무 역시 수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헤리탄, 돈을 조금 아껴야 되지 않겠나? 우리 가난한 떠돌이 검사께서 오늘 따라 돈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려?"
이 독특한 억양의 말투, 난 호기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잡화점에서 걸어나오는 드워프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드워프의 목소리였군. 그런데 둘 모두 왠지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헤리탄이란 이름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난 기억을 뒤지며, 잠시 멈춰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뭐,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밀한테야 오늘 안으로 찾아가면 될테니 별 문제는 없었다.
"이번 임무를 마치고 나니 돈이 좀 생겼거든요. 트메베. 트메베도 참가하지 그러셨어요?"
헤리탄이라 불린 검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드워프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트메베라 불렸던 드워프가 그 남자를 향해 웃으며 답을 했다.
"하하, 도끼도 없는 드워프가 전투에 참가해서 뭘 하겠나. 내가 검을 차면 바닥에 질질 끌린다는 것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러게 미리 준비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
남자의 말에 드워프는 남자의 허리 부분을 손으로 툭툭치며, 꽤 호쾌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자네같이 든든한 검사가 곁에 있는데, 내가 무기를 가질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러고 보니, 우리도 내일부터 다시 여행일세 그려."
"여유돈도 있고, 오늘 단단히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네요."
드워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훔, 서로 꽤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때, 잡화점 문이 열리며 아마 내가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되는 여자가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헤리탄, 트메베. 이제 옷가게로 향할 차례지?"
"세레스, 아무리 그래도 돈이 여유가 있을 때, 아껴둬야지 그렇게 마구 쓰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폭력마도사 세레스. 하지만 마도사라기 보다는 무투가에 다 가까운 그 여자였다. 그러고 보니, 저 드위프하고 검사, 그 때 언데드와 싸울 때, 추기경 옆에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 폭력 마도사 세레스는 검사와 드워프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거의 강제로 끌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니 왠지 클라리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흠. 워낙 정신없는 상황 때문인지 그들은 날 못 본 듯 했다. 하긴 세레스는 한명의 드워프와 한명의 성인남자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말이 달려가는 수준의 속도를 내며 지나갔으니 날 볼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들도 추기경의 일행일테니, 아무래도 내일부터 같이 다니게 될 것 같았다. 한동안 시끄러워지겠군 하는 걱정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함께 난 한숨을 내쉬었다.
"카밀, 그래서 내일부터는 내 동생의 호위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해줄 수 있지?"
내가 이런 저런 상황설명을 적당히 꾸며서 카밀에게 이야기를 하자, 카밀은 내 말에 머리를 감싸고는 조금 고민을 했다. 카밀의 고민하는 모습이라,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난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이야기를 했다. 카밀은 잠시 후에 고개를 들더니 날 보며 힘없이 답을 했다.
"네, 대장, 마음 같아선 저도 대장을 따라가고 싶지만, 대장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녀석들한테 준비를 시켜놓겠습니다. 그런데 대장의 동생 분은 예쁘신가요?"
카밀 저 녀석 잘 나가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긴 저 녀석도 한참 무렵의 남자니까 그런데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수십명의 남자 녀석들과 여자 모습으로 지내야 한단 말이잖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뭐, 소피, 티티, 아미, 클라리 같은 외모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뛰어난 존재들도 같이 있을 테니 별다른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불안을 가라앉혔다.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못생기지는 않은 것 같더군."
흐흠, 내 스스로 예쁘다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좋아하는 녀석도 있으니 최소한 못생기진 않았단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카밀은 내 대답에, 뭔가 기대를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흐흠. 저 모습을 보니 여행 중에 좀 놀려먹어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혹시 저 녀석이 눈치를 채면 어떻게 하지? 쩝. 뭐 그 때는 사실을 말해야 되겠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 때 일이고, 난 최소한 지금 그 사실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그래도 성직자를 보호하는 임무니까. 옷이라도 좀 제대로 된 것들을 입어둬, 아마 옷도 배급을 해줄 것 같은데, 불편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할 생각하지 말고 웬만하면 입어두는게 좋을 거야. 최소한 싸구려 옷은 안 줄테니까 말이야."
내 말에 카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희들은 남자옷이라도 입지. 난 도대체 뭐란 말이야? 난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솟는 것을 억누르며, 카밀의 오두막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녀석, 내가 자기를 구해줬다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정이 갔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의지를 해도 그다지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다는 믿음이 서는 녀석이었으니까 내가 녀석들을 데려가려 하는 것이었다. 흐흠, 그래도 플라타니오 사제의 능력 덕택에 저 녀석이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 덕택에 녀석이 반쯤 눈에 눈물이 고인 상태로 내게 이야기를 하는 다시는 못볼 것을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난 의자에 앉아서 조금 불퉁한 상태로 내 앞에 놓여진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주한 클라리, 일당. 클라리는 날 여장시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운체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클라리가 날 소꿉놀이 인형으로 생각하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꿉놀이 인형 신세라. 참. 그런데 그 전까지의 여장과는 달리 이번에는 꽤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적진으로 들어가는데다 그 곳에는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존재들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는 내 머리끈을 푼 다음 한동안 제대로 다듬지 못한 머리결을 빗으로 계속 빗어 내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머릿손질을 하자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많이 헝클어진 머리결이 곧게 다듬어 지는 것이 거울을 통해 보였다. 머리를 풀고 보니, 확실히 머리도 많이 길어져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머리가 길면 검을 쓰는데 지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 검술의 특성상 머리길이는 검을 쓰는데 별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긴만큼 잘 묶어두기만 하면 전투시에 균형을 잡거나 할 때 쓸모가 많았다. 동물들이 꼬리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까? 뭐, 이러쿵저러쿵해도 머리를 자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머리를 자르는데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머릿손질을 한 까닭인지 내 연갈빛 머리카락에서도 조금씩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흐흠, 새삼 깨달은 사실. 하긴 그동안 누적된 먼지 때문에 머리카락에서 빛이 난다는 게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손질을 마친 뒤 클라리는 내 앞으로 와서는 조금 특이한 솔 달린 막대기를 들었다.
"주인님아 눈감으면 안돼."
클라리 이놈의 검이 무슨 짓을 하려고, 난 불안감이 담긴 눈으로 클라리를 보았다. 클라리는 그 솔 달린 막대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 눈 근처로 대더니, 속눈썹을 다듬기 시작했다. 켁, 이건 도대체 뭐 때문에 하는 거야? 난 클라리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눈을 감을 번했지만, 간신히 클라리의 행동이 마무리 될 때까지 참았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 정말 제국이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일을 절대 맏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며,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그 아테네이오스란 국가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번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엷게 분을 바르는 것으로 기본적인 몸단장이 끝난 다음, 클라리는 날 일으켜 세우더니, 황제에게 전해받은 그 플라타니오 사제복을 내게 입히기 시작했다. 사제복은 마법사의 로브와 비슷했지만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의 옷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일색인 유하네리스의 여사제 복과는 달리 플라타니오의 사제복은 왠지 푹신푹신 한 느낌이 드는 흰색 천에 금빛의 장식과 무늬가 연하게 들어간 스타일의 옷이었다. 거기에다 보통 그림책 같은 곳에서 여사제들이 쓰곤 하는 모자도 옷 위에 올려져 있었다. 꼭 원기둥 같은 둥근 모자의 가운데에는 플라타니오의 상징인 별무늬가 금실로 새겨져 있었다.
쩝, 저 옷을 입으면 정말 여자로 오해받지 않을 수가 없겠군. 난 한숨을 내 쉬며 클라리가 유도하는데로 몸을 움직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싸움을 해서 옷을 입은 뒤, 거울을 쳐다보니, 정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예전의 나와는 다른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군, 최소한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테니. 난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의자에 주저 앉아버렸다.
"우아! 다른 어떤 옷보다도 이 옷이 주인님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리고 예전에 여자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지금 주인님이 훨씬 더 예뻐."
이 말을 듣고 기뻐해야 될지. 난 다시 한번 한숨을 내 쉬었다.
난 옷을 입은 다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공식적으로도 설명을 해둬야, 나중에 일어날 많은 마찰들을 무마시킬 수 있다는 황제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아테네이오스 첩자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이 아테네이오스 측에 전달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가 회의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전에 크리센공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방안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물론, 황제를 포함해서. 난 머쓱한 것을 되도록 표시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일일이 그 들의 인사에 답을 했다. 최고 사제가 이 정도의 위치였다니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플라타니오 교단의 미카 크리센 최고 사제님이십니다. 종교 총회에 참석하시기 위해 테베로 향하시던 중, 이 자리에 모시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초청을 받아들여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고 사제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선체로 날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하며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흐흠, 황제 역시 연기력 하나는 일품이군. 난 조금 긴장한 것이 표시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황제에게 답을 했다.
"아닙니다. 폐하. 한낮 신관에 불과한 저를 이런 자리에 초대해 주시다니,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난 되도록 차분한 어조를 유지해서 황제에게 답을 했다. 왠지 속이 타는 것 같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여장을 해서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들키지 않아야 된다는 쪽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전까지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여자옷을 입었고,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회의실 안에 있던 신하들 모두 한번씩 날 쳐다보았다. 카이사르 녀석이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날쳐다보는게 조금 부담스러웠을 뿐,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못채는 것 같았다. 카이사르도 눈치를 첸 것까지는 아니고, 뭔가 다른 의미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았고, 난 갑자기 장난기가 돌아, 날 쳐다보는 카이사르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흐흠, 그런데 카이사르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 표시가 날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얼굴이 붉어진 카이사르는 당황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흐흠, 이 짓도 꽤 재밌군. 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차분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일단 방어막이 설치가 되었으니, 우리측으로써는 상황변화를 주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일설에 따르면 지탄그 군의 침입까지 예상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수천의 병력밖에 없는 우리가 필리포니스나 마케이아를 지원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아테네이오스 측에 길이 차단되어, 지원하러 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에요. 물론, 포세트립톤 측에서 다른 방법을 내겠지만 우리로써는 일단 이 남부지역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이에대해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도록 하세요."
황제는 일단 상황설명을 세세히 회의에 참가한 대신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사용하는 말이나 어조는 무척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와는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일단, 리투니아 측에서 보낸 지원군에 천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편성시켜 리투니아로 회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가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지탄그군이 리투니아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르넨 이오니스 영주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로 뽑힌 참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수린 요새 탈환을 위해 열었던 회의와는 달리 활발하게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간의 시간이나 그들에게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회의가 진행되었고, 황제는 전과는 달리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다지 여자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적당히 회의가 끝이 나고, 일단 포세트립톤에서 보내는 지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그전에 우선적으로 리투니아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또한 초여름무렵 수확하기로한 보리를 최대한 빨리 수확하여 식량 사정을 조금 더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또한 해군력을 빠른시일내 최대한 육성하여 지탄그군의 움직임을 파악, 그들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저지시킬 수 있으면 저지하는 방향으로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 역시 나왔다. 확실히 지금의 이 회의를 지켜보며 제국의 관리들이 바보들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무장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의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교양이 필요했으니까. 어쨌든 그들 역시 시험을 통해 뽑힌 관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회의가 마무리되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회의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최고사제란 입장 때문에 최소한 황제의 눈치를 보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편했다. 그리고 나올 때 역시 내게 예를 표하는 신하들, 플라타니오 교단이 많이 약해졌어도, 내 느낌이었지만 정신적인 면에선 여전히 많은 존경을 받는 것 같았다. 하긴, 그 동안의 여러 가지 활동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막중한 임무를 내가 이어받았단 말인가? 흐흠.
"저 최고 사제님."
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잠시 인식을 못하고 있다가 곧, 날 부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날 부른 사람은 카이사르였다. 저 녀석이 왜 날 불렀지? 혹시 알아차린 것일까?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카이사르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플라타니오 식으로 성호를 끄으며, 플라타니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Eurrl Isill Wid Mu(별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난 조금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방금 전에 말했던 말은 플라타니오 신자들이 서로 인사를 할 때, 종종 사용하는 플라타니오어라고 했다. 물론 플라타니오어를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플라타니오 고위급 신관밖에 없었지만, 보통 플라타니오 신자들도 간단한 말 한두개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난 당황함을 감추고 미리 공부해뒀던 플라티니오 최고 사제의 예법에 따라 그의 머리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다음, 플라타니오 어로 답을 했다.
"Ely Hamill Min Firu(언제나 들꽃의 마음으로)"
공용어로 번역하면 뭔가 허전한 듯한 내용의 말이었지만 인사라는 것이 그 말 자체가 가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까. 난 답을 마친 뒤, 그의 머리에서 손을 때고 카이사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절 부르셨나요? 별을 따르는 자여."
그래도 꽤 능숙하게 답변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클라리와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플라타니오 사제의 예법을 공부하느라 고생을 했지. 그나저나 정말 의외였다. 카이사르가 플라타니오의 신도였다니, 힐튼 집안은 대부분 유하네리스의 신도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최고 사제님. 전 최고 사제님께서 신의 곁으로 가신 뒤에 제 어머니께서 언젠가는 최고 사제님께서 다시 우리 앞에 서시리라 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다니. 항상 당신께서 다시 돌아오시길 기다리셨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이제 여한이 없으실 것입니다."
흐흠, 카이사르의 어머니가 플라타니오 신자였던 것 같다. 그 영향으로 그 역시 플라타니오의 신도가 되었던 것이고, 어쨌든 플라타니오 신자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왠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 이 사람이라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저는 그 분의 의지 중 하나일 뿐, 제가 없더라도 그 분은 언제다 모든 존재의 곁에 계신답니다. 들에 핀 작은 꽃에도, 하늘을 날아가는 작은 새에도, 그리고 바닥에 구르는 작은 돌맹이에게도 언제나 그 분께서는 함께 하시지요."
흐흠,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꼭,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카이사르에게 답을 해주고 있었다.
"네. 최고 사제님. 제가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나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미흡한 힘이나마 그 분의 뜻을 이루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조금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정말 카이사르의 어머니의 믿음이 독실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카이사르가 이렇게까니 행동할 이유가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후훔, 어쨌든 힘이 되어 주겠다는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더 자세한 것들을 묻고 싶었지만 최고 사제란 신분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체 다시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 다음 플라타니오 어로 인사를 했다.
"Pumillniss Dio Wid Mu(순결한 뜻이 함께 하길)"
그리고 난 그에게서 돌아서서 내 방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뒤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카이사르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 같았다. 후훔. 난 카이사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합격점이었던 것 같군.
"미카."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럽게 날 부르는 소리에 난 깜짝 놀라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처다보니, 그 곳엔 황제가 서있었다. 저 놈의 황제가 사람을 놀래켜 죽일일이 있나? 쩝.
"네, 폐하. 무슨 일이시죠?"
난 여러 가지 스트레스의 표현으로 되도록 냉정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냥 빙긋이 웃으며 답을 했다.
"역시, 잘 해내실 것 같네요. 최고 사제님. 일부러 밝히지 않는 다면, 정말 아무도 눈치를 체지 못하겠어요."
주위에 사람이 지나갈 것을 걱정한 때문일까 황제는 말을 낮추지 않고 말을 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었지만, 황제의 성격상 그런 것은 아닌 듯 싶었다.
"그리고 정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우셔요. 확실히 제 아들의 눈이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네요."
흐흠, 잠깐, 여기서 세인트 녀석의 이야기는 왜 나오는거야? 흐흠, 저놈의 황제가 무슨? 하지만 내 마음을 감추고 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띈 채 황제에게 답을 했다.
"그럼 폐하,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신의 뜻이 함께 하시길."
난 그 말을 하며 플라타니오 식으로 성호를 그은 다음, 황제를 지나쳐서 걸음을 옮겼다. 흐흐흠, 이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황제의 권위를 깎는다거나 하는 일만 하지 않는 다면 황제가 특별히 흠을 잡지 않는 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난 그냥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황제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황제가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귀에다 입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란트, 그냥 기분 풀어주려고 장난친거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렴. 네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게 만들어. 정말 미안해.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말이야."
황제의 그 말은 이성적으로는 너무나 수긍이 갔지만 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복장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싸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지. 쩝. 휴, 최고사제로써 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 것이 정말 신의 뜻이라면, 신은 정말 내게 잔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수를 셀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래도 내 곁에 스승님, 핀누나, 황제, 그리고 클라리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누나. 그런데 제가 곁에 없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지탄그 군과의 전투도 그리 쉽지만은 아닐 것 같은데."
여자 목소리로 누나라고 말하는 것이 그랬지만, 어쨌든 나 역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황제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 말을 들은 황제는 날 한번 꼭 껴안아주며, 말을 했다.
"걱정하지마렴. 란트. 지금보다 더 힘든일도 이겨냈었으니. 하지만 정말 미안하구나. 언제나 널 사지로 몰아넣어야만 하다니, 나중에 미카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아."
이 따스함, 내 기억 속에 느껴지던 그 따스함과 다르지 않았다. 휴, 황제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그런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최근 며칠간 싸였던 스트레스가 왠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내 마음 역시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 황제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바빴던 하루가 지나가고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