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3장 엘프 포레스트(2)
푸른바람 BlueWind·2003. 4. 27. PM 8:30:36·조회 1900·추천 83
에피소드 82 엘프 포레스트-2
"누, 누구시죠?"
난 순간 당황함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이 여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으흠, 그래, 그러고보니 클라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비슷한 상황이었지?
"제가 누굴까요?"
"........"
이 황당한 대답은 뭐란 말이야? 난 할말을 잃어버렸다. 슬쩍 클라리를 쳐다보니 클라리 역시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자신과 내 사이에 끼어 들어 앉아 있는 연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자를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황스러움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앗!"
그런데, 이자벨이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듯, 항상 이지적이고 별 표정의 변화가 없던 그녀가 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놀란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해 뭔가 아는 듯한 눈치, 하지만 여자가 입에 손가락 하나를 대자. 이자벨은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유지한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자벨의 표정을 볼 때, 나쁘다거나 이상한 존재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정말 이 여자의 정체는 뭐지?
"아, 정말 언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워요."
다시 한번 내 볼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을 하는 그 여자, 이 여자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방금 그 말은 나를 그 전에 본 적이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 그러지 않아도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죽겠는데, 이제 모르는 여자까지 나타나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다니 정말 못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는 나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 정체 모를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지금까지는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정말 천하 절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했다. 투명하다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뽀얀 피부, 그리고 너무나 맑은, 그리고 무엇이라 딱 표현할 수 없는 색의 눈, 게다가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신비하고 고귀한 분위기. 물론, 워낙 겉 외모에서 출중한 일행들이랑 같이 다니다보니 그리 큰 감흥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 여자가 왜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루-아리네스-유-릴리안-파릴리스 님. 그 분은 숲의 식구들이 아닌 플라타니오신의 최고 사제님이세요. 그런 행동은 무례인 것 같습니다만."
이자벨은 꽤 긴 이름을 부르며 여자를 향해 말을 했다. 이자벨의 어투를 볼 때, 최소한 이자벨 보다는 높은 신분의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그런 여자에게도 할말을 다하는 이자벨, 당당한 여인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긴, 그녀 역시 엘프임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붙어 있는 이 여자는 이자벨의 말을 일절 무시하고 여전히 내 볼에 손을 대고 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눈길. 쩝. 이 옷을 입고있는 상태에서 이 여자를 집어던지거나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지?
"가지말아요. 그 길을 더이상 걸어가지 말아요.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이여."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담스러운 눈길로 날 계속 쳐다보고 있던 그 여자는 갑자기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척이나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을 했다.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말. 이 여자가 정말 왜 이러지?
"여기 보세요. 아가씨! 당신이 어떤 신분의 존재이든, 지금 이렇게 하는 거는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심통이 난 듯 볼이 불룩하게 되어 있던, 클라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여자를 향해 조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휴, 그나마 클라리가 내 의사를 대신 표현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최근에는 거의 없어진 증상이지만, 여자가 이렇게 가까이 달라붙는 것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 만은 어쩔 수 없었다. 클라리의 말에 여자는 클라리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리고 또다시 물끄러미 이제는 클라리를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느낌이 드는 여자의 눈. 너무나 맑고, 또 너무나 순수하며, 고결하였다. 긴 이름을 가진 이 여자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고귀한 느낌을 모두 그녀의 눈이 대변하는 듯한 느낌. 정말 평범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엘프 포레스트에 사는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 하. 뭔가 생각이 날 듯 하면서도 그 대상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런 여자가 내게 정말 무슨 일인걸까?
"운명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군요. 길고도 짧은 인간사 역시 수많은 운명들의 얽매임. 그리고 수많은 운명들의 얽매임을 넘어 작고도 깊은 인연 역시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곳으로 돌아오다니, 그리고 저 역시 그 실타fp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그 분의 뜻이란...."
그리고 여자는 말을 마친 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슬퍼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로써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흐흠 그게 언제였지? 왠지 막연하게 아주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최근에 종종 느끼곤 하는 기분. 이 막연함은...정말 답답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영혼이 더 이상 상처받는 모습을 보기는 싫어요. 그리고 그 누군가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욱더."
그 여자는 클라리를 힐끔 쳐다본 다음 다시 나를 보며, 약간의 씁쓸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 그대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더 이상 상처받는 모습을 보기는 싫다라, 무슨 의미일까? 훗, 내 영혼의 상처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 자신은 이미 받을 만큼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더 이상의 상처를 입힐 만한 것이 있을까?
잠시간의 정적, 하지만 곧 말을 세우는 카밀의 목소리가 들리며 마차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라네티스 예하. 엘프들의 도시 아-예리실에."
조금 곤란함이 담긴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이자벨은 마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나를 향해 이야기를 했다. 엘프들의 도시?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인간들보다 월등한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엘프들에게 도시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해야할 것이었다. 옆에 붙어 있는 이 여자일로 신경을 쓰느라 창 밖의 풍경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같다. 이 정체 모를 이름 긴 여자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차 밖으로 내렸다. 엘프들의 숲을 하루만에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왕에 잘 거라면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운 일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난 엘프들의 도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번 여행을 하며 힘든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이면에서 평소에는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던 많은 도시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책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서 꽤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는 이 기대감 역시 여행을 겪으며 생겨난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여정 속의 작은 낙이라고 표현 해야 될까?
마차에 내리는 순간 내 눈 속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나무, 정말 거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있었다. 난 그 나무의 압도적인 크기에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멍하게 나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는 그 높이를 가늠해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그 굵기나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역시 엄청났다. 그리고 그 나무들 주위의 생명들로부터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다른 어떤 곳의 노랫소리와도 비교를 할 수 없는 무척 웅장하고 장엄하면서도 편안함을 안겨주는 신비한 노랫소리였다.
그런데 그 거대한 나무의 주위에 가득히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빛의 정령들이 가득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울창한 숲과 거대한 나무로 인해 햇빛이 거의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정령들이 내뿜는 빛으로 인해 그리 어두운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이 나무가 유하네리스 신이 이 세상에 심었다고 전해지며, 엘프들이 태어난다고 하는 바로 그 나무이겠지?
"라네티스 예하. 아-예리실에 도착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참동안 넋을 놓고 나무들을 쳐다보던 난 내 쪽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아까 먼저 떠났던 루이 경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분명 그 전에 본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익숙한 얼굴을 가진 키가 큰 엘프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루이 옆에 서 있는 그 엘프 역시 평범한 엘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금발의 엘프 아름답고 고귀한 외모, 하지만 그 것보다도 그 엘프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라네티스 예하. 처음 뵙겠습니다. 전 프리앙이라고 합니다."
뭐? 프리앙이라고? 헛, 어쩐지 외모가 눈에 익숙하다고 했더니, 바로 핀누나의 오빠이며 엘프들의 수장직을 맡고 있는 한마디로말해서 모든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1000년이 넘게 살아온 존재일 것이다. 난 왠지모를 반가움에 밝은 표정으로 답인사를 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엘프들의 수장. 프리앙님."
내 인사에 프리앙은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빙긋이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띄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핀 누나와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엘프가 바로 최강의 데스나이트라 불렸고 드래곤들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던 치아크레스를 물리친 그 엘프란 말이지?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며 동경하던 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지만, 정말, 만나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예하. 제가 엘프들의 수장이라 해도 많은 부분에서 미숙한 제가 그분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잠시 맡고 있는 직책. 예하께서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정중하며, 또한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서 특별한 감정을 잡아내기가 무척이나 힘든 말투였다.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들어내지 않는 타입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아무리 잠시 맡는 직책이라 할지라도 엘프들의 수장이라는 직책은 쉽게 무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종족의 대표라는 것은 그 것이 어떤 면이든 간에 특별하다는 의미이니까. 하다못해 오크들의 대표라고 할지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날 마을에 받아준 그 오크 장로를 생각해보면 우월한 종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인간들 중 대부분 보다 현명하고 또한 생각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엘프 전체의 수장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불청객인 제가 이 평화로운 숲에 혼돈을 안겨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유하네리스 신의 속성은 질서,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인 엘프들, 그리고 그 엘프들의 고향인 숲이야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질서의 한가운데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이방인.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아닐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 역시 정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곳으로 올 생각은 정말 없었다.
"아닙니다. 창조신 플라타니오님의 최고사제께서 이 곳에 들러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크나큰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조금 숙이는 프리앙, 그런데 그에게서는 친숙함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의 어떤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인사를하고 있는 동안 마차에서 내 일행들 역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신기한 숲의 모습에 감탄사를 터트리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소피는 유하네리스 성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하고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었다. 클라리 역시, 깊은 감회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숲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자벨과 티티, 아미가 내리고 마지막으로 그 정체모를 여자가 내리는데, 그 순간, 내 앞에서 있던 프리앙의 표정이 반가움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변했다. 후훔, 이자벨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의 감정이란 것 자체를 초월했다고 여겨지는 이 엘프에게서 이런 표정을 볼 수 있다니. 쩝.
"루-아릴리스님. 10년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희와 페어리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프리앙의 말에 그 여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페어리라고? 잠깐, 그래 생각이 났다. 엘프 포레스트에는 엘프들뿐만 아니라 페어리들 역시 살고 있다고 들은 것 같다. 페어리들 중에 저렇게 큰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다 저 정도의 고귀함을 뿜어낼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누, 누구시죠?"
난 순간 당황함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이 여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으흠, 그래, 그러고보니 클라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비슷한 상황이었지?
"제가 누굴까요?"
"........"
이 황당한 대답은 뭐란 말이야? 난 할말을 잃어버렸다. 슬쩍 클라리를 쳐다보니 클라리 역시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자신과 내 사이에 끼어 들어 앉아 있는 연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자를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황스러움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앗!"
그런데, 이자벨이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듯, 항상 이지적이고 별 표정의 변화가 없던 그녀가 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놀란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해 뭔가 아는 듯한 눈치, 하지만 여자가 입에 손가락 하나를 대자. 이자벨은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유지한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자벨의 표정을 볼 때, 나쁘다거나 이상한 존재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정말 이 여자의 정체는 뭐지?
"아, 정말 언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워요."
다시 한번 내 볼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을 하는 그 여자, 이 여자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방금 그 말은 나를 그 전에 본 적이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 그러지 않아도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죽겠는데, 이제 모르는 여자까지 나타나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다니 정말 못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는 나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 정체 모를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지금까지는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정말 천하 절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했다. 투명하다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뽀얀 피부, 그리고 너무나 맑은, 그리고 무엇이라 딱 표현할 수 없는 색의 눈, 게다가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신비하고 고귀한 분위기. 물론, 워낙 겉 외모에서 출중한 일행들이랑 같이 다니다보니 그리 큰 감흥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 여자가 왜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루-아리네스-유-릴리안-파릴리스 님. 그 분은 숲의 식구들이 아닌 플라타니오신의 최고 사제님이세요. 그런 행동은 무례인 것 같습니다만."
이자벨은 꽤 긴 이름을 부르며 여자를 향해 말을 했다. 이자벨의 어투를 볼 때, 최소한 이자벨 보다는 높은 신분의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그런 여자에게도 할말을 다하는 이자벨, 당당한 여인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긴, 그녀 역시 엘프임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붙어 있는 이 여자는 이자벨의 말을 일절 무시하고 여전히 내 볼에 손을 대고 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눈길. 쩝. 이 옷을 입고있는 상태에서 이 여자를 집어던지거나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지?
"가지말아요. 그 길을 더이상 걸어가지 말아요.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이여."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담스러운 눈길로 날 계속 쳐다보고 있던 그 여자는 갑자기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척이나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을 했다.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말. 이 여자가 정말 왜 이러지?
"여기 보세요. 아가씨! 당신이 어떤 신분의 존재이든, 지금 이렇게 하는 거는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심통이 난 듯 볼이 불룩하게 되어 있던, 클라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여자를 향해 조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휴, 그나마 클라리가 내 의사를 대신 표현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최근에는 거의 없어진 증상이지만, 여자가 이렇게 가까이 달라붙는 것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 만은 어쩔 수 없었다. 클라리의 말에 여자는 클라리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리고 또다시 물끄러미 이제는 클라리를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느낌이 드는 여자의 눈. 너무나 맑고, 또 너무나 순수하며, 고결하였다. 긴 이름을 가진 이 여자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고귀한 느낌을 모두 그녀의 눈이 대변하는 듯한 느낌. 정말 평범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엘프 포레스트에 사는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 하. 뭔가 생각이 날 듯 하면서도 그 대상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런 여자가 내게 정말 무슨 일인걸까?
"운명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군요. 길고도 짧은 인간사 역시 수많은 운명들의 얽매임. 그리고 수많은 운명들의 얽매임을 넘어 작고도 깊은 인연 역시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곳으로 돌아오다니, 그리고 저 역시 그 실타fp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그 분의 뜻이란...."
그리고 여자는 말을 마친 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슬퍼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로써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흐흠 그게 언제였지? 왠지 막연하게 아주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최근에 종종 느끼곤 하는 기분. 이 막연함은...정말 답답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영혼이 더 이상 상처받는 모습을 보기는 싫어요. 그리고 그 누군가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욱더."
그 여자는 클라리를 힐끔 쳐다본 다음 다시 나를 보며, 약간의 씁쓸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 그대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더 이상 상처받는 모습을 보기는 싫다라, 무슨 의미일까? 훗, 내 영혼의 상처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 자신은 이미 받을 만큼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더 이상의 상처를 입힐 만한 것이 있을까?
잠시간의 정적, 하지만 곧 말을 세우는 카밀의 목소리가 들리며 마차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라네티스 예하. 엘프들의 도시 아-예리실에."
조금 곤란함이 담긴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이자벨은 마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나를 향해 이야기를 했다. 엘프들의 도시?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인간들보다 월등한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엘프들에게 도시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해야할 것이었다. 옆에 붙어 있는 이 여자일로 신경을 쓰느라 창 밖의 풍경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같다. 이 정체 모를 이름 긴 여자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차 밖으로 내렸다. 엘프들의 숲을 하루만에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왕에 잘 거라면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운 일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난 엘프들의 도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번 여행을 하며 힘든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이면에서 평소에는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던 많은 도시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책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서 꽤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는 이 기대감 역시 여행을 겪으며 생겨난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여정 속의 작은 낙이라고 표현 해야 될까?
마차에 내리는 순간 내 눈 속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나무, 정말 거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있었다. 난 그 나무의 압도적인 크기에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멍하게 나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는 그 높이를 가늠해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그 굵기나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역시 엄청났다. 그리고 그 나무들 주위의 생명들로부터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다른 어떤 곳의 노랫소리와도 비교를 할 수 없는 무척 웅장하고 장엄하면서도 편안함을 안겨주는 신비한 노랫소리였다.
그런데 그 거대한 나무의 주위에 가득히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빛의 정령들이 가득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울창한 숲과 거대한 나무로 인해 햇빛이 거의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정령들이 내뿜는 빛으로 인해 그리 어두운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이 나무가 유하네리스 신이 이 세상에 심었다고 전해지며, 엘프들이 태어난다고 하는 바로 그 나무이겠지?
"라네티스 예하. 아-예리실에 도착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참동안 넋을 놓고 나무들을 쳐다보던 난 내 쪽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아까 먼저 떠났던 루이 경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분명 그 전에 본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익숙한 얼굴을 가진 키가 큰 엘프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루이 옆에 서 있는 그 엘프 역시 평범한 엘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금발의 엘프 아름답고 고귀한 외모, 하지만 그 것보다도 그 엘프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라네티스 예하. 처음 뵙겠습니다. 전 프리앙이라고 합니다."
뭐? 프리앙이라고? 헛, 어쩐지 외모가 눈에 익숙하다고 했더니, 바로 핀누나의 오빠이며 엘프들의 수장직을 맡고 있는 한마디로말해서 모든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1000년이 넘게 살아온 존재일 것이다. 난 왠지모를 반가움에 밝은 표정으로 답인사를 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엘프들의 수장. 프리앙님."
내 인사에 프리앙은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빙긋이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띄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핀 누나와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엘프가 바로 최강의 데스나이트라 불렸고 드래곤들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던 치아크레스를 물리친 그 엘프란 말이지?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며 동경하던 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지만, 정말, 만나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예하. 제가 엘프들의 수장이라 해도 많은 부분에서 미숙한 제가 그분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잠시 맡고 있는 직책. 예하께서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정중하며, 또한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서 특별한 감정을 잡아내기가 무척이나 힘든 말투였다.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들어내지 않는 타입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아무리 잠시 맡는 직책이라 할지라도 엘프들의 수장이라는 직책은 쉽게 무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종족의 대표라는 것은 그 것이 어떤 면이든 간에 특별하다는 의미이니까. 하다못해 오크들의 대표라고 할지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날 마을에 받아준 그 오크 장로를 생각해보면 우월한 종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인간들 중 대부분 보다 현명하고 또한 생각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엘프 전체의 수장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불청객인 제가 이 평화로운 숲에 혼돈을 안겨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유하네리스 신의 속성은 질서,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인 엘프들, 그리고 그 엘프들의 고향인 숲이야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질서의 한가운데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이방인.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아닐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 역시 정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곳으로 올 생각은 정말 없었다.
"아닙니다. 창조신 플라타니오님의 최고사제께서 이 곳에 들러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크나큰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조금 숙이는 프리앙, 그런데 그에게서는 친숙함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의 어떤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인사를하고 있는 동안 마차에서 내 일행들 역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신기한 숲의 모습에 감탄사를 터트리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소피는 유하네리스 성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하고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었다. 클라리 역시, 깊은 감회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숲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자벨과 티티, 아미가 내리고 마지막으로 그 정체모를 여자가 내리는데, 그 순간, 내 앞에서 있던 프리앙의 표정이 반가움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변했다. 후훔, 이자벨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의 감정이란 것 자체를 초월했다고 여겨지는 이 엘프에게서 이런 표정을 볼 수 있다니. 쩝.
"루-아릴리스님. 10년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희와 페어리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프리앙의 말에 그 여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페어리라고? 잠깐, 그래 생각이 났다. 엘프 포레스트에는 엘프들뿐만 아니라 페어리들 역시 살고 있다고 들은 것 같다. 페어리들 중에 저렇게 큰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다 저 정도의 고귀함을 뿜어낼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