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3장 엘프 포레스트(3)
푸른바람 BlueWind·2003. 5. 3. PM 6:20:26·조회 2055·추천 84
에피소드 83 엘프 포레스트-3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들 중 한 분. 모든 정령들의 어머니, 페어리들의 여왕."
페어리 퀸, 그래 바로 그 것이었다. 엘프 포레스트에서 살며,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소지한 존재. 바로 그녀였다. 난 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난 순간 내게 몰려오는 당황스러움이란 감정을 도저히 어떻게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클라리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 이상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네, 맞아요. 그런 호칭으로도 불리곤 하지요. 리안."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내 곁으로 걸어와서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씁쓸한 감정이 담긴 듯한 그녀의 목소리. 왠지 그녀의 말속에서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말속에 섞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정령들의 어머니시여. 제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한 것 같네요."
난 그녀를 보며 조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을 보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뭐, 페어리 퀸인 것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솔직히 그 상황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더 신기한 것이었다. 그 것 말고는 내가 그다지 그리 섭섭하게 한 일은 없다고 보는데 말이지.
"역시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요? 리안. 그렇죠.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영혼은 같을지라도 기억과 현실사이의 시간의 차이가 너무나 긴 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가 보군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는 그녀,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한들 내가 뭐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리안이란 칭호부터 그녀의 말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지만 또한 모든 것이 낯선 이 상황. 두 감정 사이의 이 괴리감은 순간 내가 현기증이 들게 만들었다. 요즘 들어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증상이 생겨나곤 했다. 순간적이었지만 꼭 체력과 마나를 바닥끝까지 쏟아 부은 다음의 느낌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주인님아 괜찮은 거야?"
약간 휘청거리는 내 몸을 클라리가 급히 부축을하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난 큰 숨을 몇 번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몸을 바로 세웠다. 마음 같아서라면 이대로 조금 더 클라리에게 기대서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또한 지금의 내 현실이었다. 그리고 클라리에게 작게 답을 해주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하지만 내 대답에도 클라리는 여전히 내 팔을 잡고 걱정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 팔을 잡고 있는 클라리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 그 익숙한 따스함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여행을 계속 했더니, 조금 몸이 피곤한 것 같아요.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한데, 저 조금 쉴만한 장소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걱정이 담긴 눈으로 날보고 있던, 프리앙과 루이를 향해 난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였다. 침대에 몸을 누인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하. 폐가 되다니요. 긴 여정에 피곤하셨을 텐데, 저희들이 미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루이는 내 말에 급히 손을 저으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유하네리스 성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가는 루이의 뒤를 따라 우리 일행들은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런데 페어리 퀸, 그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거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분의 행적은 세상 누구도 쉽게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도 예하께 나쁜 감정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예하께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루이의 옆에서 별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프리앙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 분이란, 페어리퀸을 뜻하는 것인가? 뭐, 솔직히 나 역시 그리 그녀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일부러 날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그런 소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리고 인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존재였으므로, 내가 섣불리 판단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마 1년전의 나였다면 그녀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겠지만,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건데 그냥 무심히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무척이나 중요한 비밀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작은 실마리도 잡기가 힘들었다.
빛에 둘러싸인 나무에 서서히 다가섬에 따라, 성수의 웅장한 모습이 더욱더 자세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있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던 신비로운 모습까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엘프들의 도시, 아-예리실의 본 모습.
"와~! 나무 위에 도시가 있어!"
클라리의 작은 탄성, 핀 누나의 지식을 이어 받았기에 클라리 역시 이 곳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까닭인지 클라리는 신기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습은 정말 신비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아미까지도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그 숲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조심을하는 까닭인지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카밀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수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가지들, 하지만 그 가지 하나하나의 넓이는 사륜마차 여섯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제국의 대로 세 개 정도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넓은 가지들 위로 엘프들의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잔 나뭇가지들과 흙을 이용해 지어놓은 엘프들의 집들, 외벽의 색은 분명 나무의 색과는 다른 밝은 아이보리 계통의 색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원래 나무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풍겨 나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의 작은 창틀 하나하나 마다 깃들여 있는 정성들인 작품들은 인간들의 세계로 들고 온다면, 모두 일급 예술품의 가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엘프들의 작품이란 말이지?
거의 황제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디세느 다리가 엘프와 드워프들의 작품으로 오해를 받는 것도 이해가 갈만했다. 특히, 이렇게 직접 엘프들의 건축물을 눈으로 살펴보니, 그런 오해가 생겨나는 것도 새삼 이해가 갔다. 물론, 이전에 마을에 살 때에도 엘프들과 같이 살곤 했었지만, 이런 대규모의 건축물을 볼 기회는 없었다. 엘프들의 성격상 굳이 급히 자신들이 살 건물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우리 마을에 산지 십 년도 안된 엘프들의 집을 보려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조명처럼 은은하게 집들을 감싸는 빛의 정령들, 엄청 밝은 빛을 뿜어냄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시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빛들 사이를 뚫고 가지들마다 이어진 사다리와 다리들, 하지만 인간들처럼 나무들을 일부러 절단하거나 다듬은 흔적 없이 살아있는 가지들과 넝쿨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인간들이었다면 저 다리로 통행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겠지만, 나무에 익숙한 엘프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가 만년 정도 된 도시입니다. 예하."
프리앙은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만년, 엘프들의 수명인 1000년을 고려해보더라도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물며 100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로써는 쉽게 상상하기조차 힘든 시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순수하게 인간들의 손에의해 지어진 인간들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포세트립톤이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리투니아가 처음 지어진지도 4천년정도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인간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역시 아틸란티스 제국이 세워진 3000년전 이후였으므로 수만년 엘프들의 역사와 비교를 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
거대한 나무 가지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워진 수많은 엘프들의 집들 언뜻 보기에도 건물의 숫자가 만여개 정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수가 많다고 볼 수 없는 엘프들의 집이 만여개가 정도 된다는 것. 한집당 5명씩만으로도 계산해도 5만명, 정말 엄청난 숫자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인간들에게 알려진 엘프들이 가장 많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은 포세트립톤의 엘프 길드를 중심으로한 엘프족 특별 거주구역인데, 그 곳에 거주하는 엘프들의 숫자는 이천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엘프들에게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의 군주가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그렇게 엘프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내 추측이었지만 황제가 엘프들을 싸고도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중의 하나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지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내 짧은 탄성에 프리앙은 살며시 자랑스러움이 담긴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거의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다른 존재의 감정 변화에 만큼은 민감한 나였으므로 그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나무의 아랫부분까지 우리는 걸어왔지만 도저히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엘프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사다리나 나무 줄기 몇 개가 있었지만, 나와 클라리나 아미가 이용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엘프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 알아서 플라이 마법을 써서 올라가라는 소린가? 하지만 그래도 최고사제 체면이 있지. 쩝.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예하."
후훔, 꼭 내 생각을 꽤 뚫어본 듯 프리앙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듯한 의미로 내게 말을 했다. 그리고 곧 그는 뭔가 짧게 엘프어로 천천히 무엇인가 주문을 읊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마법 캐스팅과는 또 다른 느낌. 물론, 마법이라는 것 자체, 그 시전자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주문이 똑같을 필요는 없었지만, 인간들의 언어로만 마법을 쓰는 것을 들어온 나로써는 어쨌든 무척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핀 누나 역시 인간들의 주문어로 캐스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문이 끝이 난 후, 우리 발 밑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둥근 원반이 하나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반이 서서히 떠오름과 동시에 우리 일행들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나무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법 응용의 극치, 마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였음에도 플라이 마법을 모두에게 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여러 가지 마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한 멋진 마법이었다. 1000년의 삶이란 것,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마법사용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과한 욕심일지는 몰라도 왠지 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집들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원반이 서서히 위로 올라감에 따라 나무 가지마다 지어져있는 수많은 엘프들의 건축물들을 보며, 난 프리앙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제가 태어나기도 수 천년 전, 대륙 대부분이 숲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에는 이 정도로 많은 숫자의 엘프들이 이 곳에 머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숲은 넓은 들판으로 바뀌게 되었고, 엘프들에 대한 인간의 핍박 역시 심해지자, 살 곳이 마땅치 않게 된 엘프들이 이 곳으로 모이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프리앙은 심각한 내용과는 달리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역시, 그런 것이었나? 내가 알고 있기론 엘프들 역시 집단으로 거주를 하기는 하지만 수만명이 한 곳에 산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숫자가 많다고 해도 천여명 정도. 번잡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엘프들의 속성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기로도 실제 유하네리스 성수 근처에는 어린 엘프들과 그들을 돌보는 여자 엘프들 정도만 머물고 있고, 남자 성인 엘프들은 거의 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으로 많은 남자 엘프들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프리앙의 말로 유추해 보건데 내가 알고 있던 그 정보가 틀렸다기 보다는 예전의 유하네리스 성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세레니안느 폐하께서 저희와 공존을 선택하셨고, 저희 역시 그 분의 선택에 감사드리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하는 프리앙, 난 프리앙의 말에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보면 황제의 선택은 정말 현명한 것이었다. 만약 계속 해서 엘프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면, 아무리 평화를 선호하는 엘프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엘프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결국 불가피한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엘프들의 전면전, 설혹 누군가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승자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틀림이 없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들 중 한 분. 모든 정령들의 어머니, 페어리들의 여왕."
페어리 퀸, 그래 바로 그 것이었다. 엘프 포레스트에서 살며,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소지한 존재. 바로 그녀였다. 난 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난 순간 내게 몰려오는 당황스러움이란 감정을 도저히 어떻게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클라리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 이상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네, 맞아요. 그런 호칭으로도 불리곤 하지요. 리안."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내 곁으로 걸어와서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씁쓸한 감정이 담긴 듯한 그녀의 목소리. 왠지 그녀의 말속에서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말속에 섞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정령들의 어머니시여. 제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한 것 같네요."
난 그녀를 보며 조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을 보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뭐, 페어리 퀸인 것을 못 알아보긴 했지만, 솔직히 그 상황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더 신기한 것이었다. 그 것 말고는 내가 그다지 그리 섭섭하게 한 일은 없다고 보는데 말이지.
"역시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요? 리안. 그렇죠.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영혼은 같을지라도 기억과 현실사이의 시간의 차이가 너무나 긴 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가 보군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는 그녀,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한들 내가 뭐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리안이란 칭호부터 그녀의 말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지만 또한 모든 것이 낯선 이 상황. 두 감정 사이의 이 괴리감은 순간 내가 현기증이 들게 만들었다. 요즘 들어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증상이 생겨나곤 했다. 순간적이었지만 꼭 체력과 마나를 바닥끝까지 쏟아 부은 다음의 느낌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주인님아 괜찮은 거야?"
약간 휘청거리는 내 몸을 클라리가 급히 부축을하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난 큰 숨을 몇 번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몸을 바로 세웠다. 마음 같아서라면 이대로 조금 더 클라리에게 기대서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또한 지금의 내 현실이었다. 그리고 클라리에게 작게 답을 해주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하지만 내 대답에도 클라리는 여전히 내 팔을 잡고 걱정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 팔을 잡고 있는 클라리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 그 익숙한 따스함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여행을 계속 했더니, 조금 몸이 피곤한 것 같아요.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한데, 저 조금 쉴만한 장소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걱정이 담긴 눈으로 날보고 있던, 프리앙과 루이를 향해 난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였다. 침대에 몸을 누인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하. 폐가 되다니요. 긴 여정에 피곤하셨을 텐데, 저희들이 미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루이는 내 말에 급히 손을 저으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유하네리스 성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가는 루이의 뒤를 따라 우리 일행들은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런데 페어리 퀸, 그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거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분의 행적은 세상 누구도 쉽게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도 예하께 나쁜 감정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예하께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루이의 옆에서 별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프리앙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 분이란, 페어리퀸을 뜻하는 것인가? 뭐, 솔직히 나 역시 그리 그녀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일부러 날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그런 소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리고 인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존재였으므로, 내가 섣불리 판단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마 1년전의 나였다면 그녀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겠지만,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건데 그냥 무심히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무척이나 중요한 비밀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작은 실마리도 잡기가 힘들었다.
빛에 둘러싸인 나무에 서서히 다가섬에 따라, 성수의 웅장한 모습이 더욱더 자세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있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던 신비로운 모습까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엘프들의 도시, 아-예리실의 본 모습.
"와~! 나무 위에 도시가 있어!"
클라리의 작은 탄성, 핀 누나의 지식을 이어 받았기에 클라리 역시 이 곳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까닭인지 클라리는 신기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습은 정말 신비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아미까지도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그 숲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조심을하는 까닭인지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카밀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수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가지들, 하지만 그 가지 하나하나의 넓이는 사륜마차 여섯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제국의 대로 세 개 정도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넓은 가지들 위로 엘프들의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잔 나뭇가지들과 흙을 이용해 지어놓은 엘프들의 집들, 외벽의 색은 분명 나무의 색과는 다른 밝은 아이보리 계통의 색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원래 나무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풍겨 나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의 작은 창틀 하나하나 마다 깃들여 있는 정성들인 작품들은 인간들의 세계로 들고 온다면, 모두 일급 예술품의 가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엘프들의 작품이란 말이지?
거의 황제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디세느 다리가 엘프와 드워프들의 작품으로 오해를 받는 것도 이해가 갈만했다. 특히, 이렇게 직접 엘프들의 건축물을 눈으로 살펴보니, 그런 오해가 생겨나는 것도 새삼 이해가 갔다. 물론, 이전에 마을에 살 때에도 엘프들과 같이 살곤 했었지만, 이런 대규모의 건축물을 볼 기회는 없었다. 엘프들의 성격상 굳이 급히 자신들이 살 건물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우리 마을에 산지 십 년도 안된 엘프들의 집을 보려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조명처럼 은은하게 집들을 감싸는 빛의 정령들, 엄청 밝은 빛을 뿜어냄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시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빛들 사이를 뚫고 가지들마다 이어진 사다리와 다리들, 하지만 인간들처럼 나무들을 일부러 절단하거나 다듬은 흔적 없이 살아있는 가지들과 넝쿨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인간들이었다면 저 다리로 통행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겠지만, 나무에 익숙한 엘프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가 만년 정도 된 도시입니다. 예하."
프리앙은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만년, 엘프들의 수명인 1000년을 고려해보더라도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물며 100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로써는 쉽게 상상하기조차 힘든 시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순수하게 인간들의 손에의해 지어진 인간들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포세트립톤이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리투니아가 처음 지어진지도 4천년정도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인간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역시 아틸란티스 제국이 세워진 3000년전 이후였으므로 수만년 엘프들의 역사와 비교를 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
거대한 나무 가지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워진 수많은 엘프들의 집들 언뜻 보기에도 건물의 숫자가 만여개 정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수가 많다고 볼 수 없는 엘프들의 집이 만여개가 정도 된다는 것. 한집당 5명씩만으로도 계산해도 5만명, 정말 엄청난 숫자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인간들에게 알려진 엘프들이 가장 많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은 포세트립톤의 엘프 길드를 중심으로한 엘프족 특별 거주구역인데, 그 곳에 거주하는 엘프들의 숫자는 이천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엘프들에게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의 군주가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그렇게 엘프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내 추측이었지만 황제가 엘프들을 싸고도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중의 하나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지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내 짧은 탄성에 프리앙은 살며시 자랑스러움이 담긴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거의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다른 존재의 감정 변화에 만큼은 민감한 나였으므로 그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나무의 아랫부분까지 우리는 걸어왔지만 도저히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엘프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사다리나 나무 줄기 몇 개가 있었지만, 나와 클라리나 아미가 이용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엘프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 알아서 플라이 마법을 써서 올라가라는 소린가? 하지만 그래도 최고사제 체면이 있지. 쩝.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예하."
후훔, 꼭 내 생각을 꽤 뚫어본 듯 프리앙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듯한 의미로 내게 말을 했다. 그리고 곧 그는 뭔가 짧게 엘프어로 천천히 무엇인가 주문을 읊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마법 캐스팅과는 또 다른 느낌. 물론, 마법이라는 것 자체, 그 시전자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주문이 똑같을 필요는 없었지만, 인간들의 언어로만 마법을 쓰는 것을 들어온 나로써는 어쨌든 무척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핀 누나 역시 인간들의 주문어로 캐스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문이 끝이 난 후, 우리 발 밑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둥근 원반이 하나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반이 서서히 떠오름과 동시에 우리 일행들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나무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법 응용의 극치, 마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였음에도 플라이 마법을 모두에게 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여러 가지 마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한 멋진 마법이었다. 1000년의 삶이란 것,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마법사용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과한 욕심일지는 몰라도 왠지 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집들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원반이 서서히 위로 올라감에 따라 나무 가지마다 지어져있는 수많은 엘프들의 건축물들을 보며, 난 프리앙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제가 태어나기도 수 천년 전, 대륙 대부분이 숲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에는 이 정도로 많은 숫자의 엘프들이 이 곳에 머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숲은 넓은 들판으로 바뀌게 되었고, 엘프들에 대한 인간의 핍박 역시 심해지자, 살 곳이 마땅치 않게 된 엘프들이 이 곳으로 모이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프리앙은 심각한 내용과는 달리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역시, 그런 것이었나? 내가 알고 있기론 엘프들 역시 집단으로 거주를 하기는 하지만 수만명이 한 곳에 산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숫자가 많다고 해도 천여명 정도. 번잡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엘프들의 속성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기로도 실제 유하네리스 성수 근처에는 어린 엘프들과 그들을 돌보는 여자 엘프들 정도만 머물고 있고, 남자 성인 엘프들은 거의 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으로 많은 남자 엘프들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프리앙의 말로 유추해 보건데 내가 알고 있던 그 정보가 틀렸다기 보다는 예전의 유하네리스 성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세레니안느 폐하께서 저희와 공존을 선택하셨고, 저희 역시 그 분의 선택에 감사드리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하는 프리앙, 난 프리앙의 말에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보면 황제의 선택은 정말 현명한 것이었다. 만약 계속 해서 엘프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면, 아무리 평화를 선호하는 엘프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엘프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결국 불가피한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엘프들의 전면전, 설혹 누군가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승자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틀림이 없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