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3장 엘프 포레스트(4)

푸른바람 BlueWind·2003. 5. 18. PM 8:22:38·조회 2329·추천 74
에피소드 84 엘프 포레스트-4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원반이 올라가자 우리 주위에 빛의 정령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빛의 정령이라, 세인트 녀석이 이 곳에 있었으면 또 불만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했었을지도 모르는데, 훗. 정작 볼 때는 그렇게 싫더니 클라우 녀석과는 달리 황태자 세인트는 가끔씩 좋은 의미로 생각이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왠지 녀석을 생각할 때는 나쁜 기억보다는 재미있었던 일들이 먼저 떠오르곤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세인트를 향한 적대감 같은 것은 솔직히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뭐,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꼭 엘프들을 아주 작게 축소시켜 놓은 듯한 빛의 정령들의 모습, 잠깐? 내게 정령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가? 난 뜻밖의 사실에 눈을 새삼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빛의 정령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된 일이지? 물론, 이전에도 정령력을 희미하게 느낀 적이 있긴 있었지만 이렇게 그 모습이 보인적은 한번도 없었다. 헛.

"플라타니오 신께서는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을 만드신 분. 세상 만물의 어떤 것에도 그분의 의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설혹 다른 신이 창조한 존재라 할지라도."

이번에도 꼭 내 마음을 읽은 듯, 꼭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답을 해주는 프리앙, 신비로운 느낌의 이 엘프들의 수장 앞에서는 내 마음을 숨긴들 소용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것이 내게는 더 편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상한 존재가 내 마음속을 하나하나 꿰뚫어 본다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프리앙이란 엘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일행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소피는 고향에 도착한 존재들 특유의 그리움과 반가움, 그리고 편안함 같은 것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설혹 내가 말을 걸더라도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소피의 옆에 있는 티티는 조금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프리앙을 비롯한 엘프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혼혈일지라도 그녀는 다크엘프의 피가 섞인 존재, 평범한 엘프들에게 배척받는 존재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까지 만난 엘프들은 그다지 그녀를 멀리한다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하이엘프이며 엘프들의 수장인 프리앙 역시 그녀를 볼 때, 다른 엘프들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따스함이 담긴 눈길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리 쪽을 살펴보니, 평소의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조용히 성수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눈빛으로,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내 착각일지는 몰라도 어떻게 보면 이자벨이나 소피 이상의 그리움과 같은 것이 담겨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클라리와 이 숲 사이에 클라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순간 뭔가 떠오르는 듯 했지만, 왠지 잘 생각이 나지 았았다. 쩝.

그 옆의 아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숲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저 존재에게 자신의 엄마가 나타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진 특별히 표정이 변할 일이 있을까?

한동안 계속 나무위로 올라가던 원반이 멈춰섰다. 우리 앞에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나뭇가지, 뭐, 다른 나뭇가지들도 평범한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큰 편이었지만 지금 이 가지는 꼭 땅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에 게다가 대개의 둥근 나무 가지와는 달리 다른 존재들이 걸어다니기 쉽도록 윗부분이 아주 평평하게 되어있었다.

"이쪽으로."

그 곳으로 걸어가는 프리앙과 루이의 뒤를 따라 나 역시 조심스럽게 나무 위에 올라섰다. 가지 위에 올라서자 내 눈에 들어온 신기한 모양의 건물, 인간들의 건물을 기준으로 볼 때, 약 오층 정도의 규모에다가 그 넓이 역시 상당했다. 하지만 워낙 나무 가지의 넓이가 넓다보니, 그런 건물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인간들의 식으로 말하면 회의장 겸, 손님들 숙소라고 표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대게의 경우 나무 아래의 공터에서 모여 회의를 하지만 장로급 이상이 모이는 회의가 열릴 때는 이 곳에서 회의를 열곤 합니다."

프리앙은 천천히, 하지만 아주 자세하게 말을 해주었다. 말이 회의장 겸 숙소지 프리앙의 말을 들어보건데 지금 건물의 중요성은 인간들의 왕궁에 전혀 뒤쳐지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했다. 그런데 상당한 크기의 건물이었음에도 주위의 나무들과 아주 잘 조화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엘프들의 속성이기도 하며 엘프 건축물들의 특성이라고도 해야할까? 산을 허물고 땅을 자기들에게 편하게 다듬은 다음에 건물을 짓는 인간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무 위에 이렇게 큰 건물을 지으면 나무에 무리가 가지 않나요?"

아무리 자연과 조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규모라면 솔직히 나무에 무리가 전혀가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프리앙을 보며 질문을 했다.

"예,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지을 때 가능한 가벼운 재료를 사용했고 정령력과 마법을 동원해서 나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라? 하지만 그렇게 말을하는 프리앙의 표정이 그리 편하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뭐, 그들 역시 굳이 나무에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았으니. 그리고 이 정도 크기의 거대한 나무에 약간의 짐이 얹혀진들 괜찮겠지. 내가 괜한 소리를 해서 저 고귀한 존재의 마음만 편치 않게 만든 것 같았다.

"그럼 저희들이 오늘 이 곳에서 묵게 되나요? 외삼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클라리. 이 곳에 도착한 이후로, 아니 엘프 포레스트에 진입한 이후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던 클라리였지만, 역시 자는게 가장 큰 문제긴 문제였나 보군. 하긴 여행을 시작할 무렵부터 고급여관만 찾아다니던 클라리였으므로 그럴만도 했다. 그리고 외삼촌이라, 그래 그러고 보니 핀누나의 오빠이므로 클라리에게 외삼촌이 되는 것이겠군. 물론, 그 대상이 인간이었다면 또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특히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엘프의 세계에서 핀누나의 또 다른 영혼이라고도 볼 수 있는 클라리가 프리앙에게 조카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단다. 클라리. 아-예리실에서 잠을 자는 건 처음이지?"

자상함이 느껴지는 프리앙의 목소리. 엘프들 역시 가족에게는 다정하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군. 하긴 프리앙와 핀 누나 일족은 평범한 엘프가 아닌 가족간의 유대가 가장 강하다는 하이엘프 일족이니까 더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외삼촌.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아-예리실에 올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클라리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한체 프리앙에게 이야기를 했다. 흐흠, 클라리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어떤 것이 클라리의 본 모습인지 모르겠다. 리아인이나 아렐리아, 가이우스 등등의 이야기로 들어볼 때, 예전에 티베리우스 단장, 가족과 함께 지낼 때의 성격 역시 나와 지낼 때와는 달랐던 것 같았다.

"예하.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제 조카를 잘 돌봐주신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클라리와의 말이 끝난 뒤, 프리앙은 갑자기 그 사실을 떠올린 듯 새삼 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흐흠, 굳이 감사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동안 클라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해보건데, 이 정도의 감사는 충분히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프리앙의 인사에 싱긋웃었다. 그리고 솔직히 프리앙 역시 내 정체를 알고 있는데 여자목소리로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엘프들의 사고는 인간들과 다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왠지 그랬으니까.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역시 이색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예전에 사우스 트립톤에서 엘프 길드의 건물안으로 들어가 본 경험이 있었지만 지금의 이 모습은 그 때의 그 것과도 또 다른 모습이었다. 건물안의 모습은 화려하진 않지만 섬세함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인위적으로 꺾지 않은 자연스럽게 핀 꽃들로 가득 꾸며진 건물 내부, 그리고 그 꽃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작은 장식들은 정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올 정도였다.

회의를 할 때, 쓰려는 용도인지 1층은 꽤 넓은 홀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물의 곳곳에서 빛의 정령들이 날아다니며 건물 안을 밝게 밝혀주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하지만 꽤 넓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다른 엘프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흐흠, 프리앙의 말 그대로 손님들의 숙소와 회의 때만 사용하는 용도의 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앙의 뒤를 따라 건물의 윗쪽으로 몇층을 더 올라가니, 꼭 인간들의 여관의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되어 있는 층이 나왔다. 하지만 오늘 하루 계속 이질적인 형태의 건물과 풍경을 보아왔기 때문인지, 익숙하다고 볼 수도 있는 이 형태에서 왠지 어색한 느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엘프 포레스트에 오는 손님들 중에서는 인간이 제일 많기 때문에 숙소를 인간들의 식으로 지었습니다."

인간들이 많다라,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이 정도의 규모로 숙소까지 꾸밀 정도라면 엘프 포레스트에 엘프들의 손님으로 오는 인간들이 드물지 않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프들에게 손님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라면 그 만큼 엘프들의 삶을 존중하는 존재들일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이 곳에 대한 비밀이 지금까지 계속 지켜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앙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그 중에서 제일 큰 방으로 들어갔다. 방 역시 벽난로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방 풍경과 전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벽난로가 없는 것은 아마 사고로 불이나서 성수가 타게 된다거나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 편치 않는 잠자리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중에 식사할 때,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일행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프리앙이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을 했다. 헛, 그럼 우리 방을 안내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왔던 거야? 그 것도 엘프들의 수장이?

"손님일 뿐인 저희를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프리앙님."

엘프들이라 인간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긴 다르다고 하더라도 엘프들의 수장이라면 존중받아야할 위치, 엘프 포레스트를 지나가고 신성한 유하네리스 성수 위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위치인데, 세상에. 왠지모를 미안함에 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프리앙은 조금 미소를 띄운 채 고개를 저으며 답을 했다.

"아닙니다. 예하. 그리고 혹,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바람의 정령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프리앙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일층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뒤에 있던 루이와 이자벨 역시 내게 짧게 인사를 한 후, 프리앙의 뒤를 따라 급히 걸음을 옮겼다. 난 그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직후 그대로 침대를 향해 돌진을 해서 뛰어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눞이며 느껴지는 이 피곤함, 육체적 피곤함보다는 심적인 피곤함이 더욱더 큰 것 같았다. 하긴, 낮에 한번 기절할 뻔까지 했었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무엇일까? 이 떠오를 듯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은 역시.....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