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써비스용 소설 ㅡㅡ;;(제국의 보석 80년후 배경)
푸른바람 BlueWind·2003. 8. 30. PM 6:21:28·조회 1989·추천 80
제목은 제독일지 제 차기작으로 한동안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제국의 보석도 지필을 못하고 있는 상태인 까닭에
엄두조차 못내고 있지만 1화 정도 분량은 써둔 상태입니다.
예전에 써뒀던 건데...^^;;
오랜 연중에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까닭으로
배경은 제국의 보석 80년 후^^;;
주인공은 리아인 슈타이튼의 증손자랍니다^^;;
1장 남해의 푸른 고래 (1)
제국력 118년 10월 7일
풍향: 남동
해류: 남서
날씨: 맑음
위치: N 28 E10 리투니아 근해
남항(주: 리투니아항)에서 물자 보급완료 후 출항. 목적지 북항(주: 포세트립톤항).
출항 함선 푸른고래호, 서팬드호, 흑사자호, 세리호, 아인트호.
비축 물자 물 47일, 식량 52일.
"크아~! 남항, 언제나 봐도 아름답다구나! 이 아름다운 곳을 떠나야 하다니! 바닷사나이의 뜨거운 가슴이 아파오는구나."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민 태양은 예술과 자유의 도시 리투니아에서 겨울 밤의 매서운 추위를 몰아내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도시, 그 햇빛의 따스함은 아직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에 활기를 가득 안겨주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상인들의 도시란 리투니아의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부둣가 근처에는 배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사람들과 상인들이 가득 붐비고 있었다.
그 활기찬 리투니아시가 품고 있는, 하지만 리투니아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꼭 호수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파도하나 없이 잔잔한 남항을 다섯척의 함선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로 제국 남부 해군 제 1함대 소속 스무척의 함선중 제독 직속 다섯척의 함선, 남해의 해적들 중 이 함대를 모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이제는 그 사실을 기억할 해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전적 54전 54승, 12년간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함대였다.
"남항이 아니라 라밀리스 때문이 아닌가?"
"도대체 누구얏! 앗 제독님!"
푸른고래호 갑판장 힌델은 뒤에서 들러오는 소리에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보이는 사람, 힌델 보다 손 한뼘 정도 더 큰 키와 균형잡힌 몸매, 그리고 짙은 검은색 머리와 아침햇살에 빛나는 바다보다 더 맑은, 그러나 강한 의지가 깃든 푸른색의 눈을 가진 존재, 12년간 푸른고래호의 선장으로 지냈고, 8년간 제 1함대의 제독을 지낸 카를 슈타이튼이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짓궂은 선원 녀석들의 장난이라고 생각을하고 뒤를 돌아본 힌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황해 있는 힌델을보며 제독은 평소의 그 변화 없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체 그의 입에서 다시 말이 흘러나왔다.
"이 배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저 밑의 노예들 말고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갑판장. 아니, 지금쯤이면 노예장이 떠들고있는 것을 노예들도 들었는지 모르겠군."
제독의 말에 힌델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제독의 귀에까지 이 사실이 들어가게 되었을까? 제독이란 존재가 아무리 선원들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런 사적인 이야기는 제독의 귀에 까지 전해지기가 힘든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무리 다른 제독들에 비해 선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어떻게 보면 편한 제독이라고 하더라도 제독은 제독었던 까닭이었다. 아니, 제독과 오래 지낸 사람들 일수록 카를 제독을 더 따르게 되지만, 또 더욱더 제독을 대할 때 어려워 하게 되게 만드는 존제 역시 제독이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골탕먹이기 위해 전하지 않는 이상 제독이 이 사실을 저절로 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도대체 누가? 선원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민을 하던 힌델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며 피식거리고 있는 존재를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배에서 제독 무서운줄 모르는 유일한 존재, 배에 승선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파수병 베르니크였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네. 갑판장, 그러고 보니 갑판장도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군. 이거 갑판장 때문이라도 종종 남항에 들려야 되겠는걸."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힌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힌델보다 한살 많은 제독 역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까닭에 제독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힌델에겐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제독의 시선을 피해 힌델은 이 사실을 제독에게 알린 유력한 용의자 베르니크를 보며 이를 갈았다. 베르니크 저 녀석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힌델으로써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마음을 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길, 저 녀석은 사사건건 다 일러바치는군. 두고보자 베르니크.'
"아무튼 대단하네, 힌델, 그 여걸 적상어 라밀리스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제독은 얼굴에 미소를 띄운체 힌델의 등을 몇 번 두드려준 다음 함장실을 향해 돌아갔다. 힌델읜 제독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체 제독이 함장실로 돌아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제독이 함장실 안으로 들어선 뒤 문을 닫는 순간, 힌델은 재빠르게 갑판 위를 달려 베르니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힌델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베르니크가 아니었다. 베르니크는 그런 힌델을 피해 원숭이에 뒤지지 않는 실력으로 빠르게 돛대 위 파수대쪽으로 줄사다리를 타고 급히 올라갔다.
"베르니크, 이 녀석! 어서 내려오지 못해!"
"갑판장님 같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내려 가겠어요?"
어느세 파수대 가까이까지 올라가 있는 베르니크를 보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까닭에 베르니크의 뒤를 따라 올라가지 못하는 힌델로써는 밑에서 베르니크를 향해 소리만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강인한 빨간머리 아줌마~
그녀는 살벌한 한마리 적상어~"
밑에서 방방 뛰고 있는 힌델을 보며, 이제 약간의 여유가 생긴 베르니크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세인트 1세의 러브스토리'란 제목의 노래를 힌델의 애인인 적상어 라밀리스에게 맞춰 변형시켜 부르고 있었다. 그런 베르니크를 보며 화를 참지 못한 힌델은 애꿎은 돛대만 주먹으로 쥐어박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힌델을 보며 조타수 로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백발의 1등 항해사 한두르가 이야기를 멈추고 힌델을 향해 걸어왔다.
"어이, 힌델. 그 정도에서 그만하는게 화를 멈추는게 어떤가? 라밀리스도 이런 자네 모습을 보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만."
"한두르, 한두르님까지 그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얼굴이 온통 잘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되도록 흥분한 힌델의 뒤로 다가온, 1등 항해사 한두르는 힌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힌델은 이제 베르니크에게 풀지못한 스트레스의 화살을 한두르에게 돌렸다. 그런 힌델을 보며 한두르는 화보다는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언제나 이런식으로 힌델 자신에 비해 열살이나 어린 베르니크에게 놀아나는 단순한 힌델이었기에.
"아아, 농담일세. 힌델,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이거 출항하자 갑판장이 흥분을 해서야, 뱃길이 편안할 수 있겠나? 그만 화풀게."
한두르의 말을 들은 힌델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화를 내던 것을 멈추었다. 원래 뱃사람들은 속설에 대해 다른이들에 비해 민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힌델 역시 예외일 수 없었으므로, 자신의 행동이 계속되어봤자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분노를 억누르며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흘끔 위의 베르니크를 본 힌델이 다시 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한두르는 베르니크에게 어서 파수대 위로 올라가서 힌델의 시선 밖으로 사라지라고 손짓을 했다. 계속 힌델의 화를 돋구고 있던 베르니크는 한두르의 손짓에 어깨를 으쓱 한 다음순순히 파수대 위로 올라가 버렸다. 힌델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한두르는 힌델의 귀에다 대고 작게 말을 했다.
"내가 리투니아에서 좋은 술을 구했는데, 밤에 같이 한잔 하세."
"정, 정말입니까? 한두르님!"
그 말을 들은 힌델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싱글거리며 한두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 힌델이었다. 나이가 30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말썽꾸러기 아들 같은 힌델의 모습을 보며 한두르는 빙긋이 웃었다.
"제독님, 올해는 폐하의 생일 기념 연회에 참가 하시려고 하십니까?"
선장실 테이블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던 제독은 말소리에 쓰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뒤 제독은 고개를 들어 그 말소리의 당사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다지 크지 않은 선장실 벽의 책장에는 거의 백여권에 가까운 숫자의 책들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수많은 종이쪽지들은 가끔씩 배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군함의 함장실이라기보다는 학자의 방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아버님께서 올해는 꼭 참석해라고 하시더군. 루넬경, 자네도 같이 참석하지 않겠나?"
무엇인가 귀찮은 것을 떠맡은 듯한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을 한체 제독은 루넬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아, 아닙니다. 제독님, 전 그런 곳에 익숙치가 않아서."
제독의 앞에 서있던 기사, 루넬 비아니스는 제독의 말에 정색을 하며 온몸에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였다. 붉은색의 깔끔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루넬은 기사임에도 별다른 방어 장비 없이 허리에 레이피어하나만 차고 있을 뿐이었다.
"루넬경, 자네 여자 공포증이 있다고 했었나? 기사라면 그런 연회에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지 않겠나? 이건 명령일세, 이번 연회는 자네도 같이가도록 하지."
루넬의 마지막 대답이 마음이 들지 않은 듯, 제독은 루넬을 향해 단정적인 말투로 말을 했다. 제독의 말을 들은 루넬은 명령이란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도 못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띄운체 어쩔줄을 몰라했다. 능력이나 가문등 여러가지면에서 제국의 촉망받는 인재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기사 루넬은 그 자신의 여자 공포증 때문에, 다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다른 기사들이 대부분 기피하는 해군 함선에 승선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루넬과 카를 제독은 공적인 관계로서는 제독과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의 관계였지만 사적으로 제독은 루넬의 외삼촌이었다. 제독의 누이 메리 슈타이튼, 아니 비아니스가 루넬의 어머니였으므로. 그런 연유로 제독은 루넬이 고작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으로 머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제독님, 지금 어떤 내용의 글을 쓰시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독의 말에 잠시 당황해서 서있었던 루넬은 다시 제독이 글을 쓰기 시작하자, 화제도 돌릴겸, 제독을 향해 질문을 했다. 되도록이면 방금 전의 그 약속에 대한 제독의 관심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이의 위치였다면 제독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해야 되겠지만, 제독과 루넬의 사이는 그 것 이상이었으므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루넬의 질문을 들은 제독은 이번에는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체 답을 했다.
"'해양학 입문'이란 책을 쓰고 있는 중이네. 꽤 흥미로운 분야지."
'해양학? 그런 분야도 있었나? 해양학이라면 바다에 대한 학문?'
루넬은 고개를 갸웃하며, 제독을 쳐다보았다. 기사 가문이었지만, 교양을 중시하는 비아니스 가문의 가풍 때문에 기사치고는 루넬 역시 꽤 지식이 풍부한 편이었다. 게다가 그의 백부인 마키아벨리 비아니스는 당대에 알아주는 역사학자였던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검술 못지않게 교육을 받아온 루넬이었지만 해양학이란 학문을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루넬은 제독이 쓰고 있는 글을 의문을 가득 담아 쳐다보았다. 그런 루넬의 시선을 느낀듯 제독은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체 루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마, 해양학이라고는 처음 들어봤을테지. 루넬경. 좋아. 그럼 한가지 질문을 하겠네. 피트 아일랜드와 포세트립톤 사이에서 해류가 약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한다면 해수면의 높이는 어느 쪽이 몇 m 더 높은지 대략적인 수치로 답을 해보게."
제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루넬은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해수면의 높이 차이를 어떻게 계산을 해란 말인지? 아니, 지금까지 바닷물이라면 다 같은 높이인줄 알고 있었던 루넬로써는 자신의 머릿속이 이 것 저 것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루넬이 답을 하지 못하자 잠시 후에 제독은 여전히 글을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포세트립톤쪽이 약 1.35m 더 높네.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계산하는 공식은 바로 전향력 곱하기 두 지점간의 거리 나누기 중력가속도이네만, 자네가 전향력과 중력가속도를 모른다고 해서 내가 설명을 할 의사는 없네.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게. 어쨌든 이런 것이 해양학이네. 이제 대충 해양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겠나?"
루넬은 제독이 말한 이해못할 말의 뜻을 아는 것보다는 어떻게 제독이 이렇게 흔들리는 배에서 글을 쓰면서도 저렇게 길게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사실이 더욱더 신기할 뿐이었다. 그런 제독을 보며, 루넬은 천재 외삼촌을 자신의 머리로 이해를 하려고 시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렸다. 루넬은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게 자신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대충 얼버무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네, 제독님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양학을 익혀서 쓸일이 있나요?"
어쨌건 포세트립톤과 피트아일랜드의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알아봤자 그다지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 루넬은 제독의 질문에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그다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음...이건 정확히 말해서 해양학의 분야라기 보다는 기상학이라고 해야 되겠지만, 뭐 이 것 역시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니 한번 말해보겠네. 아마 내일 아침무렵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해서 점심무렵에는 가랑비가 약하게 내리고, 저녁무렵에 날씨가 갠 후에는 따뜻한 남서풍이 불어올 걸세. 방금 내가 말한 것 중에 두개이상 틀리면, 자네를 연회에 대려가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네.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지금 했던 말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맞으면, 더 이상 연회 건에 대해서는 토를 달아서는 안되네. 루넬경."
루넬은 제독의 말을 들은 후, 연회를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제독을 보아왔던 루넬은 제독이 세상에 몇 없는 천재라고 하더라도 마법을 쓴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제독이 한 엉터리 예언이 맞을리가 없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했다.
"한두르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귀한 술을 제가 마시게 되다니! 앞으로 제게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면 뭐든지 부탁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온통 암흑에 둘러싸인 밤바다, 하지만 하늘에 작게 빛나는 별은 선원들의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강한 까닭에 연해에서 밤항해를 하다가는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그다지 급한 일도 없었으므로 제 1함대 다섯척의 함선은 항해를 중단한체 큰 파도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법한 작은 항구에 접항을 했다. 닻을 내리고 조용히 바다에 떠있는 다섯척의 함선 곳곳에는 늦은 밤임에도 아직 잠들지 않은 선원들이 켜놓은 등불만 몇 개 빛나고 있었다.
그 몇 안되는 등불 중 한 곳 아래에서 힌델은 한두르가 들고온 술을 조심스럽게 컵에 담고 한모금 마신 후, 무척이나 감격한 목소리로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제국력 1년 이오니스산 포도주. 그 상징적인 가치 때문에, 이 술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상징적인 것을 떠나 그 해에 만들어진 이오니스 포도의 질 역시 일품이었기에 제국력 1년 산중 이오니스 산 포도주의 가치는 더욱더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이 술 한병만 있으면 작은 별장을 하나 살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그런데 지금 그 술을 한두르가 힌델 앞에 꺼내놓은 것이었다. 그런 귀한 술을 마시는 까닭에 힌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컵에 담은체 마시고 있었다.
"뭐, 좋은 술은 혼자 마시는 것 보다 같이 마시는게 더 좋지 않겠나?"
"그야 그렇지요. 한두르님. 아무튼 제가 이 술을 입에라도 댈수 있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컵이나! 마실 수 있다니, 이제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감격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애주가 힌델을 보며 한두르는 이번에도 웃을 뿐이었다. 귀한 술을 마시면서도 한두르에게 술의 출처를 묻지 않는 힌델, 아마 그런 힌델이었기에 한두르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한 것이었을 것이다. 선원들의 주머니상태야 비슷한 것, 1등 항해사라고 해서 특별히 나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힌델, 자네는 언제 쯤 결혼할 예정인가?"
조심스럽게 컵에 따뤄진 술을 목으로 넘기는 것도 아까운 듯 한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고 있던 힌델은 한두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눈을 크게 뜨고는 한두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힌델은 그 외모에 어울리지않게 부끄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한두르에게 답을 했다.
"정하지 않았어요. 한두르님. 돈이 적당히 모이는데로 해야겠죠. 집도사고, 작은 가게도 하나 사고. 하지만 돈이 모인다고 해도 쉽게 이 배를 떠나지지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힌델의 대답에 한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 사나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 그들은 평생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설혹,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서 생활을 하더라도 대부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과연 바다의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56년의 생애중 41년을 바다에 바쳤던 한두르도 그 질문에는 정확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막연히 바다, 그 바다의 모든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한두르님은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일등항해사 직만 맡고 계시죠? 원하시면 다른 배의 선장직도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이번에는 힌델의 질문, 그 질문을 들은 한두르는 이번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체 컵에 담긴 술은 한모금 목으로 흘렸다. 도대체 내가 무엇때문에 이 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10년 전 쯤에 다른 배의 선장직을 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과연 무슨 이유였을까?
"나도 모르겠네. 내가 왜 이 배를 떠날 수 없는지."
한두르는 한숨을 내쉬며 힌델에게 답을 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 배를 떠날 수 없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배에서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것을, 아니 유일한 존재를......
제국력 118년 10월 8일
풍향: 남동 -> 남서
해류: 남서
날씨: 간간히 비가내린 후 갬.
위치: N29 E 5
해적선 세척 발견 후 전투. 세척 모두 나포, 아군측 피해사항 서팬드호 좌측 노 파손 파손정도 약. 세리호 선미 파손, 파손정도 약.
비축 물자, 물 46일 식량 50일
제국 남부 해군 제1함대 다섯척의 함선은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배 전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져있는 푸른 고래호, 그리고 선채가 가늘고 긴 쾌속선 서팬드호, 피투안 조선소에서 검은빛의 북부림의 목제로 만든 까닭에 독특한 검은빛을 자랑하는 흑사자호, 그리고 카를의 증조할머니이며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세레니안느 1세의 이름을 딴 꼭 한척의 예술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체를 자랑하는 세리호, 그의 남편 아인트 공의 이름을 딴 거함 아인트호. 그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다섯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진 함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정규 함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략함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격침시키거나 나포한 백여척이 넘는 함선들의 숫자들만 예로 들더라도 그들이 제국 해군의 정규 해군의 상징이며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말하지 않다도 될 것이다. 물론, 이 다섯척의 배 이외에도 제 1함대 소속의 나머지 열다섯척의 함선이 있었지만, 어쨌든 카를 제독이 처음 제 1함대의 제독을 맡았을 무렵부터 함께한 이 다섯척의 함선이 제 1함대의 중추라고 해도 그다지 손색이 없었다.
"쩝, 갑자기 이렇게 우중충해지다니, 뭐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어제 밤에 술을 마셨지만 그의 양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은 갑판장 힌델은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하늘을 살펴 보고 있었다. 흐린 날임에도 바람을 가득안아 팽팽해진 푸른빛 돛 옆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그다지 두껍지는 않은 얇은 구름들이 가득 덮여 있었다. 하지만 폭풍우를 부르거나 큰 비를 내릴만한 구름은 아니라는 것을 힌델은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걱정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으악, 날씨가! 날씨가 흐려지다니! 이건 절대 우연이야!"
힌델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절규에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절규가 들려온 곳에는 평소에는 그렇게 얌전하던(힌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기사 루넬이 소리를 지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힌델은 고개를 갸웃하며 루넬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이, 기사나으리.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힌델의 말을 들은 루넬은 절규를 멈추고,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힌델을 쳐다보았다. 주위는 이미 밝았지만 어쨌든 아직 해가 뜨지는 않은 꽤 이른 시각이었기에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있었던 루넬로써는 힌델의 출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갑판장, 거, 거기에 계셨던 겁니까?"
루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힌델, 루넬의 얼굴은 꼭 어제의 힌델의 얼굴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에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의 루넬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의 부하나 베르니크가 아닌, 그래도 입이 무거운 힌델에게 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라고 할까?
"무슨일이오? 기사나으리. 뭐, 어디 편찮은데라도 있는 거요?"
힌델은 한참나이의 이 기사가 오랫동안 뱃생활을 한 후유증으로 답답함에 미쳐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루넬을 쳐다보았다. 그 자신도 루넬의 나이무렵에는 종종 그러곤 했었던 까닭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갑판장. 그럼 전 이만."
그래도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인 까닭에 곧 자신의 감정을 추스린 루넬은 손을 내저으며 선실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힌델은 고개를 설레설래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하긴, 답답할 만도 하지. 명색이 군인인데 한동안 제대로된 싸움조차 못해봤을테니."
제국 남부 해군 제 1함대, 그 명성 때문에 해적들은 그들의 함대만 나타나면 도망치기가 바빴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된 실적을 올리지 못하게되자. 1함대는 수십척의 해적선이 정박해있는 그들의 본거지를 향해 직접쳐들어가서 전투를 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제 1함대의 전적에서 말해주듯 언제나 대승이었다. 그렇게 5년정도 남해의 작은 섬들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닌 까닭에 남해에는 이제 해적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 이유로 최근 1년동안 영해 경계선 분쟁에서 시위용으로 몇 번 출항을 한 적은 있어도 제대로된 전투를 겪지는 못하고 있었다.
"제독님, 그런데 약 1시간 후부터 북부 해군 관할에 진입하게 됩니다만, 허가는 맡으셨습니까?"
1등 항해사 한두르는 함장실로 들어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제독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출항하기 전에 양해 요청서를 북부 해군성에 보냈네. 그리고 북항을 목표로 함대가 이동할 때는 꼭 허가를 맡지 않아도 된다네. 뭐 하지만 그들을 존중해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쁠 건 없을 것 같군."
제독은 열심히 종이위에서 펜을 움직이며 한두르를 향해 답을 해주었다. 북항, 포세트립톤. 제국의 수도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 곳으로 향하는 항로는 모든 해군 함대의 관할에 속했다. 크게 북부, 남부, 동부, 원양 담당, 네개로 나눠진 제국 해군은 비상시에 관할권 같은 사정 때문에 수도를 지원하러 올 때, 제약 같은 것이 생기지 않기 위해 만든 특별 조항이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북항은 그 주위를 관할하고 있는 북부 해군의 관할로 관행상 인정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한두르. 내가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제독은 글을 쓰던 것을 멈추며, 뭔가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나이든 백발의 항해사를 쳐다보았다. 글을 쓰고 있던 제독이 자신을 쳐다보자 한두르는 잠깐 움찔 했다. 십여년간 제독과 같이 지내온 그였지만, 아직, 제독의 맑지만 또 강한 눈빛을 마주 보는 것은 불편한 까닭이었다. 한두르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체 제독을 쳐다보자 한두르가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눈치를 첸 제독은 의식적으로 강한 눈빛을 되도록 죽이며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띄운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두르, 피트 아일랜드와 포세트립톤 사이에서 해류가 약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한다면 해수면의 높이는 어느 쪽이 몇 m 더 높은지 알 수 있겠나?"
갑작스러운 질문, 제독은 어제 루넬에게 물었던 질문과 똑같은 내용의 문제를 한두르에게 내고 있었다. 꼭 무엇인가 확인해 볼 것이 있다는 듯이. 제독의 질문을 들은 한두르는 처음에는 어제의 루넬과 마찮가지로 제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제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한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고민을 하더니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대략, 1m에서 1.5m정도 포세트립톤항의 해수면이 더 높습니다."
제독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정답을 말한 자신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늙은 항해사를 쳐다보았다. 어제의 루넬과 마찮가지로 한두르 역시, 전향력이나 중력가속도라는 개념을 모르기는 마찮가지일 것이므로. 그렇다고 두 지점의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직접 측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답일세, 한두르. 어떻게해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내게 설명을 해줄 수 있겠나?"
정답이란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두르는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답을 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춘분 무렵에는 피트 해엽을 해류가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하고 추분무렵에는 초당 1m의 속도로 남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선원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춘분과 추분 시기의 만조 무렵 해수면의 높이 차이가 약 2에서 3m 정도 이므로 초당 1m의 속도로 해류가 북상할 때, 두지점의 해수면의 차이는 아마 그 절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답을 해보았습니다."
제독은 풍부한 경험에 바탕이 된 1등 항해사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한두르는 마음 깊이 안도를 했다. 십여년간 이 제독은 가끔씩 이렇게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종종 자신에게 던지고는 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이 함장실에 들어올 때는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언제 어떤 질문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므로, 물론 대답을 못한다거나 틀린다고 제독이 질책을 한다거나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장을 보좌하는 위치의 1등 항해사란 직책 때문에서인지 한두르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왠지 모르게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해적이다! 해적이다!"
한두르의 대답을 들은 뒤, 제독이 쓰고 있던 것을 중간에 멈추고 다른 종이를 꺼내 글을 막 쓰려고 할 무렵, 밖으로 부터 선원들의 외침이 함장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외침은 해적이 나타났을 때, 여느 배에서 선원들이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선원들이 해적선을 보면 공포에 질리거나 분노하는 목소리로 외치는 것에 비해, 지금 함장실로 들리는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질지언정 공포같은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10개월 27일 만이지? 한두르."
제독은 아쉬운 표정을 하며, 막 흰 백지에 글을 쓰려던 것을 멈추고 펜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서 함장실의 한쪽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검을 한손에 들은 후, 혼잣말을 하듯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네, 제독님. 셀주카티의 해적 놈들을 격침시킨 이 후로는 처음입니다."
제독의 물음에 방금전과는 달리 자신있는 목소리로 한두르는 답을 했다. 한두르는 제독이 앞으로 이런 질문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원을 마음속으로 빌며 제독의 뒤를 따라 함장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갑판 위에는 군인들과 선원들이 분주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선원과 군인이 특별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방패를 든 선원들이 상대편 배도 돌격을 할 때, 앞장을 서야 했으므로, 방패를 들고 있는 선원을 군인이라고하고, 그렇지 않은 선원을 그냥 선원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배의 갑판에 있던 루넬은 언제 선실에서 나왔는지 벌써 칼을 빼들고 죽을상으로 있었던 것이 언제냐는 듯 활기차게 선원들과 군인들을 정돈시키고 있었다.
푸른 고래호를 기준으로 2시 방향에서 해적선 세척이 상선으로 보이는 배 두척을 뒤쫓고 있는 것이 함장실에서 걸어 나온 제독의 시야에 들어왔다. 해적선을 쳐다보고 있는 제독을 향해 한두르가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만, 추격을 하시겠습니까?"
제독은 별다른 주저없이 한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제독은 선수근처로 걸어와 자신의 검을 뽑은 뒤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그러자 구름낀 하늘 때문에 햇빛이 비치지 않았음에도 푸른빛을 내며 밝게 빛나는 검광을 본, 다섯척의 함선에서 선원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해적선은 함선을 발견한 까닭인지 상선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선회를 했다. 하지만 해적선의 선회 모습은 도망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최근, 아니 대략 1년 전에 만났던 남해에있던 해적들이 푸른고래호의 푸른 돛만 보여도 도망가던 것과는 사뭇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거나할 제독도 그리고 제 1함대의 선원들도 아니었다. 다만 그 모습을 본 선원과 군인들의 흥분한 감정만 더욱더 높이 치솟을 뿐이었다.
선회를 한 해적선들은 역풍을 피하기 위해 돛을 접고 노의 힘을 통해서만 빠른 속도로 1함대 쪽을 향해 움직여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가벼운 배를 중심으로 구성이된 해적선이었기에 선회를 하는데도 별다른 지장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 해적선을 보며 제 1함대의 함선들중 제일 밖에 위치해있던, 아인트호와 흑사자호가 배의 방향을 약 45도의 각도로 서로 반대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거함 아인트호, 그 크기 때문인지, 선회를 하는 과정에서 선체가 많이 기울어졌지만, 숙달된 솜씨로 아인트호는 방향을 잡은 뒤, 정상을 되찾았다.
"저 녀석들 선회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우리 배를 노리고 있는 것 같군."
힌델의 혼잣말을 듣던 베르니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힌델을 쳐다보았다.
"갑판장님이 그런 말을 하면 어울리지도 않고 그다지 신용이 가지도 않는 데요."
그 순간 베르니크의 머리가 있던 곳에 흰색의 빛줄기 하나가 지나갔다. 잽싸게 고개를 숙인 까닭에 그 칼날을 간신히 피한 베르니크는 자신의 머리가 여전히 자신의 어깨 위에 붙어 잇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전투 상황이라 힌델이 칼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베르니크 였다.
세척의 해적선은 화살표 모양의 대형을 취한 체 푸른 고래호 쪽으로 빠르게 접근을 해오고 있었다. 해적선이 푸른고래호에서 약 700여 미터 떨어진 위치를 막 지났을 무렵, 푸른고래호의 선수에 서있던 제독의 푸른빛 검에서 다시한번 빛이 났다.
"쾅"
그 순간, 약 45도 각도로 방향을 틀고 움직이던 아인트호 64개, 흑사자호 36개 도합 총 100여개의 함포중 배의 한쪽 측면에 있던 50개의 함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함포들로부터 뿜어져 나온 대포알들은 포물선 괘도를 그리며 날아가 해적선 근처에서 높게 물기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해적선들은 수많은 대포알들을 피하며 물기둥을 사이를 지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이제 500여 미터, 서로 상대방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보일 정도의 위치까지 해적선은 푸른고래호를 향해 접근을 해오고 있었다.
"작전 제 13호, 지시 내리도록."
선수에 서서 지휘를 하던 제독은 해적선의 모습을 보더니 한두르에게 짧게 지시를 내렸다. 제독의 지시에 따라 힌두르는 파수대에 있는 선원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힌두르의 신호를 본 파수대의 선원은 검은색과 파란색의 큰 깃발을 각각 한손에 들고 동시에 휘둘렀다.
"제독님, 작전 제 13호라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파수대의 선원이 제대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본 뒤, 한두르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제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두르의 말을 들은 제독은 시선은 해적선에 그대로 둔체 고개를 저었다.
"한두르, 저녀석들의 의도를 모르겠나? 이 곳 기함만 집중적으로 노릴 의도일세, 물론 배 다섯척인 우리측 인원 수가 더 많겠지만, 저 배 세척이 우리를 둘러싼 뒤, 세척의 인원이 한번에 우리 배로 집중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승부는 끝이 날 수 있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뭐 자네나 나 역시 포로가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높지. 아니, 녀석들의 상황을 보면 인질이 될 가능성이 더 높겠군. 그렇다면 녀석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법 그대로 녀석들을 상대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제독은 여전히 별 감정의 변화 없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무심하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독의 말을 들은 한두르는 제독과는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한 후에 이해를 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제독의 말 중, 단 한가지만은 마음속으로 수긍하지 않았다. 제독이 죽거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일세. 한두르."
제독의 지시를 받은 한두르가 손짓을 하자, 바람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푸른고래호는 활짝 펼쳐져 있던 돛을 모두 내렸다. 그와 동시에 푸른고래호의 수부들은 노를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젓기 시작했다. 순풍에 가까운 남동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푸른고래호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며, 푸른고래호의 양쪽에 있던 세리호와 서팬드 호가 여전히 빠른 속도를 유지한체 푸른고래호가 있던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그리고 대열의 바깥쪽을 향해 45도 각도로 움직이던 흑사자호와 아인트호 역시 함대 대열의 가운데를 향해 급히 선회했다. 이번에도 아인트호는 쓰러질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기울기로 선체가 기울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이 곧 정상으로 돌아와서 방향을 되찾았다.
해적선 세척은 갑작스러운 제 1함대 군함들의 대형 변화에 놀란 나머지 자신들 역시 돛을 올리고 노를 거꾸로 저으며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그로 인해 더욱더 불규칙해진 노의 움직임은 해적들의 의도대로 배가 움직여지지 않게 만들었다.
300미터, 제독의 칼이 다시 한번 번쩍이자, 이번에는 활을 든체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로부터 해적선을 향해 일제히 화살이 쏟아져 나갔다. 해적들도 1함대 쪽을 향해 화살을 쏘았지만 역풍인 까닭에 제대로 목표에 도달하는 화살은 거의 없었다. 이미 어긋난 작전 때문에 혼란스러워질 때로 혼란스러워진 해적들은 그들의 머리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화살로 인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이미 그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그런 해적들을 보며 제 1함대 선원들은 일제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갑판장님, 역시 해적 놈들은 제대로 밀어 붙이면 기를 못쓴다니까요."
베르니크는 힌델의 화를 돋구워서 죽을 뻔 한 것이 언제였냐는 듯, 다시 힌델의 옆에 다가서서 힌델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교대로 파수를 보는 까닭에 오늘은 밑에 내려와 있었던 베르니크는 오랫만에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하고 있었다. .
"네놈도 마찮가지야."
베르니크의 말에 힌델은 코방귀를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베르니크는 싱글싱글 웃으며 힌델을 쳐다보았다.
'쿵'
그 순간 소리와 함께, 제대로 피할 겨를도 없이 해적선 세 척은 앞에서 움직이던 제 1함대 네 척의 배 사이에 끼여버렸다. 그리고 조금 후, 다른 네척의 배들보다 조금 속도를 늦춰 움직여오던 푸른고래호와 해적선의 기함이 정면으로 충돌을 했다. 그럼에도 배에 별영향이 없어 보이는 푸른고래호, 하지만 해적선은 그렇지 못했다. 푸른 고래호와 충돌한 선체의 앞, 선수 부분은 부러져서 움푹 파여버렸다. 그 직 후,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척의 함선으로부터 해적선을 향해 수많은 갈고리들과 사다리가 날라오는 것이 해적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 1함대 소속 선원들은 사다리를 너머 해적선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왠지 일반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된 듯한 상황이었다.
돌격대장 기사 루넬은 레이피어를 든체 앞장서서 상대편 기함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이미 혼란스러워질 때로 혼란스러워진 해적들은 자신들의 배로 뛰어들어오는 군인들과 선원들을 막을 여력 조차 없는 듯 보였다. 루넬은 앞을 가로막는 해적 몇을 베어버리며 푸른고래호와 해적선의 기함 사이의 길을 만들었다. 그런 루넬의 뒤를 따라 몇몇의 선원들이 해적선에 뛰어내렸다.
갑판장 힌델의 말처럼 한동안 전투가 없어서 답답했던 까닭인지 해적선에 내려선 뒤의 루넬의 활약은 정말 화려했다. 투헨드소드나 그레이트 소드가 아닌 검신이 가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답답함을 해결하려는 듯, 루넬이 한두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네다섯의 해적들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해적들을 공격하고 있던 다른 선원들 역시 루넬과 비슷한 사정으로 오랫동안 전투가 없었음에도 평소이상의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지금까지 자신들이 습격하던 그 당사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해적들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오호! 한판 놀아보자구!"
해적선에 뛰어든 베르니크는 환호하며 해적들 둘을 상대로 신나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숏소드를 사용하는 베르니크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해적들 줄 하나를 순식간에 쓰러트린 다음, 그 해적이 들고 있던 월도를 자신의 빈 오른손에 쥔체 남은 해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적들 사이를 누비고 있던 제 1함대 소속 선원들은 잠시 주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릿통 한두개 만큼이나 더 큰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보통의 세배정도 되는 월도를 휘두르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까닭이었다. 신나게 해적들을 몰아세우던 선원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 남자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젠장 저 녀석은 뭐야?"
벌써 해적 열댓명을 해치운 베르니크는 갑자기 등장한 그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 빛 모자, 해적들의 선장이었다. 이미 그의 큰 월도에는 선원들의 피로 추정되는 피가 가득 묻어있었고, 그 오우거와 비슷한 그 외모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포를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조금씩 앞으로 걸어오자 선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뒤쪽으로 물러서기시작했다.
"크크크, 국가에 빌붙어 사는 버러지 해군 녀석들, 간도 크게 감히 이 잭슨 선장의 배에 들어오다니, 네 녀석들의 목을 내놓기 전에는 돌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게야."
기분나쁜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천천히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오는 잭슨을 보며 공포에 질린 선원들의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베르니크는 다른 선원들처럼 공포를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혼자 가만히 앞에 서있을 수는 없는 까닭에 그 역시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런 선원들의 모습을 본 루넬은 재빨리 잭슨의 앞에 뛰어들었다.
"어이, 생긴걸 보니 이제 은퇴할 나이도 된 것 같은데, 잭슨. 추한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냥 곱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게 어때?"
외모로만 볼 때는 꽤 곱상하게 생긴(아니, 성격도 대체로 그런 편이다. 가끔씩 예외도 있지만.) 루넬을 본 잭슨은 언제나 등장하는 악역들처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루넬을 비웃으며 답을 했다.
"꼬맹아, 이 곳은 어린애가 놀 곳이 아니란다. 어서 돌아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려무나."
그런 잭슨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 체 루넬은 자신의 레이피어를 들고 빠르게 잭슨을 향해 움직였다. 갑작스런 루넬의 움직임을 예상치 못한 잭슨은 조금 당항한 듯, 지금 까지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있던 것과는 반대로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는 루넬, 잭슨은 간발의 차이로 루넬의 레이피어를 막아내었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녀석이!"
분노한 잭슨의 말을 무시한체 루넬은 잭슨의 주위를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잭슨은 간간히 보이는 루넬을 향해 자신의 그 큰 월도를 휘둘렀지만, 큰 만큼 속도가 느린 월도는 번번히 루넬을 빗겨나갔다. 잭슨으로써는 지금까지 검술을 어느정도 쓰는 실력자와 제대로 싸워본 경험이 없었기에 자신 보다 월등히 뛰어난 스피드와 검술을 자랑하는 루넬의 모습에 잭슨 선장은 당황했다.
잭슨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잽싸게 잭슨의 뒤쪽으로 돌아선 루넬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루넬의 움직임을 놓친 잭슨은 루넬이 휘두르는 레이피어를 피하거나 막지 못한체 그대로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로 부터 피가 뿜어져 나오며,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잭슨이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루넬은 한치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빠르게 잭슨의 목을 베어버렸다.
싸우는 것조차 잊은체 칼을 들고 주위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던 선원들은 루넬이 그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잭슨의 목을 간단히 베는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후~! 기사님, 역시 최고야! 루넬 대장님 만세!"
역시 루넬이 잭슨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베르니크가 양손에 쥔 칼을 높이 든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선원들도 베르니크를 따라 루넬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루넬 대장님 만세!" "루넬 대장님 만세!"
사기가 충천한 선원들의 환호성 속에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그 때까지 저항하고 있던 해적들은 선장의 목이 돛대 위에 걸리는 것을 보는 순간 결국 더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고 칼을 던져버렸다.
잠시 후, 다른 해적선 두 척에서도 역시 해적들의 그 해골 모양이 새겨진 검은빛 깃발이 내려간 뒤, 노란색 장미문양의 리투안 깃발이 걸리며, 해전은 전황은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에 결정이 났다.
"이야! 기사 나으리, 확실히 그 동안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역시 대단해!"
갑판장 힌델은 잘려진 해적선장의 목을 창에 꽂아들고는 루넬을 향해 감탄하며 말을 했다. 힌델의 말을 들은 루넬은 멋적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뭐,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루넬의 명령으로 항복한 해적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모아 묶어두고 있었고, 힌델과 루넬은 제독의 지시에 따라 해적선의 뒤처리를 맡고 있었다. 해적선의 노젓는 노예들은 배가 침몰을 하거나 해서 자신들이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배 주인들의 지시에 별다른 거부없이 순순히 따라주고 있었다.
"쩝, 기사 나으리, 이 밑에 선실에 있는 놈들 보물 창고 한번 보셨소?"
루넬은 힌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두사람 공동으로 이 배의 관리를 맡았지만 평소의 직책에 따라, 루넬은 대체로 포로들의 관리와 획득한 군수품들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루넬은 해적선 내의 물품들을 살피고 있었다.
"내 뱃생활 십년에 그런 창고는 처음 봤소. 귀금속들이 가득 있는 것이, 내가 뱃생활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오. 정말 이 정도로 해적들이 끍어 모우는 동안 북부해군 녀석들은 도대체 뭘 했는지."
힌델은 북부 해군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아마 루넬의 앞이 아니라 베르니크의 앞이었다면 욕이 한두마디 쯤 튀어 나왔을 것이다. 그나마 루넬의 앞이었기에 힌델은 자제를 하고 있었다.
해군 함대의 경우에도 해적선을 나포한 경우, 획득한 물자의 약 10% 정도만 함대에 배당이 되었고, 나머지는 국고에 환수되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제 1함대 소속의 스무척의 함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함선들에게는 그 규칙은 있으나마나 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카를 제독은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기에 엄청난 수의 해적소굴을 소탕하며 수많은 해적선들을 나포했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수익을 얻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마 제 1함대가 획득한 금액을 모두 합쳤다면, 왠만한 영지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액수는 되었을 것이다. 선원들로써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함대에 배당된 금액중 약 30%에 이르는 제독 자신의 배당금을 모두 선원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는 제독이었으므로, 그런 제독의 결정에 그다지 불만을 가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액수는 대략 어느정도 되는 것 같습니까? 갑판장."
루넬은 도대체 어느정도 되기에 힌델이 저렇게 흥분을 하나 하는 생각에 힌델에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힌델은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루넬에게 답을 했다.
"아마 대충 보기에도 150만 골드 정도는 되는 것 같더군요. 세상에! 한창 해적녀석들이 잘나갈 때도 배 한척에 많아야 50만 골드 였었는데 말입니다."
힌델의 말에 루넬 역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워낙 과장을 잘하는 힌델이라, 루넬은 아무리 많아봤자 70만 골드정도쯤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50만 골드라는 액수는 그가 예상하고 있던 것 이상이었다.
"헛, 결국 비가 내리는군.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힌델은 하늘에서 한두방울씩 작은 빗방울들이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지자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아침에 힌델이 예상했던 것 처럼, 항해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어 보이는 가랑비였다.
"비? 네? 가, 갑판장 비가 온다고 하셨습니까? 으악! 이럴 순 없어!"
무엇인가를 생각하느라 힌델의 말을 무심히 들었던, 루넬은 잠시 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해적선에서 이것 저것 뒷정리를 하고 있었던 선원들의 시선이 일순 루넬을 향했다. 아침에도 이 광경을 목격한 힌델은 이 기사가 확실히 미쳤다는 자신의 생각이 이제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들의 시선을 의식한 루넬은 곧 흥분을 진정시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루넬경, 역시 기사님의 검술솜씨는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대단하더군요."
한두르의 말에 루넬은 고개를 숙였다. 점심식사를 위해 장교와 사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루넬은 평소와 달리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제독의 예언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그에 당황한 그가 한 행동으로 인해 망신을 당한 그는 고개를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조차 없게 된 것이다.
"아닙니다. 1등 항해사님. 변변치 못한 실력일 뿐입니다."
루넬은 그다지 이런 저런 일로 힘없이 한두르의 말에 답을 했다. 그런 루넬의 모습을 보며, 모여있던 사람들은 다시한번 크게 웃었다. 저렇게 얌전한 기사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사실이 오랫만의 전투로 기분이 풀린 뱃사람들에게 또다른 흥미거리를 안겨주고 있었다.
"허허, 제국 검술대회 본선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기사의 검술실력이 변변치 못하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칼로 물이나 저어야 되겠구먼."
한두르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능청스런 목소리로 루넬을 말에 답을 했다. 한두르의 말을 들은 선원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적 차이가 있었지만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선원들을 서스럼 없이 대했기에 루넬은 선원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아, 그런데 한두르님, 제독님의 검술 실력은 어느정도시죠? 전 한번도 제독님이 싸우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루넬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난 선원들의 웃음이 조금 진정되어 갈 무렵, 베르니크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한두르를 향해 질문을 했다.
"허허, 베르니크 네 녀석 혹시 제독님께서 매일 글이나 쓰고 하신다고 제독님께서 검술 실력이 모자라셔서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서,설마 제가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있겠어요? 한두르님."
한두르의 말에 베르니크는 정곡이 찔린듯 조금 움찔 했지만, 곧 능청스러운 표정을 한 체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한두르의 말을 부인했다. 그런 베르니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피며 한두르는 입을 열었다.
"제독님께서 제 102회 제국 검술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셨다면 이미 설명은 충분하겠지.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울던 아이도 그 이름을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던 제임스 스튜어트 선장의 목을 밴 것도 제독님이시라네."
한두르의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제임스 스튜어트, 약 십년 전 무렵에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 전 수십년간 남해에서 활동을 하던 그는 그가 죽였던 사람들의 해골로 자신의 본거지의 건물을 지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악명을 떨치던 해적선장이었다. 그런 까닭에 스무살 이상된 뱃사람치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라고요? 그럼 그 악명높은 제임스 선장이 갑자기 남해에서 종적을 감춘게 설마?"
베르니크는 여전히 그 사실을 못믿겠다는 듯한 말투로 한두르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설마가 사실이네 베르니크, 그 전투도 대단했지. 우리쪽에 함선이라고는 단 세척, 하지만 녀석들의 함선들은 일곱척이나 되었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우리는 기적같이 이겼지, 아니 기적이라기 보다는 모두 제독님의 공이었지만."
한두르는 감회어린 목소리로 그 때의 그 모습을 회상하며 말을 했다. 그 전투를 같이 경험했던 힌델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죽거나 해적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그 들, 하지만 그들은 이겼고 악명높은 해적을 죽이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명예나 그런 것을 떠나, 제임스 스튜어트의 손에 죽어간 수많은 동료선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데, 작게 나마 공헌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것만으로도 그들은 더 없이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선장에게 걸려있던 현상금을 타간 사람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거죠?"
입을 벌리고 있던 베르니크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한두르를 향해 말을 했다. 아무리 제독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목격하지 않은 이상 베르티크로써는 쉽게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게 말이지, 제독님이 여름철 위생상 좋지 않다고 이백만 골드짜리 머리를 바닷속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네. 쩝."
한두르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입맛을 다시며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한두르가 힌델처럼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쇼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뭐, 꼭 증거를 말하라면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네, 그 때 제임스 스튜어트의 별명이 뭐였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않나? 베르니크."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던 한두르는 다시 베르니크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한두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제임스 선장의 별명이라면 푸른 검의 사신아니에요?"
베르니크는 잠시 생각을 한 후, 십여년이 흘렀지만 기억 속에 여전하게 선명히 남아있는 제임스 선장의 별명을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아니 선원이라면 대부분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악몽이었으므로.
"바로 맞췄네. 베르니크, 그럼 지금 제독님께서 지휘를 하실 때 언제나 뽑으시곤 하시는 검의 검신이 무슨 색인가?"
한두르의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한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며, 사과를 집어든 베르니크는 지금에서야 선원들이 그렇게 제독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를 중 하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정 못믿겠다면 제독님께 결투 신청을 해봐도 좋네, 사양하시지는 않으실테니. 뭐 한 오년 전쯤에도 철없는 젊은 선원 하나가 제독님께 결투신청을 했다가 네동강이 나서 바다에 버려졌다지 아마."
한두르의 말에 베르니크의 얼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힌델이 회심의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쳐다보는 것을 베르니크는 보며, 앞으로 웬만해서는 파수대에서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을 베르니크는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루넬경, 이번 전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점심식사시간 동안 선원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뤘던 루넬은 전투보고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함장실로 도피를 했다. 하지만 함장실 역시 그에게는 그다지 편하다고만 할 곳은 아니었다. 함장실에 들어서자 마자 루넬이 들어오는 것을 본 제독이 루넬 자신을 향해 질문을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생각합니다. 총인원 1978명중 사망자 12명 부상 30명, 적선 세척 나포, 포로 250명. 획득물자 250만 골드."
제독이 질문할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루넬은 미리 준비해뒀던 수치들을 나열하기 사작했다. 그런 루넬을 보며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제독은 루넬에게 말을 꺼냈다. 했다.
"아니, 그 것 말고, 자네 이번 전투에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없는가? 루넬경."
"네? 제독?"
루넬은 갑작스러운 제독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제독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루넬의 모습을 제독은 답답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루넬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제독에게 답을 했다.
"죄송하지만, 아직 경험히 없어서 그런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전투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뭐 녀석들이 전보다는 조금 더 쉽게 전투에 응해줬다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 입니다.
"바로 그걸세. 루넬경. 그들이 쉽게 우리와 전투를 응했다는 것,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도망을 쳤으면 쳤지, 정규 군함의 병력이 월등한 상황에서 해적들이 정규군함에게 도전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네. 그런데 그들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를 향해 공격을 해왔지."
제독의 말을 들은 루넬은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의 전투를 머릿속에 떠올리기 사작했다. 루넬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제독을 향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제독님, 낮에 그 해적 선장이 말하는 투가 정규군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눈치였었었습니다. 게다가 해적선에서 획득한 보물들의 금액 역시 그 전의 해적에 있던 것의 두배 이상이었습니다."
루넬의 말을 들은 제독은 손바닥을 딱 치며, 그 전까지 조금 남아있던 약간의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 제독은 이제 완벽히 확신이 선 듯한 표정으로 그는 말을 했다.
"그래, 이제 결론이 나는군. 그래, 오늘 있었던 전투는 북부 해군의 전력이 얼마나 약화되었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네. 해적들이 정규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세. 육지에 비유하자면 도둑이 경비병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마찮가지의 현상이지. 그런 이유로 해적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노략질을 하고 그들이 약탈한 금액 역시 많게 되었던 것이야. "
그 말을 마친 후,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제독은 자신이 쓰고 있던 종이들을 한 곳에 밀쳐 놓은체 두 손을 잡고 무엇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제독의 모습을 루넬은 착찹한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제독이 무엇때문에 고민을하고 있는지 그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했었는데, 그 때 가만히 두고 볼 것이 아니었군. 배에 배짜도 보르는 어린애를 북부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다니, 세인트 2세께서만 살아계셨어도, 고작 일개 기사단장이 그렇게 설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인데...아니, 율리우스 경이 그렇게 비명횡사하지만 않았어도."
제독은 천천히 별일이 아니라는 듯 무감정한 별 어조의 변화 없는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제독을 보며, 루넬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루넬경 지금 쯤이면 풍향이 남서풍으로 바뀌었을 것이네. 한 번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게나. 어쨌든 자네는 이번에 같이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걸세."
하지만 제독은 곧 우울해 있던 표정을 풀며, 루넬을 보며 약간의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이야기를 했다. 잠시 침울한 기분에 빠져 있었던, 루넬은 제독의 말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불행한 불행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며, 당황함을 겉으로 표현도 하지못한체 마음속으로 절규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제국의 보석도 지필을 못하고 있는 상태인 까닭에
엄두조차 못내고 있지만 1화 정도 분량은 써둔 상태입니다.
예전에 써뒀던 건데...^^;;
오랜 연중에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까닭으로
배경은 제국의 보석 80년 후^^;;
주인공은 리아인 슈타이튼의 증손자랍니다^^;;
1장 남해의 푸른 고래 (1)
제국력 118년 10월 7일
풍향: 남동
해류: 남서
날씨: 맑음
위치: N 28 E10 리투니아 근해
남항(주: 리투니아항)에서 물자 보급완료 후 출항. 목적지 북항(주: 포세트립톤항).
출항 함선 푸른고래호, 서팬드호, 흑사자호, 세리호, 아인트호.
비축 물자 물 47일, 식량 52일.
"크아~! 남항, 언제나 봐도 아름답다구나! 이 아름다운 곳을 떠나야 하다니! 바닷사나이의 뜨거운 가슴이 아파오는구나."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민 태양은 예술과 자유의 도시 리투니아에서 겨울 밤의 매서운 추위를 몰아내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도시, 그 햇빛의 따스함은 아직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에 활기를 가득 안겨주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상인들의 도시란 리투니아의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부둣가 근처에는 배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사람들과 상인들이 가득 붐비고 있었다.
그 활기찬 리투니아시가 품고 있는, 하지만 리투니아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꼭 호수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파도하나 없이 잔잔한 남항을 다섯척의 함선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로 제국 남부 해군 제 1함대 소속 스무척의 함선중 제독 직속 다섯척의 함선, 남해의 해적들 중 이 함대를 모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이제는 그 사실을 기억할 해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전적 54전 54승, 12년간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함대였다.
"남항이 아니라 라밀리스 때문이 아닌가?"
"도대체 누구얏! 앗 제독님!"
푸른고래호 갑판장 힌델은 뒤에서 들러오는 소리에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보이는 사람, 힌델 보다 손 한뼘 정도 더 큰 키와 균형잡힌 몸매, 그리고 짙은 검은색 머리와 아침햇살에 빛나는 바다보다 더 맑은, 그러나 강한 의지가 깃든 푸른색의 눈을 가진 존재, 12년간 푸른고래호의 선장으로 지냈고, 8년간 제 1함대의 제독을 지낸 카를 슈타이튼이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짓궂은 선원 녀석들의 장난이라고 생각을하고 뒤를 돌아본 힌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황해 있는 힌델을보며 제독은 평소의 그 변화 없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체 그의 입에서 다시 말이 흘러나왔다.
"이 배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저 밑의 노예들 말고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갑판장. 아니, 지금쯤이면 노예장이 떠들고있는 것을 노예들도 들었는지 모르겠군."
제독의 말에 힌델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제독의 귀에까지 이 사실이 들어가게 되었을까? 제독이란 존재가 아무리 선원들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런 사적인 이야기는 제독의 귀에 까지 전해지기가 힘든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무리 다른 제독들에 비해 선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어떻게 보면 편한 제독이라고 하더라도 제독은 제독었던 까닭이었다. 아니, 제독과 오래 지낸 사람들 일수록 카를 제독을 더 따르게 되지만, 또 더욱더 제독을 대할 때 어려워 하게 되게 만드는 존제 역시 제독이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골탕먹이기 위해 전하지 않는 이상 제독이 이 사실을 저절로 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도대체 누가? 선원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민을 하던 힌델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며 피식거리고 있는 존재를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배에서 제독 무서운줄 모르는 유일한 존재, 배에 승선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파수병 베르니크였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네. 갑판장, 그러고 보니 갑판장도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군. 이거 갑판장 때문이라도 종종 남항에 들려야 되겠는걸."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힌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힌델보다 한살 많은 제독 역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까닭에 제독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힌델에겐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제독의 시선을 피해 힌델은 이 사실을 제독에게 알린 유력한 용의자 베르니크를 보며 이를 갈았다. 베르니크 저 녀석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힌델으로써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마음을 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길, 저 녀석은 사사건건 다 일러바치는군. 두고보자 베르니크.'
"아무튼 대단하네, 힌델, 그 여걸 적상어 라밀리스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제독은 얼굴에 미소를 띄운체 힌델의 등을 몇 번 두드려준 다음 함장실을 향해 돌아갔다. 힌델읜 제독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체 제독이 함장실로 돌아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제독이 함장실 안으로 들어선 뒤 문을 닫는 순간, 힌델은 재빠르게 갑판 위를 달려 베르니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힌델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베르니크가 아니었다. 베르니크는 그런 힌델을 피해 원숭이에 뒤지지 않는 실력으로 빠르게 돛대 위 파수대쪽으로 줄사다리를 타고 급히 올라갔다.
"베르니크, 이 녀석! 어서 내려오지 못해!"
"갑판장님 같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내려 가겠어요?"
어느세 파수대 가까이까지 올라가 있는 베르니크를 보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까닭에 베르니크의 뒤를 따라 올라가지 못하는 힌델로써는 밑에서 베르니크를 향해 소리만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강인한 빨간머리 아줌마~
그녀는 살벌한 한마리 적상어~"
밑에서 방방 뛰고 있는 힌델을 보며, 이제 약간의 여유가 생긴 베르니크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세인트 1세의 러브스토리'란 제목의 노래를 힌델의 애인인 적상어 라밀리스에게 맞춰 변형시켜 부르고 있었다. 그런 베르니크를 보며 화를 참지 못한 힌델은 애꿎은 돛대만 주먹으로 쥐어박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힌델을 보며 조타수 로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백발의 1등 항해사 한두르가 이야기를 멈추고 힌델을 향해 걸어왔다.
"어이, 힌델. 그 정도에서 그만하는게 화를 멈추는게 어떤가? 라밀리스도 이런 자네 모습을 보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만."
"한두르, 한두르님까지 그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얼굴이 온통 잘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되도록 흥분한 힌델의 뒤로 다가온, 1등 항해사 한두르는 힌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힌델은 이제 베르니크에게 풀지못한 스트레스의 화살을 한두르에게 돌렸다. 그런 힌델을 보며 한두르는 화보다는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언제나 이런식으로 힌델 자신에 비해 열살이나 어린 베르니크에게 놀아나는 단순한 힌델이었기에.
"아아, 농담일세. 힌델,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이거 출항하자 갑판장이 흥분을 해서야, 뱃길이 편안할 수 있겠나? 그만 화풀게."
한두르의 말을 들은 힌델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화를 내던 것을 멈추었다. 원래 뱃사람들은 속설에 대해 다른이들에 비해 민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힌델 역시 예외일 수 없었으므로, 자신의 행동이 계속되어봤자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분노를 억누르며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흘끔 위의 베르니크를 본 힌델이 다시 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한두르는 베르니크에게 어서 파수대 위로 올라가서 힌델의 시선 밖으로 사라지라고 손짓을 했다. 계속 힌델의 화를 돋구고 있던 베르니크는 한두르의 손짓에 어깨를 으쓱 한 다음순순히 파수대 위로 올라가 버렸다. 힌델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한두르는 힌델의 귀에다 대고 작게 말을 했다.
"내가 리투니아에서 좋은 술을 구했는데, 밤에 같이 한잔 하세."
"정, 정말입니까? 한두르님!"
그 말을 들은 힌델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싱글거리며 한두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 힌델이었다. 나이가 30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말썽꾸러기 아들 같은 힌델의 모습을 보며 한두르는 빙긋이 웃었다.
"제독님, 올해는 폐하의 생일 기념 연회에 참가 하시려고 하십니까?"
선장실 테이블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던 제독은 말소리에 쓰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은 뒤 제독은 고개를 들어 그 말소리의 당사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다지 크지 않은 선장실 벽의 책장에는 거의 백여권에 가까운 숫자의 책들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수많은 종이쪽지들은 가끔씩 배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군함의 함장실이라기보다는 학자의 방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아버님께서 올해는 꼭 참석해라고 하시더군. 루넬경, 자네도 같이 참석하지 않겠나?"
무엇인가 귀찮은 것을 떠맡은 듯한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을 한체 제독은 루넬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아, 아닙니다. 제독님, 전 그런 곳에 익숙치가 않아서."
제독의 앞에 서있던 기사, 루넬 비아니스는 제독의 말에 정색을 하며 온몸에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였다. 붉은색의 깔끔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루넬은 기사임에도 별다른 방어 장비 없이 허리에 레이피어하나만 차고 있을 뿐이었다.
"루넬경, 자네 여자 공포증이 있다고 했었나? 기사라면 그런 연회에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지 않겠나? 이건 명령일세, 이번 연회는 자네도 같이가도록 하지."
루넬의 마지막 대답이 마음이 들지 않은 듯, 제독은 루넬을 향해 단정적인 말투로 말을 했다. 제독의 말을 들은 루넬은 명령이란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도 못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띄운체 어쩔줄을 몰라했다. 능력이나 가문등 여러가지면에서 제국의 촉망받는 인재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기사 루넬은 그 자신의 여자 공포증 때문에, 다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다른 기사들이 대부분 기피하는 해군 함선에 승선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루넬과 카를 제독은 공적인 관계로서는 제독과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의 관계였지만 사적으로 제독은 루넬의 외삼촌이었다. 제독의 누이 메리 슈타이튼, 아니 비아니스가 루넬의 어머니였으므로. 그런 연유로 제독은 루넬이 고작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으로 머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제독님, 지금 어떤 내용의 글을 쓰시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독의 말에 잠시 당황해서 서있었던 루넬은 다시 제독이 글을 쓰기 시작하자, 화제도 돌릴겸, 제독을 향해 질문을 했다. 되도록이면 방금 전의 그 약속에 대한 제독의 관심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해군 함선의 돌격대장이의 위치였다면 제독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해야 되겠지만, 제독과 루넬의 사이는 그 것 이상이었으므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루넬의 질문을 들은 제독은 이번에는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체 답을 했다.
"'해양학 입문'이란 책을 쓰고 있는 중이네. 꽤 흥미로운 분야지."
'해양학? 그런 분야도 있었나? 해양학이라면 바다에 대한 학문?'
루넬은 고개를 갸웃하며, 제독을 쳐다보았다. 기사 가문이었지만, 교양을 중시하는 비아니스 가문의 가풍 때문에 기사치고는 루넬 역시 꽤 지식이 풍부한 편이었다. 게다가 그의 백부인 마키아벨리 비아니스는 당대에 알아주는 역사학자였던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검술 못지않게 교육을 받아온 루넬이었지만 해양학이란 학문을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루넬은 제독이 쓰고 있는 글을 의문을 가득 담아 쳐다보았다. 그런 루넬의 시선을 느낀듯 제독은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체 루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마, 해양학이라고는 처음 들어봤을테지. 루넬경. 좋아. 그럼 한가지 질문을 하겠네. 피트 아일랜드와 포세트립톤 사이에서 해류가 약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한다면 해수면의 높이는 어느 쪽이 몇 m 더 높은지 대략적인 수치로 답을 해보게."
제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루넬은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해수면의 높이 차이를 어떻게 계산을 해란 말인지? 아니, 지금까지 바닷물이라면 다 같은 높이인줄 알고 있었던 루넬로써는 자신의 머릿속이 이 것 저 것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루넬이 답을 하지 못하자 잠시 후에 제독은 여전히 글을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포세트립톤쪽이 약 1.35m 더 높네.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계산하는 공식은 바로 전향력 곱하기 두 지점간의 거리 나누기 중력가속도이네만, 자네가 전향력과 중력가속도를 모른다고 해서 내가 설명을 할 의사는 없네.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게. 어쨌든 이런 것이 해양학이네. 이제 대충 해양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겠나?"
루넬은 제독이 말한 이해못할 말의 뜻을 아는 것보다는 어떻게 제독이 이렇게 흔들리는 배에서 글을 쓰면서도 저렇게 길게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사실이 더욱더 신기할 뿐이었다. 그런 제독을 보며, 루넬은 천재 외삼촌을 자신의 머리로 이해를 하려고 시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렸다. 루넬은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게 자신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대충 얼버무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네, 제독님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양학을 익혀서 쓸일이 있나요?"
어쨌건 포세트립톤과 피트아일랜드의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알아봤자 그다지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 루넬은 제독의 질문에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그다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음...이건 정확히 말해서 해양학의 분야라기 보다는 기상학이라고 해야 되겠지만, 뭐 이 것 역시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니 한번 말해보겠네. 아마 내일 아침무렵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해서 점심무렵에는 가랑비가 약하게 내리고, 저녁무렵에 날씨가 갠 후에는 따뜻한 남서풍이 불어올 걸세. 방금 내가 말한 것 중에 두개이상 틀리면, 자네를 연회에 대려가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네.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지금 했던 말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맞으면, 더 이상 연회 건에 대해서는 토를 달아서는 안되네. 루넬경."
루넬은 제독의 말을 들은 후, 연회를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제독을 보아왔던 루넬은 제독이 세상에 몇 없는 천재라고 하더라도 마법을 쓴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제독이 한 엉터리 예언이 맞을리가 없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했다.
"한두르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귀한 술을 제가 마시게 되다니! 앞으로 제게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면 뭐든지 부탁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온통 암흑에 둘러싸인 밤바다, 하지만 하늘에 작게 빛나는 별은 선원들의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강한 까닭에 연해에서 밤항해를 하다가는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그다지 급한 일도 없었으므로 제 1함대 다섯척의 함선은 항해를 중단한체 큰 파도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법한 작은 항구에 접항을 했다. 닻을 내리고 조용히 바다에 떠있는 다섯척의 함선 곳곳에는 늦은 밤임에도 아직 잠들지 않은 선원들이 켜놓은 등불만 몇 개 빛나고 있었다.
그 몇 안되는 등불 중 한 곳 아래에서 힌델은 한두르가 들고온 술을 조심스럽게 컵에 담고 한모금 마신 후, 무척이나 감격한 목소리로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제국력 1년 이오니스산 포도주. 그 상징적인 가치 때문에, 이 술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상징적인 것을 떠나 그 해에 만들어진 이오니스 포도의 질 역시 일품이었기에 제국력 1년 산중 이오니스 산 포도주의 가치는 더욱더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이 술 한병만 있으면 작은 별장을 하나 살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그런데 지금 그 술을 한두르가 힌델 앞에 꺼내놓은 것이었다. 그런 귀한 술을 마시는 까닭에 힌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컵에 담은체 마시고 있었다.
"뭐, 좋은 술은 혼자 마시는 것 보다 같이 마시는게 더 좋지 않겠나?"
"그야 그렇지요. 한두르님. 아무튼 제가 이 술을 입에라도 댈수 있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컵이나! 마실 수 있다니, 이제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감격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애주가 힌델을 보며 한두르는 이번에도 웃을 뿐이었다. 귀한 술을 마시면서도 한두르에게 술의 출처를 묻지 않는 힌델, 아마 그런 힌델이었기에 한두르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한 것이었을 것이다. 선원들의 주머니상태야 비슷한 것, 1등 항해사라고 해서 특별히 나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힌델, 자네는 언제 쯤 결혼할 예정인가?"
조심스럽게 컵에 따뤄진 술을 목으로 넘기는 것도 아까운 듯 한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고 있던 힌델은 한두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눈을 크게 뜨고는 한두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힌델은 그 외모에 어울리지않게 부끄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한두르에게 답을 했다.
"정하지 않았어요. 한두르님. 돈이 적당히 모이는데로 해야겠죠. 집도사고, 작은 가게도 하나 사고. 하지만 돈이 모인다고 해도 쉽게 이 배를 떠나지지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힌델의 대답에 한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 사나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 그들은 평생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설혹,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서 생활을 하더라도 대부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과연 바다의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56년의 생애중 41년을 바다에 바쳤던 한두르도 그 질문에는 정확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막연히 바다, 그 바다의 모든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한두르님은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일등항해사 직만 맡고 계시죠? 원하시면 다른 배의 선장직도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이번에는 힌델의 질문, 그 질문을 들은 한두르는 이번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체 컵에 담긴 술은 한모금 목으로 흘렸다. 도대체 내가 무엇때문에 이 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10년 전 쯤에 다른 배의 선장직을 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과연 무슨 이유였을까?
"나도 모르겠네. 내가 왜 이 배를 떠날 수 없는지."
한두르는 한숨을 내쉬며 힌델에게 답을 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 배를 떠날 수 없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배에서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것을, 아니 유일한 존재를......
제국력 118년 10월 8일
풍향: 남동 -> 남서
해류: 남서
날씨: 간간히 비가내린 후 갬.
위치: N29 E 5
해적선 세척 발견 후 전투. 세척 모두 나포, 아군측 피해사항 서팬드호 좌측 노 파손 파손정도 약. 세리호 선미 파손, 파손정도 약.
비축 물자, 물 46일 식량 50일
제국 남부 해군 제1함대 다섯척의 함선은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배 전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져있는 푸른 고래호, 그리고 선채가 가늘고 긴 쾌속선 서팬드호, 피투안 조선소에서 검은빛의 북부림의 목제로 만든 까닭에 독특한 검은빛을 자랑하는 흑사자호, 그리고 카를의 증조할머니이며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세레니안느 1세의 이름을 딴 꼭 한척의 예술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체를 자랑하는 세리호, 그의 남편 아인트 공의 이름을 딴 거함 아인트호. 그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다섯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진 함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정규 함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략함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격침시키거나 나포한 백여척이 넘는 함선들의 숫자들만 예로 들더라도 그들이 제국 해군의 정규 해군의 상징이며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말하지 않다도 될 것이다. 물론, 이 다섯척의 배 이외에도 제 1함대 소속의 나머지 열다섯척의 함선이 있었지만, 어쨌든 카를 제독이 처음 제 1함대의 제독을 맡았을 무렵부터 함께한 이 다섯척의 함선이 제 1함대의 중추라고 해도 그다지 손색이 없었다.
"쩝, 갑자기 이렇게 우중충해지다니, 뭐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어제 밤에 술을 마셨지만 그의 양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은 갑판장 힌델은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하늘을 살펴 보고 있었다. 흐린 날임에도 바람을 가득안아 팽팽해진 푸른빛 돛 옆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그다지 두껍지는 않은 얇은 구름들이 가득 덮여 있었다. 하지만 폭풍우를 부르거나 큰 비를 내릴만한 구름은 아니라는 것을 힌델은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걱정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으악, 날씨가! 날씨가 흐려지다니! 이건 절대 우연이야!"
힌델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절규에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절규가 들려온 곳에는 평소에는 그렇게 얌전하던(힌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기사 루넬이 소리를 지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힌델은 고개를 갸웃하며 루넬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이, 기사나으리.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힌델의 말을 들은 루넬은 절규를 멈추고,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힌델을 쳐다보았다. 주위는 이미 밝았지만 어쨌든 아직 해가 뜨지는 않은 꽤 이른 시각이었기에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있었던 루넬로써는 힌델의 출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갑판장, 거, 거기에 계셨던 겁니까?"
루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힌델, 루넬의 얼굴은 꼭 어제의 힌델의 얼굴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에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의 루넬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의 부하나 베르니크가 아닌, 그래도 입이 무거운 힌델에게 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라고 할까?
"무슨일이오? 기사나으리. 뭐, 어디 편찮은데라도 있는 거요?"
힌델은 한참나이의 이 기사가 오랫동안 뱃생활을 한 후유증으로 답답함에 미쳐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루넬을 쳐다보았다. 그 자신도 루넬의 나이무렵에는 종종 그러곤 했었던 까닭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갑판장. 그럼 전 이만."
그래도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인 까닭에 곧 자신의 감정을 추스린 루넬은 손을 내저으며 선실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힌델은 고개를 설레설래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하긴, 답답할 만도 하지. 명색이 군인인데 한동안 제대로된 싸움조차 못해봤을테니."
제국 남부 해군 제 1함대, 그 명성 때문에 해적들은 그들의 함대만 나타나면 도망치기가 바빴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된 실적을 올리지 못하게되자. 1함대는 수십척의 해적선이 정박해있는 그들의 본거지를 향해 직접쳐들어가서 전투를 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제 1함대의 전적에서 말해주듯 언제나 대승이었다. 그렇게 5년정도 남해의 작은 섬들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닌 까닭에 남해에는 이제 해적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 이유로 최근 1년동안 영해 경계선 분쟁에서 시위용으로 몇 번 출항을 한 적은 있어도 제대로된 전투를 겪지는 못하고 있었다.
"제독님, 그런데 약 1시간 후부터 북부 해군 관할에 진입하게 됩니다만, 허가는 맡으셨습니까?"
1등 항해사 한두르는 함장실로 들어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제독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출항하기 전에 양해 요청서를 북부 해군성에 보냈네. 그리고 북항을 목표로 함대가 이동할 때는 꼭 허가를 맡지 않아도 된다네. 뭐 하지만 그들을 존중해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쁠 건 없을 것 같군."
제독은 열심히 종이위에서 펜을 움직이며 한두르를 향해 답을 해주었다. 북항, 포세트립톤. 제국의 수도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 곳으로 향하는 항로는 모든 해군 함대의 관할에 속했다. 크게 북부, 남부, 동부, 원양 담당, 네개로 나눠진 제국 해군은 비상시에 관할권 같은 사정 때문에 수도를 지원하러 올 때, 제약 같은 것이 생기지 않기 위해 만든 특별 조항이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북항은 그 주위를 관할하고 있는 북부 해군의 관할로 관행상 인정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한두르. 내가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제독은 글을 쓰던 것을 멈추며, 뭔가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나이든 백발의 항해사를 쳐다보았다. 글을 쓰고 있던 제독이 자신을 쳐다보자 한두르는 잠깐 움찔 했다. 십여년간 제독과 같이 지내온 그였지만, 아직, 제독의 맑지만 또 강한 눈빛을 마주 보는 것은 불편한 까닭이었다. 한두르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체 제독을 쳐다보자 한두르가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눈치를 첸 제독은 의식적으로 강한 눈빛을 되도록 죽이며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띄운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두르, 피트 아일랜드와 포세트립톤 사이에서 해류가 약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한다면 해수면의 높이는 어느 쪽이 몇 m 더 높은지 알 수 있겠나?"
갑작스러운 질문, 제독은 어제 루넬에게 물었던 질문과 똑같은 내용의 문제를 한두르에게 내고 있었다. 꼭 무엇인가 확인해 볼 것이 있다는 듯이. 제독의 질문을 들은 한두르는 처음에는 어제의 루넬과 마찮가지로 제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제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한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고민을 하더니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대략, 1m에서 1.5m정도 포세트립톤항의 해수면이 더 높습니다."
제독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정답을 말한 자신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늙은 항해사를 쳐다보았다. 어제의 루넬과 마찮가지로 한두르 역시, 전향력이나 중력가속도라는 개념을 모르기는 마찮가지일 것이므로. 그렇다고 두 지점의 해수면의 높이차이를 직접 측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답일세, 한두르. 어떻게해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내게 설명을 해줄 수 있겠나?"
정답이란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두르는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답을 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춘분 무렵에는 피트 해엽을 해류가 초당 1m의 속도로 북상을 하고 추분무렵에는 초당 1m의 속도로 남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선원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춘분과 추분 시기의 만조 무렵 해수면의 높이 차이가 약 2에서 3m 정도 이므로 초당 1m의 속도로 해류가 북상할 때, 두지점의 해수면의 차이는 아마 그 절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답을 해보았습니다."
제독은 풍부한 경험에 바탕이 된 1등 항해사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한두르는 마음 깊이 안도를 했다. 십여년간 이 제독은 가끔씩 이렇게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종종 자신에게 던지고는 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이 함장실에 들어올 때는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언제 어떤 질문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므로, 물론 대답을 못한다거나 틀린다고 제독이 질책을 한다거나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장을 보좌하는 위치의 1등 항해사란 직책 때문에서인지 한두르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왠지 모르게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해적이다! 해적이다!"
한두르의 대답을 들은 뒤, 제독이 쓰고 있던 것을 중간에 멈추고 다른 종이를 꺼내 글을 막 쓰려고 할 무렵, 밖으로 부터 선원들의 외침이 함장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외침은 해적이 나타났을 때, 여느 배에서 선원들이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선원들이 해적선을 보면 공포에 질리거나 분노하는 목소리로 외치는 것에 비해, 지금 함장실로 들리는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질지언정 공포같은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10개월 27일 만이지? 한두르."
제독은 아쉬운 표정을 하며, 막 흰 백지에 글을 쓰려던 것을 멈추고 펜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서 함장실의 한쪽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검을 한손에 들은 후, 혼잣말을 하듯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네, 제독님. 셀주카티의 해적 놈들을 격침시킨 이 후로는 처음입니다."
제독의 물음에 방금전과는 달리 자신있는 목소리로 한두르는 답을 했다. 한두르는 제독이 앞으로 이런 질문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원을 마음속으로 빌며 제독의 뒤를 따라 함장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갑판 위에는 군인들과 선원들이 분주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선원과 군인이 특별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방패를 든 선원들이 상대편 배도 돌격을 할 때, 앞장을 서야 했으므로, 방패를 들고 있는 선원을 군인이라고하고, 그렇지 않은 선원을 그냥 선원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배의 갑판에 있던 루넬은 언제 선실에서 나왔는지 벌써 칼을 빼들고 죽을상으로 있었던 것이 언제냐는 듯 활기차게 선원들과 군인들을 정돈시키고 있었다.
푸른 고래호를 기준으로 2시 방향에서 해적선 세척이 상선으로 보이는 배 두척을 뒤쫓고 있는 것이 함장실에서 걸어 나온 제독의 시야에 들어왔다. 해적선을 쳐다보고 있는 제독을 향해 한두르가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만, 추격을 하시겠습니까?"
제독은 별다른 주저없이 한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제독은 선수근처로 걸어와 자신의 검을 뽑은 뒤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그러자 구름낀 하늘 때문에 햇빛이 비치지 않았음에도 푸른빛을 내며 밝게 빛나는 검광을 본, 다섯척의 함선에서 선원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해적선은 함선을 발견한 까닭인지 상선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선회를 했다. 하지만 해적선의 선회 모습은 도망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최근, 아니 대략 1년 전에 만났던 남해에있던 해적들이 푸른고래호의 푸른 돛만 보여도 도망가던 것과는 사뭇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거나할 제독도 그리고 제 1함대의 선원들도 아니었다. 다만 그 모습을 본 선원과 군인들의 흥분한 감정만 더욱더 높이 치솟을 뿐이었다.
선회를 한 해적선들은 역풍을 피하기 위해 돛을 접고 노의 힘을 통해서만 빠른 속도로 1함대 쪽을 향해 움직여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가벼운 배를 중심으로 구성이된 해적선이었기에 선회를 하는데도 별다른 지장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 해적선을 보며 제 1함대의 함선들중 제일 밖에 위치해있던, 아인트호와 흑사자호가 배의 방향을 약 45도의 각도로 서로 반대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거함 아인트호, 그 크기 때문인지, 선회를 하는 과정에서 선체가 많이 기울어졌지만, 숙달된 솜씨로 아인트호는 방향을 잡은 뒤, 정상을 되찾았다.
"저 녀석들 선회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우리 배를 노리고 있는 것 같군."
힌델의 혼잣말을 듣던 베르니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힌델을 쳐다보았다.
"갑판장님이 그런 말을 하면 어울리지도 않고 그다지 신용이 가지도 않는 데요."
그 순간 베르니크의 머리가 있던 곳에 흰색의 빛줄기 하나가 지나갔다. 잽싸게 고개를 숙인 까닭에 그 칼날을 간신히 피한 베르니크는 자신의 머리가 여전히 자신의 어깨 위에 붙어 잇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전투 상황이라 힌델이 칼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베르니크 였다.
세척의 해적선은 화살표 모양의 대형을 취한 체 푸른 고래호 쪽으로 빠르게 접근을 해오고 있었다. 해적선이 푸른고래호에서 약 700여 미터 떨어진 위치를 막 지났을 무렵, 푸른고래호의 선수에 서있던 제독의 푸른빛 검에서 다시한번 빛이 났다.
"쾅"
그 순간, 약 45도 각도로 방향을 틀고 움직이던 아인트호 64개, 흑사자호 36개 도합 총 100여개의 함포중 배의 한쪽 측면에 있던 50개의 함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함포들로부터 뿜어져 나온 대포알들은 포물선 괘도를 그리며 날아가 해적선 근처에서 높게 물기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해적선들은 수많은 대포알들을 피하며 물기둥을 사이를 지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이제 500여 미터, 서로 상대방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보일 정도의 위치까지 해적선은 푸른고래호를 향해 접근을 해오고 있었다.
"작전 제 13호, 지시 내리도록."
선수에 서서 지휘를 하던 제독은 해적선의 모습을 보더니 한두르에게 짧게 지시를 내렸다. 제독의 지시에 따라 힌두르는 파수대에 있는 선원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힌두르의 신호를 본 파수대의 선원은 검은색과 파란색의 큰 깃발을 각각 한손에 들고 동시에 휘둘렀다.
"제독님, 작전 제 13호라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파수대의 선원이 제대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본 뒤, 한두르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제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두르의 말을 들은 제독은 시선은 해적선에 그대로 둔체 고개를 저었다.
"한두르, 저녀석들의 의도를 모르겠나? 이 곳 기함만 집중적으로 노릴 의도일세, 물론 배 다섯척인 우리측 인원 수가 더 많겠지만, 저 배 세척이 우리를 둘러싼 뒤, 세척의 인원이 한번에 우리 배로 집중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승부는 끝이 날 수 있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뭐 자네나 나 역시 포로가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높지. 아니, 녀석들의 상황을 보면 인질이 될 가능성이 더 높겠군. 그렇다면 녀석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법 그대로 녀석들을 상대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제독은 여전히 별 감정의 변화 없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무심하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독의 말을 들은 한두르는 제독과는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한 후에 이해를 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제독의 말 중, 단 한가지만은 마음속으로 수긍하지 않았다. 제독이 죽거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일세. 한두르."
제독의 지시를 받은 한두르가 손짓을 하자, 바람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푸른고래호는 활짝 펼쳐져 있던 돛을 모두 내렸다. 그와 동시에 푸른고래호의 수부들은 노를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젓기 시작했다. 순풍에 가까운 남동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푸른고래호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며, 푸른고래호의 양쪽에 있던 세리호와 서팬드 호가 여전히 빠른 속도를 유지한체 푸른고래호가 있던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그리고 대열의 바깥쪽을 향해 45도 각도로 움직이던 흑사자호와 아인트호 역시 함대 대열의 가운데를 향해 급히 선회했다. 이번에도 아인트호는 쓰러질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기울기로 선체가 기울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이 곧 정상으로 돌아와서 방향을 되찾았다.
해적선 세척은 갑작스러운 제 1함대 군함들의 대형 변화에 놀란 나머지 자신들 역시 돛을 올리고 노를 거꾸로 저으며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그로 인해 더욱더 불규칙해진 노의 움직임은 해적들의 의도대로 배가 움직여지지 않게 만들었다.
300미터, 제독의 칼이 다시 한번 번쩍이자, 이번에는 활을 든체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로부터 해적선을 향해 일제히 화살이 쏟아져 나갔다. 해적들도 1함대 쪽을 향해 화살을 쏘았지만 역풍인 까닭에 제대로 목표에 도달하는 화살은 거의 없었다. 이미 어긋난 작전 때문에 혼란스러워질 때로 혼란스러워진 해적들은 그들의 머리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화살로 인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이미 그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그런 해적들을 보며 제 1함대 선원들은 일제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갑판장님, 역시 해적 놈들은 제대로 밀어 붙이면 기를 못쓴다니까요."
베르니크는 힌델의 화를 돋구워서 죽을 뻔 한 것이 언제였냐는 듯, 다시 힌델의 옆에 다가서서 힌델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교대로 파수를 보는 까닭에 오늘은 밑에 내려와 있었던 베르니크는 오랫만에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하고 있었다. .
"네놈도 마찮가지야."
베르니크의 말에 힌델은 코방귀를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베르니크는 싱글싱글 웃으며 힌델을 쳐다보았다.
'쿵'
그 순간 소리와 함께, 제대로 피할 겨를도 없이 해적선 세 척은 앞에서 움직이던 제 1함대 네 척의 배 사이에 끼여버렸다. 그리고 조금 후, 다른 네척의 배들보다 조금 속도를 늦춰 움직여오던 푸른고래호와 해적선의 기함이 정면으로 충돌을 했다. 그럼에도 배에 별영향이 없어 보이는 푸른고래호, 하지만 해적선은 그렇지 못했다. 푸른 고래호와 충돌한 선체의 앞, 선수 부분은 부러져서 움푹 파여버렸다. 그 직 후,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척의 함선으로부터 해적선을 향해 수많은 갈고리들과 사다리가 날라오는 것이 해적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 1함대 소속 선원들은 사다리를 너머 해적선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왠지 일반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된 듯한 상황이었다.
돌격대장 기사 루넬은 레이피어를 든체 앞장서서 상대편 기함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이미 혼란스러워질 때로 혼란스러워진 해적들은 자신들의 배로 뛰어들어오는 군인들과 선원들을 막을 여력 조차 없는 듯 보였다. 루넬은 앞을 가로막는 해적 몇을 베어버리며 푸른고래호와 해적선의 기함 사이의 길을 만들었다. 그런 루넬의 뒤를 따라 몇몇의 선원들이 해적선에 뛰어내렸다.
갑판장 힌델의 말처럼 한동안 전투가 없어서 답답했던 까닭인지 해적선에 내려선 뒤의 루넬의 활약은 정말 화려했다. 투헨드소드나 그레이트 소드가 아닌 검신이 가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답답함을 해결하려는 듯, 루넬이 한두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네다섯의 해적들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해적들을 공격하고 있던 다른 선원들 역시 루넬과 비슷한 사정으로 오랫동안 전투가 없었음에도 평소이상의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지금까지 자신들이 습격하던 그 당사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해적들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오호! 한판 놀아보자구!"
해적선에 뛰어든 베르니크는 환호하며 해적들 둘을 상대로 신나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숏소드를 사용하는 베르니크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해적들 줄 하나를 순식간에 쓰러트린 다음, 그 해적이 들고 있던 월도를 자신의 빈 오른손에 쥔체 남은 해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적들 사이를 누비고 있던 제 1함대 소속 선원들은 잠시 주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릿통 한두개 만큼이나 더 큰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보통의 세배정도 되는 월도를 휘두르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까닭이었다. 신나게 해적들을 몰아세우던 선원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 남자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젠장 저 녀석은 뭐야?"
벌써 해적 열댓명을 해치운 베르니크는 갑자기 등장한 그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 빛 모자, 해적들의 선장이었다. 이미 그의 큰 월도에는 선원들의 피로 추정되는 피가 가득 묻어있었고, 그 오우거와 비슷한 그 외모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포를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조금씩 앞으로 걸어오자 선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뒤쪽으로 물러서기시작했다.
"크크크, 국가에 빌붙어 사는 버러지 해군 녀석들, 간도 크게 감히 이 잭슨 선장의 배에 들어오다니, 네 녀석들의 목을 내놓기 전에는 돌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게야."
기분나쁜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천천히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오는 잭슨을 보며 공포에 질린 선원들의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베르니크는 다른 선원들처럼 공포를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혼자 가만히 앞에 서있을 수는 없는 까닭에 그 역시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런 선원들의 모습을 본 루넬은 재빨리 잭슨의 앞에 뛰어들었다.
"어이, 생긴걸 보니 이제 은퇴할 나이도 된 것 같은데, 잭슨. 추한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냥 곱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게 어때?"
외모로만 볼 때는 꽤 곱상하게 생긴(아니, 성격도 대체로 그런 편이다. 가끔씩 예외도 있지만.) 루넬을 본 잭슨은 언제나 등장하는 악역들처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루넬을 비웃으며 답을 했다.
"꼬맹아, 이 곳은 어린애가 놀 곳이 아니란다. 어서 돌아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려무나."
그런 잭슨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 체 루넬은 자신의 레이피어를 들고 빠르게 잭슨을 향해 움직였다. 갑작스런 루넬의 움직임을 예상치 못한 잭슨은 조금 당항한 듯, 지금 까지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있던 것과는 반대로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는 루넬, 잭슨은 간발의 차이로 루넬의 레이피어를 막아내었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녀석이!"
분노한 잭슨의 말을 무시한체 루넬은 잭슨의 주위를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잭슨은 간간히 보이는 루넬을 향해 자신의 그 큰 월도를 휘둘렀지만, 큰 만큼 속도가 느린 월도는 번번히 루넬을 빗겨나갔다. 잭슨으로써는 지금까지 검술을 어느정도 쓰는 실력자와 제대로 싸워본 경험이 없었기에 자신 보다 월등히 뛰어난 스피드와 검술을 자랑하는 루넬의 모습에 잭슨 선장은 당황했다.
잭슨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잽싸게 잭슨의 뒤쪽으로 돌아선 루넬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루넬의 움직임을 놓친 잭슨은 루넬이 휘두르는 레이피어를 피하거나 막지 못한체 그대로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로 부터 피가 뿜어져 나오며,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잭슨이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루넬은 한치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빠르게 잭슨의 목을 베어버렸다.
싸우는 것조차 잊은체 칼을 들고 주위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던 선원들은 루넬이 그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잭슨의 목을 간단히 베는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후~! 기사님, 역시 최고야! 루넬 대장님 만세!"
역시 루넬이 잭슨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베르니크가 양손에 쥔 칼을 높이 든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선원들도 베르니크를 따라 루넬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루넬 대장님 만세!" "루넬 대장님 만세!"
사기가 충천한 선원들의 환호성 속에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그 때까지 저항하고 있던 해적들은 선장의 목이 돛대 위에 걸리는 것을 보는 순간 결국 더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고 칼을 던져버렸다.
잠시 후, 다른 해적선 두 척에서도 역시 해적들의 그 해골 모양이 새겨진 검은빛 깃발이 내려간 뒤, 노란색 장미문양의 리투안 깃발이 걸리며, 해전은 전황은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에 결정이 났다.
"이야! 기사 나으리, 확실히 그 동안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역시 대단해!"
갑판장 힌델은 잘려진 해적선장의 목을 창에 꽂아들고는 루넬을 향해 감탄하며 말을 했다. 힌델의 말을 들은 루넬은 멋적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뭐,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루넬의 명령으로 항복한 해적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모아 묶어두고 있었고, 힌델과 루넬은 제독의 지시에 따라 해적선의 뒤처리를 맡고 있었다. 해적선의 노젓는 노예들은 배가 침몰을 하거나 해서 자신들이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배 주인들의 지시에 별다른 거부없이 순순히 따라주고 있었다.
"쩝, 기사 나으리, 이 밑에 선실에 있는 놈들 보물 창고 한번 보셨소?"
루넬은 힌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두사람 공동으로 이 배의 관리를 맡았지만 평소의 직책에 따라, 루넬은 대체로 포로들의 관리와 획득한 군수품들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루넬은 해적선 내의 물품들을 살피고 있었다.
"내 뱃생활 십년에 그런 창고는 처음 봤소. 귀금속들이 가득 있는 것이, 내가 뱃생활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오. 정말 이 정도로 해적들이 끍어 모우는 동안 북부해군 녀석들은 도대체 뭘 했는지."
힌델은 북부 해군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아마 루넬의 앞이 아니라 베르니크의 앞이었다면 욕이 한두마디 쯤 튀어 나왔을 것이다. 그나마 루넬의 앞이었기에 힌델은 자제를 하고 있었다.
해군 함대의 경우에도 해적선을 나포한 경우, 획득한 물자의 약 10% 정도만 함대에 배당이 되었고, 나머지는 국고에 환수되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제 1함대 소속의 스무척의 함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함선들에게는 그 규칙은 있으나마나 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카를 제독은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기에 엄청난 수의 해적소굴을 소탕하며 수많은 해적선들을 나포했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수익을 얻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마 제 1함대가 획득한 금액을 모두 합쳤다면, 왠만한 영지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액수는 되었을 것이다. 선원들로써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함대에 배당된 금액중 약 30%에 이르는 제독 자신의 배당금을 모두 선원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는 제독이었으므로, 그런 제독의 결정에 그다지 불만을 가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액수는 대략 어느정도 되는 것 같습니까? 갑판장."
루넬은 도대체 어느정도 되기에 힌델이 저렇게 흥분을 하나 하는 생각에 힌델에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힌델은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루넬에게 답을 했다.
"아마 대충 보기에도 150만 골드 정도는 되는 것 같더군요. 세상에! 한창 해적녀석들이 잘나갈 때도 배 한척에 많아야 50만 골드 였었는데 말입니다."
힌델의 말에 루넬 역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워낙 과장을 잘하는 힌델이라, 루넬은 아무리 많아봤자 70만 골드정도쯤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50만 골드라는 액수는 그가 예상하고 있던 것 이상이었다.
"헛, 결국 비가 내리는군.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힌델은 하늘에서 한두방울씩 작은 빗방울들이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지자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아침에 힌델이 예상했던 것 처럼, 항해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어 보이는 가랑비였다.
"비? 네? 가, 갑판장 비가 온다고 하셨습니까? 으악! 이럴 순 없어!"
무엇인가를 생각하느라 힌델의 말을 무심히 들었던, 루넬은 잠시 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해적선에서 이것 저것 뒷정리를 하고 있었던 선원들의 시선이 일순 루넬을 향했다. 아침에도 이 광경을 목격한 힌델은 이 기사가 확실히 미쳤다는 자신의 생각이 이제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들의 시선을 의식한 루넬은 곧 흥분을 진정시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루넬경, 역시 기사님의 검술솜씨는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대단하더군요."
한두르의 말에 루넬은 고개를 숙였다. 점심식사를 위해 장교와 사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루넬은 평소와 달리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제독의 예언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그에 당황한 그가 한 행동으로 인해 망신을 당한 그는 고개를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조차 없게 된 것이다.
"아닙니다. 1등 항해사님. 변변치 못한 실력일 뿐입니다."
루넬은 그다지 이런 저런 일로 힘없이 한두르의 말에 답을 했다. 그런 루넬의 모습을 보며, 모여있던 사람들은 다시한번 크게 웃었다. 저렇게 얌전한 기사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사실이 오랫만의 전투로 기분이 풀린 뱃사람들에게 또다른 흥미거리를 안겨주고 있었다.
"허허, 제국 검술대회 본선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기사의 검술실력이 변변치 못하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칼로 물이나 저어야 되겠구먼."
한두르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능청스런 목소리로 루넬을 말에 답을 했다. 한두르의 말을 들은 선원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적 차이가 있었지만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선원들을 서스럼 없이 대했기에 루넬은 선원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아, 그런데 한두르님, 제독님의 검술 실력은 어느정도시죠? 전 한번도 제독님이 싸우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루넬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난 선원들의 웃음이 조금 진정되어 갈 무렵, 베르니크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한두르를 향해 질문을 했다.
"허허, 베르니크 네 녀석 혹시 제독님께서 매일 글이나 쓰고 하신다고 제독님께서 검술 실력이 모자라셔서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서,설마 제가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있겠어요? 한두르님."
한두르의 말에 베르니크는 정곡이 찔린듯 조금 움찔 했지만, 곧 능청스러운 표정을 한 체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한두르의 말을 부인했다. 그런 베르니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피며 한두르는 입을 열었다.
"제독님께서 제 102회 제국 검술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셨다면 이미 설명은 충분하겠지.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울던 아이도 그 이름을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던 제임스 스튜어트 선장의 목을 밴 것도 제독님이시라네."
한두르의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제임스 스튜어트, 약 십년 전 무렵에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 전 수십년간 남해에서 활동을 하던 그는 그가 죽였던 사람들의 해골로 자신의 본거지의 건물을 지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악명을 떨치던 해적선장이었다. 그런 까닭에 스무살 이상된 뱃사람치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라고요? 그럼 그 악명높은 제임스 선장이 갑자기 남해에서 종적을 감춘게 설마?"
베르니크는 여전히 그 사실을 못믿겠다는 듯한 말투로 한두르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설마가 사실이네 베르니크, 그 전투도 대단했지. 우리쪽에 함선이라고는 단 세척, 하지만 녀석들의 함선들은 일곱척이나 되었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우리는 기적같이 이겼지, 아니 기적이라기 보다는 모두 제독님의 공이었지만."
한두르는 감회어린 목소리로 그 때의 그 모습을 회상하며 말을 했다. 그 전투를 같이 경험했던 힌델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죽거나 해적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그 들, 하지만 그들은 이겼고 악명높은 해적을 죽이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명예나 그런 것을 떠나, 제임스 스튜어트의 손에 죽어간 수많은 동료선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데, 작게 나마 공헌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것만으로도 그들은 더 없이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선장에게 걸려있던 현상금을 타간 사람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거죠?"
입을 벌리고 있던 베르니크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한두르를 향해 말을 했다. 아무리 제독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목격하지 않은 이상 베르티크로써는 쉽게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게 말이지, 제독님이 여름철 위생상 좋지 않다고 이백만 골드짜리 머리를 바닷속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네. 쩝."
한두르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입맛을 다시며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한두르가 힌델처럼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쇼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뭐, 꼭 증거를 말하라면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네, 그 때 제임스 스튜어트의 별명이 뭐였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않나? 베르니크."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던 한두르는 다시 베르니크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한두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제임스 선장의 별명이라면 푸른 검의 사신아니에요?"
베르니크는 잠시 생각을 한 후, 십여년이 흘렀지만 기억 속에 여전하게 선명히 남아있는 제임스 선장의 별명을 한두르에게 말을 했다. 아니 선원이라면 대부분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악몽이었으므로.
"바로 맞췄네. 베르니크, 그럼 지금 제독님께서 지휘를 하실 때 언제나 뽑으시곤 하시는 검의 검신이 무슨 색인가?"
한두르의 말을 들은 베르니크는 한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며, 사과를 집어든 베르니크는 지금에서야 선원들이 그렇게 제독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를 중 하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정 못믿겠다면 제독님께 결투 신청을 해봐도 좋네, 사양하시지는 않으실테니. 뭐 한 오년 전쯤에도 철없는 젊은 선원 하나가 제독님께 결투신청을 했다가 네동강이 나서 바다에 버려졌다지 아마."
한두르의 말에 베르니크의 얼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힌델이 회심의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쳐다보는 것을 베르니크는 보며, 앞으로 웬만해서는 파수대에서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을 베르니크는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루넬경, 이번 전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점심식사시간 동안 선원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뤘던 루넬은 전투보고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함장실로 도피를 했다. 하지만 함장실 역시 그에게는 그다지 편하다고만 할 곳은 아니었다. 함장실에 들어서자 마자 루넬이 들어오는 것을 본 제독이 루넬 자신을 향해 질문을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생각합니다. 총인원 1978명중 사망자 12명 부상 30명, 적선 세척 나포, 포로 250명. 획득물자 250만 골드."
제독이 질문할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루넬은 미리 준비해뒀던 수치들을 나열하기 사작했다. 그런 루넬을 보며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제독은 루넬에게 말을 꺼냈다. 했다.
"아니, 그 것 말고, 자네 이번 전투에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없는가? 루넬경."
"네? 제독?"
루넬은 갑작스러운 제독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제독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루넬의 모습을 제독은 답답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루넬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제독에게 답을 했다.
"죄송하지만, 아직 경험히 없어서 그런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전투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뭐 녀석들이 전보다는 조금 더 쉽게 전투에 응해줬다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 입니다.
"바로 그걸세. 루넬경. 그들이 쉽게 우리와 전투를 응했다는 것,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도망을 쳤으면 쳤지, 정규 군함의 병력이 월등한 상황에서 해적들이 정규군함에게 도전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네. 그런데 그들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를 향해 공격을 해왔지."
제독의 말을 들은 루넬은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의 전투를 머릿속에 떠올리기 사작했다. 루넬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제독을 향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제독님, 낮에 그 해적 선장이 말하는 투가 정규군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눈치였었었습니다. 게다가 해적선에서 획득한 보물들의 금액 역시 그 전의 해적에 있던 것의 두배 이상이었습니다."
루넬의 말을 들은 제독은 손바닥을 딱 치며, 그 전까지 조금 남아있던 약간의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 제독은 이제 완벽히 확신이 선 듯한 표정으로 그는 말을 했다.
"그래, 이제 결론이 나는군. 그래, 오늘 있었던 전투는 북부 해군의 전력이 얼마나 약화되었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네. 해적들이 정규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세. 육지에 비유하자면 도둑이 경비병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마찮가지의 현상이지. 그런 이유로 해적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노략질을 하고 그들이 약탈한 금액 역시 많게 되었던 것이야. "
그 말을 마친 후,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제독은 자신이 쓰고 있던 종이들을 한 곳에 밀쳐 놓은체 두 손을 잡고 무엇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제독의 모습을 루넬은 착찹한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제독이 무엇때문에 고민을하고 있는지 그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했었는데, 그 때 가만히 두고 볼 것이 아니었군. 배에 배짜도 보르는 어린애를 북부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다니, 세인트 2세께서만 살아계셨어도, 고작 일개 기사단장이 그렇게 설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인데...아니, 율리우스 경이 그렇게 비명횡사하지만 않았어도."
제독은 천천히 별일이 아니라는 듯 무감정한 별 어조의 변화 없는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제독을 보며, 루넬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루넬경 지금 쯤이면 풍향이 남서풍으로 바뀌었을 것이네. 한 번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게나. 어쨌든 자네는 이번에 같이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걸세."
하지만 제독은 곧 우울해 있던 표정을 풀며, 루넬을 보며 약간의 미소를 얼굴에 띄운체 이야기를 했다. 잠시 침울한 기분에 빠져 있었던, 루넬은 제독의 말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불행한 불행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며, 당황함을 겉으로 표현도 하지못한체 마음속으로 절규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