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3장 엘프 포레스트(9)

푸른바람 BlueWind·2004. 1. 21. AM 2:53:01·조회 1899·추천 81
에피소드 89 엘프 포레스트-9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우리들은 미처 다른 엘프들과 인사할 시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 급히 여행을 재개하였다. 프리앙과 루이는 급한 일이 있는지 제대로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는 듯 보였다.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기본적으로 제국과 동맹관계에 놓여있는 엘프들이었으므로 이번 전쟁에 제국에 지원군을 보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급히 회의를 하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인간들에 비해 의견 취합이 늦은 엘프이니만큼 어제밤부터 시작한 회의는 아무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단지 이자벨 만이 길안내로 여전히 우리 일행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충 눈치를 살펴보건데 엘프 내에서 이자벨의 위치 역시 그리 낮은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우리 일행 때문에 특별히 빠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쩝, 솔직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프리앙에게 묻고 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하룻밤의 짧은 이야기로써는 해결하지 못한 의문점이 아니었다. 그리고 프리앙이 알고 있는 것 역시 그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뭐,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시간이나면 꼭 프리앙을 다시 한 번더 만나는 방향으로 해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

"좀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텐데..."

클라리는 멀리 유하네리스 성수를 바라보며,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다른 때같았으면 클라리가 투정을 부렸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클라리 그 자신이 잘 알았으므로 그냥 저렇게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엘프 둘 역시 클라리와 비슷한 생각인 듯, 창 밖의 성수를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는 존재가 유일하게 한명이 있었다. 아미...

"이제야 음식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건가?"

아미는 평소에 잘 볼수도 없는 아주 행복함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저 무뚝뚝한 드래곤의 웃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다. 역시 드래곤이었든 인간이든 먹을게 중요하긴 중요한 듯 했다.

"저 바쁘실텐데, 저희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건 아니신지 모르겠네요."

엘프 포레스트에 도착하기 전의 그녀와는 달리 이자벨은 출발할 때부터 계속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있었다. 확실히, 내 생각이 맞았던 듯 싶다.

"아닙니다. 예하."

사람들처럼 특별히 수식을 붙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자벨은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띄운 채 답을 했다. 뭐 대답일 뿐이라지만 그래도 저렇게 말을 해주니 조금 덜 미안한 듯. 다시 침묵 속으로 빠지는 일행들. 솔직히 이런 분위기는 심심하긴 심심했다. 예전에 황제가 있을 때는 그래도 좀 덜 지루했는데. 훗, 그 부담스러운 아줌마가 그리워진다니...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마차는 나무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숲의 끝에 도착합니다. 예하."

반나절쯤 마차가 달렸을까? 나무들로 빽빽하던 숲이 조금 듬성듬성해 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숲의 끝이 가까워 졌기 때문인 듯했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도착이었다. 밤은 되어야 겨우 끝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몇 일을 달려야 겨우 숲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죠."

이자벨은 조금 씁쓸함이 느껴지는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말을 했다. 이자벨의 말대로 라면 숲에서는 마차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엘프들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수백년 전만해도 엘프 포레스트의 크기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어마어마 했다는 소리였다.

엘프들의 쇠퇴기, 프리앙의 눈과 말에서 느껴지는 깊은 안타까움의 근원은 바로 이 것 때문이었을까? 엘프들이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한 것도 그들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인간 속에서 흩어질지언정 완전히 사라지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야! 수! 그런걸 잊어먹으면 어떻게 해? 너 정말 엘프 맞니?"

이 목소리는 흐흠? 마차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할 뻔했는데, 워낙 특색 있는 그 말투 때문에 듣고 말았다. 그 왠지 모를 특이한 분위기의 모험가 집단인 듯 했다. 아침 식사 때 자리에서 금방 자리에서 뜬다구 했더니, 아무래도 우리보다 먼저 출발을 한 듯 했다.

"미안해요. 정말 오랜만에 오는거라.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잊어먹었네요."

여자의 신경질적인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 엘프는 이전에 몇 번의 경우와는 달리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마차소리 때문에 못들을 정도로 희미한 소리.

"예하, 앞에 아침에 식당에서 보았던 그 일행들이 있고.... 아무래도 숲의 경계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마부석에서 열심히 말을 몰고 있던 카를이 그 일행들을 본 듯, 마차의 속도를 서서히 늦추며 우리 쪽을 보며 말을 했다. 흐흠, 내가 헛것을 들은건 아니었나보군. 창 밖으로 고개를 조금 내서 앞을 쳐다보니, 숲의 경계에 종종 나타나곤 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의 장벽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네 명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마차가 그들의 앞에 멈춰선 뒤, 이자벨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려갔다. 이자벨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네 사람.

"이자벨님, 정말 다행입니다. 이자벨님께서 안 오셨으면, 다시 엘프 포레스트로 돌아가야 할 뻔 했었는데..."

남자엘프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자벨을 보며 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주문을 잊으셨나보군요. 수.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이자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란 엘프를 보며 답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예의 그 엘프어로 주문을 읊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번 보아왔던 것처럼 빛과 함께 좌우로 갈라지는 나무들. 몇 번을 보았기 때문인지 예전처럼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진 광경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저 그런데, 이자벨님. 이자벨 님이라 불러도 되죠?"

분홍빛 머리의 그 여자가 마차 쪽으로 돌아서려하는 이자벨을 보며 뭔가 주저를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저 여자가 이자벨에게는 무슨 용건일까? 말하는 걸 보니, 수란 엘프랑은 서로 아는 사이 같았지만, 저 여자랑은 아무래도 모르는 사이인 듯한데...

"아, 네."

이자벨은 그 여자를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 저희를 투르크 훈국 국경까지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허엇? 그런 목적이었나? 하여간... 하긴 뭐, 그리 마차 안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지금 이 침묵 일행들로써는 여행이 심심하던 찰나에 잘 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네명이랑 같이 마차를 타면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연기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뭐 카를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하고 있어야하므로, 특별히 그 것 때문에 더 힘들거나 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제가 결정을 하는게 아니라..."

이자벨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그 여자를 보며 말을 했다. 하긴, 이자벨의 입장에서 뭐라 말하긴 그럴테니까. 아무래도 내가 내려야할 것 같았다.

"주인님아, 혹시 정말 저 사람들 태워주려구?"

클라리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리는 왠지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조용히 무시하고 마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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