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4장 열사의 왕국(1)
푸른바람 BlueWind·2004. 8. 22. PM 7:24:50·조회 2181·추천 130
에피소드 91 열사의 왕국(1)
"그럼 지금부터 대관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목소리는 세인트 녀석의 목소리인데, 하지만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는 세인트가 아닌 내꿈에 종종 등장하는 그 세인트와 닮은 녀석이 무언가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서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군중에 둘러싸인 채, 그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나. 분명 여기는 포세트립톤의 황궁인 듯한데, 왠지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습과 뭔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군중 속임에도 주위에 흐르는 정적. 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역시 정말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무지 화려한 느낌의 옷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행히도 이번에는 여자취향의 옷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대는 언제나 굳은 의지와 용기로 백성들을 지켜나갈 것을 플라타니오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앞으로 걸어온 플라타니오의 신관 복장을 한 남자가 서있고, 그 뒤로 수많은 플라타니오의 여사제들이 무엇인가를 들고 서있었다. 아마 내가 배웠던 바로는 저 복장이라면 저 남자의 신분은 대주교쯤 될 것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보았던 평범한 대주교의 옷과는 무엇인가 조금 다른 느낌.
"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플라타니오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적으로부터 지켜나갈 것임을 플라타니오 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쩝, 여자 옷이 아니라고 좋아했더니, 조금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분명 방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서 나온 목소리의 음색은 여자의 그 것이었다. 제발, 현실에서 스트레스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꿈에서까지만은 벗어나고 싶다고.
"그대를 플라타니오님의 첫 번째 기사로 임명한다."
내 앞에 있던 남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있던 세인트와 닮은 그 녀석이 내 쪽으로 걸어와서는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헝겊으로 싸인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서있던 대주교가 그 헝겊을 풀고 안에든 물건을 꺼내는 것이었다. 헛, 저건 황제가 가지고 있던 그 금빛의 검이잖아? 그리고 나서 대주교 역시 무릎을 꿇고 그 검을 내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천천히 그 검을 두 손으로 받아드는 나. 분명 한번 밖에 보지 못했던 검인데도 왜 이렇게 내 꿈속에서 계속 나타나는 것일까?
"그대는 언제나 자애와 따사로움으로 플라타니오님의 백성들과 함께 할 것을 플라타니오님 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
대주교는 내가 검을 받아들자 다시 일어서서 천천히 그리고 명확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네, 플라타니오 님의 백성들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임을 플라타니오 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역시 차분히 명확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나, 꼭 준비를 한 것처럼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느껴지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 그 감정은 이유를 모르는 내 마음까지 왠지 심란하게 만드는 듯 했다.
"당신을 플라타니오님의 첫 번째 사제로 임명합니다."
그전까진 분명 낮춤이었는데 갑자기 말을 높이는 대주교.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대주교는 무릎을 꿇고 있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대주교의 뒤에 서 있는 여사제가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연 후, 무언가를 꺼내었다. 헛, 저건 엄마의 목걸이...? 분명 그 목걸이었다. 그리고 대주교는 그 목걸이를 내 목에 천천히 걸어주는 것이었다. 목걸이가 내 목에 걸리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느낌, 꿈속일지언정 마음이 무지 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타니오님을 대신해 언제나 변함없는 굳건함으로 백성들의 앞에 서실 것을 맹세하시겠습니까?"
대주교는 그 전보다 천천히, 더욱더 힘있는 어조로 내 쪽을 보며 말을 했다. 굳건함. 그 단어가 주는 엄청난 무게를 지금 이 몸의 주인은 너무나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간의 적막이 있은 후. 난 역시 내의사와는 상관없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큰 위엄과 굳건함으로 플라타니오님의 나라를 지키는 기둥이 될 것임을 플라타니오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뒤에서 여사제가 내미는 상자를 받은 대주교는 그 상자를 열고 어떤 금빛의 관을 꺼내는 것이었다. 왕관치고는 그렇게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인가 어떤 힘 같은게 느껴지는 관. 그리고 그 관의 가운데에 박혀있는 신기한 빛의 보석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바로, 황제의 검과 엄마의 목걸이에 있던 그 보석이었던 것이다.
"당신을 플라타니오님의 백성을 이끄는 첫 번째 왕으로 받드는 바입니다."
그 말을 마친 후 내 머리 위에 대주교가 관을 씌워주고 그와 동시에 난 뒤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 황제의 그 금빛의 칼을 뽑아 하늘 높이 들었다. 그 순간 환호하기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으훔..."
난 계속된 여행 때문인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주위에 펼쳐진 어둠. 뭔가 썩 기분 좋지 않은 꿈 때문에 깬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마차 안에 있는 존재는 아미, 클라리, 나, 이렇게 셋 뿐 마차 가득 채우고 있던 다른 존재들은 모두 밖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아마 평소 였다면 내가 야영을 해야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난 어울리던 어울리지 않던 간에 플라타니오 최고 사제였던 까닭에 마차 안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복장 덕택에 내가 가지는 몇 안되는 이 점 중에 하나라고 해야할까?
난 왠지 모를 답답함을 해소 하고 차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마차 밖으로 걸어나갔다. 주위의 나무들 사이로 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난 마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나무들 사이 펼쳐진 하늘의 별들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나에게 힘을 주는 별. 예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운명이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운명. 난 왠지 모를 쓸쓸함에 조심스럽게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풀어 한손에 들고선 그 신기한 빛의 보석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별 빛을 받아 조금씩 그 빛을 뿜어내는 목걸이의 보석. 왠지 꿈속에서도 이 목걸이를 보았던 것 같기도 했다.
"부스럭."
주위가 워낙 고요했기 떄문에 작은 소리였지만 너무나 명확하게 내 귀로 들어왔다. 난 순간 긴장했지만 살기 따위의 느낌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을 놓고 라이트 마법을 시전 했다. 환해지는 주위, 그리고 소리가 들렸던 곳에는 블루라는 그 남자가 서있었다.
"죄송합니다. 예하. 제가 생각하시는데 방해가 된건 아닌지..."
뭐, 방해랄 거까지야. 하지만 아무리 살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척 같은걸 별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블루란 남자 역시 여러 가지 면에서 평범한 실력은 아닌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에요. 그냥 잠이 오지 않아서 바람을 쐬고 있었을 뿐인 걸요."
난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며, 블루라는 남자에게 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블루라는 남자의 시선이 내 목걸이를 향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워낙 신기한 보석인 까닭에 뭇사람들의 시선을 종종 끌곤 했지만 그 떄의 그런 사람들의 눈빛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블루라는 남자는 곳 시선을 거두고 싱긋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곁에 앉아도 결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예하."
뭐, 금방석 위에 앉는 것도 아니고 바위 위에 같이 있는데 결례라고 할 것까지야. 하지만 왠지 아까 목걸이를 향한 이 남자의 시선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뭐 지금까지 여러 가지 면에서 지켜보건데 이 남자가 나쁜 행동을 할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에요. 앉으세요. 이름이 블루 위스티리아라고 하셨죠?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라..."
난 블루라는 남자가 앉기 편하도록 조금 옆으로 비껴앉으며 말을 했다. 그런데 확실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분명 책같은데서 읽어본 듯한 느낌.
"아..네, 예하. 아마 예하께서 책에서 제 이름을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고조할아버님 성함 역시 블루 폰 위스티리아이셨으니까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 듯했다. 이전에 읽었던 리투안 역사서에서 피투안과의 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웠던 지휘관의 이름이 블루 폰 위스티리아였다. 그런데 지금은 블루 위스티리아라...귀족이 아니란 말인가?
"너무 곧게 사셔서 결국 모든 것을 잃은 분이시기도 하시죠."
블루의 그 짧은 한마디가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과 연관되어 내 의문에 답을 해주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블루 폰 위스티리아를 비롯, 당시 리투안의 수많은 명장들의 힘으로 피투안의 수많은 침입을 격퇴, 피투안을 정복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그들을 질투한 다른 귀족들의 모함과 역시 그들을 향한 백성들의 인기와 신망을 두려워하던 당시 국왕 필립 6세의 생각이 합쳐져 수많은 장군들이 반역죄를 뒤집어썼고 그들의 가문역시 몰락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그 뒤 한동안 리투안이 피투안의 침입에 시달렸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아, 그래..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정말 훌륭한 분이시죠. 인간의 어두운 욕심들 때문에 죄없이 해를 입으신 분이시지만요."
내 대답에 블루란 남자는 짧게 한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하였다. 그런까닭에 이렇게 많은 재주를 가지고도 방랑을 하며 사는 것일까? 지금의 황제라면 그런거 따지지 않고 이 정도의 인재라면 정말 좋은 대우를 해줄텐데. 무슨이유일까? 하긴 그 역시 그의 삶. 안타까웠지만 내가 관여할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이어지는 잠시간의 적막. 하지만 얼마 후, 블루는 등에 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예하, 혹 리투안 황실에 들르실 일이 생기시거든, 이 것을 전해주십시오. 대미궁에서 뤼팅 녀석으로부터 뺏은 것입니다. 스스로 대도라며 헛소리하고 다니는 녀석이죠. 예하께서 정말 믿을 만한 분이신가하고 잠시라도 의심했던 점 용서해주십시오."
블루가 내민 것은 바로 금빛의 관. 가운데에는 황제의 검과 내 목걸이에 박혀있는 것과 동일한 빛을 내는 보석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잠깐 이걸 이사람이 들고 있었던거야? 헛, 정말 인연이란건. 황제가 애타게 찾았고 실질적으로 내가 황제와 함께 남부지역으로 여행을 시작한 주목적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조금 뒷전으로 밀려있었긴 했지만.
"아니에요. 용서라뇨. 그리고 이 귀중한 것을...지금 블루님께서 직접 황실에 가져가신다면 수많은 보상을 받으실텐데..."
내 질문에 블루는 고개를 저으며 답을 했다.
"아닙니다. 예하. 우연히 얻게 된 물건이었고, 보상같은게 꼭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와 명예 역시 언제 가지고 언제 잃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일텐데. 또 그리고 제 일행 중 한명 역시 리투안 황궁에 가기는 곤란한 입장이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던, 블루는 마지막에는 곤란한 듯 엷은 미소를 띄운 채 답을 했다. 아무래도 그 일행이 아이리스란 그 여자를 말하는 듯한데...후후. 무슨이유인지 알 것 같다.
"아이리스양께서 집을 나오셨나 보군요."
나 역시 엷게 미소를 띄운채 블루를 향해 말을 했다. 그러자 블루는 곤란한 듯 머리를 조금 긁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대충 스토리를 보건데 귀족 아가씨가 바람나서 친구인 다른 일행들을 꼬셔서 같이 집에서 도망친 것 같은데. 훗. 블루라는 이 남자도 고생이겠군.
"그럼, 제가 세레니안느 폐하께 전해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어떤 분이 찾으셨는지도 꼭 전해드릴게요. 나이팅게일 소공녀 이야기는 빼고."
내 말에 블루란 남자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웃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황제으 수많은 고민거리들 중 하나가 해결되는 것인가? 큰 도시에 가는데로 황제에게 연락을 해야할 것 같다. 요즘 이래저래 힘들텐데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왠지모를 인연의 기운. 그런데 왜 계속해서 이 남자에게 그런 느낌이 느껴지는 것일까? 하긴 이렇게 같이 여행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인연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