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4장 열사의 왕국(5)

푸른바람 BlueWind·2004. 12. 5. AM 1:08:28·조회 1962·추천 82
에피소드 95 열사의 왕국(5)

“전군, 공격하라!”

셀주크 투르크 훈국의 장군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투르크 훈국의 병사들은 베루완족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적어도 5천명 이상인 듯 했다. 아무래도 둘의 본격적인 회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베루완족의 앞을 지나간, 한마디로 완전히 우리가 짚을 짊어지고 불로 뛰어든 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했다.

우리를 추격하느라 정신없이 돌격해오던 베루완족 병사들의 측면부분을 파고드는 투르크의 병사들. 꽤 경험이 많은 병사들인 듯 그 움직임이 일사분란 했다. 그 공격에 베루완족의 병사들은 제대로 말의 방향을 돌리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난 이 황당하며 어이없는 상황에 그냥 피식 웃은 후 꺼냈던 클라리를 다시 줄여서 목걸이에 걸었다. 개 폼에 마음의 준비까지 다했더니 정말....하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굳이 내가 나섰다가 나중에 뒷수습하느라 고생하지는 않아도 될테니까.

난 마차의 지붕에서 길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얼핏 마차안을 쳐다보니, 아이리스가 감탄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얌전해 보이던 최고사제가 저런 것도 할줄알아 란 표정인 듯 했으나, 그냥 무시하는게 역시 내 정신 건강상 좋을 듯 했다.

전투의 흐름은 이제 투르크의 병사들 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듯 했다. 베루완족은 산산히 흩어져 각개 격파당하거나 사막의 저쪽으로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십여명의 병사들이 말을 몰고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걸 본 카밀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마부석에서 내려 내 곁에 섰다.

“괜찮겠습니까? 예하.”

“투르크 훈국의 국교는 미탄젤이니 괜찮을 것 같아요. 카밀경.”

카밀의 물음에 난 카밀을 보며 안심해라는 의도로 싱긋 웃으며 답을 했다. 어이, 그런데 그렇게 얼굴이 빨개질 필요는 없잖아 카밀. 하지만 나역시 여전히 조금 안심이 되지 않은 까닭에 아미를 힐끗 쳐다보니,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아미가 답을 해주었다.

‘전의나 살의는 없다 주인.’

아미의 말을 참고로 하건데 아무래도 베루완족과는 다른 뭔가 용건이 있어서 오는 듯한데, 뭐, 어짜피 투르크 훈국의 국왕에게 가는 길이었으므로, 앞으로 또 다시 이런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는 것도 필요할 듯 했다. 호위병 같은걸 붙여준다면 이번 같은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덥잖은 도적들이 덤빈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솔직히 이제는 최대한 귀찮은 일엔 안 말리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냥 사병들은 아닌 듯 했다. 특히, 그들의 중심에서 말을 몰고 오는 중년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금 마른 체격에 검은빛 곱슬머리를 가진 그는 활을 등에 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일 듯한데, 아무래도 최고사제란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병사들은 마차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에서 내린 다음, 우리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만약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말을 타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니, 어느 정도 안심을 해도 될 듯 했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쪽으로 걸어온 그들은 내 앞에 와서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했다.

“성모님, 전 셀주크 투르크 훈 국, 토벌군 총 사령관 슐레이만 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최고사제 위에 오르셨다는 것은 오스마니아의 사제들로부터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성안을 뵙게되다니, 제 생애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성모님이라, 하긴 미탄젤의 모신이 플라타니오 였으니까. 그런 식의 호칭이 틀리지도 않은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지. 게다가 성모님이라니, 아무래도 어감상 좀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상대방이야 별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듣는 입장에선 좀 그랬다. 뭐, 상대방이 이 사실을 아는 것도 아니고, 물론, 알아서도 안되는 것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었다. 아무튼 정확하게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이 사람,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더니, 토벌군 총사령관을 맡을 정도라면 투르크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장군이란 말이었다.

“이렇게 도움을 주시다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슐레이만 장군. 이 모든게 그 분의 뜻이겠지요.”

난 슐레이만 장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을 했다. 뭔가 나도 거창한 미사여구로 답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는게 나을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대충 슐레이만 뒤쪽으로의 전황을 살펴보니, 이제 거의 수습된 듯 했다. 포로들을 생포하여 한 곳으로 몰아넣고 있었고, 부상당한 병사들 역시 한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일사분란하게 다시 대열을 정돈하고 있는 모습이 많은 훈련과 경험을 가진 부대라는 느낌이 가득 풍겨졌다.

“아닙니다. 성모님. 저희가 성모님의 자애로운 은총을 입은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아니셨다면 저희 역시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긴, 완전히 이번 전투에서 미끼 역할을 한 꼴이었으니, 만약 정식으로 전투를 했다면 수 적인면에서나 투르크 훈국이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이런소리하기는 그렇지만, 혹시 알고도 우리 마차가 이 곳에 도착할 때까지 도움을 주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그게 현명한 지휘관이 갖춰야할 자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미끼가 된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그냥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저, 성모님. 혹시 오스마니아로 향하시는 길이라면, 저희에게 호위를 하게 해주시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내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 난 이제야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제안을 받아들이면 곤란하겠지?

“큰 일로 움직이시는 장군께 부담이 될텐데,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그냥 지금처럼 오스마니아로 향하는게 좋을 듯하네요.”

혹시, 설마 내가 거절한다고 바로 ‘아 그러시다면 성모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따위의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시다면, 성모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런 젠장할, 눈치도 없는게 사람이냐? 난 조금 당황했지만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대놓고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했지만 역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슐레이만의 말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모님. 이 번 전투로 저희의 이번 원정의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저희 역시 오스마니아로 귀환해야하는데, 성모님께 무례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테니 동행하도록 허락해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훗, 눈치가 꽝은 아니었군. 쩝. 이런 일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내 신세가 다시 서글퍼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게 내가 받은 수많은 빚을 갚는 일 중에 하나였으니까.

“이 역시 그 분의 뜻인가 보군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장군”

내가 생긋 웃으며, 슐레이만 장군을 쳐다보며 말을 하자. 슐레이만은 잠시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내 시선을 피하며 답을 했다. 으흠, 반응이 조금 수상한데...뭐, 설마? 내가 예상하는 그런건 아니겠지?

“흐, 흠...네. 성모님. 그럼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병사들의 정돈이 끝나는대로 오스마니아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후, 슐레이만 장군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하고는 급히 병사들을 이끌고 살아졌다. 휴, 이제 어쨌든 오스마니아에 도착할 때까진 별다른 사고가 없을 듯 했다. 이 긴 여정 정말 언제나 끝이 나련지. 난 다시 마차에 오르며 짧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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