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보석 14장 열사의 왕국(11)

푸른바람 BlueWind·2005. 2. 8. AM 3:33:12·조회 2131·추천 95


에피소드 101 열사의 왕국(11)

케밀 파샤는 조금 걸음을 빨리하더니, 그 큰 문으로 다가가 문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밝은 빛이 가득 뿜어져 나왔다. 그 강렬한 빛 때문에 한동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밝은 빛에 눈이 조금씩 적응 되며, 방안에 있는 거대한 원통형의 물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성모님.”

케밀 파샤의 재촉에 도대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에 대한 관찰을 잠시 멈추고,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안에 들어서니, 그 크기가 방이라고 부르기에는 엄청나게 컸다. 엄청난 규모, 작은 마을 전체 규모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큰 크기. 이런 방을 지하에 두고 지상의 누만시리아가 그렇게 튼튼하게 서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하긴, 셀주크의 건축 기술 역시 세계적으로 알아줄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지?

방 안에는 미탄젤 사제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있는 이상한 물체, 밖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은 그 물체가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이란 말인지, 방안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큰 궁금증이 생기는 듯 했다. 내가 읽었던 책 어디에도 저런 물건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오셨습니까? 성모님.”

난 그 신기한 물체를 구경하느라 살라딘이 다가온 것조차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온통 의문투성이였으나 그 모든 의문들을 잠시 잠재우고 살라딘을 향해 예를 표했다. 뭐, 살라딘이 어련히 답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굳이 조급해 한다고 내 짧은 지식으로 저 물체의 정체에 대해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네, 전하. 그런데 저희를 이 곳엔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내 질문에 살라딘은 그 특유의 바람둥이 미소, 여자들이 보기엔 정말 멋지구리한 표정을 얼굴에 띄운 채 잠시 말을 멈추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성모님과 일행 분들을 리투안으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서 입니다.”

잠깐 그런데 어떻게? 살라딘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뭔가 확실한게 있는 듯한데, 그 것과 지금 이렇게 이 지하로 내려온 것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지, 어딘가로 안전히 모시기 위해서라면 지하로 굳이 내려올 이유가 없잖아? 그 것도 이런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물체가 놓인 이런 방에. 난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다는 표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대신에 뒤에 있던 클라리가 결국 자신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살라딘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전하. 그렇다면 이렇게 지하로 내려올 이유가 없지 않나요?”

클라리의 질문에 살라딘은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을 한 채, 이번에 역시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참, 고민거리 해결해 준다는 핑계 하에 사람 속을 다 끍어내리는군. 확실히 국왕이 아니라 그냥 일반 평범한 청년이었어도 정말 잘 살아남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 속을 태우면서. 훗.

“성모님, 그리고 여사제님. 물 속을 항해하는 배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잠깐, 이 녀석 본론에 대한 답을 하지는 않고 말을 돌리다니 그냥 곱게 말해주면 좋을 것을 꼭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말을 돌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니까. 그나저나 물 속을 항해하는 배라니? 배라는 존재 자체가 물 속에 처박히는 순간, 침몰해버리는 것이 아니었나? 솔직히 바다와는 격리된 큰 강도 없는 내륙의 환경에서 살았던 까닭에 확실히 장담을 할 수는 없었지만, 상식적인 면으로 볼 때 물 속을 항해하는 배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배는 물 속에 들어가면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요? 전하.”

내가 차마 체면상 던지지 못하는 질문들을 클라리가 대신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었다. 이럴 때는 도움이 되긴 되는군. 수석 보좌관 나으리. 훗.

“이론상으로는 그렀습니다만, 고래나 수룡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어떻게 그 큰 몸집으로 자유롭게 물 속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들이 할 수 있다면 배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정확한 살라딘의 지적, 실제로 듣고 보니 일리는 있었다. 배는 반드시 물 위에 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론상으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무리가 많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 속을 항해하는 배라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닌 듯 했다. 공기 호스 같은 걸 연결해서 얕은 바다를 움직이는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깊은 바다를 항해한다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우리 일행들의 시선을 본 살라딘은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직접 보시는게 나을 듯 하군요.”

그 말을 마친 살라딘이 재상 케밀 파샤를 쳐다보자 케밀 파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방 한가운데의 그 거대한 둥근 물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미탄젤의 사제에게 무언가 말을 하지 사제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 둥근물체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 그럼 직접 확인하십시오. 성모님과 사제님들.”

살라딘의 말이 끝난 직 후, 거대한 원통형의 물체가 갑자기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잠깐, 저 커다란 쇳덩이가 그럼 지금까지 물 위에 떠 있었다는 말인데? 하긴 30년전 항마전쟁 시 코리안트 제국의 함선들이 쇠로된 방어 철쇄와 무거운 금속으로된 철포를 싣고 있었다고 하긴 했지만 어찌 됐건 그 함선의 주요한 구성 재료는 나무였다. 하지만 일행들은 안에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라던가 하는 한심한 질문은 살라딘에게 던지지 않고 있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살라딘이 저렇게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쇳덩이가 가라앉은 곳에서는 공기거품들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쇳덩이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이 꽤 깊은 깊이로 들어간 듯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것 역시 멈춰졌다. 뭔가 변화가 있는 듯 했다.

살라딘은 여전히 아까의 그 미소 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물거품이 사라진 그 곳을 그냥 아무말 없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물에서 그 원통형 물체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에 그 물체는 물위로 가볍게 솟아올랐다. 오! 정말 물 속을 항해할 수 있는 배라는 말이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정말 물 속깊이 잠겼던 쇳덩어리가 자신의 힘으로 떠오른다는?

주변에 눈치를 살펴보니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던 일행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 물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그렇다면 저 배로 저희를 리투안에 데려다 주신다는 말씀이신지?”

살라딘이 이런 지하 깊은 곳까지 불러서 우리에게 저 배를 보여주는 의미는 역시 하나, 그 것 밖에 없을 것이었다. 고민거리. 확실히 큰 고민이었지 셀주크까지 오는 것은 괜찮았으나 전란에 휩싸인 대륙을 다시 어떻게 횡단하여 돌아갈 것인지, 큰 도움은 안 될지는 몰라도 황제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면 최대한 일찍 돌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여행을 출발하면서, 그리고 엘프 포레스트를 지나면서의 고민 역시 같았던 것이고.

살라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재밌는 장난을 실행한 후의 꼬마애들이 하는 표정과 유사한 그런 표정을 한 채 답을 했다. 이 녀석 우리 일행들 놀려먹는게 그렇게 재밌나? 보복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로군. 훗.

“네, 성모님.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방법이라 사려 됩니다. 게다가. 이 배의 추진 동력은 신성력이므로, 예하께서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더 빨리 목적하신 곳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