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의장용검 과 칠성검
天上惡童·2002. 3. 29. PM 10:11:27·조회 2598


조선시대 인검 중에 현재 실물이 남아있는 것은 모두 합쳐 7자루이다. 이중에 네 자루가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세자루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인검들은 모두 복제품이다.
인검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각종 검(이름과 상관없이 실제 양날 칼의 전부)들은 기본적으로 의식용, 의장용 칼이지 실전용의 칼은 아니었다. 인검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의장용 검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조선왕조실록의 성종실록나 연산군일기에 사인검, 삼인검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이 확실하다.
실전용 칼의 경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대에는 양날 칼인 검(劒)을 주로 사용하다가 점차 외날 칼인 도(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실전용 칼의 경우 이미 삼국시대에 검(劒)대신 도(刀)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삼국시대의 왕릉급 고분에서 출토되는 호화로운 장식이 된 의장용 칼들도 기본적으로 도(刀)일뿐, 검(劒)은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경주 계림로 고분군의 보검이 유일하다) 이처럼 유물을 토대로 볼 경우 삼국시대에는 의장용 칼도 대부분 도를 사용했을 뿐 검을 사용한 예는 드물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한때 거의 사라졌던 검이 의장용 칼로 부활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의식용 검들은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올라갈수는 없고, 빨라야 고려 중기 이후에 출현했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아주 조심스럽게 의장용 검의 기원이 통일신라로 소급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 칼 2자루는 양날 칼인 검이었다) 육군박물관 소장 인검의 경우 전체적인 분위기가 송나라시대의 검과 유사한 점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조선시대 의식용 검의 기원은 고려시대에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인검과 유사한 형태의 검을 그려놓고 화식검(華式劒)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식용 검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중국 청나라 시대의 의식용 검 실물 유물중에 조선시대의 검들과 유사한 것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검, 칠성검, 보검들 대부분은 중국 송명청대의 의식용 검들과 똑같은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현존 유물로만 볼때 우리나라의 인검들은 중국제 보검에 비하여 더욱 장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칠성검이나 보검류의 경우에도 손잡이나 칼 고등이의 모양새가 중국식 검들과는 조금식 차이가 있다.
더 많은 자료는
http://www.sehyun-sword.co.kr/dk-chosun-intr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