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天上惡童·2002. 3. 29. PM 10:18:28·조회 2447

◎石上神宮 七支刀
한일고대사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天理市 석상신궁(石上神宮)에 있는 한 자루의 칼이다. 이 칼의 이름은 칠지도(七支刀)이고. 그 형상은 오랜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상징한다.칠지도의 길이는 75cm 이며 도신(刀神)의 양쪽에는 3개의 사슴뿔과 같은 가지가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그 도신 의 양면에 61자의명문(銘文)이 금으로 상감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명문을 처음으로 읽은 사람은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석상신궁의 대궁사(大宮司) 이었던 관정우(菅政友)로 도신 의 녹을 벗겨낸 사람이다. 그런데 국내외 학계의 일부에서는 그 당시 관정우가 일본측에 불리한 명문의 일부 글자를 삭제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칠지도의 명문해석은 한일고대사의 진위를 가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칠지도 에 대한 기록을 「일본서기」와 「고사기」에서 찾아보면 『신공(神功) 52년 백제의 구저(久 )가 칠지도 와 칠자경(七子鏡)을 비롯하여 각종의 귀한 보물(重 )을 가져왔다』하였고 또한 응신기「 應神記」에도『백제국주(百濟國主) 조고왕(照古王)이 횡도(橫刀) 및 대경(大鏡)을 보냈다』하여 백제 근초고왕 때 이 칠지도 가 왜에 전해진 것으로 되어있다. 1천6백년 동안 석상신궁에서 신물(神物)로 보존되어온 칠지도 가 만들어진 4세기 후반 백제의 국력을 살펴보면 지나 대륙(중국) 쪽으로는 요서부터 양자강을 거쳐 유성(오늘의 廣西 자치구 柳州의 柳城) 까지 장악하고 있었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왜열도는 백제왕족을 비롯한 백제인 들이 대거 쇄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제에서 만든 칠지도의 명문은 다음과 같다. 「泰和四年五月十一日丙牛正陽. 造百練鐵七支刀. □酸百兵. 宜供供侯王.□□□□作.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世□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 傳示□世』
이 명문에서 「태화4년(泰和四年)」의 태화는 지나(중국)의 동진 연호(東晉年 )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로 돼있지만 이때 대륙까지 석권하고 있던 백제가 하필 동진의 연호를 빌려 썼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태화」4년 (369)은 근초고왕 24년으로 이 무렵은 백제가 사방을 크게 아우르던 시기인 것이다. 다음 「□벽백병(□酸百兵)」에서 □부분에는 희미하게 글씨가 보이는데. 「출(出)」또는「생(生)」과 닮은 글자로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맥으로 보아「개(豈)」로 읽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벽(酸)」도 자전에서 보면「피(避)」와 함께 통용할 수 있는 글자이므로 이 명문을 개피백병(豈避百兵)으로 읽으면 「백병을 어찌 피하겠느냐」는 뜻이 된다. 이는 곧 백제의 군사적 위력을 크게 과시하는 것이다. 이어 「의공공후왕(宜供供侯王)」에서 후왕(侯王) 은 백제에서 왜로 보낸 왕을 말하는 것이며 공공(供供)의 「공(供)」을 자전에서 찾으면 「급(給)」의 뜻과 함께 「봉(奉)」(받들음) 의 뜻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공(供供)」은 말 그대로 「받들고 받들라」는 뜻이다.
그 다음 「□□□□작 (□□□□作.)」은 어떤 글자가 빠졌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지만 「백제□세□(百濟□世□)는 「백제왕세자(百濟王世子)로 읽는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생성음(奇生聖音)」은「신령스럽게 태어난 샌님」이라는 뜻인데, 여기서의「샌님」은 지금도 쓰이지만 고대국가에서는 더 올린 경칭으로 사용됐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을 검토해서 다시 칠지도의 명문을 풀어 읽으면 다음과 같다.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 조백연철칠지도.泰和四年 五月 十一日 丙午正陽. 造百練鐵七支刀. 개피백병. 의공공후왕. □□□□작. 豈避百兵. 宜供供候王. □□□□作. 선세이래미유차도. 백제왕세자기생성음.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고위왜왕지조. 전시후세. 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에 백번(百番)이나 쇠붙이를 단야(鍛冶)하여 이 칠지도를 만들었다. 어찌 「백병」을 피하겠느냐. 마땅히 「후왕」을 받들고 받들라. 선사 이래로 이와 같은 칼은 아직 없었다. 백제왕세자는 신령스럽게 태어난 샘님이다. 그래서 왜왕이 되는 것이고 그런 취지에서 이 칼을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이 칼을 1천6백여년 동안 잘 보존해 오고있는 석상신궁은 백제근초고왕을 시조로 하는 물부수(物部首)로부터 연원이 시작한다. 이 신궁은 물부씨(氏) 그 후손들인 삼(森=모리)씨들이 명치유신 이후 일제시대를 빼고는 그 이전부터 지금 까지 궁사로 신불인 칠지도를 지키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