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그리고 결말의 홍보맨드(잠수하기 전의 일족의 가소로운 발악?!)

도리도리·2003. 2. 10. 오전 12:15:21·조회 168
나와 그녀의 사이엔 벽이 있었습니다.
보이질 않았으나 그 벽은 거울 같이 날 지나갈 수 없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왜 몰랐을까요?
그 벽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나의 나약한 상상과 쑥스러움이 만들어낸 급조된 벽이라는 것을
있지도 않았던 벽을 쌓으면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만족 지었습니다.
차가운 벽을 매만지며 그녀의 숨결마저 그저 난 기억하는 것으로만 만족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러,
홀로 나 자신이 나약해지고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멀리, 느껴지도록 사라져 가는데
나는 그저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여겼습니다.
딱 한 걸음, 아니 바로 코앞에 그녀가 울고 있어도,
난 그 모습을 보며
그 만들어진 벽 뒤에서 울며, 나약해지고
스스로가 그녀에게 멀어졌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나였다고
그녀가 그리워했던 것은 나였다고
내 마음 구석에선 속삭였지만
그 다른 나조차도 부질없는 욕망으로 치부해버리며
난 그렇게 어둠 속에 모든 것을 파묻었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본래 우리 사이엔 벽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을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요?
본래 우리 사이엔 서로 사과해야 할 일도, 웃으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멀어져야 할 이유 따위도 없었다는 것을
그저 작은 컵 속의 커피를 마시더라도, 추위 속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기대어 있어도.
그것에 마냥 행복했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면서부터
나는 지나치게 어른이 되었고
그 소심함이 보이질 않는 차갑고 얇은 벽을 만들어
서로 아파서 흐느낄 때 만나야 했다는 사실조차를 망각해버렸다는 것을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쓰린 아픔 뒤에
생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울음과
아파서 너무 아파서
숨쉴 수도 없을 듯한 마음의 무너짐 속에서
알아버렸다는 것 자체를...

사과할 수 있을까요?
나의 무관심 아닌 무관심 속에
더 없는 슬픔을 알아버린
알지 않았음을 바랬던 그 감정을 너무나도 절실히 깨달아버린
서서히 무너져가며 나만 외로이 바라보는
그녀의 곁에 서서......

이 글은 옛 글터(2013–2021)에서 보존된 읽기 전용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