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처음 무언가를 잘하게 됐던 순간

잘한다는 것의 의미

현이이야기꾼·2026년 5월 15일 AM 02:35·1,875

잘 한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절대적인 지표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에서 HR 업무를 맡은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팀장" 혹은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동료들을 평가했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각종 인사제도를 세팅했다. 수많은 인사제도는 결국 "잘 하는" 직원을 골라내기 위해 존재한다. 못 하는 직원을 격려하고 성장시키는 것도 인사제도의 역할이라고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명분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길어질 수 있으니 여기서는 접어두자.

인사제도를 설계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잘 한다"는 것이 매 순간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 리터러시"가 잘한다의 기준에 들어올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뿅, 하고 나타났다.

그렇다면 AI 리터러시를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기업 차원의 정의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잘 하는 걸까. 이 회사가 정의한 AI 리터러시와는 다른 결의 역량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 회사와 맞지 않을 뿐인 사람이 있는 것이다.


처음 "잘 할 수 있겠다"고 느꼈던 건 중학교 글짓기 시간이었다. 판타지 소설에 빠져 있었고, 흉내라도 내보고 싶어 써봤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문예창작 동아리에 들어갔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수상이 쌓이는 동안,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착각했다.

착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는 더 잘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잘 쓴다"의 의미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누구는 문법은 엉망이어도 상업적으로 글을 풀어내는 감각이 있었다. 누구는 스토리를 빚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누구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것을 다 잘해야 잘 쓰는 것일까. 어느 한 부분만 잘하면 되는 것일까. 어디부터가 잘하는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못하는 영역일까.

그때는 답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글쓰기를 놓았다.


10년이 지나 인사제도를 설계하는 자리에 앉고 나서야, 그때 답을 못 찾았던 게 당연했다는 걸 안다. 답이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회사에서 "잘 하는 직원"을 정의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그 정의가 얼마나 임의적인지 매번 깨닫는다. 우리가 만든 평가 기준은 이 회사, 이 시점, 이 사업 모델 안에서만 유효하다. 같은 사람이 다른 회사에 가면 평범한 직원이 되기도 하고, 빛나는 인재가 되기도 한다. AI 리터러시가 어느 날 갑자기 핵심 역량으로 등장했듯,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역량은 몇 년 뒤 의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나는 잘 쓰는 걸까"라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던 건, 사실 잘못된 질문에 답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잘 쓴다는 단일한 기준은 처음부터 없었다. 문법이 좋은 사람, 스토리에 강한 사람, 아이디어가 폭발하는 사람 — 그들은 모두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글짓기 대회의 수상 같은 절대적인 인정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HR을 잘 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어떤 자리에서는 내가 잘 하는 사람이고, 어떤 자리에서는 아닐 것이다. 그게 내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일 때도 있을 것이다.

처음 무언가를 잘하게 됐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글감 앞에서, 나는 오히려 잘한다는 착각이 깨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착각이 깨진 순간이야말로 진짜 분기점이었다. 잘 한다는 것을 절대적인 좌표가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로 보기 시작한 지점.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평가의 한계를 잊지 않게 해준 지점.

잘 한다는 건 결국,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의미 있게 기능한다는 뜻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년차 인사담당자가 된 지금, 나는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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