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10년 전 오늘의 나에게

파편인간

성원·2026년 5월 13일 AM 06:37·2,042

너무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잠이 깼다.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알기는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면 최소한의 품위는 지킨 채 삶을 마감하고 싶다. 다만 아직 이룬 것도, 세상에 쉼표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내가 마침표를 고민하기에는 인생이 지나치게 짧기도 하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삶을 이해하기도 전에 죽음을 고민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하고 모순된 일인가, 라는 생각이 싹튼다. 하지만 오늘 뿌려진 씨앗이 언젠가 열매를 맺을 해의 날씨를 걱정하는 것처럼, 내 의지와 무관한 것들에 마음을 소모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짓눌린 나 자신뿐인 것 같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방향으로 던져진 이상, 죽음이라는 궁극의 목적지를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는 존재 역시 인간일 것이다.

외부와는 종종 타협하면서도 나 자신과는 타협을 하지 못하고 언제나 날을 세워 대립한다. 하지만, 마치 칼이 숫돌에 부딪혀 날카로움을 유지하듯, 그렇게 살아가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을까? 많은 지식을 천착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려 했지만, 어찌보면 모든 기억은 두개골 속 뇌에 저장된 정보일 뿐이다. 내 뇌 안의 정보는 시간이 그 위를 빗질하듯 스쳐지나가면 퇴색될 것이고 죽음 뒤에는 모두 원자로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지만, 인류가 쌓아놓은 지식과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의 근원적 이데아는 남아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이 한 줌의 위안거리가 될 때가 있다. 그것을 반추할 주체인 나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안과 질투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이처럼 삶에 대한 짧은 식견으로 죽음을 고민하는 나는 얼마나 오만한 사람인가. 어쩌면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 파편들의 집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들 앞에서 지나치게 저자세로 살아가는 일만큼은, 남아 있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마저도 삶을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나의 교만일 것이다.

만약 삶이 0과 100 사이 어딘가에서 끝난다면, 나는 자연수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무리수처럼 남고 싶다. 쉽게 정리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존재로.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서는 괄호 밖의 1 같은 사람이고 싶기도 하다. 곱해도 삶의 값 자체를 바꾸지 않는 숫자. 내가 누군가에게 변수로 작용한다면, 결국 그 사람의 삶을 크게 흔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방향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나쁜 흔적으로 남는 일은 견디기 어려운 끔찍한 일일 것 같다. 결국 누군가의 기억 한 조각으로는 남고 싶으면서도, 그 삶에는 흔적 없이 휘발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모순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수도쿠 퍼즐과도 닮아 있다.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사람은 망설인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하나의 답을 골라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선택의 결과를 퍼즐이 끝날 때까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의 고민은 내일의 망상에 물과 비료가 된다.

살아가면서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모르는 것들도 셀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인생은 끔찍할 만큼 짧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 역시 언젠가는 수정되거나 주석이 덧붙여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를 확신하듯 말하는 사람들을 멀리한다. 스스로도 정의하지 못하는 거대한 단어들에 ‘진리’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결말을 먼저 알려주고 영화를 보라고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진리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삶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스스로와 고민해도 충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 답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썩어가는 팻말을 붙든 채 죽은 백골처럼 남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식이라는 망망대해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는, 어쩌면 지나치게 오만한 생각으로 오늘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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