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대지와 기계들의 차가운 침묵
지구가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세한 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것은 지하 3,000미터 벙커의 티타늄 골조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으로 변했다. 우르릉, 쾅. 천장에서 석회 가루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고, 책상 위의 커피잔이 저절로 미끄러져 바닥에 깨졌다.
지진이 아니었다. 이것은 행성 전체가 겪는 고문이었다.
한 박사는 메인 스크린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입에서 신음과 욕설이 한데 뒤섞여 새어 나왔다.
"조석력 수치… 지각 변동 계수가 위험 한계선을 넘었어!"
상황실의 메인 스크린에는 지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가오는 갈색왜성 '이그니스'의 중력이 지구의 앞쪽을 강하게 당기고, 뒤쪽은 약하게 당기면서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타원형으로 쥐어짜고 있었다. 마치 달이 바닷물을 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들 듯, 이그니스는 단단한 암석 덩어리인 지구의 지각을 하루에도 수 미터씩 들어 올렸다 놓기를 반복했다.
땅이 솟구치고 꺼질 때마다 맨틀 깊은 곳에서부터 마찰열이 발생했다. '조석 가열'. 덕분에 식어가던 지구의 내핵이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그 과정은 지표면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재앙과도 같았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고 있어..."
시온은 흔들리는 벽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루미너스의 예민한 청각 기관에는 벙커 밖 암반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생생하게 들려왔다.
"비유적인 표현은 삼가, 시온."
옆에 서 있던 동료 루미너스, '카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데이터 패널을 조작하고 있었다.
"이건 비명이 아니라 지각판의 응력(Stress) 해소 과정일 뿐이야. 그리고 현재 데이터를 볼 때, 프로젝트 헤파이스토스의 성공 확률은 2.8%로 하향 조정됐어. 엔진 기반암이 붕괴될 가능성이 90% 이상이야."
카이의 눈동자는 차가운 은색이었다. 그의 뇌에 심어진 제어 칩은 '공포'라는 변수를 완벽하게 소거했다. 그에게 이 상황은 두려운 재난이 아니라, 단지 '생존 확률이 극히 낮은 수학적 모델'일 뿐이었다.
"2.8%... 통계적으로는 '불가능'과 동의어지.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벙커의 생명 유지 장치 가동 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야."
"아니."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칩이 보내오는 ‘진정하라’는 신호가 뒷목을 따끔거리게 했지만, 그는 억지로 그 신호를 무시했다.
"확률의 문제가 아니야, 카이. 들어봐. 땅이 단순히 부서지는 게 아니야.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어. 지구가... 살고 싶어 한다고."
"무의미한 의인화야. 너의 칩은 불량품이군."
카이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온은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리듬을 느꼈다. 쿵, 쿵. 그것은 죽어가는 행성의 단말마가 아니라, 새로운 심장을 이식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맥박이었다.
운명의 시간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엔진 점화 카운트다운 1시간 전.
[경고! 제1섹터 지반 융기 발생!]
[마스터 밸브 정렬 오차 감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상황실이 붉은 비상등으로 뒤덮였다. 한 박사가 모니터로 달려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화면에는 12,000개의 엔진을 제어하는 핵심 장치, 제1섹터 마스터 밸브의 상태창이 떠 있었다. 방금 전 몰아친 조석파 때문에 지반이 솟아오르면서, 밸브를 지지하던 축이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다.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됩니까?"
연구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박사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숫자를 읽었다.
"0.04도."
상황실에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다. 고작 0.04도. 눈으로 보면 티도 나지 않을 미세한 각도였다. 하지만 우주 스케일에서 0.04도는 죽음의 숫자였다.
카이가 즉시 시뮬레이션 결과를 띄웠다.
"추력 벡터 불일치. 이 상태로 엔진 12,000기를 점화하면 편심(Eccentricity)이 발생합니다. 지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됩니다."
화면 속의 지구가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텀블링(Tumbling). 자전축이 붕괴된 행성은 통제 불능 상태로 회전하며 궤도를 이탈했다. 이그니스의 중력권에 안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시나리오였다.
"지구의 절반은 영원히 이그니스를 보지 못해 얼어붙고, 나머지 절반은 복사열에 타버리겠지. 인류 멸망 확정이야."
카이의 분석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원격 제어! 유압 장치로 각도를 수정해!"
한 박사가 고함을 질렀다. 오퍼레이터들이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응답 없음]이라는 차가운 메시지뿐이었다.
"안 됩니다! 영하 210도의 추위에 유압 라인이 동결되었습니다. 원격 신호가 먹히지 않아요!"
한 박사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감싸 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50억 명이 목숨을 바쳐 만든 엔진이었다. 20년을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그런데 고작 바늘구멍만 한 0.04도의 오차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려 하고 있었다.
"직접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시온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누군가 현장으로 가서 수동 휠을 타격해야 해요. 엔진이 점화되기 직전, 그 진동에 맞춰 밸브를 강제로 돌려놓으면 됩니다."
"미친 짓이야."
카이가 즉각 반박했다.
"외부 온도는 질소 액화점인 영하 210도야. 게다가 지금 지표면은 이그니스의 중력 때문에 리히터 규모 8.0 수준의 진동이 계속되고 있어. 거기에 케슬러 증후군으로 인한 위성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지."
카이는 데이터를 띄워 시온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생존 확률 0%. 올드 원(구세대 인류)은 나가자마자 즉사하고, 우리 루미너스조차 방한복을 입어도 10분을 버티기 힘들어. 무엇보다 엔진 점화 시 발생하는 구조진동과 가속충격은, 가까이 있으면 네 내장을 파열시킬 거야. 타격 직후 즉시 후퇴 안전거리까지 빠지지 않으면 죽는다는 뜻이야."
논리적으로 완벽한 반대였다. 상황실의 누구도 카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개죽음이 될 확률이 99.9%인 길.
하지만 시온은 헬멧을 집어 들었다.
"0%가 아니야, 카이."
"데이터를 부정하지 마. 칩의 오류가 너를 비이성적으로 만들고 있어."
"오류가 아니야."
시온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네 칩은 '생존'만 계산하지만, 내 칩은... '의미'를 찾고 있거든."
시온은 한 박사를 바라보았다. 절망에 빠져 있던 늙은 과학자의 눈에 다시금 희미한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박사님, 아까 말씀하셨죠. 저 엔진은 50억 명의 묘비라고."
시온은 천천히 에어록을 향해 걸어갔다.
"묘비가 우주로 날아오르려면, 누군가는 마지막 성냥을 그어야죠."
"시온아..."
"걱정 마세요. 저에게는 아직 지구가 숨 쉬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 리듬에 맞추면... 할 수 있어요."
치이익-. 에어록의 감압이 시작되었다. 카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계산되지 않는 변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
시온은 닫히는 문 너머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기계는 계산을 하지만...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으니까요."
쿵.
육중한 해치가 닫혔다. 다시 한번, 시온은 홀로 침묵의 바다에 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발밑에서 울부짖는 50억 명의 영혼과, 하늘에서 기다리는 외눈박이 거인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시온은 자기부상 부츠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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