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법(5)

현이이야기꾼·2026년 5월 23일 PM 01:00·3,307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5년쯤, 매일 쓰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 매일 쓰지 못했다. 정확히는, 시작 → 멈춤 → 다시 결심 → 멈춤을 5년 반복했다. 매일 1000자를 결심하고 사흘 만에 멈췄다. 매일 500자로 줄였더니 닷새 갔다. 주 3회 1500자로 바꿨더니 열흘 갔다. 그 5년 동안 쓴 글의 총량보다, 멈출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한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닌가 보다라는 자책의 총량이 훨씬 컸다.

그러다 어느 날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매일 쓰는 작가들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더라.

이 글은 그 이야기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의외로 작은 방법들에 관한 노트.

"쓰는 양"에 대한 오해

헤밍웨이는 하루에 약 500단어를 썼다. 노인과 바다를 쓴 그 헤밍웨이가. 한국어로 치면 한 페이지 좀 넘는 정도. 1954년 Paris Review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말한 분량이다.

스티븐 킹은 2000단어다. 《On Writing》(2000)에 본인이 적어놓은 숫자. 한국어로 4-5페이지. 매일 4-5페이지를 쓰면 3개월이면 장편 한 권이 나온다. 그가 그렇게 많은 책을 쓴 건 하루에 많이 써서가 아니라 30년 넘게 매일 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6시간 작업한다. 시간으로는 길지만 분량으로는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지 않다. 5-6시간 동안 한 줄도 못 쓰는 날도 있을 거다, 아마도.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작가는 하루에 어마어마하게 쏟아낸다는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다. 작가들은 별로 안 쓴다. 다만 매일 쓴다. 그게 차이의 전부다.

매일 못 쓰는 사람의 가장 흔한 실수는 너무 많이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 시작이 너무 무겁다는 것. 1000자가 무겁다. 500자도 무겁다. 그래서 책상에 앉지 못한다. 안 앉으면 안 써진다.

내가 쓰는 세 가지 방법

1. 목표는 우습게 작게 잡는다

나는 이제 하루 100자를 목표로 한다. 트위터 한 개 분량도 안 된다. 너무 적어서 목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인데, 그래서 좋다. 100자는 못 쓰는 날이 거의 없다. 100자를 못 쓸 만큼 바쁜 날은 1년에 며칠 안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 100자를 쓰고 나면 보통 더 쓰게 된다. 그게 작은 목표의 비밀이다. 적게 시작하면 더 쓰게 된다. 1000자가 목표면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거워 책상에 앉지 못하지만, 100자가 목표면 그 정도면 지금 쓸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앉는다. 한번 앉으면 100자만 쓰고 일어나는 게 더 어렵다.

목표는 내가 못 지키지 않을 만큼 작아야 한다. 그래야 매일이 된다. 매일이 되면 총량은 알아서 따라온다.

2. 어디서 쓸지를 정한다

가장 무시되는 조언이다. 그런데 가장 강력하다.

매일 쓰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같은 자리에서 쓴다. 같은 책상, 같은 카페, 같은 노트, 같은 앱. 무라카미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시간 때문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라는 자기 의식 때문이다.

어디든 상관없다. 책상이어도 좋고, 침대 위여도 좋고, 출근길 지하철 안이어도 좋다. 다만 늘 같은 곳이어야 한다. 매일 다른 곳에서 쓰면, 매일 오늘은 어디서 쓸까부터 결정해야 해서 에너지가 그쪽으로 새어 나간다. 결정 피로라는 거다. 작은 결정이 쌓이면 결국 쓰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글터에서 쓴다. 이 사이트가 내 책상이다. 다른 곳에서도 쓰긴 하지만, 매일 한 줄이라도 여기서 쓴다는 자기 약속이 매일 책상에 앉게 한다. 누군가 보고 있을 거라는 가벼운 압박은 내 안의 미루기 습관보다 약간 더 세다. 약간이면 충분하다.

3. 영감을 기다리지 않고 받는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적은, 영감을 기다리는 습관이다.

오늘은 쓸 마음이 안 드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기분이 안 좋아서 글이 안 써져. 이런 말을 자주 한다면 영감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영감은 좋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쓰면 글이 잘 나온다. 다만 — 영감은 매일 오지 않는다. 매일 오는 사람도 없다. 영감을 기다리면 한 달에 두세 번 쓰는 사람이 된다.

매일 쓰는 사람은 영감을 받아서 쓰는 게 아니라, 일단 써서 영감을 만들어낸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영감의 마중물이다. 1편에서 "오늘 나는"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지운다고 했다. 그게 영감을 기다리는 대신 만들어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그래도 시작점이 막막하면 — 글감을 본다. 누가 던져준 한 문장에서 출발하면 백지에서 시작할 때보다 100배 쉽다. 글감은 영감의 대용품이 아니라 영감의 출발점이다.

그래도 매일이 안 되는 날들에 대해서

여기까지 쓰고 나서 또 미안해진다. 매일 쓰자고 한 노트의 끝에서, 그래도 매일이 안 되는 날들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진다.

매일 쓰지 못해도 괜찮다. 진심으로 그렇다. 매일 쓰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자격증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사람도 글 쓰는 사람이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사람도 그렇다. 전혀 쓰지 않는 사람가끔 쓰는 사람의 차이가, 가끔 쓰는 사람매일 쓰는 사람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다만 —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위의 세 가지는 진심으로 도움이 된다. 작게 시작하고, 같은 자리에 앉고, 영감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5년쯤 그러고 나면 어느 날 알게 된다.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됐구나.

그 알아챔은 늦게 온다. 그때까지는 그냥 100자씩 쓰면 된다.

다시, 매일 쓰는 사람에 대해서

5년 전의 나에게 한 가지를 알려준다면, 비장하게 결심하지 말라고 할 것 같다. 매일 쓰는 사람은 비장하게 결심해서 된 게 아니다. 비장하게 결심한 사람은 보통 사흘 안에 멈춘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건 결심의 일이 아니라 설계의 일이다. 결심을 적게 필요로 하는 구조를 만들면, 결심이 약한 날에도 글이 써진다.

100자 목표는 결심을 적게 요구한다. 같은 자리는 결심을 적게 요구한다. 글감은 결심을 적게 요구한다. 모두 내 의지력을 덜 쓰게 하는 장치다. 의지는 한정된 자원이고,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데 써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글쓰기에는 의지를 덜 쓰는 게 좋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된다는 건, 결국 글쓰기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다. 무겁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리고 — 다섯 편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아마도 이 한 줄이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쓰자.

첫 문장은 좋을 필요가 없고, 글은 완성하지 않아도 되고, 진부한 표현이 떠올라도 괜찮고, 사랑한 문장은 지워도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오늘 100자만 써도 충분하다. 다섯 편이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일도 100자를 쓸 거다. 그게 매일 쓰는 사람의 전부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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