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6)
다음 날에는 본격적으로 콘라드와 함께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주방장은 어제 잠깐 봤던 훈련이 효과가 있다고 느꼈는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콘라드에게 의견을 적극 개진하면서 이것저것 주방의 동선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건, 이쪽으로 옮기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
“그래? 나보다는 자네가 여기 전문가니까 그 의견대로 가자.”
솔직히 최경원은 주방의 실무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제야 병목이 발생하는 부분만 개입해서 수정한 거였고, 이제는 진짜 전문가들이 디테일을 채울 차례였다. 방법은 알려 줬으니 금세 할 수 있을 터였다. 최경원이 조리병으로 일한 곳은 해군 함정이었으니, 이곳 환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의 경험으로 섣불리 조언을 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때 빽 하니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콘라드가 고개를 돌려 보니 한스 집사가 화가 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한스 집사님. 그게 콘라드 도련님과 함께 시뮬레이…… 션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콘라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보면 모르나. 훈련 중이지.”
“마당에서 이게 무슨 난잡한 짓입니까. 남사스러워라. 하인들이 수군수근 댈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한스 집사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바닥에 그어진 선을 내려다봤다.
“이게 무슨 애들 장난 같은 짓입니까?”
“애들 장난은 아냐. 검증된 훈련 방법이니까.”
“검증이요? 세상에. 전 이런 훈련법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주방에 무슨 훈련이 필요합니까? 전쟁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주방도 전쟁과 똑같지. 서로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일을 하는데. 목적이 있고 사령관이 있고 역할이 분명하다면 전쟁과 다를 게 무언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아니지요!”
“사람을 죽이고 살려야만 전쟁인가? 그러면 주방도 전쟁이지. 음식을 못 만들면 살지 못하니까.”
한스 집사는 으르렁대는 눈빛으로 콘라드를 쏘아보았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콘라드는 예전에 알던 멍텅구리 서자가 아니었다. 한스 집사는 콘라드를 보다가 주방장을 홱 돌아보았다.
“주방장! 자네가 도련님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이런 괴상한 놀이에 동참하면 어떻게 하나?”
“아, 저, 그게, 집사님…….”
주방장은 콘라드를 대할 때와 다르게 한스 집사에게 쩔쩔맸다. 최경원은 이게 서자인 콘라드의 한계인가 싶어서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만해, 한스 집사. 내가 책임진다고 하고 벌인 일이니까. 정 벌하려면 가주님께 말해서 나를 처벌하도록 하는 게 맞지, 왜 엄한 주방장에게 화풀이야?”
“화풀이라고 하셨습니까?”
“응. 화풀이. 아, 그렇다고 선을 지우지는 마. 내가 어렵게 그린 그림들이니까.”
홧김에 선을 발로 문지르려 했던 한스 집사가 움찔하며 콘라드를 바라봤다. 서자 출신이기에 비교적 함부로 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작의 핏줄이다. 일반 하인들과 동일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한스 집사는 눈을 부릅뜨며 이야기했다.
“이건 남작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쳐서 성 내 기강을 어지럽혔다고요.”
“좋지, 좋아. 그렇지 않아도 가주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 자네가 도와주면 나야 편하지.”
콘라드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한스 집사는 콘라드를 잠시 노려보다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성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주방장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봤다. 콘라드는 입을 쩝 다신 뒤 이야기했다.
“주방장, 걱정 말고 하던 대로 연습하게. 나는 방금 일 때문에 바빠질 것 같으니. 나 없다고 허투루 연습하지 말고.”
“도, 도련님. 괜찮으시겠습니까?”
“효과는 자네도 경험했잖아? 괜찮아. 가주님 귀에 빨리 들어가면 더 좋지 뭐.”
최경원은 괜히 한스 집사와 날을 세웠나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자기가 여기 오기 전에는 콘라드에게 경멸과 시비를 마음껏 뿌려왔던 사람이다. 예전의 콘라드라면 모를까, 자신은 그 수법에 그대로 당할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인 헨릭 남작이 어떻게 나올지가 조금 걱정이기는 했지만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경험한 바이니 나쁜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쁜 말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그냥 얻은 삶인데.
헨릭 남작이 콘라드를 부른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스 집사가 엄청 투덜거렸는지 남작은 노기를 띤 상태로 콘라드를 맞이했다. 자리에는 헨릭 남작과 엘레노어 부인이 같이 있었다.
엘레노어 부인은 헨릭 남작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헨릭 남작의 얼굴은 누가 봐도 화가 난 표정이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도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이 정도로 화가 나신거야?.’
최경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주님, 부르셨습니까?”
“콘라드, 성 안에서, 쿨럭, 해괴한 짓을 벌이고 있다고?”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한스 집사가, 쿨럭,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컥, 크흠, 말이냐!”
헨릭 남작의 호통이 금세 떨어졌다. 최경원은 콘라드가 남작에게 고작 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텍스트로 읽는 것 같이 느껴지는 감정은, 실제로 겪는 감정에 비해 조금 거리감이 있었다. 옆에 있던 엘레노어 부인이 다시 한번 차분하게 남작을 말렸다.
“여보, 제발, 콘라드의 이야기도 들어봐요. 그동안 조용히 지냈던 아이입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 콘라드. 무슨 할 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크흠, 단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판단되면 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콘라드, 아니 최경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첫 번째 마주치고 넘어가야 할 난관이었다. 자신이 한국에서 인사팀장을 하면서 수많은 경영진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어떻게 했었더라? 최경원은 콘라드의 입을 빌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가주님. 한스 집사에게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스 집사가 진짜로 거짓말을 고했다고?”
헨릭 남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한스 집사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다. 콘라드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하는 행위에 대해 오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해? 내가 듣기로는 마당에 그림을 그리면서, 콜록, 주방 사람들을 괴롭혀서 음식 준비를 방해한다고 들었는데.”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개선하려고 한 것입니다.”
“무슨 개선을 말이냐?”
콘라드는 헨릭 남작 앞으로 조금 걸어갔다. 남작은 아들의 돌발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콘라드는 남작 앞에 있는 책상을 살폈다. 헨릭 남작은 오른손잡이였기에 깃펜과 잉크통이 책상 오른쪽 상단에 배치되어 있었다. 콘라드는 그것을 집어 좌측 하단으로 옮겨 놓았다. 헨릭 남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주님, 이 상황에서 잉크를 찍어 글을 적기 편할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불편하지.”
“어제까지의 주방 상황이 이런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콘라드는 다시 잉크통과 깃펜을 원래 배치대로 놓았다.
“어제 했던 것이 이 행동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 것뿐입니다.”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하인들을 부렸다고 들었는데?”
“빠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모의 훈련을 진행한 겁니다. 마당에서 주방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뒤,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부딪히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위치를 조정합니다. 그 상황을 반복하면 과거보다 훨씬 더 편하고 빨라지죠.”
콘라드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헨릭 남작은 흐음, 하고 소리를 내었다. 한스 집사가 투정 부리면서 보고를 올릴 때는 콘라드가 엄한 짓을 하는 건가 싶어서 단단히 혼을 내려고 했는데, 실상을 들어보니 나쁘지 않은 소리 같아 보였다. 콘라드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사실 어제 말씀드릴까 고민했었습니다. 어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이?”
헨릭 남작은 문득 어제 시녀에게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별거 아닌 것처럼 대답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네, 맞습니다. 아직 주방장을 비롯해 하인들이 훈련 중이라……. 조금 더 나은 기회에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한스 집사가 알게 되어서 이렇게 바로 들통이 나 버렸네요.”
“콘라드가 성장했네요. 대단하지 않나요, 여보?”
엘레노어 부인은 콘라드를 은근히 추켜세워 주었다. 헨릭 남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좋다, 콘라드. 네 말이 사실인지는 다시 확인해 보면 알겠지. 물러가라.”
헨릭 남작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엘레노어 부인은 황급히 물러가라는 손짓을 보냈고, 콘라드는 두 분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콘라드가 주방 쪽으로 돌아가니 주방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마당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콘라드가 보이자 황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우리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문제 있을 게 있나.”
“아무리 그래도 한스 집사가 좀 화가 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가주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셨으니 문제없을 거야. 자네가 주관이 돼서 모의 훈련을 진행하고 혹시 불편한 점 있으면 말해줘. 나도 같이 해결책을 모색해 볼 테니.”
주방장 무리가 물러가자 최경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떨결에 휘말리긴 했지만 어영부영 일이 해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서자 놈, 이 성에서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부는 제법 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하나의 무기였다.
최경원은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이 성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력이 너무 많았다. 마당에서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을 시도했다고 남작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는 한스 집사부터, 에리히 형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좀 누그러졌지만 주방장조차 처음에는 적대적이고 반항적인 기세가 강했다. 무언가를 돌파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는 보통 책이 답이긴 한데……. 이 정도 영지 규모에서 도서관이 있을까?”
콘라드의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도서관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콘라드가 글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도 가정교사를 붙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잠깐, 이 성에서 나한테 호의적인 사람이 두 명 있잖아.’
마사와 엘레노어 부인. 마사는 콘라드의 친어머니인 한나의 친구이고, 엘레노어 부인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콘라드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사용조차 할 수 없는 ‘헨릭’이라는 성을 엘레노어 부인의 요청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밑져봐야 본전이다.”
최경원은 엘레노어 부인을 찾아가 보기로 결정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엘레노어 부인의 방은 멀지 않았다. 방에 계실지는 확인을 미처 못했기 때문에 안 계시면 헛걸음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시녀장이 눈에 보였다.
“도련님? 마님을 뵈러 오셨나요?”
“어, 응. 어머님께 말씀 좀 드려 주겠어?”
시녀장은 익숙한 듯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 콘라드를 안내했다. 시녀장은 콘라드를 들여보낸 뒤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와라, 콘라드. 이 방에는 오랜만이구나.”
예상대로 엘레노어 부인은 콘라드를 환대해 주었다. 그녀는 콘라드를 잡아끌어서 소파에 앉히고는 차를 한 잔 내주었다. 콘라드의 기억을 읽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런 엘레노어 부인의 환대가 최경원은 괜히 쑥스럽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마시렴, 콘라드. 남부 벨리시움에서 온 귀한 차란다. 이름은 말레블루. 심해의 해초와 귀한 푸른 꽃을 섞어서 만들었다더구나.”
엘레노어 부인이 건네준 찻잔 안에는 짙푸른 바닥 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최경원은 현대 한국인이었다. 그 말은 차보다는 커피를 더 선호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아는 차 종류는 대부분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차는 비주얼부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콘라드가 찻잔을 보며 낯설어하고 있을 때, 엘레노어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레몬 조각을 집어 즙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툭.
레몬즙이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찻물이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번져나갔다.
“와, 색이 변하는군요?”
콘라드가 감탄하자 엘레노어 부인은 끄덕였다.
“그래. 맛도 짭짤하면서도 상쾌한 것이 일품이지. 요즘 영지 사정이 어렵다니 이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너와 함께 나누고 싶어 준비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래, 무슨 일 때문에 왔니? 저번에 내가 한 말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온 거니?”
최경원은 갑자기 자살의 이유를 물어봤던 엘레노어 부인이 기억났다. 콘라드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일은 이제 생기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너의 행실이 묘하게 바뀌어서 눈에 들어오던 참이란다. 하하, 가주님 표정을 봤니? 세상에나. 네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니?”
“별거 아닙니다. 그냥…… 눈에 보였습니다.”
“드디어 우리 콘라드가 세상을 나가려고 하는가 보구나. 그래,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
엘레노어 부인의 이 무한한 호의는 무척이나 고맙다. 가슴이 꼭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감정은 콘라드의 것인가, 최경원의 것인가. 최경원은, 콘라드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이야기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너무 어리석고 무지했다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데…… 형님이 계시니 차마 가정교사를 붙여 달라는 말씀까지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혹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요?”
콘라드의 부탁이 예상외였는지 엘레노어 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왜? 가정교사가 필요하면 내가 가주님께 부탁드려보마.”
“아닙니다, 어머님.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혼자 책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정말 가정교사가 없어도 되겠어? 오랜 기간 동안 무기력하게 있던 너를 보다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은데.”
“아닙니다, 어머님. 정말로 마음만 감사드립니다.”
콘라드의 확고한 말에 엘레노어 부인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였다.
“책이라면 가주님의 서재에서 볼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서재에 출입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한번 가주님과 이야기를 해 보고 알려주마.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닙니다, 어머님. 말이라도 해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흠, 아니다. 콘라드. 잠시만.”
엘레노어 부인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이었다.
“네가 원하는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서고가 하나 있지. 선조님들이 남긴 영지 기록이나 낡은 서적들이 아마도 있을지 모르겠구나. 거기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아서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 곳이야.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니 원한다면 그곳 열쇠를 내어 줄 수 있을 거다.”
콘라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서재만 생각했었는데 오래된 서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어쩌면 훨씬 더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적이 낡아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괜찮겠니?”
“전 정말 좋습니다,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콘라드가 계속 감사의 인사를 표하자 엘레노어 부인은 미소를 띠었다. 오랜 시간 동안 우중충하고 우울했던 콘라드가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먼저 하늘로 올라간 한나가 문득 생각나서 괜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한나, 콘라드는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비록…… 어려움이 있지만 잘 극복할 거라 믿어. 널 닮은 아이니까.’
이 글에 대해 감상을 남기시겠어요?
감상은 본문 옆에 댓글이 아니라, 광장의 감상방에 별도의 글로 올라갑니다. 작가에게 알림이 가요.
댓글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