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숲, 얼어붙은 기도

현이이야기꾼·2026년 5월 19일 AM 03:00·2,340

이그니스의 접근이 확인된 지 24시간 후. 지상은 여전히 죽음처럼 고요했다.

시온은 카이와 함께 '제7섹터'의 점검 라인을 이동하고 있었다. 광활한 질소 평원 위로, 검은 기둥들이 창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강철의 숲. 지하 맨틀까지 박혀 있는 12,000개의 지열 굴뚝, 프로젝트 헤파이스토스의 위용이었다.

[이동 속도 80km/h. 자기장 그리드 상태 양호.]

카이의 건조한 목소리가 통신 채널을 울렸다. 두 사람은 땅을 밟지 않았다. 지표면 아래 1미터 깊이에 매설된 초전도 자기 유도 그리드가 그들의 부츠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루미너스들은 별도의 추진제 없이도 광활한 엔진 밭을 고속으로 순찰할 수 있었다.

"카이, 저걸 봐."

시온이 속도를 줄이며 손짓했다. 거대한 엔진 외벽에 하얗게 내려앉은 성에가 별빛을 받아 반짝였다. 높이 500미터, 지름 50미터의 티타늄 구조물은 마치 고대 신전의 기둥처럼 장엄했다.

[단순한 산화 방지 코팅 위로 질소 결정이 달라붙은 거야. 감상할 시간 없어, 시온. 점화 시퀀스 입력까지 4시간 남았어.]

카이는 멈추지 않고 앞서 나갔다. 그의 은색 눈동자는 눈앞의 풍경을 오직 '데이터'로만 해석하고 있었다. 구조적 결함 없음. 냉각수 순환 정상. 점화 플러그 예열 중.

하지만 시온은 멈춰 섰다. 칩이 보내오는 '임무 우선' 신호가 뇌를 찔렀지만, 그는 기이한 이끌림을 느꼈다.

시온은 38번 엔진의 기단부에 착지했다. 엔진 기단의 강철 데크는 내부 점화 예열로 미세하게 가열되어 있어, 루미너스의 슈트로 직접 접촉이 허용되는 몇 안 되는 지점이었다. 부츠의 자력을 조절해 강철 데크 위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영하 210도의 진공.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20년 전, 마지막 인류가 이곳을 떠난 그 순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시온은 엔진 외벽의 한구석을 비추던 헤드라이트를 고정했다. 매끄러운 티타늄 표면에 거칠게 긁힌 자국들이 있었다. 기계로 새긴 정교한 시리얼 넘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다이아몬드 드릴이나 뾰족한 공구로 필사적으로 긁어 쓴 글씨였다.

서준, 미라, 그리고 태어날 아가야. 아빠는 여기서 잠들지만, 너희는 꼭 별을 보렴. - 2045. 12. 24. 용접공 K.

시온은 숨을 멈췄다. 글씨 옆에는 불투명한 테이프로 붙여놓은 낡은 사진 한 장이 진공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웃고 있는 가족의 얼굴. 자외선에 색이 바랬지만, 그들의 미소는 선명했다.

"이건..."

시온은 장갑 낀 손으로 글귀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차가운 금속 너머로, 20년 전 이곳에서 얼어 죽어가던 한 남자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온, 궤도 이탈이다. 뭐 하고 있지?]

카이가 되돌아왔다. 그는 시온이 보고 있는 낙서를 흘끗 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구조적 강도에 영향 없음. 표면 오염으로 분류. 제거할까?]

"아니!"

시온이 카이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카이의 칩이 '공격 징후'를 감지하고 경고등을 띄웠지만, 카이는 시온의 헬멧 너머로 보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멈칫했다.

"오염이 아니야. 이건... 유언이야."

[죽은 자의 데이터는 생존에 기여하지 않아. 낭비야.]

"아니, 이게 연료야."

시온은 엔진을 올려다보았다. 이 차가운 기둥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자식이었다. 50억 명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맨손으로 파내려 간 구멍. 그들이 자신들의 뼈를 태워 지구를 밀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우린 기계를 고치러 온 게 아니야, 카이. 그들의 기도를 확인하러 온 거야."

카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칩의 논리 회로는 심각하게 손상됐군. 복귀하면 재조정을 권장한다.]

그때였다.

우우웅-

미세하지만 묵직한 진동이 시온의 부츠를 타고 올라왔다. 자기장 그리드의 진동이 아니었다. 땅 깊은 곳, 암반 자체가 울리는 소리였다.

시온과 카이는 동시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엔진 외벽에 붙어 있던 얼음 결정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진동 감지. 진원지 지하 50km. P파 도달.]

카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빨라졌다.

[이건 단순한 지진이 아니야. 지각판 전체가 휘어지고 있어.]

시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이그니스. 그 거인의 손길이 벌써 지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낙서가 새겨진 38번 엔진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시작됐어."

시온이 중얼거렸다. 철의 숲이 떨고 있었다. 얼어붙은 기도들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침묵의 의미를 몰랐을 뿐.

"벙커로 복귀한다! 서둘러!"

두 루미너스는 자기장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 뒤로, 고요했던 질소의 평원에 거대한 균열이 실금처럼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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