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 사랑한 문장을 지우는 일(4)

현이이야기꾼·2026년 5월 20일 PM 01:00·2,914

내가 처음으로 진짜로 잘 썼다고 생각한 문장 하나를, 지운 적이 있다.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다만 그걸 지우기 직전에 두 시간쯤 고민했다는 건 기억난다. 두 시간 동안 그 문장을 노려보면서 이 정도 문장은 쉽게 안 나오는데,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근데 이게 정말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를 반복했다. 결국 지웠다. 지운 다음 글이 좋아졌다. 그게 내가 처음 퇴고가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된 날이었다.

이 글은 그 이야기다. 잘 쓴 문장을 지우는 일에 관한 노트.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는 누가 한 말일까

작문 강의에 자주 등장하는 격언이 있다. Kill your darlings. 직역하면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 보통 스티븐 킹이 한 말로 알려져 있고, 일부는 포크너가 한 말이라고 한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원조는 1914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강연이다. 아서 퀼러-카우치라는 영국 작가가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글을 쓰다가 유난히 잘 쓰여진 문장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면, 그 충동에 따라 그 문장을 써라 — 그리고 원고를 인쇄소로 보내기 전에 지워라.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살해하라." 원문에서는 Kill이 아니라 Murder였다.

이게 1916년 책으로 출간되고, 포크너가 비슷한 말을 했다고 잘못 전해지고, 스티븐 킹이 2000년 《On Writing》에서 Kill your darlings로 살짝 바꿔서 유행시켰다. 그렇게 KillMurder 사이를 오가며 100년 넘게 살아남았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 말이 진짜라는 뜻이다.

퇴고는 다듬는 게 아니라 버리는 일이다

퇴고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 맞춤법 검사 + 어색한 문장 다듬기가 퇴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한국 작문 수업에서 가장 자주 가르치는 퇴고도 이쪽이다. 띄어쓰기 고쳐라, 주어와 술어 호응 맞춰라, 중복된 표현 줄여라.

이게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그건 퇴고의 5%다. 퇴고의 진짜 일은 지우는 것이다. 다듬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 내가 쓸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의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 내가 쓸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가장 자주, 글 전체보다는 그 문장 자체를 위해서 거기 있기 때문이다. 글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 자존심을 위한 문장. 퀼러-카우치가 "유난히 잘 쓰여진 문장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면"이라고 단서를 단 게 정확히 그 지점이다. 잘 쓰고 싶은 충동은 글을 위한 게 아닐 때가 많다. 그 충동의 끝에 놓인 문장은, 보통 글의 흐름을 끊는다.

내가 쓰는 세 가지 퇴고 단계

1. 하루 묵힌다

가장 중요한 한 단계. 글을 다 쓴 다음 하루를 그대로 둔다. 가능하면 이틀. 그 사이엔 글을 안 본다.

이게 효과 있는 이유는, 방금 쓴 글은 내가 너무 사랑해서 객관적으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좋은 거다. 다만 퇴고에는 방해가 된다. 하루가 지나면 사랑이 살짝 식는다. 식은 만큼만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게 충분하다.

마감이 너무 급해서 하루를 못 묵힐 때도 있다. 그럴 땐 최소 한 시간이라도 다른 일을 하고 돌아온다. 한 시간이라도 안 보는 것과 곧장 퇴고하는 건 차이가 크다.

2. 소리 내어 읽는다

화면 위의 글과 입으로 나오는 글은 다르다. 화면에선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이 입으로 읽으면 이상한 곳에서 숨이 막힌다. 그 자리에 뭔가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인지는 몰라도 몸이 안다.

특히 호흡이 자꾸 끊기는 자리, 발음이 꼬이는 자리, 읽으면서 지루해지는 자리 — 이 세 곳을 표시한다. 이게 퇴고에서 손볼 1순위 자리다.

3.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의심한다

여기가 핵심이다. Kill your darlings가 작동하는 자리.

글을 다 쓰고 나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장 하나를 찾는다. 표시해둔다. 그리고 자문한다: 이 문장이 없으면 글이 무너지는가, 아니면 글이 가벼워지는가.

무너지면 둔다. 가벼워지면 — 지운다. 지운 다음 글을 한 번 다시 읽는다. 거의 항상, 글이 더 좋아져 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그 문장글이 자랑스러워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워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다르다.

퇴고하지 않아도 되는 글에 대해서

여기까지 쓰고 나서 좀 미안해진다. 모든 글이 퇴고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일기는 퇴고하지 않는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퇴고하지 않는다. 새벽 세 시에 갑자기 떠올라서 쓴 메모도 퇴고하지 않는다. 퇴고하지 않아야 살아있는 글이 있다. 퇴고는 그 글들을 죽일 수도 있다.

퇴고가 필요한 건 남에게 보여줄 글, 시간을 들여 다듬고 싶은 글, 내 이름을 걸고 내놓을 글에 한해서다. 그리고 그 글에서조차 — 전부를 퇴고하지 않는다. 글의 어떤 부분은 다듬을수록 매끄러워지지만, 어떤 부분은 다듬을수록 광택만 남고 알맹이가 사라진다. 그 경계를 아는 게 퇴고의 진짜 기술이다.

기술이라기보다는 —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지운 문장의 개수만큼 생긴다.

다시, 사랑한 문장을 지우는 일에 대해서

내가 처음 잘 썼다고 생각한 그 문장을 지웠을 때, 사실 좀 슬펐다. 두 시간 고민하고 지운 거니까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지금 와서 보면 가장 정확한 신호였다. 이 문장을 지우는 게 슬프다는 건, 내가 이 문장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한다는 건, 이 문장이 글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퇴고는 그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이다.

지운다고 그 문장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 메모장에 옮겨두면, 다음 글에서 더 어울리는 자리를 찾을 수도 있다. 사랑한 문장은 죽지 않는다. 잠깐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이다.

그게 darling을 죽이는 일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죽이는 게 아니라, 지금 이 글에서는 보내주는 일.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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