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강가의 여관

현이이야기꾼·2026년 6월 2일 AM 09:02·3,235

비가 사흘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오래전에 불탄 성벽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고, 강물은 불어난 짐승의 등처럼 둔중하게 출렁였다. 북쪽 산맥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돌다리를 삼킬 듯 차올랐고, 강가의 버드나무들은 축축한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바람에 몸을 떨었다.

그 강가에 여관 하나가 서 있었다.

간판에는 낡은 글씨로 「잠든 노새」 라고 적혀 있었지만, 글자의 절반은 이끼에 먹혀 보이지 않았다. 여행자들은 그 여관을 농담 삼아 “세상 끝의 첫 번째 지붕”이라 불렀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자들에게는 북방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따뜻한 침대였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자들에게는 아직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첫 술잔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여관 안에는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뻐하기엔 지나치게 조용한 손님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벽난로에서 가장 먼 자리, 창문 옆 그림자 속에 앉아 있었다. 젖은 망토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고, 테이블 위에는 손대지 않은 스튜 한 그릇이 식어가고 있었다. 낡은 가죽 장갑을 낀 그의 오른손은 계속해서 품 안의 무언가를 확인하듯 움찔거렸다.

여관 주인 베론은 그런 손님을 싫어했다.

돈을 내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은 대개 은화를 넉넉히 던지고 사라졌다. 문제는 그들이 은화보다 더 무거운 것을 두고 간다는 데 있었다. 피 묻은 소식, 쫓기는 발자국, 혹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들의 관심.

베론은 그런 것들에 질릴 만큼 익숙했다.

“더 데워드릴까요?”

그는 손님의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았다. 빗줄기 너머, 강 건너 숲은 밤과 섞여 하나의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한참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젊은이가 있나?”

베론은 눈썹을 찌푸렸다.

“글이요?”

“고대어면 더 좋고.”

그 말에 벽난로 옆에서 장작을 뒤적이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이름은 라한이었다. 열일곱 살. 여관 주인의 조카이자, 손님들의 말발굽을 닦고 빈 술잔을 치우며, 겨울이면 장작을 패고 여름이면 강에서 술통을 식히는 일을 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사실 때문에 마을 아이들에게는 조금 이상한 놈으로 여겨졌다.

라한은 오래전 여관에 묵었던 떠돌이 학자에게 글자를 배웠다. 처음에는 장부를 대신 쓰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글자들이 장부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자는 산맥을 넘고, 죽은 왕의 입을 빌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전쟁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제가 조금 읽을 줄 압니다.”

라한이 말했다.

베론은 즉시 그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넌 장작이나 봐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이미 라한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상했다. 불빛 속에서도 검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안쪽에 마치 아주 오래된 밤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리 와라.”

라한은 망설였다. 베론이 낮게 기침했다.

“얘는 아직 애입니다. 고대어 같은 건—”

“이름이 뭐냐?”

손님이 물었다.

“라한입니다.”

“성은?”

“그런 건 없습니다.”

손님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기쁨이라기보다는, 어떤 오래된 예언이 자신을 비웃는 것을 들은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는 품 안에서 둥근 물건 하나를 꺼냈다.

처음에 라한은 그것이 검은 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손님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돌의 표면에 얇은 금빛 무늬가 흐르듯 떠올랐다. 무늬는 문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비늘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 안의 불빛이 순간 흔들렸다.

벽난로의 불꽃이 낮게 엎드렸다.

베론이 숨을 삼켰다.

“그건…”

“용의 비늘이다.”

손님이 말했다.

여관 안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빗소리마저 멀어진 듯했다.

라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다. 검은 비늘은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자는 살아 있는 벌레처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비늘은 말하고 있었다.

말이 아니라 압력으로.
소리가 아니라 기억으로.

라한의 머릿속에 낯선 장면이 번쩍였다.

붉은 하늘.
무너진 탑.
눈 덮인 평원 위에 엎드린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왕은 죽지 않았다.

라한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뭘 봤지?”

손님이 낮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라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왕이… 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창밖의 숲에서 무언가 울었다.

늑대의 울음은 아니었다. 곰의 포효도 아니었다. 그것은 쇠가 얼어붙은 호수 밑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였고,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는 듯한 소리였다.

손님의 얼굴이 굳었다.

“너무 늦었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젖은 망토가 바닥에 무겁게 떨어졌다. 그 아래 드러난 갑옷은 군인의 것이라기엔 너무 낡았고, 도적의 것이라기엔 너무 정교했다. 가슴팍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가 꺾인 용, 혹은 용의 목을 베는 칼.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

베론이 테이블을 움켜쥐었다.

“누구 마음대로?”

손님은 대답 대신 창밖을 보았다.

강 건너 숲속에서 하나둘씩 푸른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짐승의 눈이라기엔 너무 높았고, 횃불이라기엔 너무 차가웠다. 불빛들은 나무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여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더욱 거세졌다.

라한은 검은 비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그는 여관의 장작 담당이었고, 강가 마을의 책 좋아하는 이상한 소년이었으며, 언젠가 남쪽 도시로 가서 진짜 책방을 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빗물에 적신 잉크처럼 번지고 있었다.

손님은 비늘을 다시 품에 넣었다.

“라한.”

그가 말했다.

“오늘 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이곳에 남아 네가 아는 모든 것과 함께 불타거나, 나와 함께 가서 네가 모르는 모든 것에 쫓기는 것.”

라한은 베론을 보았다.

베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두 눈에는 라한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두려움.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체념.

그때 여관 문밖에서 첫 번째 발소리가 들렸다.

쿵.

나무 바닥이 울렸다.

쿵.

벽난로의 불꽃이 꺼질 듯 흔들렸다.

쿵.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라한은 자신이 언제 장작칼을 집어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손 안의 낡은 손잡이가 축축했고,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빗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는 것만 알았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세상은, 그가 알던 세상은, 그 순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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